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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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대인 관계’가 아닐까 한다.  같은 종( 種)인 사람끼리 다른 동식물과의 관계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오직 인간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고 호불호를 결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듯이 어른과 어린 아이의 관계는 성인들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대체로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상대방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반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을테고, 내 속마음도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꺼려질 것이다.

대인 관계에 있어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고 보면 처세를 다루는 책이 하루가 멀다하고 출간되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야 하루에 만나는 사람도 적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거나 아주 가끔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크게 불안해 하거나 긴장할 일도 생기지 않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재벌의 총수쯤 된다면 사정은 매우 다를 것이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란 부제가 붙은 ‘후흑학’은 두꺼운 얼굴(면후·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心黑)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청말 이종오(李宗吾)의 기서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해설서다.  몇년전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측천무후 아래서 활약했던 악독한 관리 내준신이 지은 『나직경羅織經』(무고한 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기술을 담은 책)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 풀이한 책으로 중국인 작가 마수취안이 쓴 처세서이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나의 성정에 영 맞지 않아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중간에 책을 덮었었다.  우리가 알고있는 기존의 도덕률에 반기를 든 이러한 종류의 책은 자신의 감정을 속속들이 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일반인들에게는 내면적 갈등과 반감을 갖게 한다.  그때의 기억이 있었기에 이 책도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에 손에 잡은 책이니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도 함께 작동했다.  언제 써먹을지도 모르는 비기(秘技)라도 취할 양으로 다부지게 달라붙어 책을 읽노라니 내 모양이 참 우스웠다.

책의 구성은 <모략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흑학의 탄생 배경을 다루는 1부와 중국 역사에 있어 후흑의 대가를 다루는 2부, 후흑술의 기본 내용을 다루는 3부, 오늘날 우리에게 후흑학이 필요한 이유와 현실에서의 적용을 다루는 4부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 가독력을 높였다.

 지난해 여름 당직자 인선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기자간담회에서 “휴가기간 중 후흑론을 집중 공부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었다. 그가 후흑론을 얼마나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래시계 검사’는 1년 후 우리나라 여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후흑을 연마한 그가 얼마나 승승장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후흑학을 완성한 이종오가 ’후흑구국’을 기치로 내걸었듯이 후흑학의 요체는 역시 求國에 있다.  이종오의 후흑구국(厚黑救國)의 취지를 계승한 중국 수뇌부의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나 흑묘백묘론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 샤오핑의 책략 덕택에 G2의 자리에 오른 중국을 볼 때 정치 지도자의 능력과 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는 마땅히 지켜야 할 9가지 처세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반룡부봉(攀龍附鳳·훌륭한 사람에게 붙어 출세하다)하되 역린(逆鱗)을 조심하라,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하라,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정치 지도자 및 글로벌 기업의 고위직 임원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패거리 문화에서 탈피하여 자신과 생각이나 사상이 다르더라도 구국의 차원에서 능력만 있으면 과감히 기용하는 진정한 실용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직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중용되는 현 정부의 인사정책이나 기업의 악습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갖은 이유를 들어 해고시키는 케케묵은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낯짝만 두꺼워지고 마음만 검은 우리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후흑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목적의 정당성이지 그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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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의 마지막 3부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상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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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척척 묻어날 정도로 한가로이 책을 읽었던 것도 참 오랜만이다.
한동안 손에 책을 잡지 않았던 탓인지 마음은 금세 저 멀리 달아나고, 거듭 달아나려는 마음을 이리저리 돌려 세워 간신히 책에 집중해보지만 선잠 든 아가처럼 오래 가지 못한다.  가늘게 내리는 빗소리에도 시선을 빼앗기길 여러 번.  그렇게 어렵사리 읽은 책인데 가슴에 남은 귀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책만 가지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톨스토이의 마지막 저서인 이 위대한 책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극찬했던 솔제니친의 평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담긴 잠언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던 노작가 톨스토이가 들려 주는 말의 향연이요, 깨달음의 정수(精髓)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인 듯한 글귀들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서늘한 경건함을 느꼈다.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밝히 듯 인생의 손님들인 사랑, 행복, 신, 믿음, 삶, 죽음, 말, 행동, 진리, 거짓, 노동, 고통, 학문, 분노, 오만 등의 주제들이 반복되도록 씌어졌고, 이러한 반복성은 하루하루의 삶이 담아내는 의미들이 서로 연결성을 가지도록 배려하였으며, 모든 행동의 지침이 되는 총체적인 철학으로 완결성으로 끝을 맺고 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른 노작가는 병상에서나마 자신의 깨달음을 글로 남기는 것이 전 인류를 위한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 책은 인류에 대한 나 자신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다.  함께 읽는 독자들이 내가 책을 쓰면서, 또한 매일 반복해서 읽으면서 경험했던 감동과 흥분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한다."   (책의 서문)

