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히의 유언
데이비드 케일리.이반 일리히 지음, 이한.서범석 옮김, 박홍규 감수 / 이파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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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국내에 소개된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 내가 읽은 마지막 책이고 작년 10월 중순 공부모임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것이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가 한창이었고 나는 책은 읽었지만 박원순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때라 세미나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에서 <학교 없는 사회>와 <성장을 멈춰라> 2권을 읽은 상태였다. 따라서 책을 읽는 중에 이반 알리히와 대아비드 테일리가 거론하는 다른 책, 즉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그리고 <그림자 노동> 등에 대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서평을 쓰는 것을 주저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읽어보지 않았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급하게 이반 일리히의 다른 저작 중에서 앞에서 얘기한 3권을 서점에 주문하여 연말까지 읽었고 순차적으로 각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 그나마 3권을 읽으면서 이반 일리히의 철학과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나니 이 책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책에 대한 서평 쓰기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다른 저작인 <자각의 축제>, <불능의 전문가 Disabling Professions>, <유용한 비고용의 권리와 그 전문적 적 The Right to Useful Unemployment and it's Professional Enemies>, <젠더 Gender>, , ,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In the Vineyard of the Text>, <과거의 거울 속에서 In the Mirror of the Past>은 국내에 번역,출간된 책이 없어 구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아쉬움이 크다. 앞으로 추가로 국내에 출간되기를 바란다.

1970년대의 다수 저작에서 일리히는 근대 산업생산사회가 사회 전분야를 장악함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주의와 관계 없이 제도화, 권력화, 전문화를 가져왔고 결국 인간의 자립적, 자존적인 삶을 파괴시키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학교교육이라는 제도는 학습과 배움을 제도화,상품화하여 인간이 스스로 배우고 학습하는 능력을 훼손하고 있고 수송과 교통은 인간의 이동을 제도화하여 인간의 이동능력을 제한하고 에너지의 노예로 만들었으며, 병원과 의료시스템은 건강을 제도화하여 결국 인간이 스스로, 그리고 공동체 속에서 건강을 유지관리할 능력을 빼앗고 고통, 질병, 죽음에 대한 인간의 자율행위를 불능으로 만드는 것에 더하여 병원이 병을 만듬으로서 '의료의 복수'를 가져왔다. 경제발전과 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사회체제의 이념에 관계 없이 대량 생산체제를 가져오게 하여 인간 공동체와 환경을 파괴하고 제도화와 권력화를 가속화시키면서 전문가와 기술전문관료에 대한 인간의 의존을 심화시키게 되었다. 이는 인간에게 가치가 있는 모든 것을 상품화, 서비스화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일리히는 제도화, 권력화, 전문가화를 극복하는 방법은 '성장'을 멈추고 인간들 스스로 제도화, 전문가화에 한계를 설정해야 하며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공생의 사회로 나가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일리히는 1980년대 들어 자신이 1970년대 내내 고민하고 문제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제도화, 권력화, 서비스화라는 '근대성'의 출발점에 대해 연구를 거듭하여 '근대성'이 결국 서구사회의 기독교와 관련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서양의 근현대란 "기독교의 타락한 돌연변이, 즉 교회가 권력을 잡고 제도를 만들어 그것에 인간을 철저히 적용시켜 제도를 숭배하게 만든 탓"으로 생겼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는 초기 기독교가 갖고 있던 '벗에 대한 환대와 희망'이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받은 뒤 변질, 타락하기 시작해 이웃을 맞아들이는 환대와 관용이 사라지고, 법과 기술, 제도와 물질의 물신화로 나아갔다고 본다. 기독교 신앙은 본래 최선이었으나 권력화 과정이 계속되면서 타락과 최악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근대 이후 사회를 기독교의 타락으로 보는 주장으로 나아갔다.
 
일리히는 이 문제를 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와 사마리아인'에 대한 분석으로 지적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루카 10,25~37)라는 질문에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에리코로 가던, 강도에게 습격당해 옷도 빼앗기고 반죽음이 된 채 길가에 버려진 유대인 남자 이야기를 꺼냈다. 그 유대인 남자를 보살핀 사람은 성직자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인이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유대인 남자에게 다가가 일으켜 세운 후 상처를 치료하고 그를 가까운 여관에 데려가 완쾌할 때까지의 숙박비도 지불했다. 오늘날 상황으로 보면, 팔레스타인인이 유대인을 도운 것이다. 그는 자신의 민족을 보살피려는 민족적 선호로부터 자유로웠고 그래서 자신의 적을 돕는 반역행위를 저질렀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선택의 자유를 행사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서구인들은 '사마리아인 이야기'를 '누가 내 이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바꾸어 버렸다.
사마리아인은 자신의 적이나 마찬가지인 유대인을 도와주었으며, 이는 ‘내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관한 모범이 되는 행위이다.

 

일리히는 예수가 말한 이웃 관계는 기대하거나, 요청되거나 의무 지워지는 것이 아니며,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방인을 따뜻하게 대할 의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서로간에 자유로이 창조되는 것으로서의 이웃 관계란, 타인과 타인의 육체를 통해 맺어지고, 우리가 결정함으로써 생겨나며, 예수는 이를 이웃으로 행동하는 것이라 일컬었다.

오늘날 빈부 격차가 심화되는 사회의 합리적인 통치 수단으로 기독교의 복음을 이용하는 일이 흔하다. 하지만 일리히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으로, 스스로 선택한 가난과 무력함과 비폭력을 꼽는다. 이는 타락한 자나 조롱 또는 무시받는 자들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에 반해 현실의 기독교 교회는 생산 및 소비 지향의 유혹에 넘어갔고, 대형화와 관료화, 신도 회원제를 통한 확장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복음은 제도화되었고, 사랑은 서비스에 대한 요구로 바뀐 것이다.

그는 기독교의 사례를 "최선이 타락하면 최악이 된다."라고 표현한다. 

 
일리히는 우주 만물과 모든 생각 속에 신이 존재한다고 보는 세계관이 훼손된 것과 때를 같이해 근대가 시작되었음에 동의한다. 신과의 관계 속에 사물을 이해해야만 자연은 그 생명을 되찾을 수 있다. 인간은 오랜 옛날 추위로부터 살아남고, 거친 세상을 걸어가기 위해 도구를 이용했다. 신이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흉내내서 인간도 그들의 조건에 맞춰서 사물을 만들게 된 것이다. 도구의 근대적 개념이 세계를 우연성의 정신으로 보는 데서 기원하는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또한 도구의 시대는 시스템의 시대로 넘어갔다.
 
 
이 책은 사제직을 떠났지만 평생 기독교 본래의 모습을 염원한 신앙인으로서의 이반 일리히가 서구 근대 세계의 단초를 제공하고 주도해온 기독교에 대한 절절한 바람과 다양한 견해들을 보여준다.(그는 사회적 공공성의 믿음에서 삶과 죽음을 초월한 참된 신앙인이었고 저 흔해빠진 제도 교회인이 아니라 독실한 자유신앙인이었다.) 또한 이전의 책들에서 제시한 학교와 병원 의료, 교통 체계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리함으로써 전체적으로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과 희망을 종합적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한 열정과 희망은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일리히가 좋아했던 파울 첼란의 시 구절‘미래의 북녘 강에서’의 내용에도 잘 나타나 있다.
 
