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끝났다 -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곳, 다시 집을 생각한다
김수현 지음 / 오월의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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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서울시 도시계획심의위원회가 가락시영아파트의 재건축의 종상향을 허용하면서 신문과 인터넷, SNS에 이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다. 종상향 결정이 있은 후 주변 아파트의 매매 호가가 급등하고 재건축이 추진 중인 단지에서 종상향에 대한 기대심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서울시의 결정이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초 내걸었던 부동산,주택정책에서 벗어난 조치라고 비판하고 있고 더불어 박원순 시장의 시정개혁 싱크탱크로 불리는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김수현 교수에 대한 찬반과 비난도 드세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실패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높다.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이번 결정에 박원순 시장이나 김수현 교수가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 사전보고를 받아 승인한 것인지, 종합적인 검토결과가 나왔는지 정확한 정보를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실제 인근 주택과 재건축단지가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 만큼 박시장과 김교수의 답변과 해명이 필요할 것이다. 서울시 대변인은 "다른 재건축 단지에 또 다시 적용하지 않는다"라고 해명했지만, 그것으로는 일반시민들과 비판적인 전문가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하지 않을까? 박시장과 김교수의 해명과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박시장과 김교수가 이번 도시계획 결정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와 상관없이, 미리 보고받고 승인했다고 하더라도 박시장과 김교수는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그 이유는 박시장이 정책공약으로 내세운 '임대주택 8만호'가 현재 서울시 재정 여력으로 쉽지 않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 있어왔고, 박시장과 김교수의 시정 정책 추진과정이 '민관 거버넌스'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 도시계획 결정 이전에 부동산,주택정책에 강경한 입장을 가진 환경단체와 부동산 전문가, 진보정당 관계자와 함께 논의하는 절차를 거쳤다면,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하더라도 최종 결과는 이번 종상향 결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박원순 시장의 기존 경험으로 볼 때 박시장이 주거복지 정책이면 몰라도 부동산,주택정책에 대해 심도있게 고민,연구해보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김수현 교수의 의견이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따라서 김수현 교수가 생각하는 부동산,주택정책을 알아보는 것은 향후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동산,주택정책을 미리 예상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먼저 다른 이야기로 애기를 돌려보자면, 국내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으로 가계대출이 1,000조원(자영업자 100조)을 넘어섰다. 채무자들이 년간 대출이자로 지급하는 금액은 이자율을 5%만 적용해도 50조원이 넘는다.(가계대출 중 주택담보대출이 600조원 정도이니 나머지 대출이자는 5%를 훨씬 넘어설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GDP 1,300~1,400조원 중에서 우리나라의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를 넘으니 GDP의 약4% 정도를 이자비용으로 은행에 납부하는 셈이다. 1년간 민간소비지출액 600~700조원을 기준으로 하면 전국의 가정이 평균 지출액에서 8% 가량 줄어드는 것이고...
 
매년 50조원 이상을 은행에 이자로 납부하는 상황에서 민간소비는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소비 축소는 그대로 제조업, 상업, 서비스업 등으로 전파되어 산업생산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여기에 경제활동인구 중 비정규직 비율 50%과 빈부격차, 양극화까지 감안한다면 아무리 APT나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더라도 그 주택을 구매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수 없다. (참고로 은행들의 주식 중 외국인이 보유한 비율은 우리은행(약9%)을 제외하면 평균 70%가 넘는다. 8개 상장은행의 2011년 평균 연간 순이익이 8조원 가까이 된다 하니 그 중 5조원 가까이를 외국인에게 배당할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문제가 한국에서 중요한 이유는 한국인 가정의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할머니든 아버지,어머니든 기성세대가 소유하고 있는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이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부동산 문제는 전국민의 민감한 관심사안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은 또한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아직도 높기 때문이다. 또한 건설업, 금융, 보험, 가구, 중개업, 인테리어, 이사 등 적지않은 업종이 부동산에 연관되어 있다.
 
지난 1997~1998년  IMF 사태 이후 부동산 값은 가파르게 올랐다. 10년 이상 기득권층과 중산층은 너도 나도 부동산을 소유하려고 덤벼들었고 부동산을 통해 시세차익을 얻으려고 동분서주했고 그 결과 부동산 가격은 거침없이 올라버린 것이다. 당연히 그 이전부터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던 이들은 이러한 분위기 덕에 앉아서 수억, 수백억씩 시세차익을 얻었다. 부동산 세금이 턱 없이 작으니 기득권층은 세금은 별로 납부하지 않은채 대형 아파트와 주상복합으로 이사하여 떵떵거렸다. 무한경쟁에 일찍 뛰어든 자들은 아파트와 토지, 농지를 사고 팔아 엄청난 폭리를 취했고 뒤늦게 뛰어든 중산층 대부분은 대출만 잔뜩 받아 '하우스푸어'로 전락했다. 뛰어들지도 못하는 서민들은 박탈감과 허탈감에 분노에 휩싸여 버렸고... 한마디로 '부동산에 인질로 붙잡힌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저자는 "드디어 부동산은 끝났다"라고 선언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지난 40년간 어떤 노력을 통해서도 꿈쩍하지 않던 '부동산 불패신화'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인구와 산업구조가 고도성장기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에,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 1~2인 가구 증가가 현실이 되었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 변화와 지속가능한 정책이 가능해졌음을 기회로 인식한다. 부동산이 우리를 겁박하고 위협하던 시대는 끝냈고 부동산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던 정치인, '돈 벌 기회를 보장하라'는 애기를 시장주의로 포장하던 언론, '믿고 싶은 것'을 과학이라 애기하는 전문가... 이들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 올바른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일에 나설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우리 부동산 시장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수치와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외국의 부동산 시장과도 비교하면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 상황을 더욱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 2010년 기준으로 오피스텔 등을 제외한 정부의 공식적인 주택보급율은 전국 101.9%, 서울 97.0%이다. 기타 주거지는 약3%... 선진국의 주택보급율이 110~120% 정도이니 한국의 경우에도 아직 주택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 주택의 형태는 아파트가 전체의 47%정도. 서울의 경우는 아파트,단독주택,연립주택이 41%, 37%, 22%...
- 주택 점유형태는 자가주택 61%(서울은 51%), 민간임대 35%, 공공임대 4% 수준이다.
- 주택의 공시가격으로 보면 1억원 이하 주택이 60.8%, 6억 초과는 1.6%(22만 가구)
- 2000년~2006년 주택가격 상승율은 20%대로 OECD 평균인 40%대의 절반에 불과하다.(??)
- 청약통장 가입자 : 2000년대 600~700만 구좌, 2008년 이후 1,500만 구좌
 
저자는 부동산이 이동할 수 없는 특성, 소비재이면서 투자재, 수급균형에 걸리는 기간의 장기화,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는 생존기능 등의 특성으로 인하여 부동산이 일반 상품처럼 무작정 시장에 맞길 수 없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부동산이 너무 높이 오르거나 급격하게 등락하는 것은 사회,경제,정치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정부가 개입할 수 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부동산 시장을 결정하는 데에는 세 가지 흐름, 즉 장기 변수로서 인구와 산업구조의 변화(1), 중기 변수로 주택 자체의 과잉 공급과 과소 공급을 반복하는 속성(2), 단기 변수로 현금유동성이나 정부 정책 변수(3)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함께 외국의 부동산 시장흐름을 비교하면 저자는 한국의 경우 주거수준이 아직 열악하고 한국식 전세제도로 LTV 비율이 낮기 때문에 일본식 장기 거품 붕괴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지만 3~4년 정도의 주택가격 하향 안정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제2부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각종 부동산 정책들의 효과와 한계를 살펴본다. 세금, 금융, 분양가, 공공임대주택 등 한 번쯤 들어봤고, 또 누군가 만병통치약이라고 했던 그런 정책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따져보고 있다.
 