 톨스토이는 자신의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삶의 진실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의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란 듯하다.  계단을 오르 듯 삶의 단계마다 꼭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지만 인생이 어찌 정해진 순서대로만 진행되던가.  때로는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나.  나처럼 우둔한 독자는 노작가의 명철한 가르침을 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두고두고 깨쳐 나갈 결심으로 작가에 대한 미안함을 덮는다.

"많은 책을 읽고 다 믿어버리는 것보다는 아무 책도 읽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책 한 권 읽지 않고서도 현명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쓰인 것을 다 믿는다면 바보가 되어 버린다."  (P.66)

장마의 끝무리에 만난 이 책은 흐린 하늘을 보면서도 청정한 사색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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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세뇌 - 당신이 의존하는 모든 나쁜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법
이소무라 다케시 지음, 이인애 옮김 / 더숲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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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흡연자라면 식사 후의 나른한 포만감과 함께 찾아 오는 담배 한 개피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식당이 금연으로 지정되어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회식 자리에서의 흡연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였고, 흡연자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기만 한다.  식당이나 커피숍은 말할 것도 없고 오픈된 공간인 공원에서도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는 가볍지 않은 벌금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비흡연자라면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지만 흡연자들에게는 낙원과 같았던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볼 때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를 외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불편이나 지탄의 눈총에도 흡연을 고집하는 데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흡연자이니 흡연자를 비호하거나 변명을 하기 위해 쓰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당장이라도 끊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흡연자의 고충도 비흡연자가 알았으면 한다.
나라고 금연을 결심하거나 실천하려고 단 한번도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아내가 약국에서 근무할 때 가져다 준 금연 패치도 붙여 보았고, 한방병원에서 금연침도 맞아보았으나 백방이 무효했다.  결국 나는 담배의 끈질긴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담배의 향이나 연기를 좋아했던 사람은 아마 없지 싶다.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그것이 담배의 트릭이란다.  담배를 처음 피우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구토나 어지럼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지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언제든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그닥 좋아하지도 않는 것이니 맘만 먹으면 언제든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고 나도 그랬다.  그것이 속임수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나는 담배를 좋아하기는커녕 지극히 혐오했었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은 열차 안에서건, 버스 안에서건 구애받지 않고 담배를 피웠다.  유난히 멀미가 심했던 나는 열차나 버스를 탈 때는 으레 옆좌석에 앉은 사람의 인상을 살피곤 했다.  담배에 찌든 중년의 남성이 옆에 앉으면 슬그머니 일어나 다른 곳으로 옮겨 앉았고, 담배 연기로부터 안전한 다른 자리가 없으면 내내 서서 가기도 했었다. 

