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책장에 꽂아놓고 여러번 읽을만 하다.
 
지난 달 MB정부의 인사청문회에서 여러 명이 탈락하고 여러 명이 도덕적으로 상처를 받았다.
국무총리 후보 김태호씨와 문화부장관 후보 신재민씨...
그들은 불법행위를 저질렀는가? 아니면 부도덕한 행위를 한 것인가?
특임장관 후보와 이재오씨와 경찰청장 후보 조현오씨는 과연 ’정당’한가?
21세기 한국사회는 ’정의’나 ’도덕’에 대해서 너무 자의적이고 임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의 경우 더 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 기준’을 가지고 있을까??
  
"당신은 전차 기관사이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철로를 질주한다고 가정해보자.
저 앞에 인부 다섯 명이 작업 도구를 들고 철로에 서 있다. 전차를 멈추려 했지만 불가능하다.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이 속도로 다섯 명의 인부를 들이받으면 모두 죽고 만다는 사실을 알기에(이 생각이 옳다고 가정하자.) 필사적인 심정이 된다.
이때 오른쪽에 있는 비상 철로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에도 인부가 있지만, 한 명이다.
전차를 비상 철로로 돌리면 인부 한 사람이 죽는 대신 다섯 사람이 살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돌려! 죄 없는 사람 하나가 죽겠지만, 다섯이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목숨을 구하는 행위는 정당해 보인다.
이제 다른 전차 이야기를 해보자.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이번에는 비상 철로가 없다.)
저 아래 철로로 전차가 들어오고, 철로 끝에 인부 다섯 명이 있다. 이번에도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다.
전차가 인부 다섯 명을 들이받기 직전이다.
피할 수 없는 재앙 앞에 무력감을 느끼다가 문득 당신 옆에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서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은 그 사람을 밀어서 전차가 들어오는 철로로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면 남자는 죽겠지만 인부 다섯 명은 목숨을 건질 것이다.
(당신이 직접 철로로 몸을 던질 생각도 했지만, 전차를 멈추기에는 몸집이 너무 작다.)
그렇다면 덩치 큰 남자를 철로로 미는 행위가 옳은 일인가?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연히 옳지 않지. 그 남자를 철로로 미는 건 아주 몹쓸 짓이야."
누군가를 다리 아래로 밀어 죽게 하는 행위는 비록 죄 없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한다 해도 끔찍한 짓 같다.
그러나 여기서 애매한 도덕적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희생해 다섯 사람을 구하는 첫 번째 예에서는 옳은 것 같았던 원칙이 왜 두 번째 예에서는 잘못된 원칙으로 보일까? "
(책의 본문 중에서 / pp.36~40)
 
이 책은 저자가 하버드대학에서 20년간 수강생들에게 ’정의’와 ’도덕’에 대하여 강의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엮은 책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저자는 사회에서 정의에 대해 묻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회가 정의로운지 묻는 것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 공직과 영광 등을 어떻게 분배하는지 묻는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이것을 올바르게 분배한다. 다시 말해, 각 개인에게 합당한 몫을 나누어 준다.
이 때 누가, 왜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묻다 보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서구와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런 ’정의’를 묻고 논의하기 시작했고
대립하는 여러가지 주장을 검토하면서 ’재화 분배’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을 찾았다.
그것은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었다.
저자는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사례와 이론을 검토하면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도덕적 진실과 도덕적 사고, 도덕적 판단을 위해 정치철학을 탐구하자고 제안한다.
 