저자는 부동산 보유세를 현실화시키고 종합부동산세를 원래 취지대로 복귀해야 함을 주장한다. 또한 양도소득세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으며 주택임대소득세가 없는 것은 불합리함을 지적한다. 부동산 세금은 아주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부동산 세금정책이나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등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키'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부동산에 대한 금융정책 역시 부동산 정책의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정부가 이를 시행할 자금과 땅이 현실적으로 부족함을 지적한다.(그렇기 때문에 재개발,재건축시 임대의무비율에 주목한다.) 주거환경 개선을 위하여 도시재생사업은 필요하나 서민들은 ?겨나고 개발자와 소유자만 이익을 보는 뉴타운사업을 중단해야 함을 주장한다. 공공임대주택과 소형 분양주택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중장기적으로 부동산이 하락하는 추세에 따라 월세전환이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민간임대주택을 현실화해야 함을 주장한다.
 
제3부에서는 외국의 부동산 정책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영국, 독일, 일본, 싱가포르, 미국, 북유럽 등 좋고 나쁜 사례들의 진짜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장단점 비교를 통해 대한민국의 상황을 더 자세히 따져보고 있다.
 
저자는 외국의 주택 정책에서 배울점으로 자가 소유의 확대가 전체적인 추세임을 확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임대주택사업에 정책역량을 집중해야 함을 지적한다. 하지만 자가주택이 안정적인 노동시장과 사회안정이라는 구조에서 가능했고 전세계적인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사회보장체계를 고려하여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정책수립에 주의해야 함을 주장한다. 결국 자가 - 민간임대 - 공공임대가 적정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기타 주거복지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 제4부는 대한민국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모색하는, 즉 희망을 찾는 과정이다. 바뀐 시장 환경 속에서 우리식 부동산 정책 패러다임을 찾고, 그 정책 패키지를 정립하려는 것이다. '한방'에 해결할 방법은 없다지만, 원칙을 정립하고 상황 변화에 대응하는 패키지를 갖춘다면 머지않아 달성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여러 실천지침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모두가 내 집에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내 집이 아니어도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해야 함을 지적한다. 그는 주택 정책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네 가지 원칙으로 마약과도 같은 건설업 경기부양을 단절, 흔들려서는 안되는 세금 정책, 규제가 아닌 규범으로서의 금융건정성, 개발이익 환수와 나누기를 제시한다. 기타 주요사항으로는 서민들의 보금자리이자 '싼 집'의 가치를 새로 발견하여 이를 보호하는 정책을 펼쳐야 함을 주문한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 그는 2002년부터 참여정부에 참여하여 청와대 국정과제비서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환경부 차관으로서 2003~2005년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다. 이 때 그는 2003년의 10.29 대책과 2005년 8.31 대책을 직접 입안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올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박원순 후보의 정책자문단으로 활동한 후 박원순 시장이 당선된 후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생각과 주장은 앞으로 3년간 서울시의 주택,주거정책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읽어볼 가치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김교수를 직접 대면한 것은 올해 5월 어떤 주택정책토론회 자리에서였다. 당시 김교수의 강연은 정부관료나 보수언론, 학자, 전문가들의 '선동적인 경기부양론'도 아니었고 진보정당의 '2% 부족한 주거정책'도 아니었기에 신선하게 들었다. 그래서 그 이후 [저성장 시대의 도시정책]을 읽었던 것이고 서울시장 선거가 끝난 직후인 지난 달에 이 책도 마저 읽었다.
 
책을 집어 들면서 먼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담당한 사람으로서 당시의 부동산 폭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참여정부 5년간 주택가격 상승율이 23.9%(강남은 64.2%)였음을 밝히고 나름대로 노력했음에도 참여정부 시기에 부동산 폭등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전세계적인 거품 시대를 참여정부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부동산과 유동성과의 관계가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졌지만 그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이를 인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해 다 함께 거품에 휘말렸으니 큰 잘못은 아니지 않냐고 우회적으로 변명한다.
그는 또한 정치권과 언론, 학자, 전문가들이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그린벨트를 풀어서 공급을 늘리라고 여론을 선동하고 참여정부를 압박했고 진보정당과 진보세력도 분양가 상한제, 원가 공개, 후분양제, DTI 규제 지연 등 엉뚱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참여정부의 정책이 흔들렸다고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사방 어디에도 우군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 와중에서도 부동산 시장 투명화, 종합부동산세 도입, 국민임대주택 47만호 착공, 매입 임대주택 도입 등의 기본 인프라를 참여정부의 성과로 내세웠다.
 
이 책을 통해 김교수의 부동산 시장이나 정책에 대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 전반에서 설명되어 있는 김교수의 지적과 주장하는 바에 대해 상당부분 공감하는 편이다.
그리고 뉴타운 개발 포기와 도시재생사업으로의 전환, '싼 값의 주택'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 보유세에 대한 재평가, 양도소득세의 형평성 지적, 주택 임대소득세 신설과 민간임대사업에 대한 현실화, 공공택지 조성의 성과, 자가 - 민간임대 - 공공임대의 적정화에 대한 아이디어 등은 이 책을 통해 얻은 바가 크다.

 

물론,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 나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이견이 있다.
첫째는 지난 2000년대의 부동산(주택) 가격 상승율에 대해서이다. 저자는 2000~2006년 OECD 통계를 인용하면서 김헌동, 선대인씨등이 과도하게 부동산 거품을 주장한다고 비판했지만, 실제 다른 여러가지 분석자료와 통계를 비교해보면 저자의 인식이 안이하다고 생각된다.
아래 자료 <아파트 매매가격지수 추이>는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김광수소장이 발간한 [현실과 이론의 한국경제 III]에서, <1~4차 부동산 가격 폭등기>와 <4차 부동산 투기 시기 집값,땅값,물가 변동율>은 손낙구씨의 [부동산 계급사회]를 인용한 것인데 두 자료 모두 2000~2005년의 아파트 가격 상승율이 전국 평균 50%, 서울은 75%에 달하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에 2006~2007년 부동산 폭등까지 감안하면 훨씬 높은 상승율로 나타난다. 

 

 

  
둘째는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와 과 부동산 폭등에 대한 안이한 인식에 대해서다. 저자는 주택가격에만 관심이 있지 토지, 상가, 오피스 등 부동산 전반의 가격 폭등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는다. 실제 저자가 정부의 공공택지에 대한 장점을 주로 부각했지만, 정부/공기업이 수 십년간 진행해온 공공택지 개발사업의 경우 토지값이 상승한 만큼 수 많은 땅부자들에게 '불로소득'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부관료와 공기업 임원들의 부정부패를 감안하면 '불로소득' 뿐 아니라 '부정한 이득'까지 판을 쳐온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다.(MB 정부의 인사청문회를 기억하면 얼마나 많은 정치인,관료,언론인,학자들이 위장전입과 농지취득 등을 통해 부정한 행위와 부당이득을 취해 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여기에 더하여 참여정부 집권기간 동안 물가상승율과 대부분 가정의 낮은 소득증가율을 고려하면 참여정부 집권기간 뿐 아니라 수 십변 동안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통해 '부익부 빈익빈'이 고착화,심화되었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오죽하면 손낙구씨는 자신의 책의 뒷표지에 아래와 같은 '부동산 계급사회' 분류도를 그려놓았을까...

 

 
셋째는 토건정책이 부동산과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 부족했다. 아래 참여정부 5년간 아파트값과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시군구를 보면 이해하기 쉽다. 전국의 땅값이 참여정부 시기에 폭등한 이유는 참여정부가 국토균형발전을 토건방식을 위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부재와 정책역량 부족 때문일 것이다. 행정수도이전, 혁신도시, 기업도시, 신도시개발이 인근지역의 땅값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몰랐을까 싶다...
 
