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에 난 기사를 읽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전언을 기사화한 내용이었는데 말인 즉, 대통령이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전투 식량을 직접 인터넷에서 구매해 먹어보았으며 이를 통하여 우리 군의 전투식량과 비교해 보고, 개선점을 찾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읽고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런 잡무를 처리하는 데 굳이 대한민국의 대통령까지 나서야 하는가? 하는 의문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토록 한가한가? 하는 점이었다. 사실 그와 같은 업무는 국방부의 하급 관리가 처리하고도 남을 일이며, 개선점을 보고 받고 최종 결정을 하는 단계에서도 국방부의 중간 관리급에서 전결 처리할 일이지 국방부 장관에게까지 보고할 일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물며 대통령에게 그와 같은 업무가 전가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휴가기간에 정 할 일이 없어서, 혹은 몸이 뒤틀릴 정도로 심심해서 한다면 모를까 그런 일을 대통령이 한다는 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과 의무는 과도한 측면이 있는데 그와 같은 허드렛일이나 하고 있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말이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매일 밀려드는 산적한 국정 현안을 대통령 일인이 감당하기에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텐데. 사정이 이러한 까닭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많지 않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숫제 손을 놓아버리거나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국정 운영에 매진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전자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국정 현안에 손을 놓는다고 해도 국가의 녹을 먹고 있는 공무원 신분인 자신이 그저 잠이나 자고 좋은 술과 음식만 탐하기에는 국민들 보기에 민망한 노릇이니 뭔가 하고 있다는 태는 내야 하겠고... 그래서 찾은 일이 전투식량이 아니었을까.


대통령 부부가 체코 순방을 마치고 오늘 귀국했다. 체코의 원전 수주를 목표로 방문했다고는 하지만 당사국인 체코 언론은 그렇게 보지 않는 듯했다. 2024년 9월 21일자 체코 일간지 블레스크는 김 여사에 대해 과거 세금 회피, 표절, 학력 위조 등 다양한 혐의를 제기하며,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한국 대통령 옆에 설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부부에게 엿을 먹인 기사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정 현안에 손을 놓은 바지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거기까지인 셈이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여섯 번째 절기인 추분. '추분이 지나면 우렛소리 멈추고 벌레가 숨는다'는데 과연 그럴지 지켜볼 일이다. 때 아닌 가을장마로 전국이 난리이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낮 무더위가 조금 누그러졌다는 것이다.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은 실내에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었던 게 과연 얼마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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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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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는 거짓말처럼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더위도 빗줄기에 한풀 씻겨 내려간 듯했다. 돌이켜보면 지독한 여름이었다.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늦가을 해거름녘의 느린 산책처럼 여유롭고 한가할 수는 없겠지만 지난여름의 나는 입에서 단내가 물큰물큰 날 만큼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라고 썼던 박성원의 소설집 <하루>를 읽는 내내 길었던 추석 연휴가 흘러갔고, 하루가 천 년 같았던 연휴 뒤끝의 근무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주말.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소설은 맥락도 없이 뒤섞였다.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게 진짜 세상이라기보다 누군가가 그리고 있는 그림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햇빛은 슬며시 구부러지고, 건물들은 마주 보거나 아니면 서로 등을 돌리고 서 있다. 바깥은 여름이고, 나는 마흔이다. 알고 있다. 바보 같은 나이다."  (p.43 '볼링의 힘' 중에서)


어제부터 내린 비로 도로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겼다. 물웅덩이로 떨어지는 빗줄기는 계속해서 물동그라미를 그린다. 선명하게 퍼지던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이내 사라지고, 새로운 빗줄기에 의해 다시 또 생겨나는 물동그라미의 파문. 어디서 날아왔는지 마른 낙엽 한 장이 종이배처럼 떠 있다. 그 위로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이 이어졌고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고 내렸다.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데 더위를 겨우 씻어낸 올해의 가을비는 한여름 장마처럼 끝이 길다.


