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일기 - 전3권 겨레고전문학선집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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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에 공부모임에서 진행한 '열하일기' 세미나의 교재는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상/하)가 아니라 이 책이었다.
가끔 독서 욕심이 분출할 때가 있는데, '열하일기' 세미나 당시에 내 마음이 그러했다. 당시 세미나 날짜에 맞추어 고미숙씨의 '열하일기'와 보리출판사의 '열하일기'를 모두 읽으려 했다. 하지만, 날짜에 맞춘 것은 고미숙씨의 책이었고 이 '열하일기' 세트의 경우 3권 중에서 마지막 하권을 절반 정도 밖에 읽지 못했다.
그래도 세미나는 아주 재미나고 유익하게 진행되었고 세미나를 마친 이후 여유를 가지고 세미나에서 이야기된 내용도 되새기면서 세트의 마지막 하권까지 읽었다.
 
(여기서 잠깐 나의 독서관과 독서방식에 대해 한 마디...)
아직까지 내가 책을 읽는 방식은 '정독'이 아니라 '속독'에 가깝다. '속독'이라 해도 1~2 시간에 책을 완독하는 수준은 아니다. 내가 책 읽는 것을 잠시 계산해보면 통계 상으로 보통 소설 50쪽을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1시간 정도 걸린다.
따라서 수학이나 자연과학 서적, 경제경영 서적, 철학이나 인문도서 등 다른 분야의 책은 1시간 동안 집중해서 읽어도 1시간을 훌쩍 넘겨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일부러 '속독'을 배우거나 빨리 읽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대신, 읽을 때 책 내용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집중하려고 애쓰면 그만큼 집중력은 높아지는 것 같다.
한 번 책을 다 읽으면 책을 덮은 후 적어도 몇 시간에서 길면 며칠 후에 서평을 쓰기 위해 다시 책을 집어든다. 처음 읽을 때 메모해 놓거나 표시해 놓은 구절을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책을 다시 읽는다. 서문과 결론도 이 때 반드시 다시 읽으면서 전반적인 내용을 머리 속에서 정리해보고 요점과 배울점, 느낀점, 비판할 점 등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그냥 책 읽는 것을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숨 쉬고 밥 먹는 것처럼 생활화하는 것과 하루를 보내면서 애매하게 5~10분 이상의 짬이 나게되면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려는 것이 내가 노력하는 방향이다. 집이나 사무실에서는 화장실 갈 때마다 책을 들고 가기 때문에 눈치를 준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도 꽤 오래 전이다. 또한 술을 먹지 않고 불필요하게 저녁이나 주말 약속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기에 평상시의 경우 하루 중 책 읽는 시간을 제법 확보할 수 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이상 일주일에 1권 이상 읽는 것이 올해 나의 (양적)목표다.
 
[열하일기_세트]는 보리출판사의 <겨레고전문학선집> 기획의 하나라 출간된 것이다. 보리출판사는 북한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1995년판 <조선고전문학선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일부 편집, 수정하여 지난 2004년 펴낸 것이다. 출판사측은 북한에서 진행한 우리 민족의 고전문학을 소개하면서 아직 한국에서 미진한 한반도의 고전을 발굴하고 북한의 문학계와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다.
<겨레고전문학전집>은 [열하일기] 3권을 시작으로 [동명왕의 노래](이규보 작품집)부터 [숙향전](소설)에 이르기까지 30권을 출간한 상태다. [열하일기] 세트는 북한의 리상호씨가 고문을 완역한 것이다.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와 달리 이 책은 처음 읽으면서 책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단어 사용이 남북이 제법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흙탕물'은 '흙물'로, '방금'은 '이즈막' 등 서로 다른 표현도 많고 '가닥물' 처럼 국어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도 가끔 들어있기 때문이다.
 
------- * 역자 리상호는 누구인가?
북에서 한 활동 일부만 알려져 있다.
1955년에 《열하일기》 국역을 마쳤고, 1959년에는 《삼국유사》를 국역했다. 북녘의 고전 출간 사업은 모든 대중이 고전을 읽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른다. 리상호의 국역은 그러한 원칙을 따라 쉬운 우리말로 번역을 한 것 위에, 토박이 우리말을 잘 살려 쓰고 운율감이 배어 있게 하여, 이 《열하일기》가 빼어난 국역 문학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였다. ---------
 
당초 박지원 선생이 쓴 [열하일기]는 26권 10책으로 되어 있다. 정본 없이 필사본으로만 전해져오다가 1901년 김택영이 처음 간행하였다. 현대문 제목은 북한의 리상호가 번역한 것을 따랐다.
26권의 세부 제목과 내용은 아래와 같다.(목차 부분은 위키디피아에서 일부 옮겨온 것입니다...^^)
고미숙씨는 전체 26권 중에서 일부를 편집에서 제외하였고 이 책 [열하일기] 세트는 26권 전부를 완역하여 출간했다.






    1. [제1권] 압록강을 건너서 : 도강록(渡江錄) - 압록강을 건너 심양까지의 기행이다. 1780년 음력 6월 24일~음력 7월 9일

    2. [제2권] 성경의 이모저모 : 성경잡지(盛京雜誌) - 심양에서 광녕까지의 기행이다. 음력 7월 10일~음력 7월 14일

    3. [제3권] : 일신수필(馹?隨筆) - 광녕에서 산해관까지의 기행이다. 음력 7월 15일~음력 7월 23일

    4. [제4권] 관내에서 본 이야기 : 관내정사(關內程史) -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기행이다. 〈호질(虎叱)〉 수록. 음력 7월 24일~음력 8월 4일.

    5. [제5권] 북방 여행기 : 막북행정록(漠北行程論) - 북경에서 열하까지 가는 길이다. 음력 8월 5일~음력 8월 9일

    6. [제6권] 태학관에 머물면서 :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 열하에서의 일정이다. 음력 8월 9일~음력 8월 14일

    7. [제8권]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1. 열하에서 북경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음력 8월 15일~음력 8월 20일.

      2. 북경에서 다시 조선 땅으로 들어오는 여정은 기록을 하지 않았다.


    1. [제7권] 구외이문(口外異聞)

    2. [제9권] 금료소초(金蓼少抄)

    3. [제10권] 옥갑야화(玉匣夜話) - 〈허생전〉 수록

    4. [제11권] 황도기략(黃圖記略)

    5. [제12권] 알성퇴술(謁聖退述)

    6. [제13권] 앙엽기(像葉記)

    7. [제14권] 경개록(傾盖錄) - 열하일기 등장인물에 대한 짧은 기록들이다.