특히 그가 2002년 점점 커져가는 왼쪽 뺨의 종양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라디오 진행자와 진행한 대담을 엮은, 그의 마지막 육성을 담은 책이다. 데이비드 케일리는 1990년대 초에 한 차례 대담집으로 엮었던 프로그램을 1997년 이후 다시 진행하면서 대담을 바탕으로 원고를 만들고 인터뷰를 추가하여 이 책을 엮었다. 이 책에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오늘날 지구공동체가 형성되는 데 커다란 토대를 제공했던 서구 근대 세계와 기독교를 바라보는 이반 일리히의 입장과 견해가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리히가 평생에 걸쳐 산업문명을 비판해온 자신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가 이전까지 썼던 여러 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인간과 사회와 자연의 ‘근본’은 무엇이고, 어떻게 지켜나가야 할지를 평생 고뇌하고 연구해온 한 독립적이고 예리한 지성인의 면모가 녹아 있다.


역자는 새삼 이반 일리히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것은 "그가 서구 세계가 주도해온 산업화와 개발 이데올로기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에 힘을 쏟았다는 점에서 오늘날 경쟁과 개발이라는 괴물성에 신음하는 한국사회에 갖는 의미가 실로 적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에는 기독교 신앙의 변질과 타락이 있으며, 제도화를 비판하고 절제할 것을 주장한, 자연과 생명의 회복이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이 자리잡고 있다.

핸드폰과 정보기술, 그리고 온갖 서비스와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배하다시피 하는 사회에 이반 일리히의 삶이나 그 주장은 고리타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속도와 편리성이 주는 비인간화를 경고한 일리히의 외침은 헤아릴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어떤 기성의 학문적, 사상적 틀도 단호히 거부하고 독창적인 통찰력으로 산업사회의 모순구조를 파헤쳐온, 부드럽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일리히는 전 세계가 공생공락의 사회를 이룩하기 전까지 많은 이들에게 끊임없이 중요한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이며, 언제까지나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면모와 향기를 품고 있다. 
 
일리히는 나에게 더 이상 경제성장, 기술의 진보, 제도화와 전문화, 대량생산, 가치의 서비스화라는 이데올리기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인간에게 있어 희망은 자율적, 자립적이고 공생하는 삶이라는 생각이 간절하다. 2002년 고인이 된 이반 일리히씨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 2012년 1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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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 석필 / 199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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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당파 싸움 때문에 망했다." 일제시대 이후 한국인들의 머리 속에 무의식처럼 뿌리 깊게 남아있는 생각이다. 나 역시 초중고를 다니면서 그렇게 교육 받았고 언론과 책, 드라마, 각종 자료를 통해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에 처음 의문을 가지게 한 것은 대학 초년 시절에 읽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에 당파 싸움이 없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살기 시작한 이후 이해관계나 생각의 차이로 인하여 별개의 집단을 구성하여 서로 간에 이견이 생기거나 다툼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당파 싸움'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렇다면 조선의 '당파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었고 조선에서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당쟁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 역사를 분석한 것이다.

저자의 조선당쟁사를 읽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 현대정치사가 오버랩되었다. 그만큼 인간의 속성, 정치나 정당의 성격과 구조, 구조적인 모습, 한반도라는 동질성, 문제의 뿌리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저자는 조선에서 달파란 말이 사용되기 전에 스스로 이를 일컫는 말이 '붕당'이었다고 설명한다. 1392년 조선 건국 이전 고려 말기에 한반도에서는 신흥사대부가 고려의 변화를 꿈꾸었다. 신흥사대부 중 역성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정도전, 조준 등이었고 온건개혁세력은 정몽주, 길재, 이색 등이었다. 역성혁명 이후 건국공신 중심의 훈구파가 집권과 동시에 개혁세력을 숙청하였고 조선 건국을 반대한 온건개혁파의 나머지 세력은 중소지주라는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해 향촌 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힘썼다. (8.15 해방 후 상황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해방 후 미군정에 의해 키워진 두 개의 정당, 즉 이승만의 독립촉성회와 한국민주당의 뿌리가 모두 자주계급이란 점에서 조선의 훈구파-사림파 구도 또는 조선 말기의 노론파-소론파와 연계성이 짙다.)

조선 건국 후 약 80~9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서 공신 집단은 훈구파는 부패하기 시작했고 조선 제9대 임금인 성종 때부터 온건개혁파는 훈구파는 전횡과 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임금과 백성들의 지지를 업고 하나의세력을 형성하여 '사림파'로 등장했다. 훈구파는 당연히 사림파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고 신진세력을 공격하였다. 연산군 4년의 무오사화, 10년의 갑자사화, 중종 14년의 기묘사화, 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는 모두 사림파에 대한 훈구파의 공격안 것이다. 사림파는 한 번 사화를 당할 때마다 수 십명씩 처형당하는 등 극심한 타격을 입었으나 조금 시간이 흐르면 다시 재기에 성공하여 제14대 임금 선조 때에 이르면 드디어 훈구파는 축출하고 정권을 장악하기 된다. (이 부분도 1987년 6월 항쟁 이후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이 생각나게 한다. 조금 다른 점은 김영삼의 경우 줄곧 야당이었다가 여당과 손을 잡고 정권을 획득했다는 것...)

사림파는 훈구파의 탄압에 맞서 싸울 때는 하나의 정치세력이자 동지였지만 훈구파를 물리치고 집권당이 되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색당쟁'이라고 부르는 조선의 정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집권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은 정치사에서 흔하다. 살림하고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집권 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동인과 서인은 이념과 정책이 서로 달랐다. 이념이나 정책으로 볼 때, 동인의 뿌리는 퇴계 이황으로 퇴계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으로 시작되었고 서인의 뿌리는 율곡 이이로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으로 시작되었다. 동인과 서인의 정책의 차이는 토지를 둘러싼 싸움이 컸다. (야당이 분열하는 부분은 한국현대사와 다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분열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연속집권하도록 만들었다. 이 점에서 한국현대사의 야당은 조선시대 사림파 만도 못했다.)


