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드롭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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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비슷한 시기에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몰아서 읽게 되었다. 얼마 전에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를 읽었는데 그녀의 여행 에세이 <여행 드롭>을 또 읽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에세이에 있어서 만큼은 일본 작가의 작품을 더 선호하는 편인데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나쓰메 소세키나 마루야마 겐지와 같은 예전 작가의 에세이도 종종 읽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에쿠니 가오리, 무레 요코나 마스다 미리의 작품도 자주 읽는다. 언젠가 나의 블로그에 쓴 적도 있지만 일본 작가의 에세이는 작가의 생각이나 감정을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책을 읽는 당신도 나와 같은 생각이어야만 해'가 아니라 단순히 '책을 읽는 당신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이렇게 생각할 뿐이야' 하는 식이다. 감정에 있어서도 다르지 않다. 어떤 장면을 보고 그냥 슬펐을 뿐이지 나는 너무 슬펐기 때문에 책을 읽는 당신도 역시 슬퍼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작가의 경우에는 다르다. 감정이나 주장에 있어 일본 작가에 비해 적극적이다. 어떤 경우에는 단순히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부담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어쩌면 두 나라의 국민성이 에세이라는 장르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나는지도 모른다.


에쿠니 가오리의 <여행 드롭>은 여행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여행 스케치이다. 개인적으로 혹은 업무차 다녀온 여행과 어느 날 문득 일상에서 떠오른 그날의 추억. 여행의 묘미는 정작 떠나기 전의 설렘이 팔 할이라면 다녀온 후의 회상이 나머지 이 할을 차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그리고 여행지에서 겪었던 낯선 경험과 힘들었던 일들은 마음속 그리움으로 번지기 일쑤이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여행에 대한 추억이 가슴 한편을 먹먹하게 물들일 때 우리는 다시 습관처럼 여행을 계획하곤 한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고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기분은 최고다. 밖은 비, 그러나 온천물은 따끈하다. 빨래 걱정도 없고, 저녁거리를 사러 나갈 필요도 없다. 눈앞에 펼쳐진 산속 나무들은 젖어 좋은 냄새를 풍기고, 이파리들은 선명한 초록이다. 극락. 비 내리는 날의 온천물은 화창한 날보다 부드럽고, 피부에 촉촉하게 스미는 느낌이다. 노천탕 전체의 부연 공기도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p.77)


여행지에서의 생각은 일상의 그것과 사뭇 다르게 흘러갈 때가 많다. 시간에 대한 관념도, 일정이나 계획한 일에 대한 조바심도, 나를 바라보는 현지인들의 시선도 때론 무감하게 느껴지곤 한다. 생각이란 게 도무지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처럼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멋대로 흩어져 나란 존재는 금세 쓸모없는 어떤 것으로 전락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경유하기 위한 시간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리라. 그 장소는 출발지도 아니고 목적지도 아니다. 시간은 출발 후도 도착 전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 홀연히 나타난 시공간, 게다가 외국. 경유하는 공항에 있을 때면, 나는 나 자신을 그곳에 분명히 있지만 없는 존재로 느낀다. 그리고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럴 마음만 있으면 목적지가 아닌 장소로도 갈 수 있다고."  (p.104)


여행을 떠날 때면 ‘언제나 꼬맹이로 돌아가는 기분이다’라는 작가의 생각에 우리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게다가 마음에 맞는 일행이 한둘 섞이기라도 하는 날엔 그런 기분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나의 사회적 위치와 책무 같은 것들은 저 멀리 걷어차게 된다. 오직 나 자신과 여행을 함께 하는 여행의 동지, 낯선 풍경과 낯선 사람들, 이제 막 오렌지색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낙조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이 영상처럼 떠오를 뿐이다. 제어력을 잃은 과다 증폭된 감정들이 시도 때도 없이 분출된다.


