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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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의 부제는 ’위기와 극복’이다.

8권은 네로가 죽은 뒤부터 트라야누스가 등장할 때까지인 서기 68년부터 97년까지를 다룬다. 
이 30년도 안되는 기간에 제위에 오른 사람은 무려 7명(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우스아누스, 네르바)이나 된다.
이들이 집권하고 사라지는 과정은 로마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무척이나 정신이 없다.
 
- 서기 69년 -
갈바는 근위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다. 갈바는 네로가 집권 중 에스파냐 동북부 타라코넨시스 속주 총독으로 임명한 자다.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 오토의 명령으로 갈바 암살. 근위대의 지지를 얻어 황제가 되고 원로원도 승인.게르마니아 군단이 갈바에 대한 충성 서약 거부하고 저지 게르마니아 군단 사령관 비텔리우스를 황제로 옹립.
비텔리우스 군단이 오토 군단을 격파. 오토 자결.
원로원 비텔리우스의 황제 취임 승인
안토니우스 프리무스가 이끄는 ’도나우 군단’이 베스파시아누스를 황제로 추대.
에스파냐와 브리타니아 5개 군단이 베스파시아누스 지지 선언.
키빌리스, 게르만족, 게르만계 갈리아인이 모여 ’갈리아 제국’ 창설 결의
베스파시아누스 군단과 비텔리우스 군단이 이탈리아 반도 내 크레모나와 로마 도심에서 내전.
비텔리우스 군단이 패하고 비텔리우스는 포로 로마노에서 피살.
 
- 서기 70년 -
원로원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로 승인
73년 국세조사 실시
 
- 서기 79년 -
베스파시아누스 사망. 공동 지접관 티투스 황제 등극
베수비오 화산 폭발. 폼페이 매몰.
- 서기 80년 -
로마 도심에서 대화재 발생
 
- 서기 81년 -
이탈리아 전역에서 전염병 발생
티투스 사망
티투스의 동생 도미티아누스 황제 등극
 
- 서기 83년 -
도미티아누스 게르마니아 방벽 건설 착수
110년 만에 병사들의 급료 인상
 
- 서기 96년 -
도미티아 황후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해방노예를 시켜 도미티아누스 암살.
원로원 네르바를 황제로 승인. 원로원 도미티아누스를 ’기록말살형’에 처하기로 결의
원로원 네르바를 황제로 승인
네르바가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지명
 
- 서기 98년 -
네르바 사망
트라야누스 황제로 등극
 
이 시기에 대해 동시대 역사가 타키투스의 표현을 빌리면,
"로마 제국에는 고뇌와 비탄으로 가득 찬 시대의 이야기다. 적과의 참혹한 전쟁 동포들 사이의 불화와 반목, 속주민의 반란이 되풀이되었고 본국의 평화조차도 많은 피를 흘린 뒤에야 겨우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황제가 4명이나 비명에 죽고(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도미티아누스) 로마 시민끼리 전투를 벌인 것도 세 차례나 된다. 속주민이나 외적을 상대로 한 전쟁은 그보다 훨씬 많았지만, 그것도 로마인끼리 벌인 전쟁의 여파에 불과하다."
또한, "도나우 강을 건너 침입해온 야만족에 대해 대책을 세우느라 고심하고 제국에 대한 갈리아 속주의 충성심은 흔들리고 브리타니아는 제패가이루어졌는데도 방치되고 사르마타이족과 수에비족은 로마 군단에 소해를 끼치고 다키아족은 로마에 패했을 때도 기세를 올리고 파르티아 왕국은 네로를 자칭하는 가짜를 옹립하여 로마에 반기를 들려 하고 있었다"
"수도 로마에서 자행되는 극악무도한 행위는 제국의 다른 어느 곳보다다도 무시무시했다. 고귀한 신분도, 재물도, 공적도, 공직을 거부하는 것조차도 죄로 간주되었다. 고발자에게 금품을 주어 그들의 공격에서 벗어나려 해도 그 결과는 더 많은 악을 낳을 뿐이었다. 고발자들은 사제나 집정관 같은 명예직마이 아니라 황제 재무관을 비롯하여 실권을 가진 관직까지 대가로 요구하고 그리하여 사회를 온통 증오와 공포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노예들은 돈에 매수되어 오랫동안 모셔온 주인을 배반하고 해방노예는 옛 주인에게 반항하고 적이 없었던 사람조차도 친구 때문에 파멸당했다." 
네르바에 이르러서야 로마는 안정되었고 뒤를 이은 트라야누스부터 후세의 역사가들이 ’오현제(五賢帝)’라 부르는 황금기로 접어든다.
 
작가는 30여 년 간의 이 시기를 ’위기’과 ’비탄’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녀는 로마의 위기라고 하면, 제2차 포에니전쟁으로 16년간 이탈리아 반도가 한니발에게 점령당했을 때, 기원전 90년 당시 반도의 여러 부족이 단결하여 로마에 반기를 든 ’동맹시 전쟁’, 마리우스와 술라가 내전을 벌이고 수 천명을 숙청했을 때,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의 국가 형태를 둘러싸고 벌인 내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에 붙은 14년간의 내전 등 수 없이 존재했다는 것...
그럼에도 로마는 다시 ’위기’와 ’분열’을 극복하고 지중해의 패권자로서 서기 1세기까지 군림하였던 것이다.
즉, ’위기’를 극복하면 ’위기’는 ’기회’가 되는 것이고 극복하지 못하면 ’멸망’하는 것...
8권에 그려진 로마는 타키투스의 이야기 만큼 로마 제정, 원로원과 시민, 속주민들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작가가 8권의 부제를 칭한 대로 극복해낸 ’위기와 극복’의 시기이기도 했다.
 
이는 자연도 그렇고 세상 사는 이치도 그렇지만, 역사적인 상황 역시 ’동전의 양면’, 즉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자어 ’위기(危機)’가 ’위기’와 ’기회’를 함께 의미하듯...
 
로마는 기원전 2 ~ 기원전 1세기 동안 정책 브레인이자 지도자 집단이었던 원로원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관계로 카이사르에 의하여 제정(또는 원수정)으로 체계가 강제로 변경되었고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로 이어지는 일인자 통치시대로 접어들었다.
그것은 로마 공화정이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서 지중해 전역과 멀리 갈리아, 브리타니아, 도나우강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지배하고 관리하는데 기존의 체제로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동시에 집정관-원로원-민회로 이루어진 삼각체제가 무너지고 일인 통치시대로 접어든데 따른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포함한채 유지될 수 밖에 없었다.
로마 제정은 강력하고 현명한 지도자가 통치할 때에는 더 없이 적합한 체체지이지만, 그렇지 않은 지도자가 통치할 때에는 늘 암살과 반란, 외적 침입과 정책실패를 거듭할 수 밖에 없게 된다.
8권은 후자에 해당하는 시대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혼란기에도 로마가 튼튼하게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아래와 같지 않을까 싶다.
1. 외적(이민족 or 야만족)의 침입이 적었고 세력도 약함. 파르티아도 잠잠.
2. 로마 내부의 내전이 일어나더라도 외부의 도움 없이 자신들끼리 전투를 치름
3. 로마 건국 이래의 기본 정책 유지
  - 기본 방위체계 유지, 패자 동화 정책(국내외 포함), 로마 시민권 유지/확장, 제국 내 경제 활성화, 세제/재정/행정/통화정책 유지, 사회간접자본 정비 계속, 군사력에 의한 외교 실시 등
(베스파시아누스의 ’황제법’ 등 일부 기존과 맞지않는 정책이 실시되기는 했으나, 그 뒤의 통치자에 의하여 복원됨...)
 