사림파의 집권 이후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지고 동인과 서인이 각각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자세한 상황은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림파가 집권 이후 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진 계기가 정5품의 '이조정랑'이라는 벼슬자리 때문이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조선시대의 인사권은 삼정승이 아닌 이조에 있었는데 이조판서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관료들에 대한 감찰과 탄핵권한이 있는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관리 추천권은 이조의 낭관(?官), 즉 '이조정랑'에게 전권이 있었던 것이다. 이조전랑의 후임자는 전임자에 의해 추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조전랑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대부분 판서와 재상까지 승진할 수 있는, 출세가 보장된 자리였다. (이런 면에서는 조선시대의 인사정책이 현대의 국가체계보다 합리적으로 보인다. 역사학자들은 조선의 정치구조가 합의체적인 운영을 추구했다고 말한다. * 아래 그림 : 시기별 정당 분포도)

 

저자는 조선 중기까지의 붕당 정치는 조선의 체제에 긍정적인 기능을 한 것으로 평가한다. 각 붕당은 상대 붕당과 상호 공존의 틀 안에서 이념과 정책을 둘러싸고 경쟁을 하였으며 양반들의 계급적 이익에 기초해 있다는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가체제와 백성들의 삶에 나름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였다. 하지만 건국 이후 300여년이 지난 제18대 임금 현종 재위 중인 17세기 후반에 '예송 논쟁'으로 발생하기 시작한 당쟁은 그러한 붕당 간의 공존의 틀을 깨트렸다. 당시 여당이었던 남인은 야당이었던 서인을 인정하지 않았고 서인 또한 남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붕당의 이유가 공허하기도 했을 뿐더러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삼았고 공멸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현대 한국 정치집단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여러가지 다른 시대적인 변화도 있겠지만, 해방 이후 지금까지 상대 정치집단을 적으로 삼고 죽이려고 하는 것은 일방, 특히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여당세력일 뿐이다. 현대 정치라고 불리우던 기간이 60년 정도로 짧기도 하지만....)

현종 이후 제21대 임금 영종 즉위까지 공멸의 당쟁은 이어졌다. 영조와 다음 임금인 정조 재위기간 까지는 공멸의 당쟁을 공존의 당쟁으로 변화시키려는 '탕평'의 시대였다. 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이유는 격화되는 당쟁의 뿌리인 붕당의 재생산에 대처하여 국가 차원에서 고급인력을 키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조의 재위기간을 짧았고 급작스러운 정조의 죽음은 조선을 최악으로 이끈 세도정치라는 극단적 반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정조를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정조의 개혁은 역사적으로 볼 때 구조적인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저자는 조선 후기 정조의 정치적 과제는 국왕이 남인들과 손을 잡고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 들어 새롭게 등장한 신흥세력과 손잡고 양반 독점의 정치 구조를 허물어야 했던 것이다. 정조는 서얼들을 규장각에 등용하는 등 개혁적이기는 했지만 정조 자신이 사대부 중심의 정치 구조 자체를 타파하려는 생각은 부족했다. 


저자는 영국의 입헌군주제를 옹호하는 토리당과 프로테스탄트 중심의 휘그당이 나타난 17세기 후반을 정당의 기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웃기는 이야기'로 평가한다. 그는 이미 그 600년 전에 중국에서는 이미 가진 귀족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구법당과 못 사진 농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법당이 분립되었음을 지적한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선에서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했던 15~16세기부터 정당의 맹아는 시작되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당초 이 책의 발간에서 저자의 문제의식이었던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했을까? 저자는 이런 주장을 단호하게 배격한다. 조선은 중국의 청나라와 일본의 무사정권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자졌듯이 조선 역시 봉건시대에서 근대시대로 넘어가는 사회적 변화를 정치가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무너진 것이다. 공멸 수준의 당쟁과 세도정치는 그렇게 무너져가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성의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저자는 반대로 조선의 당쟁을 옹호할 수도 없다고 주장한다. 조선에서 정당이 일본보다 일찍 발생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당의 존재가 사회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증거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당쟁이 발생한 초기에 동인들과 서인들이 서로의 부패를 감시하는 기능을 했던 것등 여러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즉, 저자는 조선의 당쟁을 한마디로 "긍정적이다" 또는 "부정적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고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긍정성과 부정성이 시기 구분에 따라 달라지는데 특히 당파끼리 공존을 추구할 때 긍정적이고 독존을 추구할 때 부정적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당파 싸우 망국론'을 주도적으로 생산하고 확산시킨 세력이 일본이었음을 지적한다. "조선 정치사를 압축하는 한 개념으로 '당쟁'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학자는 일본인 시데하라 히로시였다. 그는 1900년 학정참여관으로 조선에 와서 이른바 조선의 교육개혁을 단행한다면 명목으로 교육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1907년에 펴낸 <조선정쟁지>에서 당쟁을 조선 정치의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히로시는 조선시대의 정당들을 ,주의를 가지고 서로 존재하는 공당이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서로를 배제하는 사당'이라고 규정했다. 한국인의 특성임을 규정짓는 '당파성론'은 일본인의 이런 정치적 목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p.455) 일본은 조선이 당쟁 때문에 망했다는 생각을 한국인에게 주입시켜 망국의 책임을 침략자들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에게 돌리게 하려는 통치 정책은 하나로 조선사를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조직적이고 한국사 지하자원을 고안한 것은 물론 조선총독부였고 이를 이론화한 인물들은 총독부 산하 소속의 학자들이었다. 1924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이 문을 연 다음에는 경성제대 소속의 교수들이 이를 체계화했다.


저자는 조선의 당쟁사를 통해 현대의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공존의 정치"라고 말한다. 특히 현대 한국정치사가 뿌리깊게 각인시켜 놓은 지역차별과 사상통제를 통한 '독존'의 위험을 지적한다. 조선 붕당정치의 교훈은 독존을 추구하는 정치 체제가 파멸시키는 것은 상대 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존 정치 체제는 특정 정당, 정치세력이나 특정 지역을 넘어 조직 자체, 즉 나라와 민족과 국민 전체를 파멸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지역갈등과 사상통제, 그리고 '독존'을 추구하고 있는 한나라당과 수구우익 언론, 재벌 등 기득권층이 새겨야할 것이다.

창피한 사실이지만 나는 그동안 한국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책은 그런 나에게 한국사, 특히 조선사와 인물들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서구역사와 서구 학자, 그리고 서구의 이론에서 크게 배우는 것이 있는 만큼, 같은 뿌리일 수 밖에 없는 조선의 역사와 인물, 사건과 정책에서는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것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 나이에 바보같긴 하지만...ㅋㅋㅋ

[ 2012년 1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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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노동 - 이반 일리히 전집 5
이반 일리히 지음, 박홍규 옮김 / 미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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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산업생산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1970년대 초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iety>,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Energy and Equity>, <병원이 병을 만든다 Limits to Medicine, Medical Nemisis, and The Expropriation of Health >, <성장을 멈춰라 Tools for Conviviality>를 연속으로 발간했다. 그는 저작들을 발간하면서부 근대사회의 상품화, 산업화, 서비스화, 제도화, 근원적 독점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제기를 했다. 학습의 제도화에 대한 한계, 건강의 의료화에 대한 한계, 이동의 에너지화/수송화에 대한 한계, 위험의 보험제도화에 대한 한계, 노출된다 매체의 집중화에 대한 한계, 전문가의 손에 의한 사회사업이나 관리의 제도화를 용인하는 것에 대한 한계이다.
그는 단순히 소유의 구분 즉, 마르크스주의식 '사적 소유 대 사회적 소유'에 근거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주의 구조 속에서도 인정하고 넘어가버린 상품화, 산업생산사회, 대량생산체제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산업생산과 대량생산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제도화를 가져오고 전문가와 기술관료의 근원적 독점을 야기하고 사람들의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삶을 가로막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이다.

