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들과의 점심 식사 시간에 나누었던 대화의 주제는 단연 수해 소식이었다.
내가 있는 이곳은 다행히도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하다 그쳤지만 어찌나 습도가 높은지 숨을 들이 쉴 때마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기도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이러다가는 내 허파꽈리가 물풍선이 되는 것은 아닐지 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오늘도 여전히 후텁지근한 날씨에 불쾌지수는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을 듯싶다.
그나마 대한민국 곳곳이 물난리로 떠들썩한데 이곳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동료들은 자신의 지인들로부터 전해 들은 전국 각지의 이런저런 수해 소식을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며 역사 활극을 선뵈는 듯 자신의 말과 행동에 시선을 잡아두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역시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아픔은 한낱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는가보다.  예로부터 흔히 재미있는 '3대 구경거리'를 꼽으라 하면 불구경, 물 구경, 싸움 구경을 들지 않던가.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며 놀랐던 것은 우면산의 산사태와 강남 지역의 물난리를 전하는 대목에서였다.
잘못 들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부자 동네의 수해 소식에 은근히 고소해 하거나 잘된 일인 양 간간이 웃음을 섞어가며시끌벅쩍 떠드는 작태가 영 눈에 거슬렸다.  어떤 모습으로 살건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 아니던가.  그들의 축재 과정이 어떠했건 간에 동 시대에 그것도 같은 나라에 사는 사람의 재난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닐까?

나는 서둘러 점심을 마치고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하늘은 여전히 어둡고 물기 머금은 공기는 답답한 가슴을 더욱 숨막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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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알래스카와 참사람들에 대한 기억
이레이그루크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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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람의 운명이란 알 수 없는 것이어서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그러나 한참 지나고 나면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원인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확연히 깨닫게 되고, '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구나!'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내뱉곤 한다.  그럴 때, 내가 비록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의 인생 전반을 이끌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서늘한 경외감에 휩싸이곤 한다. 

북부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해안선에서 태어난 저자 이레이그루크는 어머니를 따라 신흥 도시인 놈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외가 쪽 친척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전통적인 이누피아트 족의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한다.  아사(餓死) 직전에 놓였던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알래스카주의 하원의원이 되었고,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려 정신없이 살았던 저자는 자신의 선조들이 1만 년 동안 이룩한 전통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에스키모의 삶과 전통, 그리고 사라져 가는 그들의 얼과 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알래스카의 겨울 속에서 혹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레이그루크는 수탈하는 미국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하고 본토 인디언들의 몰락 과정을 자각하게 된다.  저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하원의원이 되었다.  저자와 그를 돕는 많은 사람의 부단한 노력으로 알래스카 원주민 토지청구권 타결 법안에 닉슨 대통령이 서명하였다. 한낱 보잘 것 없이 버려졌던 아이가 알래스카 전체 인디언의 삶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는 위대한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들의 피를 타고 흐르는 가족간의 사랑과 자연에 대한 경외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만여 년 동안 우리 자신을 다스려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를 위임 통치한 이들은 우리를 고유한 민족으로 만들어준 것들의 정수, 곧 우리의 언어와 이름, 종교, 관습, 가치관을 공격함으로써 우리를 변화시키려 했으며 그런 목적으로 규칙과 법을 만들었다."  (P.201)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그들에게는 땅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냥 땅은 그곳에 사는 인간과 동식물들이 함께 사용하는 신의 선물 같은 거였다. 그런데 러시아인들과 미국인들이 들어와서 그 땅을 헐값에 사고 팔았고 그 땅이 미국령이 된 이후에는 저자를 비롯한 의식 있는 원주민 공동체가 무려 10여년 동안이나 힘겹게 토지반환청구소송까지 하며 그 땅의 일부를 겨우 찾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이 거세게 들이닥친 미국의 화폐 경제와 물질문명 속에서 너무도 많은 원주민들이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가정이 해체되거나 홈리스가 되거나 혹은 자살해 버렸다.  서구 열강의 지배 방식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다.  물질문명의 달콤함으로 유혹하여 원주민의 욕심을 자극하고 그런 욕심은 그들로 하여금 뿔뿔이 흩어져 태초부터 지녀왔던 공동체 의식을 상실하게 하는가 하면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실시된 사상 개조는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마저 저급한 것, 또는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원주민들을 이렇게 허수아비와 같은 인간으로 만들면 그들을 영원히 자신들의 지배하에 두는 것은 지극히 쉬운 일이 된다.  이런 지배 방식이 어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아프리카에서도, 아시아에서도, 어쩌면 그들의 힘이 미치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자행되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독립국가라고 자부하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들의 방식이 여전히 통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해 겨울, 놈의 해변에서 나는 강렬한 통찰의 순간을 경험했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세상에서 존재가 가장 희미한 지역들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정신과 영혼 속에서 일어나고 있던 인간 고통의 전모를 한순간에 통찰했다.  생전 처음으로 나는 정체성과 문화와 인간관계의 본질에 관한, 세계 전역의 국가들이 자국내 소수민족들의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써먹었던 조직적인 방법들(특히 종교와 교육 과정을 통해서 자기네 것을 주입하는 방법)에 관한 깊은 진실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P.278)

