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정치경영연구소 기획총서 1
최태욱 엮음 / 폴리테이아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유주의(Liberalism)'는 그 역사나 내용과 상관없이 우리나라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는 이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이나 언론, 학계, 경제계 등 어디에서도 자유주의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차라리 1972년 박정희 군사정권에 의하여 일방적으로 개정된 유신헌법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후 이 개념과 용어를 특정 정치세력이 전용하고 있다. 원래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결합이었다. 18세기 유럽에서 계몽주의자들이 폭력적인 왕권에 대항하여 만민평등의 자유주의와 인민주권의 민주주의를 주창하면서 탄생한 이념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무자비하게 탄합하던 박정희 유신 군사정권이 당시 반공냉전주의를 등치시키는 이념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웠던 것이다. 공산주의는 곧 전체주의이고 전체주의의 반대는 곧 자유주의라는 아주 단순한 이분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사용한 것이다. 히틀러처럼 무자비한 군사파시스트 주제에...ㅠ
 
만민평등을 핵심 이념으로 하는 자유주의는 한국 내에서 수구세력, 우익세력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 좌파세력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소위 진보세력이라 불리는 많은 이들 중에서도 '자유주의' 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수구,우익세력이 수십 년 동안 독점하여 사용했다는 이유로 사용하기를 꺼려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자유주의'나 '자유주의자(Liberalist)'라는 단어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차라리 무정부주의자나 아나키스트라는 단어에 대한 호감이 더 크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주변의 적지 않은 지인들 역시 마찬가지임을 느껴왔다. 아마도 내 나이대의 486세대의 경우는 지난 1980년대 대학에서 공부하고 고민하고 활동하던 경험으로 인한 선입견이 크다고 생각된다. 당시 대학과 학계, 지성계에는 마르크스나 레닌의 저작, 또는 관련된 저작이 학생들이 세미나하면서 공부하던 주요 '텍스트'였다. 당시 일본이나 미국을 거쳐 대학에 들어온 이념은 민주주의나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또는 남미의 제3세계론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학습의 수준은 '추상적인 혁명 이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교재에는 마르크스나 레닌의 주장, 사상, 이념이 '정통'이었고 베른슈타인과 같은 비주류 인사의 주장이나 이념은 자유주의, 수정주의, 또는 배신주의로 매도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어리고 순수한 대학생들은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와 같은 자유도 민주도, 민중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던 사회에 대한 미래의 이상향으로 사회주의 같은 이념을 여과없이 받아들였던 것이고 '수정주의자'나 '자유주의자'의 대열에 끼거나 낙인찍히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랬던 젊은 시절을 거친 후, 대부분의 486세대는 내부적으로는 서구에 존재했던 근현대 정치사상의 역사와 그에 대한 비교, 장단점에 대해 더 이상의 추가 공부를 하지 않았고 외부적으로는 소련과 동구권 체제가 붕괴하여 시장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면서 미래의 이상적인 방향과 전망을 잃어버렸다. 갈길을 잃은 채 각자의 생업전선에 나서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조리하고 문제가 많은 우리나라 체제의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이 그 이후 20~30년을 살아오면서 구체적인 현실에서 사회가 크게 바뀌어졌거나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눈 앞에 펼쳐져 있는 현실은 겉보기에는 많은 것이 변했으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밖에 없으니까...
 
박원순 현 서울시장이나 안철수 원장이 한국정치의 주요 관심인물로 부상한 작년 8~9월 이후, 나의 페이스북과 트위터 상에는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원장이 '보수'또는 '자유주의자'라는 지적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이 때의 '자유주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다분히 부정적인 느낌을 내포하는 단어로 사용한다. 자칭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좌파라고 내세우는 사람들이 '자유주의자'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 편이다. 이 때의 '자유주의자'는 극우보수주의자가 아니지만 자신들의 진보세력, 좌파세력 내에 상대방을 받아들이기 싫을 때 적용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글을 자주 접할 수록 "과연 '자유주의', 또는 '자유주의자'는 그렇게 진보적이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깊어갔다.
 
보편적인 인권사상,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정치활동에서의 이성적 자유,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자유주의 핵심 영역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보펴적 인권사상의 측면에서 보면, 개인의 자유, 개인의 자율성, 개인의 기본권이 국가와 공동체의 틀 안에서, 그리고 한 사회에 군림하는 지배적인 목표, 가치관이나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진 어떤 집단적인 가치에 우선한다는 관념과 문화, 사회적 가치가 자리잡을 때 만민평등의 자유는 실현된다. 그러할 때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얼마나 이런 이념과 가치, 정치사회관을 수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여전히 집단주의와 전체주의, 차이와 다양성의 불인정, 폄하나 비난이 지배적이지 않을까?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측면에서 보면, 정당은 정치를 경험하고 그 효능을 스스로 터득하는 정치교육의 장이다. 자율적, 자유주의적 인간은 이런 공적 공간에서 발생한다. 좁게는 대통령, 넓게는 국가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좌우릴 막론하고 한국사회의 정치의식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을까? 이는 한국사회가 '소극적 자유'의 가치를 얼마나 수용하고 얼마나 사회에 뿌리내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문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이 문제에 대한 고려를 회피하는 태도는 보수파들에 비해 개혁의 열정이 강한 진보세력 사이에서 결코 더 약한가?
정치활동에서의 이성적 자유의 측면에서 보면,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와 그 이후를 이어가고 있는 진보적 엘리트 세력들 사이에서 정서적, 추상적 급진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과 갈등을 중심으로 한 정치현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적 정치조건, 정치문화에서 자유주의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민주주의가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상정되는 이상과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면서, 정치를 뛰어넘어 이를 일거에 해결코자 하는 경향성에 대한 어떤 해독제적 역할이 아닐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민주주의가 대의제를 중심으로 인식되어 미국처럼 보수독점 체제를 형성할 수도 있고 북유럽처럼 사회적 합의제로 작용할 수도 있듯이 자유주의 역시 어느 세력이 어떤 측면을 주도하느냐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될 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을 역사적으로, 과정상으로, 프레임이나 주도성의 차원에서 보지 못하고 '자유주의는 어떤 것'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도그마로 작용하고 자유주의의 본성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왜 '신자유주의'라는 단어에만 집착할까?
 
 
이 책은 그런 내가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다.(지난 금요일 공부모임에서 세미나를 진행한 책인데 교재로 결정할 때 세미나에 나는 참석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일이 겹쳐서 금요일 세미나 참석도 못했지만...ㅋ)
처음 '자유주의'에 대한 이념과 역사, 전개과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 책은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였다. 최교수는 그 책에서 우리나라에서 묻혀져 있던 '자유주의'의 원래 이념과 정신, 내용과 필요성을 지적해 주었다.
 