1970년대를 거치면서 저자는 산엄생산체제와 제도화, 전문가화의 한계를 주장하였다. 그 기간을 지나면서 저자는 고정적인 경제와 그림자 경제 사이의 상호보완성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면서 그림자 경제와 그림자 노동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산업생산사회는 노동에 있어서도 '노동자애 대한 소외' 이외에도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킨다. 20세기 말 이후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한쪽에서는 '노동의 종말'이,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의 유연화와 비정규직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이전부터, 즉 산업생산사회가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된 근본적인 노동의 문제는 여전히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그림자 노동'이다.

저자는 임금과 화폐에 근거한 산업사회의 등장과 더불어 그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성격의 노동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은 임금도 지불되지 않고 가사가 사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아닌 일종의 노역이다. 저자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과 무관한 새로운 가사영역애서 행해지는 주부에 의한 이러한 그림자 노동은 실제로 가족을 위하여 임금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한다. 

임금을 획득하는 임금노동자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사회는 그림자 노동을 계속 은폐해왔다. 일리히는 이렇게 은폐된 그림자 노동은 곧 지불되지 않는 활동이며, 여성에게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새로운 형태의 예속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집약사회의 ‘경제인’은 ‘노동자’와 ‘주부’로 창조되었고, 이러한 성분할을 토대로 ‘경제인’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산업인’이 창조되었다. 남성과 여성에게 특화된 노동이란 산업사회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분열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에게 상이한 경제적 성질을 부여한 두 종류의 노동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제인’은 결코 성적으로 중성일 수 없다! 결국 여성의 활동이 갖는 가치를 하락시키고 남성에게는 특권을 부여하는 활동을 유지시킨다. 그림자 노동은 사회의 형식적인 경제를 뒷받침하고 인간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뺏는다. 이를 토대로 그림자 노동은 성에 근거한 역할분담의 경제적 구별을 정당화한다. 이때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산업노동자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멜빵 달린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것은 정당한가?

근현대 산업사회를 돌아보자. 자원의 희소성에 근거한 근대 산업사회는 소유로부터 만족을 구하는 상품집약사회의 도래를 의미했다. 상품집약사회에서는 반생산적인 상품들을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사람들, 자칭 봉사자들의 봉사를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사람들인 ‘경제인’이 활개를 치게 된다. 재빠른 전문가들은 전문적 관리로 공간, 시간, 재료, 기획을 모두 생산·소비에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편성하고 규격화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경제인’으로서 돈을 벌고 현명하게 소비해야만 하는 ‘경제인’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우리는 ‘선진국 따라잡기’, ‘고용창출’, ‘1인당 소득 향상’ 혹은 전문가의 관리로부터 이루어지는 ‘자조’,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인’인 우리는 가사, 교육, 보육, 통근과 같이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일을 임금노동으로 바꾸는 방법을 논의하는데 더욱 주력한다. 
결국 임금을 위한 고용을 합법화하고 자율적인 활동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상품집약사회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을 지향하는 문화를 방해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제성장, 발전이 결국 ‘공용commons’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단호하게 말한다. “이제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에 자극을 준다는 ‘수요’라는 단어를 의심하라! 또한 ‘소비로부터 스스로 절연하여unpluged’ 발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라."


이 책은 이반 일리히의 저작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 특히 이책의 내용이 기존에 발간한 그의 저작의 주장이나 논리와 다소 벗어난 때문에 더 그러했다. 그나마 일리히의 지속적인 관심사인 자립적이고 자존감을 위한 사회와 삶의 연장선 상에서 그림자 노동에 대해 다루었기에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미래사회에서는 우리가 인간활동애 있어서 상품화와 서비스화, 그리고 대량생산체제와 전문가화, 제도화와 독점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찾아 방향을 바꾸는 것만이 현재의 시스템과 이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 인상깊은 문장
- 산업사회란 그 희생자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 사회이다. 19세기의 여성은 종획되어 그 자위를 박탈당하고 상처 입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사회 전반에 타락의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감상적인' 동정의 대상을 이 사회에 제공했다. 억압은 언제나 그 희생자에게 사회의 더럽혀진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의 사회는 그 희생자에게 관리를 통하여 억압에 협력하는 대상이 될 것을 강요한다. (p.179)

[ 2012년 1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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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개척한 인문학자 고미숙씨의 최근 신간으로 고미숙씨를 초빙하여 공부모임에서 세미나를 진행했다(하지만 나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ㅠ)
 
저자는 자신의 몸이 크게 아프개 되면서 자신의 관심을 병과 몸으로 돌렸다고 한다. 그녀가 40대 초반이던 어느 날 그녀의 몸 속에는 생활하기 불편할 정도로 종양이 자라났다. 국내 최고의 종합병원에 같더니 온갖 검사를 마친 후에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해야 잘라내새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수술도 하기 싫었고  수술 후에 입원실에 오랫동안 누워있어야 한다는게 싫어 수술을 포기했다. 그후 그녀는 등산을 하고 요가를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병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말한다. "그동안 그만큼 나는 무지했고 또 게을렀다. 그러고도 살 수 있었던 것은 대충 살 만했기 때문이다. 계급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웬만큼 살 만한하면 인간은 자신이 얼마나 무지하고 얼마나 게으른가를 정직하고 볼 기회를 놓인다. 그래서 아파야 한다. 아파야 비로소 '보게'된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선배가 한 명 있다. 그분은 천성이 척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2000년대 초부터 사업을 시작하였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풀리지가 않았다. 사업을 하면서도 지식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열망으로 꾸준하고 책을 읽고 클래식을 감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애주가였다. 사업 때문이기도 했지만 거의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술자리가 있었고 나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당연히 간에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고 의사로부터 여러번 경고도 받았다. 하지만 술을 매개로 한 생활, 업무 스트레스는 줄어들지 않았고 급기야 간에 작은 종양이 나타났고 한 차례 수술했다. 수술 후에 술의 양을 줄이기는 했지만 횟수는 줄지않았고 급기야 조금 시간이 지나자 횟수마저 과거로 돌아갔다. 또 다시 병원을 찾은 선배는 종양이 재발했고 조금 더 심각해진다 것을 알았다. 의사와 주변의 권유에 따라 간의 대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이의 간을 이식하는 대수술을 감행했다. 대수술 후 아직까지 큰 후유증은 없었으나 선배의 생활을 철저하게 '환자'로 관리된다. 매일 먹는 약과 면역억제제에서부터 먹거리, 행동반경에 이르기까지... 면역억제제는 평생 먹어야 한다.
 
