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당시 나는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지 않았을까 싶다. 햇살이 따사로웠던 주말의 어느 봄날, 나와 친구들은 낡은 텐트를 둘러메고 산을 올라 양지바른 언덕의 묏등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강원도의 봄은 언제나 지축을 뒤흔들 듯한 바람과 함께 시작되는데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좁은 텐트 안에서 바람을 피하며 쏟아지는 봄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는 슬슬 내려가야겠다 생각할 즈음 한두 살쯤 어린 동네 후배들이 지나가다 우리를 발견하고는 뭐 하느냐며 다가왔고, 이런저런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그들 무리 중 한 명이 라이터에 불을 붙여 마른 잔디를 태우기 시작했다. 쉽게 끌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작게 시작된 불장난은 바람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불길은 묘의 주변을 둘러싼 어린 소나무까지 옮겨 붙었다. 더럭 겁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쯤이었고, 누가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닌데 우리는 다들 손에 솔가지를 꺾어 들거나 상의를 벗어 들고 번지는 들불을 끄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들불과 사투를 벌인 결과 간신히 불길을 잡긴 했으나 그곳에 있던 아이들의 몰골은 봐주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했다. 눈썹이 그슬린 것은 물론 숯검정이 묻어 가관이었다. '들불처럼 번지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국선언이 그야말로 들풀처럼 번지고 있다. 어찌나 많은지 각각의 선언문을 일일이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선언문이 더러 있었다.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로 시작하여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는 경희대 시국선언문과 '어째서 사람이 이모양인가!'라는 질책으로 시작하여 '오늘 우리가 드리는 말씀은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니 방관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아무도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매섭게 꾸짖어 사람의 본분을 회복시켜주는 사랑과 자비를 발휘하자는 것입니다.'로 끝을 맺고 있는 천주교 사제 1466인 시국선언문이었다. 물론 '당신은 더 이상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다.'는 선언으로 시작하는 연세대의 시국선언문에도 눈길이 갔다. 그렇다고 다른 대학의 시국선언문을 숫제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꼼꼼히 읽고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한 번 번진 들불은 끄기 어렵다. 타오르는 불꽃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이리 날고 저리 건너뛰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그 무서움을 잘 안다. 그러므로 들불은 발원 자체를 차단하는 게 최선이다. 그렇지 않다면 발화의 초창기에 사람들 모두가 합심하여 꺼야만 불길을 잡을 수 있다. 들불이 번져 숲으로 옮겨 붙었다면 그 피해는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엊그제 28일에는 대통령의 모교인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과 김건희 특검에 뜻을 모은 동료 시민들, 전국 각 대학의 동료 교수·연구자들과 함께 윤석열 정부의 조속한 퇴진을 강력하게 촉구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는 서울대 시국선언문. 이 정도 됐으면,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라면, 사과하고 물러나는 게 순리이겠으나 대한민국의 국민 모두는 당사자인 그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는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나 애국심도 전혀 없는 철면피 무뢰배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는 사랑꾼임을 자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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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11-30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움을 아는 자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그래서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꼼쥐 2024-12-01 15:15   좋아요 0 | URL
문제는 스스로 물러나려고 하지 않는 자를 물러나게 해야 한다는 점이죠. 국민 대다수의 고민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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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던 눈은 이제 비로 변하였다. 봄이나 여름과 다르게 겨울에 비를 맞고 서 있는 나무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숙연한 느낌이 들게 한다. 겨울이라고 해서 살아 있는 생명체인 나무가 물을 필요로 하지 않을 리 없겠지만 추위 속에 종일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은 처연하다 못해 숙연한 느낌마저 들게 하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생각은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인 느낌일 뿐 당사자인 나무는 나와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돌아보면 항상 어떤 장소를 지워버림으로써 삶을 견뎌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어야겠다 싶은 장소들은 아예 발길을 끊어서 최대한 망각할 수 있게 노력해왔지만 이 일을 맡으면 그곳에 대해 생각하고 더 알게 될 것이었다. 거기에는 일년 남짓의 내 임시 일자리가 있었고 600년 전에 건축된 고궁이 있었고 잊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구나 싶어 망각을 결심한 낙원하숙이 있었다."  (p.17)


소설가 김금희의 전작을 모두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 나온 신작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비교하여 크게 달라져 있음을 느꼈다. <경애의 마음>에 비해 작품의 스케일이나 구조가 대폭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주제의 전달력이나 작품의 밀도는 전에 비해 떨어진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결과는 곧 독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게 하고 때때로 지루함을 느끼게 하는 상황으로 이어지도록 한다. 말하자면 가독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자신의 작품에 있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러한 변화를 시도하는 첫 단계는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다.


