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3분 - 폴 데이비스가 들려주는 우주의 탄생과 종말 사이언스 마스터스 3
폴 데이비스 지음, 박배식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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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세 번째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중에 대표적인 장르가 재난영화다. 그 중 1998년에 한국에도 개봉했던 <딥 임팩트, Deep Impact >라는 영화가 기억난다. 우주에서 아무 생각없이 날아온 혜성이 시속 56,000km 즉 초속 16킬로미터로 지구로 돌진한다. 1조 톤의 얼음과 바위가 음속의 47배나 되는 속도로 지구와 충돌한다.
 
이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지구 표면 바로 위의 하늘이 갈라져 열리고 수천 세제곱 킬로미터의 거대한 공기 덩어리가 한바탕 휘몰아쳐 지나간다. 도시의 둘레보다도 더 넓은 불기둥이 지상으로 내려와 15초 뒤에 지구를 덮친다. 무수한 지진이 동시에 발생할 저도로 큰 충격으로 행성 지구 전체가 진동한다. 밀려난 공기의 충격파가 지구의 표면을 스쳐 지나갈 때 마주치는 모든 구조물을 휩쓸어 산산조각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 뒤에는 분화구, 녹아내린 암벽, 허공으로 튀어나가는 바위들, 거대한 해일, 먼지로 인한 암흑...
지구는 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전에 위와 같은 충돌로 공룡이 멸망했다고 과학자들은 믿고있다.
 
종교에서는 <아마겟돈>으로 부르는 지구의 대종말... 그리고 우주의 최후...
 
현대과학의 주요 이론 중 하나인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우주의 모든 물리적 활동이 열역학적 평형인 최종 상태, 즉 최대값의 엔트로피를 가진 다음에는 영원히 엔트로피 값의 변화가 없는 상태를 향해 진행한다. 평형을 향한 이런 일방통행은 우주의 ’열적 죽음(heat death)’로 알려져 있다. 우주가 열역학 법칙들의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죽어 간다는 발견은 여러 세대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암울한 영향을 끼친다.
 
지금까지 과학의 결론은 대폭발이 모든 물리적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의 궁극적인 출발이라는 사실이다. 대폭발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대폭발을 일으킨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이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적인 의미에서 원인은 존재할 수 없다.
 
우주가 탄생한 이래 핵반응을 통해 원자핵을 형성하면 결합한 것, 물질이 생성된 것은 탄생 후 3분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우주는 급팽창을 통해 엄청나게 확장된 이후 지금처럼 서서히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00억년 이후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별들의 대부분은 열역학 제2법칙의 희생물이 되어 소멸될 것이다. 태양도 지구도 함께...
 
과연 현대의 과학은 우주 종말 말고 다른 시나리오를 보여줄 수 없을까?
저자는 현재 과학계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다른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대폭발로 탄생한 다음, 팽창하고 냉각되다가 물리적 퇴화를 맞게 되거나, 아니면 대붕괴로 사라진다는 우주의 기초적인 시나리오는 과학적으로 꽤 잘 정립되었다. 하지만 길고 긴 시간에 걸쳐 일어날 수 있는 대표적인 물리적 과정들은 거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천문학자들은 이제 어느 정도 별들의 일반적인 운명을 명백히 이해하고 있으며, 중성자별들이나 블랙홀들의 기초적인 성질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 우주가 수조 년, 또는 그 이상 지속되면 현재의 미묘한 물리적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모르고 있다. 다만 궁극적으로 대단히 중요하게 되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자연현상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우리가 해 왔듯이, 우리는 우주의 궁극적 운명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 결론을 이끌어내야 한다. 문제는 우주의 운명을 논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몇 가지 개념 혹은 물리적 과정들 - 중력파 방출, 양성자 붕괴, 블랙홀 복사 - 이 이론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는 있지만 아직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말해서, 여기서 제시된 아이디어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물리적 과정들의 발견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뒤집어질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같은 불확실성들은 지능을 가진 생물이 있어 우주에 살고 있어 우주의 운동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고려할 때 더욱 커진다. 여기서 우리는 공상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영원 무궁한 시간에 걸쳐서 생물이 물리적 시스템의 운동을 거대 규모로 현저하게 수정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저자는 많은 독자들이 갖는 우주의 운명에 대한 환상이 인류, 또는 먼 후손의 운명에 대한 관심사와 강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우주의 생명체라는 주제를 포함시켰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과학자들이 인간 의식의 본성을 진실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우주의 먼 미래까지 지속될 의식적 활동을 허용할 수 있는 물리적 요구 조건들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점을 상기시키려 한다.
 