    8. 제15권 황교문답(黃敎問答)

      1.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는 티벳과 달라이라마에 관해 들은 기록이다.

      2. 박지원은 황교문답에서 청나라의 이민족통치와 유학자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9. [제16권] 행재잡록(行在雜錄)

      1. 건륭제에게 바친 문서와 건륭제가 내린 칙유 등의 기록이다.

      2. 실례를 들어가며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 조선이 가진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10. [제17권] 반선시말(班禪始末)

    11. [제18권] 희본명목(戱本名目)

    12. [제19권] 찰십륜포(札什倫布)

    13. [제20권] 망양록(忘羊錄)

    14. [제21권] 심세편(審勢篇)

    15. [제22권] 곡정필담(鵠汀筆談)

    16. [제23권] 동란섭필(銅蘭涉筆)

    17. [제24권] 산장잡기(山莊雜技)

    18. [제25권] 환희기(幻戱記)

    19. [제26권] 피서록(避署錄)

작품으로서의 [열하일기]에 대한 서평은 이미 고미숙씨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에서 다루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서평은 연암 박지원 개인의 작품, 사상, 성과 등에 대해 정리했다. 이 책 [열하일기] 세트의 상(上)권의 후반부에 북한 김하명 박사의 '박지원 작품에 대하여'가 수록되어 있다.
김하명 박사의 글을 일부 인용하면서 빈약하지만 박지원 선생의 작품을 평해보고자 한다. 내가 박지원 선생의 [열하일기] 이외에 다른 작품, 그리고 조선 후기 학자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기에 김하명 박사의 설명 자료를 토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김하명 박사는 작가로서 연암 박지원을 평가할 때 '18세기 조선이 낳은 저명한 사실주의 작가'라고 평가하면서 '사상가나 문학가로서 우리나라 고대 중세의 전 시기를 통하여도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박지원의 예술 문학 작품들과 평론 저술들에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던 심각한 사회 경제적 변동과 문화 예술 분야에서 첨예한 신구 투쟁이 반영되어 있으며 시대의 선진 사상 조류를 대표하는 작가 박지원의 사상 미학 견해와 예술 기량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고...
김하명 박사가 인용하는 박지원의 작품은 '양반전'을 포함한 [방경각외전放?閣外傳]에 실려 있는 단편 소설, 장편 기행문 [열하일기], '좌소산인에게(贈左蘇山人)'와 같은 시 작품, '글은 뜻을 나타내면 그만이다'와 같은 서문 등이다.
 
박지원의 집안은 명문 사대부였다. 그의 6대조 충익공은 임진왜란 때 공신이며, 그 후의 선조들도 대대로 정계에서 대사헌, 판서, 참판 등의 요직을 거쳤다. 그리고 그의 가문은 당시 집권파였던 서인 노론에 속했다. 그런데도 그는 과거나 벼슬을 거부하고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찾는 방향으로 나섰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김하명 박사는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는 그가 나서 자라고 사상 문화 활동을 전개한 당시의 사회 문화적 환경이다. 두 번의 임란과 호란을 겪은 조선의 경제는 백성들의 피땀 어린 노력으로 점차 복구되어 갔으나 그럼에도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나빠졌다. 상인 계층은 늘어나고 빈부격차가 격화되는 가운데 양반 계급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계속된 전쟁에서 자신들의 무능과 반민중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양반 통치계급의 본질이 드러나면서 봉건 사회는 점차 쇠퇴기로 접어든 것이다. 조선이 폐쇄적인 사회였음에도 청나라와의 외교관계와 상인계급의 활동, 외국인들의 표류 등으로 청나라나 서구의 사상과 문물이 조선 사회에도 점차 스며들게 된다.
둘째는 연암 박지원의 가정 환경은 양반 가문임에도 그로 하여금 새로운 문물과 사상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열려있었다. 그의 조부도 젊은 나이에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고 연암에게 서당의 글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다.(그는 일찍 보모를 여의게 되었다.) 열여섯에 이보천의 딸과 결혼하였는데 이보천 역시 일찍이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농사에만 힘썼다. 그리고 실학사상을 가지고 있던 자신의 동생 이양천이 연암을 지도하도록 했다.
 
연암 박지원은 열여덟 살에 옛 하인에게서 들은 재미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처녀작 '광문자전廣文子傳'을 ?고 이 때부터 계속 쓴 '민 모인전', '김 신선전', '우상전', '역학대도전', '봉산학자전' 등 9편을 묶어 약관의 나이에 [방경각외전]을 책으로 완성했다. 연암은 이 단편 소설집을 통하여 확고히 봉건 제도의 모순을 폭로하는 자로 등장했으며 조선 문학 발전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선진 작가로서 등장했다. 그 속에는 양반 사회의 도덕의 위선, 백성의 정치 도덕적 우월성, 인간 성격 형성에서 차지하는 사회적 처지의 중요성, 노동의 고귀함, 양반들의 착취구조, 애국주의, 선린 외교, 사실주의 등이 담겨 있다.
 
[열하일기]는 연암 박지원의 사상과 이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오랜 세월을 두고 연구해 온 것을 '한 번 눈으로 증험한 것'이다. 중국에서 보고 들은 좋은 것을 조선 백성에게 알리며 그것을 실천에 옮길 것을 염원하면서 4년 동안 연암골에 박혀서 집필한 것이다.
[열하일기] 속에는 철학, 정치, 경제, 천문, 풍속, 제도, 역사, 고적, 문화 등 사회 생활 전 영역에 걸친 문제들이 취급되어 있으며 그의 세계관, 사회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견해와 민중적 임장이 명백히 반영되어 있다.
또한 그는 중국의 좋은 것과 조선에서 부족한 것을 대비하면서 그 원인이 전적으로 무위 무능한 양반 사대부들 때문임을 명확하게 주장했다. "수레는 왜 못다니는가? 이것도 한 마디로 대답한다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다."
 
그러면서 김하명 선생은 연암 박지원의 철학적, 사회정치적 식견이 과학적 세계관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과 민중을 역사와 개혁의 주체로 세우지 못하고 왕조와 사대부 체계를 인정한 것, 그리고 구체적인 조직행위와 혁명을 생각하지 못하고 '계몽'에 의지한 것 등을 박지원의 한계로 지적한다.
 
박지원은 정조 시대 말기에 다른 실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고을 현감이나 한성 부파관을 지내는 등 현실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선진 사상과 문물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조선 사회의 제반 사회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주기 위하여 [과농소초] 등 정론을 많이 썼다. 또한 개인의 토지소유를 일정한 기준량으로 제한하고 그 이상의 소유를 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한전제'를 제안하기도 했고 화폐 정책 개혁, 신분 제도 개혁, 난민 구제책, 봉건적 도덕의 개혁 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조 사후 양반 통치계급의 반격과 반동으로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낙향하여 죽었다.
 
