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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 Andersen, Memory of sentences (양장) - 선과 악, 현실과 동화를 넘나드는 인간 본성
박예진 엮음,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 / 센텐스 / 2024년 5월
평점 :
'아이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말보다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자신의 인생을 반전시키는 계기가 되는 데는 어떤 유명인사의 말도 있겠지만 자신이 존경하는 어떤 인물, 즉 '롤 모델'의 역할이 크다. 그런 까닭에 누군가를 감화시키는 말보다는 모범이 될 만한 누군가의 행동, 더 나아가 자신의 직접적인 체험이 각자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는 셈이다. 백 번의 말보다는 열 번의 시범이, 열 번의 시범보다는 단 한 번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모범이 되는 행동을 선보이는 훌륭한 부모를 가졌을 리 만무하고, 인생의 목표를 세울 만한 감동적인 체험을 할 기회가 모든 아이들에게 주어질 리도 만무하다. 그러므로 시간이 더디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할지라도 누군가의 말에 의한 교육은 비교적 공평하고, 개인이 노력만 한다면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겠다.
"안데르센은 특히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들을 여러 편의 동화로 발표했습니다. 어쩌면 어린 나이에 많은 상처를 받은 만큼, 다른 아이들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교훈을 주고자 그런 잔혹동화를 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아이가 이런 잔혹동화 속 숨은 의미를 알기를 원치 않을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 가며 다시 부모가 된 뒤에야 잔혹동화 속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을 깨닫게 되겠지요. 어쩌면 이마저도 인생의 풍파를 다 겪은 후에서야 동화 속 주인공들이 현실에서도 똑같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요. 그게 우리들의 인생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p.12~p.13 '프롤로그' 중에서)
북 큐레이터이자 고전문학 번역가인 박예진 작가가 쓴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은 Part. 1 '인간을 파멸시킨 욕망 잔혹동화', Part. 2 '목숨과 맞바꾼 사랑 잔혹동화', Part. 3 '환상 속으로 빠져드는 마법 잔혹동화', Part. 4 '사유에 묻히게 하는 철학 잔혹동화' 등 총 4부로 나누어 각 파트에 각각 네 편의 잔혹동화를 배치함으로써 전 세계에서 오늘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안데르센의 명작 열여섯 편이 등장한다. 책에는 제목만 들어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빨간 구두' 등도 있지만, '부시통'과 같은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동화도 실려 있다.
"sentence 280
Everything has its beauty, but not everyone sees it. The difference in appearance doesn't matter, as long as you have a good heart.
모든 것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만, 모두가 그것을 보지는 못하죠. 외모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으며, 훌륭한 마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해요." (p.221)
이 책은 어쩌면 이제 막 인생을 배우기 시작하는 어린아이에게 필요한 책은 아닐지도 모른다. 동화의 전체 스토리를 뚝 떼어 놓은 채 '인생 그 자체가 가장 훌륭한 동화이다.'라는 동화 속 문장을 이해하기에는 아이들의 인생 경험이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동화 속에 내재된 특별한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채 오직 재미 하나만으로도 안데르센의 동화에 한껏 빠져들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지닌 누군가가 그 시절을 회상하며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새기는 평화로운 시간을 갖게 하는 그런 풍경이 그려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은 다 자란 어른이 아이의 시점으로 되돌아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매개로 인생의 의미를 곰곰 되짚어보는 책인 셈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를 읽음으로써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찾고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겁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그의 동화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들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p.266~p.267 '에필로그' 중에서)
가난한 환경으로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했던 까닭에 꿈을 포기해야 했고, 양성애적 애정 문제로 인해서 실연의 상처를 오랫동안 안고 살아야 했던 안데르센. 불행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 경험들이 오히려 삶의 은유로 가득한 아름다운 동화를 탄생하게 하는 밑바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밑바닥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을 현혹하는 아름다운 것으로 포장된 삶의 진실을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세상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었던 인간의 욕심, 절제되지 않는 욕망, 쉽게 부서지는 인간의 허영심 등은 어른들에게 주는 안데르센의 따끔한 교훈인 셈이다. 나는 박예진 작가의 저서 <안데르센, 잔혹동화 속 문장의 기억>을 읽는 내내 안데르센으로부터 각성의 회초리를 맞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