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에세이 분야의 신간 평가단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책을 선택하고, 혹시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이 선정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결과를 기다리고, 또는 언제쯤 책이 오려나 하는 기다림을 생각할 때,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마치 처음으로 사랑에 눈 뜬 소년의 마음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가 알랭 드 보통.  그러나 유명세에는 항상 숨겨진 가시가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오래된 속담처럼 혹시 실망스럽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  그럼에도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은 평소 좋아하던 에릭 호퍼의 저서 <맹신자들>이 번역되어 출간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종교를 인식하는 그들의 시각이 자못 궁금하다. 

 

 

 

 

일전에 현각스님의 저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읽었었다.  어쩌면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도 현각스님의 추천사를 읽게 된 것과 그분과의 미약한 인연이 나의 마음을 동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을 다녀간 많은 외국인들이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와 전통이 점차 사라져간다는 점이다.  그들의 공통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사는 우리만 모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라면 서정윤 시인의 시 <홀로서기>에 대한 추억과 아련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암울했던 시대상황과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시인의 감성은 그 시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가슴을 적셨다.  이제는 시인도 많이 늙었겠지만 그때의 추억은 어제의 일처럼 또렷하다.  시인의 산문집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이 가을과 닮아있지 않을까? 

 

 

  

잡지 보그의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는 저자의 이력과 책의 제목은 일견 불협화음처럼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삶이 바쁘고 고단할수록 시의 행간에 펼쳐진 무한의 여백에서 한껏 자유를 누려보고 싶다는 소망은 깊어만 간다.  내게 허락된 이 짧은 사색의 계절은 저자의 가난한 사치에 어서 빨리 동참하라고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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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일요일들
은희경 지음 / 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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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의 지난 시절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마치 그게 사실인 양 믿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연예인의 경우가 그렇고, 정치인도 그렇고...  물론 작가라고 예외일 리가 없다.  그런 상상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자신은 그게 사실이라고 굳게 믿곤 한다.  이러한 주관적 추리, 또는 허무맹랑한 상상은 막을 방법도 없고, 당사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어느 날 자신의 생각과는 완전 딴판인 사실과 직면할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은희경 작가가 그런 경우이다.
소설로 데뷔하여 줄곧 소설만 써왔던 작가의 이름이 독자들 뇌리에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도 족히 15년 이상은 되었음직한데 그녀의 사생활이 공개된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언젠가 어떤 수필집에서 읽었던 <아버지의 추억>과 동네 병원의 대기실에 비치된 잡지에서 우연히 읽었던 인터뷰 기사가 전부였으니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은 수많은 독자의 상상으로 변질되었다 해도 무리는 아니다.  어쩌면 작가가 자신의 사생활을 공개할 것인가 아니면 철저히 숨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건물 3층의 높이만큼이나 애매한 것인지도 모른다.  1층으로 내려가고자 할 때 1층에 멈춰져 있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것인가 하는 고민처럼 말이다.

  은희경의 소설에 대한 평론 중 2002년 작고한 문학평론가 이성욱의 글은 인간 은희경이 아닌 소설가 은희경의 평으로 적당하다.  2001년 발표한 장편 『마이너리그』에 붙은 해설을 요약하면 이렇다.

‘날씬한 여검객을 연상시키는 은희경의 냉소적인 시선은 얼핏 농담이나 유연한 풋워크처럼 보이지만 시종 급소를 찍어 누른다. 급소는 인물들의 허위의식, 자기합리화, 통념, 편안함에의 들척지근한 욕망 같은 것들이다. 그의 검은 찌르되 깊게 찌르지는 않는다. 핏방울이 돋아나는 정도. 여기저기 돋아난 핏방울이 만드는 문양은 허위의식의 지도 같은 것이다. 지도의 독법을 익힐 때쯤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게 된다. 바로 우리의 허위의식의 지도이기에.’

소설가 은희경은 빈틈이 없고, 다소 냉소적이며 시니컬하다.  그런 모습으로만 본다면 그녀는 사회에 대한 저항처럼 이혼을 한두 번쯤 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온전히 제물로 바칠 수도 있겠다는 결심을 굳힌 여전사의 모습이어야 옳았다.  언제든 전투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날카로운 손톱을 숨긴 채 말이다.  그러나 두 아이의 어머니로, "시사저널"의 기자인 남편과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산다는 사실을 접한 독자들은 알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자신의 상상이 무참히 짓밟힌 듯한 허무감.

이 책은 <소년을 위로해줘>를 연재하면서 짧게짧게 남긴 메모나 트윗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이다.  인터넷 연재하며 팬들과 댓글 놀이 하며 나눴던 얘기, 뒤늦게 트위터의 매력에 홀딱 빠져 거기서 주고받았던 길지 않은 말들, 장편을 탈고한 뒤 나른한 몸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적은 글 등 대부분 서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시작해 경기 일산의 작업실, 강원 원주 토지문학관, 미국 시애틀을 전전하며 쓴 것들이라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은희경이 영혼을 자유롭게 놀렸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긴 시간 창작의 산고에 시달리는 소설가의 마음을 슬쩍 엿볼 수 있는 경험 또한 재미난 덤이다.

