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갇힌 사람들 - 불안과 강박을 치유하는 몸의 심리학
수지 오바크 지음, 김명남 옮김 / 창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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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한국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모습들이 있다.
10대인 딸이 밥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어느 486 세대 엄마의 고민...
몸매를 고민하는 딸에게 "걱정마. 나중에 다 고쳐줄께"라고 큰소리치는 부모...
여직원의 옷차림과 몸매에 대해 툭 던지는 한 마디...
성형수술 비용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
비만은 '게으름'이고 '자기관리 부족'이라는 편견...
다이어트와 휘트니스를 하지 않고 있으면 뭔가 꼭 해야 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다는 불안한 느낌...
케이블방송을 점령하고 어느새 지상파 방송에까지 등장한 '다이어트' 프로그램...

한국 10대 소녀들 중 쌍커플 수술을 한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이야기...
 
정말이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가 몸, 외모, 아름다움, 몸매, 섹슈얼리티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그런 경향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리고 그 결과 어린이, 청소년, 청년들이 가장 크게 고통받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요인들은 무엇일까?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로 책 두 권을 선택했다. 하나는 이 책 수잔 오바크의 [몸에 갇힌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데보라 L. 로드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어제(20일) 저녁 공부모임에서 두 권을 읽고 오랜만에 10명 미만이 참석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참석자가 줄어드니 각자의 생각을 발언할 기회도 늘어나고 논의의 수준도 깊어졌다.
 
이 책은 몸의 불안을 야기하는 현대사회의 근본적 문제들을 파헤치면서, 우리가 자신의 '몸'과 올바른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을 제안한다. 저자 수지 오바크는 고(故) 다이애너 왕세자비를 상담했던 정신분석가로, 영국에서는 “프로이트 이래 가장 유명한 정신분석가”라고 평가받는다. 이 책은 그동안 몸의 문제를 천착해온 저자의 연구주제들을 총집결한 것으로, 저자가 상담했던 환자들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몸의 심리학’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나간다.(저서로 [비만은 페미니즘의 주제다](Fat is a Feminist Issue), [단식투쟁](Hunger Strike), [섹스라는 불가능성](The Impossibility of Sex), [먹는 것에 관하여](On Eating) 등이 있다.)

여기서 '몸의 심리학'이란, 신체적 고통의 원인을 심리적 문제에서 찾았던 전통적인 정신분석 이론과는 달리, 몸의 문제를 몸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신체적 증상은 단지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그 자체의 욕구와 고통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신호다. 예컨대 요즘 사람들이 경멸해 마지않는 뚱뚱한 몸은 태만과 자기무시의 결과가 아니라, 몸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쏟아붓는 대중문화에 대한 거부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저자는 마음이 몸을 장악한다는 기존 정신분석 이론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 시대 몸들을 재고하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의 주장이 납득 가능하고 과학적인 근거나 실험으로 뒷받침되지 않아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내가 그동안 쉽게 생각하기 쉬웠던 '몸'과 '마음'의 상호작용을 뒤집는 주장은 조금 신선했다. 일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 중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10대 소녀나 대학생들의 다이어트나 식사패턴에 대해 가끔 들은 것과 내가 직접 직장에서 경험한 직장여성들의 식사습관이나 태도를 돌이켜 보면 한국에서도 적지않은 섭식장애자가 존재할 것으로 생각한다.(아직 한국인의 섭식장애에 대한 통계자료는 찾지 못했다.)
저자는 영국의 사례를 통해 섭식장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영국사회에서도 유명인들의 다이어트 비법이나 성형 소식은 사람들로 하여금 따라하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하루에도 수 백, 수 천번씩 마주치는 방송 프로그램, 뮤직 비디오, 광고 이미지 속 8등신 몸매는 소녀와 여성들에게 이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몸매'가 존재하고 추구해야 하며, 당신도 노력하면 멋진 S라인과 식스팩을 가질 수 있다고 속삭인다. 최신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든 아니든, 오늘날은 누구나 자기 몸을 완벽하게 가꿔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제 몸은 태어나면서 엄마에게서 자연스럽게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게 되버린 것이다. 저자는 우리 시대의 몸들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한(혹은 실패한) 결과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어버렸음을 지적한다. 때문에 현대인들은 대중문화가 모두에게 ‘평등하게’ 강요하는 ‘단 하나의 몸(날씬하면서도 풍만한 서구적 이상)’을 갖기 위해 저마다 고군분투중이다.
이같은 과도한 집착은 거식증이나 폭식증 같은 식이장애, 비만, 신체이형장애, 성형중독 등 심각한 부작용들을 낳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예외적 사례에 지나지 않았던 식이장애는 오늘날 대부분의 10대들이 경험하는 일상이 되었고, 이제 막 세계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나라들에서는 다이어트와 성형 열풍이 함께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시대는 신체 불안정화의 시대에 접어들었고, 우리의 몸은 비정상적인 열망과 혼란에 둘러싸여 있다. 대다수 사람들이 경험하는 ‘몸의 불안’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전염병’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어쩌다 우리의 몸은 심각한 무질서와 괴로움의 장소가 되어버린 걸까? 어떻게 하면 다시 예전처럼 몸과 더불어, 몸 안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
 
해결하는 관점에서 집고 넘어가야 하는 한 가지는 바로 몸의 문제들을 다룰 때 '신체발달 이론'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몸을 둘러싼 '외모 지상주의'의 분위기가 가족을 통해 흡수, 전달된다고 지적한다. 우리가 최초로 신체적 감각을 습득하는 공간이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몸은 부모와의 접촉을 통해 올바로 형성되거나 잘못 형성된다. 식탁 위에서 아이들이 듣는 엄마, 아빠의 한 마디, 옷차림이나 몸매를 보고 던지는 오빠와 언니의 한 마디, 할머니 할아버지의 충고들을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면 아이들의 몸과 의식은 그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 - 아기가 우유를 토하는 것을 보고 과도하게 걱정한 엄마의 영향으로 반사적인 구토습관과 대장염에 시달리게 된 헤르타, 자기 몸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던 어머니로 인해 정상적인 섹스를 하지 못하게 된 루비 등 - 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부모가 자기 몸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예컨대 엄마가 늘 다이어트하는 것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은 몸에 대한 인식이 어려서부터 왜곡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현대인들의 신체경험에 부모의 괴로운 몸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지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며, 예비부모와 초보부모에게 올바른 몸 인식을 심어주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엄마들, 친구들, 지역과 학교에서도 이에 대한 다방면의 노력,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음을, 그리고 몸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왜곡된 미의식'을 조장하는 각종 산업(다이어트, 패션, 식품, 제약 등)들이다. 이들 산업은 포토샵으로 보정한 이미지를 유포함으로써 현실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몸’에 대한 관념을 전달한다. 그런 이미지들의 공격에 수시로 노출된 사람들은 그에 부합하지 않는 주변사람들과 자신의 몸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된다. 현대인을 착취하는 데 혈안이 된 산업들은 끊임없이 최신 유행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현혹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 흐름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아니라, 부족한 노력과 얄팍한 지갑뿐이다. '지갑'은 계급의 문제를 가져오게 되고 사회적 양극화를 악화시키게 된다.

