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
김지윤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세월의 변화를 부지런히 따라잡는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어느 순간 한참이나 뒤처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한 번 벌어진 간격은 갈수록 그 격차를 넓혀갈 뿐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유행이나 기술의 변화를 쉽게 좁혀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단지 머릿속 생각으로만 그칠 뿐이다. 실생활에서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를 따라잡는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부적인 변화에서 뿐만 아니라 사상이나 이념 같은 내부적인 것에 있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외부적인 것은 그럭저럭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낼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시대에 맞게 변화시킨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계속해서 '꼰대' 소리를 들으면서도 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생각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변한 건 '연애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런 변화의 이면에는 여성 인권의 성장과 맞물려 연애에 있어 항상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던 여성들의 생각을 180도 뒤바꿔 놓은 측면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변화의 주체인 여성에게는 자연스러울지 몰라도 주도권을 잃게 된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서로를 알게 된다. 설렌다. 만난다. 밥을 먹는다. 얘기를 조금 한다. 차를 마신다. 모텔에 간다. 엉킨다. 영화를 본다. 집에 간다. 열라 톡을 한다. 보고 싶다. 꿈에서도 보고 싶다. 만난다. 술을 마신다. 싸운다. 화해한다. 사랑한다. 영화를 본다. 집에 간다. 만난다. 조금 걷는다. 밥을 먹는다. 드라이브를 한다. 모텔에 간다. 집에 간다. 만난다. 시간이 흐른다. 왜 하는지 모르는 섹스를 한다. 할 일이 없다. 할 말이 없다. 지루하다. 다 그런 거지 생각한다. 이별한다. 왜 헤어진 줄 모른다. 사랑의 상처는 다른 사랑으로 치유하는 것이라며 친구가 소개팅을 물어온다."  (p.43)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이자 방송인이기도 한 김지윤의 저서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라>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확 달라진 요즘 연애의 풍경에 새삼 놀랄지도 모르겠다. '이거 레알? 에이, 설마...' 하면서 반신반의하거나 '세상 말세로구나!' 낙담하면서 오호통재를 외치신 분이라면 '꼰대 중증 증후군'으로 정신과 진료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야말로 상전벽해, 괄목상대를 넘어 천지개벽의 수준에 와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은 건 이와 같은 변화를 모른 척 지나쳤던 자신의 꿋꿋한 꼰대 기질뿐이었다. 무관심일 수도 있고, 자신의 잣대만 바라보며 못마땅한 변화를 애써 외면하려 '에헴!' 하던 헛기침 탓일 수도 있다.

 

"결혼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요트 위에서 샴페인을 마시는 장면이 아니라 개펄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장면이 더 잘 어울리는 '체험 삶의 현장'이 바로 결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식과 웨딩드레스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산에 오를 때는 등산복을 입고, 노동을 할 때는 작업복을 입고, 파티에 갈 때는 꽃단장을 하는 법. 그런 의미에서 결혼식에는 웨딩드레스보다 작업복이 어울리고, 시중 없이는 혼자 움직이기도 힘들게 거추장스럽고 아름답기만 한 웨딩드레스는 문제가 많다."  (p.206)

 

저자는 간결하고 톡톡 튀는 문체로 세상이 달라졌음을 설파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를 보충한다. 그리고 요즘 연애의 부족한 점 혹은 문제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 싫으면 싫다고, 슬프면 슬프다고, 화가 나면 화난다고 적극적으로 말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쾌락만 추구하는 감각적인 연애에서 벗어나 서로에 대해 많은 정보를 주고받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관계를 다질 것을 주문한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나답게 살아가라고 말한다.