영조,정조 시대의 조선 사회와 21세기 한국 사회... 비슷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선진 사상과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명나라 유교(미국의 신자유주의)를 살리려고 애쓰고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만주땅(북한)을 가당치도 않은 무력으로 되찾겠다고 부르짖는 모습, 자신의 자리가 어딘지 찾지 못하고 사대부와 백성들의 생각을 아편처럼 중독시키는 불교와 유교(반공친미와 기독교), 민중들과 진보세력으로부터 분리되어 개혁주의자임을 내세웠던 임금(DJ와 노전대통령),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여잡고 발악하는 양반 사대부(수구 기득권 세력), 어딘가 아직 부족하고 모자란 듯한 개혁주체들(진보세력), 자신의 삶과 권리를 주체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힘겹게 하루하루 살고 있는 백성들(민중들)....
연암 박지원과 당시 실학자들로부터 21세기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무엇일지...
 
[ 2011년 8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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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2
김탁환.정재승 지음, 김한민 그림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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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 > 1권은 미래사회과 첨단과학에 대한 많은 설명과 출연자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이 많아 조금 지루한 감이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수사검사와 살인사건의 연속, 기술개발과 로봇격투기 대회, 기술지상주의와 자연생태주의의 갈등, 주인공 및 출연 남녀의 사랑으로 이루어진다. 2048년 그동안의 로봇기술 개발로 로봇 전용의 방송채널이 송출을 시작하고 인간격투기와 비슷한 수준으로 발달한 로봇들의 격투장면을 전세계에 생방송한다. 과학은 기계를 인간의 몸에 연결하여 신체의 일부처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인간이 죽더라도 뇌 속 전두엽의 세포는 인간이 죽기 전 마지막 몇 분을 일정기간 기억한다는 과학에 힘입어 비밀리에 '스티머스' 수사팀이 발족한다. 하지만, 그런 수사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뇌가 몽땅 사라지는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자연생태주의자들은 도시 경계 밖으로 ?겨나 생활한다. 그들은 도시사람들이 자연의 자연스러움을 거역하고 인간의 삶에 로봇을 개입시키는 것에 반대한다. 로봇 전용채널과 로봇 격투기 대회 역시 격렬하게 반대하며 폭력을 통해서라도 저지하겠다고 일부 과격한 세력이 경고한다.
 
차세대 로봇연구센터에 연구원들은 격투기 대회에 내보낼 격투로봇 '글라슈트'를 개발,제작한다. 글라슈트는 연습게임에서 지난 대회 상위 랭커에게 무참하게 패한다.
 
< 2권 > 2권은 1권보다는 빠른 전개와 반전이 기다린다.
 
주된 시간 흐름을 주도하는 '로봇 배틀원 2049'는 마치 2010년 인간들의 이종격투기 경기인 'K1'처럼 보인다. 주인공 로봇 '글라슈트'가 4강전과 결승전에서 보여주는 격투장면은 권투선수 홍수환의 '4전5기'와 같다. 글라슈트가 로봇 제작자이자 프로그래머인 연구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힘과 기술을 보여준 이유가 인간의 뇌와 로봇을 연결했기 때문이라는 암시는 SF 소설에 약간 스릴러를 가미한 느낌이다.
 
연쇄 살인범에 대한 의문, 남앨리스와 서사를 중심으로 보여지는 인간의 액션, 글라슈트를 정점으로 하는 충격적인 클라이막스, 최볼테르와 조윤상원장의 죽음에 얽인 미스테리, 인터넷 추억 사이트에서 일어난 살인의 추억, 자연생태주의의 진실한 사랑...
 
SF이자 추리소설의 이야기가 흐름을 이어가기 때문에 뇌과학에 대한 적절한 설명은 부족해 보인다. 어떤 독자는 '과학적인 서술이 많은 것이 흠'이라고 하지만, 내가 읽어본 바로는 소설의 중심을 주도하는 것은 과학보다는 인문적인 구성이다.
 
로봇이 인간생활의 중심에 들어왔을 때 인간의 존재와 로봇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인간의 몸에 정밀한 기계부품(사이버네틱스, 인간생체기술)을 달았을 때 그 부품을 인간 신체의 일부로 인정할 것인가... 기계부품이 인간 신체의 몇 프로까지 잠식하면 인간이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할까... 인공심장을 대체한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는다면, 뇌의 일부를 기계로 교체해도 인간으로 인정할 것인가... 인간은 기계부품을 통해서라도 수명을 10년이고 50년이고 연장해야 하는가...
 
과학이 점점 발달하고 첨단기술이 인간의 삶에 파고들수록 우주와 인간,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의 섭리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책의 제목 <눈먼 시계공>은 진화생물학에 대한 글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40년 후 인간의 진화모습이 아니라 과학발달에 따른 사이보그의 모습을 주로 다룬다는 점에서 아쉽다...
 

[ 2010년 6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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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조선 운동사 -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
한윤형 지음 / 텍스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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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에 대학 몇 년 선배(개인적으로 친분이 없으니 선배라 칭하기는 뭐하지만...)가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에 '희망버스는 희망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그룹 멤버들의 찬반 논란이 거세졌고 나 역시 며칠 동안 페이스북에 집중하여 댓글을 달았다. 나는 그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에 50% 이상 동의할 수 없었고 일부 동의할 수 있는 주장 역시도 그런 문제를 제기할 시기나 방식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논란이 거세지던 와중에 페이스북에서 '희망버스'를 반대하는 주장을 기사로 다루어주겠다는 중앙일보 기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유명세를 탔다. 
그 사실을 안 순간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그 사람의 글에 반응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그룹 멤버들을 초대하여 토론회를 갖자고 제안하면서 나에게도 직접 참석할 것을 요청한 것도 거부하였다. 그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주류언론에 '등장'하고 싶어서 일부러 논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 친구들을 만나다보니 많은 친구들은 그룹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살펴보고 그냥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댓글에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 그 사람은 일반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학벌로 이야기되는 대학을 나왔고 10년이 넘는 청춘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바 있다. 1990년대 소련의 해체와 시대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노동운동을 그만두고 대학에 재입학한 후 졸업하여 대우자동차에 근무하였고 이후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사회문제를 다루는 연구소를 차리기도 했다. 책도 몇 권 펴냈으나 별로 세간의 주목을 받지는 못하였고 최근에는 동년배들과 모임을 갖고 자신의 주장과 이론을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 [안티조선운동사]를 읽기 시작한 것은 지난 달 7월 중순이지만 당시에는 공부모임에서 책의 분량이 많아 2부까지만 세미나의 대상이었고 이번 달에 나머지를 토론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번 주에 3부~6부 나머지 부분을 읽었다. 나머지 부분을 읽는 동안 지나간 페이스북을 통한 경험과 의문이 계속 머리 속에서 오버랩되었다. 
나는 왜 본능적으로 '조중동'을 싫어할까? 지금 시대에 지식인이 자신의 의견을 '조중동'에 표현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언론은 산업인가 아니면 사회적 기능인가? 한국사회에서 언론의 과점상태를 이룬 '조중동'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 속에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이란 무엇인가? 언론이 사회적인 주장의 '공론화'장이라고 하면 언론이 국민들과 소비자에게 부여받은 권리와 의무는 무엇인가? 사적 소유와 사회적 책임에서 언론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 21세기 언론의 새로운 기능과 책임은 어떻게 변화되었나? 현실에서의 언론은 어떻게 기능하는가? ..... 끝없는 의문과 질문이 계속될 수 있다.
 
