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와 반역의 천년제국 - 비잔틴 제국 타임라이프 세계사 10
타임라이프 북스 지음, 권경희 옮김 / 가람기획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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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비잔틴제국’에 대해 다루고 있다.
로마사 이후 ’로마제국’과 ’그리스 문화’,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뒤섞여 천년이라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비잔틴 제국’을 알고 싶었다.
 
서기 476년 마지막 황제인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퇴위당하면서 서로마제국이 사라진 후, 살아남은 동로마 제국을 후세의 역사가들이 ’비잔틴 제국’이라 불렀다.
비잔틴 제국(the Byzantine Empire)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재위기간 서기 306~337년)가 비잔티움이라는 보스포로스 해엽의 소도시를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을 바꾼 후 제국의 수도로 정한 서기 330년부터 성립된 것으로 생각된다.
[ 비잔틴제국 당시의 지도 ]

[ 성모에게 콘스탄티노플을 바치는 콘스탄티누스와 하기아소피아 성당을 바치는 유스타니우스 황제 ]
 

이 책은 출판사가 [타임라이프 세계사]라는 이름으로 발간한 18권의 시리즈 중 10번째 책으로, 출판사는 "권위 있는 저자와 엄밀한 고증, 입체적인 구성, 풍부한 컬러 도판으로 당시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냈다."고 설명한다.  
미국의 ’타임라이프 북스’에서 펴낸 이 시리즈는 1997년부터 3년에 걸쳐 완간했으며, 인류 문명의 탄생에서 성장까지 인류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일종의 역사서라 설명한다.  
책 속에 칼라 도판이 여러 장 들어있어서 독서 완료 후 시각적인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
 
이 책은 ’역사서’라는 출판사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역사 편집본’이 더 어울린다. 
’비잔틴 제국’에 대한 편년식 역사과정에 대한 서술도 없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반적인 제국의 모습을 담아내지도 못한다.
책의 제목처럼 출판사가 판단하기에 독자들이 ’비잔틴 제국’의 역사 중에서 호감이 갈 만한 사안(예를 들어 ’음모’와 ’배신’처럼...^^)을 모은 것처럼 보인다.
결국 칼라사진에 현혹된, 잘못된 선택이었고 제대로된 비잔틴 제국의 역사를 다룬 책을 고심 끝에 구입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1장에서는 바실리우스의 치세부터 황제 자리를 놓고 벌이는 권력 다툼, 화려한 궁정 생활, 외교의 대가라고 불렸던 비잔틴 인들의 뛰어난 외교술을 살펴볼 수 있다.
비잔틴 제국의 황금시대를 연 바실리우스는 미카일 3세를 암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비단 바실리우스뿐만이 아니라 천년 세월 동안 비잔틴에서는 황제의 관을 쓰기 위한 사람들의 치밀한 계략과 암투가 끊이지 않았다.
황제는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지상 최고의 권력자이자 신성한 신의 은총과 허가를 받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비잔틴 제국을 군사력, 정치력 그리고 상업적인 힘의 측면에서 최강으로 만들어놓았던 황제들의 업적을 살펴본다. 
[ 하기아 소피아 성당 내부 ]

[ 테오도라 여제 ]




2장에서는 콘스탄티누스에게 최상의 교육을 받게 해주려고 했던 어머니 테오도라의 눈물겨운 헌신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콘스탄티누스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상을 꼼꼼히 살펴본다.
콘스탄티노플은 다양한 문화를 녹여내는 용광로이자 100만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로, 언제라도 72개국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렇듯 제국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은 동과 서의 무역 교차로였으며, 500개가 넘는 교회들 중에서도 단연 아름다운 교회인 하기아 소피아가 이곳에 있었고, 여기에서 종교생활과 의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 화려한 성찬식 소품 ]

[ 화려한 장신구 ]

[ 화려한 향로 ]

[ 화려한 비단 ]


3장에서는 무솔리우스라는 병사를 등장시켜 비잔틴 제국의 군사력과 병사들의 생활상, 전쟁터에서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또 거대했던 비잔틴 제국이 몰락해가는 과정과 콘스탄티노플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지켜내려 했던 콘스탄티누스 11세의 힘겨운 싸움도 볼거리를 제공한다.
비잔틴 제국은 황제 바실리우스 2세가 죽기가 무섭게 투르크 전사들에 의해 아나톨리아 대부분을 점령당한다.
결국 비잔티움은 십자군이 침략하면서 치명적으로 약화되었고,
그후 마지막 적 오스만투르크 인 들이 포위했을 때 더 이상 콘스탄티노플을 지켜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비록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지만, 그들의 종교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전 세계에 수억만 명의 동방정교회 신도들이 있으며, 제국의 옛 영토의 수도원에서 이들의 예배는 계속되고 있다.  
[ 바살리우스 황제 ]

[ 오스만튀르크에 공격당하는 콘스탄티노플 ]

[ 카타리나 수도원 ]

[ 시모 페트레나 수도원 ]



아직, 천년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던 비잔틴 제국의 성격과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 비잔틴 제국의 특징과 역사(위키백과 사전에서 추려냄)
 

- 여러 역사지도에서는 기원후 395년에서 610년까지 제국을 서술할 때는동로마 제국이라고 쓰는데, 610년에 헤라클레이오스 황제가 제국의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바꾸었기 때문이다.(당시 이미 인구 대다수가 그리스어를 썼다.)
그리고 기원 후 610이후의 지도에서는비잔티움 제국이라는 표현이 많이 쓰인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용어는 역사가들이 지어낸 말로, 제국이 있던 당시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말이었다.
 
- 비잔틴 제국의 황제는 자신을 로마의 통치자, 즉 옛 로마 황제의 후계자이자 상속자로 여겼다.
그 주민들은 인종적으로는 그리스인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스스로 그리스인(그리스어: Ἕλληνες, 헬레네스)이라고 하지 않고 로마인(그리스어: Ρωμαίοι, 로마이오이)이라고 불렀다.
 "비잔티움"이란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천도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옛 이름인 비잔티움에서 나온 말이다. 이때부터 제국 수도의 옛 명칭은 역사서나 시문 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이 제국을 "비잔티움"이라고 칭하게 된 것은 1557년 서유럽에서 독일인 역사가 히에로니무스 볼프가 비잔티움 제국의 사료를 모은 비잔티움 역사집(Corpus Historiæ By­zantinæ)을 출간하면서 시작되었다.
 
- 비잔티움 제국은 스스로를 ‘로마 제국’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그리고, 로마 제국은 ‘문명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대제국’이며 ‘하느님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되는, 지상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은 고대 로마제국의 수준 높은 이념과 제도를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거기에 종교적 권위와 오리엔트적인 전제정치를 더하여 매우 엄격한 전제 군주적 황제권과 관료정치를 시행하였다.
  
- 비잔티움의 황제는 원로원, 시민, 군대에 의해 추대되어 지상을 책임지는 하느님의 대리자이고 제국은 천국의 예표이며, 최후의 심판이 때까지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도록 하느님이 임명한 하나의 후견인으로서 사도들과 대등한 종교적 권위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황제는 정치·군사·종교 등에 대해 무한적인 절대권력을 휘둘러 왔으며, 제국의 백성들은 스스로 황제의 노예임을 자청하며 오로지 그의 은혜만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였다.
 