이 시기의 특이한 사건은 서기 66~70년에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뒤 진압되면서 예루살렘이 함락된 것이다.
유대인 요세푸스에 따르면, 사망자는 무려 60~110만명이고 포로의 수는 10여 만명에 이른다.
대부분의 유대인 포로들은 노예가 되거나 각 속주에 선물로 보내지거나 검투사가 되거나 야수의 먹이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의 통치자인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킨 뒤, 예루살렘 대신전을 불태우고 파괴하면서 이후 로마 지배지역 내에서는 유대교도가 유대교의 총본산을 갖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대신전에 해마다 바치던 2드라크마의 봉납금을 로마의 유피테르 신전에 납부하도록 한다. 이것이 병역을 면제하는 대신 납부하는 세금이라는 명분의 ’유대인세’...
이 사건으로 카이사르 때부터 시작되어 120년 동안 이어지던 로마의 유대 관용정책이 크게 바뀌게 된다.




 

[ 2010년 10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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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길 - 양장본
앤서니 기든스 지음, 한상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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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의 정치학>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에 이어 세 번째로 기든스의 저작을 읽었다. 출판 시기와는 정반대로 읽은 셈이다. <제3의 길>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그동안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제3의 길’이라는 것을 내세웠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이라크 전쟁 등 미국의 대외정책에 늘 동참했다는 사실과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예를 들어 ’부시의 애완견’같은...) 때문에 블레어 총리에 대해서는 호감보다 반감이 많았다.
 
역자인 한상진 교수는 이 책이 ’학문적인 저술’이라고 규정하면서 독서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제3의 길’이 과거에도 논의된 적이 많기 때문에 개념의 구조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다. 기든스는 과거에 ’제3의 길’을 주창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것으로 애기하고 있다. 다만, 기든스가 다른 점은 고전적 의미의 좌우대립을 극복하고 인류 문명의 새로운 도전으로 ’세계화(Globalization)’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종래의 ’제3의 길’과 다른 세계주의적(Cosmopolitan) 민족, 정치, 담론, 정체성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의 단점은 무엇일까?
둘째는, 이 책을 기든스의 전체 저술과 연관시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든스는 1970년부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의 하버드 대학, 버클리 대학, 스탠퍼드 대학에서 가르친 바 있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주요 대학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기든스는 ’구조화 이론(Structuration)’으로 명성을 얻었고 ’현대성(Modernity)’를 둘러싼 서구의 논쟁에서 독보적 위치와 역량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30년 간 30 권의 저서를 출판했고 많은 주제를 다루었다. 이 책은 거시적인 문제를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즉, 좌우 이념의 대립을 넘어 실사구시의 관점에서 국가와 경제, 시민사회의 관계를 탄력적으로 재구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셋째는, ’제3의 길’을 오늘의 서구사회의 변동에 접목시켜 이해하는 방법이다. 서구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역사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국가의 길을 가고 있었으나 1970년대 들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었다. 누적되는 국가의 재정 적자, 비대해진 국가 관료제, 시민사회 기능의 약화, 국민의 노동 의욕 감소, 국가 경쟁력 하락 등이 그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경쟁과 효율, 개인의 선택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세력을 얻게 되었다. 서구 복지국가가 위기에 빠진 이유 중에는 금융을 핵으로 하는 경제의 세계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변화된 현실에 대한 새로운 대응이 바로 이 ’제3의 길’이었다.
넷째는, ’제3의 길’을 한국사회에 적용하여 이해하는 방법이다. 이 네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제3의 길’이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 있다면 누가, 어떻게 ’제3의 길’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서구처럼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없더라도 ’제3의 길’을 요구하는 역사적 경험은 한국사회에도 필요하다. ’제3의 길’이 한국사회에 특히 필요한 이유는 한국사회에 여전히 고질적인 좌우 이념 대립, 지역 대결 구도, 노사간의 갈등과 반목, 세대나 남녀간의 불신,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는데 ’제3의 길’을 둘러싼 논의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기든스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살펴보겠다. 이 책은 서문과 결론, 그리고 5개 장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 기든스는 1970년대 말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복지에 대한 합의’의 파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불신,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불러일으킨 매우 중대한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변화로 인해 사회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실천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사회민주주의가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고 더욱 발전할 수 있음을 믿는다고 선언하면서 그렇게 되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여태껏 해온 것보다 더욱 철저하게 기존 견해를 수정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기든스는 1980년대 들어 보수당과 대처는 자유시장의 기치를 내세워 영국사회 전체의 변화를 강하게 촉진하면서 20년 넘게 영국 정치를 지배했음을 재확인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당은 구좌파의 견해만 반복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고 평가한다.
 
제1장. [사회주의와 그 이후] 기든스는 소련의 멸망과 해체로 ’사회주의의 사망’했음을 선언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은 늘 자본주의가 쇄신하고 적응하여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과소평가했다."(p.36) (저자 스스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현대성’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개발하고 수정하면서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와 변화,발전한 ’사회주의 이론’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내 자세한 입장은 여기에 풀어내기는 어려우며, 단지 소련의 멸망을 도식적으로 ’사회주의의 사망’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서유럽에서는 사회주의가 사회민주주의라는 이념으로 변화하여 잔류하였고 전후 30년 동안 정치이념과 정치세력으로 발전해온 것이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경제이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채 ’복지국가 시스템’을 중심으로 정체하면서 1980년대 들어 사회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에 자리를 내준 것이다. 기든스는 비교표를 통해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원리의 비교한다.(기든스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특징을 잘 비교하고 있음에도 철학적, 이념적 배경과 내용, 그 과정에 대해서는 깊게 분석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유럽 사회 대부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기든스와 비슷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1980년 이후 유럽 사회의 경제구조와 인구구성의 변화, 민중들의 태도와 입장의 변화, 정치적 지지 구조가 변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최근(1990년대 후반기)의 토론을 소개한다. 사회민주주의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제2장. [다섯 가지 딜레마] 기든스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크게 부각된 ’다섯 가지 딜레마’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그것은 ’범세계화(globalization)’, ’개인주의(individualism)’, ’좌파와 우파(left and right)’, ’정치적 행위체(political angency)’, ’생태적 쟁점들(ecological problems)’이다.
’범세계화’가 경제적 상호 의존 뿐만 아니라 통신 혁명과 정보기술 확산, 사람들의 생활에서 시간과 공간의 변형에 관한 것이기도 함을 지적한다. 그것은 새로운 초국가적 체제와 세력을 창조하면서 동시에 특히, 선진국에서 일상 생활과 제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기든스는 세계화 확대, 심화를 위해 주체적으로 작동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대해서는 철저히 분석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주의’는 단순한 시장의 영향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범세계화의 충격에 수반되는 현상이며, 부분적으로는 ’복지사회’가 창출한 바로 그 풍요의 결과로서 생활 양식이 다양해짐과 더불어 문화적으로 더욱 다원회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파 및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은 ’개인주의’에 대해 제대로된 해석과 입장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세계화가 ’개인주의’의 주요 원인이라는 저자의 분석은 틀린 것 같다. ’개인주의’는 봉건주의가 해체되고 자본주의 경제양식이 사회를 지배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화’는 ’개인주의’를 더 가속화시키고 ’개인’을 빈부격차로 양극화시키고 있을 뿐이다.)저자는 경제이론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사망함으로써 좌파와 우파를 나누던 중요한 구분선 중 하나가 사라졌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좌우파 구도의 범주에 없던 새로운 문제, 즉 지구온난화, 노동, 가족, 원자력, 권력이양, EU들이 나타나면서 ’좌파와 우파’에 대한 새로운 범위 설정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럼에도 그는 좌파 쪽에 선다는 것은 사회적 정의와 해방의 가치, 그리고 평등의 목표를 추진하고 여기에는 정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정치적 행위체’와 관련하여 저자는 시장이 대체할 수 없는 정부의 목적과 역할을 규정하면서 1980년대 국민들의 탈정치화 과정과 영향력 고갈이 시민사회 세력에서 정치 참여와 행동주의로 나타나고 확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집단들이 정부가 실패하고 있는 영역들을 인수하거나 정당의 지위를 대체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며, 다만 정부는 이러한 집단들로부터 배우고 그들이 제기하는 쟁점에 반응하고 협상하여 문제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직 노동자로 구성된 노동당의 지지구조와 노동조합에 지분을 할당한 의사결정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저자의 주장이 노동당에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와 결합도 여의치 않을 것이며, 이러한 상황은 또 다시 노동당의 약화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한다.)’생태적 쟁점’에 대해 저자는 ’생태적 현대화’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는 정부와 업계, 온건한 환경주의자, 그리고 과학자들이 환경적으로 보다 옹호할 만한 입장을 좇아 자본주의 정치 경제를 재구조화하는 데에 협력하는 형식의 동반자적 관계를 의미한다.기든스는 ’제3의 길 정치’의 전반적 목표가 ’다섯 가지 딜레마’ 속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길을 개척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범세계화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좌우의 구분을 벗어나는 질문의 범위들이 이전보다 더 넓어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사회 정의에 대한 핵심적 사항들을 보존해야 한다. 평등과 개인의 자유는 충돌할 수도 있지만 평등주의적 조치들은 종종 개인에게 열리 자유의 범위를 확대한다. 자유란 ’행위의 자율성’을 의미해야 하며 ’책임 없이 권리 없다(no right without responsibilities)’를 새로운 정치의 모토로서 제시할 수 있다.