언제나 우주론, 천문학은 거대하고 담대하다.
언제나 나를 기죽이게 하고 인간을 겸허하게 만든다.
저 광활한 우주, 그 우주의 역사와 미래...  나는 그 속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 2010년 7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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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 - 유럽 미술관 산책
최영도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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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미술'은 언제나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것이었고 어느 봄날 안개 속에 희미하게 잘 보이지 않던 장면이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어린 시절 운동장 바닥에, 담벼락에, 도화지에, 그리고 심지어 손바닥에도 이런 저런 그림과 기호를 그리곤 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수 십 만년 전에 존재했던 인류의 조상부터 시작된 것이고 우리의 아들, 딸과 후손들에게도 이어져 계속될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어땠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나의 딸아이는 돌이 지나고 나서 볼펜이나 크레파스 등 손에 잡히는 것마다 들고서 방바닥이나 벽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나는 아이가 어디에 어떤 것으로 낙서를 하거나 그림같은 것을 그리더라도 방해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4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의 나도, 10대에 접어든 아이도 여전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트나 메모지, 신문지 등에 낙서를 하거나 특별한 의미는 없는 그림을 그리곤 한다. 미술의 범주를 크게 잡는다면 이런 일반적인 '끄적거림'도 미술의 영역에 포함될 것이고 우리 모두는 평생 '미술'을 생활처럼 하다가 한 줌 흙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의 '미술'은 언젠가부터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고 만다.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시간이란 것이 교과과정에 들어오면서 상황이 바뀌지 않았나 싶다. 선생들은 어떤 정형화된 그림과 '화가'라는 개념과 직업(전문)가의 그림만이 진정한 '미술', '예술'인 것처럼 교육하고 우리는 '미술'에 대한 일종의 고정관념 또는 선입관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미술'의 범주는 자기자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멀어지게 되고 '미술가'만이 할 수 있는 것이고 '미술가'의 그림만이 '예술'인 것처럼 사회적 의식이 조성되었다. 엄밀하고 이론적으로 따져보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과정은 이반 일리히가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에서 이야기한 '가치이 제도화'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경험과 인식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언어 실력, 수학 실력, 기억력, 시력과 마찬가지로 '미술' 또는 '미술품'에 대한 공감과 감동하는 수준도 긴 스펙트럼의 연속선상에서 위치한다고 생각한다. 즉, 우리는 언어 구사력이 아주 뛰어난 수준부터 아주 모자란 수준의 연속선 상에서 어딘가에 위치해 있는 것이고 미술 감상력 역시 아주 민감한 수준에서 둔감한 수준 사이의 어디엔가 위치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런 준비나 노력 없이 타고난다거나 유전적으로 그 수준이 결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면에서 최영도 선생의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을 읽은 이유가 '미술' 작품에 대한 지식과 감상 실력에 무슨 거창한 이론을 말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이 책을 고른 원초적인 이유는 어제 진행한 공부모임의 교재였기 때문이l다..ㅋ
 
"사람들은 왜 미술품에 매혹되는가? 그 속에 자연과 역사, 예술과 문화, 종교와 철학, 이상과 현실이 모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_최영도

나 역시 작년 런던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랬지만,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유럽의 미술관들을 한 번쯤 가보기를 꿈꾼다. 그런데 부푼 기대로 막상 그 미술관에 들어서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작품들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제대로 감상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은 전시장 길이만 약 20km에 소장품만 37만여 점이라고 하니, 무턱대고 가면 어디부터 봐야할지 막막할 수 밖에 없다. 

런던의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과 국립현대미술관을 직접 가보았지만 저자의 말대로 각 전시실에 어떤 작품, 누구의 작품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 ?어보면서 감상하는 동안 눈 깜짝 할 사이에 오후 반나절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미리 감상할 작품을 고르지 않은 채 무작정 박물관, 미술관에 가게 되면 후회할 수 밖에 없음을 실감했던 것이다.(영국박물관에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한국관'이라는 전시실이 박물관의 가장 구석에 위치해 있고 그마저도 '한국'을 상징할 수 있는 전시품이 거의 없이 피상적인 수준의 전시품만 쓸쓸하고 초라하게 놓여져 있다는 느낌이다. 실제 관람객도 '중국관'이나 '일본관'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었다.)

저자는 "수천 점씩 전시되어 있는 큰 미술관에서 다 보려고 욕심을 냈다가는 미술관을 나올 때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서 미술감상은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강조한다. 그래서 저자는 풍부한 교양과 열정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작품을 꼼꼼히 선정한 후 미술관으로 향한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그는 루브르 19점, 오르세 20점, 피티 8점, 우피치 16점, 프라도 16점만 선정하여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 * 최영도는 누구인가?
193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1965년 판사에 임관되고, 1973년 유신정권 시절 법관재임명이 거부되어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군사정권 하에서 시국사건들을 변론하고, 정의실천 법조인회(정법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발기인이 되었다. 1992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1996년 민변 회장 및 인권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1999년 한국인권재단 이사로 인권운동을 하였으며, 2002년 참여연대 공동대표가 되어 시민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저자는 예술과 문화에 대한 남다른 조예를 갖고 있는데, 이를 보여주듯 열정어린 저술 활동도 해왔다. [토기 사랑 한평생](2005, 학고재)은 토기에 대한 평생의 애정이 담긴 그의 반평생의 체취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그는 다른 컬렉터와 달리 토기 하나만을 집중적으로 수집했고, 이렇게 모은 토기 1,580점을 200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여 세간을 놀라게 했다. [참 듣기 좋은 소리](2007, 학고재)는 클래식에 취해 살아온 마니아의 50년 음악감상기이다. 또한 세계문화유산 답사기인 [앙코르·티벳·돈황](2003. 창비)을 펴내기도 했다. ---------


이 책은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개의 미술관은 각각 일본의 마쓰카타 미술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오랑주리 미술관, 마르코탕 미술관, 이탈리라의 피티 미술관과 우피치 미술관,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이다.
 