- 비잔티움 제국은 중세 유럽에서 가장 막강한 전제 군주제 국가였으며, 한때 활발한 정복사업을 통해 로마제국의 고토를 거의 되찾아 광활한 지중해 세계를 통일하여 중심지 역할을 하였고 심지어는 중동지역으로 진출하기도 하였다.
특히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아시아와 유럽, 흑해, 그리고 에게해의 무역로에 자리잡고 있어 제국의 경제는 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다.
더불어 비잔티움 제국은 사산 왕조페르시아와 아랍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서 유럽과 기독교 문명세계를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까지 하였다.
그러나 점차 영토를 잃었으며, 12세기에 콤네노스 황조가 영토를 어느 정도 회복하였으나 제국은 오랜 쇠퇴기에 접어 들어 결국 15세기에 오스만 튀르크의 침공으로 멸망한다.

[ 2010년 11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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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
빌프리트 뢰리히 지음, 이혁배 옮김 / 바이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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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에 이어 두 번째 교재인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와 함께 다룬 보조교재였다.
독서 모임에 맞추어 읽지는 못했지만, 종교근본주의와 종교분쟁에 대한 내용이 궁금하여 나중에 구해서 읽었다.

기원 후부터 지금까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작은 전쟁들의 원인은 상당수가 종교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팔레스타인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영유권 분쟁, 스리랑카의 내전 등은 모두 종교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집단 간에 벌어지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아무리 ’복수’나 ’대테러전쟁’이라고 주장할 지라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 또한 종교 전쟁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종교분쟁이나 테러를 통해 인간이 종교를 오용하고, 정치화시키고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2001년 9·11테러(자작극 논란에도 불구하고..),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발 테러, 러시아의 베슬란 학교 인질극, 2005년 런던 지하철 폭발 테러 등은 정치화된 종교권력이 광신적 테러리즘의 형태로 표현된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 1099년 7월 15일, 십자군 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비기독교인 학살 ]

[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 ]

[ 911 테러 ]

[ 마드리드 폭탄 테러 ]

[ 러시아 베슬란 학교 인질극 ]

[ 2005년 런던 지하철 폭발 테러 ]


종교전쟁의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러한 종교를 정치화시키고 종교전쟁을 불러일으키는 현상들을 ‘종교 근본주의’라고 정의하고 이 근본주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대다수의 전쟁들은 대부분 인간의 욕심에 의해 생긴다. 
하지만 그 표면적 이유에는 항상 종교적 이념의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근거로 종교의 무용론과 폐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종교의 근본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화, 권력화가 되어가는 종교, 즉 종교 근본주의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접어들었던 시대에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 사람들의 현실과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나누고 그어버린 조치들이 씨앗이 된 것이다.


저자는 세계 5대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근본주의와 각 종교 간의 분쟁 원인을 살펴보고 세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해결방안으로 종교 간의 대화를 제시하려 한다. 
각각의 종교에서 배타적으로 바라보는 타종교에 대한 관점이 아니라 세계적 시각에서 종교를 바라보고, 각 종교들이 근본주의화 되는 과정을 짚어간다.
물론, 저자의 결론은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인류 공멸의 위험으로까지 치닫는 현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종교의 포기가 아니라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종교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각 종교 간의 대화를 통한 상호이해를 제시한다. 
종교들이 지닌 일치점과 차이점을 지적함으로써 종교 간의 대화를 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치화된 종교들은 세계정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세계는 테러리즘으로까지 발전한 정치화된 종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종교들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가치적 합의를 이루어야 하며 이를 위해 상호 대화를 통해 그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이것은 비단 각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단지 배타적 신앙을 가진 종교에 대한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가진 진정한 의미를 함께 나누고, 타종교와 교류를 나눌 수 있도록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종교와 근본주의에 대한 통찰은 기존의 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극복하고, 앞으로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종교 근본주의의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애초에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하여 발간한 의도는 ’종교간의 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이론적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발간 의도는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이론적 기초’를 발견할 수 없다. 각 종교의 교리와 해석, 종교지도자들의 움직임과 해석은 일반적인 개론 수준 정도에 불과해 보인다.
각 종교의 교리를 파고들어 종교가 화합하고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를 마련해 보겠다는 것 자체가 순진한 발상일 수 있다.
이 책은 ’정언 명령’과 그에 대한 약간의 해설 수준이라 평가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각 종교들이, 특히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와 힌두교 등이 종교 근본주의에서 벗어나고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나 역시 아직 뚜렷한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검토 가능한 사례를 언급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유럽의 30년 전쟁과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 시대의 도래에 대한 분석이다.
유럽의 중세시대는 종교가 모든 권력과 문화를 장악하였고 그 결과 종교를 내건 수 많은 전쟁이 일어났다.(종교전쟁의 이면에 숨어있는 정치적, 경제적 이유와 함께...)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고 그 결과는 당시의 일반 백성들이 중세를 장악하던 종교권력과 문화를 거부하고 ’인간성’을 중심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연 것이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역시 20세기 서유럽, 일본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종교 현실이다.
20세기 서유럽과 일본에 카톨릭과 기독교가 제대로 사람들 속에 파고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빵’과 ’희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아시아(특히, 한국)와 아프리카에는 왜 점점 종교가 대중 속으로 파고드는가?

그 역시 반대로 ’빵’과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종교분쟁과 종교근본주의의 위협에서 한국은 안전지대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 역시 종교 근본주의와 종교분쟁의 불씨가 만들어지고 있다.
특히, MB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신교 일부의 근본주의에 타종교에 대한 폭력, 종교의 정치화가 대중들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있다.
21세기 한국의 개신교는 종교라기 보다 정치경제집단으로 보인다.
종교든, 정치든 인류가 모여살 수 있는 이유는 ’상대방 존재에 대한 인정’에서 출발한다.