"여행을 좋아하는데도, 여행에서 돌아오면 반갑고 안도하는 것은 왜일까. 돌아오면 집 안 청소를 해야 하고, 우편물도 메일도 팩스도 잔뜩 쌓여 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어 장을 보지 않고는 먹을 것도 만들 수 없는 상태인데. 가족을 만날 수 있어서 그렇다, 하는 대답은 옳지 않다. 가족과 함께 여행한 경우에도 집에 돌아오면 안도하니까. (......) 규슈나 홋카이도, 미국이나 유럽 등, 여행을 좋아해서 아무튼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실제로 반복해서 떠나 보고 듣는 것, 만나는 사람, 먹는 음식 모든 것에 마음을 빼앗겨 벅찬 가슴으로 역이든 공항에서 여행 가방과 함께 돌아오면 집이 아직 거기에 있고, 게다가 여전히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라 놀랍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반갑고 안도하는 것은 매번 그 사실에 감동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154~p.156)


다시 또 주말. 금세 봄이 올 것만 같던 날씨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폭설 속에서도 꽃은 피고, 시간의 과묵함 속에서도 아이들 재잘거림이 나이테에 새겨질 테다. 우리는 그렇게 한 뼘 성장한 아이들을 대동하고 벚꽃 흐드러진 어느 강변을 걷게 될지도 모른다. 그 거리에서 에쿠니 가오리의 에세이 <여행 드롭>의 한 구절을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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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가뭄이 심하던 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비가 잦다.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등산로를 걸을라치면 발을 옮길 때마다 먼지가 풀썩 일고 매캐한 먼지내가 솔내음보다 더 진하게 퍼져나가곤 했었다. 이맘때의 등산로는 표토층만 겨우 녹아 쭉쭉 미끄러지는 통에 사정도 모르고 나온 초보 등산객의 발길을 꽁꽁 묶곤 했던 예년과 다르게 올해는 따뜻했던 겨울 날씨와 잦은 비로 등산로는 물 반 진흙 반으로 꽤나 질척거린다. 비탈진 등산로에서는 늘어진 나뭇가지를 붙잡지 않고서는 똑바로 서 있기조차 힘이 들 지경이다. 덕분에 뽀얗게 이는 흙먼지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일도, 산불의 위험도 크게 떨어진 게 사실이지만 왠지 나는 겨울과 봄 사이의,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계절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에 마음이 께름칙한 것이다. 이제껏 본 적 없었던 겨울과 봄 사이의 1.5의 봄이라고나 할까. 이렇게 습한 날이 지속되면 알레르기 비염 환자들에게 조금쯤 도움이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남녘에선 속속 꽃소식이 전해오고, 강원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려지는 이런 이상한 계절 한가운데서 나는 오늘도 계절과 더불어 이상한 하루를 보냈다. 제정신이 아닌 게 어디 계절과 사람뿐일까마는 나는 오늘도 분분히 낙하하는 영혼의 잿빛 무리를 목격하며 저 무리들 속에 나의 영혼도 힘없이 꺾이겠구나, 절망했었다.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의 어느 봄날에 쓴 일기 한 구절은 오늘의 날씨처럼 스산하였다.


"다만 봄이 아직 지나지 않았고 까무러칠 만큼의 고독한 시간은 이제 시작될 것이다. 당신도 그렇겠지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아, 이 고독이라는 건 정말 고독하구나. 술을 마시고 누구에겐가 편지를 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생에 더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

섬득섬득 사라지는 빛의 봄 오후/북풍의 봄 오후/정말, 당신 때문일까,/이렇게 저녁을 준비할 자격이 있을까, 햇살아?/당신에게 부치지 못하는 편지들을 곱게 접는 봄 오후//" 


궂은 날씨를 뒤로 한 채 귀갓길을 서두르는 사람이 있고, 궂은 날씨를 핑계로 귀가를 미루는 사람이 있다. 오늘의 날씨는 두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 명확한 선을 그었다. 나는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어제 읽던 허수경 시인의 유고집을 마저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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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Blu (리커버) 냉정과 열정 사이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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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싸움에서도 그렇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서는 누구의 잘못이 큰지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사람은 늘 자신의 입장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유불리를 따져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숨기거나 축소하게 마련이니까. 그와 같은 방어기제는 누군가로부터 학습을 통해 습득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선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싸움의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이는 사랑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사랑도 싸움도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원초적인 생존 수단에서 비롯되었을 테니까 말이다.


