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몰락 - 미국의 패권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가브리엘 콜코 지음, 지소철 옮김 / 비아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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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 [제국의 몰락]처럼 미국이 언젠가 몰락한다는데에 나도 이견이 없다. 옛말에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고 했거늘, 미국이라는 제국 역시 몰락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로마도, 비잔틴제국도, 대영제국도, 징기스칸제국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몰락했으니까... 
하지만, 저자는 "미국이 지배했던 세기는 막을 내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그 쇠락의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저자 '가브리엘 콜코'를 한국에 소개하는 첫 책이자 저자의 최신작이다. 특히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 이후 전 세계인들의 관심사인 미국의 패권이 어떻게 약화되고 쇠락의 길을 가는지를 저자의 관점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는 제국의 필수요소인 군사력과 경제력을 중심으로 미국이 더 이상 초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패권국이 아님라고 말한다. 즉, 핵확산의 세계화와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중앙은행이 통제 불가능한 국제 금융시스템, 미국 엘리트 그룹의 부조리와 하드파워의 비극적인 종말 등 저자는 정치학과 경제학, 역사학과 철학을 넘나들면서 군사력 만능시대의 종언을 고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과 이란 등 중동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양심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담고 있다.  
 
'공산주의가 사라지자, 미국은 급격히 쇠퇴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자 뿐 아니라 몇몇 학자들은 구소련이 멸망한 후에 미국의 패권이 급격히 막을 내리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왜일까?
콜코는 주적(主敵)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1991년 구소련이 사라지고 사회주의 이념이 무너진 후, 미국은 더 이상 평화 유지라는 명분으로 국제 사회를 통제하고 무기를 수출할 수 없게 되었다. 주적이 사라지자 헤게모니에 굶주린 미국은 적들을 마음대로 선택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남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 국경선을 따라 활동하고 국적이 모호한 소규모의 비밀조직들 .... 그러나 미국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임의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들의 무력을 뿜어대는 동안 세계의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저렴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미사일 방어 시스템의 한계 등... 최첨단 군사 기술은 중동 국가들을 넘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국가뿐 아니라 게릴라 조직에게로 확산되었다. 결국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졌으며, 군사력만으로 패권을 휘두르는 시대는 지나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 엘리트 그룹은 무기 판매상들과 결탁하여 여전히 전쟁을 부추기고 권력과 야망을 위해 국제 사회를 무시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미국 내부에서도 '실패'임을 인정하고 있고 실질적으로 미국사회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지만, 정치엘리트와 무기판매상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이란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고 이스라엘에게 시리아 침공을 부추기고 있다.

정치 엘리트와 무기 판매상의 결탁이 세계 군사체제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국의 금융 투기꾼들은 '탐욕'에 물들어 세계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을 초래했다. 고위험 고수익에 투자하는 이들은 전통적인 경제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거액의 돈을 벌고 잃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국제 금융을 창조낸 것이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며,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큰 만큼 위험성 역시 훨씬 커졌다. 특히 전문가들은 대출채권이나 채무담보의 위험성으로 인해 안정성이 흔들리고 상당한 규모의 은행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 진단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새롭게 재편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고 있고, 각국의 중앙은행은 이러한 붕괴를 대처할 힘과 지식이 없다는 점이다. 자본주의가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저자인 가브리엘 콜코는 1932년 미국 뉴저지 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6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졸업 후 펜실베이니아대학교와 뉴욕주립대에서 강의했다. 이후 캐나다로 이주해 1970년 요크대학교에서 역사학과 교수로 활동했으며 현재 동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임 중이다. 윌리엄 애플먼 윌리엄스, 하워드 진 등과 더불어 초기 신좌파New Left를 주도한 역사학자로 인정받았으며, 특히 자본주의 국가의 정부와 기업의 관계를 연구해 '정치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의 실체를 밝힘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또한 그는 행동하는 학자이기도 했다. 베트남전쟁 중에 그는 프랑스와 남베트남, 북베트남을 수차례 방문해 직접 공산주의자들과 만나 대화했으며, 구호물자를 모아 베트남에 보내기도 했다.
냉전의 기원, 20세기 미국의 대외 정책, 베트남전쟁, 중동 문제 등을 연구해 14권의 책을 발표했는데, 그의 역사 관점과 주장은 토머스 매코믹, 로이드 가드너, 브루스 커밍스 등 진보적 역사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석학인 노암 촘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대외 정책을 비판하는 많은 저서에서 가브리엘 콜코의 주장과 논거를 인용하면서 그의 연구 업적과 논점에 대해 경의를 표해왔다.
[미국의 부와 힘:사회 계급과 소득 분배 분석], [보수주의의 승리], [전쟁의 정치학:세계와 미국의 대외정책, 1943-1945], [힘의 한계:세계와 미국의 대외 정책 1945-1954], [전쟁의 세기:1914년 이후의 정치, 분쟁, 사회], [전쟁의 시대:세계와 맞선 미국] 등의 주요 저서에는 역사학, 정치학, 경제학, 철학을 아우르는 그의 넓고 깊은 학문,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인류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덫에 걸린 자본 - 미국의 금융 위기>, 2부 <소멸하는 패권 - 불안한 미국의 대내외 정책>, 3부 <준비된 재앙 - 중동 정책의 한계>, 4부 <정보와 기술, 그리고 미래의 전쟁 - 향후 국제 관계의 미래>
 
