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소설 전집 을유세계문학전집 12
루쉰 지음, 김시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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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어 보지 않은 아이들이 혹시 아직 있을까?  아이들을 구하자..." <광인일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식인(食人)사회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소설의 마지막에 남긴 말...
 
"틀림 없어요! 틀림 없이 나을 거요. 그렇게 뜨거울 때 먹었으니. 사람의 피를 묻힌 만두는 어떤 폐병이든 즉효야!" <약>
찻집 주인의 친척이 찻집 주인에게 '인육만두'의 효험을 장담하면서 하는 말...
인육만두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아들은 공동묘지에 묻혔다.
 
"이 첫 번째의 보영활명환은 쟈씨네 제세 약방에만 있는 겁니다." <내일>
죽어가는 아들을 데려온 엄마에게 한약방 의원에게 데려갔을 때, 의원이 처방전을 주면서 다짐하는 말...
결국 아이는 죽었고 아이의 엄마는 가지고 있던 모든 돈과 패물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 
 
"인력거꾼은 그 노파의 말을 듣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여인의 팔을 부축하여 한 발짝식 파출소를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작은 사건>

내가 그 인력거꾼을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나는 내 자신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중국인이 이 별것 아닌 머리털 때문에 괴로움과 수난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는지 알 수가 없네!" <머리털 이야기>
신해혁명 이후 중국 내에서 변발을 자르냐 마냐를 두고 소위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이 교대로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발을 두고 민중들을 괴롭힌 것을 말한다...
 
"명절이 지나면? ....... 여전히 관리 노릇이나 해야지...... 내일 가게 주인이 돈 달라고 오거든 초여드렛날 오후에 오라고만 해" <단오절>
지방관리인 주인공은 지방정부의 재정부족으로 월급이 들어오지 않아 괴롭다. 부인이 이를 하소연하면서 신문이나 서점에 글을 써서라도 생활비를 구해오라고 말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그리고 중얼중얼 [상시집](중국 최초의 현대시집)을 읽는다.
 
"나는 더는 가르치러 갈 생각이 없네. 여학교라는 게 도대체 어떤 꼴로 되어 갈지 모르겠어. 우리같이 단정한 사람은 확실히 함께 어울릴 수가 없어...." <까오 선생>
교사 자격을 취득한 후 처음 지방의 여학교에 들어온 까오 선생은 여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 여학생들과 소통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세상 풍속을 걱정한다.
 
"사랑 없는 인간은 사멸하고 만다" "나는 새로운 삶의 길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나는 진실로 마음의 상처를 깊이 감추고 묵묵히 전진하려고 한다. 망각과 거짓말을 나의 길잡이로 삼고서...." <죽음을 슬퍼하며>
둘이 사랑하여 여자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거를 시작했지만, 빈곤과 실업으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 주인공은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고 여자는 가족에게 돌아간 후 죽는다. 그 사실을 나중에 알고난 후 주인공이 내뱉는 말...
 
 
지난 8월 개인적으로 루쉰 소설 선집을 읽은 후, 10월 독서모임에서 루쉰 소설에 대해 세미나를 하기로 논의가 되었다. 9월에 이 책 [루쉰 소설 전집]을 구하여 읽었다. 참가자들이 여러가지 바쁜 사정으로 11월 초로 연기되면서 며칠 전에야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루쉰 소설 전집]은 여러가지 번역서 중에서 서울대 중문과 김시준 교수가 번역,해설한 것으로 골랐다. 이 전집에는 루쉰이 1918년 발표하여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로 인정받는 <광인일기>부터 1935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죽은 자 살리기>까지 총 33편이 실려있다.
 