일본의 남녀 소설가 2명이 같은 결말의 서사를 남자와 여자 주인공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냉정과 열정 사이>는 두 사람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에 이르는 과정을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추억하며 각자가 지닌 사랑의 정도를 저울질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꽤나 기발한 발상이자 흥미로운 기획인 듯 보인다. 하기에 일본의 여성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와 일본의 남성 소설가 츠지 히토나리에 의해 쓰인 두 권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 & Blu>는 두 사람의 개성이 뚜렷이 드러난 소설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ROSSO든 Blu든 하나를 먼저 읽고 나중에 읽는 소설은 어쩔 수 없이 가독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의 소설가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는 점도 무시할 수가 없다.


"후회 없는 인생이 있을까. 후회만 계속해왔다. 평생, 후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갑자기 다리가 무거워진다. 느슨하게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올려다보았다. 굽어지는 길 중간쯤에 메미가 사는 아파트 불빛이 보였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어떡할까, 하고 망설였다."  (p.60)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가 쓴 <냉정과 열정 사이 Rosso>를 먼저 읽었던 나는 츠지 히토나리의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Blu>를 읽는 데 꽤나 긴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츠지 히토나리의 문체나 서술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두 소설의 내용이 많은 부분 중첩되거나 예상 가능한 부분이 많아서 좀처럼 독서에 속도를 높일 수 없었던 때문도 아니다. 제목이나 주인공의 이름을 달리 썼다면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었을 테지만 단지 주인공의 이름이 같고, 결말이 같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가독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나의 독서 이력에 있어서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다들 미래만을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는 과거를 그냥 물처럼 흘려보낼 수 없다. 그래서, 그날이 그리워,라는 애절한 멜로디의 일본 팝송을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것이다."  (p.194~p.195)


교포 출신의 아오이와 쥰세이는 도쿄의 대학에서 만나 연인이 되고, 사랑하던  두 사람은 아오이의 임신을 계기로 심하게 다툰 후 헤어진다. 그 후 쥰세이는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미술품 복원사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미술품 복원 일을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던 쥰세이는 공방에서 함께 일을 배우는 다른 수련생의 질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게다가 조반나 선생님은 짬이 날 때마다 쥰세이를 모델로 삼아 그림을 그린다. 어린 시절 자살로 생을 마감한 쥰세이의 엄마에 대한 그리움은 뉴욕에 살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다. 그리고 엄마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쥰세이는 조반나 선생님에 대한 특별한 감정으로 이어진다. 한편 그의 곁에는 일본인 유학생 메미가 있다.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혼혈로 태어난 메미는 두 사람의 이혼 후 줄곧 엄마와 함께 일본에서 생활한 터라 이탈리아어는 몹시 서툴렀다. 어학당에 다니며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메미의 유일한 조력자는 언어가 통하는 쥰세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헤어진 연인 아오이를 잊지 못하는 쥰세이는 연인인 메미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겉돌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쥰세이가 복원을 맡았던 명화가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발견되고, 그 일에 책임을 느낀 조반나 선생님은 공방을 폐쇄하기에 이르고,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수련생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책임을 느낀 쥰세이도 결국 일본에 사는 할아버지 곁으로 돌아가 무기력한 생활로 일관한다. 어느 날 이탈리아에 있던 메미가 연락도 없이 쥰세이를 찾아오고...


"나의 광장. 예전에 그렇게 부르며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다. 세상에 녹아들지 못하고 혼자 떠돌며 살아가던 내게 있어 그녀는, 막다른 골목길에서 갑자기 나타난 도시의 광장처럼 시원스러운 존재였다. 별다른 용건도 없이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노인처럼 매일 그곳을 찾아갔다. 그녀의 품에 안겨 있을 때, 나는 자신이 고독하지 않고, 행복한 존재라 생각할 수 있었다."  (p.168)


누구보다도 쥰세이를 아끼고 사랑했던 할아버지 곁에서 시간을 보내던 쥰세이는 조반나 선생님의 자살 소식을 듣고 다시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리고 헤어진 연인 아오이와 했던 오래전 약속을 떠올리는데...