이 책이 아리스토 텔레스, 칸트, 제레미 반담(공리주의),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자유지상주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어려운 고대와 근현대 정치철학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것은 저자가 아래와 같은 상당히 많은 사례와 샘플을 제시하면서 독자들의 구체적인 고민을 이끌어내면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논쟁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 철로에 서 있는 인부들을 어떻게 구출해야 하는가?
- 2004년 플로리다를 덮친 허리케인의 악몽 속에서 물품과 서비스 가격을 10배 이상 올려 폴리를 취한 업자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수 있을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 2008년 미국 금융계가 구제금융을 받은 후에 임원들에게 상여금을 지급한 것은 부당한 행위인가?
- 2005년 아프카니스탄에 비밀정찰업무로 파견된 미국 특수부대원들이 정찰 중에 염소치기 민간인(아파카니스탄인과 어린이)을 발견하였을 때 이들을 사살해야 했을까? [당시 미군들은 그 민간인들을 살려주었고 몇 시간 후 탈레반들에게 포위되어 세명이 죽고 구출하러온 헬리콥터도 파괴되어 추가로 16명이 죽었다.)
- 1884년 영국 선원 4명이 배가 난파되어 구명보트에서 구조를 기다리다가 19일째 되는날 가장 어리고 병약한 젊은이를 살해하여 5일간 식용으로 먹은 후 구조되었다. 이들을 처벌해야 하는가?
- 한 때 한국 젊은이들이 푹 빠진 미국 드라마 ’24시’에서 주인공 잭 바우어는 테러리스트라고 확신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고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것은 정당한가?
- 대가를 받는 임신은 권리나 합리적 계약인가, 부도덕한가?
- 마이클 조던이 마직으로 NBA 무대를 뛸 때, 그는 한 시즌에 3,100만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이 때 정부가 조던의 연봉에서 상당한 세금을 부과하여 가난한 이들의 복지에 사용하는 것은 조던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 2001년 독일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자가 인터넷에 ’죽어서 먹힐 의향이 있는 사람을 찾는’ 광고를 올려 찾아온 컴퓨터기술자를 죽여 시체를 토막낸 뒤 요리해 먹었다.
이 때 그에게 살인죄를 적용할 수 있을까?
- 군대에 대한 봉급제, 징집제, 자원제, 용병제는 도덕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정의와 부정의,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에 관하여 다양한 주장이 난무하는 영역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사상의 역사가 아닌 도덕적, 철학적 사고를 여행한다.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가 책 속에 등장하지만 정치사상사에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미쳤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정의’와 ’도덕’에 대한 주요 이론과 주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아리스토 텔레스 : "정의는 목적론에 근거한다. 권리를 정의하려면 문제가 되는 사회적 행위의 ’텔로스(목적,목표,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바이올린은 세상에서 가장 바이올린을 잘 켜는 자가 차지해야 한다.
2. 제레미 반담 : 도덕의 최고 원칙은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쾌락이 고통을 넘어서도록 하여 전반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것. 사람들의 옮은 행위는 ’공리’를 극대화하는 모든 행위.
3. 존 스튜어트 밀 : 사람들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면서 개인을 보호하려 들거나 다수가 믿는 최선을 삶을 개인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4.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 "경제평등을 성취하려는 시도는 하나같이 강압적이고 자유사회를 파괴하기 마련".
  "국가가 할 일이라고 널리 인식된 행위 가운데 상당수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행위".
5. 로버트 노직 : 분배정의를 구현하려면 돈을 벌 때 사용한 자원이 애초에 합법적인 소유물이었는지, 시장에서 자유로운 교환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다른 사람이 건네준 선물로 벌었는지가 중요하다. 부당하게 얻은 것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하지 않는 한 자유시장에서 분배는 그 결과가 평등하든 불평등하든 정당하다.
6. 이마누엘 칸트 : 어떤 행동이 도덕적으로 선하려면 "도덕법에 순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덕법 그 자체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행동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는 동기는 의무인데, 칸트가 말하는 의무 동기란 올바른 이유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6. 존 롤스 : "자연의 분배방식은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특정한 사회적 위치에 놓이는 것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타고나는 요소일 뿐이다. 공정이나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우리가 그러하 요소를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고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을 자신을 위해 이용하려면 그 행위가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존 롤스의 이론을 결론으로 삼고 그에게서 21세기 미국의 ’정의’와 ’도덕’을 찾는 듯 하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정의와 권리에 관한 논의를 좋은 삶에 대한 논의에서 분리하려는 시도는  두 가지 이유로 잘못이다.
본질적인 도덕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의와 권리의 문제를 결정할 수 없고,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바람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려운 정치철학의 개념과 이론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풀어나간다.
하버드에서 그를 유명하게 만든 실제 정의 수업의 방식은 이 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도발적으로 질문하고, 반박하고, 재검토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과정은
다원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각계 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저자가 제시한 수 많은 사례는 한국사회,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않게 벌어지는 여러가지 사건과 상황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우리 역시 ’정의’나 ’도덕’에 대해 자주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으니까... 
그나마 머리 속에서 웅얼대고 혼란스러웠던 ’정의’와 ’도덕’에 대한 저자의 논리와 의견을 접하고서
내 나름대로 여러가지 해석 및 판단기준을 세울 수 있음이 이 책을 읽은 소득이고...
 
이 책을 읽으면서 부러웠던 점은,
중요한 철학적, 도덕적 쟁점과 개념을 공개적으로 오픈하고
다양한 사람과 계층, 집단이 상대방의 의견과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공공연하게 펼치는 점과
그것을 이성적,논리적으로 헤쳐나가려 하는 노력한다는 점...
아마 그런 토대가 19세기와 20세기에 서구와 미국이 지구의 정치경제와 문화사상을 주도하게 된 근본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서구식, 미국식 ’정의’와 ’도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록 내가 한국, 중국 등 동양의 고전에 대해 그다지 아는 바가 없고
결과적으로 동양이 서양 문물에 경도되어 왔던 20세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 책 속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고 부족한지 지적할 수는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고 무언가 안타깝고 아쉬웠다.
 
물론, 나의 ’부덕’과 ’무지’의 소치이지만...ㅎㅎ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 들어가는 말

[1] 옳은 일 하기
1. 행복, 자유, 미덕
2. 어떤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3. 구제금융을 둘러싼 분노
4. 정의를 이해하는 세 가지 방식
5. 철로를 이탈한 전차
6. 아프가니스탄의 염소치기
7. 도덕적 딜레마

[2] 최대 행복 원칙
1. 공리주의
2.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
3. 반박 1: 개인의 권리
4. 반박 2: 가치를 나타내는 단일통화
5. 대가를 받고 치르는 고통
6. 존 스튜어트 밀

[3]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1. 자유지상주의
2. 최소국가
3. 자유시장 철학
4. 마이클 조던의 돈
5.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4] 대리인 고용하기
1. 시장과 도덕
2. 징집과 고용, 무엇이 옳은가?
3. 자원군 옹호
4. 대가를 받는 임신
5. 대리 출산 계약과 정의
6. 외주 임신

[5] 중요한 것은 동기다
1. 이마누엘 칸트
2. 칸트의 권리 옹호
3. 행복 극대화의 문제점
4. 자유란 무엇인가?
5. 사람과 사물
6.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7.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8. 정언명령 대 가언명령
9. 도덕과 자유
10. 칸트에 대한 의문
11.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6] 평등 옹호
1. 존 롤스
2. 계약의 도덕적 한계
3. 합의만으로는 부족할 때: 야구 카드와 물이 새는 변기
4.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을 때: 흄의 집과 유리닦이
5. 이익인가, 합의인가? 샘의 자동차 수리
6. 완벽한 계약 상상하기
7. 정의의 원칙 두 가지
8.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9. 평등주의 악몽
10.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11. 삶은 불공평한가?

[7] 소수집단우대정책 논쟁
1. 시험 격차 바로잡기
2. 과거의 잘못 보상하기
3. 다양성 증대
4. 인종별 우대정책은 권리를 침해하는가?
5. 인종분리정책과 반유대적 할당제
6. 백인 우대 정책?
7.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서 분리될 수 있는가?
8. 대학이 경매로 입학생을 뽑아도 될까?