고미숙씨와 나의 선배...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갑작스러운 종양의 발견으로 인생의 기로에 섰으나 전혀 다른 방향을 선택하였고 지금은 전혀 다르게 살고 있다. 한 사람은 '앎의 주체'에서 '자기 삶의 치유자'로, 다른 한 사람은 남은 인생을 '환자'의 삶으로...
물론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반드시 몸이 아프냐, 그렇지 아니냐를 기준으로 하여 극단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는 건강 말고도 직업, 비전, 가치, 그리고 가족, 사람관계 등 삶의 질을 가르는 많은 영역도 있고 누구나 상대방보다 더 나은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과 병, 생활습관, 특정한 계기에 대한 태도와 선택, 앎과 인식체계 등에 있어서 사람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노력하는가에 따라 적어도 건강과 치유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이 크게 달라질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자신의 병을 통해 병에 대한 앎의 주체로 나선지 10년쯤 지난 시점에 저자가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펴낸 것이다.

한국사회는 지난 근현대 100년을 거쳐 수 천년 동안 이어져왔던 동양적 인식체계와 문화를 대부분 버리고(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간에) 서구의 것에 익숙해져 왔다. 우리 역시 서구인들처럼 정상과 비정상, 선과 악, 삶과 죽음, 부자와 빈자, 항복과 불행, 건강과 병, 발전과 후퇴 등 이분법적인 사고구조에 익숙해져 있고 분석과 해체, 나누기와 가르기, 전체보다는 부분에 강한 문화가 자리잡았고 모든 문화적인 요소에 자본과 비즈니스가 결합되어 있다.
건강이나 차유(의학)도 마찬가지인데, 서양의학은 인체를 하나의 유기체이자 자연과 소통하는 주체로 인색하지 못하고 개별 장기, 조직, 세포로 나누어져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저자 고미숙씨의 이 책에서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의 담론의 차이에 주목하며, 이 차이에 의해 한쪽은 몸과 인생, 그리고 우주로 연결되는 가르침을 터득할 수 있으며, 다른 한쪽은 삶에 필수적인 질병과 죽음을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성찰과 연구의 기회를 박탈하고 만다고 말한다. 선조가 허준에게 <동의보감> 편찬을 명할 때 내린 당부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나듯이(“수양이 최선이고 약물은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재가 많이 산출되지만 사람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니 종류별로 나누고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명칭을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하라” p.39)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학서가 아니다. <동의보감>의 탄생 자체가 삶의 방식과 직결되어 있는 것이었고, 모두가 그 지식을 누리게 하자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런 <동의보감>의 취지를 더 밀고 나가 이렇게 주장한다. “내 안의 치유본능을 깨워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자!”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 의거하여 <동의보감>을 8개 장으로 나누어 독특하게 설명한다.
1장 허준, 거인의 무당을 탄 자연철학자. 임진왜란으로 유배지까지 허준이 <동의보감>을 펴낸 과정을 담았고 책 속의 키워드가 분류, 양생, 용법이란 점, 그리고 <황제내경>에서 <금원사대기>까지 동양의학의 '거인'들을 어떻게 책 곳에 흡수해 냈는지 설명한다.
2장 의학, 글쓰기를 만나다 : 이야기와 리듬. <동의보감> 속에 담긴 의학적 내용과 민담을 소개하면서 의사는 연출가에게 임상실험 리얼타임 예능이을 주장한다.
3장 정(精), 기(氣),신(神)  : 내 안의 자연 혹은 아바타. 몸과 우주가 화려한 대칭의 향연임을 주장하면서 정(精), 기(氣),신(神)이 어떻게 동양의학에 반영되어 있는지, 인체와 존재와 우주를 어떻게 다루는지 설명한다. 아파야 산다.
4장 '통하였느냐' : 양생술과 쾌락의 활용. 양생의 척도는 태과와 불급 넘어야하며, 정을 보호하고 기(氣)를 보호하며 신을 보호하여 한다는 허준의 명제를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는 정(精)은 애로스와 도, 기(氣)는 자금력과 소통의 윤리, 신(神)은 존재의 절대적 탈영토화로 해석한다.
5장 몸, 타자들의 공동체 : 꿈에서 똥까지.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꿈은 사라져라 하며 몸 속의 벌레와 똥오줌은 안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한다.
6장 오장육부, 그 마법의 사중주. 오장육부는 사람 몸 속의 '사계()'이다. 상생과 상극, 수승화강과 음허화동, 일정의 파노라마, 음향과 기억, 얼굴의 일곱개 창을 통해 동양의학의 구성채계를 설명한다.
7장 병과 약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병이라고 무엇이고 욕이란 무엇인지,  아프다는 갓과 처방의 의미를 설명한다.
8장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임신과 탄생은 병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이며 자궁, 폐경, 양생 등 여성들의 몸에 대한 귀중함을 말한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다”는 표현은, 동양의학의 사유체계가 어떤 땅에 발 딛고 있는지를 명징하게 보여 준다.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닌 것이다. 실제로 우주(자연)와 인간의 신체는 연결되어 있다. 산업화된 근대 이후의 사고방식에서는 마치 사회의 전 과정이 분업화되어 있듯, 자연과 신체도 분리된 ‘개체’로 여긴다. 그렇기에 우리 신체의 각 부분도 기능별로 분화하고, 또 의학의 체계도 그렇게 짜여 있다(소화기, 순환기, 내분비, 비뇨기 등).
서양 근대철학의 시작이 ‘의심할 수 없는 나’인 것과 지금의 서양의학 담론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개체에 대한 탐구, 그것은 서양 근대에 제반 분야에서 모두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서양에서는 해부학이 발전했던 것이다.
드라마 ?허준?(원작 소설 <동의보감>)에서 가장 문제가 된 장면은 바로 허준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듯한 클라이맥스 부분이다. 지금까지 많은 동양의학 전문가들이 이야기한 바 있듯이, 이것은 서양의학적 지식에 기반한 상상이다.
동양의학에서의 몸은 가르고 절개해서 보이는 해부학적 신체가 아니라 정(精), 기(氣), 신(神)이 접속하고 변이하는, 자연의 하나이다. 그렇기에 고대 중국과 한국에서는 의도적으로 해부를 무시했던 것이다.