이 책은 루쉰이 일생 동안 발표한 소설들을 엮은 소설집 [납함], [방황], [고사신편] 등 3권에 수록된 33편을 번역한 완역본으로, 중국의 유교적인 가족 제도가 지니는 병폐와, 예절이라는 이름의 굴레가 인간을 얼마나 속박하는지를 미친 사람(狂人)을 통해 들춰 보인 처녀작 <광인일기(狂人日記)>와 중국이 역사적으로 계승하여 온 중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자기 만족으로 스스로를 기만하며 사는 정신 승리법과 우매성, 약점을 아큐에 집약하여 중국 국민적 성격의 전형을 풍자한 대표작 <아큐정전(阿Q正傳)>도 수록되어 있다.
 
루쉰은 강렬한 민족의식에 기반을 둔 작품을 통해 후대의 문학사조나 형식 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역자는 루쉰이 이처럼 위대한 민족의 문학가로 평가받게 된 것은 그가 몸소 민족의 수난기를 살아가면서 민족의 고뇌를 방관자로서가 아니라 선각자로서 포용하는 의연함을 가지고 끝까지 지켜나간 작가적 태도 때문이다고 평가한다.
 
그의 소설은 중국이 봉건주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통하던 과도기에 중국인들이 체험하였던 고통과 혼란과 방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2천여 년간 쌓이고 쌓여 왔던 봉건주의 전통 사회의 거대한 탑이 붕괴되는 현상은 중국인들로서는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루쉰은 봉건주의라는 전통 사회의 미망에 빠져 있는 국민들을 문학 작품을 통해 계몽하여 봉건 윤리라는 미신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앞장서서 중국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그의 대표작 <아Q정전>이 신문에 연재되었을 당시 중국의 많은 지식인 독자들이 마치 자신들의 심장을 향해 비수가 날아오는 것을 보듯이 전율했다고 평한다. 루쉰은 문학의 위대함을 국민들에게 일깨워주었으며 그의 문학사상의 위대함 또한 이것에 있다고 하겠다

중국 근대화의 선구자 천두슈는 근대화 과정의 필수요소를 ‘과학’과 ‘민주’라고 했다. 그는 서구의 민주주의와 과학주의의 도입을 근대화의 첫걸음으로 여겼다. 이에 호응하여 나온 것이 후스의 문학 혁명이다. 그의 문학 혁명은 ‘백화문’의 보급이다. 그는 모든 국민이 자신의 사상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근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근대화의 필수 조건인 문학 혁명을 실천하고 성공으로 이끈 것이 루쉰이라고 할 수 있다.

 
루쉰의 작품에 대한 역자의 해설이나 다른 작가들의 작품평을 읽어 보면 이구동성으로 루쉰이 대단히 뛰어난 작가였다고 애기한다. 나는 루쉰의 몇몇 작품을 여러번 읽었지만 그들의 감상만큼의 큰 감동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것이 작품을 보는 '눈'이나 '마음'의 차이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내가 20세기 초반의 중국사회나 역사, 그리고 다른 작품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내가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루쉰의 작품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미신과 미몽에 빠져있는 중국인들의 모습, 격동하는 중국 근대사의 물결 속에서 당황하고 절망을 느끼는 중국인들의 모습이다. 그런 모습을 구체적인 단편소설 속에서 표현하여 중국인 일반에게 보여주려 했던 루쉰의 마음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느낀 현실은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얼추 오버랩될 수 있다. 사교육이라는 지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학생들, 스펙과 일자리, 등록금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 실업과 비정규직,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청장년층, 방황하는 노년이라는 지옥같은 현실 속에서도 서울시장 투표율이 50%를 조금 넘었다는 결과를 보면...
 
[ 2011년 11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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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속도를 10km 늦출 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조셉 베일리 지음, 강현주 옮김 / 시아출판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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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는 내 이야기를 듣지 않을까?’
‘왜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단절된 듯한 기분일까?’ 
‘그는 나에게 전혀 시간을 주지 않아!’ 
‘더 이상 내게 꼭 맞는 짝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내 아내를 사랑하지만 단지 일상적인 것들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것일 뿐이야.’