이 책은 소수의 사람들, 즉 자유주의는 본래 진보적이거나 혹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이 내세운 (자유주의가 진보적일 수 있는) 조건은 물론 서로 다르다. 그중 고세훈(3장)의 조건이 아마도 가장 까다로울 게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자유주의가 정녕 진보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 정치를 통해 개혁에 대한 현실적인 실천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비해 최장집(2장)이 덤덤히 서술하는 자유주의의 진보성은 그저 당연한 것이다. 그는, 냉전 반공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시장주의나 경제적 자유주의로 연결되는 자유지상주의는 자유주의와는 전혀 다른 이념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자유주의란 법치주의, 입헌주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의미할 뿐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본래부터 만인평등의 이념이다. 그러니 “만약 ‘진보’가 …… 현실 속에서 권력과 사회경제적 자원에 있어 약자와 소외자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자신의 위치에서 실제로 그렇게 행위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의 이념에 가깝다.”
설령 (고전적) 자유주의가 애초에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사상이었다 할지라도 그 이유 때문에 자유주의가 보수의 틀에 갇혀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이근식(1장)이 정의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와는 결별을 선언한 ‘새로운’ 자유주의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부정하고 대신 사회적 자유주의로 자유주의 본래의 진보성을 회복, 유지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이 책의 필자들 대부분은 진보적 자유주의가 한국의 신자유주의 대안 이념으로 충분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유럽에서 자유주의의 진보성 회복 운동이 복지자본주의 체제라는 결실을 맺었다면, 21세기 전반기에는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벌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그간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왜곡,오용되어 왔다. 이제 제대로 논의해 봐야 한다. 그것을 본래의 그 광명정대하고 진취적이며 역동적인 성격의 자유평등이념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한국의 시민들이 그 진보적 자유주의의 가치에 공감해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는 대안 체제 구축에 나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금의 한국에서도 더 많은 민주주의를 통해 재벌과 대기업 등의 자유를 통제할 필요성이 증대하고 있다. 정치권력보다는 경제 권력의 특권적 자유가 일반 시민들의 평등한 자유에 대해 더 큰 위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통제는 구미의 역사가 증명하듯 진보적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 진보성에 관한 한 자유주의는 당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가 진보성에 관해 의심받을 이유가 없다면 다음으로 따져 봐야 할 것은 그 진보성의 발현 능력, 즉 사회개혁 실천능력이다.
지금 한국에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산적해 있다. 신자유주의는 한마디로 자유주의 사상 중에서 정치적,사회적 자유주의를 제거하고 경제적 자유주의만 강조한 기득권자들의 논리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언어의 조작'이라고 생각한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정의사회'에서 정의라는 단어를 우롱하고 이명박 정권이 '녹색성장'에서 '녹색'을 덧칠한 것처럼... 
진보적 자유주의가 실천력 있는 진보 이념이라면, 고세훈의 지적대로 “확대와 심화일로에 있는 빈곤과 양극화 현상을 해소하는 데 체계적이고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박동천(4장)의 표현을 빌리면, “정치의 실제적 과제, 즉 공동체를 위한 실존적 선택”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실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의미 있는 진보 이념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이제 특정 계급의 이익만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이익을 위해서도 봉사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복지국가 전략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그들은 노동 세력을 뛰어넘는 ‘복지 세력’의 연대를 강조한다. 2차 세계대전 전후부터 시작된 서구의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이와 같이 계급 정치 일변도에서 벗어나 계급 교차적인 시민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것의 진보적 자유주의와의 차별성은 더욱 옅어진다. 결국 사회민주주의든 진보적 자유주의든 어느 깃발을 들던 간에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위한 복지 세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한 한 양자 간에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노동 정치만으로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봉급생활자이지만 그들 중 ‘노동계급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의식을 갖고 생활한다. 그러니 노동조합 조직률도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해 OECD 최하위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약한 노동이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유럽의 경우와 같이, 아니 그 경우보다 더 절실하게 강한 시민 연대가 필요하다. 계급을 가로지르는 시민 연대가 하나의 복지 세력으로 우뚝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보편주의 복지국가로 가는 길은 열린다. 한국에서도 이젠 사회민주주의가 특별히 실천력이 뛰어나다는 주장은 타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민 민주주의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해 가야 한다는 점에 있어 그것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동일할 뿐이다.

자유주의의 최대 장점은 일관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유연성과 시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최장집은 “자유주의의 힘은 그것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성을 갖는 원리와 가치를 함축하고, 인간의 사회경제적 발전, 문명 및 교육의 발전과 더불어 그 보편성을 확대시켜 왔다는 데 있다. 그런 평등의 이념은 전 사회적으로 확장되고, 한 사회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 왔다. 동시에 보편적 인권의 내용은 심화되어 왔다”라고 경탄한다. 자유주의는 어느 때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리고 다른 때에는 경제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다. 경제적 자유를 외치던 고전적 자유주의가 사회적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로, 그리고 심지어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로까지 발전해 가는 까닭이다. 강조점은 이처럼 시의에 따라 적절히 달라지나, 지키고자 하는 가치는 늘 동일하다.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누려야 할 자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의 자유 수호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지상과제다. 이 자유를 훼손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집단이나 조직의 권력은 자유주의의 이름으로 제한하고 통제해야 한다. 그 권력은 정부일 수도 있고, 대기업이나 언론, 혹은 종교 집단일 수도 있다.

케인스주의 혹은 민주적 시장경제, 질서자유주의 혹은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민주주의 혹은 복지자본주의 등 명칭을 어떻게 하던 간에 전후에 등장한 구미의 조정시장경제 체제는 그 내용에 있어 모두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체였다. 달리 말하자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현지 사정에 맞는 방법론을 택해 자신의 가치를 시의 적절히 구현해 갔다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적 방식도 그 다양한 방법론 중의 하나였음은 물론이다.
최장집이 강조하듯이, “자유주의의 장점은 그 개방성과 자체 교정 능력을 갖는 유연성으로 인해 현실의 사회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이념은 한 사회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운영함에 있어 그 정치적 환경이 어떠한가에 따라 ‘신’자유주의(현대의 신자유주의와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즉 국가의 시장경제에 대한 적극적 개입을 주장하는 새로운 자유주의)가 될 수도,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실천력은 이와 같은 방법론적 유연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의 진보성은 현대 사회민주주의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실천력은 한국적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더 우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 구축에 필요한 신자유주의의 대안 이념으로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충분히 훌륭한 이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전반기에 구미 선진국들이 그리했듯이, 21세기 전반기의 한국도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해 한국형 조정시장경제 체제를 발전시켜 갈 여지는 충분하다. 홍종학(5장)은 김대중 정부에서 이미 그런 실험이 행해졌음을 상기시킨다.
사실 ‘국민의 정부’는 한국 최초로 진보적 자유주의를 지향한 정부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라는 국정 목표 자체가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한 것이라고도 해석된다. 비록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지만, 한국에서 민주적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보고자 했던 의도는 분명했던 것이다. 홍종학은 김대중 정부의 실험이 성공에 이르지 못했던 요인을 두 가지로 정리한다. 하나는 정부의 민주적 개혁 역량이 재계의 힘을 관리,조정하기에는 부족했던 탓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 진영의 담론이 실천적 정책으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맞는다면 진보적 자유주의에 기초한 민주적 시장경제를 이루기 위해서는 최소한 다음 두 가지 조건은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 하나는 시장에 대한 정부의 민주적 개입이 효과적이고 지속적일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조건을 갖추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와 정책으로 구체화된 민주적 시장경제 체제의 현실적 설계도를 제대로 작성하는 일이다.
유종일(6장)은 이 책에서 뒤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즉, 진보적 자유주의의 시각에서 민주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대안 체제의 구성 요소와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민주주의의 평등과 시장경제의 효율을 화학적으로 결합한 체제”는 기회의 평등과 분배의 평등화를 위해 민주적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는 체제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적 조건에서 이 같은 사회경제 체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재벌 개혁, 노동시장과 금융시장의 민주화, 복지의 확대, 그리고 정부와 공공 부문의 개혁이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선학태(7장)와 최태욱(8장)은 앞의 조건에 대해, 즉 정치적 조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채워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논의한다. 두 사람은 공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국형 사회적 합의주의'의 창안과 정착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합의주의야말로 민주적 시장경제의 근간인 동시에 그 체제의 작동을 가능케 하는 민주적 거버넌스 그 자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선학태는 한국형 모델로서 “동반 발전형 사회적 합의주의”를 제시한다. 한편, 최태욱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구현을 위한 정치적 조건은 합의제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비로소 충족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다수제 민주주의와는 달리 사회적 합의주의를 촉진시키는 제도적 기제를 내장하고 있는 바, 그것이 바로 민주적 시장경제를 포함한 조정시장경제 체제의 발전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제도적 기제란 다름 아닌 ‘포괄 정치’를 작동케 하는 비례대표제, 온건 다당제, 연립정부 등의 협의주의 정치제도들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저자의 사회적 합의주의가 아직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여러 세력이 독점이나 독선이 아닌 합의를 해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내재적 각성이 필요한데, 아직 한국사회의 기득권 집단과 그들을 대신하는 정당은 전혀 그런 생각이나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가능하다면 10~20년 동안 지속적으로 민주진보 진영이 총선과 대선을 연이어 승리하면서 과거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질서와 체계를 바로잡고 사회복지를 향상시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최선의 합의주의' 정도로 끝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지지세력과 99% 유권자가 등을 돌릴 수 있고 반대급부로 파시즘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얻을 점은 자유주의라는 단어나 개념, 근대 자유주의의 복권, 또는 자유주의의 장점이나 가능성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의 본성적 가치와 철학, 즉 만민평등의 이념, 본원적 평등,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앞으로의 정치사상의 중심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난 자유주의자로 살고 싶다.
  
