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한 시각에 아침이 오고, 낮고 부드러운 봄 햇살이 창문을 두드리는 주일의 아침. 게으름이 둥둥 떠다니는 이 방의 주인은 일어날 줄 모르고 코끝을 간질이는 봄꽃 향기에 놀라 기지개를 켜며 늦은 아침을 맞는다. 몸만 빠져나온 침구를 정리하고,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보고, 미련이 남은 듯 다시 한번 하품을 한다. 시나브로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자욱하던 황사 먼지는 완전히 사라져 화사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막 벚꽃이 피는데 겨우 하루가 남은 3월.


총선이 멀지 않았다. 사전투표를 생각하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은 셈이다. 진보, 보수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서 많이 듣게 되는 말이 있다. '경제가 이 모양인데 국민의힘을 찍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지요. 똑바른 정신으로 우째 국민의힘을 찍겠어요?' 하는 말. 망가진 게 어디 경제에 국한되는 것일까마는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정 시스템 전반이 무너졌는데 그에 대한 반성도, 앞으로의 대책도 없다는 데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3년도 가기 전에 나라가 망할 거라는 우려가 온 나라, 전체 국민의 가슴에 팽배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는 건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산골 무지렁이나 할 짓이 아닌가.


어제는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한 명과 점심을 같이 했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IMF 외환위기 때만 하더라도 약국 매출은 더없이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아파도 약 사 먹을 돈도 없는지 약국 매출마저 떨어지고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빈 상가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견디다 견디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떠난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살 만하다는 전문직 종사자들도 이렇듯 죽는소리를 하는데 맨몸뚱아리 하나로 세파와 맞서 싸워나가야 하는 사람들은 작금의 상황이 얼마나 막막할까. 이런 사정도 모른 채 대통령이라는 자는 대파 한 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헛소리나 하고 있고...


철학자 서동욱의 저서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를 읽고 있다. 재미있는 책이다. 책에 있는 한 구절을 옮겨 본다..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못 참으며, 특히 자신이 진실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이야기할 자유(즉 철학함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가장 못 참는다. 이런 자연적인 자유를 국가가 침해하려 할 때 국가는 자유의 침해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안녕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둘 때 얻어질 수 있다. '국가의 목적은 자유이다.' 이것이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에 담긴 핵심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이다."  (p.147~p.148)


'MBC는 잘 들어'라면서 언론인에 대한 군부 독재 시절의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했던 황 모 씨가 떠오른다. 언론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지 17세기의 철학자도 알던 사실을 400년이나 지난 21세기의 그는 왜 몰랐을까. 그렇게 하면 국가가 전복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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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4-04-0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타가 있네요. 대파 한 단이 아니라 한 뿌리에 875원입니다.
- 범죄 심리 전문가 프로˝파˝일러 올림 -

꼼쥐 2024-04-03 16:28   좋아요 1 | URL
ㅎㅎ 그렇군요.
잉크냄새 님 덕분에 프로파일러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알고 보니 프로‘파‘일러는 파 전문가인 듯.
 
북극을 꿈꾸다 - 빛과 얼음의 땅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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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어떤 책은 다 읽고 나면 생각지도 못한 얼굴 하나가 문득 떠오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때론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할머니일 수도 있으며, 갑자기 세상을 떠난 가까웠던 친구의 얼굴일 수도 있다. 이따금 일면식도 없었던 엉뚱한 사람일 수도 있다. 배리 로페즈의 저서 <북극을 꿈꾸다>를 다 읽었을 때도 그랬다. 내게 떠올랐던 얼굴은 법정 스님. 2010년 열반에 드신 법정 스님의 얼굴을 떠올렸던 데에는 까닭이 있을지도 모른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드신 직후, 한동안 마음이 허전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나는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에 나와 있는 책들을 구해 읽기 시작했고, 한동안 나는 스님의 추천 도서 외의 어떤 다른 책도 읽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님이 권하는 대부분의 책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법정 스님이 권하는 추천 도서에 빠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스님의 철학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스님의 주장은 일관되게 우리가 사는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의 일부분인 우리도 자연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레이그루크의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도 그때 읽은 책이었다. 일본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에세이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를 읽었을 때에도 나는 법정 스님의 얼굴을 문득 떠올렸었다. 스님이 살아계셨더라면 어쩌면 자연주의 작가 배리 로페즈의 저서 <북극을 꿈꾸다>를 추천도서 목록 제일 윗자리에 올려놓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스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비가 온다고 생각했다가 흰기러기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시 잠들었던 그날 밤, 나는 머리 바로 위에서 녀석들이 야간 비행을 하며 내는 공기를 두드리는 듯한 요란한 날갯짓 소리도 들었다. 이런 태고의 소리들을 들으면 클래머스 강 유역은 매년 돌아오는 동물들이 다스리는, 기이할 정도로 인적 없는 오랜 동물들의 영토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기러기 떼 근처에서 며칠을 보내면서도 침입자가 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는 새가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평온함을 느꼈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나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들의 어렴풋한 실체를 감지했다. 자연과 공간의 범위, 창공에서 내려오는 빛, 마치 물처럼 현재로 고여드는 시간."  (p.224)