남녀간의 사랑이나 결별은 한쪽편의 일방적인 잘못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변수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많은 변수를 일일이 확인하고 점검하여 최종적으로 누구의 잘못임을 객관적으로 밝힐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도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언제나 사랑 앞에서 무모한 듯 보이고, 맹목적일 수 있다. 비록 그 결과가 참혹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사랑에 대한 용기는 그 무모함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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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한결 홀가분한 마음


봄날씨처럼 따사롭고 화창했던 어제는 아내 멧돼지와 함께 모처럼 진흙목욕을 했습니다. 발정기가 지난 수컷 멧돼지들에게 어쩌면 2월은 잔인한 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아 꾸벅꾸벅 조는 게 하루의 일과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러나 선거도 멀지 않았는데 그렇게 멀뚱히 앉아서 매일 잠만 잘 거냐는 아내 멧돼지의 성화에 못 이겨 나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던 것입니다. '돈생 토론회'라는 거창한 제목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내 멧돼지의 명령이라면 해외 순방도 취소하는 나로서는 그깟 국내 순회공연쯤이야 하는 심정으로 호기롭게 나섰던 것입니다.


남쪽 부산에서는 새뜻이 핀 동백꽃이 나를 반겨주었습니다. 부산에서 개최하려고 했던 국제 행사의 유치에 실패한 이후 나는 부산의 멧돼지들로부터 심한 야유와 비토 정서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나는 사실 국제 행사의 유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다만 그것을 핑계로 해외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재물이 많은 멧돼지들을 대동하고 언제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행사 유치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로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똘마니들의 조언과 이러다 다 죽게 생겼다는 아내 멧돼지의 비명 때문에 나서기 싫은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공약(空約)을 쏟아냈습니다. 그 많은 공약을 지키려면 나라의 곳간이 거덜 나겠지만 그게 공변될 공(公)이 아니라 단순히 빌 공(空) 자 공약(空約)이라는 걸 나의 똘마니들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내가 어떤 말을 하건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시쳇말로 어차피 '뻥'이고 '쇼'일 뿐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몇 번 뻥을 치면서 다니다 보니 대전의 한 행사장에서는 나의 연설 도중에 바른말을 하는 멧돼지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냥 둘 수가 없었지요. 마음 같아서는 날씬하게 두들겨 패서 감옥에 처넣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똘마니 멧돼지들을 시켜 강제로 쫓아냈을 뿐입니다. 보는 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거를 치르기 전까지 이와 같은 쇼를 몇 번 더 진행할 요량입니다. 미련한 일반 멧돼지들은 이것이 쇼라는 사실도 모른 채 나의 공약(空約)에 열광할 것입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입니다. 화창하고 따사롭던 날씨는 하루 만에 급변하여 소란한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운을 예견하는 듯 말입니다. 나는 어쩌면 리더가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될 무능한 멧돼지일지도 모릅니다. 이 모든 게 하늘을 찌를 듯한 아내 멧돼지의 욕심 때문에 비롯된 일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나는 리더 멧돼지로서의 능력이 없으니 각자 알아서 생존을 도모하기를... 꽃이 피고 녹음 무성한 여름이 오면 나는 어쩌면 리더의 자리에서 쫓겨나 합당한 처벌을 받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만 된다면 지금보다 한결 홀가분한 마음일 테지요.