넷째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없고 그 영향과 대책을 향후 전망에 반영하지 못했다. 이명박은 서울시장 재임시 부동산과 건설업 부양을 위하여 뉴타운개발을 실시했고 후임인 오세훈시장에까지 이어졌다. 뉴타운 개발은 강남과 서울 일부지역에 국한되었던 부동산 값 폭등을 서울과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시킨 대표적인 악성 정책이었다. 결국 지금은 그 효과없음과 폐해를 대다수가 인정하고 있지만 뉴타운 정책으로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는 어떠한 사과도 없고 책임지는 자도 없다.

이명박은 2007년 12월 집권 이후 부동산 값을 지탱하기 위해 온갖 부양책을 남발하였고 공기업을 동원하여 미분양 아파트를 세금으로 매입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4대강 죽이기'에 나서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한데다가 개발정책을 남발하여 인근지역 땅값을 폭등시켰다.
 
다섯째는 공공임대주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수 많은 저소득층에 대한 주거복지정책이 누락되어 있다. 저자는 공공임대주택 확충, 민간임대주택 현실화, '싼 집'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 등을 정책으로 제시했지만, 임대주택의 시장 임대료도 납부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을 위한 단기,중기 정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주거복지에는 임대료 바우처와 겨울철 난방비 지원, 전기/수도료 지원 등이 포함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통계와 지원예산이 다루어져야 한다. 

 

여섯째는 정책 준비, 기획, 결정, 집행, 평가의 프로세스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기업과 정부만의 정책 결정과 집행으로 올바른, 또는 적절한 내용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민간의 의견과 요구를 수렴하여 정책을 준비하고 기획하고 결정, 집행, 평가하는 전 과정에서 민간, 특히 시민&시민사회단체와 반대의견을 가진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거버넌스'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에 참여한 경력과는 다르게 자신이 제시하는 부동산 정책에 따른 재정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모든 정책수립과 집행에는 반드시 재정정책, 소요예산에 대한 데이터가 마련되어야 현실성이 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의 결론은 김수현 교수가 자문하고 기획하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동산,주택정책이 적지 않게 불안하다는 생각이다. 김교수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을 떠나 김교수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부동산,주택 정책은 상당히 '정치적'인 것인데 김교수는 참여정부에서 이미 '정치'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고 거버넌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에 더하여 박시장마저 '정치'와 '거버넌스'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고려할 때, 앞으로 부동산,주택 정책이 어떻게 결정되고 집행되고 평가받을지 걱정이 크다.

박시장은 혼자만의 시장이 아니다. 민주당과 진보정당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수 많은 지지자들이 스스로의 의지와 선택으로 만들어낸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가 실패하면 나머지도 실패하는 셈이다. 서울시민들의 이해관계와 희망이 그의 어깨에 달려있다...

 
[ 2011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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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 지음, 김상우 옮김 / 동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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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26 서울시장 선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하였다. 나 역시 야권단일후보 경선 때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 무소속 박원순 후보간의 TV토론, 본선 때 한나라당 후보 나경원과 야권단일후보 박원순의 TV토론을 지켜보면서 '말'과 '수사'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여기서 '수사'는 단순히 '말'이나 '대화', '연설' 뿐 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이나 의견을 표현하는 각종 방식과 매개를 뜻하는 개념이다. 공부모임 참가자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지난 10월 31일 이 책을 가지고 토론한 바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려 할 때에는 곧잘 막히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사용하는 단어가 문구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같은 말이나 문구인데도 각자가 사용하는 쓰임새나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울리고 대화하는 집단이나 계층이 달라지면서 자기들끼리만의 의사소통 방법이 생겨나기도 한다. 노동자나 농민들이 사용하는 단어, 직장인들이 사용하는 단어, 법률가나 의사들이 사용하는 단어, 정치가나 관료가 사용하는 단어도 다르고 직업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기도 하다. 학자들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단어도 물론 다르다. 그리고 TV나 라디오 등 미디어를 자주 접하는 사람들은 그 미디어에 따라 한동안 '유행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특정한 상황이나 개념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거나 알아듣지 못할 경우 서로의 의사표시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오해하는 경우도 많다. 오랜 시간 서로 이야기를 하면 결국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야기하거나 설명하는 시간이 짧게되면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자리, 관계에서는 의사소통이 불명확하더라도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이나 어떤 내용을 꼭 설명해야 하는 입장이 되면 문제가 달라질 것이다. 상대방에 따라, 상황에 따라, 내용에 따라, 주어진 시간에 따라 몇 명, 몇 백명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면, 내용을 소통하고 공감하려면 표현하는 측이 좀 더 세심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2010년 튀니지에서부터 시작되어 올해 리비아까지 이어졌고 지금도 뉴욕에서 진행 중인 '재스민 혁명'.. 튀지니와 이집트 혁명의 승리에는 소셜 미디어의 힘이 결정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튀니지의 전태일로 불린우는 부아지지의 분신을 전 세계에 알리며 운동의 불길을 당겼고, 인터넷이 막힌 상태에서도 시민단체들은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해 연대를 이뤘다. 이번 혁명은 소셜 네크워크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문화혁명인 것이다.

이제 대항 담론과 거친 연설만으로 혁명이 가능하던 시대는 지나간 것이 분명하다. 포스팅 하나, 트윗 한 줄로 논쟁이 시작되고, 아이폰, 안내방송, 광고판 등의 메시지가 사람들을 거리에 나서게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은 모이고 흩어지며 혁명을 창조해낸다. 이데올로기, 경험, 문화, 연령 등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없는 중심 없는 무리가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는 다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4대강, 복지삭감, 전세난, 물가불안정, 한미FTA, 부정선거 등의 사회적인 문제가 폭발되는 상황에서 활동가들의 창조성이 끊임없이 필요한 이 시대... 세상을 바꾸려는 활동가들은 어떤 방법으로 준비하고 대응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하게 할 것인가?

이 책의 저자 간디오는 21세기 급진주의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전달하는 ‘방식’ 즉, ‘수사’를 꼽는다. 세상이 바뀌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하며,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활동가와 조직가의 수사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활동가들에게 필요한 언어적, 비언어적 전략들을 제공하기 위해 쓰여졌다.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연설하고 논증하고 설득하고 글을 쓸 때 바로 적용 가능한 기본적인 수사 전략을 제시하는 것이다. 전달하려는 ‘내용’에 몰두하느라 전달 ‘방법’에 소홀했던 이들, 더 나은 소통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자의 주장과 근거, 이론적인 배경과 실무적인 아이디어와 전술들은 어느 정도 수긍도 가고 활동가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국의 활동가들이 번쩍이는 혜안을 얻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나 '수사학' 이론, 전술을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활동과 문화가 한국의 그것과는 다를 뿐 아니라 저자는 책 속에 구체적이고 다양한 사례보다 이론에 가까운 설명과 주장을 더 많이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의 글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것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중'과 '중심 없는 운동'이다. '다중'과 '중심없는 운동'이라는 개념은 2011년 한국사회의 모습을 상당부분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는 민중, 대중, 노동계급, 다중이라는 개념의 재정립. 저자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를 인용하면서 21세기에 맞는 집단들의 개념으로 '다중 multitude'를 제시한다. 그들은 "21세기 현재의 급진적 시대가 '공통'을 통해 서로 접속되어 중심 없이 자율로 행동하는 집단, 민중, 연합에 의존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진작한다"고 말한다. '다중'은 '민중', '대중', '노동계급'과 같은 이전의 전통적 개념을 새롭게 개념화한다. '민중'은 사람들을 정체성이 하나 밖에 없는 단일체로 총체화하고 '대중'은 사람들을 차이가 배제된 획일체로 환원하며, '노동계급'은 노동과 관련된 정체성만 있는 특정한 유형을 지칭할 뿐이다. 이러한 기존 개념은 결국 권력관계와 사회현실을 창조하는 다수의 활동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중'이 인정하는 것은 다수의 차이이며, 민주적 삶의 형식과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를 위한 공통의 투쟁이며, 소통에 의해 창조된 세계를 창조하는 활동이다."는 것...