 

"혹시 나는 왜 좀 더 독립적이지 못하고, 좀 더 강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눈물 많고 탈도 많을까 자책하며 살아오셨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당신이 맞을 수도 있다. 감정적이고 눈물 많고 오지랖 넓은 당신이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더욱 필요한 존재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소중하다."  (p.309)

 

어쩌다 보니 기성세대가 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연애에도 무슨 상담이 필요하냐?'며 콧방귀를 뀔지도 모른다. 연애에는 좋은 연애도 있고 나쁜 연애도 있다는 생각에 반기를 들지도 모른다. 연애는 그저 경험하는 것일 뿐 거기에 무슨 좋고 나쁨의 가치 평가가 존재할 수 있으며, 남녀가 만나 좋으면 결혼하고 그렇게 살다 보면 한평생 가는 것이지 돌다리를 두들기듯 이것저것 따져서 좋아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다분히 운명론적인 연애관에 철저히 세뇌되어 있기 때문이다. 연애에 대한 경험은 늘었지만 그에 대한 사색이 부족한 시대에 사는 요즘의 젊은이들. 저자의 연애 상담은 다분히 과거지향적으로 읽힌다. 연애마저 유선생(유튜브)에게 의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고민하는 게 옳지 않을까? (책을 읽으라고 덧붙이기에는 너무 꼰대스러워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기억하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은 꽤나 많지만 그중 나는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했던 그의 연설문 중 일부분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어쩌면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사람들에게 그들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자세를 말하고자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의 연설문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 싶어 하지는 않죠.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않은 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할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용문에서 그는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 죽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음'이 없다면 '희망'도 존재할 수 없으며, 하루하루의 삶은 그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지루함의 고통'이 되겠지요. 잠깐의 휴식은 새로운 삶을 위한 에너지원인 동시에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되겠지만 무한 회귀의 휴식은 인간에게 고통 그 이상의 의미일 테니까 말입니다. 무한반복의 시지프스 형벌이 그랬던 것처럼 영원회귀의 휴식 역시 고통일 듯합니다. 코로나 정국이 길게 이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 역시 한 집안의 가장이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당사자일 테지요. 할 일이 없어서 마냥 손을 놓고 놀아야 되는 현실이 어찌 편하기만 하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나날이겠지요.

 

엊그제 시작된 듯한 새해가 벌써 20여 일이 지났습니다. 새해가 되면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에게 덕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올해는 취직해야지." 하는 말. 물론 이마저도 요즘엔 꼰대 소리 듣기 딱 좋은 말인지라 입안으로 삼키기 일쑤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의도치 않게 직장을 잃었거나 잠시 쉬고 계신 분이 있다면 2021년에는 다들 바쁜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수백 번 '꼰대' 소리를 듣는다 할지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다고 정말 배고픈 채로 머무르지는 마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무현이 옳았다 - 미처 만들지 못한 나라, 국민의 대한민국
이광재 지음 / 포르체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종종 기적과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그것은 비단 생명의 문제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 스포츠 등 삶의 전 분야에서 기적은 늘 존재하며, 그러한 가능성으로 인해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여섯 자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썼던 책이 단지 입소문과 웹사이트 광고를 통해 전 세계에서 600만 부 이상의 책이 팔렸던 <오두막>이나 초등학교 문턱도 밟지 못한 작가를 단번에 주목받는 사상가로 만들었던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역시 기적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상고 출신의 인권변호사가, 더구나 빈농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던 비주류의 정치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던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어디에 또 있을까. 나는 여전히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의 당선을 내가 목격한 가장 큰 기적으로 꼽고 있다.

 

기적과 같았던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신 지 어언 12년, 참으로 많은 게 바뀌었다. 그리고 또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한 체감은 단순히 변화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변화의 속도에서 기인할 때가 많다. 한 세대 혹은 여러 세대에 걸친 느린 변화는 진행 중에 있을 때는 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의 속도를 부채질하였던 건 뭐니 뭐니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으로 인한 전 세계적 위기 상황이었을 터, 보편화된 비대면의 문화 속에서 우리의 미래 역시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다. 30여 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일 때 보좌관으로 정계에 첫발을 디딘 이광재 의원은 모든 게 뿔뿔이 흩어지는 분열의 시대에 누구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되새기며 '모두가 함께 행복한 세상,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정치인 이광재의 비전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그러므로 <노무현이 옳았다>는 '노무현 정신'을 담은 이광재 의원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서인 셈이다.