작품은 대온실 보수공사를 맡은 바위 건축사사무소에서 문화재 공사 백서 기록담당자 채용을 위한 면접을 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석모도에서 나고 자란 주인공 영두는 단짝 친구인 은혜의 도움으로 면접에 응하게 된 것인데, 공사 현장인 창경궁의 대온실은 영두의 아픈 기억이 서린 원서동의 낙원하숙과 가까운 곳이어서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아빠와 단둘이 살던 영두는 아빠의 주선으로 2003년, 중학생 시절 섬을 떠나 창덕궁 담을 마주 보는 동네인 원서동으로 떠나게 된다. 당시 석모도에는 고등학교가 없었던 까닭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려면 섬을 떠나야만 했는데 원서동에서 낙원하숙을 하던 문자 할머니의 권유로 그보다 좀 이른 나이에 섬을 떠나게 된 것이었다. 영두는 문자 할머니의 손녀로 알려진 동갑내기 '리사'와 같은 방을 쓰면서 같은 학교를 오가게 된다. 그러나 명랑하고 순박한 성격의 영두와 매사 까칠하고 맹랑한 성격의 '리사'는 처음부터 어울리기 힘든 조합이었다.


"헤어진다는 상상만으로도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나약함을 감추는 건 내 마음과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었다. 순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최종의 마음까지는 내보이지 않았다.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방법을 몰랐던 데 가까운 것이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것이 너무 어려웠다. 슬프면 슬프다고, 상처가 있으면 상처가 있다고, 떠날까봐 두려우면 두렵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p.195)


영두는 결국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원서동을 떠났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쓰게 되면서 영두는 다시는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낙원하숙에서의 시간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마리코였던 문자 할머니가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겪어야만 했던 아픈 역사와도 대면한다. 그와 같은 아픔은 중2 소녀가 겪었던 지난 상처와 겹치면서 또 다른 길로 영두를 안내한다. 대대적인 수리를 거쳐 재개장을 앞둔 대온실과 이제는 모두 떠나고 집의 형체와 추억만 덩그러니 남은 낙원하숙은 그 추억을 아름답게 지키려는 사람과 어떻게든 그 모든 것을 지워버리려는 사람의 충돌로 이어진다.


"산아는 왜 옛날이야기들은 이렇게 슬프게 끝나는지 모르겠다고, 역사책 읽을 때마다 해피엔드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너무 옳은 말이라서 또다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역사가 슬픈 건 죽은 이들 때문일 수도 있고, 늘 미완으로 남는 소망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p.267)


낮에 잠깐 비로 변했던 눈은 밤이 되자 다시 찬바람과 함께 진눈깨비가 되어 내린다. 싸락싸락 소리를 내며 우산에 엉겨 붙는 진눈깨비. 어제부터 내린 눈은 117년 만의 기록적인 11월 폭설이라는데 누군가의 억울한 이야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구름을 따라 이곳저곳 유령처럼 떠돌다가 누군가의 슬픈 추억과 함께 실타래처럼 풀려나오는 게 아닐까.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그렇게 읽혔다. 눈이 많이 내려 '대설(大雪)주의보'가 아니라 이야기가 많이 풀려나와 '대설(大說)주의보',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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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 사람들의 주제와 관심사는 단연코 첫눈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압수수색 하는 날 웬 눈이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지방 출장 갔다 와야 하는데..." 하면서 발을 구르는 사람도 있을 테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오늘은 펑펑 쏟아지는 첫눈을 보면서 깊은 상념에 젖거나 첫눈에 얽힌 몇몇 장면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첫눈이란 누구에게나 특별한 감정을 던져주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감정 역시 신체와 별반 다를 게 없어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메마르거나 지극히 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어찌할 수 없는가 보다.


사무실 근처의 한 중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창문을 열고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이가 어릴수록 눈에 대한 상상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상상력과 기쁨은 하루가 다르게 감소하고 손에는 눈처럼 텅 빈 허무와 아쉬움만 덩그러니 남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쩌면 눈에 대한 상상력을 모두 잃은, 냉랭한 시선의 인간이 되었음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빅토리아 베넷이 쓴 <들풀의 구원>은 아름다운 책이다. 오늘처럼 눈보라가 몰아치고 옛 기억이 눈처럼 쌓여, 나의 휑한 가슴에도 그리운 이의 말과 추억이 소복소복 쌓이는 날에 읽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것만 같은 그런 책이다.