또한 서양의학에서는 감정을 뇌와 연결시켜 말하지만, <동의보감>을 비롯한 동양의학에서는 놀랍게도 오장육부와 감정이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예컨대 기쁨을 주관하는 것은 심장이고, 슬픔을 주관하는 것은 폐이며, 화(분노)를 주관하는 것은 간이다. 실제 <동의보감>에는 상사병으로 밥도 먹지 못하고 누워만 있는 여인에게 화를 내게 해서 뭉친 기를 풀어 주는 치법(治法) 사례부터 이와 유사한 예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저자는 이처럼 몸과 우주에 대한 시선에서부터 감정을 바라보는 관점까지, 이 책에서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신체에 대한 서양의 담론을 짚어 가며, 동양의학 담론의 특이성을 선명히 부각시킨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양의학의 우수함이 아니다. 서양담론의 배치가 전문가들에게 의학의 영역을 넘겨주어 자기 몸과 감정을 들여다볼 계기 자체를 차단한다면, 동양의 담론에서 추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몸과 감정을 컨트롤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 점이 지금 누구보다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지혜라는 것이다.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른 별개의 문제 또는 서로 절대적인 문제일까? 저자는 질병과 죽음을 빼고 나면 삶이 너무 왜소해진다고, 아니, 그걸 빼고는 삶이라고 할 게 없다고 말한다. “태어난 이상 누구든 아프다. 아프니까 태어난다.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곧 아픔이다. 또 살아가면서 온갖 병을 앓는다. 산다는 것 자체가 아픔의 마디를 넘어가는 과정이다.”(p.429) 삶의 풍요로움은, 이 병과 죽음을 어떻게 끌어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기 시작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어느 과(내과, 외과, 피부과, 이비인후과 등등)에 갈 것인지만 잠시 생각한 후 이후의 과정은 전문가에게 맡겨 버린다. 그리고 처방을 받으면 고쳐지겠거니 생각한다. 이 병이 왜 생긴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저자도 자신의 경험을 들어 말한다. 자기 몸에, 자기 병에 너무나 무지하고 게을렀다고, 말이다. 왜 우리는 우리 몸인데도, 우리 몸을 고치는 건 오로지 전문가들의 몫이라고만 생각하게 되었을까? 게다가 그 병은 우리 삶 자체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삶의 정말 중요한 부분, 내가 변할 수 있는 마디를 남의 손에 넘기는 것과 같다. 마치 수능 전문가들에게 내가 원서를 넣은 학교와 전공의 선택까지 다 맡겨 버리고, 좋은 결과만을 바라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학교에서 그 전공으로 사는 것은 ‘나’인데도 말이다. 
저자의 이 고민은 이반 일리히의 문제의식과 동일해 보인다. 일리히의 그의 저작 <병원이 병을 만든다>에서 현대 의학과 병원신세를 문제를  "전문가에게 맡기는" 정도의 수동적인 문제가 아니라 "서양의학과 병원의 건강과 치유에 대한 제도적 독점"으로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일리히의 논점을 다르지만 몸과 건강, 병에 대한 궁극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정의와 복지국가의 차원에서 의료의 독점을 막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는 의료의 수요자인 개개인들이 건강의 주체로, 자기 몸의 주인으로 나서는 것만이 궁극적으로 방향이라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말이 우리 모두가 의학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병원을 이용하지 말자는 뜻인 것도 당연히 아니다. 병을 보는 관점을 바꾸어서, 최소한 병을 만난(이 병을 불러온) 내 삶에 대해 생각하며, 병원을 다니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병을 재빨리 치워버려야 할 어떤 것으로만 보는 데서 벗어나, 왜 이런 병이 오는지, 이것으로 내 감정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예뻐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하기 위해서” 내가 꾸려야 할 일상은 어떤 것인지, 보고, 느끼고, 공부하자는 것이다. 환절기마다 재채기와 콧물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무지의 늪’에서 벗어나 ‘앎에 대한 열정’으로 나아가 보자는 것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질병과 함께하고 되고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면 질병도 죽음도 내 삶 속에서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 아프다는 것은 내 몸 속의 조화가 깨어졌거나 내 몸에 연관된 외부세계와의 조화가 깨어진 것이라는 인식은 내 몸안의 여러 존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지나고 외부의 세계, 즉 물과 공기와 흙과 불, 그리고 사람과 동식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관계하도록 마음먹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살면서 질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듯이 살면서 사람들과의 아픔과 번뇌와 갈등, 해어짐 역시 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내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변해야 하는건 무엇일까?
 
* 책 속의 문장
- 언급한대로 허준의 독창성은 분류학에 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진 건 '5편 106문 목차'다. "내경편,외형편,잡병편,탕액편,침구편 등 다섯 가지 큰 묶음은 우리에게는 별로 낯설지 않은 구성이 아니다, 조선에서는 <동의보감>이 나온 이후 그렇게 의학을 보는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 때문이다. 너무나 익숙하다고 보니 우리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흐름에서 얼마나 이색적인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렇게 다섯 편으로 나누어 살피던 예는 이전에 결코 없었다," (p,57)

- 끝으로 <동의보감>에서 사계절에 맞추어 사는, 평생의 양생법으로 권하는 생활수칙을 소개한다. “하루의 금기는 저녁에 포식하지 않는 것이고, 한 달의 금기는 그믐에 만취하지 않는 것이고, 일 년의 금기는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않는 것이고, 평생의 금기는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다.”(p.163 / <동의보감> ?내경편?에서)

- 오늘날 안채의 가능은 수백만 년 동안 감염인자와 주고받은 상호작용과 직접 연관되어 있다, 감각에서 외모, 혈액 화학작용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것은 질병에 대한 진화 반응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심지어 성적 매력까지 질병에 대한 진화 반응에 의하여 형성되었다. 성적 매력을 느끼는 사람의 향기는 왜 그렇게 매혹적일까? 그것은 그 사람과 나의 면역 시스템이 다르다는 표시이다. 면역 시스템이 서로 다른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자녀들은 부모에 비해 더 광범위한 면역력을 갖춘다, (p.186 샤론 모알렘 <아파야 산다>)

-  "음양의 이치상, 기쁨은 발산하는 양기다. 슬픔은 침잠하는 음기이고. 그래서 전자는 쉽게 잊혀지고 슬픔은 오래 간다. 복은 내탓이고 화는 남의 탓이 되는 것도 이런 원리다. 사랑의 기쁨은 산산이 흩어지지만, 사랑의 아픔은 천년이 지나도록 절대 잊혀지지 않아야 하는 것도 이런 법칙의 산물이다. …… 특히 현대인들은 그 임계점을 넘어 버렸다. 쇼와 이벤트에 길들여지다 보면 기쁨은 더 이상 쾌락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 결과 사람들의 성향은 업!되지 않으면 다운된다. …… 갑자기 분노가 폭발하거나 아니면 아무런 이유 없이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구조가 심화되면 어떤 일을 겪어도 상처가 되어 버린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감정의 회로가 기억이라고 했다. 자의식이라는 구조와 오장육부의 기운적 배치, 이런 조건이라면 어떤 사람도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기 마련이다. 암과 우울증, 그리고 자의식. 이것이 현대인들의 삶을 지배하는 삼종세트다. 이런 몸으론 외부와 부딪힐 때마다 상처투성이가 된다." (p.265)
 
[ 2012년 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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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과 위기, 개정2판
최장집 지음 / 후마니타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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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民主主義)'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형태"라고 정의한다. 

세부적으로는 모든 주요 사안을 유권자가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 대표자를 뽑아 권한을 위임하고 유권자에게 책임지는 대의민주주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등의 인권과 기본권을 헌법으로 규정하는 입헌주의,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등으로 구성된다. 한국의 경우 헌법에 그 모든 사항이 규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전혀 '민주주의' 같지가 않다. 겉으로는 보통,직접선거가 자유롭게 보장되어 있는 것 같지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상당히 제한되어 있고 유권자가 결정에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거의 배제되어 있으며, 유권자가 위임한 대표자들은 유권자에게 '전혀 책임지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 실현에 열중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고 인권과 기본권은 추락할 수 있을 만큼 추락했다.