제3장.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기든스는 새로운 민주국가는 ’적이 없는 국가’이어야 함을 정의하고 새로운 국가의 역할은 권력의 지방이양, 이중 민주화, 공공 영역의 쇄신과 투명성, 행정적 효율성, 직접민주주의의 메커니즘, 위험성 관리자로서의 정부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활기넘치는 시민사회 육성은 ’제3의 길 정치’의 기본적인 일부분이며, 시민사회의 쇄신을 위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동반자 관계 구축, 지방 주도를 통한 공동체 쇄신, 제3부문의 관여, 지방 공공 영역의 보호, 공동체에 기반한 범죄 예방, 민주적 가족이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가족 관점에서의 민주화는 평등, 상호존중, 자율성, 소통을 통한 의사 결정,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뜻한다. ’민주적 가족’을 위해 정서적 성적 평등, 관계에 있어서 상호 권리와 책임, 공동 양육, 평생 양육 계약, 아이들에 대한 타협적 권위,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책무, 사회적으로 통합된 가족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제4장. [사회투자 국가]에서 저자는 ’제3의 길 정치’에서 경제분야는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를 옹호함을 말한다. ’신혼합경제’란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사이의 상승 효과를 추구하며, 공익을 염두에 두고 시장의 역동성을 이용하는 것이다.
’제3의 길 정치’에서 평등은 ’포용’을, 불평등은 ’배제’를 의미하며, 포용적인 사회를 위해 포용으로서의 평등, 제한적인 능력지배, 공정 영역의 부흥, 노동사회를 넘어서, 적극적인 복지, 사회투자 국가가 필요함을 주장한다.
제5장. [범세계화 시대로]에서 저자는 범세계화 시대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족의 새로운 역할을 모색해야 함을 선언한다. 그는 민족주의의 분열적인 속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속성을 제어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민족에 대한 세계주의적 해석임을 주장한다.
그는 범세계화 과정들은 권력을 국가로부터 탈정치화된 범세계적 영역으로 이전시켰으나, 다른 사회적 환경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것의 보편적 중요성으로 보아 훨씬 더 이런 새로운 영역은 권리와 의무를 도입하는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유럽연합(EU)은 대중적인 지지를 잃어 가고 있는 동시에 유럽 시민들의 삶에서 점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EU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유럽의회의 보다 큰 권력을 보다 효과적인 초국가적 정당 조직과 연결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세계적 규모에서 시장근본주의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세계경제에서 특히, 금융시장을 규제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통화의 과도한 회전과 남발을 진정시키고 통제하는 것, 단기적 통화 투기와 투자를 분리하는 것, 그리고 세계경제 관리에 참여하는 초국가적 조직을 재편할 뿐만 아니라 그 조직에 대한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로부터 새롭게 많은 것을 배웠다. ’제3의 길’에 대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그리고 정책들, 마찬가지로 현대성, 개인주의, 정치적 행위체, 이중 민주화, 민주주의의 민주화, 직접민주주의, 민주적 가족, 행위의 자율성, 신혼합경제 등은 새로운 개념이자 사고 구조를 확대시켜 주었다. 국가의 역사, 정당의 역사, 이념의 역사 등 상당히 중요한 측면에서 영국과 한국이 다르기 때문에 기든스의 생각과 의견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도 아이디어와 정책에서 많은 부분을 비교하고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기든스가 이야기하는 ’제3의 길’이 어떤 배경에서 제기된 개념인지, 정치적 태도와 입장은 무엇인지, 주요 정책이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제3의 길’이 앞으로 어떤 변화와 발전, 실적을 보여줄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사회민주주의의 철학과 이론이 무엇인지,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제3의 길’의 철학과 이론이 무엇인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기든스는 학문적으로 ’제3의 길’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결국 현실 정치에서 필요한 정책을 제시했을 뿐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과 <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을 읽고서도 느꼈지만, 앤서니 기든스같은 저명한 학자이자 정치가가 정당에 참여하여 활동하고 있는 영국이 부럽다. 특히, 그의 철학이나 이념적 배경이 무엇이던간에 자유와 평등주의, 민주주의, 취약계층에 대한 애정, 시민사회 육성, 국가 개입, 합리적인 사고방식에 대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영국 민중들에게는 행운이다.  
 
역자인 한상진 교수의 말대로 이 책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서 시장경제의 논리와 시민적 연대 및 정의의 원리를 결합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 같다. 한교수는 <제3의 길>을 두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보적 지식인의 최소한의 양식과 개방적 사고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책이 처음 발간된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많은 나라들에서 ’제3의 길’을 표방하는 중도 좌파 정부가 집권한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 2011년 6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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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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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권의 부제는 ’악명높은 황제들’이다.

7권은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후 티베리우스가 로마의 새로운 임페라토르로 등극한 서기 14년부터 다섯 번째 임페라토르인 네로가 암살된 서기 68년까지를 다룬다. 
로마제정의 통치자는 아우구스투스 - 티베리우스 - 칼리쿨라 - 클라우디우스 - 네로로 이어진다.
이 닷서 명의 통치자 중 3명이, 7권 기간인 54년 동안에 자살 또는 타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리고 이 시기 동안 로마의 제정체제는 확고하게 정착되는 동시에 제정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역기능이 반대급부로 나타난다.
 
임페라토르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로마의 두 번째 통치자인 티베리우스는 로마의 명문가인 클라우디우스의 자손이었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하지만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양자가 되면서 이름마저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그는 핏줄로 제정을 이으려는 집념이 강했던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아우구스투스의 핏줄인 게르마니쿠스에게 통치자를 물려주기 위한 징검다리 통치자로 지명되어 임페라토르에 등극한 뒤에도 아무런 불만 없이 선제 아우구스투스의 유언을 지키고자 했다.
자신의 재임 중 게르마니쿠스가 사망하자 아우구스투스의 핏줄인 칼리쿨라를 후계자로 지명해 놓는다.
또한, 아우구스투스가 정착시킨 로마 제정을 더욱 확고하게 다지고자 하는 데 자신의 임기를 모두 바쳤다.
아무리 자존심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당시 로마의 귀족으로 태어난 그로서는 남모를 울분과 분노를 삼킬 수 밖에 없었을 터...
그는 자신을 더욱 강하게 채찍질하였고 그래서 말년에 로마 근처 쏘렌토 반도 인근 카프리섬에 쳐박혀 통치자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말년의 모습은 원로원과 시민들에게 반감을 샀다.
 