저자는 위의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는 사람이 이 책과 딱 맞는 독자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진정한 사랑을 누리지 못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이자 오랫동안 커플 치료를 위한 상담을 해왔던 저자가 자신의 경험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펴낸 책으로, 연인관계나 부부관계에서 자주 일어나곤 하는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예로 들어 우리의 연애사 속에서 겉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는 심리적인 갈등과 그 원인을 조망한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부터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까지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각,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열 가지의 이야기 속에 담아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총 17가지의 실제 사례 모음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처음 이 책을 들었을 때... 이미 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아버린 '불혹'의 나이에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낯 간지럽기는 하지만, 저자 말대로 '사랑'이라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하는 현상이고 언제 태동할 지 모르기에 나를 위해, 내 주변을 위해 저자의 관점을 들어보기로 했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와는 달리, 처음 연애감정이 불타오를 때에는 상대로 인해 인생이 통째로 흔들릴 정도로 사랑을 불태우던 연인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저자는 매 순간 상대방의 새로운 매력을 보고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흘러가는 ‘시간’에서 언제까지나 처음처럼 사랑하는 비법을 소개한다. 저자의 명쾌한 통찰력은 우리가 왜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지,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려주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부터 새롭게 사랑하게 되는 과정까지 사랑에 관한 새로운 시각, 열린 시각을 갖기 위한 방법을 열 가지의 이야기 속에 담아 체계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며 총 17가지의 실제 사례 모음 속에서 우리가 흔히 겪는 갈등을 소개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난관을 헤쳐 나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진짜 사랑을 방해하는 감정들의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는 원래 사랑하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상대방을 사랑하기 보다는 미워하고 갈등하는 우리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사회적 조건에 길들여 있는 습득된 자아가 사랑과 행복의 조건을 상대방과 나의 본질적인 관계에서 찾지 못하고 명성, 권력, 성공 등 외부의 조건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인 자아는 시간을 초월한 사랑을 방해하는 제1의 요소이다. 그에 반면 우리 ‘본래의 자아’는 시간에 촉박하기보다는 여유로운 자아이다. 우리 본연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둔 순수한 자아이다.


저자는 사랑의 전제조건은 용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용서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부분이 ‘용서’라는 단어를 ‘비난하고 있는 대상이나 당신이 알고 있는 잘못들을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용서 안에는 우월감이 숨어있다. 저자는 자신도 그러한 거짓 용서를 진정한 ‘용서’라고 착각했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이제 진정한 용서가 어떤 의미인지 재조명한다. 상대방의 행동은 그 순간 자신이 아는 전부를 동원하여 대처한 것일 뿐이며 그를 비난하고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판단 없이 상대방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순수하지 못하다는 것 등의 깊은 통찰을 통해 진정한 용서에 관한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가 현재에 머물러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움과 경이로움, 영감으로 가득한 또 다른 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외적인 현실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단지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재에 머무르는 것은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비법 가운데 하나이다.

 
용서란 아무런 판단 없이 다른 사람의 순수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229p)

진정한 용서란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자각의 변화이자, 과거나 관계에 대한 이해의 변화이다. (231p)

진정한 용서는 처음부터 용서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용서하는 사람이 그들의 행동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자신들의 왜곡된 자아의 믿음체계에 따라 정당한 행동을 했으며, 그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다고 믿어주는 것을 뜻한다. 믿음체계는 신뢰하기 힘든 것이다. (231p)

용서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얻는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사람이다. (240p)

협상방식은 우리 본래의 자아의 손상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잠시 생각해보자. 당신의 진실한 느낌이 당신의 안내체계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기 위해 때로 당신의 진실한 느낌을 무시하고 협상해야 한다고 배웠다면, 당신은 더 많은 시간을 갈등 속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289p)

 

[ 2010년 5월 0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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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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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우리 세대의 청춘과는 너무도 다른 지금의 20대... 
농사꾼의 자식으로, 공장 노동자의 자식으로, 장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나 돌보는 사람 없이 동네에서 끼리끼리 친구들과 '방목'되어 자라던 이들이 대부분의 우리 세대일 것이다.
그렇게 자란 우리 세대는 20대에 30년 가까이 이어온 군사독재체제를 무너뜨리고 사회에 새로운 분위기를 가져왔고 세계적인 경제호황기를 맞이하여 큰 어려움 없이 직업을 선택했고 상당수 자신들의 경제적인 부를 향유했다.
 
