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요즘 들어 어릴적에 먹던 음식들이 시도때도 없이 생각나는 것을 보면 나이가 들면 식성도 생각도 무게의 추도 다 달라질 것 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  그중 어머님이 손수 끓여 주시던 구수한 된장찌개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예전엔 잘 몰랐는데 차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시절에 먹던 음식들과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그리고 까다롭게 음식 투정을 하던 어린 시절엔, 나이 들면 밥 먹는 힘으로 살아간다고 하던 말이 무슨 말인가 했었는데, 이제 나도 벌써 그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된 것 같다. 한 끼라도 지나치면 금방 배가 졸아붙고 허리가 구부러진다. 축 늘어진 자루처럼 힘이 없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현기증이 난다.

지금은 세월이 좋아져서 마음만 먹으면 내가 원하는 음식을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다지만 도무지 그시절의 맛을 느낄 수 없으니 아마도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음식에 우려진 추억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아무리 이름난 맛집에 들어선들 그때 그맛을 쉽게 찾을 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아쩌면 우리는 음식의 맛과 더불어 추억을 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 아내가 임신했을 때 그토록 먹고싶다던 냉면을 사주지 않았던 나는 지금도 두고두고 타박을 듣고 있으니 한그릇 냉면보다도 소중한 추억을 앗아간 내가 얼마나 미웠겠는가.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독일 ARD방송국에서 TV방송다큐멘터리를 취재, 제작하고 있는 되르테 쉬퍼는 함부르크에 있는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에서 11년간 근무하며 인생의 마지막 요리를 준비해주었던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씨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  최고급 레스토랑의 인정받는 수석요리사였으나 채워지지 않는 삶의 허기 때문에 호스피스 요리사가 되었다는 그는 삶의 마지막 여정을 걷고 있는 그들을 위해 추억의 요리를 준비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레시피는 번번이 무시되지만 그는 기꺼이 받아들인다.  삶의 마지막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죽을 준비가 된 것'과 진짜로 '죽을 수 있는 것' 사이에는 종종 고통스러운 시간이 놓여 있다.  마지막 스테이크를 먹었던 남자와 마지막 담배를 피웠던 여자는 요리사가 보기에 죽을 준비가 되었음을 공표하고, 정말로 금방 세상을 떠난 몇 안 되는 손님들 축에 낀다.  마치 죽음을 스스로 조종할 수 있기라도 했던 듯이 말이다.  반대로 그는 죽고싶다는 소망을 공표했지만, 몇 주 혹은 몇 달간 죽을 수가 없었던 이를 수없이 보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그들은 다 내려놓고 떠날 수 있었다."  (P.143)

'등대의 불빛'이라는 뜻을 가진 로이히트포이어의 현관에는 이런 말이 걸려있다고 한다.
"우리는 인생의 날을 늘려줄 수는 없지만, 남은 날들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는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죽음을 눈앞에 둔 이들을 폐물 취급을 하는 경우가 있다.  산 사람들에게 그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폐기처분의 대상일지도 모르나 삶을 마치기 전까지 그들은 분명 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이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지난 시절의 추억을 다시 떠올려주기 위해 한끼의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하는 요리사는 얼마나 위대한가.  요리사는 자신이 호스피스의 입주민이라면 무슨 음식을 원할까 하는 물음에 이렇게 말한다.

"어릴 적 먹던 음식을 먹고 싶을 것 같아요.  토마토소스를 넉넉히 치고 치즈를 약간 넣은 햄 누들 수플레.  할머니가 어린 시절 해주셨던 것처럼요.  이상해요.  나 스스로는 이걸 한 번도 만들어보지 않았고, 몇 개월 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마치 명령이라도 받은 듯이 곧장 떠오르니 말이에요." (P.262)

새벽의 운동길에서 늘 만나던 사람을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건강을 생각하여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을 수밖에 없고, 거르지 않고 나오는 사람들도 대개는 그런 사람들이다.  정해진 시간에 일정한 장소에서 늘 만나던 사람들.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주변분들에게 그까닭을 묻지 못한다.  소심한 성격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듣게 될 대답이 두렵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걷는 한걸음의 보폭과 한끼의 식사에 담겨진 소중한 추억을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우리는 가끔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사소한 것'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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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 사무실 근처의 한 음식점에 점심을 먹으러 들렀다가 아주머니 두 분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오십대 초반의 순박해 보이는 두 분의 대화는 유난히 조용한 식당 안에서 아주 크게 들렸으니 웬만한 청력을 지니신 분들은 모두 들었지 싶다.
나는 그 두 분의 대화가 거의 끝날 무렵에 식당을 들어섰으니 앞의 내용을 짐작할 수 없지만 그 대화가 요즘 세태를 반영하는 듯해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성님은 시방 집사이지라?"
"암만, 그라제.  지난 달에 집사 안 됐능가?  동상은 시방 뭐시당가?"
"권사여라."
"권사?  권사 된 지 얼마나 됐당가?"
"이제 한 일 년 되어가는 갑소."
"꽤 되얐구만.  권사만 돼도 괘아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이 갑자기 시계를 보며,
"아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당가?  그만 일어나세, 동상."