인간에게 안락함이란 마약과 같은 것이다.  물질문명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한 사람들은 무가력하고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만다.  그리고 전통으로 내려오는 그 모든 가치들에 대한 집단적 가치부정은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지, 우리가 의식할 정도로 서서히 진행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수한 외침을 받았던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도 그것은 잘 드러나고 있다.

"나는 어떻게 해서 새로운 지식과 새로운 사고방식이 원주민들이 과거 수천 년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서 얻어낸 지식을 몰아냈는가 알았다.  옛 지식이 공동체 의식이나 공동의 복지에 대한 헌신 같은 요소들과 더불어 사라지자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자기네 언어나 문화와 단절되어가고 가족관계도 날로 약화되어가서 결국은 낱낱이 동떨어진 섬들처럼 살아가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P.321) 

한글보다는 영어로 된 간판이 난무하는 거리.  오렌지보다는 '어린지'를 강요하는 사회.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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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초등 저학년 중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런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를 갖게 되지만 그 바람과는 반대로 아이는 자라면서 점점 더 안 좋아지기만 할 뿐 나아질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될 즈음이면 부모는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보아 넘겼던 문제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는 서둘러 정신과 병원을 찾게 된다.

이러한 모습은 이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옛날 사고방식에 젖어있는 부모들은 여전히 쉬쉬하는 분위기지만 한 집 건너 자신의 아이와 닮은 모습을 목격하게 되면서부터 그마저도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된 듯하다.  그리고 자신의 아이에게서 다른 아이보다 나은 장점을 하나둘 발견하려 애쓰게 되고 그동안 크게만 보였던 문제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이것만은 00보다 나으니 다행이야’하고 자위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러한 아이들이 늘어난 것일까?
내 생각은 이렇다.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우리 육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땅으로부터 얻게 되고, 영혼도 이와 마찬가지로 정신적 토양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신적 토양을 상실한 가정이 너무도 많다.  45억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우리가 사는 지구별의 토양이 형성되었듯 수만 년에 걸쳐 형성된 정신적 토양은 우리의 아버지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왔고, 그 토양 속에서 자신이 필요한 영혼의 자양분을 섭취해 왔었다.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경사회의 특성상 내 부모가 아닌 공동체의 다른 이웃도 그와 같은 정신적 토양을 후대에 잘 전달해주었지만, 핵가족화 되고 이웃을 상실한 지금은 오직 부모만이 전달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맞벌이에 내몰린 현대의 부모는 전달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야말로 방관자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마디로 지금의 아이들은 그들이 딛고 살아가야 할 정신적 토양을 상실한 것이다.  땅이 없는데 어찌 꽃을 피울 것이며,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갈 수 있겠는가.

게다가 땅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시간에 따라 성장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시계에 맞춰 속성으로 기를 때 지구 환경의 오염을 피할 수 없듯이 아이들을 어른들의 욕심에 맞춰 빠르게 성장시키다 보면 영혼의 토양이 무참히 오염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흐르는 자연의 시간마저 잊은지 오래다.

어제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 한 명이 가출을 했다.
이런 현실을 마주하며 나는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통렬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제 성적의 순위가 아닌 생존의 문제에 점차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이 조금 더 진행된다면 대부분의 부모가 성적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아이들의 생존을 염려하게 될 날이 도래할 것임은 너무도 자명하다.  이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도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려는 기성세대에게 돌이라도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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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송뽀송 마른 옷을 입는 것까지는 좋은데 어찌나 더운지 옷을 입고 십 분도 지나지 않아 몸에 척척  감기는 느낌은 참기 어렵다.  남들보다 땀을 덜 흘리는 내가 이러니 살집이 있는 사람들은 오죽하랴.  한낮의 햇빛은 뜨겁다 못해 따갑다.  긴 장마 뒤에 온 더위는 그야말로 찜통이다.  오후 들어 아스팔트 도로는 절절 끓고, 뙤약볕 아래 세워 둔 자동차의 문을 열면 후끈한 열기가 한증막을 방불케 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뚫고 퇴근을 하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만치 기울어가는 태양은 마지막 열기를 내뿜으며 지면을 달구는데 숙소로 향하는 길이 어찌나 멀어 뵈던지...  등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졸라맨 허리띠를 넘지 못하고 바지며 셔츠를 축축히 적셨다.  시큼한 땀냄새가 걸을 때마다 가슴을 타고 올라와 코를 자극했다.  이 땡볕에 뛸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천천히 걷자니 땀은 비오듯 흐르고...  오늘따라 신호등을 기다리는 시간도 왜 그리 길던지...

