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2000년대 이후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책을 보면 특이한 현상이 있다.
인기 작가나 외국 번안서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출판사의 의도된 판매 전략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가독력이 떨어지는 어렵고 난해한 책이 상위에 랭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것도 모자라, 수개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킨 것만 봐도 그렇다.  철학 입문서라고 보기에는 결코 가볍게 읽혀질만한 책이 아님에도 독자들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고, 최근에 장하준 교수의 이 책이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책은 물론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씌여진 자유 시장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서이자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된 세계적 금융 위기의 결과와 그 촉발 원인에서 보여지는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각을 꼬집고 있는 책이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 쓰여진 책이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어쩌면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자신의 권리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제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익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나는 저자의 의도 또는 희망사항에 대한 의문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 개인의 정치 사회화 과정에서 확립되는 정치적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이나 권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 혹은 권력자들은 이 책을 읽기나 했을까?  만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읽었다고 가정할 때, 그들의 사고는 책을 읽기 전과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비록 그들이 유권자의 인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최종 판단의 순간이 오면 이 책에서도 여러번 다뤄지고 있는, 어쩌면 자본주의의 근간이 될 수도 있는 개인의 이기심에 따르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아닌 일반 대중의 입장에 있는 독자는 또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자신이 어떤 이슈나 제도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때가 아니면 실질적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제한적 권력자(일반 시민)인 대다수 국민은 이 책을 읽고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의 불만이 저자와 같은 지식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만족감으로?  또는 최소한 이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는 지적 만족을 위해?  또는 읽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또는 읽는 내내 '에이, 더러운 세상!'이라며 속으로만 맘껏 외칠 수 있었던 불만 해소용으로?  이도 저도 아니면 아무 책이나 읽어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하는 식의 지적 보험이라도 필요해서?  아니면 이제라도 사회의(또는 제도의) 어두운 이면을 보았으니 정치일선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려고?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얼치기 경제학도로서 이 책을 읽었지만 그 내용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차피 책은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하니 어떤 책을 많이 읽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는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의가 희박한 사회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 어려운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었을지 지금도 몹시 궁금하다.  도대체 왜 읽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로아티아 블루 -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추석 연휴에 맞춰 3박 4일의 크루즈 여행을 계획했었다.
가족 모두가 떠나는 여행인만큼 기대도 컸었다.  한동안 쓸 일이 없었던 여권도 다시 갱신하고, 7층의 발코니실로 예약을 마쳤다는 아내의 전화에 내일이라도 즉시 떠날 것처럼 설레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인터넷에서 우리가 탈 배와 여행 경로를 확인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일본을 경유하여 중국을 돌아오는 해상 여행은 나로서도 처음이었으니 기대와 설렘은 아들에 못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본의 대지진 한방에 아들과 나의 들뜬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철옹성 같던 원전이 쓰나미에 휩쓸려 처참히 무너지듯, 한동안 우리 부자를 들뜨게 했던 여행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신이 찾은 크루즈 여행 정보를 자랑스럽게 전해주던 아들의 목소리는 시든 화초처럼 생기를 잃었고, 내년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위로도 별무효과였다.

크루즈 여행을 계획한 것은 장인어른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그 여행에 동행하지 못할까봐 꼭 가야 한다며 몇 번이고 다짐을 두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내실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발코니실이 좋겠다고 하신 것도 장인어른이었다.
그렇게 공들인 계획이 아무 성과도 없이 취소되자 당신은 어린 손자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차피 여행은 취소되었고 내게는 휑한 기분을 달래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크로아티아 블루>였다.  많고 많은 여행기 중에 이 책이 유독 눈에 띈 까닭은 아마도 크루즈 여행 내내 기대했던 짙푸른 바다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하늘과 바다가 한 치의 기울어짐도 없이 팽팽하게 맞선 그 시간 내내 나는 몸과 마음이 묶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긴장의 끈이 해가 기울자 느슨해졌고, 먼 바다의 반들반들한 빛이 점점 더 넓게 번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서둘러 자리를 털고 마른 몸을 일으켰다.  바다에 나갔던 요트들이 곧 금빛 융단을 끌고 오리라."  (P.190)

작가는 발칸반도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오염되지 않은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헤어진 옛여인에 대한 그리움처럼 더듬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지명을 따라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새  아드리아해의 낙조를 등지고 파도 소리에 맞춰 일곱겹 드레스를 한겹한겹 벗는 이국의 여인이 떠오른다.

