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만 강의 - 태양 주위의 행성 운동에 관하여
데이비드 L. 구드스타인, 주디스 R. 구드스타인 지음, 강주상 옮김 / 한승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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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들어 KAIST 학생이 벌써 4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 인재 양성을 목표로 내세운 KAIST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육성하기는커녕 꽃도 피우지 못한 학생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형상이다.
그 안타까운 현실을 보면서도 일부의 사람들은 그 책임을 모두 학생의 나약함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세계 최고의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해도 좋다는 전체주의적 발상이 지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젊은 인재가 희생된 마당에 그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대책이라며 발표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이전투구의 모습은 정치판과 무엇이 다른가.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더이상의 부끄러운 모습만이라도 보이지 않았으면 싶다.
학문을 익히고 진리를 논하는 상아탑의 모습은 이제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다.  오직 취업과 성공이라는 모호한 가면을 쓴 무한경쟁의 악마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을 집어삼키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세계적인 물리학자 파인만에 관한 것이다.
아무리 심오한 개념이라도 초보 학생에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낼 수 있다고 늘 자랑하곤 했다는 파인만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학부 1,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물리학 개론을 강의할 때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강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강의는 후에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는데 과학자들에게 필독서로 알려진 고전이 되었다.

파인만은 그의 강의에서 평면기하학만을 이용하여 케플러의 타원 법칙을 증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미적분학, 미분방정식 등 고급 수학적 도구를 사용하여 증명하는 것과는 달리 고등학교 기하학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는 도식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학생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설명하는 입장이지만 그동안 강의 방법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쉽게 설명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쉬운 설명이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뿐더러, 설령 완벽한 지식을 갖춘 사람일지라도 학생들의 입장에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그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기발한 생각과 행동으로 유명했던 천재 물리학자는 책을 읽는 후학들에게 가르침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더불어 그의 도식적 증명 방법은 정통적인 물리 강의가 아니므로 비전문가인 일반 대중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파인만의 개성과 천재성을 알게 되고 과학자의 위대한 업적을 이해하고 그 세계로 한발 다가서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리학자이면서 일반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을 꼽으라면 아마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아닐까 한다.  일반적으로 뉴턴,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물리학자들은 그의 업적보다는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할만한 일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일반 대중이 그들의 일화를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하여 그들이 이룬 학문적 업적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이 책에 등장하는 파인만도 다르지 않다.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나 <미스터 파인만>도 마찬가지로 파인만에 관한 책이지만, 이 책들은 파인만에 얽힌 일화들의 모음집이어서 학자로서의 위대함을 엿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은 파인만의 평면기하적 증명을 세밀히 보여줌으로써 일반 독자가 물리학이라는 넘기 힘든 학문적 장벽을 제거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생명이 걸린 위암 수술을 앞두고도 자신의 병을 숨긴 채 학문적 열정을 불태웠던 천재 물리학자는 가르치는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가 일깨워 준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로 하여금 아는 것의 즐거움, 지적 탐험의 열정을 일깨우는 일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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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네스와 마르타의 특별한 식탁
베른트 슈뢰더 지음, 박규호 옮김 / 제이앤북(JNBOOK)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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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몇 번이고 멈추어 섰다.
끝까지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포켓북 형식의 아담한 책이 그렇게 커보일 수 없었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놀람으로, 나를 꼭 빼다 박은 주인공의 일상에 속이 불편하다. 