저자는 이 거대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개인이 사회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비극이라고 말한다. 개인적 경험이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소하게 생각하지만, 오늘날 우리 몸들이 겪는 고통은 가히 '공중보건의 숨겨진 응급상황'이라 할 만하다. 사회적, 문화적 압박에 시달리는 몸들은 더이상 자연스러운 기능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예전에는 즐거운 일이었던 식사가 이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접촉하고 섹스하는 일조차 ‘연기(演技)’가 되어버렸다. 완벽한 몸이라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동안 우리는 몸으로부터 얻었던 즐거움들을 모두 빼앗겨버린 것이다.
게다가 대중매체가 주입한 관념은 사람들의 미의식을 편협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어디를 가나 ‘쌍꺼풀, 오똑한 코, 풍만한 가슴, 탄탄한 엉덩이’와 같은 서구적 몸이 각광받는다. “신체혐오는 서양의 은밀한 수출품”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서구적 몸에 매혹된 전세계의 젊은이들은 자기 몸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때문에 지구상에서 2주에 하나씩 언어가 사라지는 것처럼, 각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반영하는 몸들의 풍부한 다양성 또한 위태로운 실정이다.
내가 그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가족들, 친구들, 직장동료들에게 툭툭 내뱉었던 말들이 새삼 머리 귀속에서 들리는 것 같다. 나 스스로가 그러한 대중매체의 관념에 알게 모르게 세뇌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몸들의 위기를 해소할 방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먼저 우리의 불안감을 조장하는 산업들의 관행을 폭로하고,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몸들이 패션문화에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오늘날 ‘스타일산업’이 퍼뜨리는 소비주의의 지령이 엄마와 아기에게 침투하기 전에, 엄마 스스로 신체적 평화를 찾고 아기에게 그것을 제공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몸을 바라보는 우리의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는 일이다. 우리는 ‘단 하나의 몸’만을 강요하는 스타일산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의 몸을 ‘당연하고 즐거운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 몸은 우리가 제작해야 할 상품이 아니라, 평화롭게 깃들여 살아가야 할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것, 그것을 아름답지 못하게 만든 것은 대중문화의 조작된 이미지라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획일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신만의 진정한 개성과 가치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이 책의 문제의식은 다이어트와 성형 중독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에 중요한 울림을 던져줄 것이다. 우리 몸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는 이 책이야말로 어릴 때부터 몸짱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어제 공부모임에서 이 책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저자가 인용한 데이터의 신뢰도가 부족(그 의견을 내신 분은 현직 의사..)하고 저자가 심각하게 문제제기했던 것에 비하여 그 결론은 '개인적인 노력'으로 그쳤다는 것이었다.
'데이터의 신뢰도'에 대한 동의 여부는 아직 내 수준에서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저자의 결론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많이 부족하다는 지적에는 나도 공감했다.
 
[ 2011년 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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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로 이루어진 세상
장미셸 코르티.에두아르 키에를릭 지음, 안수연.박인규 옮김 / 에코리브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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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에 대한 국방부의 민군합동조사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과학적’인 증거라고 내세운 것이 ’어뢰 파편-프로펠러’와  매직으로 쓴 ’1번’이라는 글씨체다.
나머지는 ’~라고 판단된다’, ’~라고 확인된다’, ’~와 비슷하다’ 등 모두 추측성 논리다.
 
어떤 전문가나 블로거들이 말하듯이 북한이 다른 무기처럼 어뢰에 ’~호’가 아닌 ’~번’으로 표기하였는지, 한 나라의 무기에 그처럼 허술하게 매직펜으로 ’1번’이라고 표기하는지, 국방부가 왜 자꾸 말을 바꾸었는지, 어뢰가 폭발하여 2천톤급 배가 부서졌는데 사람이 멀쩡한 이유에 대한 궁금증과 별도로, 어뢰폭발시 발열현상으로 매직으로 쓴 글씨가 변색되지 않았는지, 바닷물 속에서 매직 글씨체는 부식되지 않는지, 어뢰가 바닷물 속에 잠긴지 80여일만에 그 정도로 부식되는지 등에 대하여 과연 엄정하게 실험실에서 부식의 정도와 시점을 규명하였는지 묻고 싶다.
 
’과학’은 추정이 아니다. ’과학’은 특정한 가설을 엄밀한 실험과 테스트를 통해 논리적, 수학적으로 입증하는 학문이다. 함부로 ’과학적’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0년 전후하여 한국 케이블 방송에서 미국의 과학수사대에 대한 시리즈 드라마가 유행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CSI’나 ’NCIS’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한 번이라도 그 드라마를 보았다면, (비록 그 드라마가 방송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과장하는 면이 있다손 치더라도...) 21세기 과학은 국방부 발표처럼 허술하게 부품 몇 개와 글씨체를 가지고 ’과학적인 조사’라고 당당하게 발표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도 제대로 ’과학적’인 조사를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개월, 또는 1~2년간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가 수십번의 실험과 시뮬레이션을 동원해야 어느정도 확률을 가진 조사결과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1개월 남짓 조사결과를 성급하게 발표하는 이유는 ’삼척동자’도 모두 아는 바, 당연히 정치적인 이유에서이고 ’6. 2 지방선거’가 코 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군인들이 하루아침에 수장당한 상황을, 엄밀하게 조사하여 재발하는 것을 막아야할 위치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잘못은 덮어두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국가... 그 국가의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해군사령관과 지휘관들, 행정관료들과 정치인들... 김용옥교수 말처럼 이것은 '미친거 아냐?'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 사건은 아마도 5.18 당시 자신들의 국민을 ’빨갱이’로 매도하여 총칼로 무참하게 살해한 전두환,노태우와 4.19의 이승만,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박정희 이후에 가장 파렴치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천안함과 같은 사건을 접할 때마다 한국 제도교육의 커리큘럼에 대해 ’음모론’적 시각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한국 교육제도에서 점점 ’수학’과 ’과학’이 평가절하되거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학’과목과 ’과학’과목은 학생들에게 자연과 현상에 대한 이해를 깊게하고 사물과 현상의 인과관계를 인식하게 해주며, ’결정론적’ 사고 대신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길러준다.
 
다만, 교사와 교육관계자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관점과 시각을 잊어버리고 ’경쟁’이나 ’입시’에만 치중하는 것, 단순히 일 잘하는 ’노동자’를 길러래는 정도의 소양만 갖추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마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은 ’대학 만능주의’와 ’대학 서열주의’에 의하여 사람을 자질을 평가하고 대우하는 것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물리,화학이고, 이공계 기피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들에게 물리학은 여전히 공식을 외우고 그 공식에 숫자를 대입해 문제를 푸는 과목일 뿐 우리 일상과는 먼 학문이다. 문제 풀이만을 열심히 익힌 우리 학생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우리 주위를 관찰해보면 그 안에 무수한 물리 법칙들이 숨어 있고, 만물의 이치가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불을 끌 때 물이 어떤 구실을 하는지, 눈송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돌멩이가 물 위로 튀어 오르며, 자전거가 균형을 이루는 이치가 무엇인지 등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기울일 새 없는 그들에게 그러한 일들을 물리 법칙으로 풀어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 책은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면) 좀 더 쉽게 물리학의 본성에 근접하고, 우리 앞에 놓인 문제의식에 부응하는 책이다. 그냥 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어도 좋고, 좀더 깊이 알고 싶다면 수식을 이끌어내 검증을 해봐도 좋다. 소설처럼 읽든 수식으로 검증을 하든 놀라운 자연현상에 놀랄 것이다. 그러면 물리학은 좀더 흥미로운 학문이 되지 않을까.