일본의 마스카타 미술관(국립서양미술관)은 소위 '마스카타 컬렉션'을 일본인들에게 물려준 마스카타 고지로의 이름을 딴 곳이다. 저자는 1910년대 유럽 전역을 돌면서 유럽 유명화가들의 미술작품을 사들인 카와사키조선소 사장 마스카타 고지로의 '미술품 수집과 그 이후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마스카타 미술관에는 로댕, 밀레, 쿠르베, 피사로, 마네, 드가, 모네, 르누와르, 세잔, 시슬리, 반고흐 등의 회화 수 백점과 로댕, 부르뎅, 마이욜의 조각 수 십점이 보관되어 있다. 
저자는 작품 중에서 로댕의 조각 '지옥의 문', 몰리리아니의 '앉아있는 잔 에뷔테른', 르느와르의 '알제리아 풍의 파리 여인들', 반 고흐의 '붓꽃', 피카소의 '곡예사와 어린 알레퀸'을 소개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런던의 영국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스 미술관, 러시아 생트페테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박물관 중 하나라고 한다. 1998년에만 년간 690만 명이 관람했다. 하지만 루브르의 소장품은 런던의 영국박물관과 더불어 그 대부분이 제국주의 시절 식민지나 약소국가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이기 때문에 감동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더군다나 프랑스와 영국은 피해 당사국들의 반환 요구를 계속 묵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올해 초에 조선시대 문화재 '외규장각 조선왕조 귀례'를 정식으로 반환하지 않고 '대여'한 사실이 있어 한국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한 일이 있다.
아무튼 저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 중에서 카르통의 '아비뇽의 피에타', 루벤스의 '마리드 메디시스의 초상'과 '마리 드 메디시스의 마르세유 상륙', 라 투르의 '목수 성 요셉'과 '작은 등불 앞의 마들렌', 와토의 '시테르 섬으로의 출발', 조각상 '사코트라케의 니케',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등을 소개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의 퐁피두 대통령이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 당시 철도역사로 건축하여 사용하다가 1939년부터 폐역으로 방치되어 있던 건물을 1973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하고 미술관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하여 탄생한 곳이다. 이 미술관에는 근대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상징주의 미술작품 위주로 전시되고 있다.
이곳에서 저자는 앵그르의 '샘', 쿠르베의 '화가의 아틀리에',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드가의 '무대 위의 무희', 모네의 '양산을 쓴 여인', 르느와르의 '물랭 드 라 칼레트의 무도회', 세잔의 '카드놀이 하는 사람들' 등에 대해 감상평을 남겼다. 그리고 각 화가의 미술작품의 양식과 특징, 화가들의 생애, 화가들과 작품들 사이의 연관 등에 대해 설명한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1827년 개관되었고 저자는 르누와르, 세잔, 드랭, 루소, 피카소, 모딜리아니, 로랑생, 위틀릴로 등 인상파에서 1930년대까지의 근대회화를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저자는 모네의 '수련' 작품 수 백점이 전시되어 있는 '수련의 방'에 크게 감동하였다고 설명한다.

마르코탕 미술관은 18세기 중엽에 건축된 것으로 1882년 주식과 석탄광산으로 부자가 된 '쥘 마르모탕'이 매수하여 저택 겸 수집품 보관소로 사용하다가 아들에게 상속었고 아들인 폴이 1932년 저택과 미술품을 박물관 설립을 목적으로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에게 유증하여 1934년 미술관으로 탄생했다고 한다.(이 시점에서 한국 최고의 재벌가인 삼성 이병? 회장과 이건희 회장을 유럽 부자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희 회장과 그의 마누라는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여 자식에게 상속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는데다가 미술품을 '뇌물' 용으로 수집하여 사용하고 있으니 같은 국가와 민족의 일원으로 참으로 한심하고 수치스러운 현실이다...)  
이곳에서 저자는 모네의 '인상, 해돋이', 모리조의 '부지발 정원의 외젠 마네와 그의 딸'을 가장 감명깊게 감상했음을 이야기하면서 마네, 모네, 그리고 모리조의 인생 이야기와 작품 활동에 대해 설명한다.

피티 미술관은 15세기에 필리포 브루넬리스키가 피렌체에서 가장 화려한 궁을 건축하다가 실패하고 이후 코지모 1세 데 메디치의 대공비 엘레오노라가 16세기에 이를 매수하여 완성시켰다. 미술관은 피티 궁 안에 있는 팔라티나 미술관을 비롯하여 7개의 미술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라파엘로의 작품인 '작은 의자 위의 성모'와 '포르나리아', '시스타나의 성모'와 '아테네 학당', 티치아노의 작품인 '연주'와 '라 벨라', 루벤스의 '전쟁의 참화', 반 다이크의 '추기경 귀도 벤티볼리오' 등에 대해 설명하고 피렌체의 시뇨리아 과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등 걸작 조각품들을 소개했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저자는 보티첼리의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설명하고 보티첼리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까지 이야기했다. 이어 조토의 '장엄한 성모', 마사초의 '성 안나와 성모자', 프라 필라포 리피의 '성모자와 두 천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동방박사의 경배', 미켈란젤로의 '성가족', 램브란트의 '자화상' 등에 대해 설명했다.