요즘의 20대들은 9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들이다. 그들이 태어난 시기에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이 평균 1만 달러이고 한창 고도성장기였기에 노동력이 부족하여 '실업'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집안의 아이들도 평균 1~2에 불과하여 우리들 세대와 달리 아주 '귀한' 자식들이었기에 과잉보호되어 자랐고 도시화의 발달로 아이들끼리 어울리기 보다 대부분 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게 된다. 또한, 사교육과 부동산 투기에 '광풍'이 몰아치던 시기이기도 했다.
 
미디어나 일부 학자들은 그 20대들의 차별성 때문에 'Y세대'나 'Z세대'로 분류하거나, 20년만의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경험한 '촛불세대'로 분류하지만 그들은 우석훈씨의 정의대로 '88만원 세대'이기도 하다.
 
외형적인 기준이나 잣대로 지금의 20대를 분석하거나 분류시킬 수 있으나, 실제 그 20대들이 그러한 외적인 환경, 가족의 구성,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떤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세상을,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 수 있는 정보는 얻기가 힘들다.
 
이 소설은 그러한 20대들에 대해서 다뤘다.
이 책은 IMF 이후 변화된 사회의 문제들을 혼자의 몸으로 뚫고 온 혹은 뚫고 가고 있는 청년 세대에 바치는 소설이다. 성공한 삶이라고 주변에 얘기할 수 있는 그때, 그리고 그 성공을 위해 노력했던 스스로에게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청년들은 부조리한 세계에서 부조리한 방식으로 그들의 삶에 대해 최선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이 세계를 헤쳐 나갈 것인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그리는 슬픈 비망록이 펼쳐진다.
 
저자는 요즘 세대를 이른바 '표백 세대'라 지칭한다. '표백 세대'란 너무 완벽해서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흰색 같은 세상에 순응해야만 하는 요즘의 청춘들을 말한다.
저자는 섬?할 정도로 이 시대 청춘들의 모습을 현실적이고,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누가 봐도 성공했다고 생각되는 최고의 자리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청년들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된 줄거리다.
또한 자살선언문의 성격을 가진 유언적 잡기(雜記)와 주인공의 현실 세계를 번갈아 배치하여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고 몰입하도록 만든다.
이 책이 던지는 차갑고도 절박한 메시지는 우리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이다.
 
<줄거리> 
 
주인공은 7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서 상위 10개 대학의 뒤쪽에 위치한 A대학에 입학해서 군대를 갔다 온 복학생이다. 그는 대학입시를 다시 준비하든 편입시험을 보든 더 상위권으로 진입해야 하는데, 어떤 것을 시작해도 이미 늦어버린 나이라고 생각하며, 미래의 암울한 현실을 깨닫지만 딱히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취업 선배들과의 대화’ 행사 뒤풀이 후에 전교적으로 유명한 ‘21세기 지도자 장학생’인 세연, 경영학과 동기인 휘영, 후배 병권, 세연의 친구 추윤영 등과 어울리게 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자살을 준비해온 세연은 친구들을 설득하며 5년 후에 자살할 것을 강요하며, 자신이 가장 주목받는 선구자가 되기 위해서 죽는다. 5년 후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며 표백되고 있던 주인공과 친구들은 우연찮게 한 사이트(와이두유리브닷컴whydoyoulive)를 통해 서로의 소식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친구들은 5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24시간 후에 자살을 한다고 선언한다.
 