한국이 겉으로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왜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것일까?
그것은 민주주의의 몇 가지 핵심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론,출판,집회,결사 등 기본권과 인권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대다수 국민들의 요구와 이익이 전혀 대의정치에 반영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1945년 해방 이후 60년... 수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피를 흘렸음에도 어쩌다가 이 정도 수준 밖에 되지 않을까?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이 책은 지난 60년의 현대 한국정치를 소재로 한국민주주의의 기원과 구조, 변화를 다루고 있다. 오늘날 한국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한국민주주의의 초기 형성조건과 제약, 그리고 이후의 사태 전개와 변화를 살펴본 후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저자는 "민주화 이전에 가졌던 민주주의에 대한 좁은 관점으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기는커녕 이해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강조한다.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문제를 정의하는 첫 번째 부분에서는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가 사회적 요구와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채 안락한 보수주의에 젖어 있는 시대 상황을 비판한다. 
두 번째 부분은 한국 민주주의가 사회적 요구와 변화에 비해 보수화되고 정치 계급의 일상사로 고착된 현실의 역사적, 구조적 기원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세 번째 부분은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경험을 다룬다. ‘왜 한국의 국가는 강력한 데 정부는 무력한가’, ‘IMF의 경험과 시장 개혁은 한국 민주주의에 무엇을 남겼는가’, ‘시민사회에 기대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검토한다. 
네 번째 부분은 이 책의 결론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현재 한국민주주의의 위기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저자가 말하는 위기의 본질은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이익을 정치적으로 표출하고 대표하여 대안을 조직함으로써, 한편으로 대중참여의 기반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체제의 안정에 기여하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정치는 투표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면서 대중들의 정치참여에 위기를 가져왔다. 그 이유는 매우 협소한 이념적 대표체제, 사실상 극우와 보수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에 있다. 즉, 보수독점 정치체제이다. 그 결과는 계급구조화가 심화되고 중산층 중심의 사회가 해체되고 있으며 교육의 양극화, 지방의 배제와 서울로의 초집중화라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보수적 민주주의가 태동한 기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해방 후 국제냉전과 남북분단, 이념대립과 전쟁과 남북대치 상황에 근거한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중앙집중화가 이루어졌고 관료국가가 형성되었으며 이념적으로 협소한 정당체제가 구조화되었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보수정당 구조는 이승만과 한민당으로 시작하여 양분되었다. 이승만의 정당은 대한독립촉성회 -> 대한국민당 -> 자유당 -> 민주공화당 -> 민주정의당 -> 민주자유당 -> 신한국당 -> 한나라당로 이어졌고 한민당은 한국민주당 -> 민주국민당 -> 민주당 -> 신민당 -> 민주한국당 -> 신한민주당, 민주한국당 ->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 민주당 -> 새정치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 열린우리당 -> 민주당으로 이어져왔다. 하지만 두 개의 정당의 역사는 협소한 이념, 즉 냉전반공주의를 기반으로 우익,보수정당끼리 경쟁하는 구도라 정착되어 버렸다.

저자는 현대 한국 정치사 60년을 관류하는 어떤 특징적인 요소, 다시 말해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어떤 구조적 특성을 ‘보수적 민주화’로 정의한다. 이는 한국의 국가 형성과 산업화, 민주화에 이르는 거시적 변화를 ‘수동 혁명’ 또는 ‘위로부터의 혁명’, ‘보수적 근대화’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보수적 민주화’는 이러한 테제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민주화 이후에 우리의 경험을 보다 잘 포착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시된다.

저자는 한국 민주화 과정의 특징을 ‘조숙한 민주주의’(주체역량이 미숙한 가운데), ‘운동에 의한 민주화’(6월 항쟁), ‘협약에 의한 민주화’(87년 헌법체계) 등의 개념으로 특징화했다. 이러한 개념들은 강한 냉전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구조, 거대한 국가 관료제 등 권위주의에 친화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국의 정당 체제가 구시대의 이념적인 틀에 얽매여' 있음으로 인해 '탈냉전과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문제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시야와 언어를 요구하는 데 반해 한국 정당 체제의 틀과 언어는 변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오늘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분석에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의 유권자 지지 시장은 두 개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보수적 현상 유지에 편향되어 있는 유권자로서 기존 보수 양당 체제에 의해 대표된 지지 시장이다. 이 유권자 지지 시장은 권위주의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과거형 지지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의 양대 보수정당은 바로 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기존 정당 체제에 의해 대표되지 않고 있는 유권자 지지 시장이다. 이곳의 유권자들은 기존 정당 체제에 비판적이며 강한 변화 지향적 정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앞서 살펴본 과거형 지지 시장과는 다르다. 
매 선거마다 사실상의 제1당이라고 부를 수 있는 투표 불참자의 규모가 보여 주듯이 이들 유권자 지지 시장은 과거형 지지 시장을 압도하는 크기로 발전했다. 이 영역의 유권자는 기존 정당들에 의해 대표되지 않지만, 노무현 현상이나 촛불 집회에서 볼 수 있듯이 뭔가 변화의 가능성이 나타날 때 그 존재를 드라마틱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저자는 한국의 정당 체제가 이들의 요구가 대표될 수 있도록 변하는 것, 그럼으로써 그 보수성과 협애함을 극복하는 것이 최대 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렇지 않고 기존 정당들이 현재의 상태에 안주할 때 정당 체제의 불안정은 계속될 것이며, 동시에 현 정당 체제에 대한 투표자의 비판적 저항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보수 편향적 정당 체제가 쉽게 변화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권위주의 파생 정당과 보수 야당으로 구성된 한국 정치의 초기 질서, 즉 냉전 반공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 편향적 양당 체제는 비판과 부정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정당 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런 논리적 귀결이겠지만 그러나 현실의 정치 세계에서는 여전히 기존의 정치 세력이 지배적이며, 보수적 민주주의의 틀을 깨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대안이 출현할 가능성은 여전히 미약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저자는 '보수 편향적 정당 체제는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정치 세력들 사이의 분화와 재편을 통해 협소한 엘리트 구성 내부에서 권력이 폐쇄적으로 순환되는 기존의 구조를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의 결론에서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변화를 위해 좀 더 근본적이고, 동시에 다소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한편으로 저자는 유권자의 선택을 대안 배제의 상황 혹은 차선의 전략적 결정 상황으로 내모는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가 보기에 현재와 같은 제도적 환경하에서는 정당과 정치 엘리트로 하여금 보수적 경쟁에 몰두하는 것 이외에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도록 책임성을 부과할 수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정치 엘리트들은 끊임없이 사회를 무시하며, 사회 역시 정치 엘리트들을 무시하게 된다. '그것은 정치를 조롱하면서 이런 정치를 정당화하는 들러리 역할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투표율의 하락은 대안이 억압되어 있는 유권자의 절망적 항의로 이해되어야 한다.
'프랑스식 결선투표제'나 비례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의 선거제도 개편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른 한편 저자는 우리 사회의 민주 세력이 좀 더 현실주의적인 가치를 중시 여기는 방향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민주 세력의 지나친 도덕주의와 도식적 이념의 과잉은 현실적 대안을 조직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끊임없는 사변적 논의만을 양산하다가 급기야 현실에 절망하여 초현실적인 외국 이론들에 무비판적으로 심취하거나 문제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 사회적 문제를 개인 내면의 문제로 해체해 버리는 등의 양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운동 세력의 이러한 문제들은 냉전 반공주의의 거울이미지 같은 것으로, 운동이 자율적 기초와 대안적 이념의 기반을 갖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로 이해된다. 
따라서 저자는 내면세계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냉전 반공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총체적 인간’을 강요하는 과도한 집단주의가 운동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적 기초가 보다 튼튼해져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설명하는 기존의 여러 접근과 논의들에 대해 매우 강한 비판적 견해를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주류 언론의 정치관과 민주주의관, 그리고 지식인들의 안일한 보수주의, 나아가 이성적 비판과 논쟁이 존재하지 않는 지식인 사회의 현실은, 한국 민주주의를 내용적, 질적 측면에서 저발전과 쇠퇴의 경로로 몰고 가는 핵심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금 우리는 권위주의와 접맥되었던 냉전 반공주의, 온정주의와 가부장주의, 관료적 권위주의, 기술관료주의, 시장근본주의 등 민주주의의 기반을 잠식하는 여러 형태의 사회적 힘, 조류들과 대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날 민주화를 가져왔던 강력한 운동의 힘은 대체로 해체되거나 약화된 상태이다.
따라서 저자는 "지배적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운 이성적인 비판과 논쟁의 장이 개척되지 않는 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는 한 발짝도 전진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한국민주주의의 이념적 기반으로서 서구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적 이념과 가치를 통해 민주정치에 대한 가치와 규범, 이해와 논의가 보다 경험적이고 현실적인 기초를 갖게 되기를 원한다.