"어머니의 삶이란 무엇으로 측정될까? 드러나지 않은 사랑의 행위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가치는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가 뒤늦게야 잃은 것의 무게를 마치 손에 바다의 돌을 쥔 것처럼 느끼는 날까지. 나는 공책과 영수증과 작은 스크랩북을 낡은 패치워크 치마 자투리에 싸서 망가지지 않도록 보관한다. 이것은 어머니가 살아냈던 문자들이다. 과거로부터 내 펜이 조급하게 또각거리며, 말이 영영 사라져버리기 전에 우리 삶의 해설지에 뭐라도 적어넣고 싶어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내가 본다고, 기억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인생에 담긴 그 수많은 작은 사랑의 행위들은 어머니가 매일같이 자기 힘으로 만들어낸 선물이었으며, 어머니는 그 하나하나의 행위를 통해서 자기 꿈의 씨앗을 뿌린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 얼마나 멋진 정원을 우리에게 만들어줬는지."  ('들풀의 구원' 중에서)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의 어깨 위로 어둠이 내리고 있다. 낮에 내리던 진눈깨비는 밤이 되자 무게를 잃고 가벼워졌다. 그러나 삶의 무게는 밤이 되어도 가벼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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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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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이제 겨울을 향해 잰걸음으로 달려가고 있는 듯합니다. 제법 낮아진 아침 기온이 오슬오슬 추위를 느끼게 하지만 아직은 여리고 부드러운 추위입니다. 귀가 떨어져 나갈 듯한 날카롭고 매서운 추위가 닥치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요. 어제는 시골에 사는 지인의 집을 방문했었습니다. 십여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마을을 가로질러 작은 하천이 흐르고 하천을 따라 올라가면 산 어귀의 제일 끝집이 지인의 집이었습니다. 방 안에는 화목난로가 구석 한 켠을 차지하고 있었고, 방 한가운데 놓인 좌탁 위에는 지인의 것인 듯한 약이 한 보따리 놓여 있었습니다. 병명은 알 수 없었지만 신경외과에서 처방을 받은 색색깔의 알약들이 1회분으로 나뉜 투명한 봉지 안에 한 움큼씩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건강하던 지인도 이제는 약에 의존하여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이러이러한 불행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은 불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어렵게 구축한 삶의 보호막은 예리한 시간의 칼끝에 의해 너무도 쉽게 뚫려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러이러한 행복은 나에게 절대 일어날 리가 없다는 가정도 무용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는 동안 우리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행복한 장면들을 깜짝선물처럼 받으며 삶의 시름을 잊어왔기 때문입니다. 언제 있었던 일인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지인과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평소 담배를 피우지 않던 지인이 한 잔의 술을 앞에 놓은 채 심각한 얼굴로 내게 담배를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떨결에 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지인에게 건넸고, 지인은 어색하지 않은 모습으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토해냈습니다. 놀란 얼굴을 하며 내가 "참, 의외네요." 하자, "의외라니? 우리의 삶은 모든 게 의외야. 의외가 아니라거나 자신이 예측한 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믿는 인간이 오만한 거지."라고 말하던 지인의 얼굴이 엊그제 일처럼 지금도 생생합니다.


"여름에는 정말 미심쩍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게 아닐까. 중지되고 정체되는 감각. 여름을 제일로 사랑했다면 다르게 느꼈을지도, 하지만 여름은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다. 세 번을 거쳐온 마음은 미약하다. 그래도 싫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 한껏 사랑할 수 없다면 조금 사랑하면 되지."  (p.42)


손에 들고 갔던 한정원의 에세이집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지인이 타 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다 읽었습니다. 밖으로부터 느지막한 오후 햇살이 창을 통해 스며들었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겨우 들릴 듯한 거칠지 않은 바람소리가 자장가처럼 퍼졌습니다. 순식간에 불붙은 계절의 변화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온통 '의외'로 가득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인의 얼굴이 문득 떠오른 것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훌쩍 떠나온 것도 미처 예견하지 못한 '의외'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일은 대개 저지대에서 속절없이 일어난다. 슬픔은 단연코 저지대로 모여드는 것이다. 내가 거기 있지 않다고 해서 다행일 수 없다. 거기와 여기는 하나의 세계이다. 거기가 슬픔에 잠겨 있는데 어떻게 여기가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계절에는 빗물과 눈물의 총량이 앞을 다툰다."  (p.79)