프라도 미술관은 1785년 카를로스 3세가 자연과학박물관으로 착공한 것을 1819년 페르디난도 7세가 왕립 프라도 미술관으로 개관한 것이다. 처음 개관했을 때에는 스페인의 신고전주의 작품 일부만 소장되었으나 그 이후 이사벨라 여왕, 카를로스 1세, 펠리페 2세, 펠리페 4세, 카를로스 4세 등 역대 왕들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작품들이 추가되면서 이제는 '세계 최고의 회화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저자는 이 곳에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 감동하여 작품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라파엘로의 '추기경의 초상', 티치아노의 '다나에', 엘 그레코의 '삼위일체', 벨라스케스의 '브레다의 항복', 고야의 '카를로스 4세와 그의 가족들'와 '마드리드 1808년 5월 2일'과 '5월 3일', '자기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마하' 시리즈 등에 대해 설명한다.(고야의 생애와 작품은 지난 번 공부모임 때 다룬 적이 있어서 그런지 저자의 주장대로 쉽고 빠르게 이해했다....^^) 
   
저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창립발기인과 회장, 그리고 1992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까지 역임한 분이기 때문에 서양 미술을 감상하는데 있어 일반적인 미술전문가와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감상한 후 저자는 "그림 앞에 서면, 나는 4.19, 5.18, 6.10 등 총탄이 난무하고 최루탄 연기 자욱한 거리에서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치달았던 한국의 민주화 투쟁을 상기하며 그날의 감격과 비탄을 회상하지 않을 수 없다."(p.82)라고 썼다. 



피렌체의 피뇨리나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등의 조각품을 감상한 후 저자는 "따지고 보면 이 광장에 있는 조각상들은 사람의 머리를 자르거나 여인을 약탈하는 등 하나같이 혐오스러운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훌륭한 공간에 사랑과 평화를 주제로 한 조각상을 세우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호전적이고 잔혹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된다."(p.255)라고 썼다.



또 프라도 미술관에서 벨라스케스와 고야의 작품을 감상한 후 저자는 "평등주의자였던 벨라스케스와 자유주의자였던 고야는 모두 시대를 앞서간 민주화 운동의 선각자들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서둘러 프라도를 빠져나왔다."(p.370)라고 썼다.



저자가 책의 부제를 '유럽미술관 산책'이라고 달아놓고 이와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일본국립서양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에는 19세기 중엽 사실주의에서부터 20세기 초 프랑스 근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에 속하는 작품 365점이 전시되어 있다. 아마도 같은 동양의 국가이면서 미술작품에 대해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현실을 비교하기 위해서일 것이라 추측한다. 마스카타의 미술작품에 대한 수집 및 유증, 일본인들의 미술품에 대한 열정 등이 부러웠던 것일까?
 
저자는 애정과 학식을 가지고 작품에 대한 감상과 해설을 하면서도 현학적인 표현이나 전문적인 용어는 삼가고 대신 다양한 주제와 솔깃한 이야기들로 독자의 귀를 만족시키고 동시에 180컷에 달하는 도판으로 눈까지 즐겁게 해준다. 물론 '무엇을 그린 걸까', '어떤 화가였을까', '어떤 시대였을까', '어떻게 그린 걸까', '그림을 보는 관람자의 시선' 등 미술감상의 기본적인 덕목도 두루 갖추고 있다.
 
"삶을 아름답게 살고자 한다면, 아름다움을 찾아나서야 한다. 정성을 다해 갈구하고 준비하고 기억하는 사람에게 비로소 깊고 섬세한 아름다운 세계가 열린다." (강금실 변호사, 전 법무부 장관) "나는 최 변호사님과 함께 여행하면서 그가 얼마나 예술에 깊이 심취하는지 목격하였다. 그가 이런 책을 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낯설었던 예술이 이 한 권의 책을 통하여 가까이 다가온다." (박원순 변호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최영도 변호사의 유럽 미술관 기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명언을 새삼 실감케 하지만, 동시에 아는 일과 보는 일 모두 애호의 열정이 있어야만 가능함을 일깨워준다." (백낙청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저자가 일찍이 [토기 사랑 한평생]과, [참 듣기 좋은 소리]를 냈을 때, 그 지은이를 동명이인으로 알던 사람이 많았다. 험난한 시대를 인권운동, 시민운동, 변호활동으로 벅차게 살아온 그가 우리 토기문화와 클래식 음악의 영역을 두루 섭렵한 것도 놀라운데, 이번에는 유럽 미술관 순례기까지 상재(上梓)하였으니, 나 같은 예술 문외한으로서는 부럽다 못해 배가 아프다. 꾸준한 탐구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한승헌 변호사, 전 감사원장) 
모두 이 책에 대해 추천서를 쓴 분들의 글이다. 나는 추천자들의 말처럼 저자의 열정과 노력, 탐구정신과 더불어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저자의 인생관과 각오, '시간의 만들어 내는' 정신적 여유, 그리고 실행의 경제적 토대도 부럽다...ㅎ
 
저자의 말대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미술작품에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노력해보지도 실천해보지도 않아 무어라 단정지을 수는 없다. 반 고흐의 [영혼의 편지]를 읽고나서 그의 작품을 다시 보았을 때, 고야에 대한 책 [고야]와 [고야, 영혼의 거울]을 읽은 후에 고야의 작품을 대할 때 아무래도 작품 자체와 작품과 관련한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 등을 알았던 것이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이해와 '공감' 또는 '감동'은 별개였다. 인간에게 이성과 감정이 따로 존재하고 머리와 가슴이 따로 느끼고 인식하듯이...
 
저자의 말이 맞다면 저자 만큼 나도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대한 전후 관계와 시대적 배경, 화가의 생애와 미술사 등 전반적으로 '아는' 내용을 풍부하게 한 후 저자처럼 하나의 작품에 많은 시간을 들여 때론 작품 자체의 느낌을, 때로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작품의 느낌을, 때로는 화가의 생애 속에서 작품을 오랜 시간, 여러 번에 걸쳐 접하면 조금 감동이 일으켜지려나??? 
 