두번 째는 '중심 없는 운동'이다. 이는 단 하나의 운동이 있는게 아니라 상호 접속된 다수의 운동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은 과거와 달리 전체의 운동의 상징하고 조직하는 단 한 명의 상징적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급진주의 소통의 생명력은 다중의 모세혈관 곳곳에 네트워크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단 한 명, 단 한 집단(예를 들어 전위당)이 행동과 사회 전체 사이를 매개하는 책임을 지지 못한다. 이제는 다수의 사람, 생각, 운동이 함께 진행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인류사회 전체에서 발견되는 '반권위주의', '탈권위주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중심 없는 운동', 그리고 반권위주의의 성공은 개인의 책임감에 따라 좌우된다. 즉 활동가 저마다 책임지고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공동대변인으로 선임된 진보신당 전 노회찬 대표. 그는 정치판을 뒤엎는 촌철살인의 어록을 갖고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이다. 2004년 대선에서는 “불판을 갈아야 한다”와 같은 신선하고 날카로운 비유를 던져 그를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감동시켰고, ‘웃음화법, 애드리브, 비유의 달인’ 등의 수식을 얻으며 예상보다 많은 표를 획득했다. 이후에도 그는 첼로연주, 점심 번개, 친절한 트위터 활동 등으로 ‘노동운동은 거칠다’라는 편견을 깨고 부드러운 진보의 재탄생을 알리고 있다. 그가 말하고, 행하고, 느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은 바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수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과 효과를 기억하는 활동가들은 많지 않다. 수사는 억지로 꾸미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보다는 행동이다”, “메시지를 다듬는 것은 기만이다”, “고함과 함성은 급진적 변화의 진실한 표현이다”와 같은 편견이 자리 잡고 있어 소통의 ‘방식’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미약하다. 

이 책은 이러한 ‘신화’를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1장. [수사는 행동이다]에서는 우선 수사학의 기원인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사가 소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서술한다. 원래 수사학은 “설득하고, 추론하고, 분석하고, 나아가 현실을 창조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는 활동가들의 목적과 충분히 연결된다. 
실제로 저자는 2000년 4월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항의운동 장면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엿 본 후에 본격적으로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활동가와 조직가들을 만나며 ‘수사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68혁명 이후 등장한, 소통과 수사를 이용해 세상을 바꾸는 ‘신급진주의’이론을 확장, 실천해왔고, 집회나 모임에서의 연설, 토론, 논증을 분석해왔다. 그러면서 활동가가 어떻게 자신의 소통 능력을 개선해 냈는지 관찰하며 이 책까지 집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현실을 비판하고 지금과 다른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는 책은 많다. 그러나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 어떤 방식으로 함께 가야 하는지 일러주는 책은 흔치 않다. 이 책은 이런 고민을 하던 활동가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목적으로 출간한 것이다. 활동가들이 택한 운동방식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수사학 실용서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문장과 더불어 사파티스타, 애비 호프만, 네그리, 들뢰즈, 1999 WTO, FTA 반대 운동 등 인물과 사건의 풍부한 사례를 들며 이해를 돕는다.

저자의 '수사'에 깔린 논리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수사를 바꾸면 소통이 바뀐다. 소통을 바꾸면 경험이 바뀐다. 경험을 바꾸면 사람들의 성향이 바뀐다. 성향을 바꾸면 사회에 대한 심대한 변화의 조건이 생긴다."

2장. [급진주의자들이 갖춰야 할 수사의 기본 원리]에서는 대중연설, 글쓰기, 설득, 논쟁, 권유 등 다양한 수사 전략을 분류하여 각 상황에 필요한 지침을 제시하며 그 효과까지 예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다양한 방식의 운동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메시지 전달방식은 글쓰기와 말하기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한가? 목표는 무엇인가? 청중은 어떤 사람인가? 연설장의 상황은 어떤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주도면밀한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가령, 신문, 전자우편, 문자, 웹 등에 발표하는 ‘글쓰기’와 대중 앞에서 하는 ‘연설’은 분명히 다르게 준비해야 한다. 눈으로 읽는 글에서는 무엇보다 ‘첫 문장’에 신경을 써야 하는 반면, 귀로 듣는 연설의 연설문에는 숫자나 어려운 용어를 넣지 않는 게 좋고 몸을 활용하면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민중생존권 쟁취하자' '군사독재 타도하자' '신자유주의 철폐하자' 등의 구호는 자신들만 이해하고 대중들이 낯설어하게 된다. 
계급모순, 노동의가치, 자유주의자, 부르주아정권, 반자본주의.... 등도 마찬가지... 

3장. [언어로 세상 바꾸기]는 언어가 곧 생각을 바꾼다는 논리에서 시작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언어로 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바꾸면 생각도 바뀔 수 있다. 먼저 저자는 활동가들은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것이 자신이 목표한 운동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자신이 주로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설득력 있는 연설을 하는 활동가들은 어떤 단어들을 택하는지 관찰할 필요가 있다. 언어의 선택은 곧 가치와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에 따라 정치적 선택, 감정의 반응, 사회적 행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경찰을 ‘짭새’라는 하는 것은 경찰의 권력에 대항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의 언어를 바꿔라, 그러면 사람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바뀐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사람들이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 바뀐다. 사람들의 방식을 바꿔라, 그러면 사람들의 믿음, 가치, 태도, 행동이 바뀐다. 이 모든 것을 바꿔라, 그러면 사회의 방향이 바뀐다.” 

또한 저자는 권력을 위해서 사람들의 이해를 곡해하거나 혼동시키는 언어를 분석해, 본래의 의미를 알리는 것 역시 활동가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미국 전쟁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부수적 민간피해’, ‘정밀무기’, ‘민주주의 확산’ 등과 같은 단어에는 미국의 전쟁은 인간적이며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합리화가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아나키즘’, ‘공산주의’와 같이 부정적인 의미가 고정화되어 있을 경우에는 이 틀을 깨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시효성을 잃은 단어 대신 ‘수평주의’, ‘탈중심화’, ‘비물질적 노동’, ‘프리거니즘’, ‘해킹행동주의’ 등과 같이 다중의 시대에 걸맞는 단어를 창조하고 사용하는 것 역시 활동가의 역할이다. “언어를 탐구하여 더욱 확신에 차고, 더욱 독립적이며, 더욱 자기를 긍정하는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

‘수사’와 마찬가지로 몸의 모습인 ‘매무새’ 역시 활동가들에게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외모를 가꾸고, 몸을 단장하는 것은 흔히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능한 소통자는 연설장이나 모임의 분위기와 자신의 외적 효과를 맞출 줄 안다. 사람들과 소통하기 유리한 매무새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4장. [몸으로 하는 혁명]의 많은 부분은 자신의 몸이 혁명의 도구임을 인식하고 그것을 활용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몸은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곳이기에 수사적 효과가 아주 크다. 예를 들어 완전한 채식주의자의 마른 몸은 지속가능한 생태, 자연 존중, 윤리적 소비 등을 연상하게 한다. 의도하지 않더라도 활동가가 앉고, 서고, 행하는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이 수사인 것이다. 또한 저자는 몸이 글이나 말보다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글이나 말주변에 자신이 없는 활동가들이라면 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좋다고 제안한다. 메시지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기, 노동자들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기, 거리극이나 플래쉬몹 연출하기 등도 효과를 볼 수 있는 수사 전략이다.