"붉은 사연을 안은 바람이 언덕을 미끄러져 하늘과 바다를 휘저으며 노닙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선명한 색의 향연, '맙소사'나 '눈이 시리다'는 표현은 이런 바다, 이런 하늘을 두고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내 가슴은 쉴 새 없이 펄떡이고, 바람과 햇살에 아릿한 풍경도 위아래로 떨립니다.  고성 앞 투명한 해변에는 한 소녀가 햇살을 등에 업고 느릿느릿 책장을 넘깁니다."  (P.286)

이처럼 나른한 봄날 오후에 펄떡이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마음은 벌써 먼 나라의 낯선 항구로 향하고, 오수의 유혹에 무거워진 눈꺼풀은 하루 종일 중력과 드잡이질을 한다.  슬픈 하품에  눈물이 흐르는 오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름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출근시간에 자가용 사용을 포기했다.
아직도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한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춥다는 느낌은 갖지 않을 정도이니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회사까지  걸어서 가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붙은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였지만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언제부턴가 퇴근 후에 내가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부를 하기 위해 나의 숙소를 찾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고, 그 아이들의 입을 통해 이 근방의 학생들에게 나의 신상 정보가 노출(?)되기에 이르렀다.  가끔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의 친구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소개를 받고, 쑥스럽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은 내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물론 학생의 부모들과 상담을 하면서 근처에 사는 어른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하지 않던가.
으레 그렇듯 그런 소문은 조금씩 과장과 허풍이 섞이게 마련이다.
나에 대한 소문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아주 잘 가르친다는 말과 내 성격이 친절하고 자상하며 아는 것이 많다는 말도 내가 들었던 소문의 내용 중에 허풍의 한 예이다.
내게서 배우지 않는 아이들도 나에 대한 궁금증이 컸었나보다.
때로는 수업 중간에 아무개 친구라며 전할 말이 있어 왔다는 핑계를 대고는 내 얼굴만 힐끗 쳐다보고는 달아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이 근방의 아이들에게 원치도 않던 유명인이 되었다.
거리에서 낯모르는 학생이 인사를 하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동네의 작은 가게에서도 잘 모르는 어른들이 반색을 하며 아무개 선생님 아니냐며 인사를 건넨다.  때로는 담배를 사러 들렀다가도 그렇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담배 대신 계획에도 없던 과자나 음료수를 사서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전적으로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한 행동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동네에서는 행동에 몹시 조심스러워진다. 
피우던 담배를 아무 데나 함부로 버릴 수도 없고,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무단횡단을 할 수도 없다.  나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의 눈길이 항상 나를 감시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아이들과 같이 나눠 먹으라면서 떡이며, 과자며, 음료수 등을 한아름 안겨주는 경우도 많다.  가뜩이나 빠듯한 내 용돈을 생각할 때, 나는 이런 선의를 거절하지 못한다.(가끔 양심의 가책은 느낀다.  나는 생각처럼 공짜만 밝히는 그런 사람은 절대 아니다.)

나는 오늘도 걸어서 출근을 했다.
때마침 등교하는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면 나는 괜스레 우쭐해진다.
차를 타고 출근을 할 때는 전혀 들어오지 않던 풍경들도 새롭다.
자정이 되어서야 끝나는 수업의 피곤함이 비로소 사라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나는 반경 2km  이내의 유명인으로 살고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푸앵카레가 묻고 페렐만이 답하다 - 푸앵카레상을 향한 100년의 도전과 기이한 천재 수학자 이야기
조지 G. 슈피로 지음, 전대호 옮김, 김인강 감수 / 도솔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수학에 대한 일반인의 선호는 극과 극이다.
수학의 매력에 빠져 평생을 수학만 공부하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호와 숫자만 보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후자에 해당되겠지만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수학의 내면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수학만이 갖고 있는 순수한 매력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장황하게 설명하는 일반 언어와는 달리 지극히 간결한 수학적 언어는 일반인의 접근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시쳇말로 ’차도녀’(또는 차도남)이라고나 할까!  그야말로 순수하지만 도도한 학문임에는 틀림없다.

"생각할수록 페렐만과 푸앵카레를 비롯한 수학자는 시인인 것 같다.  수학은 축적된 지식이기 이전에 세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다.  묻고, 대답하고, 따지고, 자기의 오류를 인정하면서 배우고, 다시 묻는 태도.  그래서 옮긴이는 수학을 비롯한 과학을 천재들이 모아놓은 유용한 지식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적잖이 안타깝다.  시인처럼 세상을 대할 수 없다면, 시를 아무리 많이 외워도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역자 서문 중에서) 