1부에서는 금융 투기꾼들의 등장과 그 결과를 이야기한다. 고위험 고수익에 투자하는 이들은 미국의 금리가 아주 낮을 때 은행에서 돈을 빌렸으며, 전통적인 금융 엘리트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다. 결국 금융 투기꾼들은 전통적인 경제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거액의 돈을 벌고 잃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국제 금융을 창조해냈다. 지난 20년간 이들은 막대한 이윤을 챙겼으며, 1998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부자들의 수는 다섯 배나 증가했다. 그러나 수익성이 큰 만큼 위험성 역시 훨씬 커졌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불안정해졌다. 전문가들은 투명성의 결여, 복잡성, 리스크의 불명료성, 보편적인 불확실성, 특히 대출채권이나 채무담보의 위험성으로 인해 안정성이 흔들리고 상당한 규모의 은행 유동성이 고갈될 것이라 진단했는데 일련의 사건들로 그 진단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이렇게 새롭게 재편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를 시작으로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중앙은행들이 지금과 같은 현실에 대처할 수 있게 설계되지 않았으며, 현실을 통제할 법적인 힘과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금융 불안과 함께 미국의 패권은 더욱 약해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는 자살의 길로 향하고 있고 그 길에 다른 나라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2부에서는 불안한 미국의 대내외 정책을 거론한다. 미국의 패권은 베트남전쟁을 계기로 급격히 쇠락해졌다. 그들의 값비싼 최첨단 무기들은 베트남전쟁에서 효력이 없었고, 이러한 문제를 전쟁 후에 해결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기술적 기반을 강화하면서 최대 55만 명이 파견되었던 베트남전쟁보다 약 14만 명의 병력이 파견된 이라크전쟁에 5배나 많은 전쟁 비용이 소요되었다. 이라크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비용이 많이 든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군은 또 한번 무너지고 있다. 왜 그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무기업자들과 정치인들 사이의 뿌리 깊은 이해관계를 들 수 있다. 무기업자들은 대부분의 주(州)에서 주요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고, 군비는 경제를 유지하는 버팀목이다. 무기업자들은 국방부가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돈을 번다. 그리고 돈을 버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목적이다. 또한 권력과 야망에 불타는 정치인들과 병적으로 전쟁을 선호하는 국방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경험 많은 CIA의 국제정보를 무시하면서까지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전쟁이 벌이고 공격적인 대외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종종 여론을 부적절하게 만들면서 결과적으로는 미국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고 있다. 군수산업이 중심인 미국 자본주의의 자기파멸적인 구조, 그 구조에서 나오는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3부에서는 중동 정책의 한계를 지적한다. 미국은 1954년 이후 수차례 이란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고 이 지역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하지만 중동 지역 국가들의 저항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석유 생산국인 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국력을 보강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반감이 증대되면서 연대가 강력해졌다. 단적으로 미국의 첨단 기술력을 이어받은 이스라엘군이 2006년 7월 레바논을 공격했을 때, 당시 헤즈볼라의 로켓은 이스라엘의 최신 전차 20대를 파손했고, 결국 이스라엘군은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후퇴했다. 또한 2008년 3월 라이스 국무장관이 걸프 지역을 방문했을 때 우호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이집트는 더 이상 이란에 대한 미국의 모험을 지원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이스라엘의 학력이 높은 유대인들은 전쟁의 혐오를 느끼며 이민 가는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제 이스라엘은 이슬람의 위협뿐 아니라 줄어드는 인구 문제로 인해 국가 위기를 대비해야 한다. 이것이 그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행한 대외정책의 열악한 현실이다. 그들의 수많은 개입은 그 지역에 평화가 아닌 반목과 혼란만을 낳았다.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만큼 미국의 힘이 소멸해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도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이 저지른 이라크 전쟁, 아프카니스탄 전쟁은 중동지역 전체에 상존하던 혼란과 무질서의 '판도라 상자'를 다시 열었다는 점이다.