티베리우스는 동시대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와 중세 시대 역사가들에게도 줄곧 나쁜 평가를 받아왔다.
다행히 근대 이후 많은 사적과 유물이 발굴되면서 티베리우스의 통치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이 들어나면서 ’나름 훌륭한 통치자’로 복권되었다고 한다.
티베리우스가 제정을 다지고 로마의 궁극적인 3대 과제 - 방위, 식량, 내정 -에 기여한 것은 큰 편이다.
그는 임기 초기의 군단 봉기를 제압하고 재임 기간 내내 긴축 재정을 실시하여 재정 건전성을 높였으며,
라인 강 국경을 확정하고 방위체계를 구축하고 군사력을 기반으로 동방의 아르메니아-파르티아와 우호조약을 체결하여 안정시켰으며,
도나우강을 국경으로 하여 군단기지를 세우고 속주를 재편하면서 방위체계를 구축하고 두 번에 걸친 로마 시내의 화재를 복구하였다.
그리고 근위대 막사를 수도인 로마 부근에 배치하여 근위대 9,000명이 통치자의 보호와 로마의 치안을 담당하도록 한다.
 
하지만, 티베리우스에게도 가족운이 따르지 않았다.
큰아들 드루수스가 35세의 나이에 죽고 가족 중에 반정을 꾀한 자를 유배시키는 등 가족과도 계속 불화가 있었다.
그는 카프리섬의 별장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나이 77세, 23년간 통치...
 
세 번째 통치자는 약관의 나이 24세의 칼리쿨라. 그는 아우구스투스의 손자였다.
칼리쿨라는 티베리우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이였고 본인도 원로원과 시민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그는 임기 첫 해를 시민들에게 선심을 써서 인기를 얻을 전차 경주와 체육대회, 검투사 시합으로 보냈다.
물론, 로마에 필요한 기반시설을 신설(신규 수도 라인 건설 착수), 유지하는데도 앞장섰다.
로마 시내의 화재에 대한 피해를 국가가 전액 보상해 준다.
매상세 1%를 폐지하고 대규모 유흥 선박을 건조한다.
대부분의 정책이 ’인기 영합’에 따랐다.
 
다만, 그는 재정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부유층을 타깃으로 하여 ’국가반역죄’로 자신의 누이동생들을 유배시키고 군단 사령관에게 자살을 명령한다.
사소하고 자잘한 세금항목-땔감세,공창세,짐꾼,상속세갈취-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도 버림받기 시작했다.
결국, 칼리쿨라는 근위대 대대장에게 살해된다.
그의 나이 28세, 3년10개월간 통치...
 
그리고 국방과 외교정책도 실패했다.
특별한 의미없이 게르마니아 원정을 시도하다가 포기하고 유대교도를 차별적으로 대했으며,
북아프리카 마우리타니아 왕국과 브리타니아에도 위기의 싹을 만들었다.
 
여기서 작가의 명언 한 마디...
"테러 행위은 문명이 미숙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다. 선거로 낙선시키는 수단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테러를 저지르는 것도 아니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그 한 사람을 죽이면 정치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과 모든 제국, 그리고 독재자들이 기억해야 할 말이다.
 
네 번째 황제 클라우디우스...
공식 이름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그는 티베리우스의 조카이자 게르마니쿠스의 동생이고 칼리쿨라의 숙부인 명문 귀족 출신이다.
갈리아 속주(리옹)에서 아버지가 총독으로 근무했던 시절...
어머니는 아우구스투스의 누나인 옥타비아의 딸이다.
 
근위대들은 칼리쿨라를 죽인 뒤 칼리쿨라의 숙부인 클라우디우스를 찾아내어 근위대 병영으로 데려가 ’황제’라는 환호를 받게 한다.
본인도 예기치 못한 등극이었고 원로원도 어쩔 수 없이 승인했다고...
다행히 칼리쿨라를 죽인 근위대 대대장 2명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죽음에 승복했다.
클라우디우스는 살해에 가담한 다른 병사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다.
 
클라우디우스는 역사가였고 어렸을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를 절었다고...
그는 통치자가 되기 전에 <에트루리아 역사> 20권과 <카르타고 역사> 8권, 그리고 키케로의 전기를 썼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아우구스투스 시대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칼리쿨라의 실정을 뒤처리 했다. 
재정을 다시 건전하게 돌리고 수도공사를 재개하였으며, 로마의 외항 오스티아를 최고의 설비로 갖추도록 공사에 착수한다.
또한, 중부 이탈리아의 피치노 호수를 개간하여 경작지로 바꾼다.
매상세 1%를 부활시키고 구경거리와 검투사 시합을 축소한다.
칼리쿨라가 실패한 방위/외교 문제 - 마우리타니아,유대교,브리타니아- 도 안정적으로 정리한다.
 
제정 체계도 개편한다.
통치자 아래에 ’비서관 체계’를 구축하고 34년 만에 국세조사를 실시하여 징세의 폭을 넓혔으며,
우편제도를 재편하고 원로원에 갈리아인을 받아들이도록 개혁했다.
노예해방 규제법도 신설...
 
클라우디우스도 비서실장인 해방노예 나르키소스와 아내인 아그리파나 사이의 분쟁과 갈등을 겪으며 말년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날 죽었다. 역사가들은 아내가 클라우디우스에게 독버섯을 먹였다고 말한다.
이?날 네로가 근위대장과 나란히 황궁에 나타났다.
그의 나이 63세, 13년간 통치...
 
다섯 번째 통치자인 네로... 그 유명한 네로...   
 
클라우디우스의 사망을 확인한 네로는 곧장 근위대 병영으로 가서 근위병들에게 ’임페라토르’라는 환호를 받는다.
원로원도 재빨리 17세의 네로에게 전권을 부여키로 의결한다.
네로는 근위병들에게 1인당 15,000 세스테르티우스의 증여금을 약속했다.
네로는 원로원 연설에서 아우구스투스로 돌아가고 원로원의 권리를 존중하며 사법집행에 관여하지 않고 사저와 관저를 분리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네로에게는 세네카라는 원로원 의원이 한동안 정책을 보좌했다. 근위대장 부루스와 함께....
 
네로는 어머니 아그리파나와 갈등이 심했다.
아그리파나는 공석, 사석에서 자신이 네로를 통치자,황제로 만들었다고 말하고 네로에게도 그 말을 계속 주입했다.
네로가 그녀의 양자 브리타니쿠스를 죽였을 때 권력을 상실할 우려를 하고 맹렬하게 반격하다가 네로에게 살해된다.
네로는 여자 문제로 어머니와 갈등이 심한 끝에 해방노예와 근위대를 시켜 어머니 아그리파나를 살해한다.
 
그 이후 네로의 선정과 악정이 복잡하게 얽혀진다.
세네카의 퇴장과 부루스의 사망도 영향을 일부 미쳤을 것이다.
선정으로는 브리타니아에서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여 그 후 400년 동안이나 평화체제를 구축했다.
 