작품 속에서 작가는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옴짝달싹 할 수밖에 없게 된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고 칭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것을 보탤 수도 보탤 것도 없는 흰 그림인 ‘완전한 사회’에서 청년 세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사회에 표백되어 가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위치에서 가장 성공했을 때 사회에 자신을 표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살밖에 없다며, 와이두유리브닷컴(www.whydoyotlive.com) 사이트에 자살 선언을 올리고 24시간 후에 자살한다.
현실세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꿈이나 노력해서 무엇인가를 얻을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청년 세대들의 고달픈 일상과 정해진 채 다가올 미래와 표백되는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보여주면서 면밀하고 명확하게 우리 사회를 그려낸다.

 
젊은 세대들이 자살하는 세태를 정확하게 그려내며 현실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우리 사회 청년들의 삶과 일상이라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한 때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자살 사이트나 자살 동호회 회원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75년생인 작가가 다룬 20대의 모습이 실제 20대의 고민과 갈등과 선택을 반영하고 있다면, 20대들이 보여주고 있는 탈정치, 탈구조, 탈공동체의 태도는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해마다 늘어만 가는 중고등학생들의 자살, 뚜렷한 이유없는 자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에밀 뒤르켐은 19세기 말 [자살론]에서 '사회적 응집력의 부족'을 자살의 주요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바, 현대의 자살현상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된다.
 
'표백세대'의 좌절... 그것은 현실세계를 '무궁무진하게 변화가능한 세계'로 인식시켜주지 못하는 사회(가정,학교,정부등)에 대한 그들의 심리적 좌절, 인식상의 좌절이 아닐까?
 
 
* 책 속의 문장 :
-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p.77~78)

- 마르크스는 공산 혁명을 주장했지만, 공산 혁명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가 처한 상황과 이 세대의 운명에 대한 우리의 분석에 동의한다면, 당신은 넓은 의미의 선언자다. 누군가가 와이두유리브닷컴을 '부모 덕택에 고생 모르고 자란 배부른 녀석들의 복에 겨운 헛소리'라고 매도하려 들 때 '그 방식은 과격하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라고 맞서며 우리의 논리를 그 자리에 소개한다면 당신은 선언자다. 우리 세대가 하루하루 좌절에 빠지는 이유가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그 좌절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당신은 우리와 같은 편이다.(p.182)

- 산업화 시대의 노동자들은 사회주의 사회라는 '다음 단계'를 꿈꾸며,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주체로서 뚜렷한 이념과 이상을 갖고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표백 세대는 지배 이념에 맞서 그들을 묶어주거나 그들의 이익을 대변할 이념이 없으며, 그렇기에 원자화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낙원'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이상향은 있을 수 없기에, 표백 세대는 혁명과 변혁에 관한 한 아무런 희망을 품을 수 없다. 이들은 사회를 비난할 권리조차 박탈당한다. 완성된 사회에서 표백 세대의 실패는 그들 개개인의 무능력 탓으로 귀결된다.(p.199)

- 자살을 꿈꿔본 적이 없냐고? 왜 없겠어. 그런 건 누구나 밤마다 생각하는 것 아닌가? 나는 밤마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며 창문을 깨고 원룸에서 뛰어내리는 공상을 한다고. 때로는 분노에 차서, 때로는 사는 게 허무해서. 세연이 쓴 선언문에 동의하지도 않았고, 사람을 외길로 몰아간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일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선언문 덕에 위안을 받는 듯한 기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왜지?). 그러나 내가 그 선언문으로 구원받을 수는 없었다. 설사 선언문의 내용에 내가 찬성한다 해도, 그 선언문과 실행 지침은 생활이 곤궁하거나 좌절했을 때 자살하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행 지침에선 자살을 하려거든 삶의 중요한 성취를 이뤘을 때 하라고 했는데, 나는 적어도 업무에서 다른 사람이 인정할 만한 성취는 앞으로 영영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p.241)

- 우리 사회에 모순이 쌓이지 않는다는 세연의 주장에 나는 찬성하지 않는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힘은 이제 없을 수도 있지만 우리 시대에 태풍은 곧 몇 번 들이치리라 생각한다. 그때 그 에너지를 이용하면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많은 일을. 그건 그 에너지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p.332)  