불을 끄기 위해 왜 우리는 물을 가장 많이 사용할까? 세차게 번져가는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불의 온도가 상승하는 속도보다 빨리 온도를 낮춰야 한다. 물은 모든 천연 물질 중 열용량이 가장 뛰어나며, 모든 액체 중에서 기화열이 제일 크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가장 많이,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혹 실내 화재에서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밀폐된 공간에서는 열과 연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 불이 확산되면서 갑자기 성질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 안에서 불이 번질 때, 온도가 높아지면서 열에 노출된 물건들은 적외선 복사로 방 곳곳에 에너지를 전달한다. 열분해로 연기나 뜨거운 가연성 가스가 방출되어 천장 아래에 쌓이고, 천장 아래 온도는 섭씨 300도에 이른다.
이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무시무시한 플래시오버 현상이 일어나 방 전체에 불길이 번지고, 실내 온도는 약 섭씨 1000도에 이른다. 어떻게 이런 유형의 참변을 피할 수 있을까? 물을 지나치게 사용하면 뜨거운 증기가 너무 많이 만들어져 연기와 가연성 가스들이 방 밖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이 연기와 가연성 가스는 선선한 공기를 만나면 즉시 타오르게 된다. 따라서 전소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물을 조금씩 단속적으로 여기저기 뿜어대면서 가스를 냉각시키는 것이다. 냉각된 가스가 압축되어 생성된 증기를 전반적으로 상쇄하고, 주변의 뜨거운 가스가 흡착되면서 전체 공간의 압력이 낮아진다. 그렇게 하면 뜨거운 가스가 빠져나가 외부로 불길이 번지는 것을 막고 최선의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아래와 같이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숨어있는 물리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 눈꽃: 육각형 눈 결정과 여전히 풀리지 않는 눈의 신비
- 원형으로 배열된 암석: 자연이 만든 ‘스톤헨지’의 비밀
- 냉각 혼합물: 냉장고에 꼭 필요한 아주 효과적인 냉매
- 냉기에서 나온 열기: 온도가 더 낮은 곳에서 열을 흡수하는 놀라운 장치
- 물과 불: 물이 오히려 더 큰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
- 검은색 옷을 입는 베두인족: 사막의 유목민들은 왜 검은색 옷을 입을까
- 광압: 빛이 비행기와 우주선의 동력이 된다?
- 편광 오징어: 어떻게 편광을 감지할까
- 거울 효과: 수면 안테나로 메시지를 포착하는 전략 잠수함
- 선별 반사: 비눗방울이 펼치는 색채의 마술
- 파속과 광속: 새로운 유형의 레이더와 광원을 이용한 영상 프로젝터
- 테라헤르츠선 촬영 때 부끄러워하지 마라!: X선에 강력한 라이벌이 나타났다
- 형태가 유지되는 파: 초고속 대용량 광통신의 숨은 주역, 광솔리톤
- 지진파와 모호면: 지구 내부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 자기 기억 암석: 자기마당 정보를 이용한 화산암의 연대 측정법
- 자기 방호판: 우주에서 날아드는 입자로부터 지구를 지켜주는 방패
- 집 안에서 일어나는 방전: 복사기와 우주선에 적용되는 ‘마찰전기’ 현상
- 터키 커피를 원심 분리하라!: 아인슈타인과 브라운 운동
- 하늘을 수놓은 300개의 불꽃: 불꽃으로 하늘에 숫자와 글자를 새기다!
- 접착력: 자유자재로 벽을 타는 게코도마뱀과 판데르발스의 힘
- 수분 흡착기: 습기 쏙, 물 먹는 염화칼슘과 실리카젤
- 젖은 모래성: 누가 가장 멋진 모래성을 지을 수 있을까
- 다시 튀어 오르거나 깨지거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까닭은?
- 완벽한 고정: 고체 마찰력과 쿨롱의 법칙
- 바이올린과 경첩: 음향 효과에 숨겨진 물리학
- 보조보조의 원리: 저절로 돌아가는 회전 날개의 비밀
- 위아래가 뒤바뀐 추의 수수께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볼프강 파울의 이온 트랩
- 이제 돌을 이용한 에너지 시대가 온다: 지각 평형설과 판구조론으로 재생 가능한 에너지
- 물수제비뜨는 기술: 4톤이 넘는 폭탄이 수면 위에서 튀어 오른다?
- 유속의 차이: 완류인가 급류인가, 마하의 수에 해당하는 ‘프루드 수’
- 물고기의 영법: 탁월한 수영 실력을 자랑하는 물고기의 비밀
- 자전거의 균형: 넘어지지 않으려면 앞으로 나아가라!
- 인간의 힘으로 작동하는 헬리콥터: 2만 달러의 상금이 걸린 프로젝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 육상 경기 세계 신기록의 비밀
- 경이로운 활쏘기 기술: 오랜 세월 활이 사랑받아온 이유
- 화살을 따라가보자: 과녁 정중앙에 꽂히는 화살의 비밀
- 회전력이 강한 공의 기술: 베컴이 차는 절묘한 프리킥의 비밀
 

[ 2010년 5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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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 한상권 교수의 치열했던 5년의 기록
한상권 지음 / 너머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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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정치적 이슈로 한참 달구어지던 지난 6월 11일 '한국사립대학총창협의회' 박철 회장은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대학이 성장하고 발전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사립대학은 등록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매년 등록금이 올라가는 이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사립대학 등록금이 2000년 449만원에서 2011년 754만원으로 68% 인상됐음을 인정했다.(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624130&ctg=1200)
 
그는 기자가 그렇게 등록금을 인상했음에도 대학들은 항상 돈이 없다고 아우성인데 그 이유가 '외국 대학에 비해 방만한 운영을 했기 때문 아닌지'라고 질문하자, “우리 대학들은 대부분 세계 100위권에도 못 들어간다."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이유를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경쟁하려면 연구 업적이 필요한데 국제적인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써야 한다. 경쟁력을 높이려면 당연히 연구비가 많이 든다. 대학의 교육환경을 높이려면 건물과 시설도 늘려야 한다. 그래서 대학 적립금은 건축 적립금이 대부분이다. 학생들을 해외에 보내는데도 돈이 필요하다. 돈 쓸 곳은 많은데 국가 지원이 없는 사립대로선 등록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라고 딴 소리를 한다. 2000년부터 10년 동안 그렇게 등록금을 인상하였음에도 그런 변명을 내세우는 것이 과연 대학 총장이 할 소리일까? 건물과 시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대학의 연구능력이 올라간다는 것인가? 세계 100위 이내의 대학이 운영하는 건물, 시설과 한국 사립대학의 건물, 시설을 비교하는 수치가 나오면 그 때는 뭐라고 변명할지... 등록금이 폭발적으로 인상되기 시작한 2000년부터 대학 내 정규직 교수를 줄이고 비정규직 교수, 강사 비율을 늘리면서 어떻게 대학의 연구역량이 늘어난단 말인가?
 
그러면서 '반값등록금'에 대한 대학의 계획에 대해 기자가 질문하자 그는 “반값 등록금을 당장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등록금 부담을 완화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10~20% 경감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교육법에 사립대학은 등록금의 10%를 장학금으로 주게 돼 있다. 대학에 따라 15%를 주는 대학도 있다. 그 돈을 정부가 재정으로 부담하면 내년부터라도 등록금을 10% 내릴 수 있다."라면서 정부측에 그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그는 "사립재단이 학교를 만들었으니 기본적으론 정부가 아니라 재단이 돈을 대야 한다. 그런데 재단은 1년에 고작 1억~2억원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고 사립대학교 재정의 진실을 고백하면서도 재단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사학재단은 '사립학교법'에 의해 교육발전과 인재양성을 위해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사학재단의 주인은 개인을 인정하지 않고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동안 수도 없이 언론과 인터넷에 폭로되었듯이 사학재단의 설립자 등 일부 개인과 가족들이 재단과 대학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상당수 사학재단은 부동산 투기와 건물 증축, 등록금 횡령을 일삼고 있고 재단 설립자와 가족끼리 여러 재단 이사회를 돌아가면서 겸직하면서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정치권에도 지속적으로 자금을 뿌리고 국회의원을 배출하여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면서...
 
 
이 책은 사학재단들이 재단과 대학 설립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한 채 개인들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기 위해 재단과 대학을 악용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교수와 직원, 학생들을 억압하고 착취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 - 덕성학원과 덕성여자대학 - 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덕성여대를 졸업한 후배들이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덕성여대 재단의 부당함과 재단과 대학의 민주화를 위해 10년 이상 싸워온 교수,학생,졸업생들의 이야기를 몇 번 전해들은 기억이 있다.
 