악정으로는 그리스 올림픽을 빗대어 로마 올림픽을 창설하였다가 몇 년 후 네로 사후에 비웃음만 받고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르메니아와 전투와 외교에 실패하여 분란의 싹을 남겨놓았다.
로마 대화재 발생 후 후속처리에 미숙하여 원로원과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역사적 사실은 로마 대화재 발생시 네로는 로마 시내가 아닌 50km 떨진 해변도시 안치오에 있었다.)
그리고 로마 대화재를 기독교도의 방화로 몰아 200~300명을 처형한다.
임기 말에 황제암살 음모가 발각되어 20~30명의 원로원 의원과 근위대 간부들이 처형된다. 군단병들의 반란 음모도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그 후 속주 총독 3명이 네로에게서 자살을 강요받았다.
 
네로와 관련하여 작가의 말...
"존경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존경받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실제적인 ’플러스 알파’, 즉 파급효과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성심성의껏 해나가면 남들도 알아줄 거라고 믿어 버린다.
유감이지만 인간성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인간이란 존재는,마음 속으로는 남에게 기분좋게 속기를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재주의 달인이었던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인에기는 두말할 여지없는 ’신격’으로 자리잡고,세계 역사에서도 제일급 스타라는 사실이 인간성의 이 진실을 증명해 주는 건 아닐까 "
 
네로의 임기 말 갈바 숙주 총독 루푸스가 反네로의 깃발을 들고 루시타니아 속주 총독 오토와 베티가 속주 총독대리 카이키나가 갈바를 지지한다.
고지 게르마니아 군단과 저지 게르마니아 군단은 중립을 지켰다.
갈바가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자 네로의 측근들은 사라지고 원로원이 네로를 ’국가의 적’으로 규정한다.
네로는 로마 교외로 도망치다가 병사들에게 포위되자 자결한다.
그의 나이 30세, 24년간 통치...
이로써 아우구스투스부터 시작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실제 7권의 통치자 4인에 대한 작가의 평가 결과는 부제와 달리 그다지 ’악명이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칼리쿨라가 조금 모자란 것 같기는 하지만...
칼리쿨라와 네로가 통치자로서의 위엄을 잊고 자신의 취향을 멋대로 부린 것은 부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지만,
로마의 3대 과제인 방위, 식량(경제), 내정(사회간접자본 포함)을 망친 것은 아니었다.
로마는 그런 부족한 통치자에도 불구하고 카이사르가 개척하고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가 뿌리내린 제정의 시스템 덕에 굳건하게 제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칼리쿨라와 클라우디우스, 네로의 마지막 죽음은 역으로 통치자 일인이 전권을 쥐게되는 제정 시스템은 항상 반란과 암살, 테러를 맞이할 수 있는 구조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로마 제정의 한계이기도 했다.
 
다시 작가의 말...
"역사를 공부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가 가진 자질의 우열이 아니라, 갖고 있는 자질을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 로마와 유대교 -
작가는 7권에서 로마와 유대교 및 기도교와의 역사적 사실관계에 대해 처음으로 길게 정리한다. 
로마는 건국이래 서기 4세기까지 유일신이 아닌 다신교의 종교정책을 유지했다.
전쟁으로 지배한 지역의 신까지도 포용하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위대한 통치자도 신격화한데다가 ’관용’같은 개념에도 신격화를 시도했다.
따라서 로마에는 신부나 목사, 전도사, 제사장과 같은 종교 직업군이 없었다.
다만, 모든 신들의 으뜸신을 유피테르신으로 모시고 1년에 한 번, 그리고 개선식 등에서 집정관이나 통치자가 예를 갖춘다.
즉, 로마인에게는 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신이 도움을 주는 정도로 신의 지위에 선을 그었다.
그런 면에서 유일신을 추구하고 신권정치를 주장하는 유대교나 기독교도는 로마에 적합하지 않았다.
로마가 지중해의 패권을 차지한 가장 중요한 이유가 "패자까지도 자신들과 동화하는"데 있었다.
패배한 여러 민족 중 유독 유대인만이 동화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유대의 헌법인 모세의 ’십계’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유대인들이 그것을 우상처럼 받들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다신교가 지배적인 당시 시대에 살면서 유대교가 그것을 지키려면,
그것도 약자의 처지에서 지키려면 ’선민사상’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로마와 그 속주, 자치국들이 군사력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로마 제국의 방어선을 지키고 전쟁을 치를 때,
유대교도와 기독교도는 군대에 지원하지도 않았고 행정력에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칼리쿨라나 네로처럼 일부 통치자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도를 탄압하고 처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로마 지도자들은 외국에서 다른 신을 모시고 믿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포용하였고
카이사르나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한 통치자들은 유대교도에게는 한 단계 더 자치를 인정하였다.
유대 속주에서 살인이나 일부 죄를 제외하고는 유대교도 자체의 사법 체계도 인정하였고
군무나 공무도 면제해 주었으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갖고 싶은 요망도 인정했다.
(예수는 당시 유대 행정장관인 빌라도가 제대로 로마 법을 집행했다면 사형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는 자신이 신이라고 자처하더라도 사형을 받을 만한 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빌라도는 그런 실정 등의 사유로 행정장관에서 짤리고 로마에 호출된다.)
 
그럼에도 종교 때문에 유대교 내부의 혼사를 장려한 유대민족의 많은 수는 거주지를 도시로 택했다.
그것은 도시에 살아야만이 경제적인 부를 이룰 수 있기 때문...




 

[ 2010년 9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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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6 - 팍스 로마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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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6>의 부제 : 팍스 로마나

6권은 카이사르가 암살된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새로운 최고사령관과 제일인자로 등극한 기원전 29년부터 그가 조용하게 생을 마감한 서기 14까지를 다룬다.
옥타비아누스는 34살에 지도자로 등극하여 77세까지 로마를 통치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유지를 받들어 40년간 통치하면서 로마를 공화정 체제에서 제정 체제로 확립시켰다.
그가 40년이란 긴 시간동안 최고일인자로 로마를 통치했던 것이 로마를 제정으로 확고히 다지는데 결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초기에 옥타비아누스는 원로원 정원을 900명에서 600명으로 줄이고 ’공화정으로의 복귀’를 선언하였다.
반대파를 물리치고 집권하였으나 숙청하지 않은데다가 ’공화정으로의 복귀’까지 선언하였기에 원로원과 귀족들은 옥타비아누스에게 안심하고 환영한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옥타비아누스는 제정체제에 가장 중요한 집정관, 최고사령과, 제일인자, 호민관특권 등의 권력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존엄한 자)’라는 호칭을 얻는다.
아우구스투수 이후의 로마 제일인자이자 황제들은 모두 공식 명칭에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는 명칭이 따라 붙는다.
그는 50만명이나 되는 로마의 군대를 절반으로 감축하여 재정의 부담을 구조적으로 감소시켰으며, 국세조사를 통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틀를 재정비했다.
훗날 ’황제묘(마우솔레움 아우구스타)’를 건립하여 황제들에 대한 신격화를 앞장서서 실현했고 카이사르가 처음 실시한 원로원고 국가정책에 대한 정보공개를 확대 실시하였다.
상설 내각과 국세청과 같은 기관을 창설하고 화폐개혁을 실시하였으며, 근위대를 창설하고 세제를 개편하였고 선거제도를 개혁하고 방위선을 재편하였다.
 