"오래전 썼다.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화려한 비탄이라도 남지만 이루어진 사랑은 남루한 일상을 남길 뿐이라고.  나,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여전히 간절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여전히 새들은 노래하고 빛난다는 걸 안다.  <The End of the World>란 그런 것."  (P.289)

문득 '사랑'이 간절해질 때면, 우리는 지나온 세월보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맘 먹곤 한다.
소설가는 소설을 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듯, 독자는 작가가 남긴 작품으로 행복을 맛본다.  작가와 독자의 간극이 너무나 멀어 설혹 닿을 수 없는 거리라 하더라도 작품을 잉태하는 산고의 고통까지 독자가 공감할 필요가 있을까?  작가는 조금은 신비로운 채, 독자는 작가의 사생활을 오직 자신의 상상의 세계에만 가둬두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은희경의 작품은 그런 면에서 실패작이다.  소설가는 소설가로 남았을 때 가장 찬란하다.  비록 그것이 내가 꾸며낸 상상이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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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16: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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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 운동을 다녀온 후 아침을 먹기 전에 분리수거를 했다.
쇼핑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쓰레기는 끊임없이 나온다.  마치 우리집에는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온통 쓰레기만 안고 사는 것처럼.  운동을 나갔을 때는 몰랐는데 땀이 식으면서 싸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잔뜩 찌푸린 하늘과 나른한 휴일의 느낌이 비대칭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분리수거를 할 때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날씨 탓인지 오늘은 그 느낌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나온 삶을 분리수거 한다면 재활용이 가능한 사건들은 몇이나 될까? 하고 말이다.
말없이 내 곁을 지키는 시간은 온갖 허섭스레기 같은 사건들을 일일이 분리수거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렇게나 내팽겨친 사건들을 다시 기억할 때를 위해 가지런히 정리하고, 어떤 것은 잘 다려 구김을 펴고 빳빳하게 풀까지 먹여 새것처럼 두는가 하면, 때로는 길바닥에 내던져도 아무도 집어 갈 사람이 없을 만한 잡동사니를 누군가의 눈에 띌새라 서둘러 폐기처분하기도 하고...  이 모든 일들은 고스란히 나와 동행하는 시간의 몫이다.

그 불쌍한 시간에게 하루쯤 휴가를 주고 싶다.
나는 아무 일도 계획하거나 저지르지 않고 나무처럼 고요히 지낼 수 있노라고 말하며 안심시키고 싶다.  설령 시간이 눈감은 그 사이에 내 삶에 가장 중요할지도 모르는 사건이 벌어진다 해도 네 책임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왠지 나이가 들면 그렇게 살아야 할 것만 같다.  오늘처럼 흐린 휴일에는 숨도 쉬지 말고, 시간도 멈춘 영원 같은 하루를 맞고 싶은 것이다.

연휴를 즐기려는 행락 차량들이 하나둘 주차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빡빡한 시간과 빈틈없는 약속 위를 질주하기 위해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의 시간은 지금쯤 안녕한 것일까?  내가 누구인지 나를 찾고 싶어서 일단정지 표시판도 무섭게 외면하는 차량들이 아파트를 벗어나고 있다.  그들의 여행 목적지 어딘가에 멈추어 서면 자신의 참모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시간쯤이면 피곤에 지친 그들의 시간도 그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것일까?  벽에 걸린 괘종시계가 어느 날 문득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져 그대로 멈춰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침을 먹으라는 아내의 호통이 아파트 몇 층 위에서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나의 시간도 오늘 하루 편안히 쉬기는 글렀다.  나보다 먼저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시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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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남자들 - 이 시대 대한민국 남자들의 자화상
서재순 외 지음 / 아침나라(둥지)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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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가 내린다.
유난히 비가 많았던 올해는 여름 내내 비를 맞았건만 가을비의 느낌은 새롭다.
조금은 쓸쓸하고 때로는 감상에 젖게 한다.  한동안 눈이 부시도록 맑은 날이 지속되었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 그동안 들떠있던 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루가 다르게 계절은 점점 가을빛으로 물들어 간다.

회사에서 짬짬이 책을 읽었다.
책장을 넘기는 표정이 자못 비장했던지 직장 후배가 묻는다.
"뭔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으세요?  재밌는 책이면 제게도 좀 권해주세요."
하기에 읽던 책을 덮어 표지를 보여주었다.  표지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큼지막한 제목. <울고 싶은 남자들>.  제목을 읽은 후배의 표정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요즘 고민 있으세요?  책 제목이 심상치 않은데요."
"고민?  고민 많지.  세계 평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지구 온난화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그리고..."
"왜 그러세요.  그런 거 말구요."