지난 2000년대 10년 동안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사회를 달군 화두 중 하나였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운동에 참여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나 또한 구체적으로 사이트에 가입하여 활동하거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지만, 운동의 취지에 공감하여 동의하여 언젠가부터 조선일보 구독을 끊었다.
또한 안티조선 운동은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언론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 사람들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계기를 주었고 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그 이외에도 '안티조선 운동'은 이 사회에 많은 것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시작을 15년 전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10년 전이라 말한다.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안티조선 운동을 과거로 기억하고 다른 이는 현재 진행형이라 이야기한다.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직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대체 안티조선 운동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해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들이 벌인 '조선일보' 반대 운동이다. 대한민국의 주요 언론인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행위에는 우리 언론의 어떤 변화를 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운동인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언론이, 그리고 [조선일보]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히 언론 운동에 그쳤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언론 환경의 변화로 언론 권력이 분산됐지만 과거, 언론 권력이 몇몇 언론사에 집중됐을 당시에는 그 위력이 실로 대단했다. 따라서 안티조선 운동은 시민운동임과 동시에 정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 * 한윤형은 누구인가?
대구에서 출생했으나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시절 진중권과 강준만의 책을 읽으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어 인터넷에 접속했고 1999년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의 원년 맴버가 되었다. 서울대와 조선일보 주최의 논술경시대회를 나갔다가 대상을 받았고 당시 안타조선 운동의 참여자임을 밝히며 조선일보의 인터뷰를 거부해 화제가 되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여러 지면을 통해 글을 발표하고 있다. 공저로는 [MBC, MB氏를 부탁해](프레시안북, 2008)와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산책자, 2009)가 있고, 단독 저서로는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0-2009](텍스트, 2009)가 있다. -----
 
 
이 책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되어 온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담았다. 더불어 저자는 이 운동의 참여자로서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최초로 평가를 시도했다. 이를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과 전개, 절정의 과정은 물론이고 안티조선 운동 이전의 언론사와 언론 운동사를 살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총 6부로 구성됐다.
 
1부 ‘맥락을 모르는 이들을 위한 예비 학습’은 1920년부터 1998년까지의 한국 언론사를 간추렸다. 한국의 언론사는 한국의 굴곡진 현대사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친일과 친미, 기득권의 세대세습으로 이어져왔다. 그 중심에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고...
2부 ‘안티조선 운동의 탄생’은 안티조선 운동의 태동기라 할 수 있는 1995년부터 1999년까지의 상황을 다뤘다. 1995년 강준만교수의 [김대중 죽이기]는 안티조선 운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1999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의도와 사실조작으로 '최장집 교수 사건'을 기획,실행했고 이에 대항하여 대대적인 '안티조선 운동'이 전면에 등장한다.
3부 ‘안티조선 운동의 성장’은 2000년부터 2001년까지의 사건들을 묘사하고 그 맥락과 의미를 짚었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와 국민의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옥천전투' 등 안티조선 운동은 활활 타올랐다. 그리고 이문열의 '홍위병 논란' 등 수구기득권 세력의 도전도 만만치 않게 일어난다. 언론환경의 변화와 세무조사는 그동안 조금씩 달랐던 조중동이 하나의 기득권 집단이자 수구세력으로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4부 ‘혼란에 빠진 안티조선 운동’은 안티조선 운동에서 특별히 중요한 해라 할 수 있는 2002년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가 늘어나고 자체가 국민의 정부의 실정과 2002년 대선을 앞두면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한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조중동과 진보언론의 전쟁이 벌어지고 '언론'이란 세계는 과도한 당파성으로 얼룩진다. 안티조선 운동과 노무현 후보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점점 가까워졌다.
5부 ‘관성에 젖은 안티조선 운동’은 2003년에서 2007년까지의 안티조선 운동 진영의 문제점과 당시 참여정부의 문제점 등을 살폈다. 참여정부의 실정과 여러 세력과의 갈등을 맞이하여 또 다시 안티조선 운동은 분열을 거듭하고 조중동은 이를 틈타 역습을 가한다.
6부 ‘안티조선, 그 이후’는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언론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았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과 촛불시위를 통해 안티조선의 정신은 다시 다른 주체로 부활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언론환경은 또 다시 변화하고 언론 운동은 기존 과제와 더불어 새로운 과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 책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사를 좇다 보면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역사인 셈이다.