4부에서는 향후 국제 관계의 미래를 진단한다. 1991년 소련이 사라진 후 미국에는 유난히 값비싼 무기, 핵폭탄, 지나치게 파괴적인 무기들로 무장한, 비용이 많이 드는 공군이 남았다. 실질적인 적들의 부재는 재앙이었다. 목적을 상실한 미국은 이제 적들을 마음대로 선택하게 되었다.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의 부족민들, 이라크인들, 어쩌면 중국, 볼셰비키가 사라진 러시아, 남아메리카의 군사독재정권들, 국경선을 따라 활동하고 국적이 모호한 소규모의 비밀조직들 .... 그러나 미국이 온갖 명분을 만들어 임의의 적들을 상정하고 그들의 무력을 뿜어대는 동안 세계의 군사기술은 빠른 속도로 저렴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값싼 미사일의 대량 보급, 휴대성과 정밀성이 향상된 대인·대차량 폭탄들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미사일 방어 시스템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점 등.... 이제 최첨단 무기와 군사기술은 중동의 몇몇 국가들을 넘어 동아시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으며, 북한, 이란, 타이완, 베네수엘라 등에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국가 간의 관계를 넘어 소규모의 비밀 조직부터 대규모의 게릴라 조직에 이르기까지 국가 내에 존재하는 집단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첨단 군사기술의 보급으로 이제 세계 어느 곳에도 안전한 곳은 없다. 이는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치와 군사 등 모든 영역에서 미국의 힘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이 지배하던 세기는 이제 막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세계 금융위기까지, 저자는 패권국인 미국의 국제관계와 경제를 살피면서 정치 엘리트의 오만과 편견, 그리고 금융 투기꾼의 위험한 투기가 미국사회를 얼마나 악화시켰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충격과 공포'로 대변되는 그들의 하드파워 전략이 낳은 국제사회의 외면과 냉대, EU와 이슬람 그리고 중국 등 새로운 세력의 출현을 이야기하면서 미국의 패권이 현재 사라지거나 이미 사라졌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이 책을 일다보면 올해 5월에 읽은 찰머스 존슨의 [블로우 백 (2003. 삼인)]과 지난 해 11월에 읽은 자크 사피르의 [제국은 무너졌다 (2009. 책보세)]와 가 생각난다. 찰머스 존슨(미국)은 2002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에 대해 서서히 쌓여오던 '역풍'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미국에게 불어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제국의 몰락'을 예견한 바 있다. 자크 사피르(프랑스) 역시 가브리엘 콜코(미국)와 비슷한 이유를 들어 미국이라는 제국이 무너졌음을 선언한 바 있다. 서구 학계 중 적지 않은 학자들이 미국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 신자유주의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미국의 정책방향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흐름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유럽과 미국 내부의 상당수 학자들이 '미국'의 위험한 질주와 '몰락'을 지적함에도 우리나라 내부의 수구기득권 세력과 보수층들, 그리고 현 정부가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하고 미국의 우산 속으로 기어들어 가려고만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미국은 더 이상 지구상의 '모범'도 아닌데다가 전세계의 '적'으로 규정되고 있는데...
미국을 따라가다가 자신들만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지만, 절대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와 5천만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서 미국의 '몰락'에 희생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 2011년 9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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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기술 1 로버트 그린의 권력술 시리즈 3
로버트 그린 지음, 강미경 옮김 / 이마고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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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점점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런 세상에서 무엇 하나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정립한 후, 그 많은 정보를 선별하고 분류하고 종합한 후 선택하거나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이유가 먹고 살기 위해서든, 게으르거나 귀찮기 때문이든...

결과적으로 수 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아돌프 히틀러.. 그가 중앙집권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쿠테타가 아닌 1932년과 1934년 독일(바이마르공화국) 선거였다.  당시 유럽과 독일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은 나치당과 히틀러에게 권력을 몰아주었다. 

2007년 12월. 동아시아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명박씨가 압도적인 표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투표하였고 다음 해 4월 선거에서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다. 2010년 들어 이명박씨를 지지했던 유권자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이명박대통령에게서 등을 돌렸으며 일방주의와 밀어붙이기, 생태계 파괴와 민주주의 후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왜 독일 국민들과 한국 국민들은 히틀러와 이명박을 지지했을까? 과연 그들은 히틀러와 이명박, 나치당과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어떻게 되리라고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제1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엄청난 전쟁배상금에 휘청이고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던 독일... 민주주의도 자유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언론과 미디어마저 변변치 못했던 1930년대 독일 국민들이 나치당과 히틀러의 선전과 선동에 넘어간 것은 그렇다 치고 21세기 한국의 유권자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을 하고 판단을 내릴까?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들과 밥벌이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철학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여 이성보다 감정이, 논리보다 심리가 앞선다고 하면, 과연 그들에게 선택과 판단을 유도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이유 중 나라를 ’유혹’이라고 주장하며, 사람을 ’유혹’하는 ’기술’에 대해 장황한 사례와 기술을 제시한다.

21세기 초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그의 저서 <유혹에 대하여>에서 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로 ’유혹’을 제시한다. 그만큼 유혹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남녀관계 등 도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심리적인 기술이다.

유혹의 기술은 원래 힘없는 여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물리적인 힘이 우세하던 시절,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권력을 얻어내기 위해 유혹의 기술을 활용했다. 중국 오나라의 왕 부차가 한순간에 무너졌던 ’서시’, 위대한 정복자 나폴레옹을 요리한 ’조제핀 보나파르트’, 루이 15세의 영원한 여인 ’퐁파두르 부인’, 클레오파트라, 카사노바, 마릴린 먼로, 프로이트, 앤디워홀, 바이런, 오스카와일드, 찰리채플린, 에바 페론, 말콤 엑스, 등...