종교가 무엇이든, 철학이 무엇이든 자연과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가 없는 것은 인류에게도, 자연에게도, 심지어 그들의 신에게도 용서받지 못한다.
어떠한 이유라 하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종교의 이름을 내건 폭력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 책 속의 문장

- 1917년 12월 예루살렘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1917년 ’벨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을 승인했다. 이후 시위와 테러, 맞테러, 보복이 진행되었다.
- 1993년 9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간의 상호 인준이 이루어졌다. 같은 해 오슬로협정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구성에 합의하여 1996년 2월에 아라파트가 대통령직에 오른다.
- 2003년 12월 제네바 협정에서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주권국가 수립, 1967년 설정된 경계의 회복,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이스라엘인 퇴거, 난민 문제 해결 등에 대해 합의했다.
- 칼뱅의 <기독교 강요>에 따르면 국가는 하느님에 의해 세워진 것이다. 칼뱅에게 국가는 인간의 죄로 인해 성립된 것이며, 인간들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조건이 된다.
-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청교도적 종교성으로부터 현대 자본주의의 형성에 기여하 특수한 합리적 생활방식이 도출되었음을 지적했다.
- ’사도 베드로로부터 직위를 물려받은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교회의 가장 높은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교리는 로마 카톨릭교에서 가장 중심적인 교리 중 하나다.
- 미국의 외교정책이 미국에 대한 종교전쟁을 수행한다고 믿는 중동의 광신자들과의 무력 대결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인들의 가치와 이념을 정립하는 과정에 보수적인 개신교 지도자들이 그만큼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월터 미드, <권력, 테러, 평화 그리고 전쟁>) p.110
- 소승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서의 해탈, 해탈에 도달하게 하는 수단, 해탈에 도달해야 하는 이유로 구성되어 있다. p.193
- 이슬람교가 유대교 및 그리스도교와 연결된다는 것은 쿠란(코란)이 아브라함과 아담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p.217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



[ 보스니아 내전 ]


[ 소말리아 내전 ]


[ 코소보 분쟁, 미국과 서구의 인종청소 방조 ]


[ 미국의 아프카니스탄 침공 ]


[ 이라크 전쟁 ]


[ 카슈미르 분쟁 ]



[ 2010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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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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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젠가부터 이야기를 하거나 글을 쓸 때, 꺼내지 않고 사용하지 않고자 다짐한 단어가 ’절대’, ’절대로’라는 표현이다.
그 표현은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뱉은 말로 인하여 나 스스로를 얽매이게 만들고 ’생각이 모자랐던’ 자신을 욕하거나 학대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물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와 같은 사례는 제외...)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도 가급적 그러한 표현을 쓰지 않도록 당부하곤 한다.
어려서부터 논리가 막히거나 이해력에 한계에 도달할 때, 또는 감정이 상하거나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습관적으로 "난 절대 그럴 수 없어",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절대로 안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세상 일이라는 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절대로’ 있을 수 있거나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절대’와 ’절대로’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라도 나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지금과 같은 소비와 성장, 물질과 에너지 사용은 후손들을 위하여 ’절대’ 막아야 한다고..
비록 내가 일상생활에서 치밀하게 그 내용을 실천하거나 내 머리 속에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책은 내 의식과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던 세계관의 많은 부분을 뒤흔들었다.
지구에서 출현하기 시작한 이래 인류 역사가 마냥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다는 세계관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세계관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는 인류 역사가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내용을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해 왔고 지금 그 최고 수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세계관도 적용될 수 있고 필요하기도 하다.
우주와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에너지의 흐름, 아름답기만 한 자연과 상품의 이면, 질서와 무질서에 대한 새로운 관점, 돌이킬 수 없는 것들...
그런 세계관은 ’엔트로피’라는 단어 하나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엔트로피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열역학에서 물체가 열을 받아 변화했을 때의 변화량을 가리킨다"고 되어 있다.
아인슈타인은 "엔트로피는 모든 과학의 제 1법칙"이라고 말했으며 이 책의 저자는 "엔트로피는 인류가 발견한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엔트로피란 열역학의 제 2법칙, 즉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사용이 가능한 것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혹은 이용이 가능한 것에서 이용이 불가능한 것으로, 또는 질서있는 것에서 무질서한 것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이 개념을 자연환경 뿐 아니라 인간생활 전체로 확대하여 적용한다.
엔트로피는 모든 경제활동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이며, 이 궁극적인 원리를 인식하고 이것에 의해 경제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잡지 못하면 앞으로 세계는 파국을 재촉할 뿐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의 주안점은 엔트로피의 도입에 의한 새 세계관의 확립을 요청하고, 거기서 비롯될 새 사회의 개념을 규정하려는데 있다.
저자는 인류 문명사의 골격은 그 시대마다 에너지 환경이 조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지금까지 인간이 믿어 온 세계관은 어떻게 수립되었으며,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를 밝히는 동시에 현대의 세계관이 내포하고 있는 치명적인 결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결국 인류가 지금처럼 소비와 성장을 위해 자연물질과 에너지를 무한대로 사용할 경우 무질서는 극에 달하고 지구상에는 어떤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속도가 이어질 경우 그 ’마지막 시기’도 급속하게 다가올 것이고...

저자는 현대인의 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모든 물질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지리와의 합일을 도모하여 여기서 얻는 만족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적인 해방감을 체험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를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는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과제라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현대 사회를 엔트로피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종합진단하여 그 처방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서 다윈의 진화론 못지 않은 중대한 발언을 이 세기에 던지고 있다고 하겠다.
 

이 책 전체적으로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고 크게 배웠다.
'엔트로피' 관점에서 나와 주변의 사고, 행동, 흐름, 과정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나 스스로 아주 일상적이고 소소한 측면에서 엔트로피를 줄이기 위한 습관과 노력을 경주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것은
첫째, 저자가 발간한 시점이 1980년이었는데 한국에서 발간된 2000년까지 사이의 기간에 대한 수정,증보,첨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둘째, 20세기 후반부터 과학계를 중심으로 조금씩 확대되고 있는 뉴턴식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후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등을 비롯한 최첨단 과학의 성과에 힘입어 이미 과학계에서 비롯된 사상적,철학적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조금 앞서갔다.
엔트로피 법칙이 ’과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2010년에도 약간 무리였던 것 같다. 
* 핵심 문장
- 엔트로피란 우주 내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엔트로피 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이건 우주건 어디서든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내야만 한다.(p.21)
-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판도라가 인생의 온갖 악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연 순간 황금시대는 갑자기 끝나고 말았다.(p.27)
- 중세 전반에 걸쳐 서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적 역사관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중간과정으로 생각했다.(p.31)
- 기계론적 세계관은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등 세사람의 공동작품이다. 3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우리는 이들이 만든 사상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p.37)
- 인간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얻었다. 사후세계에서 구원을 얻는 다는 중세의 목표는 이제 사라지고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목표가 그 자리를 채웠다. 역사는 무질서하고 혼돈된 상태에서 뉴턴의 기계론이 대변하는, 질서있고 완벽하게 예측가능한 상태로의 지속적인 진전으로 정의되었다.(p.43)
- 에너지는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정액의 벌금을 낸다’. 여기서 벌금은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다.(p.57)
 
- 우주는 조금씩 쇠락하여 궁극적으로는 엔트로피 극대점 또는 열 죽음 상태에 이른다. 이 상태에서는 모든 유용한 에너지가 소진되고 따라서 어떤 활동도 일어날 수 없다. 열 죽음 상태는 영원한 휴식상태에 해당된다.(p.70)
- 모든 생물은 주변환경으로부터 마이너스 엔트로피를 지속적으로 흡스하여 살아간다. 마이너스 엔트로피야말로 생명체의 양식이다. 생명체는 주변환경의 질서를 파괴하여 자기 몸에 흡스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p.79)
- 다시 말해 모든 생명체는 평형을 향해 나아간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은 어떤 생각을 할 때나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때마다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렇게 계속 소비만 하면 결국 평형상태에 도달하는데, 그것은 곧 죽음이다.(p.79)
- 어떤 사람이 1년을 살아가는 데는 300마리의 송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300마리의 송어들은 9만 마리의 개구리가 필요하고 이 개구리들은 2,700만 마리의 메뚜기가 필요하며 이 메뚜기들은 1,000톤의 풀을 뜯어먹는다.!! (p.81)
 