[ 2012년 2월 19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본주의 새판짜기 - 세계화 역설과 민주적 대안
대니 로드릭 지음, 고빛샘.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미국이라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는' 한국의 관료들과 정치인들, 언론인, 종교인들, 학자들, 그리고 깨어나지 못한 백성들... 
여기 이들에게 세계화에 대해 소개할 책이 한 권 있다. 이 책의 저자 대니 로드릭은 '마국 광신도'들이 꿈에서라도 자식들을 보내고 싶은 하버드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했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의 국제정치경제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만하면 '뼛 속부터 친미'인 가카와 우익 정치인, 관료, 언론인, 학자, 종교인들이 귀를 쫑긋 세울 만 한가?

하지만 저자 로드릭은 그들의 선입견이나 바램과는 달리 '세계화 주창자'가 아니라 '비세계화' 경제학자다. 그는 열렬한 자본주의 추종자이자 충실한 민주주의 신봉자다. 동시에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시장의 실패'와 '시장의 무능'에 대해 정확하게 꿰뚫고 있고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위해 국가와 제도, 그리고 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다. "한마디로 시장에는 '스스로 만들고, 규율을 세우고, 안정되게 하고, 적법화하는 능력'이 없다."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지금 한국의 주류 정치인, 학자, 언론인, 기업인들이 한국이라는 국가와 한국경제에 얼마나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요즘 정치권과 언론에 한미FTA에 대한 폐기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야당과 상당수 사람들은 한미FTA 협정이 불공정하고 편파적이고 한국의 사법제도와 공공성을 제한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하고 재협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세계화'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저자는 '세계화' 자체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뿐더러 금융 세계화의 경우 현재의 국제 금융체제로서는 명백하게 부적절함을 지적한다. 특히 자국 내의 경제구조와 제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세계화 자채가 해당 국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고한다. 이런 관점에서 평가해 보면, 한국의 경우 FTA(자유무역협정)는 고사하고 세계화 자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 내부의 경재구조와 제도, 민주화 정도를 고려하면 WTO 체제도 전체 한국경제에 도움아 되지 않을 수 있다, 차라리 기본적인 국제무역체제는 GATT(브레턴우즈) 체제가 한국에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1997년 초 <세계화는 너무 진행되었는가? Has Globalization Gone Too Far?>라는 책을 냈고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우리나를 비롯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 경제위기가 닥쳤다. 아시아 경제의 위기를 예견했다는 자부심도 있었지만, 저자는 자신의 당시 예견이 국제 상품경제에만 국한되어 금융시장의 위기를 진단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내가 보기에는 겸손한 말이지만...)
아시아 경제위기 후 저자는 몇 년간 금융 새계화 문제에 집중하여 연구했다. 2007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논문을 요청하자 그는 <금융 세계화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라는 논문을 작성했다. 
"금융 세계화는 몇 가지 약속을 했다. 기엄가들이 자금을 모으는 데 도움을 주고, 위기를 더 잘 버텨낼 수 있는 경험 많은 투자자들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현금이 부족하고 여러 쇼크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으며 다각화 능력이 부족한 개발도상국들이 가장 큰 혜택을 입을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처럼 정작 잘 나가는 국가는 자본을 받아들인 나라들이아니라 잘사는 나라에 자본을 빌려준 나라들이었다. 국제 금융에 의존한 국가들의 실적은 형편 없었다." 저자는 왜 국제 재정지원이 개발도상국들이게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했는지 조명하려 했다.
그 논문을 출판사에 보내자마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미국을 집어 삼켰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그 다음에는 다른 선진국들애서, 엄청난 금액의 구제금융을 실시하고 금융회사를 매입했다. 금융세계화가 바로 이 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아시아와 산유국들의 지나친 절약은 주택 경기 거품과 그로써 탄생한 파생상품이라는 거대하고도 위태로운 구조물을 한층 부풀렸다. 

그 위기가 월스트리트에서 세계 금융 중심 도시들로 그토록 쉽게 퍼져나간 이유는 금융 세계화로 모든 대차대조표가 한데 뒤섞였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저자는 자신이 또 다시 수면 바로 아래 있던 더 큰 사건을 놓치고 말았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물론,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저자 뿐 아니라 거의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차이가 있던 것은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세계롸, 특히 금융 새계화가 전 세계에 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예측했고 저자를 비롯한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정치가와 금융가, 학자들은 그런 위기가 발생하는 원인이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예측이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예측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학자들과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늘 당시 유행하는 담론을 지나치게 믿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담론이란 시장이효율적이라는 등, 금융 혁신으로 리스크가 그것을 잘 견뎌낼 수 있다는 등, 자가 규제가 최고라는 등, 정부의 개입은 비효과적이고 해롭다는 등 하는 것들이다. "오만은 사람의 눈을 가리는 법이다."
저자는 새계 무역체제가 금융체제와 다른 이유로, 무역 관계가 무너진다고 해서 금융처럼 연쇄 파산이 발생하진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규가 지나치게 구속적이고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 그 효과는 포착하기 어려우며 다자간 상호 자유무역 원칙과 비차별 원칙에 따라 점진적으로 조정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경험한 이후 몇 년 사이에 현재의 국제 무역체제가 부유한 국가들에게 반드시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 안에서 경제 세계화를 지지하는 세력이 급격히 약해졌다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다. 
금융위기 전까지 줄기차게 세계화를 주장했던 대표적인 전문가들 또한 그러하다. 기존에 세계화를 반대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 뿐 아니라  세계적 경제학자 폴 새무앨슨, 2008년 노벨 경제학 수상자 폴 크루그먼,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부의장 출신의 앨런 블라인더, 칼러니스트이자 세계화 옹호론자 마틴 울프, 클린턴 행정부의 세계화 추진자 래리 서머스도 회의론자로 돌아섰다.
물론 경제학자들 대다수는 어느 누구도 세계화에 반대하지 않는다.하지만 세계화를 더욱 효과적이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국가 내, 국가 간 기관을 설립하고 보완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다.

저자는 1970년대 이후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경제가 '세 가지 정치적 딜레마(trilemmma)'에 빠져 있음을 밝혀낸다. 그것은 민주주의,국민국가, 세계화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가 불가능하다는 개념이다. 세계화를 추진하려면 국민국가나 민주주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와 세계화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족자결권을 지키려면 깊은 민주주의와 깊은 세계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불가피하게 아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자의 생각은 명쾌하다.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하이퍼글로벌라이제이션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자신의 사회적 합의를 보호할 권리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글로벌 경제의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한국은 민주주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국민국가로서의 지위도 불안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를 무차별로  강행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국민국가로서의 자결권도 침해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녕 한국 내 기득권들자와 지배계층은 한국을 1980년대의 중남미나 아프리카 후진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정말 현재의 한국 상황에서 세계화를 강행했을 때 자신들의 안위와 자배력이 유지 또는 강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저자는 17~18세기 자본주의의 태동 이래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있었던 시스템과 세계화가 진행되었던 시대의 특징과 흐름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두 가지 시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계화 담론을 제시한다. 첫째는 각국 정부와 사장아 대체제가 아닌 보완재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넓고 바람직한 시장을 원한다면 정부의 개입과 관리가 필요하다. 가장 효율적인 시장은 약한 정부가 아니라 강한 저우가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본주의 모델은 단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시장, 금융체제, 기업지배구조, 사회복지 같은 제도적 장치를 다양하게 조합함으로써 경제번영과 안정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국가든 자국의 필요와 가치에 따라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며, 이는 한 국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저자가 20세기에 자국의 경제발전과 국제무역체제 속애서 모범적이라고 평가한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이다. 한국의 위정자들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체제와 방식을 내던져 버리고 한국경제와 국민들을 '세계화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는 셈이다. 참고로 21세기에 적절하다고 지목되는 국가는 중국과 인도다.

