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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 빛과 얼음의 땅 ㅣ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책은 다 읽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얼굴 하나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때론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할머니일 수도 있으며, 갑자기 세상을 떠난 가까웠던 친구의 얼굴일 수도 있다. 이따금 일면식도 없었던 엉뚱한 사람일 수도 있다. 배리 로페즈의 저서 <북극을 꿈꾸다>를 다 읽었을 때도 그랬다. 내게 떠올랐던 얼굴은 법정 스님. 2010년 열반에 드신 법정 스님의 얼굴을 떠올렸던 데에는 까닭이 있을지도 모른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신 직후, 한동안 마음이 허전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나는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 나와 있는 책들을 구해 읽기 시작했고, 한동안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 외의 어떤 다른 책도 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님이 권하는 대부분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이 권하는 추천 도서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스님의 철학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스님의 주장은 일관되게 우리가 사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일부분인 우리도 자연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레이그루크의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도 그때 읽은 책이었다. 일본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읽었을 때에도 나는 법정 스님의 얼굴을 문득 떠올렸었다. 스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어쩌면 자연주의 작가 배리 로페즈의 저서 <북극을 꿈꾸다>를 추천도서 목록 제일 윗자리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스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비가 온다고 생각했다가 흰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시 잠들었던 그날 밤, 나는 머리 바로 위에서 녀석들이 야간 비행을 하며 내는 공기를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날갯짓 소리도 들었다. 이런 태고의 소리들을 들으면 클래머스 강 유역은 매년 돌아오는 동물들이 다스리는, 기이할 정도로 인적 없는 오랜 동물들의 영토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기러기 떼 근처에서 며칠을 보내면서도 침입자가 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새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들의 어렴풋한 실체를 감지했다. 자연과 공간의 범위, 창공에서 내려오는 빛, 마치 물처럼 현재로 고여드는 시간." (p.224)
55년이 넘는 동안, 북극을 포함해, 초원, 사막, 섬 등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저자는 2020년 75세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온 인생을 걸고 자연과 인간의 잃어버린 유대를 복원하기 위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북극은 나와 별 상관도 없는 동토, 눈과 얼음밖에 없는 공허의 황무지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북극을 꿈꾸다>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북극은 지상 최대의 육식 동물인 북극곰이 2만 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고, 279종에 달하는 철새 수백만 마리가 짧은 여름 북극에서 번식하는 곳이다. 7월에는 다년생 식물의 꽃도 피고 곤충류도 번식하며,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에는 모기도 있다. 대형 초식동물인 사향소, 야생 순록인 카리부, 1천 km 이상의 장거리를 이동하며 사는 북극여우가 있고 바다에는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고래가 서식하는 곳도 바로 북극이다.
"북극을 여행하던 4, 5년 동안 이 두 가지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한 기억은 시간을 초월한 듯 빛에 가득 찬 숭고한 순수성과 침해받지 않은 대지 본래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다. 다른 하나, 엇나가버린 그 꿈은 북극이라는 단어에 서려 있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인간의 오랜 투쟁을 상기시켰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인간의 욕망과 목표도 바람이나 외톨이 동물, 돌투성이의 환한 들판과 툰드라만큼이나 이 대지의 일부분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대지는 이 모든 것과 동떨어져 스스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p.18~p.19 '서문' 중에서)
유려한 문체와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독자로부터 쉽게 외면받았을지도 모른다.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지만 본문만 500쪽이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듯 보이기 때문이다. 시적인 표현과 각각의 장이 갖는 완결성, 장과 장 사이의 긴밀한 연결성이 없었더라면 책이 갖는 가치를 차치하고서라도 나 역시 완독을 포기하고 말았을 듯하다. 학술적 가치는 크지만 표현이 매끄럽지 않은 책은 사실 웬만한 인내력으론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저자의 생생한 현장 경험이 문장의 생명력을 더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게다가 서구인들의 욕망으로 인한 북극 생태계의 파괴를 그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동식물과 원주민들의 특별한 삶과 대비시킴으로써 극적 효과를 살리는 듯하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화성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던 북극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변화하고 있음을 책을 읽는 독자들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찾아 헤매고, 결국 찾아내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땅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깊고도 드문 아름다움의 한쪽 끝은 복잡한 역설과 다른 존재들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p.536)
나는 작가가 써 내려간 한 문장 한 문장의 글에 매번 감탄하며 읽었다. 그와 같은 감탄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우리 주변을 감싸는 모든 동식물, 심지어 하늘과 구름, 물과 흙 등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환경에 조응하고 그 미세한 언어를 자신의 몸을 통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작가가 지녀야 할 선행 조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진 인간의 지나친 오만은 작가로서의 능력마저 점차 앗아가고 있는 듯하다.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은 오늘, 나는 법정 스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그립다. 어떤 책을 읽으면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