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멈춰라! - 자율적 공생을 위한 도구, 이반 일리치 전집 4
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 옮김 / 미토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과학과 기술이 만든 문제는 한 단계 심오한 과학과 더 나은 기술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행처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관리를 해결하는 법은 더 적극적이고 더 많은 양의 관리라고 여긴다. 이는 마치 오염된 강을 치료하는 길은 더 비싸고 강력한 청정합성세제를 사용하는데 있다고 결론 짓는 것과 같다.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쌓고 더 많은 과학과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그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없이 그저 가속페달만 밟으면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이 책은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에 이어 다섯 번째로 읽은 책이다.

저자가 처음 이 책을 발간한 시기는 1973년이다. 아직 소련과 동구권 체제가 무너진 시기도 아니었고 신자유주의가 도래하기도 10년 이상 남아있던 시기에 산업생산양식과 성장의 폐해에 대해 일갈하고 정치적 전환을 주장한 저자는 인류역사의 선각자이자 사상가라 인정받을 만 하다. 특히 학교와 의료, 수송, 에너지에 대한 그의 통찰력 넘치는 분석과 비판은 세대를 뛰어넘는 시기임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래서 법정스님께서 추천하셨으리라...
 
먼저, 출판사 서평을 읽어보자...
1949년,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선된 트루먼은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선언했다. 이 새로운 정책이란 다름 아닌,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 & 경제적 원조를 실시하고 투자를 확대한다는 것이었다(여기에는 당연히 한국도 포함).
이 연설에서는 향후 산업생산양식을 이끌어갈 중요한 단어가 사용됐는데, 바로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단어가 그것이다. 이전에는 백과사전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미개발국가’, ‘근대화’는 금새 경제학과 사회학에서 사용되는 전문용어로 정착됐다. 발전경제학이나 발전사회학이 대학의 정규과목이 된 것도 이 무렵이다.
트루먼의 취임 연설 이후 ‘개발’은 미국과 미국의 원조를 받는 제3세계의 국정지표 그리고 급기야 유엔의 정책이 되었다. 

‘발전’과 ‘성장’은 구래의 지반을 가지고 있는 ‘역사적’인 단어가 아니라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단어다. 마치 요즘 사용하고 있는 세계화가 그런 것처럼…
더욱 흥미로운 건 소련의 스탈린 역시 비슷한 시기에 자국민들을 ‘개발’의 바다로 노저어 가게 했다는 것이다. ‘개발’ 혹은 ‘성장’은 이때부터 신화가 되어버렸다. 누구도 ‘성장’에 이의를 달지 않았다. 러시아의 예에서 보듯이 성장보다는 분배의 정의를 요구하는 자들조차 ‘성장’을 부정하지 못했다. 이처럼 ‘경제발전’에 대한 사고방식에는 이데올로기로서의 측면을 찾아볼 수 없다. 자유주의자나 보수주의자, 민족주의자나 파시스트 그리고 나치나 레닌주의자 혹은 스탈린주의자들 역시 ‘성장’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식대로 ‘성장’은 모든 가치를 뛰어넘는 선(善)인가? 이건 뜬금 없는 질문이 아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장과 분배의 논쟁 역시 ‘성장’이라는 코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부와 주류경제학자 그리고 재야 간의 대결구도로 형성되었던 성장과 분배의 논쟁은 이제 급기야 제도권 안으로까지 진입했다. 하지만 이 논쟁구도 역시 ‘성장’을 배제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성장’의 가치를 추구하던 세력뿐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 역시 ‘진보적 경제발전론’이나 ‘분배를 통한 성장’을 주장하며 ‘성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일리히는 명쾌히 주장한다. “성장을 멈춰라!”
 
40여년 전에 경고했음에도 우리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성장’만을 위해 질주해온 미국과 유럽, 일본과 한국,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대부분의 지구상 국가들에서 지금 나타나는 모습은 어떠한가? 과연 ’학교’가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 진정한 ’배움’을 줄 수 있는가? 과연 ’병원’이 우리에게 건강과 치유력을 제공하는가? 과연 자동차와 비행기가 우리에게 시간적, 공간적, 정신적, 육체적 여유와 시간을 제공하는가?
 
저자는 봉건시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시기에 교육과 건강, 통행과 에너지라는 미명하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산업생산양식이 ’학교’와 ’병원’과 ’수송’을 상품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교육과 건강, 통행과 에너지를 산업생산양식으로 탈바꿈시켰는지 알려준다.
 
산업생산양식은 ’교육’이라 불리는 상품을 제조해내면서 처음으로 완전히 합리화 되었으며, 교육은 과학적 마술이 창조한 환경에 맞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탄생시키는 연금술적 과정을 추구하게 되었다. ’교육’이라는 상품과 ’학교’라는 제도는 서로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었다. 배움을 학교교육으로 재정의해버린 후 사람들에게 학교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이게했을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가난의 고통에 더하여 교육을 받지 않은 자에 대한 차별까지 겪게 만들었다는 것... 사람들이 지식의 수준을 정의하고 측정하는 학교의 권위를 받아들이게 되면, 사람들은 적절한 건강 수준이나 수송 수준에 대해서도 해당 분야의 제도기관의 권위를 쉽게 더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저자는 의료의 경우, 1913년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본다. 그때부터 환자들은 구체적으로 효과적인 치료를 제공해주는 의대 졸업자를 만날 확률이 반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의학이 병과 치료를 ’정의’하게 되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의사들은, 스스로 만들어낸 기준으로 치료의 효과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시기를 전후하여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물은 정화되었고 유아 사망율은 낮춰질 수 있었고 쥐를 통제하여 역병을 물리치고 매독균을 현미경으로 보고 살바르산으로 매독을 제거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사망율과 발병율의 눈부신 감소는 위생, 농업시장, 그리고 삶에 대한 일반적인 태도 변화 덕분에 일어난 것이며, 이들 변화 중 일부는 의학이 발견해낸 사실에 건축토목기사가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생겼다고 말한다. 그러나 의사가 직접 개입하여 나타난 변화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히 드물다라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치료를 위한 도구가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의료전문가들은 그 도구를 자신들만 독점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에 소요되는 훈련기간은 더욱 길어져만 갔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급기야는 모든 사람들이 의사를 더 의존하게 되었다. 

저자는 의사들에 의해 생긴 질병 중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은 바로, 의사들이 환자에게 더 나은 건강을 안겨주는 척하는 허풍이라고 단언한다. 엄청난 돈이 의학적 치료에 의해 생긴, 샐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손해를 메우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의료가 병을 고쳐서 얻은 이득은, 의료가 새로이 아프게 만든 사람들의 비용에 비하면 난장이만큼이나 작아보인다고... 물론, 내가 보기에 이런 흐름은 의료 뿐 아니라 교육, 법률, 과학, 건설, 회계 등 과학과 기술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 모든 분야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내가 지금까지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관점이고 접근방식이었다. 우리사회는 저자가 비판하는 산업생산양식과 제도들을 기초로 하여 헌법과 법률, 제도와 정책, 규범과 문화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적지않게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산업생산양식의 발전과 장악에 따라 인류가 위협받게 되는 여섯 가지 경로를 규명한다.
1) 과잉성장은 인간이 진화해온 환경의 물리적 기본구조에 대한 권리를 위협한다.
2) 산업화는 공생적인 일을 할 권리를 위협한다.
3)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인간을 과잉 프로그래밍하는 일은 인간의 창조적인 상상력을 죽인다.
4) 새로운 생산성 수준은 참여정치의 권리를 위협한다.
5) 기존의 신화, 도덕, 판단을 참고할 수 있는 권리를 위협한다.
6) 강제적이지만 인공적으로 실현된 만족을 주는 수단이 불러일으키는, 만연된 좌절은 보다 미묘한 위협을 구성한다.
 