"여자는 차창에 얼굴을 꼭 댄 채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라고 남자는 중얼거렸다. 허브냄새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몸이 악기 같다고 생각했다."  (p124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 중에서)


책에는 표제작인 '하루'를 비롯하여 '볼링의 힘', '얼룩', '어느 맑은 가을 아침 갑자기', '분노와 복종 사이에서 그녀를 찾아줘', '저녁의 아침', '흔적' 등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각각의 단편을 이끄는 중심인물들은 성격도, 직업도 제각각이지만 하나 비슷한 것은 그들의 이름이 모호하거나 알 수 없게 표현되었다는 점이다. 그녀 혹은 그 남자이거나 남편이나 아내, 때로는 여자나 남자 혹은 주인으로 명명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책을 읽는 독자는 소설의 얼개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한 개인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무수히 많은 까닭에 그들의 이름조차 혼란스러운 것처럼. 그럼에도 소설은 무리 없이 읽힌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지만 영원히 죽지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은 죽음과 금뿐이구나. 죽은 그것들은 이제 콧구멍도 없고 숨을 쉬는 허파도 없으며 되새김질할 수 있는 위장도 없다. 지금에 와선 그것이 부럽다. 죽음의 가장 큰 미덕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것이다. 그 점에선 내 삶이나 죽음이나 똑같구나."  (p.179 '저녁의 아침' 중에서)


빗줄기가 굵어졌다 가늘어지기를 반복하며 강우량을 늘리고 있다. 사람들은 명절 연휴의 피로가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씻겨 내려가기를 바라며 하염없는 시선을 이어갔다. 스러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 위로 속절없는 시간들이 지워지고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가 꿈인 양 되살아났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스러지는 물동그라미의 파문이 아련하고 끊이지 않는 빗소리가 익숙한 자장가처럼 잠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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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만 느껴지던 추석 연휴도 이제 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휴일이라는 게 사실 그동안에 쌓인 피로를 씻고 재충전하고자 함이 일차적인 목표일 텐데 명절 연휴는 언제나 반대의 경향으로 흐르게 마련이다. 쌓인 피로를 풀기는커녕 쌓인 피로에 새로운 피로를 더 얹어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게다가 성장기에 있는 조카들이나 연로하신 어른들을 뵙고 나면 나 역시 잊고 지내던 세월의 흐름을 불현듯 느끼게 되어 정신적인 피로감도 만만치 않게 작용하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자본주의라는 게 본디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의 서열을 매기는 까닭에 철이 들면 들수록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부추기지 않던가. 자신의 처지나 속마음을 숨긴 채 몇 날 며칠을 부대끼며 연기를 한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말이지.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면 누구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듯 기진하여 영 맥을 못 추게 되고 만다.


연휴 기간 동안 나는 군에 입대한 아들을 면회하여 특별 외출로 잠시 집에 데리고 왔다가 다시 데려다주었고, 짬을 내어 처가 식구들과 '매드포갈릭'에서 외식을 했다. 자영업이 위기라는데 식당을 찾은 방문객들이 어찌나 많던지...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여념이 없고, 나는 그들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잠시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타들어가는 저 배추밭처럼 사람들 역시 시간 속으로 제 몸의 수분을 끝없이 밀어 넣다 보면 언젠가 거울 속에서 주름이 깊게 팬 푸석푸석한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늙어가는 게 아니라 메말라가는 것이다.


길었던 연휴 기간 동안 읽고 싶은 책은 많았지만 게으름과 이런저런 약속에 발목 잡혔던 나는 이 책 저 책 기웃대기만 했을 뿐 어느 것 하나 끝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박성원이라는 소설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나는 왜 이렇게 훌륭한 작가의 작품을 단 한 편도 읽지 않았던 것일까. 바보처럼 말이다. 그의 단편소설 <하루>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누군가의 하루를 이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모두 아는 것이다."


과연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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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즈음 2024-09-18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새롭게 알아갑니다. 소설가 박성원!