55년이 넘는 동안, 북극을 포함해, 초원, 사막, 섬 등 80여 개 나라를 탐사하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펴낸 저자는 2020년 75세의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온 인생을 걸고 자연과 인간의 잃어버린 유대를 복원하기 위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북극은 나와 별 상관도 없는 동토, 눈과 얼음밖에 없는 공허의 황무지였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북극을 꿈꾸다>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북극은 지상 최대의 육식 동물인 북극곰이 2만 마리 이상 서식하고 있고, 279종에 달하는 철새 수백만 마리가 짧은 여름 북극에서 번식하는 곳이다. 7월에는 다년생 식물의 꽃도 피고 곤충류도 번식하며,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에는 모기도 있다. 대형 초식동물인 사향소, 야생 순록인 카리부, 1천 km 이상의 장거리를 이동하며 사는 북극여우가 있고 바다에는 바다표범, 바다코끼리, 고래가 서식하는 곳도 바로 북극이다.


"북극을 여행하던 4, 5년 동안 이 두 가지 기억이 자주 떠올랐다. 한 기억은 시간을 초월한 듯 빛에 가득 찬 숭고한 순수성과 침해받지 않은 대지 본래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었다. 다른 하나, 엇나가버린 그 꿈은 북극이라는 단어에 서려 있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인간의 오랜 투쟁을 상기시켰다. 여행을 하면서 나는 인간의 욕망과 목표도 바람이나 외톨이 동물, 돌투성이의 환한 들판과 툰드라만큼이나 이 대지의 일부분임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대지는 이 모든 것과 동떨어져 스스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p.18~p.19 '서문' 중에서)


유려한 문체와 작가의 탁월한 문장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 책은 독자로부터 쉽게 외면받았을지도 모른다. 총 아홉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지만 본문만 500쪽이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어낼 수 있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듯 보이기 때문이다. 시적인 표현과 각각의 장이 갖는 완결성, 장과 장 사이의 긴밀한 연결성이 없었더라면 책이 갖는 가치를 차치하고서라도 나 역시 완독을 포기하고 말았을 듯하다. 학술적 가치는 크지만 표현이 매끄럽지 않은 책은 사실 웬만한 인내력으론 버티기 힘든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저자의 생생한 현장 경험이 문장의 생명력을 더하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게다가 서구인들의 욕망으로 인한 북극 생태계의 파괴를 그곳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는 동식물과 원주민들의 특별한 삶과 대비시킴으로써 극적 효과를 살리는 듯하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화성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졌던 북극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변화하고 있음을 책을 읽는 독자들은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나는 사람들이 찾아 헤매고, 결국 찾아내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땅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깊고도 드문 아름다움의 한쪽 끝은 복잡한 역설과 다른 존재들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p.536)


나는 작가가 써 내려간 한 문장 한 문장의 글에 매번 감탄하며 읽었다. 그와 같은 감탄은 책을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우리 주변을 감싸는 모든 동식물, 심지어 하늘과 구름, 물과 흙 등 무생물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모든 환경에 조응하고 그 미세한 언어를 자신의 몸을 통하여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작가가 지녀야 할 선행 조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관심이 없어진 인간의 지나친 오만은 작가로서의 능력마저 점차 앗아가고 있는 듯하다. 미세먼지가 전국을 뒤덮은 오늘, 나는 법정 스님의 청아한 목소리가 그립다. 어떤 책을 읽으면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오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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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스러운 게 어디 봄 날씨뿐일까마는 창밖에는 여전히 추적추적 봄비가 내린다. 잎도 나지 않은 잿빛 가지 위에 촛불을 닮은 흰 목련 봉오리가 이제나저제나 개화의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 비는 그치지 않고 하마 핀 산수유꽃의 노란 그림자가 봄비 속에서 소리도 없이 지워진다. 그렇게 며칠 남지 않은 3월도 아쉽게 흐른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시간의 굴레 속에서 '나는 이쯤에서 작별을 고한다'며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겨울의 잔상들. 성긴 빗발의 발치에는 물웅덩이가 고이고 수면 위로 번지는 물동그라미의 파장을 따라 그리움의 물결이 너울지듯 인다.