그렇게 두 사람은 대화를 끊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권사라는 직책이 무엇이 괜찮은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천국을 가는 데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이승에서 사는 데 불편함이 없다는 것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뜻이 있는 것인지...
우리나라에 장로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순진한 서민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구나 싶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최근 이슬람채권법(Sukuk)을 두고 정부와 일부 종교계가 마찰을 빚었었다. 일부 종교단체 대표들이 대통령 하야 운동까지 언급하며 이슬람채권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던 것이다. 이슬람채권에 지급하는 돈이 알카에다 등 이슬람 테러단체로 흘러들어 갈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앞으로는 우리나라 금융기업이 돈을 빌리는 것도 종교를 보고 빌려와야 하는 것이다.  엉뚱한 상상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품에 원산지 표시와 더불어 생산자 종교 표시제가 법률로 정해지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점심을 다 먹고 계산을 하는데 지갑 속의 돈은 과연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이 찍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메뉴판의 원산지 표시에 다시 한번 눈길이 갔다.
내가 먹고, 쓰고, 사용하는 모든 물품을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믿는 종교가 우선시 되는 사회.
이러한 풍조와 세태 속에서도 아직 세계평화와 화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그저 놀랍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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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숙소는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이럴 때면 납덩이처럼 무거운 피로가 방안 곳곳에 제멋대로 자리를 잡는다.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피곤한 내색을 할 수 없다.  가뜩이나 공부로 지친 아이들에게 나의 피로까지 얹어줄 수 없는 일이기에 나는 언제나 기운이 넘쳐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어쩌면 선생이란 위치는 가르치는 일보다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더 힘들지도 모른다.

오늘 드디어 터질 것이 터져버렸다.
최근에 새로 들어온 아이.  틱 장애가 있어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흔들게 되는 그 아이는 오늘도 다르지 않았고, 학교에서와는 달리 아무도 놀리지 않는 분위기여서 긴장이 풀린 탓인지 처음보다 더 심했는지도 모른다.(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 
중학생들의 수업을 마칠 즈음 다른 아이들의 불만이 봇물이 터지듯 터져나왔다.
시끄러워서 공부를 할 수 없다는 불만과 함께 그 아이가 계속 나온다면 자신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오지 않겠다는 아이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이들은 이곳에서의 원칙을 잘 알고 있다.  물론 내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이지만, 어느 누구라도 본인 스스로 개선할 수 없는 신체적 약점을 갖고 다른 친구를 놀려서는 안된다는 것.
만일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을 때 그 아이는 더 이상 이곳에 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내 방침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원칙이 보기 좋게 깨진 것이다.
아이들은 그런 내 원칙을 감히(?) 깰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일주일을 버텨왔었나 보다.
어쩌면 그것이 무료로 배우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이들의 쌓인 불만을 모두 듣고는 한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수업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같이 하겠지만 자습을 할 때는 그 아이만 따로 내 방에서 공부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토로하던 아이들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이 문제로 틱 장애를 가진 그 친구를 따돌려서는 안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다른 아이들의 불만을 조용히 듣기만 하던 그 아이를 따로 불러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다.  장애를 딛고 큰사람이 되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는 순간 그 약점은 더 이상 약점이 될 수 없는 법이라고 일러주었다.  어쩌면 자신의 신체적 약점으로 인해 그 성과가 더욱 빛날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중학생 수업이 끝나고 야자를 끝낸 고등학생들이 몰려왔을 때, 나는 물 먹은 솜처럼 늘어져 몸을 추스르기 어려웠다.  아이들은 성인이 아닌 아이들이다.  배울 것도 많고, 참고 인내할 것도 많은 나이.
나는 그 아이들에게 여전히 부족한 사람임을 절감한다.
아무일도 없다는 듯 표정을 바꾸고 고등학생 수업을 하는 것이 왜 그렇게 힘들던지...
주말을 쉬고 다음주가 되면 오늘의 일은 이 밤처럼 까맣게 잊혀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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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뢰딩거의 고양이 -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지음, 박규호 옮김 / 들녘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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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말이 있다.
"자전거 탈 줄 알지?  자전거 타는 걸 처음 배울 때 어땠니?  조금 두렵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그랬지?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은 자전거 타는 요령을 배우는 것과 같아.  먼저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는지 잘 보고 직접 타봐야 하지.  무엇보다 눈으로 요령을 익혔다면 직접 타봐야 한다는 것이 자전거를 잘 탈 수 있는 첫걸음이듯, 수학도 그 개념과 문제 푸는 요령을 눈으로 확인했으면 직접 풀어봐야 한다는 거야.  생각해 봐.  자전거 타는 사람을 10년 동안 지켜봤다고 본인이 잘 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똑 같아.  네가 수학 문제 푸는 것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10여년을 지켜봤다고 잘 풀 수 있는 건 아니야.  처음 자전거를 배우자면 넘어지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때로는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그걸 두려워한다면 자전거는 영영 타지 못하지.  수학도 그래.  실수해도 괜찮아.  자신이 못푼다고 번번이 다른 사람에게 묻거나 의지하지 말고 직접 풀어봐.  너 자신을 믿어.  그러면 수학도 별 게 아니란 걸 알게 돼.  일단 문제가 풀리기 시작하면 자전거를 처음 탈 때처럼 상쾌한 기분을 맛볼 수 있어."