- 인간 역사와 문화에서 큰 변화는 예외 없이 풍요함의 축적 결과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기존의 원천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일어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역사란 열역학 제2법칙이라는 사실이다. 엔트로피 과정은 항상 극대점을 향해간다.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일정량의 에너지는 영원히 무용한 것이 되어버린다. 축적된 엔트로피로 인해 사회가 에너지원 자체에 대한 질적 변화를 꾀하는 때가 이른바 역사의 분수령이라는 시점이다.(p.94)
- 바로 이 전환의 시기에 낡은 방식은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 사회의 엔트로피 총량은 너무나 커져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방식의 기술이 태어나며 새로운 사회, 경제, 정치체제가 형성된다. 엔트로피 법칙은 유용한 에너지의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렇게 새로 형성된 환경이 앞선 환경보다 더 열악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이유는 각 단계를 지날 때마다 이 세계가 갖고 있는 유용한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p.95)
-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는 인간의 육체만으로 늘어난 작업을 감당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인간을 적절한 수준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복잡한 기술을 개발해야만 했던 것이다. (p.95)
- 두 날 쟁기, 3포식 농법, 말에 의한 경작 등을 통해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농작물의 잉여분이 생겼고 이에 따라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 농경지의 지력이 끊임없이 소진되었고 더 많은 경작지를 얻기 위해 대대적인 벌목이 행해졌다. 결국 나무가 부족하여 서유럽과 북유럽 사람들은 위기에 직면했다.(p.103)
- 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지나친 전문화는 종의 멸종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어떤 종이 특정한 생태계 내에서 지나치게 전문화되면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즉 전환에 대비할 수 있는 융통성과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우리는 지나치게 전문화되고 또 기존의 에너지 환경에 너무 익숙해서 근본적으로 다른 에너지 환경으로 옮겨가는 데 필요한 융통성을 대부분 잃어버렸다.(p.131)

- 미국인구는 세계 총인구의 6%에 불과하지만 전세계 에너지 총소비량의 1/3을 차지한다. 1970녀넹 미국은 석유, 천연가스, 석탄, 원자력 발전소에서 1조7,000만 킬로와트의 전력을 생산했다. 이것은 미국은 제외한 세계 4대 소비국가(소련,일본,서독,영국)의 발전량을 합친 것보다 많다.(p.139)
- 핵융합 발전의 가능성에는 큰 제약이 존재한다. 첫째, 폐쇄된 공간 안에서 핵융합이 지속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보장할 수 없다. 둘째, 몇 가지 핵융합 기술이 나와 있지만 주로 연구되고 있는 것은 중수소-3중수소 반응이다. 삼중수소는 재생불가능한 자원이기 때문에 에너지원이 무한하지가 않다. 셋째, 핵융합 발전이 ’깨끗하다’고 하지만 이에 필요한 리튬 광산의 광부들은 건강상의 영향을 받을 것이고 핵폐기물도 쏟아낸다. 넷째, 핵융합로 설계와 관련하여 기술적 및 유지보수상의 문제가 있다.(p.154)
- 미국 중류층 한 사람은 과거 200명의 노예가 생산하는 것만큼의 일을 소비하며 살아간다. 보통 사람의 1일 식사는 2,000 칼로리쯤의 에너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전기 등을 쓰고 가공식품을 먹기도 하면서 소비하는 에너지는 20만 칼로리쯤 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칼로리의 100배 정도를 쓰는 셈이다.(p.180)
- 미국의 ’구식’ 농부(소 한마리 + 쟁기)는 자신이 투입한 에너지 1칼로리당 10칼로리의 에너지를 생산한다. 그러나 기계화된 밭의 농부는 자신이 투입한 에너지와 여기에 투입된 모든 에너지(비료,장비,농약,운송,가공등)를 합하면 270칼로리짜리 옥수수 깡통 하나를 만들기 위해 무려 2,790칼로리를 소비한다.(p.183)
- 승용차로 승객 한 사람을 1마일 수송하는데 드는 에너지는 8,100BTU인데 비해 대중교통 수단의 경우 3,800BTU로 떨어진다. 1톤의 화물을 철도로 운송할 경우에는 670BTU, 트럭의 경우 2,800BTU가 필요하다. (p.189)
- 미국 환경청, 국립암연구소, 국립산업안전및건강연구소, 국립환경보건과학연구소의 대표들로 구성된 연방정부 특별팀은 ’우리가 만들어낸 환경은 이제 미국에서 주요 사망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암, 폐질환, 심장질환 등이 1900년에는 사망원인의 12%, 1940년에는 38%를 차지했으나 1976년에는 59%로 뛰어올랐다.... 이러한 질병의 발병원인이 환경 탓이라는 증거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라고 발표했다. (p.234)
- 엔트로피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이제 고도 산업사회에서 우리가 누려온 높은 생활수준과 방대한 에너지 흐름에 대한 대가를, 만연하는 질병과 죽음이라는 형태로 치르고 있는 것이다.(p.234)
- 결국 사회 전체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갈림길에 놓인다. 하나는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기반을 둔 저에너지 소비사회로 회귀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마구 창궐하는 역병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p.237)
- 한 사회의 에너지와 부가 소수에게 너무 집중되어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에너지 결핍에 시달리게 되면 그 사회는 붕괴되거나 혁명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p.253)
- 인간 사회의 엔트로피 진행과정을 자연의 엔트로피 진행속도와 비슷하게 맞추려면 우선 에너지 흐름의 절대량을 줄여야 하고 적은 양의 에너지를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좀 더 균등하게 분배해야 한다.(p.253)
- 엔트로피 법칙은 이제 곧 과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으로서 뉴턴 역학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직 엔트로피 법칙만이 변화의 본질과 방향 그리고 변화의 과정에 관련된 모든 것들의 상호연관성을 충분히 설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위키백과사전에서 엔트로피에 대한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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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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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뜻에 대해서는 엔트로피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얼음이 녹으면 엔트로피가 증가한다.
열역학적 엔트로피(entropy)는
열역학적 계상태 함수 가운데 하나로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1850년대 초에 엔트로피의 수학적 개념을 도입했다. 자연계는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상태인 무질서로 변화한다.


  • 고전 열역학적 정의로 엔트로피는 로 변환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 통계 열역학적 정의로 엔트로피는 열역학적 계의 통계적인 ‘무질서도’를 나타낸다.



목차

[숨기기]

열역학적 정의 [편집]


실제로 외부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 존재하지만 외부적인 일을 하는 데에 쓰일 수 없는 에너지를 "사용불가능한 에너지"라고 한다. 계의 총 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와 "사용불가능한 에너지"의 합으로 정의 할 때, 엔트로피는 전체 에너지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주어진 계의 절대온도에 정비례하는 "사용불가능한 에너지"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깁스 자유에너지 또는 헬름홀츠 자유에너지와의 관계식에서 "TS" 로 나타나는것을 생각해보라.