이 책은 저자는 그 지난한 싸움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한상권 교수의 이야기다. 저자가 덕성여대에서 해직된 1997년부터 박원국 덕성여대 이사장의 연임이 좌절된 2001년까지 5년 동안 일어난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기간에 덕성여대에는 교육부 특별감사 두 차례,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 네 차례, 관선이사가 세 차례 파견되었다. 또한 직무대행을 포함해 이사장이 일곱 명, 총장이 다섯 명 교체되었다. 덕성학원 이사장 임기가 5년인 점을 감안할 때, 직무대행을 제외하고 이사장이 다섯 번 교체된 5년의 기간은 평화로운 시기의 25년에 해당한다.
그만큼 덕성 민주화 운동은 치열했다. 65일간의 전교생 수업거부, 260일간의 총장실 점거를 포함하여 2,555명의 전국 지식인 서명 및 기자회견, 재단 항의방문, 성금모금, 가두시위 등 질풍과 노도처럼 일어났던 이 싸움은 1999년 한상권 교수의 복직과 2001년 박원국 이사장의 퇴진이라는 유례없는 결과를 낳았다. 한상권 교수의 부당한 재임용탈락으로 촉발된 이 사건은 불합리한 교수재임용 제도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었고, 대학이라는 공공재를 사유화하여 전횡을 일삼았던 사학재단에 대한 거부운동이었다. 이 한가운데 이 책의 저자인 한상권 교수가 있었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을 철회하기 위해 싸우던 한상권 교수는 ‘학교가 조용해질 때까지 일 년 동안 해외에 나가 있을 것’을 전제로 한 복직제의를 거절했다. ‘언제’가 아니라 ‘어떻게’ 복직되느냐가 학원민주화를 위해 싸워온 학생들과 동료 교수들을 위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학내외의 학생, 지식인, 여러 단체들의 연대를 통해 한상권 교수의 복직투쟁은 교수들의 교수권과 학생들의 수업권, 직원들의 노동권을 요구하는 전면적인 권리투쟁으로 승화되었다. 이 책은 힘없는 개인들이 연대와 단결을 위해 노력했던 모든 몸짓들을 꼼꼼히 기록하여 개인의 복직 및 교수 재임용제의 개선, 구재단의 퇴진, 인사행정과 학사행정의 민주화 등에서 끈질기게 불의에 저항한 모든 사람들의 승리임을 증명하고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을 해냈을 때 ‘역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그렇게 기록된 한 시대를 분석하고 종합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역사학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기록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해낸 경우는 무척 드물다. 이 책은 개인인 한상권 교수가 부당한 압력과 불의에 대항하며 만든 ‘역사’를, 기록자인 한상권 교수가 정리한 다섯 권의 ‘투쟁백서’를 자료로 하여, 역사학자인 한상권 교수가 분석하고 종합한 우리 시대 역사의 한 단편이다.
한상권 교수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으로서는 치열하고,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자로서는 부지런하며, 그 기록을 분석하고 종합하는 역사학자로서는 철저하였다. 자신이 한가운데 있었던 덕성민주화 투쟁을 다루면서도, “역사가는 사실을 원래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기록에 근거하고 정확히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주관적 인식인 ‘서술된 역사’가 객관적 존재인 ‘본래의 역사’와 완전히 부합할 수는 없다.”라는 실증주의 역사학자 랑케의 말을 통해 학자적인 냉정한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덕성 민주화운동을 빼앗긴 권리를 되찾으려는 ‘권리투쟁’과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기억투쟁’, 두 가지 로 설명한다. 그가 해직된 후 ‘동토의 왕국’이라 불리던 덕성에서 기본권을 되찾으려는 ‘권리투쟁’이 일어났다. 사회의 공기(公器)인 대학을 사유물로 여긴 이사장의 그릇된 교육관 때문에 일어난 저항이었다. 재단 이사장에게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한 사립학교법이 그의 일탈된 행동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어느 사립대학보다도 낮은 급여와 열악한 근무조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부당한 해직, 비싼 등록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낙후된 교육시설, 무분별한 학부제 시행 등 암울한 교육환경에 맞서 교수, 직원 그리고 학생은 빼앗긴 교육권· 학습권· 노동권을 되찾기 위해 일어섰다.
박원국 이사장은 자신을 ‘교주(校主)’, 즉 학교의 주인이라고 일컬었다. 학교가 자신의 사유재산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자주성을 확보하고 공공성을 앙양할 목적”으로 제정된 사립학교법에는 설립자의 소유 관념이 없다. 교육은 공공재(公共財)이기 때문이다. 덕성민주화운동은 대학을 사유물로 볼 것인가, 공공재로 볼 것인가라는 가치관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도전은 그 지배질서에 내재하고 있는 가치 체계나 구조를 무너뜨리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억투쟁’은 중요하다. 덕성학원은 모자 세습에서 형제 세습으로, 형제 세습에서 다시 부자 세습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족벌 세습재단이었다. 게다가 덕성학원 설립자라고 일컬어지는 송금선은 친일파, 즉 반민족행위자였다. 덕성학원은 단순한 족벌 재단이 아니라 친일 족벌 재단이었던 것이다. 덕성인은 기억을 둘러싼 투쟁 끝에 덕성학원 설립자가 친일파 송금선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차미리사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덕성여대는 친일 족벌 사학의 오명을 벗고 정통 민족 사학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차미리사 가치’와 ‘송금선 가치’ 사이의 대립은 독립운동가와 친일파 간의 반세기가 넘는 긴 싸움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덕성민주화운동은 우리 사회가 친일파에 의해 오염된 역사를 청산할 능력이 있는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는 복직을 법에 호소하지 않았다. 사립학교법이 “교원을 기간을 정하여 임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을 뿐, 재임용의 의무나 절차, 요건 등을 법령으로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임용의 기준과 절차에 관한 근거가 실정법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은 교원의 지위가 법률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임용 관련 법규가 없으니, 재임용탈락 시비를 둘러싼 재판이 성립될 리 없었다. 재임용탈락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재임용 여부는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되었다(법원이 적법 여부를 심리하고 물리치는 ‘기각’과는 달리, 각하는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저항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넘어서는 새로운 판례, 즉 ‘덕성여대 판례’를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
학내 구성원과 사회 민주세력이 연대해 부당한 재임용탈락처분을 뒤집은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해직교수들 사이에서 복직투쟁의 전범(典範)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필자가 복직된 뒤, 제주산업정보대, 세종대, 서울대, 동의대 등 여러 대학에서 부당하게 해직되었던 교수들이 복직되었다.

덕성민주화운동이 한국 사회에 던진, ‘대학의 자유정신’, ‘법치주의’, ‘교육의 공익성’, ‘친일잔재 청산’, ‘국가권력의 공공성’, ‘공동선의 추구’ 등에 관한 문제제기와 의미는 원칙과 상식이 실종된 지금의 우리사회에서 더없이 소중하다. 역사적 기억은 대중이 공유할 때 현실을 극복하는 힘이 된다.
그는 지난날 덕성에서 있었던 정의를 향한 몸부림이 ‘사회적 기억’이 되어 미래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펴냈다고 말한다.

그는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라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교수로서의 교육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위해 1997년부터 지금까지 노력해온 저자의 의지와 열정에 경의를 표한다. 덕성여대의 사례가 다른 대학의 교수, 학생들에게 모범적인 사례도 되었을 것이고 배울 점도 많았을 것이다. 자신의 고통을 개인적으로 치부하지 않고 대학 차원에서,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다른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 졸업생들, 그리고 사회민주화 세력들과 연대하여 학원문제를 풀어낸 것 역시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사학재단의 끝없는 탐욕과 무능, 반교육적 행태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교과부 등 행정부와 국회, 법원의 무능과 편파성을 여지 없이 들추어냈다. 특히,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행정부와 국회, 검찰/법원의 행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권력의 주인인 국민들이 위임해준 권력을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얼마나 형편없이 휘두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전면적인 개혁과 쇄신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처째는 저자가 이 책을 펴낸 것이 2010년 12월 이었으나 책 속의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은 2001년까지만 담겨있는 점이다. 이미 2007년 7월 사립학교법은 '개악'되었다. 2008년 들어선 이명박 정부는 그 개악된 사립학교법을 '개악'의 취지에 맞게 철저하게 활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덕성여대를 포함한 전국의 사립대학은 몸살을 앓고 있다. 어째서 2001년 이후 10년간의 덕성여대 상황을 담아내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는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은 저자 말대로 대학 내 모든 주체들과 사회민주화 세력들의 공통적인 노력이었음에도 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책 속에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 마치 한상권 교수가 중심이 되어 모든 싸움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도록 그려져 있다. 비록 그 것이 사실이다 하더라도 다른 교수들, 직원들, 학생들, 졸업생들, 사회민주화 세력들의 노력도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의 참여와 노력이 없었다면 그나마의 '작은 성과'도 이루기 어려웠을 테니까...
셋째는 덕성학원의 구조적 문제와 덕성여대 민주화 투쟁을 바라보는 관점과 해결하는 관점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사립대학이 처해있는 문제는 사립대학 자체의 문제는 절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 군사정권에서부터 뿌린 씨앗이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하여 현재까지 지속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 특히 사회전체적인 시각과 제도적인 관점에서 사립대학의 문제를 관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모든 싸움의 결과는 제도와 문화를 정비하는 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이다. 교육에 대해, 대학에 대해, 사립학교법에 대해, 구조와 문화에 대해 분석하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덕성여대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아쉽다.
(외부에서 접한 한상권교수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은 서평에 쓰지 않았다. 사실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2010년 8월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상지대의 운영 정상화를 추진하면서 구재단 측에서 추천한 정이사 4인을 승인했다. 같은 달 교과부가 사분위의 의결 내용을 최종 승인하면서 17년 만에 구재단이 상지대에 복귀했다. 조선대, 세종대에 이어 세 번째 구재단 복귀 결정이었다.
사분위는 덕성여대에도 2010년 10월로 임시이사를 파견했으나 이사회는 그동안 덕성여대 '학원분규'를 조정해내지 못했고 지난 8월 11일 사분위는 덕성학원에 임기 1년의 임시이사 7명을 또 다시 선임키로 결정했다. 하지만 덕성여대 총장과 덕성여대 정상화추진위원회는 이에 반대하여 교과부에 재심을 청구했다. 덕성 민주화투쟁은 아직 완료되지 않은 것이다.
 