그렇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세계화의 새로운 담론은 무엇일까? 그것은 '건전한 세계화'를 위해 4가지 방향을 제시한다. 그것은 국제 무역 제도 개혁, 국제 금융 규제, 국제 노동이동 완화,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구축이다. 
 
 
- 인상 깊은 문단 :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경제 에너지를 해방시키는 점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번영을 누리는 모든 국가가 자본주의를 채택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는 사유재산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자원을 분배하고 경제적 보상의 정도를 결정하는 역할을 시장의 손에 맡긴다. 세계화는 자본주의를 범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는 세계화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세계화의 미래를 논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다." 

"시장은 까다로운 전제조건을 요구한다. 세계시장은 더더욱 그러하다.
식량이나 다른 일용품 시장은 사람들이 서로 잘 알고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작은 공동체 안에서도 비교적 잘 돌아갈 수 있다. 작은 무리의 사업가와 금융인들도 공통의 신념체계만 가지고 있다면 무역과 교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보다 조금이라도 크고 범위가 넓은 시장이 오래 지속되려면 이를 뒷받침할 제도가 필요하다.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한 재산권 규범, 계약을 강제 이행하도록 해주는 법정, 구매자와 판매자를 보호해주는 무역 규칙, 사기꾼을 처벌하는 경찰력, 사업주기를 관리하고 부드럽게 이어나가도록 도와줄 거시정책 틀, 금융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기준과 감독, 금융위기 예방에 기여하는 최종 책임기관, 공공규범에 규합하는 보건 안전 노동 환경 기준, 약자를 위로하기 위한 보상 체제, 시장 리스크에 대비한 사회보험, 그리고 이 모든 제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금을 조달할 세금까지 그 규모는 어미어마하다.
한마디로 시장에는 '스스로 만들고, 규율을 세우고, 안정되게 하고, 적법화하는 능력'이 없다."

"세계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세계 시장은 매우 취약하다. 국가 차원에서 규제와 법령으로 지배하고 지원하는 국내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계 시장에는 독점 규제 기관도, 조정 기관도, 안전망도, 최종 책임자도, 무엇보다 전 지구적 민주주의도 없다. 바꾸어 말해, 세계 시장의 지배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불안정하고, 비효율적이며, 대중의 인정을 받기도 힘들다. 이러한 세계 시장의 특성은 각 국가의 시각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세계화에는 불안정 요소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세밀한 조정을 통해 균형점을 찾을 때에만 세계 경제 체제를 건전하게 유지할 수 있다. 각국 정부에게 지나친 권력을 주었다가는 보호무역주의와 자립 정책을 초래할지 모른다. 반대로 시장에 자유를 지나치게 부여했다가는 세계 경제 불안을 초래해 필요한 사회적 정치적 지원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 2012년 2월 1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기본기 - 개정판 사기 (민음사)
사마천 지음, 김원중 옮김 / 민음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구사회를 이해하려면 서구 유럽이 겪어온 유럽역사를 알아야 하고 그 중에서 특히 그리스,로마 시대와 기독교 시대를 알아야 한다. 서구 언어와 습성, 문화와 학문, 정치와 경제의 근원적인 뿌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동양사회를 이해하기 위해, 특히 중국과 한국(북한 포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다. 한반도 문화와 정치경제 역시 중국 고대사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과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경우 중국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 역시 고대의 문헌이 상당수 전해져 내려온다. 현재 전세계를 정치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사상과 학문, 문화가 서구이기 때문에 세계적인 학문 분야에서는 서구식 내용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동양의 각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성장해 나가면서 동양의 고대 유적과 학문이 전세계에 전파되고 있고 서구 연구진들 사이에서도 전공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뿐 만 아니라 20세기 후반 이후 서구 중심의 학문과 문화, 정치경제가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한계에 봉착하면서 역으로 동양의 그것들애 대한 탐구가 본격화되는 측면도 크다.

그런 면에서 1945년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번도 흔들림 없이 서구 중심, 특히 미국 중심의 학문과 문화, 정치경제가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20세기 말부터 사상학문에서의 통섭이 활발해지고 동양적인 가치와 제도가 일정 부분 인정받고 연구되고 있음에도 한국 내 학계와 문화계, 기득권 집단들 사이에서는 미국식 문화와 제도에 대한 과도한 편중, 잡착과 추종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사회 전체를 위해 실로 심각하게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막연하게 중국을 싫어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역사의 뿌리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게된 이유다. 이 책 말고도 읽어야할 책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지만...ㅋ

이 책은 중국 24사(史)의 필두이자 전 세계에서도 역사서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사기> 130편 중 제왕들의 전기를 담은 <본기> 12편을 역자가 한글세대에 맞춰 현대적으로 옮긴 것이다. <사기 본기>는 황제(黃帝)부터 시작하여 사마천이 <사기>를 집필하던 당시의 왕인 한나라 무제까지 각 시기별로 패권을 장악했던 제왕들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각양의 인물들을 호령하고 이끌었던 제왕들의 일대기를 담은 [본기]는 역사의 중심에 ‘인간’을 두고자 한 사마천의 역사관이 그대로 녹아든 <사기>의 근본이 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진시황이 중국 영토를 통일했다면, 사마천은 관념적 ‘통일 중국’을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일컬어질 정도로 사마천의 <사기>가 가진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지대하다고 평가된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총 13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전체 형식으로 쓰인 첫 역사서이다. 일반인들에게는 <본기>보다 <열전>이 많이 알려져 있다.
시간적으로는 상고(上古) 시대부터 한나라 무제 때까지 아우르며, 공간적으로는 옛 중원을 중심으로 주변 이민족의 역사까지 다루었다.

<사기>의 첫머리를 이루는 <본기>는 중국의 시조로 여겨지는 황제(黃帝)부터 한 무제에 이르는 제왕들의 이야기다.
이전의 편년체 역사서에서 시간순으로 모든 인물과 사건을 한꺼번에 기술했던 것과는 달리, 사마천은 먼저 제왕을 내세워 뼈대를 잡은 다음 제후 등의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중심과 주변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 이로써 중국은 하ㆍ은ㆍ주 삼대에서 진나라를 거쳐 한나라에 이르게 되는 통일 중국의 맥을 가지게 되었다.
이전에는 다양한 민족의 크고 작은 나라들이 할거하며 패권을 다툴 뿐이었던 거대한 땅이 <사기> 이후 ‘중국’이라는 관념적 공간으로 전환되면서 수십 개 나라의 역사도 하나의 중국 역사로 편입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수천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져,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함에도 통합된 중국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저자는 사마천이 [오제 본기]와 [하 본기], [은 본기]를 통해 시도한 '신화의 역사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사마천이 <사기 본기>에 실은 '오제'가 실존했는지에 대해서는 현대의 역사가들 입장에 서 있다. '오제'와 하, 은, 주 3국은 역사적 실체보다 신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은나라 시대의 유물로 추정되는 일부 유적이 발견되기는 하였지만, <사기 본기>애 담겨 있는 인물과 치세, 사건과 상황은 현대의 관점에서 평가할 때 실체보다는 신화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처음 알게된 것이지만, <사기>는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발분(發憤)의 마음으로 쓴 역사서이다. 따라서 나라에서 관장한 관찬 역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사마천만의 독특한 사관이 곳곳에 드러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사기 본기>에 실린 [항우 본기]와 [여 태후 본기]이다. 사마천은 역사는 개개인의 움직임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으로 <본기>의 시작부터 전설 속 제왕 황제(黃帝)를 전지전능한 신이 아닌 덕을 지닌 인간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인(人)’을 역사의 중심에 두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은 <본기>의 구성에도 파격을 일으킨다.
항우는 진(秦)나라 멸망 후 한(漢)나라가 패권을 차지할 때까지 실질적으로 천하에 권력을 행사했다. 항우는 한 고조 유방과 끝까지 대적하며 한나라를 멸망 위기까지 몰아넣었던 인물이지만, 사마천은 이러한 항우의 역할을 인정하여 <본기>의 한 편으로 [항우 본기]를 쓰고 [고조 본기] 앞에 두는 모험을 감행했다. 또한 한 고조의 정실부인이자 혜제의 어머니로 고조 사후 권력을 행사했던 여 태후를 내세워 [여 태후 본기]를 쓴 것도 이례적이다. 형식적으로 권좌에만 앉아있는 '허세'가 아니라 현실을 움직인 '실세'를 인정하고 인간의 활동을 중심에 두는 사마천의 사관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렇듯 사마천은 인간 중심적 역사관을 기저로 하여 탁월한 안목으로 인간과 세계를 탐구했고, 2000년이 넘도록 ‘인간학 교과서’라고 불리며 회자되는 <사기> 속에 생생한 인간상을 담아냈다. 