 총선도 멀지 않았다. 현 정권 들어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몇몇 글을 블로그에 올렸더니 내가 야당의 당원이거나 관련자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지금껏 어느 당이건 당원으로 가입한 적이 없다. 사실 정부 정책에 불만이 있거나 자신의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과 비슷한 정당에 가입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매우 비겁한 처신일지도 모른다. 혹자는 말하길 정당에 가입하여 권리당원으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은 현재의 정치 상황에 대해 비판할 자격도 없다고 한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 행적은 어떤 해명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정치 성향에 있어 중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80%의 보수와 20% 혹은 그 이하의 진보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옳다.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당 역시 온건 보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현 정권은 극우 보수 세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보수 축에도 속하지 않는 일베 수준의 인사들이 행정 권력을 잡고 있지만 말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혹은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내 주변에도 정부를 지지하는 몇몇 인물들이 있다. 그들을 분류하자면 이렇다.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음에도 더 많은 부를 획득하기 위해 정부를 지지하는 극단적 이기주의자들, 부자는 아니지만 종교적 신념에 의한 맹목적 추종자들, 박정희 시대의 세뇌와 학습에 의해 형성된 과거의 가치관을 변경하려 들지 않는 과거 회귀형 인간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스스로의 능력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인지 부조화형 인간들이 그들이다. 혹여라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디에 속하는 인간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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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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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적으로든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 사람들의 의견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구체적으로 검증된 바는 없지만 독서가 유익하다는 데 우리 모두가 잠정적으로 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믿는 바를 꿋꿋이 실천하면 되는데 독서라는 특정 행위에 있어서 만큼은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듯하다. 대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독서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독서가 좋은 줄은 알지만 자신의 여건상 못하고 있을 뿐이라는 변명. 자신도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꾸준히 독서를 할 계획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아일랜드의 소설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오르곤 한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무슨무슨 독서법'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독서 관련 서적이 시중에는 꽤 많이 유통되고 있다. 독서가 좋은 줄은 알지만 책을 읽지는 않는 많은 '독서 주변인'들을 위해 또다시 책이 발간되는 이 웃지 못할 상황이라니. 책을 읽지도 않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니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이냐고 어이없어하겠지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현실인 걸 어쩌겠나. 사실 '무슨무슨 독서법'이라는 제목의 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독서 주변인을 위한 안내서'가 아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책을 더 좋아하도록 만드는 책이라고 말하는 게 옳다.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책을 읽고 잇는 그 긴 시간인 것입니다."  (p.58)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저서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의 부제는 '이동진 독서법'이다. 독서를 실천하기 위한 어떤 특별한 묘책이나 독서에 이르는 지름길이 있을 리 없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독서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구입하고, 몇 장 읽다가 책장에 꽂아 놓은 채 책등이 하얗게 변색되는 먼 훗날의 어느 순간까지 책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물론 저자는 책을 완독하지 않아도 된다고 부드럽게 말하고 있지만.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1부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2부 대화 '읽었고, 읽고, 읽을 것이다' 3부 목록 '이동진 추천도서 500'으로 구성된 이 책은 사실 독서에 관한 작가의 주관적인 생각이나 나름의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2부에서는 '씨네 21'의 이다혜 기자와의 책에 관한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세상에는 책을 읽지 않고도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있으니, 독서와 글쓰기가 정비례는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는 비례하는 것 같아요. 그 예 중 하나가 저이기도 해요. 제가 글을 쓰고 말해서 먹고살잖아요. 타고난 측면이 없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노력한 측면이 있단 말이에요. 하지만 옛날 글과 지금 글을 내 기준으로 봤을 때는 차이가 커요. 지금이 그나마 예전보다 나은 것 같다고 느끼는데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는 타고난 부분에서는 차이가 없을 것 아니에요. 더 나아졌다면 그것은 학습한 부분이나 후천적인 결과 아니겠어요. 많이 쓰기도 했지만 많이 읽기도 했거든요."  (p.157)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나의 아들 역시 책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한다는 건 우리나라처럼 교육열이 높은 국가에서는 다방면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글짓기 대회에서 수상을 한 적도 많지만 어느 시점부터 영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아들은 릭 라이어던이나 스튜어드 깁스 등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영어 학원도 다니지 않았는데 고등학교 영어 시험에서 늘 상위권을 유지했다. 국어 시험도 다르지 않았다. 늘 잠만 잔다며 할머니로부터 핀잔을 달고 살았으면서도. 그러던 아들은 군 입대를 위해 올해 2월 초에 본 토익 시험에서 만점을 받기도 했다. 유학 한 번 다녀온 적 없는 아들이 말이다.