이 책은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적 기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유혹의 기술’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지 않으며 모든 인간관계는 심리 게임’이라는 시대와 도덕을 초월한 가치전환적 사고의 토대 위에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유혹자들의 성공전략과 사상가들의 유혹의 개념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가는 이 책에서 의미하는 유혹은 크게 성적인 유혹, 경영/처세적인 유혹, 정치적인 유혹의 세 가지이다. 

하지만, 처음 서문을 읽으면서 가졌던 기대와 호기심은 1부를 읽으면서 사라지고 만다. 이 책에서 경영/처세적인 유혹과 정치적인 유혹의 사례와 분석은 포장지 정도에 불과하다. 저자가 대부분 다루고 있는 유혹은 ’성적인 유혹’에 할애된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Temptation’이 아니라 ’Seduction’이 아닌가 싶다...^^

[ 목차 ]
 
1부 유혹자의 9가지 유형
1장 냉담한 나르시시스트형 코케트
2장 열정적인 신념가형 카리스마
3장 신비로운 우상형 스타
4장 요부형 세이렌
5장 바람둥이형 레이크
6장 헌신적인 연인형 아이디얼 러버
7장 창조적 스타일리스트형 댄디
8장 천진난만형 내추럴
9장 능란한 외교가형 차머
10장 반(反)유혹자
유혹의 대상-18가지 유형

2부 유혹의 24가지 전략과 전술
1단계 관심과 욕망을 자극하라
2단계 괘락과 혼란을 창출하라
3단계 유혹의 효과를 극대화하라
4단계 유혹의 결실을 거두어들이라

부록1 상대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법
부록2 대중을 사로잡는 법
 

[ 2010년 6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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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와 한국경제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김광수경제연구소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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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젠가부터 부동산 거품과 관련한 이야기가 언론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오늘 오전 기준금리를 3.25%로 동결하였다.
900조원에 이르는 가계대출(대부분이 아파트 대출임)에 대한 우려가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최근 부동산 가계대출 신규와 연장 규제 정도로 거품이 빠진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번 MB 정권 내에서 거품이 꺼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일까? 대출 900조원이면 평균 이자율 5.8%를 감안하더라도 가계들은 연간 52조원이 이자비용으로 지출된다. 정부예산 300조원의 무려 14%에 해당하는 액수고 한국의 연간 GDP 1,000조원의 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당연히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성장에 발목을 잡고 중산층과 서민이 고통받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올해들어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인상에 대해 '걱정하지 마라'고 큰 소리 치다가 8~9월 들어 '물가인상 방어 포기'를 선언했다. 물가인상이 정부, 특히 한국은행의 주요한 역할이자 의무인데 물가인상을 잡기 위해 올려야 할 금리를 동결시켜 놓고 어떻게 물가를 잡겠다는 것인지 걱정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정부와 한국은행이 금리를 쉽게 인상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급작스러운 금리인상으로 부동산/가계대출 이자를 납부하지 못하는 가계가 한순간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가계대출을 받은 가계에 비해 물가인상으로 고통받는 가계가 훨씬 많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리고 물가인상이 여타 경제에 미치는 여파를 고려할 때 정부와 한국은행의 오늘 조치는 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의 우려와 분노를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동산 거품은 개인 뿐 아니라 한 나라의 경제에 미치는 여파도 엄청나다 할 수 있다. 재작년부터 시작되어 올해에도 계속 악화일로 있는 유럽 PIIGS 국가(포르투칼,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 역시 부동산 거품이 붕괴되면서 연쇄적으로 금융권이 붕괴되고 정부재정이 거덜난 것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이러한 부동산 거품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김광수경제연구소와 같은 전문가들의 경고에돋 불구하고 MB정권은 2008년 집권 초기부터 부동산 거품을 걷어내려고 노력하기 보다 부동산 값을 떠받치기 위해 종부세를 약화시키고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등 온갖 부동산 부양책을 남발하고 저금리를 유지해 왔다. 조중동을 비롯한 '썩어빠진' 언론들 역시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집권여당인 한나라당과 합심하여 전문가들과 야당의 국가경제에 대한 건전한 비판을 '이념 대결'로 몰아세웠다. 아무리 부양책을 남발했어도 가처분 소득 감소와 비정규직, 실업자 증가, 사교육비 증가, 물가인상에 허리가 휜 저소득층과 중산층은 더 이상 부동산 거품에 동참할 수 없게 되었다. 2007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신화의 몰락'도 한 몫 했고...
 