책에서 나는 작가가 선별한 사진과 시와 산문을 두서없이 읽거나 그 형상과 함께 떠오르는 생각을 골똘히 부여잡으면서 지인도 의식하지 못한 채 한나절을 보낸 듯합니다. 밖으로 나와 잠시 서성였습니다. 햇살이 모여드는 산자락엔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 까닥까닥 머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해거름녘의 시골은 덥혀졌던 지면이 금세 식었고, 부드럽던 바람결마저 거칠어졌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지인의 권유를 정중히 뿌리치며 귀가를 서둘렀지만, 어둠은 이미 좁디좁은 시골 도로를 가득 뒤덮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한다. 곧 멀리 떠나야 할 사람. 둘은 마주앉아 바라보고 바라본다. 마지막 밤이 서로의 윤곽을 서서히 뭉갤 때까지,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순식간에 그늘이 심장을 거쳐 발바닥까지 떨어진다. 발밑에 흥건한 어둠. 빛이 필요해, 한 사람이 초를 밝힌다. 어둠이 흔들린다. 밤이 흔들린다. 둘의 그림자가 흰 벽 위에서 흔들린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그림자를 어루만진다. 붙잡았으면, 붙잡혔으면, 그림자라도. 한 사람이 붓을 들어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 긋는다. 선이 흔들린다. 흔들리는 한 사람이 완성된다. 언젠가 한 사람이 떠나고 또 한 사람이 떠나도, 뜨지 못하는 영혼처럼 테두리는 남는다."  (P.8 '작가의 말' 중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전조등 불빛을 따라 지인의 얼굴이 그려집니다. 세월에 닳고 닳은 탁한 음성도 함께입니다. "우리의 삶은 모든 게 의외야." 나는 반박할 수 없는 어떤 명제 앞에서 처참히 무너집니다. 핸들을 잡은 팔에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지고, 켜켜이 쌓인 어둠이 못내 부담스러운 밤이었습니다. 어쩌면 한정원 작가의 8월도 그와 같은 '의외'로 가득했는지도 모릅니다. 예정에도 없었던 지인의 시골집을 무작정 방문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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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심란하거나 울적할 때면 찾게 되는 사람이 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물론 책을 읽어도 좋겠지만 어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더러 있어서 그런 순간에는 책이란 한낱 장식품에 불과할 뿐, 마음의 양식으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심리적으로 지치거나 바닥으로 가라앉아 수면 위로 떠오르기에는 어떤 자구책도 그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어진 상태, 자력으로 물을 박차고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것이 불가능한 어떤 순간에는 사람의 힘을 빌리는 것이 정답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님을 모두 여읜 나로서는 누군가에게 터놓고 하소연할 처지도 아니지만, 살아 계셨을 때도 살갑게 굴던 자식은 아니었으니 나는 어쩌면 가족보다는 오히려 피가 섞이지 않은 외부의 누군가로부터 더 큰 위로를 받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울적하여 기신기신 영 기운을 차리지 못할 때면 나는 언제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성직자분들을 찾곤 한다. 성당 신부님이나 교회 목사님, 또는 사찰의 스님이 그런 분들이다. 그분들을 어떤 종교적 목적으로 찾았던 적은 없는 듯하다. 물론 천주교 신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어쩌다 신부님을 대할라치면 으레 몸이 굳고 예를 갖춰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모든 행동거지를 불안정하게 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도 없는 산꼭대기 암자에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않는 스님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전화를 걸 때가 많다. 스님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말이다.


어젯밤에도 스님과 통화를 했었다. 말이 좋아 안부전화지, 내가 필요로 하지 않을 때는 스님께 전화를 걸었던 게 1년을 다 합쳐야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스님도 내 전화라면 귀찮은 내색을 하지 않으신다. 밤이 깊도록 스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내 귀에 얹혀 오늘까지 나를 괴롭혔던(?) 말이 있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이 우주에 소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 심지어 아주 강한 듯 보이는 바위 덩어리도 약하디 약한 물과 바람과 햇빛에 의해 소멸하잖아. 이 광대한 우주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야. 다만 소멸하고 다시 만들어지는 데는 다 의미가 있는 거야. 그걸 잊지 말았으면 해."


시인 한정원의 에세이집 <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가까이에서 더러 보아왔다. 기억을 잃어가는 것. 내 조부가 그랬고, 내가 돌보던 시설의 여성들이 그랬고, 내가 존경하는 수도승이 그랬고, 이제 내 나이든 고양이가 그렇다. 순간순간 그들의 눈 속에서 빛이 꺼지고 눈동자가 멈추는 것을 목도했다. 그럴 때 그들은 아주 먼 데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시선을 나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기억을 잃으면, 사랑했다는 기억을 잃으면, 끝내 사랑을 잃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각할 수 있게 되었다."


작금의 이 무도한 정권을 보다 못한 각 대학 교수님들의 시국선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올여름이 그랬던 것처럼, 어젯밤 스님의 말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 역시 소멸할지니, 소멸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연민을 느껴야 한다는 스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려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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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22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의 글 속에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의 뜻이 담겨 있네요. 게다가 그러한 것들에 연민을 느껴야 한다는 스님의 귀한 말씀, 저도 함께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꼼쥐 2024-11-24 12:48   좋아요 1 | URL
저는 사실 무식하기 짝이 없어서 스님의 말씀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그럼에도 스님과의 수다를 끝내고 나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고 힘이 나곤 합니다. 공짜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기분이랄까,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댓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