(어제 공부모임에서는 이 책의 저자인 최영도 선생님이 직접 참석하시어 책에 대한 설명과 유럽 미술관 기행 뿐 아니라 그 이외에 세계문화유산 기행 등에 나섰던 자신의 경험과 미술작품 이해에 대한 고견을 들려주셨다. 세미나를 진행하고 보니 최 선생님은 미술 뿐 아니라 음악과 영화, 토기 등 다방면에 엄청난 수준을 쌓은 분이신 것 같다.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높이기 위해서는 작품을 직접 '소장'해야 함을 강조하시기도 했다. 쩝...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기도 어렵고 능력도 되지 않는 꿈같은...^^)
 
[ 2011년 8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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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 문학의숲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우리시대의 성인’이라는 표현을 별로 반기지 않았다. ’성인’이라는 표현 자체도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4대 성인이라고 명명되는 예수, 석가모니, 마호메트, 공자 등이 대부분 인류에게 종교와 사상을 가져다 주었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그 종교가 도그마가 되어 수 많은 살륙과 학살(특히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유교)의 이유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성인’에 대한 정의는 "인격과 식견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은 인물’이라고 되어있다.
성인 자체로는 후세의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고 존경받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일생을 살았을 것이다.
다만, 그 ’성인’들의 가르침이 후세의 추종자들에게 도그마가 되어 왜곡되고 비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좋게 해석해본다.
 
법정스님 역시 우리나라에서 ’성인’ 또는 ’스승’으로 인정받는 분이다.
일찍이 젊어서 진리를 찾아 길을 나섰다가 삭발을 하고 출가를 했고 일반적인 승려들의 여정과는 달리 수행을 위해서 34년간(송광사 불일암에서 17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17년)을 홀로 정진하셨다.
불가의 가르침을 솔선수범하신 분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바, 돌아가시는 날까지 책과 자연, 그리고 차 한 잔을 행복으로 삼으신 분이셨다.
 
하지만 스님은 불가의 경전이나 석가모니의 '말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진리를 찾아 스스로를 단련하고 참선하고 깨우치는 것이 진정한 불법이고 '도'라고 생각하시면서 평생을 '탐구'와 '정진'의 자세로 살다가 입적하셨다. 
스님의 삶과 가르침이라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널리 인간과 자연을 이롭게 할까??
 
이 책은 스님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엮어낸 책이다.
지난 3월 길상사에서 스님이 돌아가시고 다비식이 거행되는 동안, 그리고 그 분의 유언으로 출간서적들이 절판되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접하면서 언젠가 스님의 생각과 사상을 배우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
지난 5월 다른 책을 구입하면서 인터넷 서점을 둘러보다가 문득 무언가에 이끌려 스님의 책을 고르게 되었다.
 
이 책에서 스님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책 제목과 같은 소 단원의 글 안에 담겨있다. [아름다운 마무리]라는...
여기에서 ’마무리’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마무리’의 의미와 똑 같지는 않지만 얼핏 생각해보면 ’마무리’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스님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도 든다.
-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이 해야 할 도리와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 삶에 대해 감사하게 여기는 것. 내가 걸어온 길 말고는 나에게 다른 길이 없었음을 깨닫고 그 길이 나를 성숙시켜 주었음을 긍정하는 것.
-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과 모든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준 삶에 대해, 이 존재계에 대해 감사하는 것.
- 근원적인 물음, ’나는 누구인가’하고 묻는 것.
- 내려놓음
- 비움
- 삶의 본질인 놀이를 회복하는 것
- 지금이 바로 그 때임을 아는 것
-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
- 자연과 대지, 태양과 강, 나무와 풀을 돌아보고 내 안의 자연을 되찾는 것
-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와 지는 것
-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그 향기와 맛과 빛깔을 조용히 음미하는 것
- 단순해지는 것
- 살아온 날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것
-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그렇다면 나는 그렇다면 과연 그때그때 그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도리를 다하고 있는가...
내가 살아온 삶에 감사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지금이 바로 그 때’라 함은 무엇인가...
나는 용서하고 이해하고 자비를 베푸는가...
나를 얽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은 무엇인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
자연을 생각하고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하는가...
언제든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가...
늘 배우고 익히고 탐구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선배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희일비’한다고 핀잔을 듣고 비난을 들어온 지 어언 수십년...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던하고 일관된 삶을 살아갈 철학이 나에게 있는지... 언제나 중심을 잡으려는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업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누가 나로 인해 고통받고 있고 나는 그들의 고통을 어떻게 치유해주어야 하는지...
무엇이 이 자리에서의 최선이고 나를 얽매는 구속과 생각을 어떻게 벗어날 것인지...
더 늦지않게 깨달음을 얻을 수는 있는지...
 
그러면서 다짐해 본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끝없이 읽고 배우는 것이리라.
스님의 말씀처럼 고전과 경전과 참다운 책을 늘 가까이 끼고서 열 번이고 백 번이고...
그리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베푸는 것이리라.
언제든 버릴 수 있고 떠날 수 있도록 나를 구속하지 않고 무언가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을 가까이 하려고 노력하고 자연에서 배우고...  

모두가 한 번 태어나서 불꽃같은 삶을 살아간다. 

숨쉬면서 지내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도 그 만큼 더 중요한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과거의 나를 되돌아 보고 오늘의 나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모두가 꼭 한 번씩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책이다.