5장. [21세기 신급진주의 수사]의 특징에 대해 언급한다. 급진주의 역시 ‘다양성 인정, 복수의 역사 끌어안기, 복합적인 질문 선호, 대결적인 미래 그리기’ 등을 내걸며 중심없는 공동체, 맥락을 횡단하는 소통, 새로운 형태의 지도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네크워크를 활용한 수사 전략은 신급진주의에 유용하다. 
독립매체 만들기, 1인 미디어,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기 등은 신급진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좋은 예다. 우리는 이미 촛불을 통해 이 효과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소통과 현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수사학을 활용할 것. 
저자의 이 주장을 새기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욕망하며,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상상하고, 창조할 때 사람들이 꿈꾸는 다른 세상은 가능할 수 있다.

[ 2011년 1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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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행복하게 - 자연과 공동체 삶을 실천한 윤구병의 소박하지만 빛나는 지혜
윤구병 지음 / 휴머니스트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여러가지 책을 읽다보니 출신과 학력에 상관 없이, 아니 보통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그것들을 가차없이 버리고 농촌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무엇이 그 분들을 자연으로, 농촌으로 향하게 했을까?
가난과 행복에 대해 교과서와 언론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법정스님이 소개해주신 사람들만 해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피에르 라비 [농부 철학자],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피터 캐디 [핀드혼 농장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왜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가끔 생각한다. 가난하기 보다 여유롭게, 불행하기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 역시 '가난하고 싶지 않지만, 행복하고 싶은' 많은 보통 사람들 중의 하나다. 이런 마음은 거의 99.9%의 보통 사람들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2011년 12월... 대한민국은 춥고 외롭고 답답하다. 먹고 살기 바빠 서로를 다독거리기는 커녕, 제 갈길 가기도 바쁜 형편이다. 대를 이어 평생 '희망'이란 두 글자에 기대감을 높이던 99%의 사람들에게 21세기 한국사회에는  ‘한숨’만이 있을 뿐이다. ‘돈’과 '자존심'만을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삶의 허망함을 몸으로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냥 이대로 현실에 적응하며 지쳐가야 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삶의 전환점을 찾아야 한다. 늘 언젠가 언젠가는 하면서 지나온 세월이 한두 해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이 나는 지금이 그 때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방향 중의 하나가 다른 이들의 삶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이다.
슬플 때 생각을 다잡고, 기쁠 때 마음을 가다듬고, 승승장구할 때 성찰케 하고, 어려울 때 용기를 북돋는 시대의 어른들이 쓴 산문. 동시대 사람들과 몸과 마음으로 호흡하면서, 그 생각과 글이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면서 매번 펼칠 때마다 그 깊이가 우러나오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 절실하다. 우리의 내면에 ‘등불’처럼 가슴 속에 오롯하게 넣어둘 생각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은 누가 어떻게 담고 있을까?

저자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예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은 생각과 마음으로 자신을 가꾸고 실천하는 체험, 경험,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남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1995년에 정년이 보장되는 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났고 2008년에는 모든 공직(사단법인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사단법인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사단법인 공동육아연구회, 법인인 될 민족의학연구소 이사장)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명의로 된 모든 재산을 공공의 목적에 쓰이도록 사회에 환원했고, 함께 생활하던 변산공동체에 초가삼간을 지어 지내며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는 40여 년 간 이어온 삶을 뒤로한 채, 여기저기 떠도는 방랑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자신이 설립했던 보리출판사가 경영난이 심하여 잠시 경영을 맡고 있다.
“죄다 놓아 버리자, 손에 쥔 것도 머릿속에 든 것도 다 놓아버리고 바람처럼 떠돌거나, 돈 없는 세상에 ‘짱박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가 핫바지 방귀 새듯이 그렇게 가자.”

이 책은 저자의 삶, 특히 그의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변산공동체와 그 이후의 10여 년에 대한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그의 삶, 말, 행동은 그 자체가 철학이고 교훈이다. 삶에서 철학하는 사람이다. 즉 그에게 철학은 실천이다. 이것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다.
그는 자연과 인간, 생명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한결 같은 실천적 삶으로 일깨워 왔다. 경제적으로 잘 살기에 몰입한 이후, 그 폐해가 드러난 이 시대에 결국은 우리 모두의 생존의 문제가 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여러 생명체가 더불어, 함께 살아야 나도 우리도 사는 것이다.”
그가 10여 년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 마치 예언처럼 들어맞는다. 그는 본질을, 삶의 본질을, 생명의 본질을, 생명의 원리를 궁구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로서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고, 가르쳤으며, 또한 스스로의 삶에 적용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 중에도 자신의 주장(사상)을 가리고 아꼈고 키웠고 나눴다. 그의 철학은 실천이었고, 세상을 껴안았고, 그것을 세상과 나누고 베푸는 철학이었다. 
그의 공동체 생활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오히려 핍진했다. 그러나 그는 행복했다. 마음이 지시한 방향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저자가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1980년대 이후, 1996년 변산의 농촌에 내려가 공동체를 꾸린 뒤 오늘까지, 그의 생각에는 일관된 것이 있었다. 바로 공존이요, 상생이며, 유기적 생명관이다. 그것은 거창하게 말하면 자유시장경제로 세계화를 통한 부의 축적을 향해 치달리는 신자유주의 사회의 현대 도시의 삶이 지향해야 할 새로운 모멘텀에 관한 것이다. 굳이 거창하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보통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그들의 불행을 뒤집을 수 있는 '혁명'이 될 수 있다.
물질 중심의 가치관, 경쟁 중심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개인과 국가간 빈부 격차의 확대, 갈등은 심화되고 우리의 삶의 질은 점차 피폐되었다. 도시 사회는 소유욕과 탐욕, 병적인 욕망으로 인간을 내몰았다. 그리스 철학을 공부했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했으며, 사람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한 중에도 자신의 주장(사상)을 가리고 아끼고 키우고 나눴다. 그의 철학은 세상의 본질을 읽는 철학이다. 생명을 껴안는 철학이다. 나누고 베푸는 철학이다. 
그는 그것을 고단한 삶 가운데서, ‘좀 더 가난하게, 좀 더 힘들게, 좀 더 불편하게’ 살면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요한 것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원형적 삶, 나눔의 삶이다. 세상의 여러 성인들, 부처와 유마힐, 성 프란체스코가 그랬던 것처럼,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고단한 삶으로 나아가 ‘인류의 생명창고’인 농촌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생명의 시간 속에서 자연과 사람과 더불어 땀 흘리며 공존과 상생의 기본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합니다. 땅을 되살려내야 하고, 우리의 인간성을 되살려내야 하고, 그러면서 공동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공동의 울타리가 되어 먹을 때 같이 먹고 굶을 때 같이 굶자는 원리로 소유욕과 탐욕을 근절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내가 저자처럼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여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또 다른 생각...
'가난'과 '행복'... 어떤 삶이 '가난한' 삶이고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국어사전에서 '가난'은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못하고 쪼들림. 또는 그런 상태"로 정의한다. '빈곤'도 비슷한 개념.. 개인이나 가정의 살림을 차려서 사는 일이 넉넉하지 못하다라는 의미인데, 결국 사전적인 개념은 '의,식,주'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얼마나 옷이 넉넉해야, 얼마나 풍족하게 먹어야, 얼마나 좋은 집에 살아야 가난하지 않을 것일까?
 
현대사회에 들어서면 '살림'이라는 개념 속에 의,식,주 이외에도 문화생활과 사회적 교류(미디어,통신), 교육 등 여러가지 추가적인 요소가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마찬가지일 수 밖에 없는데, 어느 정도의 문화생활, 미디어, 통신, 교육이 이루어져야 '가난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물질적으로 부족하면, 즉 가난하면 반드시 '불행'할까? 그리고 과연 '가난'은 물질적인 '가난'만 있을까? 정신적인, 또는 심리적인 '가난'은 없을까? 우리가 '가난'하다고 느끼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이 과연 물질적인 이유 때문인가? 아니 물질적으로 풍족하다고 반드시 행복할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언제일까 생각해본다. 가난을 벗어나는 것이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 모두가 느끼는 바다. 지금의 40대가 10대이던 시절, 즉 1970년대에 한국의 물질적인 수준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하지만 그 시절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반드시 '불행'했었나? 그것은 아니다.
행복이 삶의 과정이고 목적이라면, 나는 가난이 행복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대신 나의 살림살이와 타인의 살림살이,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 나의 '행복감'이 영향을 받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혼자서 무인도에서 사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P.S) 올해 4월 모 언론사에서 저자를 인터뷰한 기사를 인터넷에서 발견했다. 이 책을 출판한 것이 3년 전... 올해 저자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기 때문에 여기에 옮겨보았다.
 