KBS에서 방송작가로 근무하는 세 명의 여성 작가가 쓴 이 책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중년의 우울한 자화상을 여과없이 담백하게 보여주자는 의도로 출발했다고 한다.  이 기획의 출발은 "동아일보"에 연재된 시리즈 '울고 싶은 남자들-가정의 외딴 섬,가장'에서 비롯되었고, 예상과는 달리 젊은 세대가 더 많이 공감했단다.  방송국에 접수된 사연과 취재를 통하여 모은 다양한 일화들이 짤막짤막하게 소개되고 있는 이 책은 자신을 돌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중장년의 가장들이 겪는 아픔과 소외를 다루고 있다.

후배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책의 한 부분을 펼쳐 정신없이 읽고 있었다.
"남 얘기 같지 않네요."
"그러니까 가족들한테 잘 해.  더 늦기 전에.  자신을 돈 버는 기계처럼 다루면 안 돼.  가끔씩 주변도 둘러보면서 세월을 느껴야 해."
"저야 잘하고 싶죠.  그런데 어디 여유가 있어야죠.  시간도 그렇고."
"젊어서는 가족들이 내게 바라는 것은 오직 돈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둥 살 둥 모른 채 돈,돈,돈 하며 살지.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데 조금 더 나이가 들면 가족들과 나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벌어졌다는 걸 알게 돼.  그때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되돌릴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고."

남자들이 겪는 소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 시대의 가장은 가족 구성원에게 오직 돈만 충족시켰기 때문에 경제적 능력을 상실했을 때 그 효용은 이미 다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항변하고 싶은 것은 우리 시대의 가장을 그 지경까지 몰고간 것이 전적으로 본인들의 탓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편승한 가족들 모두의 공동책임은 아니었을까?  경제적 효용이 다한 중장년의 남성들이 겪는 인간소외나 고독은 사회보장제도가 부족한 우리 나라의 현실에서는 피할 수 없는 질병일지도 모른다.

"아내한테 이 책을 선물로 사다줘 볼까요?"
후배의 순진한 웃음에 나도 그만 웃고 말았다.
"돈,돈 하는 아내의 잔소리에 귀를 막고 자네는 오직 사랑, 사랑만 외치고 살아.  그러면 이 책 속의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늙지는 않을 거야.  그게 제일 어렵지만 말이야."

가을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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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면 누구에게나 선뜻 떠오르는 단어들이 몇 개쯤은 있을 것이다.
가령 낙엽, 추억, 우수, 낭만, 상실, 이별, 독서 등 자신의 경험에 의해 굳어진 이미지들은 세월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처럼 맑고 쾌청한 날엔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곤 한다.
며칠째 지속되는 행복.  여름 내 나를 휘휘 감고 떨어질 줄 몰랐던 습기를 마침내 걷어낸 듯한 가벼움.  한낮의 햇살 아래서도 허파꽈리의 사소한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시원한 바람.  이른 가을부터 목을 길게 늘이고 제 순서를 기다린던 추억 몇 놈들.  
그리고 하늘.  그래.  아아, 하늘.   긴 머리의 여인이 자신의 머리를 배배 꼬아 한 쪽 어깨로 넘겼을 때 드러나던 희고 가녀린 목선.  가을 하늘은 여인의 뒷목에 소년의 시선이 닿았던 그 짜릿한 순간처럼 아쉽다.  곧 낙엽이 지고 거리에는 한동안 알 수 없는 우수와 서글픔이 자신의 시선을 들킨 소년의 자책처럼 정처없이 헤매일 것이다.

이래도 되나?  이 좋은 날을 마냥 즐겨도 되나?
나는 몹시 불안하다.  그것은 아마 내 어린 시절의 성장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오 남매의 다섯째로 자란 나는 좋은 것이 내 손에 쥐어질 때면 기쁨보다 불안이 먼저 찾아왔고, 행복한 순간에는 언제 사라질지 몰라 두려워 했다.  작가 은희경의 표현을 빌자면 "집착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아무리 집착해도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심리를 배우이자 영화 감독인 우디 앨런은 <뉴요커의 페이소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불안은 인간의 자연스런 상태에요. 그래서 저는 그게 아마도 합당한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불안을 경험하는 게 중요한 건 아마도 그게 종족의 생존을 가능케 하기 때문일 거에요. 저는 행복한 시간을 누리지 못하는 걸 개의치 않는데, 그건 제가 뭔가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행복한 시간을 맛보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그걸 얻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대가를 지불하죠.

이제 막 가을이 오는데, 엄마 잃은 세살박이 어린애처럼 나는 갈 곳을 몰라 불안하다.
내가 있는 이 곳이 너무 행복하고, 지금 이시간이 더없이 좋아 더더욱 불안하다.  이 가을에 문득 생각나는 싯구들을 옮겨본다.  나는 타들어가는 불안 속에 행복에 겨워 읊는다.  

그대/구월이 오면/구월의 강가에 나가/강물이 여물어 가는 소리를 듣는지요(안도현의 구월이 오면),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김현승의 가을의 기도).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도종환의  가을 사랑),  가을엔 사랑하게 하소서/아픔이 아닌 웃음으로 /예쁜 사랑 하게 하소서(가을엔 사랑하게 하소서/장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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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7 0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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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8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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