[8] 누가 어떤 자격을 가졌는가?
1. 아리스토텔레스
2. 정의, 텔로스, 영광
3. 목적론적 사고: 테니스 코트와 [곰돌이 푸]
4. 대학의 텔로스는 무엇인가?
5. 정치의 목적은 무엇인가?
6.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가?
7. 행동으로 터득하기
8. 정치와 좋은 삶

[9]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
1. 충직 딜레마
2. 사죄와 손해배상
3. 조상의 죄를 우리가 속죄해야 하는가?
4. 도덕적 개인주의
5. 정부는 도덕적으로 중립을 지켜야 하는가?
6. 정의와 자유
7. 공동체의 요구
8. 이야기하는 존재
9. 합의를 넘어서는 의무
10. 연대와 소속
11. 애국심이 미덕인가?
12. 연대는 우리 사람만 챙기는 편애인가?
13. 충직이 보편적 도덕 원칙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14. 정의와 좋은 삶

[10] 정의와 공동선
1. 중립을 지키려는 열망
2. 낙태와 줄기세포 논란
3. 동성혼
4. 정의와 좋은 삶
5. 공동선의 정치 

[ 2010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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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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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한 달여만에 소설을 집어들었다. 직전에 읽은 [발해고]와 이 책은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가 아닙니다]를 읽으면서 무거워진 머리와 부글부글 끓는 가슴을 식히기 위해 읽었다.(그런데 유득공의 [발해고]는 머리와 가슴을 식혀주기는 커녕 한숨만 나오게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가공된 환경에서 가공인물에 의해 전개되는 것이니 그래도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하고 추리하는 기분을 들게해 주었다.
 
이 책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라마구(Jose Saramago)의 ’도시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다.
도시에 실명 바이러스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이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눈이 먼 자들을 모아 정신병동에 가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먼 자들 사이에서 실명하지 않은 단 한 명, 의사 부인은 인간을 두 종류로 구분하여 바라본다. 생존을 위해 남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동물적 본능이 살아 있는 인간과 서로를 보살피고 헌신하며 순간에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의 참모습이 그것이다.
소설의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을 탄생한 동명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2008년 개봉,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 마크 러팔로, 줄리안 무어 출연)는 원작의 숨 막힐 듯 한 감정과 깊이 있는 스토리를 스크린으로 옮기기에는 역부족 이였다는 평단의 혹평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깊은 관심과 2008 시체스영화제의 수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한다.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사라마구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의 섬뜩하고 추악한 본질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 * 주제 사마라구는 누구인가? ----------------------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든여섯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
 
<줄거리> 
한 도시에 갑자기 눈앞이 뿌옇게 안 보이는 `실명` 전염병이 퍼진다. 첫번째 희생자는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차를 운전하던 사람. 그는 안과 의사에게 가봤지만, 의사 역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그날 밤 ’실명병’을 고민하던 그 자신도 그만 눈이 멀어버린다.
이 전염병은 사회 전체로 퍼져나간다. 정부 당국은 눈먼 자들을 모아 이전에 정신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에 강제로 수용해 놓고 무장한 군인들에게 감시할 것을 명령하며, 탈출하려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고 말한다. 수용소 내부에서는 눈먼 자들 사이에 식량 약탈, 강간 등 온갖 범죄가 만연한다. 화재가 발생해 불길에 휩싸인 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 사람들은 수용소 밖 역시 썩은 시체와 쓰레기로 가득한 폐허가 되었고, 공기는 역겨운 냄새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된다. 처음 ’실명병’이 발병한 이래 얼마 되지 않은 시간 만에 도시와 국가 전체로 확산되어 말 그대로 ’눈 먼 자들의 도시(국가)’가 되어버렸다.
이 악몽의 유일한 목격자는 수용소로 가야 하는 남편(안과 의사)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눈이 먼 것처럼 위장했던 의사의 아내. 그녀는 황량한 도시로 탈출하기까지 자신과 함께 수용소에 맨 처음 들어갔던 눈먼 사람들을 인도한다. 남편, 맨 처음 눈먼 남자와 그의 아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 엄마 없는 소년 등 이름없는 사람들로 구성된 이 눈먼 사람들의 무리를 안내하고 보호한다. 그녀는 폭력이 난무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를 책임감으로 받아들이며, 희생과 헌신을 한다. 눈먼 사람들이 서로간에 진정한 인간미를 느끼며 타인과 자신을 위해 사는 법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들은 드디어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이 작품은 문장 부호가 무시된 채 격류가 흐르는 듯한 문체로 쓰였다. 그래서 처음 몇 쪽은 읽기가 다소 생소하다. 역자는 <해설>에서 "사마라구의 작품에는 담론간의 일치나 담론의 내적 긴장이 중시되고 있으며, 문장부호를 생략하며 직,간접 화법조차 구분하지 않는 그의 작품이 독자들을 몹시 긴장시키며 집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그런 문체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역사와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고, 현대사회에서 잃어가는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작업을 통해 삶과 세계로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새로운 문학 언어의 추구와 함께, 조국 포르투칼의 희박해져 가는 역사성과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 나아가 이성에 치우쳐 윤리의식을 상실한 현대사회와 인간의 모습을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국의 문학가들에게서 부족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과 권뤼에 대한 개인의 외로운 싸움이나 윤리관이 파괴된 사회 체계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의 무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눈이 멀었다’라는 것은 단순히 눈이 멀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많은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는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었을 때에야 가지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우리는 물질적 소유에 눈이 멀었을 뿐 아니라 그 소유를 위해 우리의 인간성조차 쉽게 말살하는 장님이기에 눈을 비벼 눈곱을 뗀 후 세상을 다시 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새삼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는 현대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고 눈앞에 보이는 이익과 남들이 ?아가는 발자욱만 따라가는 사람은 결국 ’눈 먼 사람’이라 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는 결국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된 것이다. 책 속에는 실명과 침묵을 통해 무책임한 윤리 의식과 붕괴된 가치관, 그리고 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암시해주고 있는데 실제 같은 시대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폭행하고 찾취하는 우리의 모습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처음 눈이 멀어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는 집단이 함께 고통을 나누고 서로가 의지하며 도와가는 인간 관계의 회복은 살아 있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눈 먼 사람들이 서로 돕고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보이지 않는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지 보여줌으로써 현대사회의 인간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연대 의식’은 인간성이 말살된 사회에서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자 진정한 휴머니즘이자 인간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인 것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빌어 저자는 현대사회의 시민들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 ’눈 먼 자들’이 되지않기 위해 어떻게 마음먹고 살아야 하는지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로마를 공화정 체제에서 제국으로 만든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현대사회에서도 카이사르의 말은 여전히 적용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자신이 알고 살아온 경험 속에서, 자신의 이해관계에 몰입하여 객관적인 사실과 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살고 있다. 가공된 정보, 주입된 사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방송언론매체의 홍보에 길들여져 스스로 분석하고 찾아보고 판단하는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예요.(p.419)"
 