이 소설은 한편의 연극과도 같다.
물론 이 책을 원작으로한 연극이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가을에 상연되었었다.  어머니 마르타 역에 연극인 이주실이 열연을 해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각색한 것이었지만 원작의 주제는 선명히 살아 있었다.  
소설은 아들 요하네스와 어머니 마르타의 상황과 대사를 간결한 문체로, 마치 시나리오의 씬 넘버에 따른 장면 전환처럼 배열하고 있다.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많은 라디오 방송극과 TV 방송극을 썼고,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방송상인 아돌프 그리메상(1986)과 독일 영화제 각본상(1992)을 수상하기도 했던 작가의 이력이 빛을 발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버림받고 직장에서도 쫓겨난 아들은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은 실패한 인생이다.  여러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은 마지막 여인 리사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자 설상가상으로 회사로부터 브라질로의 전출을 통보받는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아들은 재능있고 전도 유망한 누나의 빛에 가려 어머니의 사랑에서 소외된 채 자랐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운명의 아들은 여러 여인들과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급기야 회사로부터 전출 통보를 받았을 때 외아들인 그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20년이 넘게 혼자 살아왔지만 이제는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늙은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새롭게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며 제2의 청춘을 구가했지만 시간의 위력 앞에 마침내 꺾이고 말았다.  아버지의 성격을 꼭 닮은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밖으로만 떠돌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이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전도유망한 딸이 가수 데뷔와 함께 자살을 하자 그녀의 기억은 그 순간에서 멈춘다.   자신의 집안 곳곳에 딸의 사진을 걸어 두고 쓸쓸한 노년을 견딘다.
 
 두 사람 모두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서로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제껏 단 한번도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는 마냥  피하고만 싶은 현실이자, 달아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돌봐달라고 요구할 수 없음을 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늘 싸움으로 끝나는 모자간의 대화.  그들의 간극은 넓어 보였다.아들은 어머니 곁을 떠나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안다.  자신에게 이제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는 밀고 당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답게 갖은 속임수의 수작이 다 동원된다.

나는 이 소설을 유쾌한 희극의 한 장면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십수 년째 병원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와 홀로 늙어가시는 어머니.  그리고 부양의 의무로부터 늘 가벼워지고 싶은 우리 형제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누나들과의 내재된 갈등.
소설 속의 아들 요하네스는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마음은 있으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살뜰히 건네본 적이 없는 나는 깊은 자책과 함께 이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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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헤르만 헤세 지음, 김지선 옮김 / 뜨인돌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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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만한 문학의 거장치고 독서에 있어 달인의 경지에 오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만은 헤르만 헤세의 폭넓은 독서와 그로부터 얻은 다양한 지식은 독자로 하여금 경외마저 들게 한다.  이사를 앞두고, 수천 권의 책이 들어찬 서재를 정리하는 데만 무려 8일이 걸렸을 정도라는 헤세의 책 사랑은 유별나다.  그것은 어쩌면 이 책의 도입부에서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책의 세계다" 라는 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서, ’책사랑’이 단순한 애정을 넘어, ’경외심’에 가까운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헤세의 수많은 에세이 가운데 책과 독서에 관한 것만을 골라 편집한 책이다. 원서에는 모두 63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었다고 하나, 그 중 24편만이 이 책에 실렸다.  동서양의 책을 두루 읽어 사고의 깊이를 더했던 그임에도 번역되지 않은 책에 대한 허기와 갈증을 피력하는 모습은 나와 같은 게으른 독자를 부끄럽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번역한 김지선님이 고맙고 감사하다.  독일어 원본을 보지는 못하였지만 번역본으로도 글의 흐름에 끊김이 없을 뿐 아니라 어휘 선택에도 공을 들인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책이란 무책임한 인간을 더 무책임하게 만들려고 있는 것이 아니며, 삶에 무능한 사람에게 대리만족으로서의 허위의 삶을 헐값에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에게 불꽃같은 에너지와 젊음을 맛보게 해주지 못하고 신선한 활력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면, 독서에 바친 시간은 전부 허탕이다."  (P.10)

책을 읽을 때는 온 힘을 기울여 주의를 집중하고 책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적극적으로 몸을 맡기고 함께 겪고자 하는 뜻이 없다면, 불량독자라고 헤세는 말한다.  즉 다독보다는 정독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는 독서와 글쓰기, 문학 비평과 시, 작가와 문학 사조, 독서와 장서, 예술가와 정신분석 등 저자가 문학 전반에 대해 느끼고 생각했던 바를 해박한 지식으로 논하고 있다.  구구절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그의 독서체험에 바탕을 둔 세계문학 도서목록은 동서양 고전을 망라한다. 첫 단추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 가장 오래 간다’는 정신사의 원칙에 따라 성서, 우파니샤드를 간추린 < 베단타 > , 불경, < 길가메시 > 서사시, < 논어 > , < 도덕경 > 등에다 장자의 우화 같은 ’인류가 보유한 문헌의 기본화음’들이 꿴다. 헤세는 목록작성에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 마음에 든다는 이유만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을 슬금슬금 끼워 넣는 일은 삼간다. 또한 ’세계문고’의 목록구성이 얼추 마무리되자 바로 검증과정을 거친다. 