< 책에 대한 평가 >
이 책은 직접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저자의 체험담이자 사실관계를 토대로 10~15년간 한국의 언론개혁운동을 서술했다. 
저자는 직업 저술가도 아님에도, 그리고 젊은 나이라고 하기에는 독자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언론의 흐름을 책 속에 담아냈다. '안티조선 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언론운동사만 다룬 것이 아니다. 언론운동사에 필요한 일제시대 친일 언론의 사실과 행태, 해방전후사에 대한 인식, 개별 사건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정확한 자료들을 책 속에 담아내는 것을 보면 저자의 열정과 실력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어떤 사회적 배경, 언론 환경의 배경 속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탄생하고 어떤 계기와 과정을 통해 '안티조선 운동'이 탄생했는지 독자들이 충분히 수긍이 갈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리고 초창기 '안티조선 운동'에서 강준만교수의 빼어난 역할과 기여를 밝혀냈다. (그는 스스로 강준만 교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쪽까지 읽은 후 덮고 나면 '안티조선 운동'의 10년 넘는 과정이 파노로마처럼 눈 앞에 펼쳐질 정도로 '안티조선 운동'을 정확하게 다루었다.
뿐 만 아니라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주도세력의 입장과 주장 뿐 아니라 '안티조선 운동'을 거쳐간 수 많은 개인과 단체, 정치권, 세력의 흐름과 주장까지 객관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는 박정희 추종론자와 한총련, 민주당 지지자들과 노사모, 유시민과 최문순, 김대중과 노무현, 진중권과 변희재, 언론운동단체, 각 언론사까지 포함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저자가 '안티조선 운동'을 객관적으로 다루고 평가하는데 있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만이 최선이고 그들만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냥 '안티조선 운동'은 한국현대사에서, 시민들의 의식과 언론의 모습, 각 개인과 집단들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 1995년에서1999년까지 이어진 기간 속에서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탄생하는 배경과 과정, 참여하는 주체와 구조, 그리고 그들의 운동과정은 '안티조선 운동'의 긍정적인 성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다. '안티조선 운동'은 자연스럽게 운동의 상대인 조선일보와 다른 주류 언론사, 그리고 진보언론과의 관계 속에서 전개되어 나가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와의 관계 속에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태동했던 '안티조선 운동'은 그 탄생 배경, 논리와 유사했던 정치인 노무현을 만나면서 급격하게 대중화 되었고 스스로의 한계 속에서 참여정부의 프레임에 발목이 묶여 참여정부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갔다. 그래서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은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린다.


또한 저자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 대한 공과를 공정하게 평가하려고 노력했다. 
2009년 정권의 친위대를 자처했던 검찰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이 과정을 통해 언론 운동이 다시 부활하고 그동안 일방적으로 폄하되었던 노무현 대통령 개인과 참여정부의 성과는 재평가되었다. 하지만, 과도한 재평가의 분위기는 참여정부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가로막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IMF 이후 사회적 양극화와 노동자, 농민에 대한 부당한 처우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들어 개선되지 않았다. 두 민주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구기득권 세력의 여론 호도와는 달리 사실 10년 기간 동안 수구기득권 세력과 자본가들의 이익과 권력은 늘어났지만 그 반대편에 존재하던 노동자, 농민, 빈민, 비정규직, 청년, 여성, 아동, 노인들의 권리와 이익은 줄어들었다. 특히 수구기득권 세력과 부패관료, 삼성에 가로막힌 참여정부의 경우 '때 이른 4대 개혁입법'과 한미 FTA 추진 등 실정이 만만치 않았다.


저자는 '안티조선 운동'의 역사를 서술했지만, 그 속에서 언론의 '사회적 기능과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 극우/보수/진보를 떠나 한국의 언론이 언론으로서의 기본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제기, 진보언론의 필요성과 성장 조건에 대한 지적, 언론개혁의 방향과 방식에 대한 고민, 사회적 의견을 담아내는 '공론화'의 장으로서의 다양한 언론의 역할과 관계, 주권자로서의 국민과 소비자로서의 시민의 책임과 역할 등도 함께 다루고 있다.
'안티조선 운동'이 단순하게 조선일보를 반대하고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닌 한국의 언론이 제 역할과 기능을 다 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노력인 것이고 그렇다면 단순히 조선일보만을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야만적 극우선동집단의 하나로 기능하고 있는 '조중동'을 한꺼번에 바라보아야 하고 소위 진보언론에서 나타나는문제점 역시 무시하거나 눈감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신문 뿐 아니라 방송과 인터넷, 소셜 네트워크를 모두 포함한 언론매체 환경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고 그 모든 것의 소비자이자 주권자인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한국 언론의 현실과 문제점은 한국 정치계, 관료와 교육부문에서의 현실과 문제점, 그리고 다른 분야에서의 그것과 비슷한 맥락을 보여주고 있고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영향을 주고 받고 있다. 결국 저자가 1부에서 '예비 학습'으로 서술한 '해방전후사'의 언론의 모습은 한국사회 각 부분에서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현재의 수준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자력이 아닌 타력에 의한 해방, 동족상잔의 비극, 남북의 이념 대결, 친일세력에서 친미세력으로의 지배세력 교체, 독재와 군사정권의 체제 장악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전과정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뿐 아니라 언론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들었고 '안티조선 운동'은 언론 분야에서 '해방전후사'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민적 운동의 하나일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이기도 한 저자 한윤형은 과감히 안티조선 운동이 ‘실패’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실패했던 그 지점에서 새로움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안티조선 운동사]를 통해 지금, 안티조선 운동을 다시금 돌아보며 기록한 이유는 바로 새로운 꿈을 꾸고 실현시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다. [안티조선 운동사]는 독자들에게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며 한국 언론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꿈꾸게 해줄 수 있다.
 
저자는 상징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사실 책을 모두 읽고나면 가장 명확한 결과가 하나 도출된다. 그것은 국가권력의 주인이자 언론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시민들이 어떻게 언론을 소비하고 언론운동에 참여하는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여 '국민의 수준이 국가의 수준이고 대통령과 정치인, 언론의 수준'인 것이다.
저자는 실천적인 과제도 몇 가지 제시한다. 진보언론에 대한 적극적 유료 구독과 주간지에 대한 유료구독, 진보언론의 내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질책, 그리고 조중동과 방송 등 제 언론과 관련 제도에 대한 감시와 참여이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기존 언론 이외에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집단은 소비자이고 국민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권자가 자기 권리를 행사하고 자기 역할을 다하게 되면 어느 사회의 어느 집단도 국민의 힘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책을 읽고 개인적으로 얻은 것들도 많다.
하나.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한국 언론의 지형과 역사, 언론의 환경과 구조, 언론운동의 흐름과 과제 등에 대해 많은 정보와 시사점을 얻었다. 이것 만으로도 책 값은 뽑은 셈이다.
둘. 강준만 교수와 진중권 교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그동안 나는 주변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여 두 사람을 받아들였고 스스로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두 분의 가치와 실력, 주장과 논리를 접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셋.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동아일보 각각에 대해서 그동안의 그들의 행위와 과정을 통해 각 수구언론의 정체에 대해 내 나름대로 개념과 기준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넷. 한국의 인터넷 소통문화가 초기에 비해 훨씬 '집단극화'와 '사이버 발칸화'의 특징을 보였다는 설명에 공감하고 동의한다. 이는 포탈이나 카페 뿐 아니라 나아가서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비슷한 정황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과 고민은 '공론화'에 대한 장기적인 과제를 심각하게 생각토록 만든다.
다섯.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한 대중적인 세력과 '노사모'의 연결 가능성, 노무현 전대통령의 생각과의 공통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여섯. 참여정부와 삼성의 '커넥션'에 대해 한 번 더 심증을 굳혔다. 더군다나 참여정부 참모진이 내뱉은 여러 가지 발언은 심증을 넘어서 물증까지 가능한 정도다.
일곱. 개혁당에 대한 유시민씨의 배신, 그동안의 발언과 달리 '당내 민주주의'와 '진성당원체제'에 대한 유시민씨의 이중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시민씨는 앞으로도 오랜 동안 의심받을 수 밖에 없고 그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것보다 더 오래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저자의 글 중 비판적으로 검토한 부분
- (p.52) 저자는 1970년대 '언론자유 수호'를 외치다가 박정희 정권과 언론사주에 의해 ?겨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를 평가하면서 "그들이 제도권 내부에서 계속 투쟁할 수 있었다면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훨씬 더 성숙하지 않았을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시의 좀 더 구체적인 신문사 상황과 조선투위와 동아투위 주체들 입장에 처하게 되면 이런 가정법은 유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구조 전체를 고려해보고 1988년 한겨레신문을 비롯한 '대안 언론' 탄생을 되돌아볼 때 역으로 조선투위와 동아투위가 없었다면 관제언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언론 운동 및 '대안언론' 추진이 지체될 수도 있었다는 의견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8장 '한총련의 귀환' (p.152~163) 사실 저자도 그렇고 나고 그렇고 2000년을 전후하여 한총련이 검찰의 공소장대로 '북한의 통일전선' 지침에 추종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는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 한총련이... (중략)... 이미 참여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한총련의 불법행위나 북한추종의 이유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 정보원과 검찰이 믿는 것처럼'이라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수구언론 조중동의 사실 왜곡과 극우적 주장을 비판하면서 국가기관의 '주장'을 토대로 학생운동 단체가 반역자인 것처럼 다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고 생각한다.