이동진 작가는 책에서 '독서는 습관'이라고 썼다. 맞는 말이다. 나와 아내도 아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는 잠들기 전에 한두 시간씩 늘 책을 읽어주었고,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하던 초등학교 시절의 주말에는 언제나 집에서 가까운 대형서점을 방문하여 온종일 함께 책을 읽곤 했다. 읽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고르도록 일절 간섭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걸 보면 신기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독서력' 그러니까 책을 읽는 능력이라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는 데에도 근력과 경험이 필요하고 그것은 습관과 시간으로 길러집니다. 이 독서력을 굳이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포물선이 아니라 계단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서서히 올라간다기보다는 단계가 있는 거죠. 그리고 단계를 올리는 계기는 어려운 책을 읽어낸 경험일 확률이 높습니다."  (p.67)


집에 머무르기보다는 들로 산으로 여행을 하기 좋은 계절이다.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 나의 아들 역시 지금 광주를 거쳐 여수로 여행 중에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생의 일정 시점에서는 좋은 습관을 들이기 위한 반복의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을 평생의 업으로 삼을 게 아니라면 말이다. 혹은 삼겹살 굽는 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추천할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활동하기에 좋은 날씨, 곱게 핀 봄꽃들이 우리를 밖으로 밖으로 유혹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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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이면 한결같이 '드디어 한 주가 다 갔군' 하는 생각과 '벌써 한 주가 다 지나가다니' 하는 상반된 생각이 동시에 들곤 한다. 이런 상반된 생각이나 감정이 동시에 드는 경우는 우리의 경험에서 극히 예외적인 것이어서 때로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묘한 기분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이란 워낙 간사한 동물인지라 기분에 따라서 어떤 생각이든 제 마음대로 바꾸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상반되는 생각을 동시에 갖는다는 건 꽤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주말 휴일이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 비가 갠 아침의 등산로는 적당히 부드러웠다. 젖은 낙엽에서 풍겨 오는 구수한 내음, 짙은 향기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나무의 몸 냄새 그리고 봄이 왔음을 알리는 푸성귀의 비린 냄새. 양지쪽 비탈에는 연분홍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나고 조팝나무의 여린 잎들이 초록으로 물들고 있었다. 비나 눈이 유난스럽게 잦았던 지난겨울. 싱싱하게 솟아나는 여린 생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마저도 감사할 일이지만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예년에 비해 작황이 부진하다는 어젯밤 뉴스가 불현듯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가 오름세가 한동안 또 지속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가슴 한켠을 저릿하게 눌러왔다.


등산로를 따라 더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길은 원래의 등산로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길도 없는 길섶으로 들어서고, 이를 목격한 다른 또 누군가가 그 뒤를 따르고... 그렇게 만들어진 샛길은 지름길을 원하는 등산객들의 숱한 발길에 다져지고 다져져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길'이라는 형태를 띠기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인간에게는 하나의 길일 뿐이지만 숲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아 살아가는 동식물들에게 있어 길이란 인간들에 의해 자신의 동료가 죽고, 앞으로도 죽어갈 처절한 패배의 현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끝없이 산을 깎고, 건물을 짓고, 길을 낸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분명 철거해야 할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일 뿐인데... 그 골칫덩어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오늘도 매연을 펑펑 내뿜는 중장비를 굴리고, 자재를 지키기 위해 밤새 조명을 밝힌다.


하얀 얼룩이 진 배롱나무의 껍질이 얼마나 매끄럽고 고운지, 헤라클레스의 깊게 굴곡진 근육처럼 툭툭 불거진 참나무의 껍질이 얼마나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3월도 다 가지 않았는데 한낮에는 벌써 초여름 날씨처럼 기온이 오른다. 날씨가 정말 하루가 다르게 극과 극으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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