역자는 <사기>가 "역사서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중에서도 항우가 입지를 굳히게 된 '거록'에서의 전투 장면이나 항우와 유방이 회동한 '홍문연'에서의 긴박한 장면 등을 묘사한 [항우 본기]는 독자마저도 숨죽이게 하는 명문으로 손꼽힌다. 또한 <사기>에 담긴 제왕들의 이야기는 '사면초가', '금의환향' 등 수많은 고사를 만들어 냈고 당시(唐詩)나 송시(宋詩) 등의 옛 문학뿐 아니라 현대의 여러 작품에서도 모티프가 되어 꾸준히 이어졌다.
[진시황 본기]는 <진용>이나 <영웅> 등의 영화에서 배경이 되었고, 항우와 우 미인의 이야기를 담은 [항우 본기]는 경극 <패왕 별희>를 낳았다. 그 외에도, 걸왕과 함께 폭군으로 유명한 주왕의 몰락을 담은 [은 본기]나 중국 3대 악녀로 일컬어지는 여 태후의 표독스러움을 그대로 묘사한 [여 태후 본기]는 중국 역사가 생소한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보여 준다.


<사기 본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사마천이 생각하는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은 '덕치(德治)'였다. 나는 학자들과 역자의 분석과는 다르게 사마천이 [오제 본기]와 [하,은,주 본기]를 <사기 본기>에 앞세운 이유 중 하나가 역사자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덕치'를 당대의 한 무제와 이후 제왕들에게 이상적인 정치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기>는 한나라 이후 중국사 뿐 아니라 한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 흥망성쇠를 이어간 국가의 왕들과 정치가, 학자들은 모두 중국사의 주요 국가들과 인연을 맺고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정치와 경제 뿐 아니라 학문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 2012년 2월 16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지식인(知識人)'이란 '지식'을 통해 시대의 담론을 제기하고 한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며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이들을 말할 것이다. 한완상 교수는 <민중과 지식인>에서 지식인을 '민중과 사회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실을 증언하며 의식화되지 못한 즉자적 민중을 의식화된 대자적 민중으로 승화시키는 일을 사명으로 생각하는 대자적 민중'이라고 정의했고, 차병직 교수는 '사색과 탐구의 결과를 인간의 삶의을 향상시키는데 적용할 수 있는 형태로 체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한다. 특히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했던 군사독재자와 기득권자에게 날카롭게 비판한 이들을 지식인이라 불렀다. 지난 70~80년대에 '지식인'이란 단어에는 소명의식과 도덕성, 날카로운 지성, 민중에 대한 따뜻한 감성, 대나무 같은 절개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식인에 대한 인식과 개념이 불분명하다.(김대중 정부 시절 '신지식인' 심형래라는 정책처럼 지식인의 개념에 혼란을 주고 성장과 돈벌이가 최고임을 지식인 사회에 강요한 부분도 크게 문제를 야기했다. 나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먹여살리지 못하는 지식은 무의미하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강변했었다..ㅠ)

지난 2008년 경향신문에서 실시한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간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지식인이 누구인가?"라는 각계각층 지식인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이는 백낙청 교수였고 그 다음은 리영희, 최장집, 강준만, 강만길, 김우창, 신영복, 박현채, 박원순 순이었다. 이들은 활동하던 당시에도,지금에도 모두 지식인으로 인정받는다고 할 수 있다. 이들 중 유일하게 1990년대 이후 활동을 시작한 이는 강준만 교수다.(강교수는 2000년대 말부터 활동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서울대 총장 출신 정운찬씨는 이명박 정부에서 '경제계의 동반성장'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정말 이 정권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정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그렇지 않다면 한 때 야권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던 그가 왜 '단군 이래 최악의 정권'이라는 이 정권에 복무하면서 세간의 비웃음을 사고 있을까?
조국 교수도 진중권 교수도 지식인으로 대접받고 있고 스스로를 '진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SNS 상에서 조국 교수와 진중권 교수에 대한 평가는 무척 다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이나 관료 집단 못지않게 문제 많은 집단의 하나는 대학을 비롯한 지식사회다. 그런데 그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일을 누군가 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장을 [경향신문]이 기획기사를 통해 열었고, 그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한마디로 말해 이 책은 그 양과 질에서 우리 언론 사상 최초로 시도한 지식인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다. 현장의 기자들이 악전고투 끝에 만든 지식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이자 변론문이다. 2007년 4월부터 9월까지 4개월이 넘는 연재 기간 동안 지식사회를 긴장시킨 지식인 건강진단서다.

한국처럼 학문 내지 지식에 대한 보상체계가 각별한 사회는 흔치 않다. 정치권은 늘 학자와 전문가를 우대했다. 정부마다 이들을 동원해 각종 위원회와 자문기구를 만들었다. 지식사회, 지식경제는 기본이고 지식기반이니 신지식인이니 하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언론 역시 스스로의 판단을 이들 지식인의 권위를 빌어 기사화하곤 했다. 이 책의 발간사에서 송영승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지적하듯, “한국 언론의 대학에 대한 일종의 지적 콤플렉스는 유독 심하다.”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권위에 있어서 누구에게도 쉽게 도전받지 않는 특권을 향유해 왔다. 사회적 견제가 약하다고 해서 지식인 집단 내부에서 자기 조정 내지 자정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논문 중복 게재, 정치적 소신 뒤집기는 예사가 되었다. 학자적 양심이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심각한 표절행위를 한 교수가 대학 총장이나 장관이 될 수 있는 것이 한국 사회다. 학문 활동에 전념하는 지식인이 무능하게 평가되고, 누가 더 기금을 많이 끌어올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오늘날의 대학은 최고의 성장산업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학문의 전당도 아니고, 비판적 지성이 살아 숨쉬는 곳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식인이 누리는 정치적,사회적 영향력과 권력의 크기는 학자적 양심과 반비례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지식인 집단과 대학의 현실이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방치될 수 있었을까? 이 책이 마주하는 문제는 근본적이고 도전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을 그저 학문의 영역에서 기능하는 엘리트로만 생각하면 잘못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강조하고 있듯이, 한국의 지식인은 “특별한 계급”이다. 학벌 체계의 수혜자로서 다른 부분의 엘리트들과 쉽게 친분을 맺을 수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무시 못할 연고 자본을 보유한 특권층이자 기득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최고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최장집 교수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 지적했듯이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문제의 핵심적인 고리 중 하나가 '엘리트의 권력 독점'이고 그 중에 지식인들이 포진해 있다. 그 앨리트 독점을 깨지 않는 한 한국에서의 진정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는 이루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식인 사회는 크게 변했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 지식인은 나름대로 시대적 소명 의식과 도덕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재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통해 진리와 정의를 나름대로 일치시키고자 한 지식인도 있었다. 보다 적극적으로 민주화의 대의를 위해 실천하기도 했다. 민주화와 더불어 지식인은 그런 의무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공직을 맡거나 정부에 참여하는 일 때문에 눈총을 받는 일은 없어졌다. 그러기는커녕 부러움과 따라 배우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과거와 같은 지식인을 찾아 보기는 어려워졌다. 