 

"코로나19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감이 고조된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영민하게 대처하고, 서로를 따뜻이 껴안으며 모범적으로 위기를 극복해나가고 있다. 나는 그런 국민의 마음이 대한민국을 전진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내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이때,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을까? 더 살피고 보듬어야 하는 것은 없을까?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에 비추어 오늘 우리의 모습을 짚어보고 내일을 대비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p.21)

 

정치인이 쓴 책은 대개 자신을 선전하기 위한 자화자찬의 글이나 논리에도 맞지 않는 중구난방의 글로 채워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책을 출간하는 목적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정치 후원금을 두둑이 챙기는 데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책의 내용보다는 출판기념회를 빙자한 세 과시가 정치인들의 주된 관심사라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무현이 옳았다>를 집필한 이광재 의원은 마치 한 편의 정치 논문을 쓴 것처럼 책의 순서나 내용 면에서 기승전결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서장(序章): 내일의 문턱에 서서', 1장 '세대, 너와 나의 에너지가 모두의 시너지로', 2장 '정치, 균형으로 모두의 나라를 열다', 3장 '기술, 혁신의 중심엔 언제나 사람이 있다', 4장 '교육, 질문하는 교육으로 전환하라', 5장 '부(富),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6장 '글로벌, 세계의 중심에 대한민국을!', '결장(結章):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에서 보이는 것처럼 분열과 갈등의 문제제기와 저자 자신의 대안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 일과 소득, 주거, 교육, 의료, 문화 5종 세트가 중요하다. 국민이 안정적 소득 기반을 갖고, 주거, 교육, 의료, 문화 등에서 저비용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면 '삶의 질 1등 국가'가 될 수 있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면 좋은 이웃, 마을, 사회, 국가 등 건강한 공동체도 중요하다. 또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 사이의 복잡한 역학관계 속에서도 국민 개개인의 희망을 담대하게 열 수 있는 강인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p.246)

 

팬데믹 시대의 새로운 양상은 분열과 갈등의 심화로 심화로 요약할 수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가속화로 인한 계층 간 대립, 세대 간의 대립, 그리고 야당과 여당, 진보와 보수로의 분열, 기술의 발달로 인한 직업의 부족 현상과 젠더 대결 양상, 팬데믹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한 종교 간 대립이나 특정 종교에 대한 혐오 등 우리 사회의 갈등 요인은 더욱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고 국민적 대통합을 이뤄내는 것이 정치이고 진정한 리더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세대를 아우르고 진영 논리를 뛰어넘어 정치, 외교, 경제, 문화 등 사회 전 분야의 변화를 빠르게 읽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 리더가 절실한 것이다. 국민 모두가 어깨를 겯고 번영의 길로 함께 나아가지 않으면 공멸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공공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고의 지식을 상수도나 전기처럼 저렴한 비용으로 무한정 공급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부가 주체가 된 과감하고 혁신적인 '디지털 교육 뉴딜'이 필요하다. 과거 미국이 대공황을 탈출하기 위해 정부가 주도하여 펼친 과감한 해결 정책인 뉴딜 정책에 교육과 디지털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교육 혁신을 추진하는 것이다."  (p.170)

 