그리고 저자는 산업생산양식을 가져온 ’도구’를 재정의하면서 지나치게 효율적인 도구가 물리적 환경과 인간이 맺는 관계를 촉진하는 일에 적용되면 결국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 파괴의 모습은 ’생태계의 파괴’, ’근본적인 독점’, ’과잉계획’, ’양극화’, ’노후화’, ’좌절’이다. 이 모든 저자의 주장과 예상은 30년이 지난 후 인류에게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어느 날 숲의 나무를 잘라내고 그곳을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흔히 ‘발전’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장소에 전혀 다른 것을 설치하는 것. 그것을 보고 우리는 숲의 ‘발전’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는 이 책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무한 성장하는 산업사회의 생산방식 대신 자율적, 공동적 도구 사용과 인간의 자율적 행위의 상호교환을 중심으로 하는 공생의 사회를 주창하고 있다. 그는 공생공락 하는 데 필요한 세 가지 - 시, 자전거, 도서관 - 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성장에 반대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 최소한도로만 통제하는 도구를 사용하여 가장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질 때 우리는 공생적(Conviviality)인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7년 전의 저자의 비판과 대안을 인류사회는 거부하였다. 물론, 역자(이훈)의 말대로 저자가 제시한 세 가지 방안(과학의 탈신화화, 언어의 재발견, 법 절차의 회복)는 실천적이기 보다 상징적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줄기차게 주장하는 ’균형’과 ’도구의 한계를 정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생산양식이 인류사회를 지배하게 된 기간은 300년 가까이된다. 그렇다면 그것을 극복하는 기간 역시 짧은 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일이 한 걸음씩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성장의 한계’나 ’도구의 한계’를 정하는 것이 인류에게 출발점이 될 것이고 새로운 관점과 대안에 대한 계기로 주어질 것이다. 그 ’균형’을 위해서는 아주 자그마한 구멍 만들기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산업생산양식’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근본에서부터 인류사회에 공론화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 책 속의 문장
- 공유된 배움과 개인간의 비판적 상호작용을 높은 수준으로 진작시키려는 사회는 교육산업의 성장에 한계를 설정해야만 한다.(p.09)
- 대단히 현대적이면서도 산업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미래사회에 대한 이론을 정식화하기 위해서는 자연적 규모와 한계르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우리는 오직 이 한계 안에서만 기계가 노예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한계를 넘어서면 기계 자체가 새로운 노예주가 된다.(p.12)
- 1970년 미국의학협회 총회에서 회장은 신생아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증명될 때까지는 모든 신생아를 환자로 간주하도록 소아과 의사들에게 권고하였다.(p.22)

- 정보를 저장하고 지식을 쌓아나가고 더 많은 과학을 도입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를 억누르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속화를 통해 위기를 해결하려는 시도이다.(p.28)
- ’공생’이라는 단어는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사람과 환경 사이의 자율적이고 창조적인 상호작용을 뜻한다. 공생이란 개인의 자유가 사람들 간의 상호 의존성으로 실현된 것이며, 그 자체로서 하나의 윤리적 가치이기도 하다.(p.33)
-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현재의 제도를 뒤집어 엎어 산업적 도구를 공생적 도구로 대체하지 않으면 효과적으로 실현될 수 없다.(p.33)

- 대안적 정치질서는 모든 사람들이 각각 그들 자신의 미래를 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목표를 가진다. 그러한 정치는 생존, 정의, 그리고 일의 자율성이라는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도구의 사용범위를 제한할 것이다.(p.34)
- 에너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사람들끼리 의존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만, 사람들 스스로 절제의 즐거움과 검소의 해방감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p.35)

- 나는 ’도구’라는 용어를 드릴, 전화기, 빗자루, 건축자재와 같은 단순한 기재에서부터, 자동차와 발전소같은 거대한 기계, 콘플레이크나 전류와 같은 유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과 같은 생산적 기관, 그리고 교육, 건강, 지식, 결정과 같은 무형의 상품을 생산하는 기관까지 포함시키는 넓은 뜻으로 쓴다.(p.45)

- 공생적 사회에 근본이 되는 것은 조작적 제도와 중독적 재화나 서비스를 전부 다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욕구를 생산하고 그 충족을 위해 전문화된 도구와 자아실현 능력을 보충하고 발현시키는 도구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49)
- 치유될 수 있는 대부분의 질병은 오늘날 평범한 사람들이 처방하고 치료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어한다. 왜냐하면 의료가 지닌 의례가 너무 복잡해서 그 기본적 과정이 단순하다는 사실을 숨기기 때문이다.(p.64)
- 나이별로 학년이 나뉘어진 채 이루어지는, 일생을 결정짓는 특권을 따느냐 마느냐를 결정짓는 강제적인 경쟁은, 평등을 진작시키기는 커녕, 남보다 빨리 시작하거나, 더 건강하거나, 교실 밖의 자원이 더 많은 사람에게만 유리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p.74)

- ’근본적인 독점’이란, 하나의 브랜드가 지배하는 상태가 아니라 한 가지 유형의 생산물이 지배하는 상태다. 근본적인 독점은 산업생산의 과정이 절실한 필요의 충족에 대한 배타적인 통제를 행사하며 비산업적인 활동을 경쟁에서 축출하는 상태다.(p.90)
- 현대 의료의 근본적인 독점은 아픈 사람이 의사가 처방하지 않고 치료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상태다.(p.91)
- 근본적인 독점은 강제적 소비를 부과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성을 제약한다.(p.92)

- 보건전문가의 통제 아래 쓰이는 돈이 더 늘어난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환자의 역할, 스스로는 아프다 말다를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어지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조작됨을 뜻한다.(p.93)

- 도로, 학교, 병원으로 온통 뒤덮인 사회에서 독점으로부터 보호받는 일은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사회에서 독립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은 기능이 감퇴되고 단순한 대안마저도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필요한 행동이 마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독점이 물리적 세계를 형성할 뿐만 아니라 상상력과 행동의 범위까지도 결정할 때 독점을 제거하는 것은 힘들다. 근본적인 독점은 일반적으로 너무 늦었을 때 발견된다.(p.96)
- 제어되지 않는 산업화는 가난을 근대화한다. 가난의 수준이 높아지고 부자와 빈자의 간극이 커진다. 이 두 측면은 함께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괴적인 양극화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p.114)

- 개인은 각자가 소유한 물건의 영수증이 얼마나 철 지난 것인가에 따라 사회적 등급이 매겨진다. ... 경제가 대규모로 생산물을 새로 고안하고 기존 기본 상품 묶음을 노후화시키는 과정 위에 건설된 곳은 어디에서나, 가장 최신의 서비스와 재화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 자는 특권층뿐이다. (p.122)
- 재화와 도구를 정기적으로 혁신하게 되면, 무엇이든 새롭기만 하면 더 나은 것이라는 신념을 낳게 된다. 이 신념은 현대 세계관의 핵심적인 부분이 되었다.(p.123)
- 공동체가 과학에 대한 과잉확신을 가질 때, 사람들은 성장의 상한선을 설정하는 일을 전문가에게 맡겨버린다. ... 그러나, 폐쇄적인 전문가 집단이 전문적 지식을 추구하는 일에 자기제약을 가하리라고 신뢰할 수 없다.(p.142)

- 산업화된 국가의 언어는 창조적인 작업과 인간노동의 결실을 산업의 산출물로 파악한다. 의식의 물질화는 서구 언어에 반영되어 있다. ... 명사로 이루어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have) 일(work)이라는 식으로 소유권적 표현을 쓴다. ... 그들은 지식, 이동성, 심지어 감성과 건강까지도 획득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일뿐만 아니라 사랑도 가진다.(have sex) p.145

[ 2010년 11월 26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자 중력의 세 가지 길 - 리 스몰린이 들려주는 물리학 혁명의 최전선 사이언스 마스터스 13
리 스몰린 지음, 김낙우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양자 중력 이론이 인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우주가 존재한다는 기적과도 같은 사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이 불가사의한 사실의 적어도 일부나마 파악할 수 있다는 새로운 신념일 것이다."
 