수학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겪었던 아주 작은 실수의 경험과 그로 인한 자존감의 상실이 수학이라는 과목 자체를 싫어하는 것으로 확장되었음을 인지하지 못한다.  으레 그렇듯 자신은 원래 수학을 잘 못한다고만 믿는 데 문제가 있다.
비단 이것이 아이들의 공부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우리네 삶에서도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때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 잘 하지 못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요즘 물리학과 양자역학에 푹 빠져 있다.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잠시의 짬을 틈타 책을 읽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아마 늦게 배운 도둑질이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과학의 아포리즘이 세계를 바꾸다>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케플러의 난제(Kepler's Problem : 대중에게 과학을 소개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의미의 경구)를 일시에 해소한다.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무지하다고 믿지만 과학의 경우에는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과학자에게 책임을 묻곤 한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전문적이고 과학적인 설명을 통해서 대중을 인식시키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한 물음이나 성찰에 대한 명제들을 그것을 최초로 던진 인물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처음 생각해낸 과학자들 곁으로 보다 가까이 다가갈 때 과학적 지식을 쉽게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의 구성은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양자역학의 발전을 다룬 원자의 무대 위에서, 맥스웰의 악령 등을 다룬 고전적 수수께끼들, 만델브로트의 세트 및 오일러의 수 등이 등장하는 무한과의 만남, 다윈 핀치, 멘델의 법칙를 비롯한 생명의 복잡한 규칙, 코흐의 가설 및 밀그램의 실험 등의 인간의 본성, 프로이트의 모욕, 베이컨의 격언 등이 나오는 과학사의 흥미로운 사실들의 총 6개 챕터로 현대 과학의 흐름을 과학자의 일화와 함께 저자의 맛깔스런 비유로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자연의 책은 수학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설파한 바 있다.
우리는 주변에서 하찮게 보아 넘겼던 수많은 자연 현상을 수학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를 알지 못하였기에 그 깊은 감동을 미처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밤하늘에 떠있는 수많은 별들과 그 무한한 시간을 바라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슈뢰딩거의 아름다운 방정식과 뉴턴의 상상력을 오늘 수학이라는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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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보그>의 에디터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저자의 인생 나들이. 

 "나는 삶이 여행처럼 느껴졌고, 내가 다니는 길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호기심이 차올랐다.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 길을 묻고, 그들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타인의 도움과 친절'로 살아간다는 관계의 이치를 체득했다." 고 저자는 말한다. 

도시인 그녀가 말하는 도시의 재발견, 어쩌면 평생을 도시인으로 살아야 하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그녀는 도시에서의 생존 전략을 들려줄지 모른다. 

 

 

 

우연히 들른 산속의 작은 사찰에서 고요 속에 듣던 풍경소리를 기억하는가?  종교가 달라도 한번쯤 겪었음직한 고즈넉한 경험. 

작가는 번잡한 도시인에게 사찰의 진한 솔내음을 전해주려나 보다.  그 속에서 과거로 향하듯 자신의 내면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통의 편지를 읽는 것으로 그 사람의 온 생애를 느낄 때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자라며 굳어지는 세계관과 인생관, 삶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편지글은 그 사람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기도 한다.  영인문학관 강인숙 관장도 이 시대의 문인과 예인의 편지가 궁금했나 보다. 작가 박완서, 유치환, 노천명, 이광수, 서정주, 전혜린을 비롯해 백남준, 장영주 등 예술가들의 육필 편지 49편과 그에 얽힌 배경지식과 뒷이야기들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이게 한다. 

 

 

 

나이 마흔!   

삶에서 이보다 더 애매한 시절이 있을까?  전력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기도, 나이를 거슬러 돌아갈 수도 없는 나이.  작가도 그랬나보다. 문화일보 편집기자 유인창의 독서 에세이는 책 속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발견하고, 현재와 미래를 조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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