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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사랑한 예술가
조성준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3월
평점 :
어떤 분야든 천재로 기억되는 인물은 늘 있게 마련이다. 과학은 물론 문학이든, 건축이든, 영화든, 음악이든, 심지어 행정이나 관리에 있어서도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늘 있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지구의 미래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위기의 순간이면 언제나 우리 앞에 짠 하고 나타나는 슈퍼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던 천재들이 당면한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절망 속에 있는 우리를 위로하고 용기를 주었던 천재 예술가들의 찬란한 명성 이면에는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의 삶에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상존하는 것처럼.
조성준 작가의 저서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는 화가, 건축가, 만화가, 가수, 배우, 작곡가, 지휘자, 영화감독 등 대중이 사랑하고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예술가 25인의 작품 세계와 삶의 이면을 조망한다. 권력에 맞섰던 건축가 김중업에서부터 전면점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김환기 화백,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우수의 아이콘이었던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홀리데이, 희극 배우의 대명사 로빈 윌리엄스, 패션계의 판도를 바꾼 코코 샤넬,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등 우리의 귀에도 익숙한 이름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1부 '차별과 편견을 넘다', 2부 '케이지와 굴다처럼', 3부 '누가 스타를 죽였는가', 4부 '캡틴, 마이 캡틴', 5부 '시네마 천국으로 떠난 거장' 등 총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천재 예술가들의 삶의 이면과 예술을 다룬다.
"추상화 앞에서 관객이 주로 느끼는 감정은 혼란이다. 구체적인 피사체가 없는 추상화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많은 관객은 김환기 추상화 앞에서만큼은 어떤 설명을 듣지 않고도 스르르 무장해제된다. 서글픈 푸른색 점들은 관객을 저마다의 추억열차에 태운다. 누군가는 이 푸른 점을 통해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던 부모의 얼굴을 보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을 생각한다. 점을 찍었던 화가가 그랬던 것처럼." (p.132)
<노인과 바다>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좋은 작가의 조건으로 불우한 유년 시절, 재능, 그리고 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그의 의견에 100% 공감한다. 한 예술가에게 있어 그의 불우한 삶은 예술을 향유하는 일반 대중에게 있어 축복과 같은 것이다. 영혼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에 이르기까지 그가 갖는 영혼의 진폭은 모든 이의 그것을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예술을 사랑하는 그 누구라도 그의 영혼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겪어본 것을 예술로 표현하는 것과 단지 학습과 상상력만으로 표현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비참한 삶을 견디다가 떠난 예술가의 이야기는 흔하다. 피아프 역시 그런 예술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삶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다. 이 드라마의 장르는 비극이다. 하지만 피아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세상을 떠나기 3년 전, 1960년. 몸과 마음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였다. 이때 피아프가 부른 곡이 <아니요,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다. 마지막 남은 영혼 한 방울까지 다 끌어모아 노래를 불렀다. 눈물이 가득한 삶이었지만, 자신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p.196)
무언가 작정하고 덤벼들었을 때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누구나 예측 가능한 뻔한 결과로 마감되곤 한다. 그러나 삶의 밑바닥을 경험한 이의 성과는 이따금 세상을 놀라게 한다. 우리는 그들을 일러 '천재'라고 부르곤 한다. 물론 삶의 밑바닥을 경험했던 이들은 모두 천재가 되는 건 아니다. 천재라고 불릴 만한 성취를 이루는 이는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그 수가 적다. 그 반대의 경우도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자신도 예측하지 못했던 과한 결과로 인해 자신의 나머지 삶을 자신의 성취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경우 말이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사람이 서둘러 생을 마감했던 그와 같은 사례는 책에서도 다루고 있다. 히스 레저와 에이미 와인하우스 그리고 친숙했던 배우 로빈 윌리엄스...
"윌리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진지한 영화를 찍으면 안 어울린다며 손가락질을 받았고, 코미디 영화를 찍으면 식상하다며 조롱받았다. 점차 그는 쇠약해졌고, 서서히 잊혔다. 윌리엄스는 2000년대 들어 크고 작은 불행을 연달아 맞았다. 이혼을 겪으며 위자료만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사용했다. 영화도 잘 안 풀렸다. 술에 의존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는 외톨이처럼 바깥에 나오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게임에 몰두했다. 우울증이라는 파도가 덮쳤다. 예순을 겨우 넘긴 나이에 치매라는 비극까지 닥쳤다. 2014년 세상은 그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p.253)
얼마 전에 읽었던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자의식이 결여되었다는 것은 나와 나의 관계가 온전히 성립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나와 나의 관계도 온전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온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며, 허영이며, 교만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데서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나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우리가 사랑했던 예술가들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성준 작가의 <당신이 사랑한 예술가>를 곁에 두고 이따금 들춰 본다면 나의 삶도 크게 나쁘지 않다는 걸 깨닫지 않을까. 다시 시작되는 한 주, 텅텅 비었던 일상이 차곡차곡 메워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