[ 2010년 7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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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루쉰 지음, 전형준 옮김 / 창비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동안 루쉰과 그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분들과 글에서 접한 바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법정스님과 리영희선생께서도 루쉰의 작품에 대한 일독을 권한 바 있고 님 웨일즈의 [아리랑, 조선 독립혁명가의 위대한 삶]에서 주인공 김산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이기도 하거니와 최근에 읽은 서경식씨의 [소년의 눈물]에서도 그가 젊었던 시절에 접한 작품 중에서 큰 영향을 끼친 작가로 등장한다. 
루쉰과 그의 작품에 대해 그동안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그는 봉건체제와 군벌, 악질지주 등을 비판 규탄했고, 당시 지식인의 무능을 꾸짖었으며 무지몽매한 민중이 깨우치기를 고대했던 사상가였다. 좌익 성향의 작가그룹에 속해있었기에  냉전체제를 버팀목으로 하는 한국의 위정자들과 보수학자들이 그를 배척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루쉰의 작품을 읽어보라고 권유한 적이 없었다고 기억한다. 그 부분은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물론, 내 주변의 많은 사람들 중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지인들 중에서 '성실한 탐구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 하다. 과 선배 한 명이 있고 비슷한 연배의 모임에서 만나는 친구가 있을 정도다.(몇 개의 독서모임 참가자들은 제외하고...ㅋ) 모두가 '밥벌이'와 인스턴트 메시지, 대중매체,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편이다. 
가끔 언론 기사에 발표되는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의 결과치는 실제로 일반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20세기 초 혼란한 중국 근대사에서 작품 활동을 펼친 루쉰에게 주목하는지 궁금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인터넷 서점의 북카트 속에 루쉰의 작품을 담았음에도 두서 없는 '다독'의 욕심에 밀려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러다가 8월 초에 문득 더 늦기 전에 나의 독서 분야에서 '고전'의 비중을 높여야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이지성씨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고전 목차에서 두 권([발해고]와 [새벽에 홀로 깨어])을 고르고 루쉰의 소설집 한 편인 이 책을 구하였고 지난 주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굳이 고전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루쉰의 생애와 비슷한 시기, 즉 우리 민족의 근대사 과정 중에 작품을 발표했던 이들을 찾아 그들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 루쉰은 누구인가? ---------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일찍이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한 그는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아Q정전], [고향] 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 18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
 
 
루쉰은 장편의 작품은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 중편소설 1개, 단편소설 32개와 짧은 글, 강연, 논술, 편지글은 많았다. 역자는 루쉰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광인일기>와 <아Q정전> 등 10편을 엄선하여 번역서로 묶었다. 
작품의 배경은 작품 모두 비슷하다. 공간적 배경은 루쉰의 고향인 '소흥' 일대이고 시간적 배경은 1911년 신해혁명 이후이며 1935년에 발표된 작품도 있지만 그런 작품도 역시 신해혁명의 영향아래 놓여있다고 역자는 평한다.
 
<광인일기 (1918.5)> 주인공이 피해망상증을 앓기 시작하는 시기에 시작하여 점점 증상이 심각해지면서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까지 주인공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망상에 빠진다. 겉으로는 점점 광기가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 반면에 망상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라 심각한 진실을 담고 있다. 봉건 유교사회가 '식인(食人)' 사회인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자신의 누이 동생의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아직 봉건적인 것에 물들지 않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구하자고 절규한다. "아이들을 구하라.!!" 작품 속에서는 '사람의 신체를 잡아먹는' 것을 말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사람의 의식을 잠식하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식인 사회'는 현대에도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역자는 작품의 구도를 봉건적 풍속과 계몽자(광인)의 대립으로 분석한다.
 
<쿵이지 (1919.4)> 작품은 구시대의 몰락한 지식인인 '쿵이지(孔乙己)'의 비참한 운명을 묘사한다. 그러나 역자는 이 작품을 단순히 봉건 과거제도의 죄악을 폭로한 작품으로 뿐 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쿵이지에 대한 사람들의 학대 행위를 통해 '민중의 왜곡된 공격성', 즉 '민중적 자해'를 고발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약 (1919.5)> 작품은 반청 혁명 봉기에 실패하여 처형당하는 신지식인과 미신에 현혹되어 아들의 폐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는 자의 피에 적신 만두(인혈만두)를 사서 아들에게 먹이는 민중의 모습을 대비시킨다. 역자는 이 작품 역시 '민중적 자해'와 '우매함'으로 해석한다. 봉건사회의 억압과 착취에 고통받는 민중이 봉건사회의 모순을 타파하려는 혁명가를 박해하는 데 앞장선다는 이 모순을 말하는 것이다. 다만, 이 작품에서는 작품 후반에 혁명가의 무덤과 폐병으로 죽은 아들의 무덤에서 두 사람의 어머니들이 서로 마주치게 함으로써 두 주체가 서로 동일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에 혁명가의 무덤 위를 까치가 날아가는 모습을 통해 혁명가의 죽음을 애도하고 희망을 표한다. 

<고향 (1921)> 이 작품은 이십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고향에서의 상실감을 표현하는 내용이다. 주인공은 고향에서 어린시절 친구 룬투와 재회하지만 룬투는 봉건사회의 잔혹한 계급적 압박 때문에 의식이 마비된 민중으로 변해버렸다. 주인공이 지니고 있던 어린 시절의 신비감과 일체감은 환멸로 바뀌었지만, 조카와 룬투의 아들이 마시 친구가 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희망을 꿈꾼다. 이 작품에서 유명한 문장이 들어있다.
"희망은 본래 있다고 할 수도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사실은,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었는데,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아지자 길이 된 것이다."