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 < 마지막 3분 >, <인류의 기원>, <세포의 반란>, <휴먼 브레인>, <에덴의 강>, <자연의 패턴>, <마음의 진화>, <실험실 지구>, <여섯 개의 수>, <생각의 탄생>에 이어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의 열 세번째 책으로, ’양자 이론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고 있는 양자 중력 이론(중력의 양자이론)의 현황과 전망’을 소재로 삼고 있다.  
 

브라이언 그린이나 리차드 파인만 등 내가 지금까지 읽어오던 우주론과 우주론 관련 물리학  관련서적이 대부분 ’초끈이론’ 중심이었는데 이 책은 그동안의 내가 편협하게 알고 있던(초끈이론 주창자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들었던) 것을 교정시켜 주었다.
내용이 많이 어려운 책이었으나 우주론의 최신 동향, 초끈이론과 다른 이론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라서 읽는 내내 흥미를 잃지는 않았다.
 
17세기 후반 아이작 뉴턴은 수학과 물리학, 천문학 등 많은 분야에서 천재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특히 그의 절대적 시공간 개념과 중력, 행성운동 개념은 동 시대의 다른 과학자들의 업적과 함께 인류사회에 ’물질주의’, ’절대성’과 ’기계론’을 인식시켜 놓았다.
뉴턴의 영향은 21세기인 현재에까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양자역학은 입자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한 빛(이중성)과 소립자의 세계를 확률론적(확률파동함수)으로 설명하고 인간이 소립자의 위치와 속도를 모두 알아낼 수 없다는 것(불확정성의 원리)을 밝혀냈다.
200년 넘게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뉴턴역학을 넘어 우주론과 자연과학에 커다란 획을 그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수 십년 동안 해결하려고 애쓴 분야가 ’대통일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광속의 유한성’과 ’상대적 시공간’ 개념을 탄생시켰고 물리학계에 양자역학의 토대도 제시한 바 있었다.
중력, 시간, 공간, 그리고 물질에 대한 기존의 관점을 뒤흔든 상대성이론과 양자 역학은 20세기에 물리학 혁명을 일으켰다.

아인슈타인이 이루어놓지 못한 대통일이론은 현재 ’양자 중력 이론(Quantum Gravity Theory)’라는 이름으로 현대 물리학자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 책은 현재 이론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어떤 혁명적인 이론들이 만들어지고 다시 사라지고 있는지 보고하고 있다.
저자는 양자 중력 이론에 이르는 길로 초끈 이론(super string theory)의 길, 고리 양자 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의 길, 그리고 블랙홀의 열역학의 길의 세 가지를 제시한다.
 
또한 저자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배해오던 자연과 우주현상에 대한 "존재론적 세계관"을 ’진화하는 관계들의 네트워크’로 보는 "관계론적 세계관"으로 전화하게 되면, 언젠가는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돌파구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희망 어린 전망을 내놓는다. 

[양자중력이론]

 
1. 초끈 이론(super string theory) :
초끈 이론은 세상 만물을 구성하는 근본적인 존재가 점(0차원)처럼 생긴 입자가 아니라 일차원적인 끈이라고 주장한다.
이 끈은 1차원 시간과 9차원 공간 속에서 진동한다.
끈마다 진동하는 방식이 다 다른데, 이 진동 방식에 따라 그 끈은 전자, 쿼크, 뉴트리노, 혹은 중력자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는 세상의 모든 입자는 모두 다 진동 방식만 다른 끈인 것이다.
그러나 이 초끈 이론에는 약점이 있다.
초끈 이론을 연구하다 보면 수학적으로 아무런 이상이 없는, 다시 말해 모순없는 이론이 다섯 가지나 존재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의 이론적 연구에 따르면 무수히 많을 수도 있다.
이것은 초끈 이론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뜻한다.
 초끈 이론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절대 시공간이라는 뉴턴 역학적 낡은 배경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2. 고리 양자 중력 이론(loop quantum gravity) :
초끈 이론의 강력한 경쟁자인 고리 양자 중력 이론은 공간에도 최소 단위가 있다는 놀라운 주장을 한다.
전자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매끄러워 보이는 표면이 자잘한 원자와 분자들로 거칠거칠한 것처럼, 물질이 불연속적인 원자들로 이뤄지듯이, 공간 역시 아주 작은 규모까지 쪼개다 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소 단위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상대성 이론을 가지고 거둔 최대의 업적, 다시 말해 시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하는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물들의 관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관계론적 존재임을 보여 준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이론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우주가 가만히 있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요동하는 동적인 존재임을 보여 준다.
그리고 이것은 우주의 생성 과정, 평행 우주, 다중 우주, 양자 블랙홀 이론 등 현대 우주론의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해 준다.
그러나 이 이론 역시 수많은 비판을 받는다.
기존에 나와 있는 이론들을 수학적으로 다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다루는 단순한 수리 물리학적 테크닉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시작해서, 고리 양자 중력 이론이 바탕에 놓고 있는 이론들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부족하다는 비판까지 다양한 공격이 나오고 있다. 
[양자시공간의 컴퓨터 모형]



3. 블랙홀의 열역학
블랙홀의 열역학은 우주론 연구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이 이론은 양자 중력 이론과 관련해서 실험적으로 의미가 있는 예측을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다.
왜냐하면 10차원의 끈과 플랑크 길이의 공간 원자와는 달리 블랙홀의 열역학은 우주 공간에 존재할 것이라고 추측되는(거의 존재하는 것이 확실시되는) 블랙홀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는 어떤 천체가 블랙홀인지 확실하게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조만간 블랙홀임이 확실한 천체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블랙홀의 열역학 이론이 예언한 호킹 법칙, 베켄슈타인의 한계, 운루의 법칙 같은 이론적 예측들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되며,
블랙홀의 열역학에 바탕을 두고 세운 양자 중력 이론은 앞의 두 후보들에 비해 최종적 양자 중력 이론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블랙홀의 거대한 중력에 의해 극단적으로 늘어나 있는 블랙홀 주변 시공간에 대한 관측을 통해 우리는 고리 양자 중력 이론과 초끈 이론의 예측과 제안이 얼마나 타당한지도 검증할 수가 있다. 
[ 블랙홀의 특이점과 지평선]



현재 이론 물리학계의 주류는 초끈 이론이다.
전 세계 수천 명의 이론 물리학자들이 초끈 이론에서 새로운 발견을 꿈꾸며 치열하게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이기는 하지만 고리 양자 이론가들은 초끈 이론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들을 지적하며 고리 양자 중력 이론을 제안하고 있다.(저자는 고리양자중력이론 전문가...)
현대 이론 물리학계는 이 두 이론가 집단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 책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물리학계나 기타 자연과학계 역시 통상적인 학문분야와 비슷한 분위기와 문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초끈이론 전문가들과 고리양자이론 전문가들이 상대방의 논문이나 학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들의 이론만이 옳다는 독선에 빠져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세 가지 길이 하나의 현상을 보는 세 가지 다른 창이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과거 16~17세기에도 (동시대를 살았지만) 케플러의 행성 법칙을 알아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갈릴레오와 갈릴레오의 투사체 법칙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케플러가 손을 잡았다면, 갈릴레오와 케플러의 업적을 통일해 근대 물리학의 기초가 된 뉴턴 역학이 그들의 시대에 탄생할 수 있었다며 사례를 든다.