 
[ 2011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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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란 무엇인가 - 에른스트 마이어가 들려주는 진화론의 핵심 원리 사이언스 마스터스 16
에른스트 마이어 지음, 임지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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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를 통해 배우던 ’진화’가 찰스 다윈, [종의 기원]과 함께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서구에서 종교(기독교)가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모두 장악하던 중세 암흑시대 이후 서구에서는 종교가 과거의 폭정과 만행을 반성하면서 ’문화’의 한 축으로서만 기능하고 있는 반면(미국에서 부시정권과 공화당이 잠시 종교정치를 살려보려 했지만...),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도래한 지 100년이 조금 지난 21세기 들어 오히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를 지배하면서 종교인들 뿐 아니라 권력자들까지 ’종교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듯 하다. 또 다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인지...
 
한국이 비록 일제 압제에서 벗어나 다른 나라의 체제를 모방하면서 1948년 헌법을 제정하고 공화국을 건국했지만, 60년이 넘도록 지금처럼 종교(기독교)로 인하여 사회 전체가 분열되고 종교인들간 반목과 갈등이 심한 때가 없었다. 합리주의와 이성, 과학과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국가이지만, 오히려 일방주의와 강제, 친일과 군사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2008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청와대에 모여 대통령을 추켜세우는 기독교계 수장들을 보면서 중세의 교황과 영국, 프랑스의 추기경들의 행태가  떠오른다.
 
한국의 교육부와 교육자, 교육관계자들이 건국 이래 끊임없이 본연의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내지 못하는 가운데 이제는 기독교에서 교과서의 ’진화론’을 문제삼고 ’진화이론’ 대신 ’창조론’을 교과서의 ’인류의 기원’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마저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http://cafe.daum.net/yesillove/Fc6O/4?docid=1C5yJ|Fc6O|4|20090419081808&q=%B1%B3%B0%FA%BC%AD%2B%C1%F8%C8%AD&srchid=CCB1C5yJ|Fc6O|4|20090419081808http://www.christiantoday.co.kr/view.htm?id=206404) 이런 상황은 정치인이나 일반인보다 앞서 한국의 과학자들, 과학분야 전문가, 교육부, 교육관계자들, 교과서 출판사들이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증거도 없고 합리적인 이론도 없이 오로지 ’코란’, ’구약성서’, ’신약성서’의 도그마와 ’기도’로 만물을 해석하고 규정하면 할수록,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종교의 자유를 무시하고 유일신을 강제하면 할수록 종교는 점점 더 사회구성원들에게 버림받을 것이다.
 
지질학의 ’방사능 반감기’를 통한 지구의 역사, 화학의 스펙트럼과 분광학에 따른 태양의 구성물질과 역사, 천문학의 천체망원경과 탐사로켓을 통한 지구의 자전과 공전, 계통발생학과 생물학의 화석과 유전자 분석을 통한 생물분류체계,
 
저자와 학자들이 정의하는 ’진화(Evolution)’란 "생명이 출현한 이래로 생명의 세계가 발달해 온 점진적 과정"을 의미한다. 다윈에 의하여 진화이론이 처음 대두된 1859년 [종의 기원] 이후, 진화이론도 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이론이 존재하였으나 1937년에서 1947년 사이에 진화 생물학자, 실험 유전학자, 자연사학자, 고생물학자 등이 진화에 대한 종합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었다. 이를 ’진화의 종합(Evolutionary Synthesis)’라 한다.
 
진화는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생명의 매혹적인 미스터리와 관련해서 던지는 ’왜?’라는 질문 가운데 진화를 고려하지 않고 적절한 대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이제 진화는 찰스 다윈 스스로도 결코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출생지인 생물학을 넘어서서 언어학, 철학, 사회학, 경제학 등 인접한 학문 분야로, 그리고 인간의 사고 체계로까지 그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진화를 사실로서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진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이라 할지라도 다윈의 진화론에는 커다란 문제점이 존재한다는 의혹과 오해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에서 진화와 관련해서 일반인들이나 반대편에 선 학자 또는 창조론자들이 궁금해 할 법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진화론에 덧씌워진 오해와 비판을 명쾌하게 풀어 준다.