<아Q정전 (1922.2)> 루쉰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모순적이고 복잡하고 열악한 민중의 한 사람인 '아Q'의 삶과 죽음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는 승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속성을 지닌 하류층 막노동자이다.(물론, 그에게도 어쩌다 한 번씩은 인간적 절실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정신승리법'이라는 처세술로 살아가던 그는 그마저도 자신이 경멸하던 왕털보와 가짜 양놈에게 당하면서 파탄난다. 혁명의 소문과 함게 강한 자들이 겁을 먹는 목격하고서 그가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자들에게 반감을 느끼지만 그는 혁명을 금지당하고 대신 강도라는 누명을 쓰고 처형된다. 마지막 순간에 희미한 각성이 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역자는 아Q의 비극적 삶을 결정짓는 요소로 세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지배계급 인물들의 가해이고 둘째는 민중적 자해이며, 셋째는 자신의 어리석음이다. 특히 첫 번째 요소가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이 작품이 최초였다.

<복을 비는 제사 (1924.2)>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샹린댁을 만나고 나서 다음 날 샹린댁이 자살하고 사람들에게 샹린댁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줄거리다. 선량하고 성실하던 그녀가 어떻게 불행해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가를 그린 작품이며, 기존의 '민중적 자해'라는 주제가 계속되는 가운데 역자는 이 작품이 두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인간적 덕성을 지닌 샹린댁이라는 인물의 부각이고 다른 하나는 무기력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기반성이다.

<술집에서 (1924.2)> 이 작품 역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이 옛 친구 뤼웨이푸를 만나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줄거리다. 여기서 친구와 주인공은 젊은 시절 추구하던 진보와 변혁에 대한 열망을 완전히 상실하고 좌절의 늪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 대해 동시대 중국 문학인들이 '패배주의'로 규정하면서 루쉰을 비판하였다고 하나 역자는 이 작품이 루쉰의 패배주의라기 보다 우울하지만 정직한 자기 성찰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누 (1924)> 보수적인 지식인이 주인공으로 유교적 덕목을 고수하며 신문화를 거부하면서도 아들에게는 영어를 배우게 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그는 거지에게서 '비누'를 사는데, 이는 의식의 차원에서는 거지 소녀의 효행에 감동하는 것이지만 무의식에서는 소녀에게서 성적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문학계에서는 보수적 지식인의 위선적인 모습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역자는 이를 달리 보면 인간적 진실의 표현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린다. '의식 차원의 이데올로기적 허구를 해체하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홍수를 다스리다 (1935)> 이 작품과 다음 작품은 루쉰이 타계하기 전에 발표한 작품이라고 한다. 우(禹)임금의 치수(治水)신화를 제재로 취했다. '우의 치수'는 여기서 낡은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가치, 관념적이고 허위적인 구정치가에 대한 실천적이고 진실한 신정치가의 승리로 해석된다.

<관문 밖으로 (1935)> 노자(老子)의 출관(出關) 전설을 제재로 취했다. 노자가 공자의 위협을 피하여 세상 밖으로 은둔하는 이야기를 골격으로 하면서 공자와 함곡관의 관리들을 풍자한다. 역자는 이 작품을 공자에 대한 풍자가 루쉰의 적대자에 대한 풍자로 해석하기 보다 루쉰 자신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 해석한다. 즉, '사막으로 가는 신발'과 '조정으로 오르는 신발' 사이의 자신의 갈등이 형상화된 것으로 본 것이다.

 
역자는 루쉰의 작품이 중국 내에서 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에서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유로 루쉰이 단지 중국적인 인물이기라기 보다는 동아시아적 인물이라서 그렇다는 주장을 펼친다. 루쉰이 다루는 작품 속 주제가 중국의 특수성 뿐 아니라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시기를 조금씩 달리하고 나중에 좀 더 앞섰던 일본이 서구 열강과 다투면서 중국과 조선을 침탈했다는 점만 빼고는 봉건 유교사회, 농업사회, 왕조시대, 지주계급, 무지몽매한 민중, 빈약한 지식인과 시민계급, 민중혁명의 실패, 서구 열강의 침탈 등의 모습은 3국 모두에서 비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역자의 해석에 일정 부분 공감할 수 있겠다.
 
10편의  작품을 읽고 역자의 해석을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루쉰의 작품이 20세기 현대사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루쉰이 비판하고 깨우치고자 했던 지식인의 허위의식, 무력감, 민중의 우매함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아직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광인일기>에서 나타나는 '식인사회'는 근대의 사회 현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특히, 21세기 지금의 사회에서도 한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사람을 잡아먹는', '사람의 의식을 좀먹는' 사회 분위기와 대중매체, 파편화된 사회, 극도의 이기주의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오늘 현재 이명박 정부와 오세훈 서울시장이 의도하고 있는 바를 인지하지 못하면서 '무상급식을 위하여 8.24 투표에의 참여'를 허위의식을 심어주는 관제 언론과 보수단체의 홍보에 설득당하는 서울시민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투표 결과 투표율이 얼마나 될 지, 개표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우려스럽다. 
광인이 마지막으로 절규한 "아이들을 지켜라!!"는 지금도 여전한 구호인 것 같다...
<쿵이지>, <약>, <아Q정전>, <복을 비는 제사>, <술집에서>는 공통적으로  '민중적 자해'의 모습이 들어있다. 각 작품 속에 표현되는 민중들의 모습이 21세기 현대 민중들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지...
<술집에서>에서 나타나는 진보와 변혁에 대한 비관주의, 패배주의의 모습(술집의 분위기와 술집에서 두 친구가 나누는 이야기)은 1980~1990년대를 살아온 이 땅의 486세대에게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는 장면이다. 나 역시 많은 술자리와 모임에서, 동시대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자주 부딪히는 장면이다.
 