숙소에 도착하니 부지런한 아이들이 현관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원하게 샤워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는 수밖에.  찝찝한 기분을 억지로 누르고 수업을 시작하려니 선풍기 하나로는 사람의 열기로 후끈 달궈진 방안 공기를 식히기 어려웠다.  아이들 성화에 에어컨을 켰다.  올 들어 처음 켜보는 에어컨 소리가 이렇게 반가울 수가...

중학생 아이들은 내가 내준 수학 문제를 풀면 곧 집으로 갈 것이다.
연이어 고등학생들이 들이닥칠테고 10시까지는 꼬박 자리를 지켜야 한다.  질문이라도 많은 날이면 더 늦어질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이 방학을 한 탓에 어제부터는 그나마 일찍 수업을 마친다.  방학임에도 보충수업을 받으러 여전히 학교에 오가는 아이들은 무에 그리 좋은지 혹서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연신 싱글벙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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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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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대인 관계’가 아닐까 한다.  같은 종( 種)인 사람끼리 다른 동식물과의 관계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오직 인간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고 호불호를 결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듯이 어른과 어린 아이의 관계는 성인들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대체로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상대방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반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을테고, 내 속마음도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꺼려질 것이다.

대인 관계에 있어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고 보면 처세를 다루는 책이 하루가 멀다하고 출간되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야 하루에 만나는 사람도 적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거나 아주 가끔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크게 불안해 하거나 긴장할 일도 생기지 않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재벌의 총수쯤 된다면 사정은 매우 다를 것이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란 부제가 붙은 ‘후흑학’은 두꺼운 얼굴(면후·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心黑)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청말 이종오(李宗吾)의 기서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해설서다.  몇년전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측천무후 아래서 활약했던 악독한 관리 내준신이 지은 『나직경羅織經』(무고한 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기술을 담은 책)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 풀이한 책으로 중국인 작가 마수취안이 쓴 처세서이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나의 성정에 영 맞지 않아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중간에 책을 덮었었다.  우리가 알고있는 기존의 도덕률에 반기를 든 이러한 종류의 책은 자신의 감정을 속속들이 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일반인들에게는 내면적 갈등과 반감을 갖게 한다.  그때의 기억이 있었기에 이 책도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에 손에 잡은 책이니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도 함께 작동했다.  언제 써먹을지도 모르는 비기(秘技)라도 취할 양으로 다부지게 달라붙어 책을 읽노라니 내 모양이 참 우스웠다.

책의 구성은 <모략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흑학의 탄생 배경을 다루는 1부와 중국 역사에 있어 후흑의 대가를 다루는 2부, 후흑술의 기본 내용을 다루는 3부, 오늘날 우리에게 후흑학이 필요한 이유와 현실에서의 적용을 다루는 4부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 가독력을 높였다.

 지난해 여름 당직자 인선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기자간담회에서 “휴가기간 중 후흑론을 집중 공부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었다. 그가 후흑론을 얼마나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래시계 검사’는 1년 후 우리나라 여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후흑을 연마한 그가 얼마나 승승장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후흑학을 완성한 이종오가 ’후흑구국’을 기치로 내걸었듯이 후흑학의 요체는 역시 求國에 있다.  이종오의 후흑구국(厚黑救國)의 취지를 계승한 중국 수뇌부의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나 흑묘백묘론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 샤오핑의 책략 덕택에 G2의 자리에 오른 중국을 볼 때 정치 지도자의 능력과 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는 마땅히 지켜야 할 9가지 처세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반룡부봉(攀龍附鳳·훌륭한 사람에게 붙어 출세하다)하되 역린(逆鱗)을 조심하라,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하라,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정치 지도자 및 글로벌 기업의 고위직 임원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패거리 문화에서 탈피하여 자신과 생각이나 사상이 다르더라도 구국의 차원에서 능력만 있으면 과감히 기용하는 진정한 실용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직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중용되는 현 정부의 인사정책이나 기업의 악습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갖은 이유를 들어 해고시키는 케케묵은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낯짝만 두꺼워지고 마음만 검은 우리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후흑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목적의 정당성이지 그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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