엔트로피는 열량의 함수로써, 주어진 열이 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나타낸다. 예를 들어 같은 크기의 열량이라도 고온의 계에 더해졌을 때보다 저온의 계에 더해졌을 경우에 계의 엔트로피가 크게 증가한다. 따라서 엔트로피가 최대일 때 열에너지가 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은 최소이고, 반대로 엔트로피가 최소일 때 열에너지가 일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최대가 된다.

열역학적 관점에서 엔트로피 S는 직접적으로 정의되지 않으며, 엔트로피의 변화량과 계의 열량 변화의 관계를 나타내는 식으로 표현된다.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 엔트로피의 변화 ΔS는 다음의 식으로 정의된다.

\Delta S = \frac{\Delta Q}{T}

ΔQ는 등온 가역과정에서 계에 가해진 열량이며, T는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계에 일정하게 유지되는 절대온도이다. 계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다면, 관계식은 다음의 미분식으로 나타난다.


dS = \frac{dQ}{T}

이 식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하여, 온도 T가 열량 Q에 대한 함수 , 즉 T(Q)로 나타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열량 변화에 따른 총 엔트로피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Delta S = \int_A \frac{ 1 }{ T(Q)} dQ


A는 열량이 변화하는 범위를 나타낸다.

엔트로피는 계의 자유에너지를 결정짓는 요소중의 하나이다. 온도는 평형상태에 있는 계에서만 정의되는 값이므로, 이와 같은 엔트로피의 열역학적인 정의는 오직 평형상태에 있는 계에서만 성립한다. 반면 통계역학적인 엔트로피의 정의는 모든 계에 적용된다(아래참고). 따라서 엔트로피의 보다 근본적인 정의로는 통계역학적인 정의를 꼽을 수 있다. 엔트로피의 증가는 흔히 분자들의 무질서도의 증가로 정의되어 왔으며, 최근들어 엔트로피는 에너지의 "분산"으로 해석되고 있다.

통계역학적 정의 [편집]


볼츠만은 엔트로피를 다음과 정의하면 열역학적인 엔트로피의 정의와 동등하면서 여러가지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S = k_{B} \ln \Omega \; , 여기서 kB볼츠만 상수이고, Ω는 계가 가질 수 있는 가능한 (미시적인) 상태의 가지수이다. 폰 노이만은 이러한 정의를 양자역학적인 계에 적용시켜서 폰 노이만 엔트로피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S(\rho) \,=\,-{\rm Tr} (\rho \, {\rm ln} \rho), (ρ는 밀도행렬)

블랙홀에서의 엔트로피 [편집]


블랙홀의 엔트로피는 블랙홀의 표면적에 비례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서 ’고전적’으로 볼 때에 블랙홀의 표면적은 증가하기만 한다. 하지만 호킹 복사에 따라서 블랙홀의 표면적이 줄어들 수도 있다.

성질 [편집]


STR은 특정 온도 TR에서 시스템의 에너지 중에서 로 변환할 수 없는 에너지를 나타낸다. 따라서 전체 에너지에서 STR를 뺀 양이 자유 에너지가 된다.

열 엔트로피와 위치 엔트로피 [편집]


엔트로피를 계를 구성하는 성분들의 배열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위치 엔트로피와 열 엔트로피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서 열 엔트로피는 분자들 사이에서의 에너지 양자의 분포들에 의한 구별가능한 배열을 기준으로 하여 계산된 엔트로피를 열 엔트로피라라고 부른다.

위와 같이 분류한 엔트로피를 계의 관점에서 본 알짜엔트로피 변화를 나타낼때 이용할 수 있다.

계와 주위가 갖는 엔트로피는 다음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

ΔSnet = ΔSsystem + ΔSsurrounding

여기서 열 엔트로피는 계와 주위 모두에 존재하지만, 계를 제외한 모든 곳을 지칭하는 주위에서 위치 엔트로피의 변화는 너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므로 그 변화를 무시할 수 있고, 주위가 갖는 엔트로피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온도, 즉 열 엔트로피이다. 이 때문에 주위의 엔트로피 변화를 열 엔트로피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계에서 열 엔트로피변화는 분명 존재하긴 하지만 위치 엔트로피의 변화가 더욱 계의 엔트로피변화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계의 엔트로피 변화를 위치 엔트로피의 변화라 할 수 있다. 

[ 2010년 1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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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우백
찰머스 존슨 지음, 이원태 옮김 / 삼인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던 2008년 미국의 국내외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2007년 서브 프라임 붕괴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08년 들어 미국 국민들에게 최악의 경제침체를 가져왔고 8년간 계속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는 미국을 이라크/아프카니스탄 내전이라는 '수렁'에 빠트리고 동맹국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다국적 기업과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고 정부의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려놓았으며 미국의 산업과 고용 상태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2008년 12월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Jr.)는 취임 이후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을까?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던 '변화와 통합,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유권자들의 희망은 지난 2년 4개월 동안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지난 19일 오바마의 '중동정책 연설'이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19일 오바마가 발표한 중동정책은 과거 민주당 정권이 추진하던 수준에서 그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과 무장, 아랍 민주화 혁명 등의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연설은 이스라엘과 공화당, 팔레스타인과 중동지역 국가, 정부로부터 모두 비난을 들어야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연구원을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다 결국 모든 이들을 실망시켰다." 의료보험 대상자의 확산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중동정책 이외의 금융위기 극복, 경제 활성화, 변화와 통합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오바마의 성적은 변변치 않은 것 같다.
 
상당수 미국 국민들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가 왜 이토록 초라한 과정을 보내고 있을까?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저자는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미국이 국내외에 처한 상황을 '블로우백 blowback(역풍)'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미국이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변화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과거의 제국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려면, 안정과 평화 속에 앞으로도 번영을 누리려면 18세기 '건국의 정신'으로 돌아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나눔문화]에서 진행하는 [평화나눔아카데미]의 강연 중 지난 3월 31일 두 번째 강연 주제였던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혁명, 위키리크스’의 강사인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안병진 교수가 미국 유학시 지도교수가 찰머스 존슨 교수였던 것이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출간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미국 내에서는 냉담한 반응 일색이었다고 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저자가 911 사태를 예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외적으로 유명해졌다.
 