올해까지 14년 동안 덕성여대의 학원민주화 투쟁이 지속되었음에도 왜 덕성여대는 정상화되지 않았을까?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분석해야 정확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다. 결국 커다란 범주에서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기능과 역할, 사립대학의 존재 이유와 운영, 재단과 대학의 역할분담, 학원 주체들간의 존중과 역할, 사립학교법을 비롯한 제도와 관행, 교과부의 역할, 정치권과 언론의 역할 등을 총체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고 전국민적인 관심과 이해가 필수적이다. 알고 해결방안을 토론하면서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대학입학율이 80%나 되니 대부분의 국민들이 대학에 이해관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정치와 정책이 중요하다. 현재 재직 중인 국회의원 상당수는 2007년 사립학교법 개악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200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으니 '개악'에 동의하는 정당과 국회의원은 여전히 강력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2012년 4월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립학교법 개정에 동의하는 국회의원을 다수 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대학 개혁과 혁신에 대한 명확한 식견과 비전을 가진 인물을 선출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교과부도 개혁,쇄신해야 한다.
 
[ 2011년 9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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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알랭 드 보통 지음, 이강룡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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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애 책을 통해 새로운 글쓰기 방식-전기(傳記)와 소설의 결합-을 실험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전기의 주인공들은 대개 저명하거나 악명 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을 쓴 전기작가와는 서로 일면식도 없을 뿐더러(대개의 경우가..) 대개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도식화해버리는 전통적인 전기 집필의 규범을 과감하게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기를 써보려고 도전한 작품이다.
 
<우리는 사랑일까>,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등 저자는 그동안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주로 써왔다. 저자가 평범한 한 젊은 여성의 전기를 써보겠노라고 결심했을 때 그 결심은 사랑에서 왔다. 글 내용에서 여자친구의 가혹한 비난과 함께 실연을 경험한 주인공은 어느 파티에 갔다가 한 여성과 만난다. 멀리서 일별하고 나서 그렇고 그런 뻔한 여자라는 판단을 내린다. 그런 그에게 그녀가 다가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편견을 확인하고 그녀에 대한 전기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 인물들이다. 등장인물들은 작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물론 여전히 살아 있다. 한 젊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완전히 공개하고 그 공개를 통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공감대를 형성한 독자들은 작가와 주인공들과의 성공적인 피드백의 결과로 우리는 위트 넘치고 사려 깊은 한 젊은 여인의 전기와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한 소설 한 편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의 원제목인 "Kiss & Tell"은 유명한 인물과 맺었던 밀월 관계를 언론 인터뷰나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폭로하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통 사람, 한 여성의 40여년 일대기를 전기의 형태로 저술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다 읽고나서도 나는 저자가 책에 왜 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주인공 '이사벨'의 입을 통해 쓰여진 일대기와 작가와 이사벨과의 구체적인 대화와 관계, 그리고 앞의 두 가지를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하고 철학과 이성으로 분석하는 세 가지 구성으로 엮어진다. 전기는 한 사람을 깊이 있는 장르이다. 이 소설은 이사벨이라는 한 젊은 여성을 다양한 측면에서 읽어낸다. 이사벨이라는 텍스트를 읽어가는 저자는 그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따지고 분석하려 든다. 그러나 이사벨은 죽은 텍스트가 아니라 완벽히 설명될 수도 없고 온전히 이해되기도 힘든 살아 있는 인간, 젊은 여자다. 결국 저자가 사랑했던 건 이사벨이라는 텍스트였지 울고 웃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살아 있는 인간 이사벨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이사벨의 주장처럼 한 사람의 삶은 당사자도 왜 그러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 많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인간은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하다. 전 세계 50억명 가까운 사람들 중에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러한 인간들이 군데군데 모여 집단을 이루고 서로 이야기하고 돕고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 이 지구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 말은 선입관을 가지고 누군가를 규정짓고 판정을 내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애기와 같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인간을 인간답게, 지구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각각 독특하게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이해하기 이전에 상대방을 '인정'하고 시작할 수는 없을까??
 
"친밀해지는 것은 유혹과는 정반대의 과정을 거친다. 친밀함을 보인다는 것은 상대방으로부터 비호의적인 판단-사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이 초래될 수 있는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혹이 자신의 가장 멋진 모습 또는 가장 매혹적인 정장차림을 보여주는 것 속에서 발견된다면, 친밀함은 가장 상처받기 쉬운 모습 또는 가장 절 멋진 발톱 속에서 발견된다."(157쪽)

 

[ 2010년 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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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 스웨덴 - 국민의 집으로 가는길
신필균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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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2010년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 해였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선거는 정치적인 이슈와 경제적인 이슈가 쟁점이었다. 한국의 정치구조는 수구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정당(현재의 한나라당)과 그들을 반대하는, 보수야당으로 불리우는 정당(현재의 민주당)으로 크게 대별되어 대통령 선거나 지자체 선거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수준 낮은 정치적인 이슈와 '근거없는 경제성장'을 정책으로 내걸고 진행되었다.
하지만, 2010년 지자체 선거는 식상한 이슈를 벗어난 새로운 정책의제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무상급식'이었다. 물론, 그 전 선거에서도 소수 야당이자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은 꾸준하게 무상급식을 포함한 사회복지를 전면에 내세운 바 있다. 다만 거대 여당과 야당에 가려, 그들만을 링 위에 올려놓는 기득권 언론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2010년 선거에서 사회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을까? 그것은 첫째, 유권자들이 더 이상 기존 정치권과 관료, 기득권 언론의 '여론 유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는 1997년 IMF 이후 10년 동안 제대로 된 개혁을 이루어내지 못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유권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고실업, 고물가, 비정규직, 자산감소, 소득감소, 부동산 거품, 빈부격차, 양극화...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유권자들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자신들의 삶이 나아지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인간적인 삶을 누릴 권리와 행복할 권리, 그리고 그것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를 문제삼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복지가 주요 이슈로 떠오른 두 번째 이유는 작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유권자들을 설득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의 노력일 것이다. 그들은 꾸준히 유권자들에게 사회복지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설득하고 한국이 '복지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과 희망을 제시했다.
 
2010년을 그렇게 겪으면서 지났지만, 해가 바뀌어도 복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정당이나 연구 집단의 복지 관련 비전 발표 및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복지 예산 증가율(2010년 8.9%, 2011년 6.2%)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은, 사람들의 빈곤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더욱 쟁점화되었다. 8.24 주민투표에서 다시금 유권자들의 의지가 확인되었음에도 “복지 포퓰리즘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대통령의 발언, “망국적 무상 쓰나미” 및 ‘복지 포퓰리즘’이 공산주의보다 위험하다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현 경기도지사,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발언, 그리고 조중동 등 기득권 언론의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한국 현실과 거리가 먼 ‘복지병’을 끌어와, 복지를 삶의 개선을 도모하는 실질적 정책 및 전망이 아닌 이데올로기로 치부한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에서 ‘복지’는 정치사회적으로 최우선 의제가 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만 남았다.
2010년부터 삶의 질이 하향 평준화되면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국가에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이에 특정 계층에게 선택적(시혜적) 복지를 제공하자는 주장과, 모두가 복지 수혜자가 되는 ‘보편적 복지’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에서는 정책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한번 결정된 정책이 정권 교체와는 독립적으로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과, 한국 사회의 정치문화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찾기 어렵다.  
 
보통 복지 정책을 이야기할 때 스웨덴 사례가 빠지지 않는데, 한국의 스웨덴 사회복지 관련 연구는 조세정책이나 연금 및 보험제도, 노동시장 정책과 다양한 복지 서비스 등 정책과 제도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다. 이 책은 복지 정책이 도입되고 확대된 과정과 그 맥락을 개괄하면서, 정책에 담긴 가치와 비전, 이를 구현한 정당 지도자의 리더십과 사회단체의 역할, 정책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게끔 뒷받침하는 스웨덴의 합의 문화 등을 살핀다. 이는 정책의 실효성과 관련해 ‘선별적 복지 대 보편적 복지’의 구도를 넘어 기본적으로 논의되어야만 할 지점이기도 하다.