물론 이 책이 과거와 같은 “저항적 지식인 상”에 대한 낭만적 노스탤지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지식인 문제를 공직 참여나 정치 참여에서 찾는 것도 아니다. 민주화되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지식인의 분화는 불가피하다. 또한 지식인의 정치 참여는 필요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이라는 점도 인정한다. 문제는 분화와 참여가 아니라 “지식인과 권력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에 있다. 다시 말해 문제의 핵심은 지식사회가 권력에 의해 식민화되거나 아니면 거꾸로 지식이 영향력 획득을 위한 투자처가 되는 현실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인의 죽음'이라는 이 책의 제목이 그다지 불편스럽지가 않다.

무엇이 민주화 이후 지식인들의 죽음을 불러왔는가?
시대적인 배경으로는 인터넷의 광범위한 확산으로 지식이 대중화되어 과거의 지식인상이 효력을 잃었고 상당수의 비판적 지식인이 정치권에 편입된 후 기성 정치권의 모습에 동화되면서 신뢰를 잃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세계화' 시대라는 현상과 미국 편향적인 학계의 속성으로 자본,시장,서구에 편향적인 학문이 반복되었고,..
특히 여러가지 이유로 미국에서 유학하는 것이 당연시된 풍토가 한동안 지속되는 과정에서 미국 박사학위가 없으면 대학, 연구소, 기업에 취업하기 힘들어져버린 종속적, 기생적 분위기가 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미국 박사학위가 곧바로 그 사람의 학문적 전문성이나 성숙정도를 입증하지는 못했다.

구체적으로 지식인의 죽음의 원인을 따져보면 권력과의 관계를 살펴야 할 것이다. 즉, 정치권력에 대한 지식인의 줄서기, 기업 식민지가 되어버린 대학, 문확마저 권력화되어 버린 사정, 시민운동의 권력과의 관계 등 모든 권력 분야와 지식인들의 관계는 지식인 집단에서 순기능이 아니라 역기능으로 작용했다.
군사정권과 김영삼정권에서 정치권,행정부애 참여한 지식인들은 소위 '어용 지식인'으로 지탄받았으나, 김대주정권과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면서 그동안 권력에 소외되었던 일부 지식인들이 소신이나 자질과 관계없이 정권에 참여하면서 어느새 자식인들은 정치권과 관료의 등용문이 되어버렸다. 또한 강력한 정치권력이 사라지는 대신 일부 언론이나 지식인 집단은 스스로 자신들이 정치권력을 '창출,배출'하고 '조종'하려고 의도적으로 개입하기에 이르렀다. 그 한 편에 조중동과 윤여준 같은 이가 있고 다른 편에는 오마이뉴스와 참여정부 관료출신 학자들이 있다.

 
[ 군사정권과 민간정권에 복무한 지식인 통계 ]

 

 

그런 현실은 참여정부라 하여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현실은 자본의 지식인 통제라 할 수 있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것이 재벌의 권력화를 의미하는데, 참여정부 시절 드러난 삼성의 비자금 사건은 재벌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정치권력을 창출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한국사회 전체에 뿌리내리려 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재벌들은 또한 '삼성장학금' 같은 형태로 민주주의의 공정한 작동 축인 언론을 길들이고 있고 비자금과 억대 연봉으로 사법부를 장악하면서 길들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성균관대와 중앙대 등 '지성의 요람'인 대학을 인수하여 재벌의 노동력을 국민의 돈으로 키우기 시작했으며 연구기금이나 프로젝트 기금을 통해 대학과 교수들을 통제하여 재벌에 유리한 연구결과와 언론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박정희 군사장권 이래 99% 국민의 희생 아래 정부의 온갖 특혜를 통해 덩치를 키워온 재벌이 민주화된 사회 이후 사회적, 국민적 책무보다 오너 일가족의 탐욕과 세습을 위해 정부를 배후조종하고 세금을 찬탈하고 정치권과 학계를 조종하여 천년만년 1%의 기득권을 누리려고 한다.
그 모든 과정에서 '지식인 길들이기'는 한 축이란 할 수 있다.
정부개혁, 경제개혁, 재벌개혁, 사법개혁이 동시에 추진되지 않으면 지식인 사회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가 재벌독점의 횡포와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 재벌과 관계 맺은 지식인 ]

대학이 어떻게 권력과 재벌에 무력하게 되고 '지성의 전당'에서 권력과 재벌의 '시녀'로 전락했는지는 20대 초반이던 대학생 김예슬양의 <김예슬 선언>에도 잘 나타나 있다. <김예슬 선언> 이후에도 대학과 교수집단과 학생들은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카이스트 대학생들의 연이은 자살에도 정치권, 정부, 지식인, 언론들은 잠시 관심을 기울이다가 내내 잠잠해졌다.

대학의 문제는 권력과 재벌 뿐 아니라 학문의 편향, 서구(특히 미국)에 편중되어 있는 현실이 많은 문제를 가져오고 있다. 모두 미국식이라면 비판의식 없이 무조건 추앙하고 받아들이려고만 하는 한국사회의 정치권, 관료, 재벌, 학계, 언론계의 행태가 교수 구성원과 박사학위 현황과 무관하지는 않는 것 같다.

 

시민단체 역시 정치권력에 참여했으나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경험을 안고 있다.

 


이반 일리히가 지적한 '자율적인 인간과 사회'는 한국의 지식인 세계에서도 필요할 것이다. 지식인의 죽음을 가져온 구조적, 제도적인 문재는 지식의 독립성과 자율성의 침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에 의존하지 않는, 언론에 좌우되지 않는, 이념이나 특정 정권에서 독립된, 자본이나 규제에서 독립된 지식의 자유, 그리고 지식인의 자유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유, 연구의 자유, 양심의 자유, 선택의 자유가... 어떤 분야의 연구, 어떤 방향의 연구가 평가나 지원의 기준이 아니라 그 연구의 결과물이 창조적이고 독립적인지, 분명한 성과물을 낸 것인지, 국민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인지가 평가와 지원의 가준이 되어야 하고 그 평가 역시 정부관료나 특정 학술조직이나 단체가 아닌 지식인 집단과 시민단체, 집단지성이 참여하도록 개방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지적하는, 지식의 독립과 창조성을 가로막는 정책, 그리고 학술진흥재단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난 2008년에 인터넷과 언론, 정치권, 검찰에서 벌어진  '미네르바 사건'은 현재 우리나라 지식인의 무능함과 비겁함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다. 대부분의 대학 교수, 학자, 관료, 연구소 박사들은 별다른 공부나 학위도 없던 미네르바가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판단하는 수준만도 못했다. 그 사건은 정치권과 행정부 관료들의 무능함(아니면 국민들에 대한 속임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미네르바가 지적하는 '달'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오히려 미네르바의 '손가락'을 문제 삼아 그를 구속시켜 버렸다. 그 과정에서 경제분야 지식인이나 언론인들, 학자들은 아무런 발언을 하지 못했다. 그가 법원에서 최종 무죄로 풀려난 것은 얼마나 정치권과 검찰이 무능하고 미련한지 보여주었고 개인이 그 과정에서 고통받고 망가졌음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은 정치권과 정부가 무책임하고 불법적인 공권력을 사용하고 있음을, 제도개혁과 검찰개혁이 절실함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마지막으로, 나 역시 개인적으로 관심이 큰 지식의 대중화, 집단지성은 지식인을 대체할 수 있을까? 책 속의 주장은 반반인데 대체로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고병권씨만이 집단지성, 지식의 네트워크가 지난 시대의 지식인을 대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의 이 기획에 참여한 다수의 기자, 학자들은 민주화 이후 20년간 지식인의 죽음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지식인 사회가 피폐해졌음에도 여전히 21세기에 맞는 '지식인'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20세기 말부터 몰아닥친 신자유주의가 한국사회에 가져온 부정적인 결과들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다만, 그들은 지식인 스스로가 자기 부정과 자기 갱신을 통해 시대에 맞도록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는 것도 주장한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다른 영역의 엘리트들과 다름없이 평범해지고, 영악해지고, 무규범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간 지식사회에 부여했던 존경과 권위의 위임은 이제 철회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마디로 이 책은 지식인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워짐에 대한 한국사회의 비판적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보고서다. 