또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있음을 느끼고 실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의사의 말 "조직이 있어야지. 인간의 몸 역시 조직된 체계야. 몸도 조직되어 있어야 살 수 있지. 죽음이란 조직 해체의 결과일 뿐이야. ... 자신을 조직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눈을 갖기 시작하는 거야.(p.416)"을 통해 저자는 거대한 권력과 불의,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일반사람들이 스스로 뭉치고 조직을 만들어 서로를 위하고 도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눈 먼 자들’로 가득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 십년, 수 백년 전 우리의 부모세대나 선조들보다 못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답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몇몇으로 그것이 가능할까?
 
* 책 속의 문장
- 눈이 먼 남자의 차를 훔친 남자는 처음에 돕겠다고 나섰을 때부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단지 관용과 이타심이라는 감정을 따랐을 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 두 감정은 인간 본성 가운데 가장 좋은 두 가지 특질이며, 이 남자보다도 훨씬 고질적인 범죄자에게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p.29)
 
-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없다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볼 권리가 없다.(p.98)
 
- 어쩌면 눈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p.180)
 
- 그들이 처음 요구했을 때 당연히 저항했어야 하는 건데, 그걸 못한 거야. 물론이예요. 우리는 두려웠고, 두려움이 늘 지혜로운 조언자 노릇을 하는 건 아니죠.(p.272)
 
- 그녀는 생각했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상황의 힘과 특성이 사람의 언어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p.319)
 
-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p.354)  

 
[ 2011년 7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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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소로의 무소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전행선 옮김 / 더클래식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7월에 법정스님이 즐겨 읽으시면서 사람들에게 추천한 책을 모은 <내가 사랑하는 책들>을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50권이 넘는 ’추천도서’에 대한 스님의 느낌을 읽고서 추천도서를 읽는 것이 여의치 않아, 스님의 서평 한 개에 맞추어 한 권씩 읽기로 작정했다.
스님이 추천하신 책이 50권이 넘기 때문에 추천도서만 읽는다 하더라도 책 읽는 기간이 거의 1년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몇 년이 걸리더라도 틈틈히 한 권씩 추천도서를 읽고 싶어 도전해본다.
그 분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미천한 내가 잘 읽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첫 번째 추천도서인 ’월든_Walden’이다.
’월든’은 저자가 태어난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 지역에 자리한 호수의 이름이다.
 
스님은 이 책을 통해 아래와 같이 ’무소유’와 ’당당한 인간의 삶’을 보았다.
"내가 영향을 받은 것은 마하마트 간디와 소로우의 간소한 삶일 것이다.
간소하게 사는 것은 가장 본질적인 삶이다. 복잡한 것은 비본질적이다. 단순하고 간소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을 좁은 틀 속에 가두고 서로 닮으려고만 한다.
어째서 따로따로 떨어져 자기 자신다운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가.
소로우처럼 각자 스스로 한 사람의 당당한 인간이 될 수는 없는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의 저서 <월든>이 성경처럼 널리 읽혔다는 사실은 그의 현존을 말해 준다.
그의 글과 주장은 지금도 정신세계에 널리 빛을 발하고 있다."
스님은 직접 ’월든’ 호숫가를 두 차례나 방문하셨다 한다.
 
저자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수, 측량기사를 거쳐 아버지의 연필공장 일을 돕다가 미국의 70번째 독립기념일인 1845년 7월 4일, 손수레에  단촐한 짐을 싣고 월든 숲으로 들어간다.
그는 몇 달에 걸쳐 손수 지은 방 한 칸짜리 미완성 오두막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들여놓고서 삶의 실험을 시작했다.
그는 그 곳을 영구 거주지로 정해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아주 적은 돈으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중요한 경력으로 만들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고 이것이 그의 글 다수의 주제였다.
이 책은 그가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년 2개월 2일 동안의 생활을 기록하고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여행 서적을 좋아하고 또 몇 권을 저술한 바 있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때까지 미국 책들이 접근한 적이 없는 인간 내면의 개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의 금욕적인 생활처럼 매우 소박한 이 작품은 좋은 삶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세기의 총체적인 미국 경험, 즉 변방 개척지에서의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저자는 왜 이런 모험을 시작했을까?
그 당시 미국사람들과 서구사람들의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을 몰랐고 그들은 점차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었다.
집의 노예, 재산의 노예, 일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저자는 자급자족하면서 여유롭게 살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고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길 원했다.
그는 스스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최대한의 여가를 즐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간소하게, 간소하게, 간소하게 살라! 당신의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도록 하지 말라. 백만 대신에 다섯이나 여섯까지만 셀 것이며, 계산은 엄지손톱에 할 수 있도록 하라”고...

그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미국과 서구일대를 휩쓸던 시대에 일, 명예, 돈과 통념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혁명적인 인물이었다.
’노동’과 ’부’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무이고 목표이자 행복으로 혁명과도 같이 퍼져가던 시대에 그의 혁명은 개인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그 당시 단단히 뿌리박혀 있던 사회 통념을 뒤흔드는 또 다른 혁명이었다.
경쟁 속에서 부지런히 일해 이겨야만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이라 생각한 일반적인 통념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자연 속에서의 삶을 읽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책 속의 글은 다소 지루하고 선언적이다.
하지만, 저자가 책 속의 글을 저술하던 때가 19세기 중반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저자의 생각이 당시의 시대상황을 뛰어넘고 21세기까지 관통할 수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저자의 생각에 얼마나 가슴 깊은 곳에서 동의할 수 있을까...