저자는 책 후반에 양자중력이론으로 가는 ’세가지 길’ 이외에 블랙홀의 열역학에 영감을 받은 ‘홀로그래피 원리’, ‘비가환 기하학’, ‘블랙홀의 엔트로피 이론’을 소개한다.
그러한 새로운 이론적 아이디어에서 나온 공통의 문제를 초끈 이론가들과 고리 양자 중력 이론가들이 함께 풀다 보면 두 이론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인 최종 이론의 부분들이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이론과 비슷할 것이라 예상한다. 
[양자중력 공간이론 - 웜홀]

 
저자는 이 책의 결론을 과감하게 내린다.(이 책은 영문판 발간은 2000년이다.)
첫째는 2010년대까지는 초끈 이론과 고리 양자 중력 이론의 안개 속 논쟁이 깔끔한 최종적 이론으로 정리되어 양자중력이론의 기본 틀이 마련된다는 것
둘째는 21세기 중반에는 고등학생이 중력에 대한 양자 중력 이론을 배우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첫째 결론은 2010년대가 지나려면 아직 9년이 남아있으니 지켜볼 일이고 둘째 결론은 우리 후손들이 알 수 있으리라...^^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내 나름대로 의미를 발견한 부분은 서구의 주류 물리학계에서 자연과 우주의 원리를 ’독립된 존재’를 파고들어 가는 방식 뿐 아니라 ’상호간의 관계’와 ’상호작용’의 측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서구에서 물리학이나 우주론에서 출발하여 생물학이나 화학과 같은 자연과학 뿐 아니라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서도 관점과 방법론이 전환될 것이라는 예감을 준다.


* 책 속의 문장
- 우주에 실재하는 것과 무관한 공간은 의미가 없다. 공간은 비어 있거나 꽉 차 있으며, 어떤 것들이 그저 오고 가는 무대가 아니다. 공간은 존재하는 것들을 제외하면 아무 의미도 없다. 즉, 우주는 사물들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들의 한 측면일 뿐이다.(p.49)
- 공간은 문장과 비슷한 것이다. 단어가 하나도 없는 문장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다. .... 우주의 기하학은 문장의 문법 구조와 무척 흡사하다.(p.49)
- 나는 상대성 이론고 양자이론이 주는 교훈은 우주가 진화하는 관계들의 네트워크임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p.52)
- 중력의 양자이론을 세우는데 그토록 오래 걸린 이유 한 가지는 이전의 모든 양자이론이 배경 의존적이었기 때문이다.(p.60)
- 근본적으로 생각하려 한다면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새 물리학의 언어로 말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과정이 상태보다 중요한 어휘 체계를 배워야만 한다.(p.111)

- 우주는 많은 ’사건’들로 구성된다. ... 사건들의 우주는 ’관계론적인 우주’다. 즉, 모든 성질들은 사건들 사이의 관련성을 통해서 기술된다. 두 사건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관계는 ’인과 관계’다. (p.112)
- 인과적 구조는 모든 시간에 대해서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동적이며 법칙에 따라 진화한다. 우주의 인과적 구조가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해 가는가를 결정하는 법칙을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라고 부른다. (p.121)

- 세계의 불연속 구조가 명백해지는 시간과 공간의 규모를 ’플랑크 규모’라 부른다. 그것은 중력과 양자현상의 효과가 동등해지는 규모로 정의된다.(p.123)
- 공간의 한 영역을 0도까지 냉각시켜서 그것이 에너지를 갖지 않게 해도, 여전히 무작위적으로 요동치는 전기장과 자기장이 존재할 것이다. 이것을 진공의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s)’이라고 부른다. (p.158)
- 물리학은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가능성의 예술이다.(p.276)
---------------------------------------------------------------------------------------------------------------------

[ 양자중력과 상대성이론의 경합 ] 2009. 11. 03 한겨레 기사


73억광년 날아온 빛의 속도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살려


양자중력이론 예측 일부 틀려
‘아인슈타인이 옳았다.’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이 73억 광년의 거리를 날아온 감마선 빛을 관측해 분석해보니 빛속도는 에너지나 파장과 무관하게 늘 일정하다고 보았던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여전히 옳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천체물리학자들이 밝혔다. 이 연구논문은 국제학술지 <네이처> 최근호에 실렸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에서 ‘시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모든 빛은 진공의 시공간에서 늘 초속 30만㎞로 날아간다는 ‘광속 불변의 법칙’을 특수 상대성이론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후에 양자이론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해 ‘만물의 이론’을 만들려는 물리학자들은 미시의 양자세계에선 시공간의 진공에서 ‘양자요동’이 일어나며 고에너지와 만날 때 상호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에 빛의 에너지가 클수록 빛속도는 느려진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이 분야의 연구자인 김상표 군산대 교수(천체물리학)는 “바다가 멀리서 보면 평탄하지만 가까이 보면 물거품을 일으키며 요동하는 것처럼 양자세계에선 시공간이 요동한다는 게 ‘양자요동’의 의미”라며 “아인슈타인 이론에선 에너지와 파장에 관계없이 빛속도는 일정하지만, 양자중력이론에선 빛속도가 양자요동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예측돼 왔다”고 말했다.

두 가설이 맞서 있는 가운데,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이 7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두 중성자별의 충돌로 생긴 엄청난 에너지의 감마선 입자들이 지구 쪽으로 날아오는 것을 지난 5월 처음 포착했다. 포착된 감마선 입자 하나는 다른 것에 견줘 무려 100만배가량 큰 에너지를 지니고 있었기에, 아인슈타인에 도전한 새로운 양자중력이론이 맞다면 두 입자의 도착 시각은 몇 분가량 달라야 했다. 하지만 결과는 0.9초 차이에 불과했다. 여러 분석 방법을 동원해 연구팀은 두 빛 입자가 73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출발했음을 입증했다.

김 교수는 “빛이 무려 73억 광년이나 날아오는 동안에 불과 0.9초 차이만을 나타냈다면 이는 사실상 에너지 차이가 빛속도에 영향을 끼친다는 양자이론의 일부 예측이 틀렸음을 뜻한다”고 말했다. 감마선 폭발은 평균적으로 석탄 3×10³³t을 태우는 것과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지만, 우주 공간에서 감마선이 방출되는 원리는 아직 분명하게 규명되지 못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다른 연구에선 감마선 빛 입자의 도착 시각이 4분가량 차이를 나타내 양자중력이론 쪽이 의기양양했는데 이번엔 지난해의 분위기를 뒤엎었다”며 “이번 연구의 분석은 매우 신뢰할 만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와 양자시공간연구센터는 2일부터 4일까지 한국과 이탈리아의 천체물리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감마선 폭발과 상대론적 천체물리학에 관한 심포지엄을 서강대 마태오관에서 열고 있다.