아우구스투스 통치시절에 들어서서 로마와 로마의 세력권에 포함된 자치국, 속주국가들은 로마에 의한 평화, 즉 ’팍스 로마나’ 시대에 들어선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 군대에 의하여 세력권의 평화가 유지되다는 의미, 즉 자치국과 속주국가들은 내정과 경제에 집중하기만 된다는 것이다.
’팍스 로마나’는 카이사르가 시작하고 아우구스투스가 구축한 이래 로마가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릴 때까지 무려 200년간 지속된다.
그 기간 동안 로마는 ’팍스 로마나’의 책임자로서 로마 군대를 이끌고 가끔씩 제국 내부의 반란, 이민족의 침입, 분쟁조정 등을 치르게 된다.
(여러가지 면에서 20~21세기의 ’팍스 아메리카나’와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작가는 옥타비아누스를 이야기할 때 ’균형감각’을 제시한다.
그가 카이사르의 제정을 충실히 구축하면서 동시에 반대파인 원로원의 요구도 충실하게 받아주었다는 것이다.
그 양 극단에 휘둘리지 않고 양쪽을 쉼없이 움직이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발씩 나아갔다는 것...
천재적인 자질을 가졌고 누구보다도 뛰어난 정치적, 군사적, 외교적, 행정적인 성과를 이룩한 양아버지 카이사르와 비교되면서 로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것에 후한 점수를 준 것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가 유언장에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로마 정계에 새롭게 등장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카이사르 암살 이후 권력쟁탈전에 뛰어든 안토니우스와의 전투에서 당당하게 승리하였기 때문에 일인자로 당당히 등극할 수 있었다.
그가 안토니우와 전투에서 승리하고 국내외 정치,외교에서 훌륭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명장 아그리파 장군과 마이케나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그리파는 카이사르가 생전에 옥타비아누스에게 붙여주었고 마이케나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직접 선발한 사람이었고 두 사람 모두 개인적인 야망보다 권력자의 성공에만 주력한 사람들이었다.

아무튼, 옥타비아누스는 여러가지로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전임 황제인 카이사르가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방위선을 구축한데다가 여러가지 법률과 정책으로 제국의 기틀을 갖추어 놓았고 옥타비아누스가 통치하기 위해 필요한 사람들까지 갖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원로원은 공화정을 담당할 능력을 한동안 상실한 상태였고 로마 시민들 역시 카이사르가 통치한 시기의 전과 후를 겪으면서 제일인자 통치체제가 가장 당시의 로마에 적합한 체제라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였다.
물론,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갖추어졌다고 해서 누구나 그 조건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옥타비아누스는 그런 조건이 갖추어진 시대에 맞게 로마를 완벽하게 제정으로 확립시키는 시대에 타고난 것이고 그에 걸맞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로마의 수 많은 왕과 집정관, 황제, 장군들 중에서 드물게 후세 역사가들에게 위대한 통치자로 인정받게된 것이다.
그 시대에 걸맞는 지도자가 존재하는 사회는 운이 좋은 것일까 아니면 그런 지도자의 출현 자체도 그 사회의 당연한 역량일까...
 
옥타비아누스는 40년간의 성공적인 치세와는 다르게 카이사르처럼 가족사는 불행했다.
그는 카이사르의 유지를 받들듯이 말년에 후계에 대해 상당히 집작하였다.
직계손자 중 가이우스와 루키우스는 일찍 죽었고 게르마니쿠스는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는 법률을 제정하면서까지 가정의 소중함을 로마에 심고자했지만, 자신의 딸인 율리아와 외손자 아그리파 포스트무스, 외손녀 율리아를 처벌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은 티베리우스를 양자로 삼아 권력을 이양하게 된다.


후세의 역사가들은 로마의 제정을 ’제국주의’ or ’독재국가’로 평가하기도 한다.
로마의 제정은 근현대 관점에서 당연히 독재이고 제국주의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기 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의 관점에서 로마의 제정을 평가해보면 현대의 평가결과와 다르지 않을까 싶다.







 

[ 2010년 9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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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당신 차례요, Mr. 브라운 - 영국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이렇게 해 주세요
앤서니 기든스 지음, 김연각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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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은 영국과 한국의 국민들과 진보세력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중요한 해였다. 영국 국민은 사회민주주의의 기치를 내건 집권 노동당의 집권 2기 동안의 실적을 평가하는 총선을 치루어야 했고 한국 국민들은 10년 동안 집권해온 민주개혁을 표방한 민주당의 실적을 평가하는 대선을 치러야 했다.선거 결과는 두 나라에서 전혀 반대로 나타났다.
총선 결과 영국의 집권 노동당은 3기 연속으로 다수당이 되었고 대선 결과 한국의 집권 민주당은 한나라당(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였다. 몰론, 단순히 노동당과 민주당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도 있다. 영국과 한국이 국가와 민족의 형성에서부터 역사, 현재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고 정당을 비교해도 영국의 노동당과 한국의 민주당은 역사와 주체, 성격과 구조, 이념과 정책에서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영국 노동당은 1906년에 창당되었고 지금까지 보수당과 함께 영국 양당구조를 형성해 왔다. 노동당은 창당에서 2007년까지 당원이 급격하게 줄었음에도 40만명(1997년)~20만명(2007년)으로 구성되어 있고 노동조합 등 주요 계급, 계층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어 명실상부하게 영국 국민으로 구성된 정당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의 민주당은 2003년에 창당한 집권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2008년 새롭게 창당하였다. 한국의 정당은 1946년 처음 창당된 이래 2011년까지 수십 개의 정당이 창당, 분당, 합당, 해산을 거치면서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물론, 그런 과정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정당은 ’진성당원’은 어느정도 존재하지만 실질적인 당원이나 조직운영 체계는 존재하지 않고 중앙당 조직체계와 국회의원, 지방의원, 자치단체장, 정치지망자로 이루어진 일종의 ’명사정당’이라 할 수 있다. 명확한 이념이나 정책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도 가지고 있지 않다. 현대적인 정당에 필요한 이념, 정책, 조직, 당원, 운영방식을 보이고 있는 정당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정도인데 그들은 아직 대중적으로 큰 지지를 얻고 있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당과 민주당, 보수당과 한나라당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 이유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첫 번째 이유는 노무현 전대통령이 관심 있게 읽고 주변에 추천한 책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고 다른 이유는 내일 이 책의 저자인 앤서니 기든스의 저작인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교재로 하여 세미나를 진행하는데 있어 기든스의 과거 저작들을 살펴봄으로써 기든스의 생각과 의견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함이다.
 
이 책은 제목에 딸린 부제 - ’영국 노동당이 다시 이기는 길’ - 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노동당의 상원의원이자 정책 브레인이 기든스가 2007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또다시 승리하고 집권하기 위하여, 그 해에 토니 블레어(Anthony Charles Lynton Blair)에 이어 영국 의회의 수상으로 선출된 고든 브라운(James Gordon Brown)에게 ’선거 승리 전략’을 조언하는 내용이다. 기든스는 노동당 집권 10년의 공과 과를 평가하고 향후 노동당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노동당은 2010년 5월 총선에서 패배하고 브라운이 사임하고 에드 밀리밴드를 새로운 당수로 선출)
 
이 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역자는 민주노동당원으로 활동 중인 김연각인데, 그는 영국과 한국의 현실과 조건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번영’과 ’사회정의’가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 역시 기본적으로 보편성을 띨 수밖에 없기에 한국과 민주노동당에게 이 책이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미 20세기 말에 <제3의 길>이란 저서를 통하여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진 기든스는 대체로 노동당의 10년 집권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중도좌파로서 노동당의 이념적 지향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을 검토하고 보완하고 새로 제시하고 있다.
 
세부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머리말]에서 저자는 자신이 어떻게 학자의 길에서 학자와 정치를 병행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저서 <제3의 길>이 199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클린턴과 블레어 총리의 대화를 계기로 하여 써졌음을 밝힌다.
 