부동산 거품을 빼고 건전한 시장으로 육성하는 것은 하루이틀에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권과 언론, 관료들이 제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부동산은 사회적 공공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고 국민들의 '주거권'은 헌법이 보장한 '인권'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고 전월세 시장을 양성화시키고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연구소측이 2004년 초부터 2005년까지 시사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24편의 글을 모아 수정, 재구성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내외 경제문제와 관련된 현안들을 중심으로 각종 언론매체와의 인터뷰 기사와 기고문, 그리고 김광수 경제연구소 유료회원에게 매주마다 제공되는 <경제시평>의 일부를 다시 재정리하여 모아 놓은 것입니다. 대강의 주제들을 살펴보면 부동산 투기와 내수침체,한국경제 분석 및 전망, 행정수도 이전문제, 교육개혁, 인구문제, 노사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총 2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으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인터뷰를 했으며 기고를 하였는지 설명을 하여 독자들에게 이해를 돕도록 하였고, 새롭게 변화되는 사회에서 부동산경제가 미치는 영향과 앞으로 개선해야 할 방법을 심도 있게 제시하고 있어 관계 기관이나 기업에서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한번쯤 보아야 할 책이다.

 
김광수소장은 2004년 1월에 이미 '한국경제가 지고 있는 가장 큰 짐이 부동산 거품'임을 지적했다. 그는 중산층 가계의 돈이 부동산에 대거 묶여버려 2004년 수준으로 부동산 값이 유지되면 돈이 제대로 도는데 최소 5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따라서 '부동산에 낀 거품을 걷어내는 것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임을 역설했다. 부동산 값이 그 뒤인 2006~2007년에 또 한 차례 폭등한 것을 기억해보면 김광수소장이 제기한 시점이 얼마나 적절했는지, 현재의 부동산 거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당시 노무현대통령은 "집값이 떨어지면 경제가 위기에 빠진다"고 말함으로써 부동산과 국가경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책을 통해 부동산 정책을 중심으로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종합부동산세, 행정수도이전, 국토균형발전 등 참여정부의 정책 중에서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 칭찬을 하면서 동시에 부동산 대책, 정부개혁, 대학개혁 등에 대한 참여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김광수경제연구소 역시 2006~2007년 다시 불어온 부동산 광풍에 대해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006~7년의 부동산 광풍이 건설회사와 언론, 업자들이 만들어낸 거품에 소비자들이 속은 것인지, 스스로의 처지와 소득을 인식하지 못한 소비자들의 성급한 '욕심'인지, 기타 다른 요인들이 겹친 것인지는 잘 알 수 없다.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참여정부 실세들은 당시 부동산 거품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고 정부관료들과 언론은 거짓 정보와 데이터로 노무현대통령 및 국민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부동산 다소유자 - 재벌건설회사 - 정부관료 - 조중동 - 부동산업자 - 투기자 - 불량한 학자들의 '먹이사슬'은 그 당시에도 중산층과 서민들의 호주머니의 돈을 훔쳐갔고 지금도 여전히 국민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챕터 14.'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한국의 대학개혁'을 통해 저자는 대학의 개혁에서 '경쟁력'만을 강조했다. 대학이 지속적인 혁신과 내부 노력이라는 동력을 갖기 위해 '경쟁'이 필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한국의 대학이 닥친 현실은 '경쟁력'만은 아니다. 한국의 대학은 '학문'과 '지성'의 실종, '자본'의 노예, 사학재단의 돈벌이, '주인'이 실종이라는 쓰라린 현실에 처해있다. '경쟁'만을 강조하게 될 경우 그 대학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저자의 시각과 관점은 사람됨, 공동체, 협력과 협동, 주체로서의 감성 등을 외면한 채 너무 '경제학'에만 치우쳐 있는 느낌이다.
 
[ 2011년 9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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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의 진화 -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들려주는 성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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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생리적 구조는 여성처럼 수유가 가능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만이 아이에게 젖을 주도록 진화한 이유는 남성과 여성이 수정과 출산에 이르기까지 아이에게 투자한 정도가 다르고 남성과 여성이 번식을 통해 유전적 이득을 얻는 방식과 기회가 다르며, 친자 여부에 대한 확신을 남성과 여성이 다르게 갖기 때문이다.
 
[ 양성 가능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나는 인간 ]
- 모두 알고 있듯이 인간의 유전자의 경우, XX 염색체 쌍이 22개 존재하고 마지막 염색체가 여성은 X 염색체, 남성은 Y 염색체로 이루어져 있다.
- 인간의 경우 수정되고 나서 5주가 되면 배아에 ’양성 발달 가능 ’성선이 나타난다.
- 이 ’성선’은 Y 염색체가 존재하는 경우 수정 후 Y 염색체의 유전자의 지시를 받아 7주 정도 후에 ’고환’으로 발달한다.
- Y 염색체가 없을 경우 ’성선’은 13주가 후에 ’난소’로 발달한다.
- 태아는 원시 ’성선’ 이외에 양성으로 발달할 수 있는 다른 조직들을 가지고 있다.
- 이 조직은 Y 염색체의 지시가 아니라 ’고환’에서 분비되는 화학물질(테스토스테론과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로 인해 남성의 음경과 전립선으로 발달한다.
- 만일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분비물이 결핍될 경우 이 조직은 여성의 기관(음핵, 소음순, 대음순)으로 발달하게 된다.
- 태아는 또한 두 가지 종류의 관(뮬러관, 울프관)에 양다리를 걸친 채로 태어난다.
- ’고환’이 없는 경우, 울프관은 쇠퇴하여 없어지고 뮬러관이 여자 태아의 자욱, 나팔관, 질의 내부로 발달하게 된다.
- 당연히 ’고환’이 있으면, 울프관은 남성 태아의 정낭, 정관, 부고환으로 발달한다.
 