전세계에 '사회복지'라는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원조' 국가이자 21세기 현재도 가장 강력한 '복지국가'임을 인정받는 스웨덴...
2010년 말 The Economist는 2011년 스웨덴의 예상 GDP를 4,490억달러, 경제성장율을 2.2%, 1인당 GDP를 47,300달러로 예상했다. 1인당 FDP로는 세계 5위 수준이다. 스웨덴을 포함한 세계 정상급 국가들의 또 다른 특징은 국가 내 빈부격차가 작다는 것이다. 심지어 '복지병'을 앓고 있다고 비판받았고 상당히 복지를 축소했다던 영국, 프랑스는 그럼에도 한국보다 1인당 GDP가 훨씬 높고 빈부격차도 크게 적으며 여전히 복지수준이 정상급이다.
한국 내에서 '복지병'이니 '복지 포퓰리즘'이니 하고 떠드는 사람들은 유럽의 복지국가 역사와 유럽의 사회복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상당한 효과, 공동체의 정체성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알면서도 그렇게 떠드는 것은 국민이 '무지'하다고 생각하여 속이고 선동하는 파렴치한 행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처음부터 '복지국가'였을까? 스웨덴 국민들은 어떤 과정을 겪으면서 세계 최강의 '사회복지'를 만들어 냈을까? 스웨덴의 역사는 한국과 어떻게 다를까? 스웨덴 복지국가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사람들이 스웨덴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난 공부모임에서 신필균씨의 [복지국가 스웨덴]을 읽고 세미나를 진행했다.
 
저자 신필균은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를 졸업했고 스웨덴 정부 장학생으로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를 마쳤다. 스웨덴 사회보험청 책임연구원, 스톡홀름 광역시 정보 센터 컨설턴트, 스톡홀름 광역시의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 크리스챤 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 지구를 위한 세계운동(GAP) 한국본부장,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정책기획수석실 비서관, (노동부)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현재는 여성 정치포럼 운영위원, 복지국가 건설을 위한 시민정치 포럼 공동대표, 녹색교통운동 이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스웨덴 사회복지의 유형과 발전상'(공저, 1999), '에코가족'(공저, 1997), 역서로 '뺀드비치 할머니와 슈퍼 뽀뽀'(2009) 등이 있다. 
그녀는 오랫동안 스웨덴의 대학과 관공서에 근무하면서 스웨덴의 복지 역사와 개념, 구조, 정책,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복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구현되는지 목격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독자들에게 더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스웨덴의 역사와 정치 및 복지국가의 근간을 확립한 스웨덴 사민당의 리더십과 노동조합운동의 역할(제1부)과, 정권이 바뀌더라도 복지 정책의 근본이념을 유지하는 바탕인 스웨덴의 합의 문화(제3부)를 확인해 두면, 정책의 구체적 모습이 서술된 제2부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스웨덴 복지 정책의 핵심 정신이라고 할 만한 ‘국민의 집’ 이념은 브란팅과 한손, 에르란데르, 팔메로 이어지는 60년 남짓 동안 스웨덴 사민당 지도부가 한결같이 공유하고 실천했던 정치철학이다. 1976년 선거를 기화로 사민당의 장기 집권 시대가 끝났고, 사민당과 보수정당이 교차 집권하는 추세는 2010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스웨덴 복지국가는 보수정당의 집권 시기에도 외형적으로는 시장 원리의 도입, 민영화 등의 변화를 거쳤을지언정 보편주의적 원리만큼은 훼손하지 않았다. 스웨덴 복지국가는 이미 스웨덴 국가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로 정착했으며 스웨덴 사민당의 성쇠와 무관한 사안이 되었던 것이다. 스웨덴에서 복지국가가 성립된 이후에 보수정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조차 이들이 집권 이후에도 스웨덴 모델을 유지/발전시키겠다는 공약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의 합의에 도달한 데는, 소외되는 집단이나 계층 없이 모두가 각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크게 기여했다. 특히 ‘노동 있는 민주주의’가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 민주주의의 정신은 공동체 내에서의 참여, 존중, 합의에 있다. 한손 총리는 스웨덴 사회에서 헌법에 의해 모든 사람의 기본권과 참정권은 마련되어 있으나 민주주의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계급사회에서 사회 구성원 간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방치하면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 바탕에 있었던 것이다.

보편주의를 기반으로 한 스웨덴의 양성 평등 정책은 물론, 장애를 입은 자의 일상적 생활을 가능하게 하자는 정상화 원칙 역시 시혜적 복지 서비스가 아닌 스웨덴이 지닌 민주주의적 복지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본인의 경제적 여건과 상관없이 올바른 지혜와 판단력을 구사할 수 있고 독립적으로 자기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교육 정책, 건강상 문제가 또 다른 불이익을 낳지 않게 하는 보건 의료 정책, 사회적 주택 정책과 직업교육에 중점을 둔 노동시장 정책 및 지속 가능한 생태 환경과 자원 유지를 위한 환경 정책까지도 계층 간, 세대 간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자는 민주주의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스웨덴식 보편적 복지 정책은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민주주의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철학이며 방법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인 ‘국민의 집’ 이념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무엇보다 분배의 형평성이 실현되는 경제정책과 노동시장 정책, 평등과 연대 및 사회 통합에 기초한 사회복지 정책,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의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계급투쟁이나 사유재산 폐지가 아니라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민의 집’을 함께 건설하자는 연대성 강조는 비사회주의정당이나 농민, 중산계층들과의 정치적 대화와 협조를 가능하게 했다. ‘국민의 집’은 빈곤층과 노동계급만을 위한 복지 정책이 아니라 전 국민을 아우르는 포괄적이며 보편주의적인 복지 제도를 마련해 스웨덴 특유의 복지국가 모델을 이루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진보정당과 좌파정당이 눈 여겨 보아야할 대목이다. 얼마전 한국의 어느 진보 정치인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이념은 해석이고 오직 푸른 것은 민중의 삶이다"라고...
 
 
스웨덴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한국과 다른 국가였다. 그들은 종족간 내란도 없었고 나라가 분단된 경험도 없었다. 그리고 극단적인 이념적 갈등을 겪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웨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찌 보면 더 힘들고 어려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 후 폐허와 쓰레기장처럼 방치된 서울에 집도 없고 먹을 것도 없이 방랑하는 빈민들의 모습은 18세기 스웨덴 도심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그리고 수 백년에 걸친 봉건 왕조의 학정과 착취, 급작스러운 산업화와 근대화로 인한 민중들의 비참한 삶, 자유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끊임없는 투쟁, 집회와 시위와 파업과 충돌의 역사는 스웨덴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복지국가'를 향한 대장정에 막 나서기 시작한 한국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준다. 어떤 이들은 이 책을 읽고 그냥 '북유럽 부유한 남의 나라 일'이라도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자살률부터 극심한 빈부격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 내재한 수 많은 '문제'를 생각하고 우리의 미래, 우리 아이들과 후손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책 속에서 이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많다.
 
스웨덴의 역사, 구조, 사회복지를 일구는 과정,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세부 복지정책, 정치인과 학자들, 정당과 단체들에 대한 것은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이는 스웨덴 노동자의 조직율(2010년 현재 전체 노동자의 85%)과 다당제를 가능케 하는 제도를 부러워하면서 그것이 '복지국가 스웨덴'이 가능한 핵심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스웨덴의 노동자 조직율이나 다당제가 19세기 초부터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음은 쉽게 알 수 있다. 스웨덴 역시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봉건 왕조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이행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 속에서 배워야하는 스웨덴의 근원적인 장점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한국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찾아낸 몇 가지 교훈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가장 기본적인 것인데, 15세에서 65세까지 스웨덴 국민들 중에서 1주일에 책 한 권 이상 읽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여성이 무려 50%에 달하고 남성도 조금 낮기는 하지만 30%에 달한다. 2009년 한국 성인들의 독서율 평균은 1년에 11권으로 한 달에 한 권이 채 되지 않는다. 성인들 중 약 30%는 1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다.(2010. 01. 문화체육관광부 '국민독서실태조사')
독서는 일종의 문화다. 책을 읽게 되면 스스로 생각하고 남의 생각이나 삶, 다른 의견을 듣는 것이다. 자신이 살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데 따른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고 간접적인 경험을 풍부하게 하고 문학과 과학, 이론과 사실 등에 대해 지식을 넓혀가면서 상상력도 풍부해지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작게는 가정에서, 크게는 사회 전체적으로 이성적인 대화를 가능케하고 합리적인 사고와 대화와 협상과 합의를 가능하게 해주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스웨덴인들이 처음부터 책을 그렇게 많이 읽게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웨덴이 지금과 같은 복지수준과 문화수준을 이룩하는 과정에는 책을 읽는 사람의 수와 문화가 확대되는 과정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례는 우리 아이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성인들이 갑자기 책을 많이 읽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아이들은 지금부터라도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얻고 생활과 실천을 통해 책을 검증하고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고 자신의 주관과 근거를 마련하고 책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토론하고 대화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10년, 50년 후의 한국의 밝은 미래에 희망을 줄 것이다.
 