*경고 : 이 글은 단지 허구에 의한 소설일 뿐 특정 사실이 아님을 엄중 고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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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걸었다 - 뮌스터 걸어본다 5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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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결심하는 이는 원래부터 다정한 사람이었을 확률이 높다. 우리가 지난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보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더 열심히 해야겠다 결심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신년계획을 세우는 일도, 다이어트나 운동 등 새해 결심을 하는 일도 모두 그만두었다. 지키지도 않을 계획을 세우느라 시간만 낭비하고 의지박약의 나 자신만 탓하는 일도 유행 지난 신파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조금 더 상냥한 사람,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시간마다 기도와 더불어 다짐하곤 한다. 그렇다고 내가 다정한 품성을 타고 태어난 사람이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나는 제법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걸 나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만회해 보자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 거창한(?) 프로젝트를 실천하기 위한 첫 단계로 나는 시를 외우거나 읽기, 시인의 산문집이나 대담집 읽기로 계획을 잡았다. 말하자면 나는 '시인처럼 생각하기'를 실천해 볼 요량인데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어서, 시시때때로 이해득실을 따져 좋고 나쁨을 가리는 까칠하고 몸에 밴 자본주의 성정이 수시로 튀어나오는 바람에 나 자신도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한평생 길들여진 자본주의 품성이 터줏대감처럼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까닭에 굴러온 돌인 시인의 품성은 매번 겉돌기만 할 뿐 진득하니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그렇게 쌓아가야 한다는 것은 허수경 시인으로부터 배운다.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독일어를 배운 지 10년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독일어로 쓰인 시들을 읽을 수 있었다. 시들을 읽을 수 있으면서부터 배낭에 시집을 넣고 수천 번도 더 걸었던 도시를 다시 걷기 시작했다. 시를 읽으며 걸었다. 시가 읽히지 않는 시대라는데 시 중독자이자 시인인 나는 시를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를 통하지 않고는 사람의 속내나 거리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시는 나와 세계를 이어주는 미디엄이었다. 내 영혼의 속살은 그 매개로만 표현되었다. 이방의 시인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도시를 드문드문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p.24)


시인 허수경이 독일로 이주하여 터를 잡고 살았던 도시 뮌스터. 난다의 걸어본다 시리즈 중 다섯 번째 이야기인 <너 없이 걸었다>는 시인 자신이 살고 있는 뮌스터의 사람들과 풍경을 독일 시인들의 시와 엮어 그곳에 살고는 있지만 원주민의 시각이 아닌, 그렇다고 완전한 이방인의 시각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경계인의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독일 문화의 깊은 숨결을 호흡하고 있다.


"외국어를 쓰고 사는 동안 나는 우리말로 대화할 사람들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실컷 우리말로 수다를 해보았으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나에게 절실한 건 우리말로 대화를 나눌 어떤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특정한 사람들이었다. 그 특정한 사람들이 들어 있는 기억의 서랍은 하도 자주 열어보아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다. 이 거리에서 내가 그렇게 자주 오라고 불러대던 사람들은 아마 다른 거리에서 나를 오라고, 그렇게 자주 불러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p.114)


허수경 시인이 우리에게 소개하는 독일 시인은 하이네, 트라클, 벤, 작스, 괴테, 릴케 등 어디선가 한두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유명 시인들과 그베르다, 아이징어, 호프만슈탈, 드로스테휠스호프 등 낯선 시인들의 이름이 섞여 있다. 진주라는 소도시에서 태어난 한 시인이 시가 아닌 고고학을 공부하기 위해 뮌스터라는 독일의 소도시로 떠났을 때, 시인을 아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은 머잖아 돌아올 거라고 아주 쉽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을 깨고 시인은 독일에 눌러앉았고, 익숙했던 공간을 떠난 한 인간의 삶과 고독이 문틀에 새긴 아이의 키 눈금처럼 시와 글로 표출되고 있다. 독일이라는 먼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시인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사유를 버무린 이 책은 한 권의 문화백과사전인 셈이다.


"나이가 든다고 유혹이라는 치명적인 달콤함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뭔가, 혹은 누군가에게 끌렸던 그 설렘만큼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죽음의 기미를 알아채면서도 유혹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이들은 일종의 삶 중독자이다.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매일밤 도박장을 찾는 이 어쩔 수 없음을 살아내야 하는 이들. 그리고 우리들 모두에게는 유혹이 인생을 동반한다."  (P.187)


터무니없는 겨울 햇살이 비듬처럼 쏟아지는 오후. 나는 베란다 유리문을 통해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느린 발걸음을 시선으로만 좇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소리가 차단된 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풍경은 평화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러나 선량한 그들도 살다 보면 때론 본의 아니게 악다구니를 쓰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릴 때도 있을 터, 나는 조금 더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했던 오래전 약속을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조심조심 꺼내 본다. 끈적하게 눌어붙은 주머니 속 사탕껍질을 벗기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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