꼼쥐 2024-09-21 14:43   좋아요 1 | URL
제가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지만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소설가라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그의 또다른 소설집 ‘나를 훔쳐라‘를 대출했습니다.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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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로부터의 안부 전화를 받았다. 추석 명절에 보내는 선물 대신에 그가 할 수 있었던 값이 싼 인사치레는 그것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떻게 지내느냐?'고 그는 내게 물었다. 특별할 게 없는 나의 일상을 그가 모를 리 없건만 그와 같은 물음에 나 역시 '어떻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떠오르지 않아 '잘' 지낸다는 말로 얼버무렸다. 나 스스로도 정확히 규정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상을 어쩌면 나는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할 때마다 지나치는 가로수,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이마에 닿는 바람 등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배경을 묘사하거나 기록함으로써 그의 물음에 대한 정확한 답변을 갈무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와 같은 지난한 작업에는 나름대로의 노력과 타고난 재주가 뒤를 든든히 받쳐 주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나의 생각이 결국 소설가 클레어 키건에 이르렀던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햇살이 화장대 발치에 닿을 때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여행 가방을 다시 들여다본다. 뉴욕은 날씨가 덥지만 겨울이 되면 추워질지도 모른다. 오전 내내 밴텀 닭들이 울었다. 그 소리가 그립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옷을 입고, 씻고, 구두를 닦아야 한다. 바깥은 들판에 이슬이 내려서 종이처럼 하얗고 텅 비어 있다. 곧 태양이 이슬을 태워버릴 것이다. 건초를 말리기 좋은 날이다."  (p.11 '작별 선물' 중에서)


클레어 키건의 소설을 읽을 때는 작가가 설명하는 배경 묘사에 집중하며 읽어야 한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공간적 배경에 등장인물의 거의 모든 것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내적 갈등이나 결심, 기쁨이나 슬픔, 희망 혹은 절망 등 심리적인 것들 대부분이 작가에 의해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등장인물을 둘러싼 배경에 의해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방식은 책을 읽는 독자들을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시키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흐름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것은 마치 강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메마른 논에 물꼬를 트는 일처럼 간단하고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러나 소설의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배경이 되는 풍경이나 사물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결코 가볍게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조금 있으면 아침이었다. 흔들리는 커튼을 회색빛이 액자처럼 감쌌다. 집은 바람 구멍이 숭숭 난 덫이었다. 바깥에서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마거릿은 집 앞에 자란 기다란 풀을 눕히는 바람 소리에 익숙했지만 나무를 뒤흔드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어색했다. 그녀는 집 근처에서는 어떤 씨앗도 뿌리를 내리고 당단풍으로 자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런 더나고어에 절대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자신의 피 냄새가 났다. 그녀는 아직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이었던 것이다."  (p.203 '퀴큰 나무 숲의 밤' 중에서)


책에는 표제작인 '푸른 들판을 걷다'를 비롯하여 '작별 선물', '검은 말', '삼림 관리인의 딸', '물가 가까이', '굴복', '퀴큰 나무 숲의 밤' 등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아일랜드 남자들의 개별적인 삶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이 소설집은 클레어 키건이라는 걸출한 소설가에 의해 아일랜드인의 일상이 재해석되고, 일부는 삭제되고 또 일부는 크게 부각됨으로써 국적이나 세대를 떠나 인류의 보편적인 감성에 맞닿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오랫동안 성적 학대를 당했던 딸이 성장하여 결국 집을 떠나는 장면을 그린 '작별 선물'이나 가진 것이라곤 빚으로 산 집 한 채가 전부였던 사내가 가정을 뒷전으로 한 채 자신의 집을 온전히 자신의 소유로 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 등은 과거 우리나라 아버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혼 절차를 밟는 동안 그를 데리고 살았던 할머니는 이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부재를 느끼지 않은 적이 하루도 없다. 할머니는 인생을 다시 산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겠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가느니 거기 남아서 거리의 여자가 되겠다고. 할머니는 남편에게 자식을 아홉 명 낳아주었다. 청년이 차에 다시 탄 이유를 묻자 할머니가 말했다. "우리 땐 다 그랬어. 난 그렇게 생각했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줄 알았어."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스물한 살이고, 이 지구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하버드에서 A학점을 받았고, 달빛 속에서 아무런 시간제한도 없이 해변을 걷고 있다."  (p.156~p.157 '물가 가까이' 중에서)