[ 2010년 9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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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오래된 책방 11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1
유득공 지음, 정진헌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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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훑어보던 중 책 뒤쪽에 몇 가지 유형의 ’고전’이 소개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고전으로 소개되어 있는 책들 중, 문득 [발해고]가 눈에 띄었다. [열하일기]나 [죄와 벌]과 같은 책들은 많은 곳에서 ’고전’ 또는 ’인문고전’으로 소개되어 있는 [발해고]는 발견하지 못했었다.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만 사놓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함...ㅋ)
 
어떤 인터넷 서점에서는 이 책을 ’우리 사학사에서 최초로 발해사를 체계화시킨 조선시대 실학자 유득공의 저작이 완역’한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실제 [발해고]는 1784년(정조 8)에 지은 것으로 한국 최초의 발해사이다.
 
[발해고]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책 수십 종을 참고하여 발해((渤海, 존속 기간: 698년 - 926년))의 역사를 기록하며, 발해를 우리 역사에 최초로 포함시킨 책이다. 저자인 유득공은 이 책에서 고려가 발해사를 우리역사에 포함시켜 남북국사를 쓰지 않았던 점을 통렬히 비판했다. 발해고의 서문에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아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 ... 참말로 한탄스럽다”고 썼다. 그러면서 고려 또는 고려 이후의 한반도 국가들이 발해의 영토를 되찾으려해도 근거가 없어져버렸다고 통탄한다. 
고구려의 후예 국가인 발해가 멸망하면서 만주 대륙은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영토가 되고 말았다. 유득공은 이러한 상황을 개탄하며 민족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가두고, 중국의 시선으로 역사를 보던 당시의 풍토를 비판한 것이다.

당시 실학자들에게는 이처럼 기존의 시야를 넘어 역사를 널리 확장해서 보자는 인식이 보편적이었는데, 박제가도 이 책의 서문에서 “압록강 밖으로 한걸음도 내딛지 못했”던 역사를 한탄하며 이 저술이 가진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동북공정으로 중국이 우리의 북방사를 자기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고 고대사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 상항에서 유득공의 [발해고]는 후손들인 우리가 한 번 쯤 읽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만주 땅이 우리 땅으로 편입되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공공연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역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제대로 밝히고 증명하고 정리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유득공의 저술이 의미 있는 것은 이 저술이 감정적 언사나 주장으로 치장된 것이 아니라 당시 실학 시대의 영향으로 옛 문헌에 대한 고증과 나름의 과학적인 지명 추적 등으로 확실한 증거를 통해 이 저술을 완성한 점에 있다.  
 
----------------- 저자 유득공(柳得恭)은 누구인가? --------------------
자는 혜보(惠甫), 호는 영재(泠齋)·고운(古芸)이며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서족 출신으로, 20대 시절부터 박지원을 중심으로 한 동인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북학파’ 또는 ‘이용후생학파’로 불린다. 정조의 지우를 입어 규장각 검서(檢書)로 발탁된 뒤, 제천·포천·양근 군수 및 풍천부사를 역임하는 등 내외직을 오가며 국고·문헌 정리사업에 이바지하였다.
시에도 뛰어나 이덕무·박제가·이서구와 함께 조선후기 ‘사가시인(四家詩人)’의 한 사람으로 불렸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 [발해고(渤海考)]를 편찬하였으며, 우리나라 옛 도읍지를 돌아보고 [이십일도회고시(二十一都懷古詩)]를 지었다.
연행을 세 차례 다녀왔는데, 1790년 열하를 다녀온 뒤에 [열하기행시주(熱河紀行詩註)]를 지었다. 이 작품에는 연행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예리한 시선과 섬세한 필치로 형상화한 유득공의 빼어난 시들이 실려 있을 뿐 아니라, 화이론(華夷論)과 같은 중국중심주의에 매몰되지 않은 주체적 역사의식이 담겨 있어 여타의 연행록 가운데서도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영재집(泠齋集)], [사군지(四郡志)], [고운당필기(古芸堂筆記)], [경도잡지(京都雜誌)], [연대재유록(燕臺再游錄)], [병세집(竝世集)], [발합경(??經)], [삼한시기(三韓詩紀)] 등의 저술이 있다. -------------------------
 
이 책은 저자의 유득공과 발해고에 대한 총평, 박제가의 서문, 유득공의 서문, 인용한 문헌, 그리고 [발해고]의 본문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발해고]의 본문은 발해의 역대 임금, 발해의 신하들, 발해의 지리, 발해의 관직, 발해의 의장, 발해의 특산물, 발해의 언어, 발해의 외교 문서, 발행의 후예로 나누어져 있다. 
<군고>는 역대 왕의 약전과 사적이다. 대조영의 아버지 진국공(震國公)부터 시작하는데, 그는 속말말갈인(粟末靺鞨人)으로 고구려에 귀순한 사람이라고 했다. <신고>는 열전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약 83인의 인물이 수록되었다. 비록 짧은 기록들이기는 하나 사실만 간략하게 적었을 뿐 주자학적인 가치평가나 사론은 없다. 지리는 5경15부62주를 <신당서>와 <청일통지 淸一統志>에 소개된 내용으로 각각 전재했다. 지명마다 저자의 고증은 붙이지 않고 끝에 5경의 위치와, 발해와 신라의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간단한 비평과 고증을 했다. <의장고>는 공복제도, <물산>은 토산물이며, <국어>는 발해의 칭호로, 왕을 가독부(可毒夫)·성왕(聖王)·기하(基下), 명(命)을 교(敎), 왕의 부친을 노왕(老王)이라 했다고 한다. <국서>는 무왕·문왕이 일본에 보낸 것이다. <속국>은 정안국(定安國)에 관한 것으로 마한의 종(種)이라고 보았다.
 