* 안티조선 운동의 구조와 연표









 

[ 2011년 8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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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의 왕국 - 피터 앳킨스가 들려주는 화학 원소 이야기 사이언스 마스터스 2
피터 앳킨스 지음, 김동광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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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 섹스의 진화 >에 이어 - 사이언스 마스터스 시리즈 -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은 옥스퍼드대학 물리학과 교수(물리화학 전공)로 재직 중인 저자가  주기율표에 담겨 있는 화학원소가 언제, 어떻게 발견되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언뜻 보기에 단순한 규칙으로 정렬한 것처럼 보이는 화학원소의 배열에 숨어있는 비밀을 설명한다.
 
저자는 주기율표 속에 숨겨져 있는 온갖 리듬과 패턴을 드러내 보여준다.
초,중,고등학교 수업시간에 화학을 그저 암기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왔던 우리에게 화학원소의 주기율표는 마치 마술처럼 보인다.
화학의 기본 원소들을 모두 담고 있는 주기율표.
그 주기율표를 관통하는 근본 원리들과 주기율표가 형성된 역사, 그리고 원소의 내부 구조에서 대한 과학적 정보가 흥미진진한 비유와 어우러져 쉽고 정확하게 이해된다.
원자량, 원자 지름, 원자가, 전이 금속, 영족 기체 같은 어려운 화학적 개념들이 지협, 해협, 영지, 산맥 등으로 바뀌고, 원자의 기본 원리인 양자역학이 왕국의 법률, 제도, 행정 같은 일상적인 단어로 바뀌는 것들이 환상적이다.
분자에서 원자, 원자에서 소립자로, 그리고 별, 은하, 대우주로 종횡무진 이어지는 여행은 화학의 즐거움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주기율표 속 109개 화학원소는 수소를 비롯한 비금속(Non Metals)와 할로겐족 원소(Halogens)군, 전이금속군(Transition Metals), 알칼리 금속군(Alkali Metals)과 알칼리 토금속군(Alkali Earth Metals), 란타넘족 원소군(Lanthanide Series)와 악티늄족 원소군(Actinide Series)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기율표의 전체적인 구성과 성격을 들여다보면,
- 원소의 질량은 원소의 번호(원자량의 개수)대로 수소를 비롯하여 상부가 가장 가볍고 가장 아래쪽 악티늄족 원소군이 가장 무겁다.
- 원소의 부피는 전체적으로 상부 구성원소가 작고 아래쪽 원소들로 갈수록 커지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서쪽으로 갈수록 부피가 급속하게 증가하며 의 백금과 이리듐이 가장 크다.
- 밀도의 경우, 북쪽이 가장 작고 남서쪽으로 갈수록 커지는데 이리듐과 오스뮴이 가장 크다.
- 원소의 이온화 에너지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전체적으로 작고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동쪽과 북쪽으로 갈수록 에너지 수치가 올라간다. 특히, 플루오르와 네온, 그리고 헬륨의 이온화 에너지가 가장 크다. 이들 원소에서 전자를 떼어내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 대신, 플루오르와 네온, 헬륨과 질소, 산소, 염소는 전자에 대한 친화력이 높아서 전자를 잘 끌어와서 음이온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 원소의 부피와 밀도, 이온화 에너지와 친화력은 원자와 양성자의 개수, 전자의 개수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 이들은 양자역학에 따른 파울리의 ’배타원리’에 의하여 결정된다. ’배타원리’는 하나의 전자 궤도에 2개 이상의 전자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 현재 원소 내 전자들의 궤도는 주기1에서 주기6까지 가능하다. 각 원소의 전자 개수와 궤도에 배정할 수 있는 전자의 수, 전자의 주기성에 따라 부피와 밀도, 이온화 에너지, 전자 친화력이 달라진다.
- 주기율표에 숨겨져있는 배치원리는 양자역학으로만 규명이 가능하다.
 
우리 몸과 자연과 물질의 모든 것들을 구성하고 있는 화학원소의 세계는 보이지 않지만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원소들의 오묘한 집합에 의하여 이루어져 있고...
 