저자는 <노무현이 옳았다>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위기'는 위험과 기회라는 양면성을 가진 단어라고는 하지만, 위기를 뚫고 새로운 기회가 분배되는 과정에서 모든 이가 그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위기로 인한 부의 쏠림 현상은 심화되고 가속화된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초고소득층의 소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다수의 중산층은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변화의 주기가 갈수록 빨라지는 상황에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특별한 대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공멸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다. 저자 역시 대한민국의 정치인 중 1인으로서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을 터, 안일하게 진보냐 보수냐를 놓고 이념 타령을 할 상황은 아니라고 보지 않았을까. 일레인 글레이저의 <겟 리얼>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이데올로기는 죽었다거나 악이라는 말 자체가 가장 이데올로기적인 주장이다.'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다 통합을 말하지만 사실 그런 말 자체가 헛된 주장이나 구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치인이었지만 자신의 속내를 가장 솔직한 언어로, 가장 편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고 노무현 대통령. 그를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며 정치철학마저 그를 닮아가는 듯한 저자는 어쩌면 우리 세대의 가장 따뜻한 정치인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을 겪으면서 가장 크게 깨달았던 것은 '죽음이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성장기에 있는 십대의 관점에서는 40대 이후의 어른들은 도대체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사나 하는 회의감이 팽배할 테고, 20,30대의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자신에게는 영원히 60대 이후의 노년이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하며, 막상 그 모든 시기를 흘려보내고 나면, 죽음이 결코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언뜻언뜻 되새기게 되는 게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바이러스의 창궐로 건강하던 사람들조차 하릴없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나는 이 시대의 비극을 끊임없는 장례 행렬로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시집 <빛그물>을 발표했던 최정례 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투병 생활을 하던 시인은 진통제 1mg이 너무나 무거웠다고 고백했었다. 그런가 하면 침뜸의 명인으로 알려진 구당(灸堂) 김남수 옹도 세상을 떠났다.


(중략) 그동안 사느라 애썼다,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 이런, 이런, 냄비 뚜껑 굴러떨어지는 소리, 아무래도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서둘러, 사느라 애쓰더니 죽는 게 더 힘들구나, 언제나 놓여날까, 복부에, 폐에, 콩팥에, 줄줄이 줄들을 매달고, 항암주사에, 방사선에, 반은 죽은 몸뚱이에게, 이제 아프지 않게 될 거라고 어떻게 감히, 냄비는 무지막지 반짝이며 싱크대 앞을 환히 밝히는데, 이 냄비로 무슨 공갈 우거지탕을 끓여보겠다고, 어쨌든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까, 가서 장례 절차도 의논하고, 수목장은 어떠니, 딸이라고 영정 사진 못 들 거 없다, 말이라도 보태면서, 오락가락하는 귀에 대고서, 그런데 두 팔이 욱신거리도록 번쩍이는 이 냄비는 도대체 왜 무슨 용도로 반짝여야 하는 것이냐.  (시 '냄비는 왜' 중에서)


한인 교포들이 많이 사는 LA만 하더라도 '1분마다 10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6분에 1명씩 코로나로 사망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따뜻했던 날씨가 돌변하여 바람이 불고 쌀쌀해진 주말의 오후,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곁에 가까이 있음을 문득 떠올렸던 오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외치지 않아도 하루의 시간이 새삼 소중해지는 이유이다. 삶은 1mg의 진통제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고통의 나날인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삶이 계속되는 한 '잠깐 멈춤'을 요구할 수가 없다. 팬데믹이 멈출 때까지 몇 달이고 동면에 들 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쓰지 히토나리 지음, 김훈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수단으로 편지만큼 유용한 것도 없었다. 발송 비용도 저렴한 데다 편지지의 매수 제한도 딱히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가난한 청춘들에게 편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매체였다. 편지를 통하여 서로의 애달픈 심정을 구구절절 써서 보내기도 했고, 거절의 답신을 어렵게 풀어 보내기도 했다. 그것은 비단 청춘들의 전유물은 아니어서 도시로 유학을 떠난 자식의 안부를 묻는 통로이기도 했고,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자식들의 따스한 온기이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편지에 얽힌 추억 한두 개쯤은 마음 한켠에 고이 간직하고 있을 터,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 역시 추억처럼 술술 읽히지 않을까.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지쳐 있었고, 고민에 빠져 있었으며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대필가라기보다는 마치 인생 상담원 같았다. 내게 의뢰할 내용을 설명하면서 화를 내거나 우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p.136)

 

2000년대 이전에 군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어쩌면 편지의 의미가 남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휴가나 외출이 아니고서는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되었던 그 시절에 편지는 그야말로 달짝지근한 사제 소식을 전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보안검열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 하에서도 애인의 편지나 부모님의 편지를 소각하지 않은 채 관물대 옷가지 속에 감추거나 야전잠바 주머니에 꽁꽁 숨겨두었다가 휘영청 달이 밝은 날 초소 근무를 설 때, 닳아 헤진 편지를 희미한 달빛에 비춰가며 읽고 또 읽곤 했었다.