왜 인간 여성의 배란이 감추어져 있을까? 그리고 왜 일부일처제가 인간종의 주요 가족 구성 형식이 되었을까?
이 문제 역시 책 속에서는 진화생물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전자의 99.95%가 일치하게 태어나는 배아세포...
유전자의 99.95%가 모두 같은 인류...
동양인/서양인, 남자/여자, 어린이/노인의, 진보/보수 차이는 장구한 인류역사에서 고작 0.05%도 안되는 차이에 불과하다.
수 백만년 동안 그 미세한 차이를 활용하여 인류는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만들어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하지만, 그 미세한 차이가 오히려 인류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인류의 진보냐 멸망이냐는 인류의 손에 달려있지 않을까???

 

[ 2010년 6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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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9-08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미세한 차이'가 실은 엄청난 차이를 낳은 셈인데, 저는 그게 오히려 인류의 진화를 이끌어 왔고 또 이끌어 갈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 *
인간과 돼지, 인간과 소는 50개가 넘는 긴 배열을 공유한다. 모든 것이 살아있는 새끼나 젖이나 털만큼이나 설득력있는 공통 후손의 증거이다. ...... 대부분의 유전학적 전망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생쥐와 인간은 모든 부분에서 같으며, 수천개의 인간 유전자가 생쥐의 유전자와 정확히 똑같다. DNA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생쥐 염색체의 절반 이상이 인간의 염색체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소는 우리와 훨씬 더 많이 닮았다. 모든 식물 유전자의 절반이 생쥐의 유전자와 같다. 벌레는 고유 유전자의 1/5을 효모와 공유한다(효모는 벌레로부터 10억 년 전에 갈라져 나왔다).
- 스티브 존스,『진화하는 진화론』中에서
 
새벽에 홀로 깨어 - 최치원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7
최치원 지음, 김수영 엮음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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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시계의 물방을 아직 떨어지건만 / 은하수는 벌써 기울었네.
    어렴풋이 산천은 점점 변해 가고 / 갖가지 물상이 열리려 하네.
    높고 낮은 희미한 경치가 눈에 보이며 / 구름 사이 궁전을 알아보겠네.
    이곳저곳 수레들 일제히 움직이니 / 길 위에 먼지가 이네.
    저 하늘 끝에 먼동이 트고 / 푸르스름한 빛이 감도네.
    새벽별은 먼 숲 나무끝에 반짝이고 / 묵은 안개는 넓은 교외의 빛깔 감추네.
    화정(華亭)의 바람 속에 / 끼룩끼룩 우는 학 울음소리 들리는 듯하며
    파협(巴峽) 달 밝은 밤에 / 멀리서 들려오던 원숭이 울음소리 이미 그쳤네.
    주막집 푸른 깃발 어슴푸레 보이고 / 닭 울음소리 아스라한 마을의 초가에서 들리네.
    희미하게 보이는 단청 기와집에 / 새 둥지 텅 비었고 제비는 들보에서 지저귀네.
    군영(軍營) 안에서 조두(?斗) 소리 그치자 / 계전(桂殿) 곁에서 벼슬아치들 옷매무새 고치네.
    변방의 성에서 기르는 말 자주 울어 대고 / 너른 모래밭 아득하기만 하네.
    멀리 보이는 강에 외로운 돛단배 사라지고 / 오래된 강 언덕엔 잡초가 무성하네.
    어부의 피리 소리 청아하고 / 쑥 덤불은 이슬에 담뿍 젖었네.
    온 산에 푸른 기운 높고 낮게 깔려 있고 / 사방 들에 안개가 깊고 옅게 펼쳐 있네.
    뉘 집의 푸른 난간이런가 / 꾀꼬리 지저귀건만 비단 장막 아직도 드리워 있네.
    화려한 몇몇 집은 / 사람들 깨어났으련만 발이 아직 안 걷혔네.
    밤이 세상을 에워쌌다가 / 천지가 밝아 오네.
    천 리 밖까지 푸르고 아득하며 / 온 사방이 희미하네.
    요수()에 붉은 노을 그림자 뜨고 / 이따금 들리는 종소리 자금성(紫禁城)의 소리를 전하는 듯.
    임 그리는 아낙이 자는 깊은 방의 / 비단 창도 점점 밝아지네.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 어둔 창도 밝아 오네.
    잠깐 사이 새벽 빛이 조금 뚜렷해지더니 / 새벽 햇살이 빛을 발하려 하네.
    줄지은 기러기 떼 남쪽으로 날아가고 / 한 조각 달은 서편으로 기우네.
    장사차 홀로 나선 사람 일어났으나 / 여관 문은 아직도 닫혀 있네.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백전(百戰)의 용사들에게 / 호가(胡?) 소리는 아직 그치지 않네.
    다듬이 소리 쓸쓸하고 / 수풀 그림자 성그네.
    사방의 귀뚜라미 소리 끊어지고 / 먼 언덕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네.
    단청 화려한 집에는 / 푸른 눈썹 그린 미인이 있고
    잔치 끝난 누각에는 / 붉은 촛불만 속절없이 깜박이네.
    상쾌한 새벽이 되니 / 내 영혼 푸른 하늘처럼 맑아라.
    온 세상에 밝은 해 비치자 / 어둠이 바위 골짜기로 사라지네.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비로소 열리고 / 넓은 천지가 활짝 펼쳐지누나. 」
 