아쉬운 점...
화학원소의 집합을 왕국이라 명명한 아이디어는 나름 신선했지만, 이 책은 ’왕국’이 사람들에게 주는 화려하고 활력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3차원 지도 정도로 기술되어 있다. 책 속의 비유는 제목만큼 신선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 2010년 7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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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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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편력'을 통해 한 사람의 영혼을 읽는다는 것도 별다른 경험일 것이다. 보통 인간의 성장 과정 중에서 소위 '청소년기'가 그 사람의 세계관의 틀이 현성되는데 있어 상당 부분 기여한다고 보았을 때, 청소년기의 독서와 인생 경험은 개인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보통의 삶'에서 벗어난 인생의 궤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가 재일동포 2세(또는 3세)라는 것만 가지고도 '특별'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에 더하여 그의 형 두 명이 모두 1971년 재일동포로서 한국에 유학을 왔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으로부터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연루되어 장기간 옥고를 치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전체 재일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평범한 '재일동포'일 수도 있고 두 형이 한국에서 옥고를 치른 '양심수'의 동생일 수도 있다.(한국 내에서는 그의 둘째 형인 서준식씨가 인권운동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관계'와 더불어 그 역시 문학가이기도 하다. 청소년 시절부터 수 많은 시와 소설, 수필과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었던 과정이 있었기에 그는 일본의 명문 대학 중 하나인 와세다대학에 입학하였고 현재는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 책으로 '에세이스트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개인적으로도 생각해 보아도 일반인들 중에서 소년과 학생 시절 저자만큼 많은 독서량(독서의 질을 고려하지 않더라도)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자체가 흔치 않다.
그의 현재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것 중의 하나, 그 과정의 결과로서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즉, 이 책은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사회적 정체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형성해온 과정을 소년 시절 읽은 책들에 대한 사색 및 비평과 함께 기록한 글이다.
밖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일보다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서경식은 어린시절 책을 읽기 위해 꾀병을 부리고 학교를 빠질 정도의 독서광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3~4학년인 열 살 나이에 “아내의 죽음이라는 구슬픈 사건”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나가는 '데라다 도라히코'의 에세이를 읽고 불가사의한 매력을 느꼈던 이 조숙한 소년은 독서를 통해 유년기 성장의 자양분을 얻는다.
데라다 도라히코에서 '프란츠 파농'에 이르기까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10년에 걸친 독서 편력 기간은, 그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기간과 정확히 중첩된다. 그렇듯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에게 재일조선인이라는 말은 성장의 기간 내내 존재를 짓누르는 무거운 틀이었다. 그것은 때로 남과 조금 다르다는 막연한 불행감으로, 소외감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때로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으로 승화되기도 했다.
서경식 고유의 성찰적인 글쓰기는 바로 이러한 그의 독특한 정체성에서 비롯한다. 그의 글쓰기에서 우리는 일상의 균열, 곧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의 허위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따뜻한 감성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서준식씨의 책과 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던 내가 서준식의 동생 서경식씨의 책을 읽게 된 동기는 후배가 이 책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선물로 받았을 때 '서경식'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단지 책이 '독서를 통한 영혼 성장기'를 다루었기 때문에 호기심 때문에 읽었다.
물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그의 성장배경과 환경, 가족사, 재일동포 소년의 삶과 갈등, 독서에 대한 비평 등에 줄곧 이끌려 책을 끝까지 읽을 때까지 책의 내용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서경식은 누구인가? ------------------
국적은 '대한민국'으로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 도쿄오케이자이대학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소년의 눈물], [디아스포라 기행], [난민과 국민 사이], [시대를 건너는 법], [고뇌의 원근법] 등이 있으며, 1995년 [소년의 눈물]로 일본 에쎄이스트클럽상을, 2002년에 [시대에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일본 이탈리아 문화원에서 시상하는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
 
 
책은 성장기의 생각과 고민을 대변하는 작품 12편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들은 저자에게 궁금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사색을 갖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통찰하는 법도 가르치고 인생과 자연을 느끼고 배우고 돌아보도록 하게끔 만들기도 한다.
주요 작품은 데라다 도라히코의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 엘리자베스 루이스의 『양쯔 강 소년』,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 요시카와 에이지의『삼국지』, 다자이 오사무의 「추억」, ‘현대시인전집’ ,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허남기의 『조선의 겨울이야기』, 김소운의 『조선시집』, 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등이다.
 
저자가 특별히 책의 목차에 내놓은 것들 중에서 초등학교 이후 내가 읽은 것이라고는 [삼국지]와 루쉰의 [고향] 정도다. 저자가 재일동포로서 일본학교에 다니면서 읽었던 일본 내 문학작품의 수준에 해당하는 한국 문인들의 작품도 일부 읽었을 것이지만, 적어도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읽었던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다녔던 학교 도서관에 꽂혀 있던 책 중에서 지금 기억나는 것은 그리스/로마 신화, 안델센 동화집, [죄와 벌]과 같은 세계문학전집 몇 권 정도에 불과하다. 나는 어린 시절 저자와 달리 '운동'이나 '놀기'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책에 그렇게 많은 흥미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 데라다 도라히코의 『데라다 도라히코 작품집』: 저자는 이 책을 '내 독서 인생 최초의 책다운 책'이라고 소개한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아이가 도토리를 주우며 즐거워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아이가 아내의 운명을 반복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장면을 통해 저자는 어린 나이임에도 문장의 유려한 흐름과 좋은 어조가 전해주는 율동감의 매력을 처음 경험했다고 말한다.
- 엘리자베스 루이스의『양쯔 강 소년』, 니콜라이 바이코프의『위대한 왕』 에리히 케스트너의『하늘을 나는 교실』:『양쯔 강 소년』은 저자가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 앉아 늘 책을 읽던 습관을 벗어나게 한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저자는『위대한 왕』에 푹 빠져 지내기도 했는데 그것은 바이코프가 묘사한 동물 대 동물, 인간 대 동물의 무자비하고도 타협 없는 투쟁 속에 '아이들의 허구를 넘어서는 리얼리티가 느껴지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교실』은 저자에게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어머니는 문맹이었기에 그것을 잘 아는 저자는 학창시절 급식비를 내지 못하여 선생이 어머니를 불러오라고 했는데 그는 어머니가 문맹이라고 말을 못하고 '집안 형편이 어렵다'라고 울면서 답한 적이 있었고 장사를 하는 아버지의 직업 특성 때문에 자신의 집안의 사정이 들쑥날쑥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저자가 『위대한 왕』에서 가장 마음이 끌렸던 글은 '제2서문' 이었다. 케스트너는 서문에서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만 만들면서 아이들을 기만하고 재미로 아이들 정신을 흘리려 애쓰는 아동서 작가들에게 분개했다고 한다. 저자는 말미에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피력한다.(p.85)
- 요시카와 에이지의『삼국지』: 저자는 자신의 둘째 형 서준식의 『삼국지』에 대한 암기와 이해, 놀이 등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둘째 형은 어린 저자에게 '천하삼분지계'나 '읍참마속' 같은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설명하거나 소설 속의 명장면을 이야기하며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다. 동네 꼬마 녀석들과 전쟁놀이를 할라치면 삼국지의 배역을 나누면서 놀았다고 한다.
저자가『삼국지』에서 가장 인상 깊게 기억하는 것은 조조의 장남 조비가 동생 조식을 제거하려 할 때 조비가 읊은 '칠보시'였다. '콩을 삶으려 콩깍지를 태우니, / 가마솥 안 콩은 소리없이 눈물 흘리네 / 본디 한 뿌리에서 자라났건만 / 무슨 이유로 이리도 다급하게 서로 볶아대는고'... (p.100)
- 다자이 오사무의「추억」: 저자는 그 전까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다가 중학교 입학을 계기로 성(姓)만은 본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4.19 운동이, 일본에서는 '북조선귀국운동'이 한창이었다고 한다. 저자는「추억」속의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작품은 '위태로울 정도로 예민해져가는 소년기의 자의식과 불균형한 자기애의 양상'을 능숙하게 그려내고 있었다.(p.121)
- ‘현대시인전집’ : 이 시집은 저자가 '시'와 '시집'에 대해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되었고 저자가 시를 지어 노트에 남기는 것을 시도하도록 유도하기 했다. 시집 속의 여러 일본 시인들의 시를 접하면서 저자는 조금씩 스스로가 어른으로, 남자로  성장해가고 있음을 느꼈다.
- 토마스 만의『마의 산』: 이 책은 저자가 중학생 시절 난생 처음 이성에게 마음이 끌리던 시기에 상대 이성에게 호기를 부리면서 읽었다고 자랑했다가 정작 책을 읽기 시작한 후 '끝내 읽지 못한 책'이 되었다.(저자는 이 책을 발간할 때까지도 결국 이 책을 읽지 못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사춘기 콤플렉스의 상징이요 끝까지 등정할 수 없었던, 영원한 미답의 봉우리같은 존재'라고 부른다.(p.163)
- 루쉰의『고향』: 저자는 이미 중학생 시절에 루쉰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루쉰은 저자가 오랫동안 기대고 의지했던 작가였다. 아마도 그것은 루쉰의 소설과 루쉰의 글들이 동아시아라는 비슷한 지역에서 가까운 '동시대'의 아픔과 희망, 지식인의 선함과 올바름을 이야기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아Q정전]과 『고향』에서 희망을 읽었다.
- 허남기의『조선의 겨울이야기』, 김소운의『조선시집』: 저자는 지금도 한글을 제대로 쓰지도 읽지도 말하지도 못한다. 그는 스스로 '모국어상실자'라고 자조한다. 두 권의 조선 시집은 저자가 중학생 시절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다. 한글과 한국어는 저자에게 있어 '한국인(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지만 그 상징이자 중심인 말과 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한다.
- 프란츠 파농의『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저자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파농의 '저작집'을 읽었다. 이 책은 어린 시절 작은 형으로부터 '조선을 위해서는 건축가나 토목기사가 되라'라고 지적당하면서 이야기를 들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실제 파농이 그 작품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달랐다. "하나의 다리를 건설하는 일이, 만일 그곳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의식을 풍요롭게 하지 못할 양이면, 차라리 그 다리는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p.226)
 