이 책은 담배를 비롯한 알코올, 다이어트, 인터넷게임, 섹스, 일 중독, 사이비종교 등으로 세뇌된 마음을 분석하고 이러한 의존증을 치료하기 위해 씌여진 것이지만 본인의 의지와 실천을 강조하는 기존의 책들과는 구별된다.  언젠가 나는 블로그에서 "생각의 오류"라는 제목으로 중독에 대해 짧게 썼었다.  그 때의 글을 옮겨보면 이렇다.  "  중독은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우리는 중독이 좋아하는 대상으로 끌리는 현상이라 이해한다.  중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끊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그때 나는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갖고 쓴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의 내용과 일견 상통하는 면이 있어 옮겨본 것이다.  저자는 의존증에 대한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깨닫는 것만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한다.

"직접적인 공포와 얼마간의 쾌락이 이어지는 보상의 이중구조, 그리고 변성의식 상태에 따른 정신적 영향이야말로 세뇌나 의존증에 지배당하는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이중세뇌’구조다."  (P.93)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고 싶어질까? 답은 ’아니요’다.  요컨대 ’본래 인간에게는 담배에 대한 욕구가 없다’라는 얘기다.  욕구 때문에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니라 담배 때문에 욕구가 생겨난 것이다.  즉 담배에 대한 욕구란 담배 자체가 만들어낸 것이다."  (P.87)

담배를 피움으로써 얻는 도파민이나   알파(α)파는 이것들을 생성하는 신체의 신경을 마비시켜 신체적 의존과 심리적 의존을 가중시킨다고 한다.  하지만 담배를 끊으면 신경이 서서히 회복되어  α파가 증가하고 도파민도 늘어난다.  그러면 행복을 느끼기 쉬워지며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힘이 회복되며, 결과적으로는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담배를 끊는 획기적인 방법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의존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하에 의존증에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를 정확히 인지함으로써 의존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결심과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저자는 판단한다.  이른바 ’깨달음의 치료’인 것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흡연자, 더 나아가서 모든 의존증 환자라면 꼭 읽어야할 좋은 책이다.
이제는 정말 금연을 실천할 때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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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개의 전통
랠프 네이더 지음, 정영목 옮김 / 재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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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고 더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부모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만큼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그의(또는 그녀의) 삶을 관통하여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고 내가 사는 동네의 아이들에게 약간의 지식을 전달하는 보조자의 입장이다 보니 부모의 역할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부모가 아이를 또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부모, 또는 좋은 자녀가 되려고 더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동네의 가난한 집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면서 그들의 가정환경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차라리 부모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들의 부모가 친권을 포기한다면 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잘 성장할 수 있을텐데 하는 극단적인 안타까움을 느낀 적도 많았다.  아이들이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그들의 잘못도 아닌데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부모로 인해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를 받는다면 너무나 부당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가 좋은 부모의 표본이라거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모두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랠프 네이더는 미국에서 태어난 레바논 이민 2세대로서 지난 40년간 미국의 소비자-시민운동을 이끌어온 저명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저자가 40여 년간 미국 소비자―시민의 대변인으로서 정부와 대기업의 부정, 부패를 폭로하고 각종 세제 개혁과 핵 규제, 소비자를 위한 법률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00여 개가 넘는 시민 단체를 조직, 설립하는 등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윈스테드의 아름다운 자연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전통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거의 백년을 살았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 바탕을 둔 통찰과 지혜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젊었다.  늘 "흥미를 느끼고 또 흥미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머니의 확고한 믿음을 실제로 생활 속에서 체현했기 때문이다.  ...... 우리의 부모가 가족의 기초를 굳건하게 닦아 놓은 덕분에 우리는 그것을 발판으로 더 넓은 세계로 힘차게 나아가 높은 기대감을 갖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P.14)