오철우 기자

[ 2010년 11월 30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90년대 초에 오웰의 <1984>와 이 책 <동물농장>을 읽었을 때 그다지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 2008년 초 <1984>를 다시 읽어 보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한국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과 최근 공부모임 세미나에서 20세기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다루면서 다시 읽고 싶어졌다.
 
이 책은 스탈인 시대의 소비에트의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다. 소설의 내용을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농장주인 ’존즈’는 러시아 혁명 당시 러시아 황제였던 니콜라스 2세이고 미래의 동물 혁명을 제시하고 죽은 ’메이저’는 칼 마르크스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은 스탈린, ’스노볼’은 트로츠키, ’돼지들’은 볼셰비키, ’복서’는 프롤레타리아트, 동물들의 반란은 러시아 혁명, ’개들’은 비밀경찰, ’스퀼러’는 공산당 기관지인 프라우다, ’필킹턴’은 영국, ’프레드릭’은 독일, 동물 학살은 스탈린 시대의 재판, ’외양간 전투’는 1928~1919년 연합군 침공, ’풍차 전투’는 1941년 독일의 러시아 침공, ’풍차’는 소비에트의 5개년 계획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면 히틀러의 독일이나 무솔리니의 이탈리아도 <동물농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웰의 <동물농장>이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것은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사실상 끝나고 조선반도가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로부터 이틀이 지난 8월 17일 이었다. 실제 오웰이 이 책을 탈고한 것은 1944년 2월이었다고 한다. 오웰은 1년 6개월 동안이나 책을 발간해 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 영국과 미국의 출판사들이 <동물농장>의 출판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련은 서방 연합국들에게는 사실상의 동맹이었기 때문에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물(정치 풍자)이 출판된다는 것은 당시의 영국과 미국 정치사회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소설을 읽지 못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마르크스와 러시아 혁명, 소련 체제, 1950년대까지의 소련 역사를 대충이라도 알고 있다면 역으로 <동물농장>의 전개를 역으로 추측할 수 있을 정도로 오웰은 정확하고 분명하게 소련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정치풍자 소설로 <동물농장>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인 조지 오웰은 소위 자본주의 찬양가이거나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였을까? 그것은 결코 아니었다. 이 책에는 <동물농장> 이외에 두 개의 오웰의 글이 실려 있다. 그 중 <나는 왜 쓰는가>를 읽어보면 오웰이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유럽의 정치사상사를 돌이켜 보면, ’민주적 사회주의’라 함은 자본주의에 반대되는 사상으로 ’사회주의’를 추구하되, 그 방식과 주요 내용이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여러 정치사상과 비교해보면 ’사회민주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 저자인 ’조지 오웰(George Orwell)’은 누구인가? -----------------------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이고 조지 오웰은 필명이다. 영국인으로 1903년 인도 동북부 벵갈에서 태어났다. 인도 세관 아편과의 하급 관리였던 아버지처럼 식민지 관료의 길을 선택하여, 인도제국 경찰국 소속 경찰관으로 미얀마에서 5년 동안 근무했다. 그러나 제국주의 관료가 되어 피식민지 주민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그는 1927년 사표를 제출하고 그 뒤 몇 년 동안 런던과 파리를 떠돌아다니며 부랑아 같은 생활을 했다. 이 무렵의 생활을 기록한 책이 [런던과 파리에서의 밑바닥 생활]이다. ’에릭 아서 블레어’라는 본명을 버리고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은 더욱 굳어졌으며 소설가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새롭게 다짐하게 되었다. 그는 ’소비에트 신화’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작품을 구상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동물농장]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BBC와 <트리뷴타임스>에서 일하며 창작에 몰두, 6년 만에 비로소 [동물농장]의 탈고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소비에트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탓에 책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 18개월 뒤 ’세컨드 앤드 워버그’라는 작은 출판사를 통해 1945년 8월 17일 비로소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동물농장]의 성공 후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탈고하나, 그 책의 출간 다음 해인 1950년 1월 유니버시티 병원에서 지병인 폐결핵으로 각혈한 뒤 갑작스레 숨을 거두었다. 4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그는 옥스퍼드셔 서튼 코트네이에 묻혔다.
조지 오웰은 정치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치적 인물로 평생을 살아왔다. 그는 또한 진리가 아무리 불편해도 그 ’불편한 진리’를 서슴지 않고 말하는 용기 있는 도덕가이기도 하다. 그는 시대와 불화를 겪으면서 20세기 전반기에 양심을 용기 있게 대변한 작가였다. 더불어 [동물농장]은 그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출간된 지 5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힘을 간직한 채 전 세계 68개국 언어로 출간되는 등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작품은 소련 체제에 대한 풍자와 비판으로 받아들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작품이 출간된 지 6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계속 독자들이 끊이지 않는 사실 때문이다. 왜 이 책이 지금까지 ’명작’이나 ’고전’의 대열에 끼어 있을까?
 
번역자인 도정일은 그 이유를 "소비에트 체제라는, 한 시대의 권력형식만을 재현대상으로 한느 역사적 정치풍자의 수준을 넘어 [독재 일반]에 대한 우의적 정치풍자로 넓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소설 속의 ’나폴레옹(스탈린)’은 모든 시대에 있을 수 있는 독재자의 알레고리이고 돼지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교활한 정예주의 권력집단의 알레고리라는 것이다. ’복서’나 ’클로버’ 같은 우직하고 성실한 동물들도 반드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제한되지 않는 광의의 피착취 대중을 포괄하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즉, 소비에트 체제의역사적 실체가 소멸하고 없는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동물농장>이 강한 적절성과 호소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 정치사회의 권력 현실을 부패시키는 근본적 위험과 모순에 대한 항구적인 알레고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웰의 알레고리를 현재로 확대하여 해석할 경우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한국도, 중동 아랍국가도, 중남미 아메리카나 아프리카의 어느 국가도 <동물농장>일 수 있고 앞으로 <동물농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농장>의 가능성은 어느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고 어디에서 촉발되어 올 수 있을까?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겠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대중의 각성과 참여 수준’으로 보았다. 소설 속으로 돌아가서 살펴보면, 동물 반란이 성공하여 ’동물 공화국’을 선포한 후 초기에 ’나폴레옹’이 새끼 강아지 교육을 자신이 책임진다며 골방으로 강아지들을 옮겨 격리한 것에 대해 동물들이 아무런 의문과 관심을 표하지 않은 것, 새끼들이 젖을 뗀 후 남은 우유들이 사라져 돼지들에게만 제공된 것과 과수원의 사과들을 돼지들에게만 분배된 것에 대해 ’스퀼러’가 동물들에게 논리 비약을 일삼고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윽박지를 때 동물들이 별다른 항의나 이의제기를 하지 못한 것을 말한다. 동물들이 자신들의 지도부인 ’나폴레옹’과 ’돼지들’의 일방적인 정책과 분배에 대해 대응하지 않은 것이 역으로 ’나폴레옹’과 ’돼지들’의 독재와 전횡을 점점 더 심하게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동물농장’의 전체주의는 그 독재를 추진한 ’나폴레옹’과 ’돼지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오와 책임이 있지만, 역으로 일반 동물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각성하고 참여하지 않아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크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저항의 피’를 먹고 자란다면 ’전체주의’라는 나무는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피를 먹고 자란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전체주의와 개인(이기)주의가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처지를 <동물농장>과 일대일로 대응하는 것이 너무 확대해석이라 생각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등장을 전후로 한 한국사회의 흐름과 한국의 대중, 민중들의 생각과 대응도 비슷하게 전개된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2011년 작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잡게 되면, 언제든지 전체주의와 독재라는 암은 그 속에서 싹이 틀 수 있게 될 것이다.