 
책을 읽고난 다음,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나의 "재일동포에 대한 무관심"이었고 그로 인한 죄스러움이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나 위안부 사건으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있었음에도 내 머리 속에서는 더 이상 진척이 없었다.
그동안 재일동포라는 단어는 내게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그리고 '조선인 차별'과 '지문날인'을 떠올리게 하였다. 나는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찾아서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그 피해자들이자 재일동포였던 서승씨와 서준식씨에 대해서도, 그들이 발간한 책도 찾이 않았다.
굳이 민족적, 동포적 관심과 애정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가 그동안 서유럽 민중에 대한 관심, 근대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관심, 인도네시아 쓰나미로 희생당한 아체인들에 대한 관심, 전세계 곳곳에서 '매춘산업'에 희생당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을 보였으니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도 비슷하게 인간적인 삶과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도 일어났어야 했다.
다행하게도 더 늦지 않은 시기에 이 책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삶과 권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이 책을 선물해 준 후배가 새삼 다시 고마워졌다.
 
이 책은 저자의 성장의 중요한 대목, 인상적인 장면마다 그 시절에 읽은 책의 기억이 오버랩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 서경식의 영혼의 성장기이다. 자기 앞에 놓인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가면서 책읽기의 의미를 깨쳐가는 과정, 유년기의 고통과 슬픔, 생에 대한 불안한 매혹의 순간들이 아름다운 문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 책을 읽게 되으면서 나 역시 나에게 있어 독서의 근본적인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통해 자신의 유년기 성장사를 되돌아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한참 자라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책'과 '독서'에 대해 여러가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아이들과 책 읽기'의 중요성이다. 아니 가정 내에서, 가족 관계에서 '책읽는 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저자가 재일동포라는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 어려운 일본 사회 내에서 도쿄 지역 대학교수로 활동하는 것도, 그 까다로운 일본 문학계의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 중의 하나가 성장기에 늘 가까이 했던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만큼 독서는 우리 아이들, 청소년들의 영혼이 성장하는데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아이들의 독서가 '영혼의 성장'이 아닌 '성적을 위한 도구'로 자리잡게 되면 아이들은 책을 멀리할 수 밖에 없고 '편법'이나 '요행'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진실로 아이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부모로서 무책임한 태도라 할 수 있다.
저자가 어린 시절 책을 가까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들이 가정의 경제사정이나 문화와 상관없이 '책'에 대해서는 언제나 관대하게 대했다는 것과 위의 형 둘이 먼저 책과 가까이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항상 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는 것도 중요하다.
 
부모들이 책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거나 주입하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부모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은 인터넷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소개하는 여러가지 정보를 통해 아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해주는 정도만 역할을 해도 될 것이다. 아이들은 책 속에서 스스로의 세계를 찾아 나가고 배우고 깨닫고 느끼게 된다. 절대 '돈'으로 아이들의 영혼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역으로 '돈'은 아이들에게 '독약'이 될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 내에서 일상적으로 책을 가까이 하는 문화를 갖추기만 하면 된다. 엄마와 아빠가 늘 책과 가까이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이들은 저절로 책과 친해질 수 있다. 아이들의 책을 함께 읽으면서 아이들과 책 속의 세계를 공유하기도 한다. 물론, 부모라 해서 책과 멀어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역으로 한국사회의 독서 통계를 보면 부모 세대의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모들이 항상 책을 가까이하고 늘 공부하고 탐구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은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 자신들에게도 무척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부모들이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TV 앞에 앉아 드라마나 연예프로그램을 보면서 넋이 나가 있으면 아이들 역시 그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부모들이여... 지금이라도 집에서 TV를 꺼버리고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기를....
 
[ 2011년 8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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