---------------  <인터뷰> '농부 철학자' 윤구병 보리출판 대표  ----------------- 2011년 4월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나무 한 그루 베어낼 가치가 있는 책을 만들자', '다른 출판사와 경쟁하지 말자'는 게 출판사를 시작할 때부터 직원들과 약속했던 것입니다. 수익성이 없어 다른 출판사가 내기 힘든 책들이 있는데, 그 빈 고리를 메우자고, 우리 책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하자고 했죠."
그림책과 아동책을 중심으로 상당한 고정 독자층을 확보한 ㈜도서출판 보리의 윤구병(68) 대표는 최근 서교동 '기분좋은가게'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20년간 그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며 "핵심은 언제나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철학으로 만든 보리의 책들은 아동출판계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으며 출판사를 지탱하고 여러 공익사업을 벌이는 데 힘이 돼 주고 있다.

"7년 반에 걸쳐 개발한 '보리 국어사전'은 초등 국어사전 중 판매 1위를 달리며 출판계에서 주는 큰 상을 네 개나 싹쓸이했지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입말로 담은 유일한 국어사전입니다. '올챙이 그림책' 시리즈는 1천만 명의 어린이가 읽고 자란 것으로 집계되지요."
특히 윤구병 대표가 80년대 말에 직접 기획하고 쓴 '올챙이 그림책'은 20여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최근 60권 전집 개정판으로 도서출판 휴머니스트에서 출간됐다.
 
1994년 윤 대표가 기획해 출간한 '달팽이 과학동화' 시리즈 역시 10만 명의 어린이에게 읽혔으며 지난해 '달팽이 과학동화 플러스'로 개정, 출간됐다.

이에 더해 윤 대표는 최근 이 책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일에도 착수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컴퓨터나 여러 시각 매체를 접하는데, 어떻게든 건강한 문화를 접할 길을 열어주지 않고 구박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습니다. 취학 전 아이부터 어른까지 광범위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에요.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잘 보급하면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런 생각으로 윤 대표는 '달팽이 과학동화' 중 사회적인 메시지가 강하면서도 과학적인 인식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내용을 골라 3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불과 지구의 역사를 보여주는 '잠꾸러기 불도깨비', 공동체적인 삶의 필요성을 강조한 '울타리를 없애야 해', 환경의 소중함을 전하는 '이런 공장은 싫어'가 10~1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특히 '잠꾸러기 불도깨비'는 3D로 제작됐다.

출판사는 이 애니메이션들을 극장에서 일반 상영하기 위해 '영화제작사 및 배급사'로 공식 등록까지 했다. 파주에 있는 '씨너스 이채'에서 시험 상영을 한 뒤 학교나 공공도서관에서도 상영할 수 있도록 보급할 계획이다.

또 '올챙이 그림책' 전집에서도 6개를 골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오는 8월께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이다.

윤 대표는 1988년 출판사의 모태인 '부리기획실'을 꾸리고 1991년 출판사로 등록해 20년간 출판사 일에 관여하지만, 사실 직접 대표를 맡은 것은 불과 2년 전이다.

"출판환경이 바뀌면서 대형서점 중심, 온라인 중심이 되다 보니 보리 책이 점점 안 팔리더군요. 할인율이 낮다 보니 서점에 가도 눈에 안 띄고….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대표직을 맡게 됐고 현재 중장기적으로 잘 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출판사 대표직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제 공식적인 직책에서 은퇴할 나이가 됐다는 것이다. 단, 그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다고 했다.

"내년 3월이면 출판사 대표를 그만두고 변산에서 지내면서 농사짓고 '살림대학'을 만드는 일에 몰두하려고 합니다. 그전에 할 일이 '동네 책방'을 살리는 일이에요. 지금 질 좋은 책을 구할 수 있는 동네서점이 다 없어져버렸습니다. 대형서점은 서민들이 접근하기 어렵고 온라인 서점은 신간 중심이지요. 어린이문화운동단체들과 함께 동네 책방을 살리는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연구 성과가 나타나면 건강한 어린이 문화와 결합한 조그만 책방을 열 생각이에요. 물론 어린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양질의 책을 볼 수 있도록 꾸밀 거예요. 시범적으로 한두 개를 먼저 내고 선의의 체인점으로 늘려갈 겁니다."
출판사 일 외에도 윤 대표가 손을 댄 일은 한둘이 아니다. 사실 그의 이름은 출판사 대표보다는 '농부 철학자' '교수 출신 농사꾼' 등으로 더 잘 알려졌다. 그는 1994년까지 충북대 철학과 정교수로 지내다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농사를 짓고자 전북 부안으로 내려가 생태주의 공동체 '변산공동체'를 꾸렸다.

"15년을 교수직을 했고 국립대 정교수로 65세까지 정년이 보장됐죠. 철밥통 중의 철밥통이었는데 이상하게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의 삶에 절실한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활력을 느끼는데, 학생들은 졸업장 따는 데만 매몰돼 있고 질문을 하지 않더군요. 질문 없는 대답을 혼자 떠드는 게 계속되니까 불행해지더라고요. 그때 나이가 50이 넘었지만, 나 나름으로 행복하게 살 길을 찾자고 해서 95년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날마다 새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는 현재 일주일의 절반은 서울에서 출판사 일을 돌보고 나머지는 변산공동체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다.

변산공동체는 윤 대표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현재 70여명으로 이뤄져 있다. 공동 명의의 땅에 농사를 지어 그 생산물로 자급자족하고 농산물 판매로 인한 수익금은 필요한 만큼 나눠쓰는 생활을 한다. 농사는 철저히 유기농 방식으로만 짓는다. 대안학교로 소규모의 초ㆍ중ㆍ고등학교를 운영하며 현재 산살림ㆍ들살림ㆍ바다살림을 연구할 수 있는 2년제 '살림대학' 설립도 준비 중이다.

윤 대표는 또 보리출판사와 연계해 '재단법인 민족의학연구원'을 설립했다.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우리 땅의 전통의학을 집대성하는 기관이다. 1천여 종이 넘는 토종 약초의 성분을 분석하고 효능까지 집대성하는 사업으로, 모든 약초에 세밀화를 곁들여 한 권당 800~900쪽으로 발간하는 장기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사장은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가 맡았다.

이밖에 보리출판사의 수익금 일부로 재활용 가게인 '기분좋은가게'와 유기농 식당 '문턱 없는 밥집' 등 공익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보리출판사가 서교동에 공익사업을 위해 마련한 건물 '태복빌딩' 1층에 있는 '문턱 없는 밥집'은 점심 시간에는 도시 빈민들을 위해 1천 원 이상 있는 만큼만 돈을 내도록 한다.

"누군가 저에게 손대는 일마다 다 성공했다고 신기해하더군요. 저는 그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믿을 뿐입니다."
mina@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04/24 09:03 송고  
 
[ 2011월 12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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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노혜숙.유영일 옮김 / 양문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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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어느 날,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불현듯 책 제목에 이끌려 구입했다.
아마도 당시 나이 과거와 미래가 많이 혼란스럽고 답답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무언가에 홀리기도 한 것 같고 ’10년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라는 표현에 넘어간 듯...
 