[개설]에서 저자는 오랜 기간 야당으로 머물다가 20세기 후반에 ’제3의 길’을 내세우면서 승리했던 노동당의 10년 집권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한다. 그는 21세기에 필요한 새로운 정책 전망, 정책내용이 풍부한 전망으로서 ’제3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노동당이 자신의 운명을 바꾸었다고 말한다. ’제3의 길’은 좌파의 기치,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을 진정으로 수호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당이 집권하는 동안 영국은 효과적인 거시경제정책에 힘입어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누렸고 완전고용에 가까운 결과를 거두었다. 지속적인 성장을 기초로 공공서비스 분야와 빈곤퇴치 조치(1997년 이후 200만명이 빈곤에서 탈출)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노동당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고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제시한다. 국가의 역할과 공공서비스의 성격에 대해 더 명확한 정의를 제시해야 하고 더 명시적으로 평등주의를 지향해야 하며, 탈중앙화와 권한이양 문제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핵무기 확산과 기후변화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국민들의 생활양식을 바꾸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개념을 ’적극적 복지’를 제시하면서 복지를 경제적 역동성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더 다원주의적으로 이끌어야 함을 주장한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이라크 철수를 모색하고 EU의 역할을 강화하여 기후변화, 에너지 안보, 이민, 국제범죄, 마약, 밀입국 등의 문제를 다루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노동당이 4기 집권에 성공하려면 대다수 유권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이상을 내걸고 그것에 도달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말하는 이상이란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정의를 조화시키면서 양자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저자는 소위 “미래와의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16개 항을 제시하고 있다.
 
1장. [지난 10년 : 노동당의 성공과 실패] ’제1의 길’인 구좌파의 정치철학과 ’제2의 길’인 신자유주의는 극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세계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음을 주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영국 노동당이 1990년대 초 이래 미국의 신민주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인정한다. 1990년대에 미국의 신민주당의 정책방향인 선택, 경쟁, 시장식 인센티브, 기회, 책임, 공동체, 시민권 협약, 자유무역, 민주주의 확산 지원 등의 상당수 아이디어가 영국 노동당에게 전수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20세기 말에 수정된 노동당의 강령(’8대 테마’)는 경제를 우선하라, 정치의 가운데 마당을 장악하라, 권리와 함께 의무에 기반을 둔 새로운 시민권 협약을 만들라, 사회정의를 추구함에 있어 부자보다 빈자에게 집중하라, 무엇보다도 교육과 의료보험 같은 공공서비스 분야에 투자하라, 어떤 이슈에서도 우파에게 양보하지 마라, 이민은 대개 받아들이되 사회에 이익이 되지만 그래도 이민은 규제되어야 한다,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라"이다.
저자는 노동당 정부가 대체로 성공적인 정부였다고 평가하면서 남아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 사례로 이데올로기 정립의 실패, 사회정의에 대한 충실성 부족, 헌법개정과 권한이양 문제, 기업 자본주의에 대한 영향력 제고 실패, 환경 의제 도입 거부, EU 결합 실패, 이라크 전쟁 등 외교 난맥상 등을 들고 있다.
 
2장. [경쟁자들 : 브라운대 캐머런] 저자는 고든 브라운 신임 총리와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William Donald Cameron), 자유민주당의 멘지스 켐블을 비교하면서 브라운의 장단점을 지적한다. 보수당과 자유당이 당내 화합과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새로운 철학과 정책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고 노동당과 차별화시키지 못한다고 분석하면서 브라운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다.
 
3장. [변화하는 세계 :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저자는 ’세계화는 세계사회의 상호의존성 증대’라고 정의하면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세계화에 대한 지나친 찬양과 저주 모두를 비판하면서 위협과 기회를 모두 가져오고 있다고 분석한다.
저자는 세계화가 지역 구석구석까지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사항들을 지적한다. 그 사례로 산업간 기업간 경쟁, 일자리 축소, 임금 경쟁, 기후변화, 국제테러, 이민, 빈곤, 정신병 등을 말한다.
저자는 급변하는 세계속에서 노동당이 구노동당이 아닌 신노동당으로 계속 남아야 하고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7가지 원칙을 열거한다. 7가지는 1. 계속해서 경제에 강조점을 둘 것, 2. 가운데 마당을 포기하지 말 것, 3. 교육에 높은 우선 순위를 둘 것, 4. 빈곤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고 확장할 것, 5. 범죄나 반사회적 행위에 맞서 싸울 것, 6. 경제적 이민을 효과적으로 규제할 것, 7. 국제 테러의 위협에 소홀하지 말 것을 말한다.
 
4장. [공공 서비스 : 사람을 맨 앞에 두기] 저자는 노동당이 그동안 국가의 개념을 ’가능케 해주는 국가 Enabling state’이었으며 앞으로는 이에 더하여 ’확신을 주는 국가 Ensuring state’를 추가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당의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정책이자 핵심 강력인 ’공공 서비스’가 총선에서 가장 큰 변수임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해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공공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유럽 다른 국가보다 뒤처지게 되었음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검토한다.
저자는 공공 서비스의 효율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관-민 제휴관계’가 더 확장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추가 세금징수 없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제안한다.
그리고 공공 서비스 수혜자들의 참여가 중요함을 지적하면서 특히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선택’을 도입할 것과 ’수익자 부담’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의사결정 과정을 분권화시키고 다양하고 유연한 제도를 도입해야 함을 역설한다.
 
5장. [우리는 더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에서 저자는 시장 또는 자본주의적 기업이 경제적 효율성의 열쇠이고 번영의 열쇠라는 점에서, 시장이 본래부터 자유로운 소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업들은 법을 만들지 않고 군대를 보유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칙적으로 시장에서의 경쟁이 가격을 끌어내리는 동시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장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자본주의 자체를 움직이는 동기와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시장친화적’이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시장친화적인 가운데 사회적 보호와 일자리 창출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데 이것을 위해 ’유연안전성 flexicurity’와 가능한 최저임금이 핵심임을 제시한다. 기업의 경우 책임성을 강화해야 하고 추가적인 세금보다 세금의 조정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저자는 아동빈곤 해소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하고 있으며 결론으로 영국의 뿌리 깊은 불평등을 조장하는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16개 정책 분야를 제시한다. 여기에는 아동빈곤 감축, 전통적 재분배 장치 유지,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고용보험과 임금보험의 가능성, 노인 일자리 창출, 고착화된 빈곤 해결, 자산형성 제도, 빈곤의 전기적 특성 고려, 임시노동시장 검토,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 여성 노인 배려, 생활방식의 변화, 빈곤층 학보모의 학교 선택권 강화, 사립학교 변화 유도, 대학 입학 제도 보완, 부자의 사회적 의무 강화이다.
 
6장. [생활양식 바꾸기 : 새로운 의제] 저자는 적극적 복지를 추진하기 위해 4개 분야 - 장애, 고령, 건강, 기후변화 - 에 대한 개입을 확대할 것을 주장한다. 적극적인 복지란 ’사전예방적’인 것이고 ’사회문제의 근원을 찾아 그것과 씨름하는 자세’를 뜻한다. 4대 분야는 정부의 적극적인 복지정책만이 아니라 생활양식의 변화를 함께 이루어내야 상당부분 개선시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영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한다. 그것은 이산화탄소 가격제의 도입, 기술발전의 속도를 높이기 위한 정책의 도입, 각 가정의 소비 패턴 변화 유도, 취약성에 대해 시급한 국가적 평가 실시를 말한다.
 
7장. [다문화주의 : 포기하기 없기!] 저자는 여러가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이민이 영국에게 위협이자 기회임을 설명하고 영국에 필요한 기술 이민 등은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중심으로 하는 낮은 이민은 계속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노동당은 ’다문화주의’를 방어해야 함을 역설한다. 다만, ’다문화주의’가 사회 속에 다양한 문화가 따로 따로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유지되는 제도와 정치, 문화라는 틀 속에서 각 문화가 조화롭게 교류함을 뜻한다.
 