유득공은 발해가 망한 후, 이 지역에는 여진과 거란이 들어왔는데, 고려 정부가 급히 발해유민을 통해 발해사를 편찬해 이 지역의 정통성을 주장하고, 1명의 장군만 보냈으면 쉽게 토문(土門) 이북과 압록 이서지역을 장악했을 것이라 했다. 발해의 국가체제는 <군고 君考, <신고 臣考>, <지리고 地理考>, <직관고 職官考>, <의장고 儀章考>, <물산고 物産考>, <국어고 國語考>, <국서고 國書考>, <속국고 屬國考>의 9고(九考)로 구성했다. 이는 정사(正史)의 세가(世家)·전(傳)·지(志)의 형식을 딴 것이다.


[발해고]의 분량은 많지 않고 <의장고> 이하는 더욱 간략한데, 이는 자료부족 때문이다. 저자는 10만의 발해유민이 고려에 귀순했음에도 고려가 발해의 자료를 보존하지 않아 결국 문헌이 산일되었음을 한탄하고 있다. 자료는 책머리의 인용서목에 따르면 [삼국사기, [고려사] 등 우리나라 책과 [당서 唐書], [오대사 五代史], [요사 遼史], [송사 宋史], [일본일사 日本逸史], [속일본기], [대명일통지 大明一統志], [성경통지 盛京通志], [문헌통고], [통전 通典], [만성통보 萬姓統譜] 등 22종의 책을 참조했다. 기사에는 일일이 주나 출전을 밝히지 않았으나 고(考)마다 끝에 ’안’(按)이라고 하여 큰 문제에 대한 자료비판과 고증을 달았다. 

 
[유득공은 서문]에서 책을 마무리하면서 이 저술을 “사史라고 자처하지 못하고 고考라고 한 것은 사서로서 체계를 못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 이 저술이 가진 사서로서의 부족함을 토로한 것인데, 그 부족함이란 유득공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즉 사서가 남겨져야 했던 시점이 한참 지난 후대에 씌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기인한다. 그리하여 유득공은 고려에 저술되어야 마땅한 것이 조선 후기에 와서야 씌어진 것을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유득공은 한탄만 하지 않는다. 발해가 언급된 무수한 사서들을 국적을 가리지 않고 참조하면서 발해사를 다시 쓰려 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발해와 관련된 사실史實들은 그의 검증 작업을 통해 체계화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서자 출신임에도 능력을 인정하고 등용한 정조의 배려에 의해 가능했다. 정조는 유득공에게 평생 방대한 문헌들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검서관 직함을 맡겼는데, 이것이야말로 [발해고] 저술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유득공은 수차례 중국을 다녀오며 옛 문헌에서 확실한 증거를 찾아 이론을 만들어 나가는 고증학이라는 선진 문물을 접한 후 그 선진적 방법을 사용하여 [발해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유득공의 한반도에 대한 역사관은 단군 조선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792년(정조 16년) [사군지 四群志]에서 단군 조선, 기자 조선, 위만 조선의 ’3조선 시대’를 거쳐 한사군(낙랑군, 임둔군, 현도군, 진번군)의 4군 시대, 2군 시대(현도군과 낙랑군), 그리고 3군 시대(현도군, 낙랑군, 대방군)를 지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의 정립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3국 시대는 다시 ’남북국 시대’(발해와 통일신라)로, 그 뒤에는 고려로 이어지면서 발행 영토의 대부분을 여진에게 넘겨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조선은 고려의 뒤를 이었으므로 그 뒤로는 여전히 우리의 옛 판도를 모두 보유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유득공은 우리나라의 통일은 신라에서도 고려에서도 조선에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신라와 발해가 양립했던 남북국 시대 이후 발해의 영토는 대부분 여진에게 넘어갔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역사의식은 중국 중심의 시각에서 자유로운, 한국사의 무대를 북방 만주 대륙으로 확대하여 바라보았던 조선 후기의 역사가인 안정복이나 김정호 등 학자들의 인식 체계에 바탕이 됐으며,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며 우리 역사 인식에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과거의 ‘통일신라 시대’라는 용어 대신 ‘남북국(南北國)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1990년부터 국사 교과서에 ’통일신라와 발해’라는 소단원을 ’남북국시대’로 변경하시 시작하였고 함). 남북국 시대는 유득공이 최초로 만들어낸 개념으로, 발해를 우리 역사 속으로 편입시킨 개념이다.
대한제국 시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던 ’남북국시대’는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침탈한 후 한반도의 역사를 왜곡하면서 ’통일신라 시대’로 바꾸어 놓게 되었다. 이러한 일제의 사관은 1945년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1980년대까지 교과서에 사용된 것이다. 그 이유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였지만..) 한국 역사학계에 일제에 의해 교육을 받거나 일본식 사관에 젖어든 채 한반도 역사에 대해 전면적인 재조사 및 재연구를 진행하지 않은 역사학자들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이승만은 일제 앞잡이들로 구성된 정부관료로 구성되어 있었고 박정희 역시 일본군 출신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곡 그들이 정치권과 학계에서 사라질 때까지 발해는 한반도의 역사로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했다. 이 또한 한국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이며, 일제 잔재로서 청산해야할 대상이다.
이 용어가 교과서에도 사용된 것은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발해사를 한반도의 역사로 인정했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유득공의 역사 인식이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도 있다.