"새벽". 동트는 모습을 그려낸 최치원의 시(詩)의 전문이다. 물론, 최치원의 원문이 아니라 역자의 번역문이다. 원문은 아래와 같다.





 
이 시는 깊은 어둠이 사라지고 해가 동해바다 끝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갖가지 천태만상을 통해 비유하고 있다. 역자는 이 시를 최치원의 시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로 꼽는다. 
하늘 속 별빛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은하수가 기울어지는' 것으로, 동이 터오는 모습을 마치 담혀있던 '만물'이 열리고 숨어있던 '구름 사이 궁전'이 나타나는 장면으로 묘사하고 있다. 새벽이 열리면서 온 세상이 밝아지는 모습을 표현하면서 '임 그리는 아낙이 자고있는 깊은 방의 비단 창문이 밝아'오고 '시름에 겨운 이가 누운 옛집의 어두웠던 창이 밝아'오면서 마치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그려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이른 새벽은 '장사차 올로 나선 사람이 일어났지만 여관 문이 아직 닫혀' 있고 외로운 성에 주둔하는 군인들에게 호가 소리가 그치지 않은' 것을 통해 새로운 날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결국 환하게 밝은 하늘과 햇빛은 '어둠을 바위 골짜기'로 몰아내고 천 개의 문과 만 개의 창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활기찬 하루가 시작됨을 애기하고 천지가 환하게 밝아옴을 '활짝 펼쳐지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 밖에도 최치원은 새벽이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과 생활에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시 구절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한글로 옮겨놓은 최치원의 시는 옛 인물과 고사(古事)를 제외하면 현대시로 보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책을 역자가 적절하게 수정, 편집하면 아마 현대 시인들이 놀랄지도 모른다. 그 만큼 최치원의 시는 탁월하고 1200년 가까이 지난 현대인에 이르기까지 감동받을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문을 보면 우리 같은 일반 독자들은 최치원의 원래 시를 알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역자는 뛰어난 실력으로 이를 한글로 번역해 냈다. 나는 원문이 훌륭한 것인지 아니면 역자의 번역과 한글 표현이 뛰어난 것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한글로 번역해 낸 역자가 그토록 원문을 칭찬하니 나는 신라시대 한자로 쓰여진 원문의 뛰어난 표현과 구성을 알아보고 이를 한글로 다시 옮긴 역자의 실력을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되었든 내가 읽고 있는 것은 역자가 재구성해 낸 것이므로... 
 
최근에 읽은 [열하일기]에 수록되어 있는 조선 정조 때 박지원 선생의 시 "총석정에서 해돋이를 보며(叢石亭觀日出)"와 최치원 선생의 시를 비교해보니 시대의 차이일지, 연륜의 차이일지 아무튼 색 다른 맛이 있다. 최치원 선생은 담담하게 자연과 일상의 모습을 통해 일출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박지원 선생은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일출을 표현하고 있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은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자리한 위대한 문학가라 한다. 시(詩)와 문(文)에 모두 능한 대작가이자, 유ㆍ불ㆍ선에 두루 통달했던 신라 말기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이 책의 제목 ‘새벽에 홀로 깨어’는 한국문학의 비조이면서, 역사적 격변기에 홀로 스러져간 외로운 존재인 최치원의 면모를 함축한 말이다. 
 
내 기억에도 몇몇 임금을 제외하고 신라시대 인물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이 최치원이다. 그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친숙한 신라 시대의 문학가, 행정가라 할 수 있다. 열 두 살이란 어린 나이에 당나라에 유학을 떠나 7년 만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한 일이라던가, ‘황소의 난’을 일으킨 황소에게 격문을 써 보내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한 일, 또 귀국 후 말년에 세상을 등지고 은거하여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일 등은 비교적 잘 알려진 일화들이다. 또한 나는 아무리 애를 써봐도 기억나지 않지만,「비 오는 가을밤」(秋夜雨中)이나 「가야산 독서당에 적다」(題伽倻山讀書堂)와 같은 최치원의 한시는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소개되어 누구나 한 번쯤 접해 보았을 것이라고 한다.
역자는 앞서 거론한 작품들이 최치원의 한시 중 주목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최치원의 작품 세계는 흔히 알려져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심오하며 다채롭다고 말한다.
(최치원은 884년 음력 10월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했다. 885년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지서서감(知瑞書監)이 되었으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태산(太山 : 지금의 전북태인)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여 조()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최치원은 부산 동백섬 일대의 경관에 반하여 자신의 호 '해운'을 따서 그 지역 지명을 해운대라고 붙였다고 한다. 최치원이 직접 새겼다는 '海雲臺' 석각도 동백섬 절벽 한켠에 남아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치원의 동상과 시비가 동백섬 언덕에 생겼으며, 해운대구와 최치원이 벼슬을 하며 토황소격문을 지었던 양저우시구는 자매결연을 맺게 됐다.)
 