책을 읽기 위해 처음 붙잡은 것은 3월 초순 경이었는데, 거의 한 달 만에 읽었다. 읽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지루했고 어디 절이라도 들어가지 않는 이상 저자의 글에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미래를 생각하여 현재를 희생하지 말라는 말은 기억에 남지만, "지금이 아닌 삶이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선언은 선뜻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나서 역시나 그다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얼핏 ’이 사람이 통일교나 새로운 종파같은 종교를 탄생시킬 수도 있겠다’라는 느낌이 들긴 했다.  
 
깨달음을 찾는 사람들 중 일정한 부류에게 21세기 영적 교사로 추앙받고 있는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내일이나 10분 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으로 삶을 좁히라고 촉구한다. 바로 거기에 참다운 평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1997년 출간과 동시에 폭발적인 호응을 받으며 단숨에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가 된 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무수한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출판사와 번역자 왈... 아마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동시에 올라있는 책이 100권이 넘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이성과 과학적 사유구조가 지배하고 있는 서양에서 저자의 외침은 실로 짧은 기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하고 무엇보다도 그는 인간 의식의 심오한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특이했나보다. 그는 어떻게 하면 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날의 삶 속에서 선연한 깨달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를 깊이 다룬다. 그의 가르침은 저 멀리 떨어진 세계의 것이 아니고, 특별한 수단이나 방법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단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으라는 것뿐이다. 모든 답은 그 안에 들어 있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지금 이 순간’ 안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책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독자 스스로 시간도 공간도 없는 ‘지금 여기’에서의 현존 상태에 강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책을 읽는 가운데 새로워진 의식 속에 직접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함으로써 독자들이 지금 이 순간의 변화를 체험하도록 유도하려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과거의 굴레나 최근 어마어마한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면 모를까...
 
저자는 자신의 체험을 간단히 전하면서 우리가 ‘지금 여기서’ 평화를 위한 깨달음의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방법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그러자면 우리는 고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나 바깥세상이 아닌 우리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의 마음은 거의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언제나 불행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두려운 미래에 대해 걱정한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다음과 같이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삶은 지금이다. 지금이 아닌 삶이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지금만이 유일하게 존재한다. 지금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영원한 현재야말로 우리의 전체 삶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남을 것이다. 지금만이 마음이 제한하는 범위 너머로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다. 지금만이 시간도 없고 형태도 없는 존재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다.’

 

하지만, 저자의 '지금 여기서'가 잘 다가오지는 않는다. 말이나 글로서는 느끼기가 어려운 것인지... 



- 출판사 책 소개 -
우리는 마음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 때문에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지 않으면 도리어 불안해하고, 결국은 그칠 줄 모르는 그 생각의 행렬이 소음이 되어 내면의 고요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다. 의견을 내놓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비교하고 불평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마음의 생각들을 ‘나’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거짓된 자아가 만들어지고,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다.
에크하르트 톨레는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자기 자신을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게 풀어놓고 생각의 사슬에서 벗어나 영원한 현재로 들어가라고 요구한다. 영원한 현재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 마음이 만든 허구에서 벗어나라, 마음속에서 나를 찾지 말라고 조언하며, 영원한 현재로 들어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세미나와 강연, 개인 상담을 통해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인간 의식의 심오한 변화, 머나먼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여기’에서 창조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 일관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어떻게 하면 마음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날의 삶 속에서 선연한 깨달음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톨레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는 동시에 독자 스스로 시간도 공간도 없는 ‘지금 여기’에서의 현존 상태에 강하게 집중하도록 함으로써 생생하게 깨달음을 맛보도록 한다.

’태어나면 죽어야 하는 무수한 형태의 생명체 너머에는 영원한 ‘오직 하나의 생명’이 자리한다. 그것은 저 너머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 안에도 깃들어 있다. 우리들 각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히 부수어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당장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우리 자신, 우리의 진정한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생각이 정지되었을 때만 그 본질을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 충만하고 강렬하게 집중하고 있을 때만이 진정한 ‘존재’ 상태를 느낄 수 있다. 마음의 헤아림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있음’의 상태에 활짝 깨어 있으면서 그 느낌, 그 앎에 머무는 것이 밝은 ‘깨달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깊은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겹겹이 쌓여 있는 사고의 층을 헤치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우리 내면의 그곳, 진리를 듣고 알아차리는 그 자리에 도달할 것이다. 그 자리에 이르게 되면 가슴이 벅차고 충만한 느낌이 들면서 내면에서 뭔가가 말하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다지 주변에 소개하고 싶지 않은 책...
그리고 책 산 것을 후회하는 몇 안되는 책... 
 
* 저자 소개 : 에크하르트 톨레(Eckhart Tolle)
종교나 사상에 관계없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큰 가르침을 주고 있는 정신적 스승입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런던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했고, 오랫동안 마음공부를 하여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NOW],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등의 베스트셀러를 발표했습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있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 강연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 2010년 4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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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사회 - 동녘신서 101
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신성림 옮김 / 동녘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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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지난 10월 공부모임에서 선정되어 세미나를 진행했던 것이다.
 당시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참석자들이 '모욕이 일상화 되어버린 사회'에 대한 우려를 공감했기 때문이다. 공동체 내의 신뢰가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자살과 왕따, 집단괴롭힘과 소수자에 대한 박해 등에 대한 이야기 중에 '품위'와 그 반대인 '모욕'에 대한 의견이 있었다. 개인에 대한 모욕, 집단에 대한 모욕, 소수자에 대한 모욕, 직위와 권위에 의한 모욕, 권력에 의한 모욕, 정치적인 이유에 의한 모욕, 제도에 대한 모욕 등...

 금년(2011) 초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연쇄자살(4명) 상황을 지켜보면서 엄기호씨는 4월 15일자 프레시안에 "카이스트의 유령들... 그들을 못 보는 당신도 괴물이다"라는 기고를 실었다.
 자살사태의 직접적인 배경은 MB의 교육관료가 카이스트 총장으로 임명한 서남표가 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이유로 2008년 도입한 '징벌적 장학금 제도'였다. 상대평가 기준 평균 학점 3.0 이하부터 장학금을 뱉어내야 하는데 2.0이 되면 그 금액이 무려 600만원이 된다. 과학기술입국을 취지로 설립한 국립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서로를 짓밟고 넘어야하는 정글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평균 아래로 내려가는 학생들을 패자로 규정하고 징벌에 처하는 이런 제도에 말로 학생들에게모욕, 치욕감을 주는 것이 아닐까?

 2009년 10월 조국 교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 자 있다.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가 바로 '품위있는 사회'이다. 생존권을 외면하는 재개발을 추진하고 이에 반대하는 철거민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강경진압하는 현 정부의 행태를 정당한 법치라고 할 수 있을까? '공무집행'의 외관을 띤 정부의 행위야말로 '제도적 모욕'의 예이다. 그리고 장례도 미루고 7개월 이상 이러한 모욕에 맞서 싸 우는 사람들이야말로 '품위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과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읽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엄기호씨와 조국 교수의 관점을 고려하면서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

 저자는 '문명화된 사회'와 '품위있는 사회'를 구분하는데, 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고 않는 사회는 '문명화된 사회(개인만의 괸계와 관련된 미시윤리적 개념)'라고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고 않는 사회는 '품위있는 사회(전체 사회구조와 관련된 거시윤리적 개념)'라고 구분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책은 1부. 모욕의 개념, 2부. 존중의 근거, 3부.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품위, 4부. 사회제도의 검증, 맺음말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사람이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를 다룬다. 여기서 저자는 두 가자 주장을 주장을 비교하는데, 하나는 통치제도의 존재자체가 모욕감을 느낄 이유라도 말하는 무정부주의자의 주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떤 통치제도도 모욕감을 느낄 이유를 제공할 수 없다는 스토아학파의 주장이다. 두 가지 주장에 대해 저자는 통치제도가 반드시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제외한다.
 그는 품위있는 사회의 이념이 반드시 권리의 개념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권리 개념이 없는 사회라 하더라도 품위있는 사회에 적합한 명예와 모욕을 개념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 명예의 개념으로 적합한 것은 자기존중의 개념으로, 자부심이나 사회적 명예와 대립한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인간을 존중해야 할 정당한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다루고 세 가지 유형의 정당화를 제시한다. 첫째는 적극적인 정당화로, 사람들이 존중받는 자격을 갖게 하는 인간의 공통된 특성에 의존한다, 둘째는 그런 특성이 존재할 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면서, 인간을 존중하는 일반적인 태도가 존중의 원천이라고 제안하는 회의적 정당화다. 마지막 소극적인 정당화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적극적이었다 회의적이다 근거는 없지만 그들을 모욕하는 일을 피해야 할 정당성은 있다고 주장한다.