이 책은 난해한 수학 공식이나 증명으로 일관하는 순수 수학과는 거리가 먼 책이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한 저자 슈피로는 스탠퍼드대학에서 MBA를 취득했고,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에서 수리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수학, 물리학, 경제학, 재정학에 관한 30여 편의 논문을 쓴 이력이 있는 저자는 전문 저널리스트로서 대수적 위상수학이라는 다소 낯선 학문을 소개함에 있어 상당히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오일러에 의해 시작된 위상수학이 현재와 같이 수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 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고찰함으로써 독자들의 사전 지식을 증가시킨 후 푸앵카레의 추측에 대한 문제로 넘어간다.  독자를 배려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1904년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자신의 논문 「위상기학으로의 제 5보족」의 마지막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검토해야 할 문제가 하나 남는다. 기본군(fundamental group)이 영인 3차원 다양체(3 dimentional simply connected manifold)가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 될 가능성이 있을까?" 이후 100여 년 동안 이 문제는 ‘푸앵카레 추측’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수많은 수학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자신의 직감을 정리가 아니라 질문으로 제시한 것은 그의 천재다운 솜씨였지만, 그 대답없는 질문이 여러 세대의 수학자들을 괴롭히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무려 100년 동안 전 세계의 수학자들이 그의 추측에 대한 반례를 찾아 헤매었고, 그러한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그의 추측이 옳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증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 성과가 아주 없엇던 것도 아니다.  비록 3차원에서의 증명은 이루지 못했지만 5차원 이상에서 푸앵카레 추측의 증명들이 속속 밝혀졌고, 1982년 프리드먼은 4차원에서도 푸앵카레의 추측이 옳았음을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수학자들에게 좌절을 안겨준 이 문제는 수학과 과학에서 많은 성과를 가져다 주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유대인 부모의 두 자녀 중 맏이로 태어난 페렐만은 어려서부터 위대한 과학자가 될 조짐을 보였었다.  상이나 명예, 재산에 관심이 없었던 페렐만은 푸앵카레 추측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문제를 풀었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그는 이카이브에 세 편의 논문을 올린다.  그 세 편의 논문에서는 오류가 발견되지 않았고, 미국 대학의 초청 강연에서도 그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했다고 한다.  이 특이하고 천재적인 과학자 페렐만의 이야기와 수많은 수학자들의 학문에 대한 열정과 도전의 이야기는 저널리스트 슈피로의 자상한 설명과 함께 일반인인 나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러나 수학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한 문제에 대한 성공적인 해결은 수많은 새로운 질문들을 향한 문을 열어놓을 뿐이다.  수학 앞에 서면 쉽게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된다.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아직 미해결로 남아 있다.  위대한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P.327)

신은 우주를 창조하였고 인간은 수학을 통하여 우주를 이해한다.  결국 우리는 수학 언어로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천상의 소리를 듣기 위한 자연과학자들의 지고한 열정과 노력은 아름다운 이론으로 쓰여진다.  단 하나의 반례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참의 세계.  우리는 그 장엄한 서사시를 읽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녀가 말했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 우리를 닮은 그녀의 이야기
김성원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그때처럼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어렵게 난 자리에 떠다밀다시피 하여 그녀를 앉히고 내내 서있는 나에게 미안해진 그녀가 의자의 팔걸이에라도 앉으라며 어깨를 움츠리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팔걸이에 불안한 자세로 앉아 있던 그때의 나처럼 기차의 아늑한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싶을 때가 있다.   
살짝살짝 스치던 그녀의 옅은 블라우스 그 까칠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고 싶을 때가 있다.
은은히 풍기던 그녀의 비누 향기에 취해, 슬픔이 담기지 않은 그녀의 환한 미소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 닿을 수 없는 인연에 다시 한번 다가가고 싶을 때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사랑은 어렵다.
기름종이에 쓰여진 모종의 암호문처럼 나의 사랑법과 너의 사랑법은 해독 불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읽고 자신처럼 헤어진 실연의 아픔을 읽는다.
마치 사랑에 사랑을 덧칠하면 언젠가 한마리의 닭이 한마리의 공작으로 변신하여 행복한 미래를 향한 레드 카펫을 밟을 것처럼...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인지 모른다.
좋았던 시절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지나간 사랑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은
쓰라린 기억이 다 사라질만큼의 시간이 흐른 후인것처럼."
<언젠가, 그리워질 이 순간>중에서 

KBS 2FM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의 담당 작가로 일하고 있다는 작가.
우리 인간은 같은 기차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는 방랑자라는 믿음에서, 내가 좋은 생각을 품으면 그것이 우주에 퍼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글을 쓴다는 작가.
우리의 운명도 비 오는 날 우산으로 가릴 수 있다면,  마른 땅을 골라 디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오늘이 슬펐던 이에게 내일의 문이 열리면 그리운 이가 기다렸다는 듯 꽃무늬 우산을 펼쳐들지는 않을까?  그녀의 일상은 사선으로 긋는 감정의 미끄럼틀에서 빗줄기처럼 흘러내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진짜로 잊는 걸까.
수영을 배운 사람은 물에 빠지면 본능적으로 헤엄을 친다.
몸이 수영 동작을 기억하는 것처럼, 머리는 잊어버리는 일도.
우리 안의 어떤 부분은 계속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숨는 것이다." <스펀지에 물담기> 중에서   

이런 글을 읽노라면 저녁 나절 손이 데이는 줄도 모른 채 하염없이 무쇠솥 뚜껑만 문지르던 누이의 슬픈 얼굴이 떠오른다.
사랑의 아픔은 그때의 화상 자국처럼 영영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는 것인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