*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누구인가?  -----------------------------------------
미국의 비판적 지성이자 국제 정치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찰머스 존슨은 1931년 피닉스에서 출생하여,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한국전쟁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전후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하였다. 1962년부터 1988년까지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아시아 문제와 미국의 외교 정책 연구에 전념해,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일본의 경제 개혁, 저항 이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저술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일본 통산성에 주목해 관료제의 자율성과 경제 개발 과정에서의 역할을 설명한 ‘발전 국가 모델’은 기념비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버클리 중국학연구소 소장, 샌디에이고 대학 교수, 일본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그는 한때 CIA의 정보 평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4년 이래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이 책 <블로우백>과 <제국의 슬픔>, <네메시스>이라는 3부작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을 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2010년 11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향년 79세로 타계했다. --------------------------
 
'역풍(Blowback)'이란 단어는 미국 CIA 관료가 내부 용어로 처음 고안한 말이다. CIA가 수행한 작전이 당초 의도와 달리 자국이나 CIA 자체에게 피해를 가져다 주는 현상을 '역풍'이라 규정했다. 다시 말하면 미국 국민에게는 비밀로 부쳐졌던 정책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따른 '역풍'을 말하는 것일까? 1990년대 초 소련연방의 해체를 시작으로 50여년간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던 냉전은 종식되었다. 냉전 종식 후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은 냉전을 이유로 진행되었던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정책을 포기하거나 변화시키지 않은 채, 냉전 체제에 뿌리를 둔 외교 정책을 고수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면서 미 제국의 공고화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상당부분 자국민도 모르는 채 진행되는, 바로 이와 같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은 이제 범세계적인 저항과 도전, 즉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물론, '역풍'의 원인은 냉전 이전에도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약자의 전략'이라는 '비대칭적 위협'과 같이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아무리 소규모 집단이라 할지라도 미국에 충분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911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임), 미국 이외의 국가들의 성장과 결속, 세계 시민의 자각 등을 포함하는 역풍의 국제적인 조건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역풍'으로 지적되고 있는 911 사태의 원인으로 911 사태가 발생하기 11년 전인 1990년 9월 미 의회 연설에서 행한 부시 대통령의 걸프전쟁 선포, 그로부터 12년 전인 1978년 9월 중동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제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의 체결, 1990년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학살과 팔레스타인 지도자 암살 등 이스라엘이 미 공군 기지를 이용하여 점령지에서 행한 야만적 행위들과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지원, 클린턴 대통령의 수단 폭격,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을 꼽고 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 103호기 폭발로 인해 259명의 탑승객과 11명의 지상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도 중요한 '역풍'의 사례인데, 저자는 이 사건이 1986년 레이건 행정부의 리비아 공습 때 가다피 대통령의 양녀가 사망한 데 따른 보복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역풍'은 군사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역풍'은 국제 경제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체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적 지배욕망은 이제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적 지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역풍'은 '시장 근본주의적 지구화' 혹은 '세계화'가 초래한 부작용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그는 1997~1998년 한국 등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동아시아 위성 국가들의 경제를 개방하고 자신의 종속 경제체제로 만들고자 하는 미국의 세계화 프로젝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세계화 전략의 목적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경쟁국들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전략은 동아시아 위성국가들의 경제적 독자성과 능력이 크게 훼손됨으로써 외견상으로 성공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외견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세계화 전략은 심각한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경제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의 수많은 민중이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것도 경제적 '역풍'의 결과이지만, 그러한 역풍은 미국인에게도 불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지난 50여 동안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이 냉전적 군사 동맹에 기초하여 미국 시장에 대한 특혜적인 수출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사적 지지의 대가로 이들 동아시아 위성 국가들은 미국과 비교적 유리한 무역협정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미국 또한 동아시아의 수출 지향적 경제에 따른 공급 과잉과 수요 약화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낡은 냉전적 구조를 개혁하기 보다는 '시장 개방'과 '탈규제'라는 화려한 수사학으로 이들 나라에게 세계화를 강제함으로써, 이들의 신뢰를 스스로 배반하고 결국 냉전적 동맹 체제하의 지지자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저자는 제2장에서 제8장까지 냉전 체제에서 시작하여 20세기 말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동아시아 정책과 그에 따른 역풍 및 역풍의 징후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1953년부터 2년간 미 해군으로 일본에서 복무하였고 1955년부터 대학원에서 중국에 대해 연구했다. 1972년 일본을 다시 방문했고 그 이후 일본의 경제 성장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하여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과정과 그 여파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자세하게 다룰 수 있었다.
 
[ 동아시아에서의 역풍과 역풍의 징후 ]
1. 미군 범죄 등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의 반발로 촉발된 오키나와 미군 기지 철폐 운동은 동아시아 지역이 가장 대표적인 역풍으로 본다.
2.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 한국의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 등 아시아의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원으로 야기된 해당 국민들의 살해와 탄압, 그리고 그에 따른 반미주의의 확산도 이 지역의 중요한 역풍 사례로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1980년 한국에서의 광주 학살과 이에 대한 미국의 개입 사실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무지를 개탄한다.
3. 핵,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위협하기 위해 고안한 미국의 이른바 '불량국가론'이 실제로는 제국주의적 강박 관념과 이윤 논리가 결합된 'NMD'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억지 논리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미국의 핵 확산 금지 정책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 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압박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저항은 어쩌면 불가피하며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
4.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은 미국의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봉쇄 정책을 선호하도록 자극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가난하며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많은 장애가 존재한다. 저자에 의하면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이 미,중간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중국의 영토정책이 과거으 제국주의에 지배당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영토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내정 간섭과 견제는 사실상 중국의 역사와 정책에 대한 무지와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5. 냉전 체제하에서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한 결과로 간주되었지만, 실상은 미국의 냉전 전략에 따른 특혜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며, 미국이 일본에 그런 경제적 특혜를 베푼 결과, 오히려 미 국민의 고통과 미국 제조업의 공동화에 따른 미국 경제의 약화라는 역풍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6. 미국의 제국적 과잉 팽창이 미국 산업의 위축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성장과 핵 확산을 초래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외교력과 솔선수범'으로 세계를 이끄는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결론은, 전 세계적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역풍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스스로 탈피하지 못한 냉전 구조를 개혁하고 제국적 과잉 팽창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오키나와와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 북한에 대한 외교적 포용 정책,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조정, 여타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 자제, 군사력보다 '외교력과 솔선수범'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리더쉽의 발휘 등이다.
 

내가 미국의 정치외교나 행정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론을 통해 간간히 들어온 바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후 2년 넘게 추진해 온 정책은 저자의 전략과 대책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렇다면 오바마 집권 기간 동안 미국의 정책이 근본적인 측면에서 변화되지 않을 것이고 미 제국에 대한 세계적인 '역풍'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민은 당분간 안정과 평화, 경제와 복지를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동아시아 각국에 대한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은 탄복할 만 하다. 특히 자신이 전공했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식견은 한국 내 전문가들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내 자국의 웬만한 학자들이 따라오기 쉽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인 학자로서 미국 행정부의 자료를 쉽게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군국주의 팽창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는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지난 50~60년간 한국과 북한에 대해 취한 정책을 저자의 정보와 사례에 기초하여 분석하면 저자의 주장에 십분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적 팽창 정책'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동아시아 국가들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어느 나라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큰 것 같다. 언론에 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들,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이 내뱉는 말들, 부실한 전문가들의 평론이 아니라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펼치는 주장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사건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으며, 향후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행가능하고 성과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 소련은 세 가지 이유, 즉 국내 경제적 모순, 제국의 과잉 확대, 개혁 능력의 결핍 때문에 붕괴했다.(p.19)
- 혁명의 만행이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끝나기 전까지 이른바 문화 혁명은 1930년대 후반 구 소련에서 자행되었던 스탈린의 숙청과 닮아갔고, 공산주의를 약속했던 중국 이상주의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파괴하고 말았다.(p.28)
-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극소수의 페루 혁명가들이 페루 주재 전 외교관을 인질로 삼아 벌인 리마의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도 사실상 페루 대통령 알레르토 후지모리의 반게릴라 정책과 일본 다국적 기업의 페루 영업을 일본 정부가 지원한 결과로 빚어진 역풍이었다.(p.45)
- 1955년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에 위협적인 토지 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 대통령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테타를 계획했고, CIA는 그것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대한 역풍은 1980년대 마르크시스트 게릴라의 반란과 CIA 및 국방성 지원 하의 마야 농민에 대한 대학살로 이어졌다.(p.48)
 