1940년 모택동은 루쉰을 "중국 문화혁명의 주장(주장)"이라고 부르면서 그를 위대한 문학가 일 뿐 아니라 사상가이자 혁명가로 규정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중국 내부에서 그리고 동아시아와 서구에서까지 그의 작품이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해석되면서 지금은 모택동의 시각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연구결과가 발표되어 있다고 한다.
나 스스로가 루쉰을 이해하고 루쉰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철학과 사상, 문학적 가치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 선집 이외의 루쉰의 다른 작품과 글을 추가로 읽어야 할 것 같다. 또한 <광인일기>와 <아Q정전>도 몇 번이고 더 읽어야 하고...
그럼에도 한 번 읽은 루쉰의 작품은 인상적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울림이 크니까...
 
[ 2011년 8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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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 리처드 리키가 들려주는 최초의 인간 이야기 사이언스 마스터스 4
리차드 리키 지음, 황현숙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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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 <원소의 왕국>, < 마지막 3분 >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의 네 번째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훨씬 전인 1785년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는 그의 책 < 자연의 체계, System Naturae >에서, 인간을 속명과 종명을 합쳐 표기하는 ’이명법’의 체계에 따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이름 붙이고 하나의 종으로 분류했다. 그로부터 다시 100년 후인 1859년 다윈은 < 종의 기원 >에서 인간도 다른 생물로부터 진화해 왔음을, 다시 말해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임을 암시하였다. 그 이후 편견으로 가득 찬 고매한 인간 대신 원숭이를 할아버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다윈의 열렬한 추종자인 토머스 헉슬리와 그 후예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책은 진화론의 역사나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더구나 창조론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비밀을 감춘 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지구가 감질나게 토해내는, 확률 1천만분의 1이라는 호미니드 화석을 찾아 뜨거운 사막과 동굴을 탐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실낱 같은 근거로부터 인류 진화의 대장정을 설명해 보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그리고 현생 인류의 진화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동일한 정신세계의 탄생을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예술과 언어, 그리고 인간 정신의 기원까지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흔히 인류학자들은 인류 진화의 연구가 과학의 엄밀성과 탐정 소설의 낭만성이 어우러진 탐험 소설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하다. 고고학과 지질학, 자연인류학, 고생물학, 분자생물학 등의 빈틈없는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면서도 언어와 예술, 인간 정신에 대한 폭넓은 해석과, 더러는 풍부한 상상력이 어우러진 한 편의 대서사시라고 설명하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1세기 현재,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선사 시대의 전반적인 모습 중 네 가지 주요한 단계에 대해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다.
최초의 단계는 ’사람과’의 기원으로, 두 발을 가지고 직립 보행하는 유인원 종이 진화한 것은 약700만 년 전의 일이다. (1980년대 초 터키에서 발견된 라마피테쿠스 화석)
두번째 단계는 두 발을 가진 종들의 분화로서 생물학자들이 ’적응 발살’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700만 년 전과 200만 년 전 사이에 두 발을 가진 여러 유인원 종들이 진화했으며, 각기 조금씩 다른 생태 환경에 적응해 갔다.
세번째 단계는 300만 년전과 200만 년 전 사이에 상당히 큰 뇌를 가진 종이 나타났다.(현대 인간의 뇌 용량 1,359cc, 호모 하빌리스 800~900cc, 오스트랄로피테쿠스 300~400cc) 이는 ’사람속’의 기원을 의미한다. 사람속은 호모 에렉투스를 거쳐 궁극적으로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해간 인류라는 나무의 한 가지이다.
네번째 단계는 현생 인류의 기원으로, 달리 찾아볼 수 없는 언어와 의식, 예술적 상상력, 그리고 기술 혁신의 능력을 완벽하게 갖춘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진화한 것이다. (현대형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불연속적인 진화를 통해 등장하여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 그리고 호모 하빌리스를 대체해 현재에 이르렀다.)
 
결국 현대 인류는 수백만 년 전부터 경쟁관계에 있는 포유류나 파충류, 그리고 호모 에렉투스 등 사람과의 다른 종족, 호모 사피엔스 내의 다른 종과 집단, 같은 집단 내부의 개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았다. 그것은 자연선택의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현대 인류는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집단을 구성하였고 그 집단이 의사소통을 하고 힘을 모으고 대를 이어가면서 자연선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언어와 의식, 예술, 도구와 기술혁신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인류는 자연선택을 받음과 동시에 스스로를 창조해왔다.
 
지금으로부터 100만 년 전부터 인류는 서로 경쟁하면서 살육함과 동시에 서로 협동하고 상생하는 방법을 터득해 온 것이다.
100만 년이 흘러 21세기가 되었다.
이제 인류는 서로 경쟁하고 살육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유전자에 더 강하게 남길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서로 협조하고 상생하는 것을 유전자에 더 남길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인류에게 달려있고 그 결과는 수 만 년, 수 십만 년 후의 인류의 모습을 규정할 것이다.

 

[ 2010년 7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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