두 번째는 스웨덴인들의 조직화 수준과 공동체주의 문화다. 우리가 서구인들이라고 생각할 때 늘 선입견에 빠지는 것들 중 하나가 '서구인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다른 유럽국가들도 다소 수준의 차이가 있지만, 스웨덴의 경우 개인들이 적어도 1개 이상의 정당이나 정치조직, 노조, 시민단체, 종교단체, 이익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 뿐 만 아니라 동네모임, 지역모임, 학부모모임, 독서모임, 봉사단체, 합창단 등 문화단체 등에 상당한 비율이 가입되어 있다. 단적인 사례로, 1,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스웨덴의 전국합창단협회 소속 합창단의 500여 개나 된다. 교회합창단은 6천 개가 넘는다고 한다.
서구인들의 개인주의는 '공동체'를 전제로 하는 긍정적인 개인주의인 것이다. 이러한 조직과 단체, 문화는 당연하게도 '공동체주의'를 불러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화와 협의, 토론과 합의,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인권의 향상이 사회적인 가치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한국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스웨덴인 대부분이 매일 조직이나 모임에 참여하여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시간에 한국 남성들은 야근을 하거나 술을 마시고 있고 여성들은 함께 야근을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가족을 챙기고 있는게 아닐지...
 

셋째는 당 지도부의 청빈한 삶으로 대별되는 '사회적 모범'이다. 책의 서문에 거론된 '야스플링 장관'은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당 서기 14년, 장관직 14년, 평생동안 국회의원을 거쳐 73세에 정치일선에서 물러났다. 저자가 1980년대 후반 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는 '초라한 임대아파트'에서 부인과 살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오랫동안 당 서기와 장관, 국회의원, 국회상임위 위원장 활동을 하면서도 한 번도 자신이나 가족, 친지, 지인들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기는 커녕)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사용하지도 축재하지도 않았고 오직 스웨덴 국민들을 위해 헌신했던 것이다.
이 또한 한국의 정치인들이 느끼고 배워야 할 '모범적인 공직생활'이다. 이런 훌륭한 사람이 정치인, 지도자로 수 십년간 일했으니 어찌 청소년, 청년, 성인들이 배우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사회복지 정책과 제도 하나 하나를 이루기 위해 100년 이상 끊임없이 싸워온 스웨덴인들의 노력이다. 스웨덴의 사회민주당은 1889년, 노동조합평의회는 1898년에 설립되었다. 사민당이 하원 의원을 처음 배출한 것은 7년 만인 1896년이었고 자유당과 연립정권을 형성하고 입각한 것은 28년 만인 1917년이었다. 노조가 처음 총파업을 단행한 것은 1909년이었으며 4개월만에 참패하여 대량해고와 노조원 감소(50%가 줄어 8만명)를 겪었다. 1931년에는 공장폐업에 항의하는 노동자에게 군대가 발포하여 5명이 죽기도 했다. 중앙정부가 유치원 운영에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한 것은 1912년. 스웨덴인들이 싸움을 거쳐 완전한 보평,평등 선거권을 획득한 것은 1918년. 사회보험에 적용되는 여성들이 출산휴가와 휴가비를 받기 시작한 것은 1937년이고 보험과 상관없이 모든 여성에게 출산휴가비가 지급된 것은 1940년. 이 때 아동연금도 지급되기 시작했다. 노령연금제도는 1913년 처음 도입되었고 1935년 지급액과 대상이 확대되면서 기초연금법으로 변경되었다. 1944년부터 유치원에 대한 정부보조금 지급, 1950년부터 9년제로 확대된 의무교육이 시작되었고 1976년부터 6세 아동에 대한 취학전 교육이 실시되었다. 대학 등록금은 전액 무료이고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학업보조금을 지원하고 대출해주기도 한다. 전국민 의료보험은 상병수당과 함께 1955년 본격 시작된다. 1935년부터 자발적 실업보험에 국가보조금이 투입되기 시작되었고 실업급여는 소득의 80%, 최장 14개월(18세 미만의 자녀가 있으면 5개월 추가), 상병급여도 있다. 임대주택은 전체의 55%, 그중 공공임대가 22%, 조합 임대가 15%이다. 모든 사회복지의 방향은 '보편주의'다.
스웨덴 국민들이 싸움을 통해 평등 선거권부터 공동임대주택까지 하나씩 마련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짧게는 30년부터 길게는 100년이 걸렸다. 한국의 경우 '사회복지'를 명확하게 요구로 내걸고 국민들이 싸운 것은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비록 현실에는 수 많은 빈곤과 절망이 존재하지만 '복지국가'를 한꺼번에 서둘러 끌어올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보편주의'라는 방향성이다.
 
 
* 책 속의 문장 : 이 책은 소개할 좋은 내용이 생각보다 많다. 이 서평을 다 읽느니 차라리 책 한 권을 구해서 스스로 읽기를 권하고 싶다.
- 스웨덴 국가와 사회는 어느 세력이나 개인이 절대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관습을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극소수 부유층에 실질적으로 정치사회적 권력이 집중되는 데 반해, 스웨덴은 이를 법률이 아니라 사회적 균형에 의해 해결하고 있다. 스웨덴에서는 어느 정당도 다른 정당의 협조 없이 정책을 관철,지속할 수 없다. 이것은 바로 스웨덴의 선거제도가 어느 한 정당에 의한 다수 지배를 어렵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p.72~73)

- 1960년 '아동돌봄법'이 제정되면서 이미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고 복지 수요만을 충족하는 데 급급했던 ‘처방적 복지’ 대신, ‘예방적 복지’라는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었다. 여기에는 자녀 부양 가족을 안정시키기 위한 예방적 처방의 서비스를 확대하는 내용과 청소년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 연극, 스포츠 등 방과 후나 휴일을 이용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다. 이 법이 전국적으로 실효성을 거두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렸으나, 1960년대 말 모든 코뮨이 이를 시행하여 보편적 아동 정책을 완성했다.(p.92)

- 가족 정책에 대한 관심은 1920년대의 빈곤 가족에 대한 사회적 책임 문제와 1930년대의 출산율 저하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 스웨덴 가족 정책에서는, 문제에 접근하는 관점이나 해결 방식이 포괄적이고 통합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출산을 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 모두의 사회생활과 가정생활 사이의 조화와 역할 분담 문제로 본다.(p.103~104)

-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스웨덴 노인 정책이 월등하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노인 문제를 접근하는 방법이 독특했기 때문이다. 우선 노인에 관한 문제를, 사회복지 정책이 논의되던 19세기 말부터 가족 내의 문제에서 사회적 문제로 전환했다. 그리고 개인의 ‘생애 주기’적 관점에 그치지 않고, ‘가족’의 관점과 사회적 관점에서 좀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노인 문제 해결책을 시도했다. 스웨덴의 노인 정책은 한편으로 노인의 경제 문제, 서비스 문제, 거주 문제와 같은 실생활 문제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다른 한편 광역 정부와 기초 정부의 상호 보완적 행정 체계를 통해 포괄적인 효과성을 도모해 왔다.(p.116)

- 스웨덴빈곤가족돌봄협회는 노동문제를 제외하고는 사회적 약자들의 모든 생활 문제를 다루었다. 당시 이들은 ‘빈곤’의 개념을 ‘사회적 질병’으로 정의하고 결코 개인 문제가 아니라고 역설했다. “이 병은 심지어 사회적 강자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고, 이미 빈곤 상태로 전락한 시민들은 또 다른 시민에게 이를 전염시킬 수 있어서 결국 전 사회를 위협할 수 있다”라며 사회적 책임론을 강하게 피력했다.(p.120)