 또한 헤세는 독자의 유형을 이렇게 분류한다.
먼저 말과 마부의 관계처럼 책은 이끌고 독자는 따라가는 순진한 독자.  이들은 작가의 파동을 함께 타고 그의 세계관에 온전히 동화되며, 작가가 자기 인물들에 부여한 해석 일체를 가감 없이 수용한다고 헤세는 말한다.
다음으로 책의 예술성, 언어, 작가의 소양과 정신성 등에 치중하고 이런 것들을 객관시하여 문학작품 최고 최종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교양계층 독자.  이들은 사냥꾼이 짐승의 자취를 더듬듯 작가를 추적하며, 미학적 가치 따위는 별 의미가 없고, 작가의 동요와 불안정성에 크게 매료된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는 이유가 교양을 쌓기 위함도, 재미를 얻기 위함도 아닌, 책을 읽는 목적이 작가의 눈을 빌려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서도, 또는 철학자의 이론을 수용하거나 비판하기 위해서 읽는 것도 아닌 유희적 독자.  이러한 독자는 어떤 책에 나온 멋진 구절이나 지혜와 진실이 담긴 말을 보면, 시험 삼아 한 번쯤 뒤집어보거나, 읽은 것을 타고 떠오르는 충동과 영감의 물결 속을 헤엄쳐 다니게 된다고 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린 시절 읽었던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 그리고 대학 시절에 읽었던 <싯다르타>는 내 독서의 이력에 작은 흔적으로 남았지만, 헤르만 헤세라는 그 이름은 내 머리 속에 크게 각인 되었었다.  자기 실현을 위한 노력을 한시도 쉬지 않았던 거장의 발자취.  그 지워지지 않는 책의 세계에 흠뻑 취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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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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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이후 베스트 셀러에 오르는 책을 보면 특이한 현상이 있다.
인기 작가나 외국 번안서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출판사의 의도된 판매 전략이라고 보아야 하겠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가독력이 떨어지는 어렵고 난해한 책이 상위에 랭크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것도 모자라, 수개월 동안 그 자리를 지킨 것만 봐도 그렇다.  철학 입문서라고 보기에는 결코 가볍게 읽혀질만한 책이 아님에도 독자들의 인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고, 최근에 장하준 교수의 이 책이 인기몰이를 이어가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 책은 물론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씌여진 자유 시장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서이자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에서 비롯된 세계적 금융 위기의 결과와 그 촉발 원인에서 보여지는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허술한 추측과 왜곡된 시각을 꼬집고 있는 책이다. 나아가 자본주의를 더 나은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해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대한 일반 대중의 이해를 돕고자 쓰여진 책이라고 저자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어쩌면 저자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자신의 권리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경제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익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나는 저자의 의도 또는 희망사항에 대한 의문으로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사실 개인의 정치 사회화 과정에서 확립되는 정치적 성향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게 통설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힘이나 권력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정치 지도자들, 혹은 권력자들은 이 책을 읽기나 했을까?  만일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읽었다고 가정할 때, 그들의 사고는 책을 읽기 전과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비록 그들이 유권자의 인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최종 판단의 순간이 오면 이 책에서도 여러번 다뤄지고 있는, 어쩌면 자본주의의 근간이 될 수도 있는 개인의 이기심에 따르지 않겠는가.