저자는 실제로 진화가 지구상에서 일어났다는 증거를 들어 진화가 단순한 이론이 아닌 명백한 사실임을 역설하고, 진화가 작용하는 과정, 세부적인 형태들을 상세히 설명하며, 진화이론을 포함하여 생명의 탄생과 역사를 설명해 온 각종 이론들을 개괄한다. 또한 [종의 기원]을 기점으로 진화의 종합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진화 이론 자체의 역사도 상세히 들려준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진화에 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38억 년에 걸친 지구상의 생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진화 생물학의 현재까지의 결론 >
1. 생명의 탄생 : 38억년 전
2. 최초 생명(원핵생물, 세균)의 화석 : 35억년 전
3. 최초 진핵생물 : 27억년 전
4. 최초의 동물 : 6억4천만년 전
5. 최초의 육상 식물 : 4억 5천만년 전
6. 최초의 육상 척추동물(양서류) : 4억6천만년 전
7. 최초의 파충류 : 3억1천만년 전
8. 최초의 조류와 포유류 : 2억년 전
9. 영장류의 분기진화 : 3,300만년 전
10.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800만년 전
11. 호모 에렉투스(사람속) : 100만년 전
12. 호포 사피엔스 : 20만년 전

 


< 자연선택에 의한 유전의 17가지 원리 >
1. 유전물질은 일정 불변하다.
2. 유전물질은 DNA분자로 이루어져 있다.
3. DNA는 모든 생물의 표현형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생성해 내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4. 진핵생물의 경우 대부분의 DNA는 모든 세포의 핵 안에 존재하며 다수의 길쭉한 모양의 염색체라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5.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들은 일반적으로 이배체 상태로 존재한다.
6. 남성과 여성 배우자는 각각 한 세트의 염색체만을 가지고 있다.
7.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는 동안 수컷 또는 남성의 염색체는 암컷 또는 여성의 염색체와 융합되거나 섞아지 않고 수정란 안에 공존한다.
8. 생물의 특징은 염색체사에 존재하는 유전자에 의해 조절된다.
9. 유전자는 핵산의 염기쌍의 순서이며 이 순서는 특정 기능을 가진 프로그램의 암호를 담고 있다.
10. 전체적으로 볼 때 생물의 모든 세포는 동일한 유전자를 담고 있다.
11. 유전자 자체는 여러 세대를 거치는 동안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되지만 이따금 다른 형태로 ’돌연변이’되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12. 한 개체의 유전자 전체가 유전자형을 구성한다.
13. 각각의 유전자는 여러가지 서로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대립 유전자’라고 한다.
14. 이배체 생물은 각 유전자를 쌍으로 가지고 있다. 이중 하나는 아버지로 부터, 다른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15. 이형 접합의 경우 두 대립 유전자 가운데 오직 하나만 표현형으로 발현된다.
16. 유전자는 엑손, 인트론 부변 서열 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17. 유전자에는 몇 가지 종류가 존재하는데 일부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의 활동을 조절한다.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이 책 [진화란 무엇인가]는 인류 문화의 하나로서의 종교를 넘어서는 혼란과 광기에 대비하여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 저자 소개 : 에른스트 마이어(Ernst Mayr)
하버드 대학교 명예 교수를 지냈고 다윈 이후 다양하게 발전해 온 진화론을 새롭게 종합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그를 ’20세기 다윈’ 혹은 ’다윈주의의 수호자’라고 부른다. 특히 생물학사와 생물 철학을 공식적인 학문 분야로 개척해 낸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700편에 가까운 논문을 썼으며 30권에 가까운 저술을 펴냈다. 대표적 저서로 <진화론 논쟁>, <이것이 생물학이다> 등이 있다.