 3부에서는 어떤 사람을 인간 공동체에서 거부하는 일이자 기본적인 통제력을 상실을 의미하는 모욕 개념을 다룬다. 저자는 모욕의 이런 두 측면이 사회구조 안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자신의 인간성을 표현하는 특정 생활양식에 대한 거부로 나타나는지 구체적으로 애기한다.

 4부에서는 복지제도가 처벌제도 등 주요 사회제도가 품위 있는 사회에서 작용했다 할 방식을 다룬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품위있는 사회'와 존 롤스의 '정의로운 사회'를 비교,검토한다. 즉 ‘정의로운 사회’와 ‘품위 있는 사회’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정의로운 사회가 각자가 기여한 바에 따라 사회적 명예의 분배가 차등적으로 분배되는 사회라면, 품위 있는 사회는 더 나아가 그런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즉, 명예가 훼손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는 반드시 품위 있는 사회여야만 한다고 본다. 하지만 어떤 사회는 그 성원들에 대해 정의로울 수 있지만, 그 사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방인)에 대해서는 모욕을 행사하는 사회일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회가 그 구성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지, 아니 더 나아가 그런 종교집단들이 그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여성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규범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의로운 사회가 반드시 품위있는 사회는 아닐 가능성이 있으며 서로 다른 이론이나 개념을 포괄하는 관계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다만, 그는 정의로운 사회보다 품위있는 사회를 확립할 가능성을 낙관한다.

 저자의 결론은 '인간의 존엄성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회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등주의적 사회정의 이념과 관련된 여러 문제 상황을 나름의 방식으로 수용하면서도 인간의 존엄성에 초점을 두고 한층 더 나아간 ‘품위 있는 사회’라는 인간다운 사회에 관한 또 다른 규범적 이념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한 ‘품위 있는 사회’는 결국 하나의 사회에 있는 ‘제도들’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품위 있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보다 더 급하게 실현해야 하는 사회이며, 현실적으로 정의롭지 않더라도 이 사회는 반드시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품위 있는 사회’는 사회가 제도를 통해 구성원들을 존중하는 사회이고, 더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이 정당한 이유로 모욕감을 느낄 그런 조건들과 싸우는 사회다.
 그는 이런 사회가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로 인간의 존엄성을 들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모욕하고, 또 어떤 것을 존중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로 사람으로서의 자기-존중(자존심)을 부정하고 사람을 사람 아닌 존재로 다루는 현실에 대해 “사람을 어떤 ‘물건’이나 ‘기계’로 또는 ‘동물’이나 ‘인간 이하’로 다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 대한 무시는 사람을 그 표현과 감정과 기분의 변화 등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고 민감하게 보지 않는 방식으로, 충분히 또는 세심하게 보지 않거나 마치 사물이나 동물 같은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그런 것들(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것-낙인찍기)은 인간의 공동체로부터 배제시키거나 거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고 있는 '품위 있는 사회'에 한국 현실을 비춰보면 어떨까.
 쉽게 떠오르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모욕과 국가권력 및 제도에 의한 모욕이 '일상다반사'라는 것이다. 조금 사정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모욕은 폭력의 수준으로까지 여전히 나타나고 있고 성소수자에 대한 제도적 모욕은 전혀 개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여성에 대한 무의식적 모욕과 폭력행태는 집권당의 대표에서 '강추행'이라는 별명을 얻는 국회의원, 대학교 내에서의 집단 성폭행, 술자리에서의 성추행, 일상적인 성희롱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군인과 학생에 대해 폭력과 모욕을 제도적으로 근절하고자 하는 노력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저자는 품위 있는 사회는 인간을 존중하고 모든 인간에 대한 모욕은 잘못임으로 그 사회는 자신의 품위 문제를 단순히 어떤 국적이나, 시민권이 있는 사회 구성원에게만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들처럼 거주는 하지만 시민권이 없는 사람들도 존중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때리지 마세요, 저도 사람입니다”라는 한국어부터 배우는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 우리는 그들을 공동체의 완전한 일원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품위 없는 사회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이등시민”으로 자기-존중(자존심)에 손상을 입게 되는 시민이다.

 저자는 또한 품위 문제를 문화적인 부분으로 연결시켜 설명한다. 포르노그래피가 사적이 아닌 공적의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동성애자들처럼 사회적 소수자의 생활양식을 문화가 외면할 때, 사회가 충분히 여력이 있지만,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을 구축하는데 노력하지 않는 것도 상당히 모욕적인 상황이라고 말한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연고주의나 학벌주의도 특정 집단의 배제의 원리가 작동하므로 사회의 품위를 훼손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사회에 보이지 않게 제도화 되어 있는 속물근성, 사생활, 관료제, 실업사태 등까지도 그 본성은 상당히 모욕적인 속성이 있다. 특히 복지제도는 겉으로는 한 사회의 품위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대상자들을 동정이나 자비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부끄럽고 열등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되면 결과적으로 모욕적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한동안 논란이 되었던 '차등급식'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느 누구도 모욕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기회에서 배제되지 않으며 참여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자기존중이 보장되고 ‘사회제도들’에게 모욕받지 않는 사회, 무턱대고 모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똑같이 어떤 것을 나누는 사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인간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존중을 누리면서 사는 사회...
 저자가 제사하고 있는, 현대사회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그래서 그는 일반적인 평등주의적 사회정의의 이상은 정말 중요하고 본래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 존엄성의 보장이라는 가치 지향을 중심으로 재정립되거나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장과 경쟁을 만능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저물어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념이라는 잣대만으로 사회를 구분하고 규정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이제야 그것을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이해관계가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거대한 물결처럼 어떤 방향으로 함께 흘러가는 느낌이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가 없는 대신 꾸준하게 추구해야 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은 더욱 절실하다. <품위있는 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아는 누구를 모욕하지 않았는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익숙한 제도와 문화로 인하여 누군가를, 어떤 집단이나 계층을 무의식적으로 모욕하고 있지는 않은가...


 참고로  '품위'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서는 이 단어를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으로 정의한다. 책의 제목 <품위있는 사회>의 원제목인 'decent'의 사전적인 의미는 '점잖은,친절한,예절바른'이다. 따라서 역자는 책의 내용과 저자의 취지에 맞게 책의 제목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과연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을 왜 '품위있는 사회'로 정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제도가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이반 일리히의 저서 의 한글번역본의 제목을 <학교없는 사회>로 정하여 독자들에게 저자가 학교를 없애자고 주장한 것처럼 편견을 심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한국어 사전이 유명무실화되기 시작했다. 2천여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이 온갖 불법과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면서 "정의"가, 전두환의 파트너 노태우가 수천억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떠들면서 "보통사람"이, 국가를 수익모델이 삼은 가카가 생태계를 파괴하고 토건국가를 만들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면서도 '4대강살리기' '녹색성장'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살리기"와 "녹색"과 "공정"이라는 단어가...ㅠ

[ 2011년 12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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