- 스웨덴의 연금 개혁 이후 스웨덴이 지금까지 지녀 온 주요 복지국가 원칙들, 즉 소득 보장 원칙과 보편주의적 분배 정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기초 연금이 폐지되어 보편주의가 약화된 점과, 프리미엄 연금제도가 도입되어 연금제도 성격이 사회보장의 의미에서 개인 보험으로 바뀐 점 등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개혁 제도는 구제도가 안고 있었던 남녀 차이 및 생산직 노동자와 사무직?전문직 노동자 사이에서 빚어졌던 불공정성을 해소해 재분배 원칙을 강화했다. 그 결과 30년 이상 저임금을 받아 왔던 노동자와 시간제 노동을 하는 여성 노동자는 새 제도 덕분에 연금 급여가 상승했다. 그리고 각종 사회보장 급여가 소득으로 간주되어 기여금이 적립되는 점은, 특히 출산휴가와 관련해 남녀의 기회 평등을 장려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p.155)

- 스웨덴에서 공교육 개념은 국가가 재정을 부담하는 것을 기본으로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교육 자료와 급식 및 그 밖의 모든 부수적인 비용에 대해서 학부모가 일체의 부담을 지지 않음을 뜻한다.(p.210)

- 스웨덴 대학의 특징은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대학 수준의 편차가 없으며, 학비가 없다는 점이다. 대학생이 되면 부모로부터 자립해 생활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독립적으로 조달하는 문화가 있다. 정부는 학생보조중앙위원회를 두고 소득이 없는 학생들이 원활히 학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일정액의 학비 지원금을 대출해 준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이내에 대학 진학의 길을 선택하는 수는 전체 졸업생의 3분의 1이 조금 넘는 43퍼센트에 불과하다.(p.226~227)

- 유념할 만한 가장 중요한 점은 건강보험제도의 개혁을 추진했다고 해서 환자의 부담이 증가하지 않았다는 것과, 보편적 의료보장 시스템이 여전히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합하면 스웨덴 의료 개혁은 공급의 효율성 측면에 중점을 두고, 1차 의료 기관의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면서, 종합병원의 비용 절감을 유도했다. 동시에 추가 비용의 투입 없이도 의료 체계의 질적 향상, 관료가 아닌 환자 중심의 행정, 병원 경영의 합리화가 이루어졌다.(p.244)

- 스웨덴 주택 유형의 특성 가운데 필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일찍이 주거권 운동을 배경으로 한 소비자 조합이 주택 건설 회사를 운영해 주택에 관한 조사 연구와 주택 공급을 통해 소비자가 정책과 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지방정부가 시민의 주거 문제를 시장 논리에 맡기지 않고 삶의 터전 마련을 도와주는 주거 복지 차원에서 주택 건설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주택 정책의 이름을 “모두에게 주택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p.264)

- 코뮨이 공급하는 주택의 종류에는 일반 임대 아파트 외에 수요자의 특성에 따라 원룸 학생 아파트, 학생 가족 아파트, 노인들을 위한 특수 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을 공급한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임시로 주거지를 찾는 청소년과 여성 등을 위해 가구가 갖추어진 호텔형 아파트도 운영한다. 그 외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주거 시설의 개보수 공사를 맡아 한다.
임대 아파트는 신청 순번대로 분양되는데, 도심지에 가까울수록 기다리는 기간(1~15년)이 길다. 행정 당국은 자녀가 있는 경우나 의학적 사유에 의한 상황을 참작하여 사회적 약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정부는 부족한 임대 아파트의 입주 대기 기간을 줄이기 위하여 민간 건축 회사가 제공하는 새 건축 임대 아파트의 3분의 1을 코뮨 임대주택 중개소 목록에 의무적으로 등록하게 하여 민간 임대주택을 선택할 기회를 제공한다.(p.268)

- 공공 주택이나 민간 회사의 임대료 책정은 기본적으로 제도적 장치에 의해 집 주인(건물 소유자)과 세입자 조합 간에 지역 단위의 단체 협상으로 결정된다. 지역 단위에서 협상이 결렬될 경우에는 중앙 차원에서 재협상이 이루어지는데, 이때 협상 주체로 참여하는 기관은 세입자전국연합과 SABO이다. 민간 임대주택일 때는 건물소유자연합이 참여한다. 임대료를 책정하는 기준은 당연히 주택의 질적 수준(가치)이며, 일반적으로 ‘동급의 아파트에 동일한 집세’라는 법 원칙을 준수한다. 이런 사회적 원칙은 세입자 주거권 보호로 이어지며 공공 주택의 임대료 수준은 민간 임대주택의 임대료 결정에도 영향을 미친다.(p.269)

- 한국 삼성연구소는 2010년 5월 선진화 지표를 중심으로 OECD 30개국을 조사한 결과 스웨덴을 가장 선진화가 잘 이뤄진 국가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23위였다. 조사 기준은 역동성을 중심으로 자부심,자율성,창의성,호혜성,다양성,행복감 등 7대 지표를 사용했다. 그리고 2006년 유엔개발지수조사는 스웨덴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 발표했고, 2004년에도 '뉴스위크'가 조사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로 꼽혔다. '뉴스위크'는 그 이유로 보건 의료 제도의 발달과 혁신, 연구가 뛰어나다는 것을 들고 있다. 조사와 평가 자료에는 유엔 개발 지수, 국제경쟁력 지수, 세계 경제 안전 지수, 교육 및 문맹 지수, 청렴성 지수 등이 사용되었다.(p.330)

- 한 국가의 운영 체계와 국민의 실생활이 천국과 지옥을 그리 쉽게 넘나들지 않는다는 것은 웬만한 지각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스웨덴은 천국도 아니지만, 복지 제도가 실패한 나라도 아니다. 1936년에 한 미국 저널리스트는 “주식회사 스웨덴의 성공은 기꺼이 적응하고 타협하려는 스웨덴 사람의 성향에 있으며 스웨덴 사람들은 사회질서의 성공적 작동 가능성에만 관심을 가지는 궁극적 실용주의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p.331)

- 산업화 초기부터 스웨덴은 보편적 기초 연금에 관한 합의(1935년), 살트셰바덴 합의(1932~38년), 소득 연금 개혁(1957년), 원자력발전소 증축 문제(1980년), 유럽연합 가입(1994년) 등에서 보듯이 중대하고 복잡한 정책에 관한 합의를 이끌어 낸 전통이 있다. 많은 국가들은 이와 비슷한 문제나 사안에 관한 정책 결정을 두고 오랜 진통을 겪고도 해결하지 못하거나 결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사후에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곤 한다.(p.332)

- 스웨덴에서의 커피 타임은 직장 문화의 하나다. 일과에서 오전과 오후 두 번은 개인별이 아니라 집단별로 함께 휴식을 취한다. 이 시간에 주고받는 이야기는 잡담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사무적인 일과 관련이 있다. 스웨덴 국민은 신문이나 정보지를 많이 보는 편이다. 물론 독서율도 세계적으로 앞서 있다. 일반 상식이 풍부하고 소신이 강해 커피 타임에 나누는 대화는 정보를 얻는 동시에 자신의 의견을 검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 토론되는 국가적 사안도 직장에서의 커피 타임 주제가 된다.(p.334~335)

-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나 합의 자체의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이다. ‘합의’는 다양성에 대한 자극과 도전을 약화하거나 창의성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지적된다. 합의되었기 때문에 그저 따르면 된다는 태도가 지닌 수동성 때문이다. 그러나 긴 시간을 소모하면서 이루어진 합의는 실행 시간을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런 ‘합의’의 절대적 장점은 결정 단계?과정에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정된 사항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또한 구성원의 헌신과 자발성을 불러일으키면서도, 갈등 탓에 발생하는 지체와 불안정을 사전에 예방해 장기적으로 더욱 큰 이익을 가져온다.(p.335)

- 스웨덴은 결코 지상에 실현된 낙원도 아니며 행복한 전체주의 국가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통 복지국가를 하나하나 허물며 세계화 물결 속에 동참하는 국가는 더욱 아니다. 스웨덴은 자유/연대/복지/환경과 같은 근대적 이상을 향해 현실이라는 거친 여로에서 오늘도 좌우를 더듬으며 느리지만 쉬지 않는 달팽이의 행로를 계속하고 있다. 어찌 보면 순하고 부지런한 이 달팽이의 행로에서 21세기 인류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큰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p.357)  

 
[ 2011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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