정치인이 아닌 일반 대중의 입장에 있는 독자는 또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읽었을까? 
자신이 어떤 이슈나 제도에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때가 아니면 실질적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제한적 권력자(일반 시민)인 대다수 국민은 이 책을 읽고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의 불만이 저자와 같은 지식인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만족감으로?  또는 최소한 이 정도의 지식은 있어야 한다는 지적 만족을 위해?  또는 읽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읽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기 위해?  또는 읽는 내내 '에이, 더러운 세상!'이라며 속으로만 맘껏 외칠 수 있었던 불만 해소용으로?  이도 저도 아니면 아무 책이나 읽어두면 언젠가 쓸모가 있겠지 하는 식의 지적 보험이라도 필요해서?  아니면 이제라도 사회의(또는 제도의) 어두운 이면을 보았으니 정치일선에 나서야겠다는 결심을 굳히려고?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얼치기 경제학도로서 이 책을 읽었지만 그 내용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차피 책은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하니 어떤 책을 많이 읽는지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의 자본주의 체제는 분명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의가 희박한 사회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이 어려운 책을 어떤 목적으로 읽었을지 지금도 몹시 궁금하다.  도대체 왜 읽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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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블루 - 언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김랑 글.사진 / 나무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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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에 맞춰 3박 4일의 크루즈 여행을 계획했었다.
가족 모두가 떠나는 여행인만큼 기대도 컸었다.  한동안 쓸 일이 없었던 여권도 다시 갱신하고, 7층의 발코니실로 예약을 마쳤다는 아내의 전화에 내일이라도 즉시 떠날 것처럼 설레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은 인터넷에서 우리가 탈 배와 여행 경로를 확인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다.  일본을 경유하여 중국을 돌아오는 해상 여행은 나로서도 처음이었으니 기대와 설렘은 아들에 못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본의 대지진 한방에 아들과 나의 들뜬 기대는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철옹성 같던 원전이 쓰나미에 휩쓸려 처참히 무너지듯, 한동안 우리 부자를 들뜨게 했던 여행 계획은 그렇게 무산되었다.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자신이 찾은 크루즈 여행 정보를 자랑스럽게 전해주던 아들의 목소리는 시든 화초처럼 생기를 잃었고, 내년에 다시 갈 수 있을 거라는 나의 위로도 별무효과였다.

크루즈 여행을 계획한 것은 장인어른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그 여행에 동행하지 못할까봐 꼭 가야 한다며 몇 번이고 다짐을 두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내실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발코니실이 좋겠다고 하신 것도 장인어른이었다.
그렇게 공들인 계획이 아무 성과도 없이 취소되자 당신은 어린 손자에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어차피 여행은 취소되었고 내게는 휑한 기분을 달래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래서 읽게 된 책이 <크로아티아 블루>였다.  많고 많은 여행기 중에 이 책이 유독 눈에 띈 까닭은 아마도 크루즈 여행 내내 기대했던 짙푸른 바다에 대한 아련한 동경이 아니었을까? 

"하늘과 바다가 한 치의 기울어짐도 없이 팽팽하게 맞선 그 시간 내내 나는 몸과 마음이 묶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긴장의 끈이 해가 기울자 느슨해졌고, 먼 바다의 반들반들한 빛이 점점 더 넓게 번지기 시작할 즈음, 나는 서둘러 자리를 털고 마른 몸을 일으켰다.  바다에 나갔던 요트들이 곧 금빛 융단을 끌고 오리라."  (P.190)

작가는 발칸반도에서 바라본 아드리아해의 푸른 바다와 오염되지 않은 크로아티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헤어진 옛여인에 대한 그리움처럼 더듬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지명을 따라 철썩이는 파도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새  아드리아해의 낙조를 등지고 파도 소리에 맞춰 일곱겹 드레스를 한겹한겹 벗는 이국의 여인이 떠오른다.

"붉은 사연을 안은 바람이 언덕을 미끄러져 하늘과 바다를 휘저으며 노닙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선명한 색의 향연, '맙소사'나 '눈이 시리다'는 표현은 이런 바다, 이런 하늘을 두고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언덕을 내려가는 동안 내 가슴은 쉴 새 없이 펄떡이고, 바람과 햇살에 아릿한 풍경도 위아래로 떨립니다.  고성 앞 투명한 해변에는 한 소녀가 햇살을 등에 업고 느릿느릿 책장을 넘깁니다."  (P.286)

이처럼 나른한 봄날 오후에 펄떡이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마음은 벌써 먼 나라의 낯선 항구로 향하고, 오수의 유혹에 무거워진 눈꺼풀은 하루 종일 중력과 드잡이질을 한다.  슬픈 하품에  눈물이 흐르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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