일상을 일목요연하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나는 그의 질문처럼 '어떻게' 지낸다고 답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벽에 걸린 달력이 8월에서 9월로 옮겨오고, 하늘의 구름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아파트 화단에 핀 맥문동의 보라색 꽃대도 희미하게 시들고 있다. 가을 늦더위가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을 뿐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러간 듯 주변 풍경도 크게 변하고 있다. 나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배경을 묘사하거나 기록하지 않는 탓에 나는 다만 '어떻게' 지내고 있을 뿐이다. '어떻게'라는 일상 속으로 클레어 키건이 설명하는 과거 아일랜드인의 일상이 선명하게 스며들었다. 친구여, 나는 다만 '어떻게' 살고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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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고 있잖아 오늘의 젊은 작가 28
정용준 지음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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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것이, 말하자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르긴 해도 많지 않을 듯하다.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이 살아가거나 특별한 생각도 없이 시간의 관성에 따라 습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그중 몇몇은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기적이자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있을 테고, 또 그중 몇몇은 살아가는 자체가 지옥이자 천형이라고 개탄할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삶은 맛도 형체도 없는 무색무취의 그 무엇이며, 특별한 날에나 하는 어떤 이벤트처럼 어떤 대답도 기대하지 않고 묻게 되는 공허한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어디에나 있고 그 어디에도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애정 결핍자들은 안다. 우리는 끌려다닌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녹고 부드러운 눈빛과 목소리에 입은 벌어진다. 물을 향해 필사적으로 기어가는 새끼 거북이들처럼 무모하고 일방적이다. 가는 수밖에 없다. 끌려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망하는 것은 내 쪽. 구겨지는 건 내 마음뿐. 끌어당기는 쪽은 죄가 없다. 허락 없이 마음을 연 사람만 바보지."  (p.10)


정용준의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1급 말더듬이다. 혼자 생각하고 글로 쓰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타인 앞에서 입 밖으로 단어를 발음하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114 교환원인 엄마와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나는 IMF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20세기말의 대한민국 대다수의 국민처럼 휘청이며 앞을 향해 어렵게 나아가고 있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세기말의 불안을 안고.


"새해다. 새로운 세기의 첫날이다. 날짜의 앞부분이 1999에서 2000이 됐다. 새로운 느낌보다는 크고 뚱뚱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새해다. 밀레니엄이란 말을 하도 들어서 도대체 밀레니엄 시대엔 뭐 얼마나 달라지나 보자 싶은 마음으로 1월 1일을 기다렸는데 허무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말더듬이다. 20세기에도 더듬었는데 21세기에도 더듬을 예정이었다. 실망스러울 정도로 허탈했다. 우려했던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자동차는 하늘을 날지 않았다. 외계인이나 UFO도 지구에 오지 않았고 해도 달도 떨어지지 않았다."  (p.85)


중학교 1학년의 1급 말더듬이인 나는 학교의 동급생과 선생님, 주변의 어른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용기를 잃었지만 언어 교정원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는다.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호칭과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소년은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국어 선생님에 대한 복수를 계획하기도 하고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전 남자친구 중 한 명에 대한 마음의 소리를 노트에 옮겼다가 들키기도 한다. 그렇게 소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창밖이 밝아졌고 쓰레기가 지나가는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볼펜을 놓고 스탠드를 껐다. 노트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글자를 썼다. 많은 사람으로 많은 감정을 느끼고 나왔더니 긴 터널을 통과한 것처럼 어지럽고 피곤했다. 그런데 좋다. 시원하다. 쓴 것들을 다시 읽어 봤다."  (p.145)


동물이든 사람이든 약자에 대한 보호나 연민보다는 놀림이나 공격이 더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약자를 최일선에서 보살펴야 하는 대한민국의 인권위원장이라는 자가 우리나라에서 차별금지법을 도입하면 공산주의 혁명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세상에! 그런 논리가 어찌 이치에 닿을 수 있는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자발적으로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속하기를 원할까. 비주류에 속한다는 건 약자의 편에 선다는 것, 그것은 곧 강자의 공격을 평생 감내해야 한다는 것인데 예수와 같은 성인이 아니라면 스스로 그와 같은 고난의 길에 들어설 리 없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천형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인권위원장은 그들을 돌볼 생각도, 그들 편에 설 생각도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류 세력은 그렇게 잔인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 중에는 그와 같은 비주류에 속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따금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애달프다. 속절없이 견뎌야 하는 그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그 답답하다. 역사의 진보는 무척이나 더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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