8장. [섬나라 의식 떨쳐버리기]에서 저자는 영국인에게 내재하고 있는 ’섬나라 의식’을 떨쳐내기 위해 ’상징’과 ’의례’를 중시하고 영국과 노동당이 EU와의 협력과 EU의 강화에 기여해야 함을 주장한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이라크로부터 가까운 장래에 영국군을 철수해야 하고 국제테러에 대처하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외교에 있어서는 협상, 협력, 국제법 존중이 무력 사용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짐을 인정하여 ’공격적 다자주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장. [진보적 합의를 형성하는 방법]에서 저자는 스마트폰과 인터넷 등을 통해 문자매체나 전자매체 등 새로운 매체가 일상적 민주화의 진행과정과 동일한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이 ’소극적 신뢰’에서 ’적극적 신뢰’로 변화됨을 말한다. 이는 ’심의민주주의’가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동당이 논의 중인 헌법개정안에 심의민주주의를 더 많이 도입해야 하고 심의적 과정을 개정안의 기초 가운데 하나로 삼아야 함을 주장한다. 그 방향은 ’탈중앙화’와 ’주변부 집단의 참여’이다.
 
10장. [미래와의 계약]에서 저자는 노동당의 목표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하여 번영하는 사회, 공정하고 개방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위해 정부와 시민 사이에 ’미래와의 계약’을 합의하는 것이 중요함을 주장한다. ’미래와의 계약서’의 조항은,
1. 경제적 성공이 다른 많은 것들의 기초이므로 가장 중요하다. 안정적 성장과 지속적인 저물가, 최저임금의 꾸준한 상승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유연안정성, 생산성 향상과 빈곤층의 생존기회 향상, 유인을 위한 규제
2. 삶의 많은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 국가는 시장 부문과 시민사회, 그리고 개인과 협력관계 유지, 시민들의 선택권과 목소리
3. 정부 자체와 교육 의료 분야에서 권한이양. 심의민주주의 실험
4. 기후변화를 통제하고 적응하는 것을 시민의 권리와 의무의 필수항목으로
5. 환경세와 세금 인센티브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세제도 개편
6. 평등주의 정당의 강화. 경제적 역동성과 일자리 창출과 빈곤 완화가 정책의 우선순위로.
7. ’어린이 먼저!’ 아동빈곤 축소
8.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
9. 교육과 의료분야는 정책의 상위 순위 유지
10. 사해동포주의적 국가로서 영국의 통합성 유지
11. 이민은 엄격히 규제
12. 정체성과 사회의 가치관을 지키는 것은 다문화주의의 전제조건
13. "범죄에 강경하게, 범죄의 원인에 강경하게"
14. 국제 테러리즘에 대한 적절한 조치
15. EU와의 협력. 역할 강화 
  
(단순한 비교는 여전히 어렵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왜 영국 노동당이 2007년 총선에서 승리했는지, 한국의 민주당이 2007년 대선에서 패배했는지 그 이유를 분석하는데 중요한 요인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국한하여 본다면 정당의 이념과 정책, 역사와 교훈, 정치경제사회에 대한 분석과 대안제시 등에 있어서 노동당과 민주당은 비교하기조차 어렵다.(한나라당도 마찬가지..) 한국의 정당 내부 지도자나 유력인사, 정책 브레인 중에서 기든스만큼 소속 정당에 대해, 국가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정책내용과 평가에 대해, 경제와 사회문화에 대해, 외교에 대해 전체적, 기본적으로 알고 있고 평가할 수 있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물론, 그 이유는 영국 노동당의 역사와 한국의 정당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더 깊이 내려가면 영국의 정치사, 근현대사와 한국의 정치사, 근현대사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5~60년만에 국민 1인당 GDP를 2만 달러로 올려놓은 한국민의 저력이 정치와 사회문화에서 발휘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국가와 국민을 위하고 사회정의와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외부적인 조건이나 상황을 핑계댈 수는 없는 것이다.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노동당의 정책 브레인이자 유럽의 저명한 학자로서 기든스의 평가와 전략은 종합적이고 명쾌하다. 그리고 영국과 노동당이 처해있는 현실과 조건도 잘 파악할 수 있었다. 아무리 노동당의 이념과 정책이 수정주의이고 ’짬뽕’이라고 해도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책 속에 나열되어 있는 영국 국민들의 생활과 조건은 부럽기 그지 없었다. 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수준이 영국의 1980~ 1990년대 수준까지만 되어도 국민들이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3의 길’의 이념이나 좌파의 가치, 사회민주주의의 가치를 언급하고 제시하지만 내가 부족하고 어리석은지는 몰라도 저자의 이념이나 가치가 명쾌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마 <제3의 길>을 읽어보면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보니 직전에 읽은 기든스가 왜 <기후변화의 정치학>을 후속작으로 펴냈는지 알 것도 같다. 책 속에 나타난 바와 같이 영국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모두 ’온실가스’와 ’기후변화’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EU가 주도하고 있는 국제적인 협의와 협상이 계속 구체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않은 것을 답답해하고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EU의 역할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음에도 국제적으로 기후변화와 에너지 안보 문제를 처리하는데 있어 EU말고 다른 대안이 없음을 인정한다.
 
기든스의 ’제3의 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이 책은 <제3의 길>이 아니고 ’노동당 집권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의 글 속에 부분적으로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제법 있었다. 저자의 이야기대로 영국 총선을 준비하기 위해 급하게 써서 발간한 책이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나 자세한 주장이 들어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지적할 것은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겠다.
 
먼저, ’세계화’에 대한 정의와 태도에 관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세계화는 과학기술에 힘입은 바 크고 각 개인과 지역, 국가의 ’내부와 외부에서 동시에 밀어닥쳐 오는 것’임을 나 역시 원칙적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세계화가 ’상호의존적’이고 양방향의 과정인 것도 맞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세계화가 ’힘의 불균형 체제’가 아니라고 정의할 수는 없다.(p.98)
영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이 사회정의와 경제적 평등주의를 추구하고 일정한 성과를 달성한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통제되지 않는 자본주의’의 위험성 때문이다. ’통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18세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까지 수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말 그대로 ’도탄’에 빠트리고 고통과 죽음, 불행과 빈곤의 나락으로 빠트렸다. 세계화 역시 자본주의 시스템이 기초로 작용하기 때문에 통제받지 않을 경우 국가 시스템이 건강하지 못한 많은 빈곤국가와 개발도상국가를 동일한 처지로 내몰 것이다. 영국과 유럽의 경우에도 자칫 잘못하면 중산층 이하 계층이 심각한 타격을 받아 그동안 이루어낸 ’평등수준’을 위협할 것이다.
 
두번째, 헤지펀드에 대한 과소평가. 저자는 헤지펀드가 자본시장의 구조적 위험요인이 아니라 그 반대의 효과를 갖는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p.173) 하지만 저자가 잘못 판단했다는 것은 계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IMF 이후 지속적으로 헤지펀드에 의한 부동산과 기업의 주식 헐값 & 불법 인수가 문제로 나타나고 있고 ’수익성’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기 때문에 국민경제나 개별기업, 시장참여자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세번째, 저자는 국제적인 테러가 종교적 근본주의만이 테러 위협의 유일한 원천이 아니라고 하지만 종교적 신념과 지정학적 목적이 크다고 주장하고 있다.(p.292) 이런 인식은 다분히 서구 중심적, 서구 편향적이고 특히 영미식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21세기 국제적인 테러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구국가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 지구 전역에 끼쳐온 영향에 대한 ’역풍 blowback’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 백>에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 영국 노동당의 역사에 대한 김수행 교수의 자료를 하나 첨부
 
[ 2011년 6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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