처음 제기한 지식인의 개념과 정의로 본다면 나는 여전히 이 땅에 지식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식인의 기준이나 역할이나 활동은 20세기와 많이 다를 것이다. 지식인이 지식을 독점해서도 안되고 지식이 많다고, 또는 높다고 하여 일반인들을 내려다보아서도 안될 것이다. 지난 '황우석 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바야흐로 지식과 정보가 지식인이나 전문가만이 독점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올바르게 지식을 생산하여 그 지식을 사회와 99%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시대의 담론을 제기하고 문제를 공론화하면서 여론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어야 한다.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그런 방식으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김동춘, 최장집, 김용옥, 박원순, 정태인, 김종철, 박홍규 등도 있고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조국, 장하준, 감광수, 선대인 등도 있다.

다만, 21세기 지식인은 20세기와 다른 방식으로 대중들과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대중들은 집단지성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단지성은 일방적으로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서로 공개하고 소통하고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발전하고 진화하기를 원한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식인의 역할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과 블로그, SNS는 새로운 지식 소통방식과 체계로 진화하고 있다.

[ 2012년 2월 14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네수엘라, 혁명의 역사를 다시 쓰다 - 차베스의 상상력, 21세기 혁명의 방식 새사연 신서 2
김병권. 손우정. 안태환. 여경훈. 이상동. 정희용. 한우림 지음 / 시대의창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한국의 언론에 베네수엘라에 대한 기사가 뜬 적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 투자한 다국적 석유기업(엑슨모빌 등)의 자산을 국유자산으로 몰수한 것에 대하여 다국적 기업들이 국제중개기관에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차베스 대통령이 미국과 다국적 기업의 입김에 좌우되는 국제중개기관의 판정을 거부하면서 남미 차원에서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다. 이 사건은 한미FTA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인 '투자자-국가 제소(ISD)'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대학시절 이후 남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칠레 아옌데 대통령이 군부 쿠테타에 의해 무너지고 쿠테타군과 싸우다 죽은 것, 해방신학에 대한 남미 신부들의 책이나 글 등이 대부분이었고 헬비오 소토의 영화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를 숨어서 본 기억 정도에 불과하다.
당연히 베네수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지금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베네수엘라에 대한 내 첫 번째 기억은 차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1998년이었을 것이다. 1998년 겨울이라면, 1997년 말 대통령 선거와 IMF 구제금웅의 여파로 그동안 일하던 건축설계라는 업종을 떠나 부동산 개발업체에 처음 입사한 때였다. 국내 언론에서 베네수엘라 선거나 차베스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짧은 단신을 얼렸겠지만, 당시의 내 관심분야와 의식상태로는 차베스에게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1% 기득권의 지배에서 벗어난 99%의 사회"이다. 2012년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가 연달아 치러진다.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상당수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99%를 위한, 99%에 의한, 99%의 정치"를 외치고 도전하고 실험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지금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그러한 '99%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인정된 바 없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립국을 나눌 것도 없이 소위 '지배엘리트' 혹은 '특권층'에 의한 지배가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의민주주의니 입헌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형식적인 허울만 있는 것이지 사실상 '99% 정치'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지배엘리트, 지배계층이 0.1%에 불과한 것이냐, 아니면 1% ~ 5% 정도로 많은 지배층이 구성되어 있느냐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감히 베네수엘라야 말로 '99% 정치'를 직접 실현시키는 과정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비록 이 책에 나타나지 않은, 내가 모르는 베네수엘라의 약점이나 위협요소가 있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1998년부터 2006년까지의 베네수엘라에서는 '99% 정치'가 동일한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차베스의 집권 기간 동안(반혁명과 자본가 파업이 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경제성장 뿐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 즉 경제, 교육, 건강 등 모든 분야에서 99% 민중들의 삶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베네수엘라의 혁명, 그들의 정치를 '99% 정치'라고 하는 이유는 혁명의 내용과 주체, 방법이 '99% 정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새로이 확정된 베네수엘라 헌법을 들여다 보면 '99%'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볼리바리안 써클'과 '주민자치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살펴 보면 '99% 정치이자 행정'임을 알 수 있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핵심역량은 '볼리바리안 써클'이라 할 수 있다. 이 써클은 정당도 아니고 노동조합이나 주민자치조직도 아닌 자발적인 '대중적 정치조직'이다.(초기 모습은 '노사모'와 비슷하게 출발하였다) 2003년 기준으로 무려 220만명이 이 써클 소속이다. 베네수엘라 인구가 2,700만이니 유권자를 80% 정도로 감안하면 2,160만명 중 10%가 넘는 정치적인 시민들이 조직을 결성하고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차베스는 1998년 베네수엘라 선거 혁명 이후 기존 행정조직이 아닌 자발적인 주민자치조직을 유도하여 그 조직, 즉 '주민자치위원회'를 통하여 새로운 정부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고 집행하고 평가하고 수정하고 있다. 주민자치위원회는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6년 현재 12,000~16,000개 정도이며, 개별 주민자치위원회는 도시는 200~400가구, 농촌은 20~30가구, 원주민은 10가구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대략 전국 가구의 50% 전후가 주민자치위원회를 조직하여 차베스 행정부와 협력하여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남미라는 지역적 상항에서, 베네수엘라의 역사적 과정에서 출발한 차베스와 한국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차베스는 자신의 조국 베네수엘라의 특성과 문화, 국민적 수준과 요구에 입각하여 1% 기득권이 지배하는 베네수엘라를 99%가 지배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그것도 무장투쟁이나 무력혁명이 아니라 아주 평화적이고 헌법과 선거라는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서.
분명히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혁명은 한국에서 99%를 위한 정치, 민주주의와 99%를 위한 사회를 원하는 이들이 배우고 연구해야할 점들이 무수하게 들어 있다.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차베스와 베네수엘라에 대해 자세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자들의 주요 관심사를 중심으로 베네수엘라 혁명을 다루었기 때대문에 실제 전개상황 또는 해석이 많이 다를 여지도 있을 수 있다. 나 역시 차베스나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해 기록하거나 분석한 다른 책들을 곧이어 읽으려 한다.
그럼에도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국민들이 1998년부터 10년 동안 진행한 '혁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하 '새사연')]과 저자들이 2006년 연구원을 설립하고 그 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을 처음 발간한 후, 두 번째로 이 책을 발간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아직 <새로운 사회를 여는 상상력>을 읽어보지는 못했다.ㅋ)

지금도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정파와 관계없이 차베스 대통령과 베네수엘라를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다. 인구 2,700만 명, 2005년 GDP 규모 세계 55위, 연간 국방 예산이 미국의 0.3퍼센트 수준에 불과한 베네수엘라의 어떤 점이 미국 정부를 이렇게 긴장하게 만들었을까? 이 보고서는 그것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2006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재선에 성공한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식 ‘21세기 사회주의’의 행보를 한층 더 가속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의 변방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이 이내 전 세계로 퍼져 20세기를 ‘혁명의 시대’로 규정짓게 만들었듯이, 2007년 신자유주의의 세계 체제의 변방 베네수엘라에서 진행 중인 혁명이 새로운 혁명으로써 도미노를 예고할지, 미국에 맞선 신자유주의의 대안 모델이 될 수 있는지를 분석했다. 
'새사연'의 젊은 연구자들은 베네수엘라 혁명이 21세기에 일어난 사실상의 첫 혁명이라는 점에 관심을 두고 그 종적 진행 과정과 사회 체제의 횡적 단면을 해부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구조적 변화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혁명이 갖는 독자적 특성을 정치, 경제, 산업, 사회 그리고 국가간 지역 협력체 모델 등 분야별로 추적해 들어갔다. 

이 책은 전체 일곱 개의 장으로 나뉘어 베네수엘라 혁명을 분석하고 대안을 전한다. 