[발해고]는 한반도의 역사를 올바르게 정립시키고 한국인의 뿌리를 찾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정치와 역사관에 대해서도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그것은 현재의 정치에서 선택, 결정, 실행하는 것들이 500년, 1천년 뒤의 역사와 후손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려의 태조 왕건이 발해로부터 유입된 왕족과 신하, 유민들을 통해 ’발해사’를 정리하고 이후 고려가 융성할 때 거란족이나 여진족, 이후 만주에 흩어진 각종 만주족들을 정벌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했으면 조선시대 이후의 한반도의 역사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한국현대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21세기는 분명 지금과 다른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지난 역사 뿐 아니라 21세기 현대에도 마찬가지의 교훈이 적용될 수 있다. 현재 이명박 정권과 정당, 사법부와 학자들,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100년 뒤, 1천년 뒤 우리의 후손들이 그 결과를 감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료독재, 언론독재, 재벌독재, 기득권독재로 유지되는 한국사회의 모습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한-미 FTA와 한-EU FTA가 어떤 사회경제적 폐해를 가져올 것인가? 남북 화합이 아닌 남북 대결 구조가 또다시 전쟁을 불러올 것인가? 정치권과 언론계, 사법부와 지식인사회, 시민단체와 국민 개개인은 이런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안들을 논의하고 결정해야 한다. 모든 문제는 다양한 계층과 세력들간의 협의와 타협에 기초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정조시대 유득공과 실학자들이 제시한 ’실사구시’와 ’이용후생’, ’경세치용’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폭 넓은 이념적, 학문적 논의와 실험을 폭력으로 짓밟은 조선국의 말로와 조선 민중의 파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 2011년 7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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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5 - 로마 세계의 종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5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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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5권의 부제는 ’로마세계의 종언’이다.

15권은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병사하고 아들들이 즉위한 서기 395년부터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까지의 81년간을 다룬다.
이 기간 동안 로마제국에는 테오도시우스의 자손 8명이 황제로 군림했고 가장 큰 특징은 15권이 시작되자마자 동,서로 통치구역을 담당하던 방식에서 제국 자체가 동,서로 분리된 것이다.
분리된 서로마 제국은 이민족으로부터 끊임없이 이탈리아 반도와 로마를 침탈당하게 되고 수도마저 로마에서 라벤나로 옮긴 후 더 이상 황제가 나타나지 않으면서 멸망한다.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었으니 당연히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이 어떻게 되든 동로마 제국의 안위에만 급급한 상태였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서기 476년과 동로마 제국이 마지막으로 멸망한 서기 1453년년이라는 의견이 엇갈린다고 한다.
작가는 도시국가에서 시작된 로마제국의 경우 로마를 더 이상 로마인 이외의 이민족이 통치하지 않게 된 때, 로마와 이탈리아 반도에 로마시민으로서 황제가 다스리지 않게 된 서기 476년을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판단한다.
실제 동로마 제국은 19세기부터 ’동로마 제국’이라는 명칭보다 ’비잔티움 제국’이라는 명칭이 잘 사용된다고 한다.
당시 동로마제국(비잔티움제국)의 황제나 관료들은 스스로를 ’로마제국(Imperium Romanum)’라고 불렀으며 ’문명 세계 모두를 지배하는 대제국’이며 ’하느림에 의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날 때까지 계속 되는, 지상의 마지막 제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동로마제국은 대부분 그리스인들이었으며, 서기 610년에 공용어를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꾼 시점을 동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로마제국은 이미 ’왕권신수설’과 ’카톨릭’이 정치와 사회,문화 전반을 지배했기 때문에 더 이상 ’로마’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뿐만 아니라 ’로마’를 ’로마’로 규정지을 수 있는 많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동로마제국에는 사라져 버렸으니까...




아무튼, 로마제국의 마지막을 간략하게 더듬으면
395년 서로마제국 황제에 호노리우스, 동로마제국 황제에 아르카디우스 즉위. 동서분할.
          알라리크를 수령으로 하는 서고트족이 발칸 지방에 침입하여 총사령관 스틸리코가 이끄는 로마군이 맞서 싸움.
          동로마제국은 군대를 철수시킴.
397년 서로마제국 영토인 아프리카 담당사령관 길도가 동로마제국 황제에게 충성을 선언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식량 수출을 금지.
398년 길도의 친동생 마스케절이 반란군을 토벌하러 파견. 길도는 항복하고 살해됨.
401년 도나우강 북쪽의 야만족이 라이티아 속주에 침입. 알라리크가 서고트족을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를 침공
402년 스틸리코 장군이 알라리크와 전투에서 승리.
404년 서로마 제국 황제의 거점이 밀라노에서 라벤나로 옮겨감.
405년 라다가이소가 이끄는 동고트족 포함한 야만족이 서로마제국 영토에 침입
406년 스틸리코 노예 징병법 성립. 이탈리아 중부에서 스틸리코 장군이 야만족에게 승리.
          게르만계 야만족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에 침입
407년 콘스탄티누스 3세를 자칭하는 병사가 브리타니아 주둔군을 이끌고 갈리아에 진입.
408년 스틸리코 장군이 게르만계 야만족 및 반란군 진압을 위해 서고트족장 알라리크와 동맹 교섭.
          호노리우스 황제가 서고트족과 동맹을 불신하여 스틸리코 장군을 반역죄로 처형.
          알라리크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와 로마 봉쇄. 원로원이 많은 금품을 지급하고 봉쇄 풀림.
          동로마제국 황제 아르카디우스 사망.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가 즉위. 어머니 에우독시아가 섭정 실시
410년 또 다시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로마를 포위 공격하여 시내에 침입. 닷새 동안 ’로마 겁탈’
          호노리우스 황제 속주 방위 포기