-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독재 정권을 세운 첫 번째 국가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주로 과거 친일파였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한국 민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북한 점령을 의식한 나머지 견고한 반공 체제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구가 우선되었던 것이다.
- 1960년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민의 열망이 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킨 후, 미국 정부는 1961년에서 1963년까지 한국을 통치한 세 명의 육군 장성 중 선두 주자였던 박정희에게 지지를 보냈다. 또 미국은 1979년 전두환 장군의 구테타를 용인하고, 1980년 수천 명의 한국 시민을 살해한 그의 명령을 은밀히 지지하기도 했다.(p.62)
 
- 약 2만 개에서 3만 개의 M14 대인 지뢰가 아직도 한국 최남단의 부산항 인근 영도 충리산에 매설되어 있다. 1956년 미군은 그곳에 기지를 둔 미사일 부대를 보호하기 위해 지뢰를 매설했는데, 그것들은 미사일 기지가 옮겨졌을 때도 결코 제거되지 않았으며, 1960년대 이후 많은 민간인의 부상과 사망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아 왔다.(p.116)
- 1993년에서 1997년까지 세계 5대 주요 무기 구매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터키, 이집트, 한국이다.(p.138)
 
- 위성국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정치,군사적 중요성에 관한 한, 소련과 미국은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정책을 추구했다. 그들은 진정한 민주 정권을 수립하려는 어떠한 대중적 노력도 거부하면서 소련군과 미군이 수립하고 냉전 내내 지원했던 일당 독재 체제(일본은 자민당, 한국은 자유당-공화당)를 통해 종속국을 통제했다.(p.148)
- 과거와 달리, 1987~1989년 미국은 한국 군부가 무력을 사용하도록 촉구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유는, 미국 관리들이 여전히 이란 혁명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국전쟁에 대한 견해가 어떻든 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남한은 미국의 종송국이라는 지위에 있었다.(p.154)
-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북한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오만하고 구제 불능한 국가, 즉 미국보다 덜 불량국가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코너에 몰리면서도 자신의 약한 입지를 잘 활용, 강한 근육질을 갖고 있지만 머리에 든 지식은 형편없는 경쟁자, 즉 미국에게 상당한 외교적, 경제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교과서적 방법의 유용한 사례를 전 세계에 제공했기 대문이다.(p.175)  

- 1997년 7월 타이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는 두 가지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첫째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위성 국가 체제에 이미 구축되어 있던 모순들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그 체제 자체가 갑자기 균열하기 시작하고 또 와해가 우려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냉전 시기엔 미국의 어떠한 실수도 소련 탓으로 돌렸지만 이 냉전 시기가 주던 부담감에서 벗어난 미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미국식 자본주의르 채택하라고 강요하는 캠페인에 착수했다는 점이다.(p.263)
 
[ 2011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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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은 무너졌다
자크 사피르 지음, 박수현 옮김, 김병권 한국판 보론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오프라인 독서모임에 참여한 후 <행동경제학>과 <지도로 보는 중동이야기>에 이어 세 번재 교재다.
이번 공부모임에는 이 책의 저자인 자크 사피르의 문하생으로 연구를 하다 귀국한 LG경제연구소 유승경 연구원이 함께 할 예정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이 계속 뇌리에 남았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보이는 것만 본다..."
최근에 인터파크 블로거의 리뷰 제목도 비슷한 것이었다.
"인생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이 책 역시 내가 보고 듣고 읽는 세상의 변화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해준다.
나 역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의도와 흐름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파악하기도 쉽지 않았다.
특히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서구언론과 국내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기초로 생각하는 것 이상을 노력해보지 않았다.
 
1991년 이라크가 쿠웨이트와 전쟁을 벌이고 이에 대응하여 미국이 ’사막의 폭풍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그 해에 나는 구파발에서 송추로 가는 도로 중간의 노고산 아래에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방위로 근무 중이었다.
TV에서 보여주는 그 전쟁은 말 그대로 ’게임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1997년1998년. 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도래하여 환율이 치솟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내고 전국민이 ’금모으기 운동’을 벌인다고 전국이 들썩였을 때...
나는 근무하던 설계회사가 구조조정을 선언하였고 별다른 고민 없이 다른 설계회사로 옮겼다.
금융위기에 함께 휩쓸린 아시아의 다른 국가, 러시아, 그리고 남미 국가들의 소식을 접했을 때 특별한 생각이나 느낌이 들지도 않았다.

19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강행했을 때에도, 1999년 동유럽에서 코소보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초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나토가 공습을 벌이고 평화유지군을 파견할 때에도 ’남의 나라’ 소식으로 치부했다.
1998년 11월 나는 다니던 설계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 회사로 옮겼을 뿐이다.
2001년 9월 뉴욕 무역센타에 비행기가 충돌하여 무너져 내릴 때, 나는 잠시 회사를 쉬면서 차를 가지고 홀로 여러도시를 다니면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행을 즐기고 있던 중이었다.
당시, 나는 언론에 보도되는 이야기만 들어서는 그런 방식으로, 그런 시간에 대형빌딩이 산산이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소위 ’911 테러’는 미국 국내의 ’자작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은 지금도 가지고 있다.
2001년 10월 미국이 알카에다의 지취자인 빈 라덴이 숨어있다는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하고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할 때에도 미국의 ’신보수주의(네오콘)’가 극에 달했다고 성토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난 이 책을 통해 지난 20년 간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현재 어떤 상태인지에 대한 나름의 통찰을 얻었고 남은 21세기에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는 1991년부터 2008년까지의 국제정세의 본질적인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무너지게 된 배경과 그 의미를 모색하면서, 다가오는 다극화 세계와 국민국가의 부활, 새로운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의 주장의 요지는,
1. 20세기에서 21세기로의 전환은 1991년부터 시작되었다.
2. 1991년~1997년까지만 해도 ’극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이 21세기를 지배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3. 하지만 1998년~2003년 사이에 미국은 ’극초강대국’은 커녕 세계전체에 대한 ’일국지배’의 자리도 무너졌다.
4.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1997~1998 금융위기와 2007~2008 금융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몰락했다.
5. 이제 21세기는 다극적 세계질서와 국민국가의 부상 속에서 혼돈이 이어질 것이다.
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가치는 직접적으로 도전받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 모델에 대한 반대가 점점 더 격렬해 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저자는 1991년부터 2007년까지 주요한 세계사적 사건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제시한다.
[미국의 GDP 대비 가계대출]
  