책을 읽는 내내 '수구,우익과 보수로 이루어진 양당 보수독점 정당체제'라는 저자의 진단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리고 중앙집중화와 권력집중 현상을 막연하게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요소의 '서울 집중'이라는 개념보다 '전방위적 엘리트 권력독점과 초집중화'이라는 지적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국토균형발전을 한다고 행정부와 공기업을 지방에 이전하고 기업도시,혁신도시를 지방에 육성한다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발견한 셈이다.

최근 나에게 '엘리트 권력독점'이라는 개념은 가장 큰 화두였다. 한국의 현실을 보더라도 수구와 우익을 대표하는 한나라당, 보수를 대표하는 민주통합당, 진보를 대표하는 통합진보당, 그리고 시민단체와 언론, 종교, 문화예술, 교육계, 행정관료 등 사회 전분야에서 어떤 이념을 대표하든, 어떤 계급계층의 이익을 대표하던 그 대표자를 자처하는 이들은 대부분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교육 수준, 경제수준, 문화수준 등이 이미 심각하게 양극화되어 가는 와중에 모든 분야의 권력을 엘리트들이 독점하는 형국이다. 그러면서 90%의 비엘리트층과 소통하지도 않는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원리가 권위주의, 절대주의, 전체주의, 중앙집중을 해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동시에 다양화, 분권화, 참여, 직접정치, 분산화, 지방화 등을 의미할 것이다. 권력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자들 역시 엘리트 독점에서 벗어나 구조적으로 중산층, 서민에게도 배정되어야 한다. 의식적이고 제도적으로 교육, 훈련을 거처서 스스로 자신들의 계급,계층을 대변할 수 있어야 만이 실질적인 분권화와 민주주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다.

2002년에 초판이 발행되었고 2005년 발간된 이 책이 재판에 해당되는데, 7년이나 지난 2012년 현재 시점에서도 저자의 분석과 진단, 비판과 대안 제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에서 한국사회의 처지가 암담할 뿐이다. 
 
* 참고할 만한 문구

- [1987년 운동권에 대한 평가]  
"1987년 민주화 운동은 전두환 정권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극대화하고 정당성이 약한 정권의 약점을 최대한 노출시키면서 한대를 극대화하기 위해, 정권의 강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거리에서의 투쟁을 중심적 수잔으로 한다. 그러나 민주적 개방은 그동안 폐쇄되었거나 제약되었던 선거공간의 개방을 의미한다. 선거를 위한 전문직업 집단이자 조직이 바로 정당이고 그 전문가 집단이 구체제로부터 일정한 명망을 갖는 직업적 정치엘리트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정치의 무게심이 일순간 거리에서 선거공간으로 이동하면서 힘의 중심은 일거에 운동으로부터 기존의 정당으로 이동한다. 민주화를 가져온 일등공신인 운동 집단들은, 민주화라는 한 가지의 대의와 투쟁목표가 일차적으로 성취되면서부터, 이제 민주화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내용의 민주화를 추구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급속한 분열을 맞게 되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정초선거가 될 1987년 12월 대선에서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분열만큼 운동권이 제도권 야당에 종속되는 '관계의 역전'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후보단일화', '비판적 지지', '독자후보'로 불리는 운동권의 분열은 운동권의 약함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애당초 '독자후보'가 당선가능성이 높거나 운동권을 대표하여 정치세력화의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없었기 대문에 논외로 치더라도, '후보단일화'와 '비판적 지지'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하나는 운동권 스스로가 정당을 통해 정치 세력화하고 대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운동권이 정치적 엘리트 수준에서의 호남 대 반호남이라는 지역대결구도를 저지할 만큼 강한 영향력을 갖지 못하고, 반대로 그 구도 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운동권이 선거경쟁의 공간에서 독립적인 중심으로 서지 못하고 구정치 엘리트들의 종속변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운동의 약함이 한국민주주의의 구조적 제약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은 운동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된 것으로, 무엇보다 민주화 과정에서 운동이 어떤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고 이를 공유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운동권이 지녔던 이념은 대체로 사회주의나 급진적 민족주의처럼 도식적이고, 낭만적이고, 교리적이고, 비경험적이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강력한 군부독재와의 투쟁 속에서 그들은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이론에서 투쟁의 무기를 발견하려 하였다. 

운동권의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선거경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선거불참여주의적 경향 또는 선거에 소극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이러한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 내에서의 분파주의를 강화하고,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현실을 경험적으로 보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낳았으며, 무엇보다도 정치 세력화에 장애요인이 되어 기존의 보수적 정당들과는 다른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했다. 다시 말해 운동권의 이념적 급진성은 운동권의 '강함'이 아니라 '약함'의 반영이었다. 그 결과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게 되자 운동권은 독립적 위치를 상실하고 기존의 제도권 야당의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해체되고 말았다."

?"생활수준이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는 게 중요한 외형지상주의 사회, '부자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되는 금전만는주의 사회는 노동을 천시하게 만드는 노동배제적 정치체제의 결과이자, 이런 정치체제를 만들고 획일주의와 상층이동의 과열을 만든 냉전반공주의의 병리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독립적 위치를 상실하고 기존의 제도권 야당의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해체되고 말았다."
 
[ 2012년 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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