최치원의 저서로는 중국에 있을 때 쓴 글을 엮은 책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이 전하며, 후인이 편찬한 책으로 「사산비명」(四山碑銘)과 「고운선생문집」(孤雲先生文集)이 있다. 또 「수이전」(殊異傳)의 일부 작품들이 현재 다른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지은 저서로는《금체시》,계원필경》,《상대사시중장(上大師侍中)》,《잡시부》,《중산복궤집》,《오언칠언금체시》,왕연대력(帝王年代曆)》,《부석존자존》,《법장화상전》,석이성전》,쌍녀분전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상 최치원의 작품들, 특히 산문 작품은 한문학 전공자들도 어려워하는 글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인지 최치원의 문학에 대한 연구가 이미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한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와 문을 골고루 엮어 우리말로 쉽게 풀이한 선집은 여태 나온 바 없다. 최치원이 한국문학사의 맨 앞에 우뚝 서 있는 대문학가임을 생각할 때, 실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최치원의 시와 문을 함께 뽑아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첫 시도라고 한다.

책은 6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의 제목은 1부 '새벽에 홀로 깨어', 2부 '비 오는 가을 밤', 3부 '은거를 꿈꾸며', 4부 '밭 갈고 김매는 마음으로', 5부 '신라의 위대한 고승', 6부 '참 이상한 이야기'이다. 
1부 ~ 3부 : 최치원의 시 가운데 수작들을 ‘새벽에 홀로 깨어’ ‘비 오는 가을밤’ ‘은거를 꿈꾸며’ 등 세 가지 제목 아래 뽑아 놓았다. 매 작품마다 간단한 해설을 붙여 시 감상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4부 : 최치원 산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 열 편의 작품들을 뽑아 놓았다. 「역적 황소에게 보낸 격문」과 같은 명문(名文)을 보다 쉽고 유려한 우리말로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동북공정’이, 중국 측의 명백한 역사 왜곡임을 밝혀 주는 이른 시기의 중요한 사료들도 뽑아 놓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 발해와 신라, 중국 간의 미묘한 외교관계와 신라의 입장에서 발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서도 들어있다.
5부 :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의 하나로,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사산비명」(四山碑銘) 가운데 세 작품을 뽑아 놓았다. 이 세 작품은 최치원이 왕명을 받고 신라의 위대한 고승의 사적을 기리기 위해 쓴 비명(碑銘)으로, 최치원 문장의 정수로 꼽히는 작품들이다. 다만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난해하여 일반 독자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못해 왔다. 이 책에서는 세 작품 각각에서 중요하고 감동적이며 재미있는 부분만을 발췌하여, 자세한 주석과 함께 쉬운 우리말로 번역, 소개하였다.
6부 :「수이전」(殊異傳)의 열 작품을 실었다. 「수이전」은 신라 시대 민간에 전해지던 이야기가 최치원의 붓을 만나 탄생될 수 있었던 소중한 작품들이다. 특히 「호랑이 여인」은 한국 고전소설사의 첫머리에 놓이는 단편 소설로, 최치원의 소설가적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책은 출판사 돌베개가 내 놓은 <우리 고전 100선>의 7번째 작품이다. 돌베개는 간행사에서 '우리 고전' 시리즈를 새롭게 준비한 이유를 "세계화에 대한 문화적 방면에서의 주체적 대응"이라고 표현했다. 지금 전세계에 몰아치는 '세계화'가 단지 '자본'의 문제 뿐 아니라 '문화'와 '정신'의 부분에서도 거센 파도처럼 몰아치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하는 것인가가 우리의 생존이 걸린 사활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가 단순화, 획일화, 상품화를 강요하면서 생물 다양성이 파괴하는 것처럼 문화다양성 역시 위협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인, 그리고 한국인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은 인권, 즉 인간권리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고전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관심의 확대가 절실히 요망된다"고 주장한다.
출판사는 그동안 '고전'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었던 '따분함'과 '재미없음'이라는 편견을 없애기 위해 현대 한국인이 부담 없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품격과 아름다움과 깊이'를 갖춘 우리 고전을 발간하는 것을 <우리 고전 100선>의 취지라고 설명한다.
 
그동안 우리의 고전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최치원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를 힘들었다. 나는 신라가 실제로 크게 의존했던 당나라 등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최치원의 사상적 기반인 유교, 도교, 불교에 대해서도 교과서적인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책과 지난 번 읽은 박제가의 [발해고], 그리고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앞으로 수 년, 수 십 년 동안 우리 고전을 더듬더듬 익혀야 하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그래서 고맙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 2011년 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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