* 오늘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이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다시는 그와 같은 학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과제들이 아직 산적해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 2011년 5월 1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의 기술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이라...........
나도 예전에는 ’여행’이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살짝 흥분하곤 했다.
 
지금껏 여러차례 국내외를 여행해본 것 같다.
외국만 하더라도 개인적인 이유와 업무적인 이유로 가깝게는 중국과 베트남에서부터 멀리는 L.A와 벤쿠버까지...(유럽, 아프리카, 남미는 경험이 없고...)
그동안 여행 경험으로 내 의식 속에 자리잡은 일종의 ’선입관’은 막연히 "여행은 준비한만큼 즐길 수 있다"는 것.
업무적인 경우는 그렇다 하더라도 개인적인 목적으로 여행을 갈 경우, 내 여행의 주요한 동기아 목적은 대부분 ’사람’이었다.
목적지에 ’사람’이 있거나 어떤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린 여행...
국내를 제외하고는 나 자신만의 목적과 동기로 인하여 여행을 나선 경험은 없다.
그랬기 때문에 여행이 끝난 후, 사진 몇 장을 제외하고 내가 여행지나 여행과정에서 얻은 것은 별로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자처럼 여행에 대하여 개념이나 여정을 구분하거나 준비하지도 않았고 나의 무의식 속에 ’외국’ 또는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 대한 무서움이나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적지않은 책을 읽고나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과 문화, 내가 거주하는 공간과 다른 냄새와 분위기, 막연하게 책 속에서 글로만 상상했던 여러가지 영상들을 직접 겪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빈치 코드>의 파리, <연금술사>의 튀니지와 사하라사막, <그리스,로마 신화>의 그리스와 테베, <군주론>의 베네치아, <오디세이아>의 트로이, <혜초>의 실크로드, <찬란한 천개의 태양>의 아프카니스탄 카불, <반고흐, 영혼의 편지>의 프랑스 파리와 아를,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의 매사추세츠 콩코드, <샤르부크 부인의 초상>의 뉴욕,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 <무탄트 메시지>의 호주 사막, <로마인 이야기>의 로마와 지중해 도시국가, <비잔틴 제국>의 이스탄불...
오랜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에서 본 이국적인 도시와 장소들도 늘 머리 속에 어른거린다.
<라스트 모히컨>의 라스트 씬, <씨네마 천국>과 <대부 시리즈>의 시칠리아, <파워 오브 원>의 남아프리카, <반지의 제왕>의 곤도르 성, <본 시리즈>의 쮜리히, 탕헤르, 베를린, 파리, 모스코바....
한동안 외국에 나가보지 못했고 최근 국내 정치경제 상황이나 국제적인 분위기 속에서 한국이 답답하기도 하고...
 
이 책은 여행에 대한 작가의 ’기술’이 궁금하여 읽게 되었다. 
저자는 출판계에서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온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직접 자신이 여행을 다니면서 책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여행방식을 제시한다.
여행을 떠나서 돌아오기까지의 단계별 여정 -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 - 을 유명 예술가(보들레르, 플로베르, 워즈워스, 반 고흐, 러스킨 등)들의 삶과 작품을 통해 짚어보면서 여행에 숨겨진 다양한 욕망의 실체를 밝힌다. 

[다시찾은 타히티 - 윌리엄 호지 ]

[알마르크의 전경 - 야콥 반 루이스달]

[자동판매식 식당 - 에드워드 호퍼]

[카이로의 비단시장 - 루이스 헤이그]

[숙소에 있는 알제의 여자들 - 외젠 들라크루아]

[베네수엘라의 알렉산더 폰 봄홀트 - 에두아르트 엔더]

[오리노코의 에스메랄다 - 찰스 벤틀리]

[틴틴사원에 면한 와이강 - 필립 제임스 드 루테르부르]

[로키산맥의 랜더스 봉우리 - 알레르트 비어슈타트]

[알프스의 눈사태]

[아를의 노란 집과 올리브 숲 - 빈센트 반 고흐]
 

여행지의 아름다운 풍경과 이국정취를 느끼게 하는 에드워드 호퍼, 반 고흐, 들라크루아, 루테르부르, 윌리엄 호지스 등의 그림 40여 점도 함께 실려 있다.

예술가들이 남긴 글과 그림이라는 발자국을 따라 런던, 바베이도스, 마드리드, 이집트, 시나이 사막, 암스테르담, 레이크디스트릭트, 프로방스 등으로 차근차근 걸음을 옮기며 ‘여행의 기술’을 탐구하는 여정 속에는 그들의 고독, 방랑, 고집, 반항, 초월, 깨달음, 예술가로서의 선택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다.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성당]

[스위스의 눈사태]

[실제 아를의 노란집]

[실제 올리브 숲]

[알랭드보통의 침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행의 동기와 목적지 등 ‘여행’을 테마로 던질 수 있는 주요 질문들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하고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다.
여행의 동기나 목적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리고 하루하루 삶과 인생을 전쟁처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로서는 저자의 여행 동기가 ’배부른 자의 휴가’로 보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인류의 모든 개개인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여행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늘 자신에게 주어진 눈 앞의 한계와 조건만을 고려하여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가는 사람과 주어진 한계와 조건을 넘어서기 위해, 그 너머에 숨어있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보는 사람은 문제를 보는 관점과 풀어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자의 동기나 목적도 사람에 따라 충분히 여행을 떠날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훌쩍 짐을 싸서 떠나는 여행도 그 과정을 어떻게 겪어내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사람마다 느끼거나 얻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여행에서 무언가를 꼭 얻어내야만이 ’잘 갔다 왔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꽉 막힌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삶의 활력이나 아이디어,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여러가지 관계들 속에서 하나씩 배우고 돕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연이나 외부적인 것들이나 생소한 것들과 새롭게 관계를 맺어보면서 배우고 터득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그동안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나만의 관점과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행의 경우도 나만의 방식, 즉 ’사람’과 더불어 저자의 방식인 ’기술’도 활용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길을 떠나는 것에 대한 법정스님의 견해도 있어 소개한다.
스님은 <산방한담>에서, "길을 떠나는 것은 새삼스레 구경거리를 찾아서가 아니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관계의 울타리에서 떠나봄으로써 자신의 실체를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낯선 고장의 인정이나 풍물을 통해 가려진 내면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 책 속의 문장
-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p.12)
- 어느날 문득 광고지에 수록된 화려한 사진..... 그것은 사람의 계획이 아주 단순하고 어설픈 행복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였다.(p.18)
- 우리는 지속적인 만족을 기대하지만, 어떤 장소에 대하여 느끼는, 또는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사실 짧다.(p.34)
- 중요한 인간관계 속에 흥건하게 고여 있는 몰이해와 원한이 갑자기 드러나면, 우리의 마음은 하려한 열대의 정원과 해변의 매혹적인 나무 오두막을 즐기려 하지 않는다. 아니, 즐길 수가 없다. (p.41)
 