 

"실은 시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쿠도 씨가 말했어. 시간이 흐른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흐르는 건 사람이고, 시간은 언제나 이렇게 멈춰 있는 거라고. 자신은 그 시간을 그저 물을 긷듯 사진기로 퍼올리는 것뿐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난 점점 어딘가로 떨어져 갔어. 이 경험이 뭔지에 대해 생각했어. 기치조오지의 부티크에서 일하던 땐 결코 얻을 수 없었던 경험."  (p.168)

 

책에는 소설가로 등단하였지만 소설은 쓰지 않고 기치조오지에서 다른 이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적절히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다양한 의뢰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상응하는 대가를 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던 셈인데 점차 입소문이 나면서 일이 밀려들었던 것이다. 이에 일조를 했던 것은 주인공이 자주 찾는 레오나르도 카페의 사장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 힘이 컸다. 편지를 의뢰한 사람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늘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사무실 남자 사원의 구애를 기분 나쁘지 않게 거부하는 편지, 단 한 번도 사랑 고백을 해보지 못한 남자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65년의 결혼 생활을 해온 어느 노부인이 남편과 이혼하고 싶다며 찾아온 속사정, 한 여인을 짝사랑하던 남자가 그 여자의 연인을 살해한 후 출소 후 여인에게 보내는 사죄의 편지 등 우리의 일상에서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들이 편지와 함께 펼쳐진다. 게다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 죽은 손자를 대신해 거짓 편지를 쓰는 장면은 왠지 모를 먹먹함을 안겨 주었다. 오직 편지에서만 받을 수 있는 진한 감동이 그 한 장면에 집중된 것처럼.

 

"의사인 친구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었다. 병실을 장식하는 그림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 그림이 아니라 뭘 그린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추상화 쪽이 좋다고. 그림에 담긴 뜻을 알아내려 하는 것이 환자의 상상력을 자극해, 나아가 살아가는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편지를 기다리는 행위에는 살아갈 희망이 잠재되어 있다."  (p.187)

 

나도 군 복무를 하던 시기에 대필을 해준 경험이 있다. 그렇다고 선임의 협박에 굴복하여 연애편지를 대신 썼던 것은 아니고, 같은 내무반의 후임 병사의 사정이 하도 딱해서 어쩔 수 없이 팔을 걷어붙였던 것인데 사정인 즉 이러했다. 후임 병사에게는 매주 거르지 않고 면회를 오는 애인이 있었는데 첫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후부터 더 이상 그 애인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후임병은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매사에 의욕을 잃고 허물어져 갔다. 근무하는 부서는 달랐지만 같은 행정병이었던 나로서는 후임병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어느 날 저녁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들었고, 그의 연애담을 바탕으로 한 편의 단편 소설을 쓰기에 이르렀다. 컴퓨터도 없던 당시에 나는 업무가 끝난 후 야간에 홀로 사무실에 남아 타자기로 타이핑을 한 후 봉투에 담아 후임병의 이름을 써서 보냈고, 편지가 도착한 그 주 주말에 후임병의 애인이 면회를 온 걸 목격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를 했고, 그 후의 뒷얘기는 알지 못하지만 한 통의 편지가 펼쳐 보여주었던 기적의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소박한 것에서 기적의 순간을 목격하기도 한다. 편지에는 어쩌면 서로의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서로의 영혼이 아날로그 필름처럼 찍혀 있는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