415년 서고트족장이 연이어 사망, 살해된 후 갈리아 서부를 서고트 정착지로 결정

423년 호노리우스 황제 사망.
425년 발렌티아누스 3세 황제로 즉위. 어머니 갈라 플라키디아가 섭정 실시
427년 북아프리카 사령과 보니파키우스가 명령을 거부하고 반달족에 지원 요청함.
          겐세리크의 반달족 전체가 에스파냐에서 북아프리카로 이주. 보니피키우스는 이탈리아로 달아남.
432년 갈리아 담당사령관 아이티우스가 북이탈리아에서 보니피키우스에 승리.
439년 카르타고가 반달족에 함락되어 북아프리카 전역이 반달족의 지배를 받음.
442년 서로마제국과 반달족이 강화를 맺어 반달족이 북아프리카 영유가 공식 인정
450년 동로마 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 사망. 원로원 의원 마르키아누스가 황제로 즉위.
451년 아틸라의 훈족이 라인강을 건너 갈리아로 침입.
          아이티우스 장군이 서고트족 등 게르만족과 연합하여 아틸라의 훈족과 전투에서 승리.
452년 아틸라의 훈족이 북이탈리아를 기습 침입, 약탈
455년 발렌티아누스 3세가 군열병식 중 살해됨.
          원로원이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를 후임 황제로 선출
          북아프리카 겐세리크의 반달족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오스티아 점령 후 ’로마 겁탈’
          막시무스 황제 살해됨.
456년 갈리아에서 황제에 옹립된 아비투사가 이탈리아에 들어가다가 살해됨.
457년 야만족 군인 마요리아누스가 황제로 선출
          동로마 제국의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사망. 군인 출신 레오가 황제로 선출
461년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살해되고 세베루스가 후임 황제로 선출
465년 세베루스 황제 사망. 안테미우스가 황제로 즉위
468년 동,서로마 제국이 연합하여 북아프리카 반달족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를 파병하였으나 겐세리크의 전술에 넘어가 로마군이 카르타고에서 궤멸됨.
          레오 황제가 겐세리크와 강화 맺음.
472년 궁정관료 리키메르가 올리브리우스를 황제에 앉힘.
          안테미우스 군대가 올리브리우스, 기키메르 연합군과 로마 시내에서 전투하여 승리.
          올리브리우스 암살.
474년 동로마제국이 율리우스 네포스를 서로마제국 황제로 지명
475년 재상 오레스테스가 네포스를 ?아내고 아들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가 황제에 오름
476년 야만족 출신 장군 오도아케르가 반기를 들고 제위에 복귀한 네포스 황제의 군대에 승리.
         오레스테스는 살해되고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는 퇴위당함.
         오도아케르가 이탈리아 왕을 자칭.
   이로써 서로마 제국 멸망.



 
그 뒤에 오도아케르는 17년 동안 이탈리아 왕으로 군림하고 오도아케르와 전투에서 승리한 동고트의 테오도리크가 493년부터 526년 죽을 때까지 33년간 이탈리아 왕으로 군림.
동로마제국은 518년 유스티누스가 황제로 즉위하고 527년부터 외조카 유스티니아누스가 황제로 즉위다.
유스티니아누스는 즉위한 해부터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기 시작.
536년에 동로마제국은 사령관 벨리사리우스 군대에 힘입어 아틸리아 반도를 장악.
이후 벨리사리우스 군대는 여러번 고트족, 반달족, 랑고바르디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의 후임인 나르세스도 고트족과 다른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함.
568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벨리사리우스 장군과 나르세스 장군이 연이어 사망하고  랑고바르디족이 남하하여 이탈리아 반도를 제패.
예언자 무하마드가 613년 포교를 시작하여 이슬람군이 636년 시리아, 642년 이지비트, 650년 소아시에까지 장악.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에 함락되어 동로마제국이 멸망.





젊었던 시절인 1985년 가을인가 겨울 무렵....
소설가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1,2,3권을 처음 출간했다.
그 때 나는 신림사거리에 있는 ’백두서점(맞나?)’ 안에 앉아서 내리 3권을 읽었다.
그리고 조정래씨는 1986년에 4,5권을 1987년에 6,7,8권을 1988년에 9,10권을 차례로 출간했고 나는 책이 신림동 서점에서 발견할 때마다 그 서점에 앉아서 다 읽었다.
그 자리에서 읽지 않으면 궁금해서 못 견딜 것 같았으니까...
작가 시오노 나나미씨는 1992년에 <로마인 이야기> 1권을 내면서 2006년까지 해마다 한 권씩 발표하겠다고 공언하였고 그것을 지킨 셈이다.
조정래씨는 소설을 쓰기 위해 미리 수 년간 자료를 구하고 발로 대상지를 찾아다닌 후 소설을 시작하는 스타일이고 시오노씨는 매년 준비해서 1권씩 발간하는 스타일인 셈이다.
시오노씨가 발간한 <로마인이야기>는 2000년 전의 자료와 현장, 과거 역사가들의 글들을 참고하여 약간의 소설적 재미를 덧붙인 ’인문서’이고 조정래씨가 발간한 <태백산맥>은 30~40년 전의 역사적인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소설의 주인공을 끌어내고 글을 구성하였기에 글쓰기에 투입한 노력과 내공을 비교하기는 쉽지 않다.
조정래씨는 일간신문에 매일 연재하고 나서 묶어서 출간했으니 1년에 한 번 ’짠’하고 책을 출간하는 시오노씨보다 더 ’내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내 맘 속의 ’반일감정’으로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쩝...
 
<로마인이야기>에 대한 인터넷의 서평 중에는 ’제국주의적 시각’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일본이 20세기 초에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 제국주의의 만행을 저지른 것을 교묘하게, 또는 의도는 없었지만 일본인으로서 아주 자연스럽게 책 속에 반영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읽는 가운데서도 그런 분위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의도한 것을 인정해주고 싶다.
작가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의 서문에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갈리아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투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인데,
왜 그들만이 그토록 번영할 수 있었을까?"라고 시작한다.
 
로마가 처음 건국한 기원전 753년을 동아시아 시대와 비교하면 춘추시대의 시작이 기원전 771년 경이었고 한반도의 경우 <삼국사기>에 의하면 ’마한’이 시작된 시기가 기원전 2세기 경이었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지역과 한반도의 역사를 로마와 비교해보는 것도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처음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왕국’으로만 일관했던 동아시아와 왕정-공화정-제정-제국으로 이어지다가 멸망한 후 중세시대를 거쳐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시민혁명을 거친 서구를 알아가는 것도...
어차피 인류는 오랜 시간 동안 생존과 번영을 위해 노력해 오면서 유전자에 그 과정과 결과를 입력해 놓았다.
최근 2000년 동안 서양과 동양의 역사적인 전개과정이 21세기의 동,서의 다른 민족성, 문화, 언어, 사상을 형성해 왔으니 그 과정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 장점과 단점 등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기원 전에 카이사르가 말했다.
"보이는 것만,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과 그 이면을 보는 사람"에 대해...
  

[ 2010년 10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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