우선 제1장은 베네수엘라의 사회경제적 현황과 혁명 전개 과정을 압축적으로 요약한 개요다. 20세기 후반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경제적, 정치적 현황과 혁명 진행의 단계별 특징을 정리했다. 

제2장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정치적 특징을 살펴본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눈에 띄는 특징인 선거 혁명과 합법적인 혁명과정에 대해 분석했다. 차베스의 위로부터의 개혁이 민중의 주체적 참여를 이끌어낸 과정, 이렇게 창출된 아래로부터의 힘이 혁명을 급진전시킨 메커니즘을 살펴본다. 

제3장은 이른바 베네수엘라 방식의 ‘참여민주주의’의 실체와 특성을 분석한다. 기존의 포퓰리즘이나 국가주의로는 해석될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참여민주주의의 구체적 사례로 정치 조직인 '볼리바리안 서클'과 자치 조직인 '주민자치위원회'를 중점 검토하여 ‘한국의 참여정치’와 어떤 점에서 근본적으로 구분되는지 시사점을 찾는다. 

제4장은 경제 변혁에 대해 집중적으로 고찰한다. 베네수엘라 사회의 내부 경제 변혁 과정, 경제 구조의 변화에서 노동자와 민중의 참여와 역할,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경제 모델의 지향점 등을 검토한다. 
신자유주의가 일반화된 이후 소규모 공동체나 운동 단체 차원이 아닌, 한 국가 전체의 경제 운용 방향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벗어난 첫 사례가 베네수엘라라고 할 때, 새로운 경제 모델의 실험은 베네수엘라의 경제 규모와 상관없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수밖에 없다. 또한 차베스 자신이 목표로 하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성패 여부도 결정적으로는 이 경제적 실험에서 좌우될 것이다. 

제5장에서는 베네수엘라 ‘석유경제 체제’를 별도의 주제로 분리하여 분석한다. 국내 언론에는 흔히 차베스가 석유산업의 막대한 이익을 통해 정권 기반을 유지하는 것으로 소개된다. 그러나 실상은 베네수엘라 국부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석유산업의 개혁 자체가 혁명의 가장 어려운 난제였다. 4년여가 넘는 단호한 투쟁을 통해 이룬 석유산업 개혁 과정은 달라지는 것은 없고 말만 무성한 한국 사회의 소위 ‘개혁 피로증’과 너무도 대조적인 장면이 목도된다. 이 험난한 석유산업 국유화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라 할 수 있다.

제6장은 남미 지역 공동체를 향한 차베스의 독특한 구상과 지역 협력 방식을 정리했다.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자유무역 협정(FTAA) 결성 시도는 차베스 정권 등장 이후 좌초 상태다. 최근 미국식 경제통합 모델을 추종하는 한미FTA 협정과 대척점에 선 남미 공동체 구상은 대안적 통상 전략과 대외 경제 전략 구상에 강한 영감을 제공해 준다. 

마지막으로 맺는글은 이번 연구를 결산하면서 베네수엘라 혁명이 지니는 함의와 한국 사회에 주는 시사점을 종합 정리한다. 지난 시기에 진보가 주장한 ‘혁명’은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말이자 불온한 용어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 ‘IT 혁명’ ‘경영 혁명’ 등 혁명이라는 용어는 오히려 경영자 층과 보수 진영에서 더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 되었다. 이제 21세기 혁명은 무엇을 추진하고자 하는 혁명인지 그 혁명은 어떤 방식과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지 나름의 결론을 도출한다. 
저자들은 베네수엘라 혁명의 특징을 무장투쟁보다 단호했던 선거 혁명, 몰수 없는 혁명, 민중의 헤게모니로 추진되는 혁명, 파괴보다는 창조가 중심인 혁명, 국민의 지배 강화로 관료주의를 넘는 혁명으로 규정한다. 지구 상에 존재했던 많은 '혁명',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회주의 혁명'과 다른 베네수엘라 고유의 '21세기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 부록으로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헌법’ 전문을 번역하여 참고 자료로 달아놓은 것은 이 책의 실천적 목적에 충실하기 위함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거혁명’과 ‘헌법을 통한 합법 혁명’, ‘국민이 동의한 헌법에 기초하여 구질서와 제도를 기저에서부터 바꿔 나가는 가장 단호하면서도 부드러운 혁명’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남미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종속 이론, 파울로 프레이리의 민중 교육 이론 등 활발한 사회운동의 성과를 반영한 여러 이론과 실천 활동이 소개되고 보급된 지역이다. 그러나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진보적 담론이 썰물처럼 철수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식어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는 스웨덴, 덴마크, 독일 등 사회민주주의적 영향이 강한 유럽 사회 모델에 대한 관심이 들어섰다. 
그러나 '새사연'은 한국이 세계 11위권인 GDP 규모, 반도체와 IT를 위시한 신산업의 발전, 수출의 지속 성장 등 OECD 선진국에 비견할 경제 성과에도 불구하고 사회 변화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유럽보다 남미가 시사점이 많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19세기부터 전개된 노동운동의 강력한 기반을 바탕으로 2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 노사 간 사회 대타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유럽 모델은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이 10퍼센트에도 못 미치는 한국 사회에 원용한다는 자체가 그리 타당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남미 지역은 대체로 한국 사회보다 10여 년 먼저 IMF 신세를 지면서 신자유주의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사회 양극화의 심화, 비정규직과 실업자의 대거 양산, 공공 부문의 약화와 시장주의의 일방적 득세, 성장 엔진의 결여 등 한국 사회가 직면하는 대부분의 문제가 노정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민중들의 자구적 노력 경험도 그만큼 축적되어 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이 책에서는 생활인들을 중심으로 실천적인 한국 사회의 대안을 찾겠다는 새사연의 지향이 엿보인다. 일반적 학술 연구서와 달리 외국의 사례만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부적인 함의와 방법론을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실정에 대비하고 비교 검토하며 시사점을 집요하게 파헤친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예컨대 “조중동 등 발목을 잡는 언론 때문에 개혁이 어렵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온 참여정부의 자기변명이다. 이에 대해 이 책은 차베스 집권 당시 5개 주요 상업방송 전부와 10개 전국적 주요 일간지 가운데 9개가 노골적인 반차베스 진영으로, 이들 언론은 심지어 2002년 4월 반차베스 군부 쿠데타를 직접 홍보하고 함께 모의까지 했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들 반 차베스 언론의 대부격인 시스네로스 그룹의 매출액은 조선일보의 열 배 규모이고 중남미 전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준임을 알게 되면 현 정부의 변명은 상당히 궁색해 보인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포퓰리스트’라는 미국 언론의 기본 관점이 국내에도 별 문제의식 없이 횡행하는데, 중남미 각국을 대상으로 매년 정기적으로 국민 여론과 민주주의 성숙도를 조사 평가하는 ‘라티노 바로메트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적 진전과 국민들의 정치적 만족도는 중남미 최고 수준이다. 룰라 대통령의 브라질을 훨씬 능가한다. 
후보 시절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호언했다가 정작 당선되고 나서는 상당한 저자세로 미국을 다녀온 노무현 대통령에 비해 차베스는 유엔총회 연설장에서 부시를 “악마, 독재자”로 부르며 훌닦을 정도로 강경한 모습을 보이지만 미국과의 교역량을 늘리는 실용성을 결코 잃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미국 중서부의 빈민들에게 석유를 무상 공급하는 등 공화당 정권이 아닌 미국 시민을 상대로 한 여론 선전전에도 능하다. 


이 책은 2007~2008년에 어떤 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아마도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을 지지하였거나 한국사회에 새로운 철학과 정책, 방식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선물로 받았음에도 예의에 어긋나게 4~5년 동안이나 책꽂이에 꽂아놓고 지금까지 읽지 않았다는 애기... 책을 읽고나니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과 더불어 선물로 받았음에도 읽지 않고 나버려 두었다는 미안함이 컸다.
아무튼, 고맙다 기억나지 않는 친구야!! ㅋ

[ 2012년 2월 0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