-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비행기나 배나 기차보다 내적인 대화를 쉽게 이끌어내는 장소를 찾기 힘들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과 우리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 사이에는 기묘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관관계가 있다. 때때로 큰 생각은 큰 광경을 요구하고 새로운 생각은 새로운 장소를 요구한다. (p.46)
- 우리가 휴겟와 모텔에서 시를 발견한다면, 공항이나 열차에 끌린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건축학적인 불안전함과 불편에도 불구하고 그 야한 색깔과 피로한 조명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립된 장소에서는 이미 터가 잡힌 일반적인 세상의 이기적인 편안함이나 습관이나 제약과는 다른 어떤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은연 중에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p.87)
 
- 여행의 위험은 우리가 적절하지 않은 시기에,즉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물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새로운 정보는 꿸 사슬이 없는 목걸이 구슬처럼 쓸모없고 잃어버리기 쉬원 것이 된다. (p.142)
- 괴테는 "나는 나의 활동에 보탬이 되거나 직접적인 활력을 부여하지 않고 단순히 나를 가르치기만 하는 모든 것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p.156)
 
-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p.178)
- 우리가 관객으로서 어떤 화가의 그림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장면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특징을 그 화가가 골라냈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9p.246)
 
- 아무런 재능이 없는 사람도 데생이 연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보는 법을 가르쳐주기 때문이었다. 즉 그냥 눈만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피게 해준다는 것이다. (p.300)
- 한군데 가만히 않아 시속 150km로 달린다고 해서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튼튼해지거나 행복해지거나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아무리 느리게 걸어 다니면서 본다 해도, 세상에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더 잘 보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귀중한 것은 생각하고서 더 잘 보는 것이다. (p.301)
- 러스킨은 여행을 하면서 스케치를 하라고 권했을 뿐 아니라,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인상을 굳히려면 글을 써야 한다고, 그의 말대로 하자면 ’말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p.313)
- 혼자 여행을 하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함께 가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어버린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맞도록 우리의 호기심을 다듬기 때문이다. (p.341)

[ 2010년 12월 01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정 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 - 법정 스님이 추천하는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할 50권
문학의숲 편집부 엮음 / 문학의숲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동안 책에 대한 내 생각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있어 ’책’이란 필요할 때, 필요한 책을 찾아 읽는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초중고 12년과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교과서와 읽고 싶을 때 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을 집어들거나 동아리나 학회의 세미나에 ’필요’해서 읽었다. (그래도 <레미제라블>, <죄와벌>, <제인에어>, <그리스,로마신화>, <탈무드>, <전쟁과평화> 등 웬만한 청소년용 고전을 읽은 기억은 있음...ㅎㅎ) 가끔은 주변에서 추천하거나 서점에 들렀다가 눈에 띄는 책을 고르는 정도... 사회에 나와 회사를 다니거나 회사를 차려 경영이란 것을 했을 때에도 다르지 않았다. 즉, 나에게 ’책’은 40년 넘게 ’필요’나 ’선택’ 이상은 아니었다. 역으로 매사에 어떤 일이나 상황을 대할 때마다 먼저 책을 집어드는 주변의 몇몇을 접할 때에는 ’책지상주의’라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나에게 있어 현실에 나서는 여러가지 일과 상황은 내가 직접 뛰어들어야 구체적이든, 감각적이든 파악이 되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근본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이 아로새겨진 1985년~1994년의 10여년 동안 ’느낌’과 ’행동’보다 ’이성’과 ’논리’를 앞세웠던 태도들에 대한 반동이었으리라 생각한다.(역으로 책 읽고 세미나하고 깊게 파고들기 싫은 공대생의 기질도 한 몫 했을 것이고...ㅋ) 
 
아무튼, 그렇게 책과 약간 거리를 두었던 세월이 40년 넘게 흘러갔다. 2003년부터 5년간 사업을 한답시고 좌충우돌 전쟁같은 시간을 보낸 후, 나는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관계에 대해, 그리고 경제에 대해 궁금증만 가득 안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지나간 삶과 나의 언행, 겪어본 과정을 되새겨보고 궁금증을 나름대로 풀어보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여행을 떠나면서 들고간 몇 권의 책이 나를 ’책 읽기’로 잡아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러가지를 잊어버리기 위해, 그리고 중고교 시절 한 때 꿈꾸었던 수학과 자연과학을 다시 들여다보기 위해 책을 집어들었다. 책에 대한 특별한 목적과 방향이 없었기 때문에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수학과 자연과학 뿐 아니라 경제, 문학, 인문, 사회까지 책의 범위는 넓어져갔다. 그렇게 2008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혼자 있을 때에도, 잠시 짬이 났을 때에도, 일을 하는 틈과 틈 사이에 시간 나는 대로 책에 몰두했다.
 
어느 정도 책을 읽으면서 ’책읽기’가 말 그대로 ’생활화’되고 어렴풋이 장기간의 독서 방향이 잡히고 그동안의 책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고 있던 때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은이 책을 만났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특별한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반반이다.
 
이 책을 통해 책읽기에 대해 다시금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앞으로 읽어야 할 책에 대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귀중한 도움을 받았다.
 
법정스님은 이 책을 통해 마치 나를 앞에 세워두고 혼찌검을 내듯이 말하신다. "우리가 책을 대할 때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자신을 읽는 일로 이어져야 하고 잠든 영혼을 일깨워 보다 값있는 삶으로 눈을 떠야 한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펼쳐 보아도 한 글자 없지만 빛을 발하고 있는 그런 책까지도 읽을 수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스님은 ’책에 읽히지 말고 책을 읽으라"라고 내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책을 읽는 분명한 방향과 책 읽기를 통한 궁극적인 방향을 알려주신다. "세상에 나도는 책이 다 양서일 수는 없다. 두 번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 세상에는 얼마나 쌓여 가고 있는가. 삶을 충만하게 하는 길이 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넘어서 어디에도 의존함이 벗이 독자적인 사유유와 행동을 쌓아 감으로써 사람은 그 사람만이 지니고 누릴 수 있는 독창적인 존재가 된다."
 
[ 법정스님이 사랑하고 추천한 책 목록 ] 
* 아래 50권 중 내가 먼저 읽은 책은 빈센트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 밖에 없었다.
1~5번까지는 이 책을 알고나서 읽기 시작한 것들이다.
참고로 5번부터 50번까지의 46권의 책은 과선배인 돈룡형이 후배의 ’수양’을 위해 협찬해 주시기로 했다. (선배님! 감솨합니다.!!!)
 
1. 새로운 형식의 삶에 대한 실험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 ’간소하게 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삶이다.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이다. 단순하고 간소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을 좁은 틀 속에 가두고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어째서 따로따로 떨어져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
    소로우처럼 각자 스스로 한 사람의 당당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가."
     

2. 인간과 땅의 아름다움에 바침 - 장 피에르와 라셀 카르티에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 ’우리에게 먹을거리를 공급해주는 대지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보호하는 일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의 지적 능력이 지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주어졌음을 깨달아야 한다.’
   

3.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다는 건가요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
  : "스스로 반문해야 한다. 나는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데, 과연 행복한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나 재산의 소유에 있지 않고 내가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에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핵심적인 힘을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의 사람됨이다."
     

4. 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 말로 모건 [무탄트 메시지]
  : "올바른 이해는 책이나 선생으로부터 얻어듣거나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은 하나의 느낌이나 자세가 아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의 방식이고, 우리 자신과 우리 둘레의 수많은 생명체들에 대한 인간의 신성한 의무이기도 하다."
     