랠프 네이더는 이 책 <열일곱 개의 전통>을 통해 코네티컷 주 윈스테드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자라났던 유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다양한 일화를 통해 부모가 자신에게 물려주려 노력했던 각종 전통의 핵심적인 내용을 열일곱 개로 요약한다.  우리는 가끔 ’엄친아’로 길러 낸 어느 부모의 교육 비결을 언론 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된다.  그 중 빠지지 않고 읽게 되는 것은 부모의 모범과 확고한 원칙이다.  어쩌면 좋은 부모는 부모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점점 많은 가족이 자신의 책임 - 아이들을 먹이고 즐겁게 해 주고, 교육하고 자문해 주고, 매일 돌보고 충고해 주는 일 - 을 상업적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맡겨 버린다.  ’가족 산업’은 미국 경제에서 급속하게 현실적인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부모는 점점 ’전문가’의 도움 없이 결정을 내리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잃는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우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역할을 잠식하면서, 아이들은 부모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가장 중요한 전통들은 중단되고 만다."   (P.198)   

저자는 자신의 유년의 정신적 풍경을 '강한 모범과 분명한 경계, 목격과 존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의 사랑과 희생의 힘이 지배하는 분위기'라고 묘사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부모를 떠올릴 때마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저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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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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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과 딱 들어맞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 발행되는 책의 권수로만 따져도 1억권이 넘으니 그 많은 책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책을 고른다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그동안 꾸준히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정리가 되지 않았던, 안개에 묻혀 희미한 의식으로만 살아있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에 더하여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게 <블랙 스완>은 그런 책이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발하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전업 투자자로 살았었다.  운이 좋았는지 나는 많지 않은 투자 원금에서 발생하는 수익만으로도 생활비와 저축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이 흘렀고,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거래를 마치고 다음날 거래할 종목의 챠트 분석까지 끝낸 후 동료들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습관처럼 TV를 켰다.

그때 화면에서 속보로 전해지던 쌍둥이 빌딩의 폭파 장면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내가 샀던 종목의 주가가 다음날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고민보다는 폭파 장면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3시간이나 늦게 열린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하한가 일색이었다.  나 또한 내가 보유했던 모든 주식을 하한가에 던졌다.  그중 일부만 매도가 체결되었고 대부분의 주식을 울며 겨자먹기로 다음날까지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도 상황은 그닥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주식을 팔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었고, 호가창에는 매도 물량이 넘쳐났다.  그 상황에서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내 주식을 누군가가 사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불과 이틀만에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손실을 보고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나는 매월 주식 거래를 통하여 얻은 이익은 생활비와 저축으로 돌려왔었고, 그때 투자 원금으로 남아있었던 돈은 수익금의 일부였다.

나는 증권계좌를 모두 정리하고 주식시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큰 사건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와 같은 상황이 재발했을 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할테고 수익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무능한 시세 추종자로 남기는 싫었다.  그리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증권사에 근무하던 대학 동기가 선물,옵션을 공부해보라며 자신의 책을 택배로 보냈다.  나는 그저 배워두면 손해날 것도 없겠다 싶어 틈틈이 책을 읽었고, 친구의 권유로 선물,옵션 거래를 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의 거래가 일반 주식의 거래에서 얻은 수익보다 몇 배나 높았다는 사실을 보며 많이 놀랐었다.

상,하한가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일반 주식시장과 달리 그런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고위험군 선물,옵션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보의 취합이나 성실한 챠트의 분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불합리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때 내가 품었던 의문은 지금까지 이어졌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9.11 테러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저자는 '블랙 스완'이라고 지칭하며 왜 인간은 그런 불확실하고 돌발적인 사건의 예측에 취약할 수밖에(어쩌면 예측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극심한 충격을 주는 이러한 극단적 사건은 과거의 경험으로도 결코 추론할 수 없음을 저자는 조목조목 짚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근심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한다.  즉,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위험만을 인지하고 오직 그것을 걱정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일상적 화제 바깥에 도사린 문제, 즉 검은 백조의 출현은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경험적 회의론자인 저자의 견해는 우연성이 개입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낯설고 생뚱맞은 이론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피할 수 없는 '블랙 스완'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니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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