저자의 주장의 핵심을 인정하게 되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가장 최고 수준의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문제를 중심으로 여전히 갈등과 반목이 이어지고 있고 이에 대한 한국 내부의 의견과 입장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또한, 한국 군대의 작전권은 미군에게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북한-중국-러시아 대 한국-미국-일본이 대립하고 있고,
미국와 중국,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일본은 여러가지 문제에서 서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고 미국은 위기에 처한 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해, 일본은 재무장을 위해 한반도의 위기를 능히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지구상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1991년 소련의 해체와 쿠웨이트 전쟁은 20세기 종말을 알리는 일대 사건이었다.
이런 점에서 다가올 21세기는 군사력, 경제력 모두에서 초강대국인 미국이 지배하는 세기가 될 듯싶었다.
그러나 ’미국의 세기’는 1997년과 2003년 사이 갑자기 소멸하고 말았다.
이는 1997∼1998년 국제금융 위기 시 미국이 보여준 위기 대처 능력의 부재와 이에 따른 각국의 새로운 경제 전략들의 등장, 그리고 이 틈을 틈타 러시아가 다시 국제무대에 얼굴을 강력히 내밀었기 때문이다.
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 모델을 버리기 시작했고, 극동아시아는 중국이 안보의 중심 국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맞서 미국은 자국의 헤게모니를 힘으로 복원하고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정치적·군사적 대재앙을 일으켰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피해자였던 미국은 오늘날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진 가혹 행위의 이미지에 맞닥뜨려야 했다.
결국 21세기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미국은 곧바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21세기가 시작되던 2001년 9월 11일.
이 끔찍한 테러를 두고 한편에서 미국의 몰락을 예상했다고 대부분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할리우드 대작 ’재난 영화’의 미학 코드에 부합할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에 외양만 보는 우를 범한다"며 "21세기가 시작되기 전인 1997년부터 미국의 몰락은 시작되었다"고 단언한다.
바로 1997∼1999년 국제금융 위기를 일컫는 것이다. 

이 금융 위기는 미국이 주도하고 많은 국가들에게 강요했던 신자유식 금융 시스템이다.
이 시기 금융 위기는 현재의 IMF 위기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고, 오늘날 미국 경제의 심각한 위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1990년대와 21세기 초 경험했던 미국의 경제 성장은 유례없는 소득 불평등과 더 많은 인구가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 주택담보 대출 시스템 위기는 어떻게 보면 빙산의 일각일지 모른다.
구조적 문제는 더욱 심각해 ’서브프라임’ 위기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될 듯싶다. 

이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중국은 책임 있는 정책을 통해 극동 지방의 안정성을 상당 부분 보장했고, 미국의 걸프전으로 인한 군사적 위협은 중국을 국제무대로 나서게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사실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 갈등을 회피하고자 했으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안전한 자원 수급이 필요하게 돼 어쩔 수 없이 미국의 대외 정책과 맞붙게 되었다.
중국은 걸프전을 미국의 석유 자원 통제로 간주하고 중국에 대한 잠재적 협박 수단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해석했다. 
이후 중국의 수단 정권과 미얀마 군사 정권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 쉽게 분석할 수 있다. 

[중국의 GDP 성장율]
 

1997∼1999년 금융 위기 때 러시아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정도로 은행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 위기는 러시아의 종말을 의미하기는커녕 쇄신의 신호였다.
1990년대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테제와 점차 결별하고 산업 정책 중심의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재건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경제가 성장세로 돌아서면서 10년의 불황을 극복하게 된다.
1998년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정부의 최초 조치들을 계기로 실현된 사회적 쇄신과, 푸틴 정권의 개입주의 정책, 구조조정 등으로 명실상부하게 러시아는 강대국의 면모를 점차 회복하게 된다.
집권 초기 푸틴은 대테러 전쟁을 다자주의적 시각에서 수행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한편, 러시아가 그동안의 고립을 벗어나고자 미국의 9.11 테러에 대한 대응을 곧바로 지지한 바 있다.
푸틴은 두 가지를 계산했다. 미국의 지도층이 오랫동안 용인해주고 있던 광신적 이슬람 운동과 단절하게 만드는 것과 미국의 정당한 군사 보복이 다자주의적 틀에서 수행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가 내민 손을 거절했다.
이후 러시아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구축하고 있는 반대 동맹처럼 ’거부의 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2006년 중-러 합동 군사 훈련에서 보여지듯 상하이 협력기구는 미국이 후원하는 기구들에 대응한 아시아의 공식적 전략적 협력 기구로 급부상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의 부상과 더불어 세계 각국들의 경제 전략도 대부분 수정하게 되는데, 특히 통상 분야에서는 좀더 공격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돌리게 된다.
결과적으로 공격적인 통상 정책은 세계 경제를 전반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와 더불어 신자유주의 담론이 갑작스럽게 신뢰를 잃어버리는가 하면, 국가 경제 정책, 산업 정책, 국제금융 플로우 규제, 보호무역주의 같은 개념들이 점차 정당성을 회복하게 된다. 금융 위기가 초래한 결과였다. 
[러시아의 GDP 추이와 경제성장 요인]



또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미국이 비교적 가깝다고 생각했던 국가들마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전략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이제 두려움으로 점철되었고 우리가 신보수주의자, 네오콘이라 일컫는 자들의 집권을 돕게 된다.
이들의 정책은 일련의 이데올로기적 생략을 통해 구축된 정책으로 진정한 극초강대국의 권력을 구성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예에서 보듯 미국은 신군사주의 전략에 입각한 군사적 대재앙의 폭풍으로 밀려들어가 반죽음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미국의 몰락은 국제 관계가 재편성되고 새로운 국가들이 완전한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진다.
경제적 지배력과 정치적 지배력 사이의 관계가 핵심 문제가 된 것이다.
이 책은 다극적 세계 질서에, 국민 국가의 부상으로부터 프랑스가 새로운 21세기에 있어 주체로 나설 것을 촉구하지만 우리에게 역시 똑같이 해당되는 문제로 사회 정책, 경제 정책, 군사 정책의 글로벌 전략을 마련하라고 촉구한다.
더불어 이런 전략의 핵심 요소들을 전진시킬 수 있는 국제적 동맹을 사고하라고 당부한다.

이 책의 한국판 보론을 쓴 김병권 새사연 연구센터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MB노믹스의 실패를 예견한다.
이는 미국과 유럽은 경제 위기를 맞이해 정부 개입과 규제 강화, 재정 지출 확대를 꾀하고 있으나 MB는 반대로 규제 완화, 감세, 민영화, 개발주의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MB정권 탄생의 신화가 된 ’경제 살리기’는 이미 ’경제 확실히 죽이기’로 180도 회전하여 현재 마구 진행 중이다.
(사실, 한국판 보론 내용은 책의 주제와 동떨어져 ’왜 들어가 있을까?’는 궁금증만 남는다. 차라리 한반도의 정세와 MB의 외교를 평가하는 것이 필요한데...)

[ 2011년 1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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