5. 포기하는 즐거움을 누리라 - 이반 일리히 [성장을 멈춰라]
  :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것은 돈, 권력, 집이 아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다.
     그 사람이 돈과 재산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을 지니고 그 마음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따라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가난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넉넉한 마음의 그릇부터 준비해야 한다.
     마음의 그릇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덕이다. 덕을 나누는 일이다."
    

6. 모든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행복 -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
: "사람들이 불행을 느끼는 것은 행복을 목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은 행복을 찾아 늘 과거나 미래로 달려간다. 그러나 행복은 미래의 목표가 아니라 현재의 선택이다."
- 꾸뻬씨가 찾은 행복의 비결
 첫번째 :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 것
 두번째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세번째 :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
 네번째 : 내가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는 존재가 되는 것
 다섯번째 : 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여섯번째 : 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
 일곱번째 :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7. 자신과 나무와 신을 만나게 해 준 고독 - 장 지오노 [나무를 심은 사람]
: 20세기 초 프랑스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진솔하게 쓰여진 책...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 모든 것과 상관없이 자연을 위해, 사람들을 위해 수 십년 간 묵묵하게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프랑스 남부의 프로방스 지방은 황폐해 있던 산과 언덕이 삼림과 동물로 가득해지고 결국 떠났던 사람들마저 돌아오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그 어느 누구보다도 고결한 성품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8. 한 걸음씩 천천히 소박하게 꿀을 모으듯 -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 26세의 나이에 어느 날 신문에 난 기사 - 90세의 나이에 핵무기 반대시위를 한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 - 를 읽고 친구와 함께 2년 반동안 인도의 뉴델리를 출발하여 모스크바, 파리, 런던, 워싱턴으로 평화를 전하는 세계 여행을 떠난 사람이다. 그것도 돈도 없이 두 발로 걸어서...
그는 그 뒤에도 인도에서 3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격월간 녹색잡지 [소생 Resurgence]를 발간하고 대안학교의 모범이 된 [하트랜드 작은학교]를 세웠다. 녹색 출판사 그린북스를 운영하고 세계적인 생태교육 기관 [슈마허 대학]을 설립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있는 간디', '녹색운동의 큰 스승', '걸어다니는 녹색 혁명가'라고 부르지만, 그 자신은 스스로를 '지구의 순례자'로 부른다. 그의 삶 자체가 끝없는 만남과 탐구로 가득한 순례이고 그 여정에서 수많은 스승과 지혜들을 만나 자양분을 흡수하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이들의 삶에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9. 행복이 당신 곁을 떠난 이유 -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 행복이 우리를 떠난 이유는 권태에 대한 두려움, 경쟁, 과도한 염세주의적 태도, 질투, 불합리한 죄의식, 자기 안에 갇힌 삶, 죄의식과 피해망상, 여론에 대한 두려움 등이다.
하지만 러셀은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능력이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10. 나무늘보에게서 배워야 할 몇 가지 것들 -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11. 기억하라, 이 세상에 있는 신성한 것들을 - 류시화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12.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 - 핀드혼 공동체 [핀드혼 농장 이야기]

13. 모든 사람은 베풀 것을 가지고 있다 - 칼린디 [비노바 바베]

14. 이대로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 야마오 산세이 [여기에 사는 즐거움]

15. 나는 걷고 싶다 -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16. 아프더라도 한데 어울려서 - 윤구병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17. 신에게로 가는 길 춤추며 가라 -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18. 한쪽의 여유는 다른 한쪽의 궁핍을 채울 수 없는가 - 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9. 마른 강에 그물을 던지지 마라 - 장 프랑수아 르벨·마티유 리카르 [승려와 철학자]

20. 당신은 내일로부터 몇 킬로미터인가? - 이레이그루크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21.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 후쿠오카 마사노부 [짚 한 오라기의 혁명]

22. 큰의사 노먼 베쑨 - 테드 알렌·시드니 고든 [닥터 노먼 베쑨]

23. 풀 한 포기, 나락 한 알, 돌멩이 한 개의 우주 - 장일순 [나락 한 알 속의 우주]

24. 삶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 - 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25. 두 발에 자연을 담아, 침묵 속에 인간을 담아 - 존 프란시스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26. 가을매의 눈으로 살아가라 -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27. 생명의 문을 여는 열쇠, 식물의 비밀 -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식물의 정신세계]

28. 우리 두 사람이 함께 - 헬렌 니어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29. 축복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 레이첼 나오미 레멘 [할아버지의 기도]

30.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 - 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31. 바람과 모래와 별 그리고 인간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32.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33.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 -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34. 나무는 자연이 쓰는 시 - 조안 말루프 [나무를 안아 보았나요]

35. 용서는 가장 큰 수행 - 달라이 라마·빅터 챈 [용서]

36. 테제베와 단봉낙타 - 무사 앗사리드 [사막별 여행자]

37. 꽃에게서 들으라 - 김태정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꽃 백 가지]

38.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39. 우리에게 주어진 이 행성은 유한하다 - 개릿 하딘 [공유지의 비극]

40. 세상을 등져 세상을 사랑하다 -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41. 지구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 - 디완 챤드 아히르 [암베드카르]

42. 바깥의 가난보다 안의 빈곤을 경계하라 - 엠마뉘엘 수녀 [풍요로운 가난]

43. 내 안에 잠든 부처를 깨우라 - 와타나베 쇼코 [불타 석가모니]

44. 자연으로 일구어 낸 상상력의 토피아 - 앨런 와이즈먼 [가비오따쓰]

45. 작은 행성을 위한 식사법 - 제레미 리프킨 [육식의 종말]

46. 결론을 내렸다, 나를 지배하는 열정에 따라 살기로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 영혼의 편지]


47. 성장이 멈췄다, 우리 모두 춤을 추자 - 격월간지 [녹색평론]

48. 내일의 세계를 구하는 것은 바로 당신과 나 - 제인 구달 [희망의 이유]

49. 내 안의 ‘인류’로부터의 자유 - 에크하르트 톨레 [NOW―행성의 미래를 상상하
는 사람들에게]

50. 어디를 펼쳐도 열정이 넘치는 책 - 다치바나 다카시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나는 이 계절에 몇 권의 책을 읽을 것이다.
술술 읽히는 책 말고, 읽다가 자꾸만 덮이는 그런 책을 골라 읽을 것이다.
좋은 책이란 물론 거침없이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진짜 양서는 읽다가 자꾸 덮이는 책이어야 한다.
한 두 구절이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기 때문이다. 그 구절들을 통해서 나 자신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양서란 거울 같은 것이어야 한다. 그 한권의 책이 때로는 번쩍 내 눈을 뜨이게 하고 안이해지는 내 일상을 깨우쳐 준다.
그와 같은 책은 지식이나 문자로 쓰인 게 아니라 우주의 입김 같은 것에 의해 쓰였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만나 즐거운 때처럼 시간 밖에서 온전히 쉴 수 있다."   

이 책은 지난 7월 말경 입적하신 법정스님의 말씀을 뒤늦게나마 책으로 듣기 위해 <아름다운 마무리>와 함께 마련했다.
당시 <아름다운 마무리>만 먼저 읽고 스님이 추천하신 책 50권을 모두 읽은 후 이 책을 통해 되새겨보려 했다가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것 같아 이제야 모두 읽은 것이다.

이 서평은 앞으로 빠르면 6개월, 늦으면 1년 후에 완성될 예정...ㅎ 

[ 2010년 12월 5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