 

[ 2010년 5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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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작가는 10월 말, 영국의 어느 흐린 일요일...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두에 선 채, 항구로 들어오는 거대한 화물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다섯 남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일'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다.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아움과 두려움을 노래해보고 싶었다"고...
 
'일'이라는 광대한 주제를 위해 저자는 창고(물류시설)와 초고층 빌딩, 비스킷 공장과 취업 박람회장 등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고 일상의 고된 노동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소외감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무엇이 일을 이토록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하는가?", "우리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어떤 모습이 남을까?"... 이 질문들은 '일'이 곧 한 사람의 인격이 되고, 한 인격의 정체성이 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일상적인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저자가 문명과 사회에 관해 깊고 은근한 통찰에 이르는 것은 저자의 타고난 강점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하여 '일'이 가져다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관점을 제공할 뿐,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저자가 전문적인 철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인류가 자급자족하던 시대에도 '일' 또는 '노동'은 존재했다. 단어상으로 '일'은 직업이라는 느낌을 주고 '노동'은 '노동자'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인간에 의한 의간의 지배, 인간에 의한 착취, 잉여 생산물이 없던 시대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일'을 했고 그 결과물을 취했을 것이다. 소규모 가족단위나 집단에서 '일'은 남자는 사냥, 여자는 가사와 농사로 분화되기는 했지만, 그 집단에서는 스스로 먹고 입고 자고 놀기위한 모든 것을 '일'을 통해 생산했다. 21세기인 지금도 아프리카와 아마존 밀림 등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노동으로 인한 '소외감'도, '행복에 대한 고민'도 없을까?
 
더불어 인간의 자연을 이겨내고 다른 동물들을 이겨내기 위해 점점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게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대군락을 이루거나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통치하면서부터, 잉여 생산물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일'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로 다루고 자신의 '일'을 대신하도록 강제하면서 '의식주'에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부류가 나타났고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이어져 왔다. 영웅담과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아프리카 부족장과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영화 '300'의 주인공), 알렉산더 대왕과 네로 황제, 찰스 2세와 진시왕, 엘리자베스왕과 광개토대왕 등도 '일'과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지배자'이자 '착취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인류의 정신세계는 어떠했을까?
지배자들은 '일'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유희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했으며, 이런 '일'에 대한 태도는 그 후 2,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기독교가 서구를 장악한 이후, 종교인들은 '일의 괴로움'이 아담과 이브의 죄를 씻는 데 어울리는 확고한 수단이라는 교리를 세웠다. 르네상스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노동'의 고귀함을 찬양하는 철학이 대두된다.
 
20세기 들어서면부터 대량생산과 (국제)무역이 증가했고 이제 '일'하는 사람마저 자신이 '일'했던 결과물을 소유하지 못하고 '화폐'를 '일'의 대가를 받은 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화폐'와 바꾸게 된다. 이제 '일'에 대한 정의는 대폭 넓어져 무언가 물리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물리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말하고 행위하는 것도 '일'에 포함된다.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모든 것들이 융합되는 21세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해본다...
Q. 나는 왜 일을 하는가? -> A. "일 = 삶"이기 때문에... 그 '일'이 노가다든, 책상물림이든, 기계조작이든, 조직활동이든...
Q. 일은 즐거운가? -> A. 때론 즐겁고 때론 괴롭고 때론 아프고 때론 힘들다...
Q.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어떤 모습이 남을까? -> A. 다른 일을 찾아야지... 죽지 않는 이상...
 
그나마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성공'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위로가 된다.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오를 가능성은 400년 전에 프랑스에서 귀족이 될 가능성보다 아주 약간 더 클 뿐이다. 오히려 귀족시대에는 그 가능성에 관해 솔직했고, 그런 면에서 더 친절했다. 옛날 사회는 작은 기회를 가지고 미래를 한 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를 위로하고 만다. 어떻게 해야 '일'과 '행복'이 함께할 수 있는지 말하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21세기 자본주의는 변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사람은 '경쟁'에서가 아니라 '협력' 속에서 사람다워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0년 5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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