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겐, 북한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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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건 작년 12월 10일이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것은 그 뒤부터 대략 18~19일 뒤였다.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루어졌고 요즘 미국과 북한 핵무기 제거와 에너지, 식량 등에 대해 협상이 한창이다. 한국정부는 예상대로 북미협상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남북대화는 올해 안에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될지 여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인 것 같고...

그럼에도 남한의 99% 민중들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간단하거나 편한 문제는 아니다. 당장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라는 정치적 견변기를 거쳐야 하는데 남한 내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들을 기초로 하여 유권자들이 정치적 선택을 해야하는 와중에 북한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천안함 사건'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으로써 우권자들이 과거에 비해 좀 더 성숙하고 냉정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철저하게 남북대결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온 냉전수구세력들은 여전히 '북한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함으로 경계한 않을 수 없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진단과 올바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유권자나 정치인, 지식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반도가 1945년 남북으로 갈라진 것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남북간 긴장과 대립은 지구촌 세계에서 20세기에 벌어진 특유의 '이념과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북의 99% 민중들은 지난 66년간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저버린 이념과잉에 희생된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념과잉이 진화되어 1인 독재, 새습독재, 일당독재로 진화하면서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냉전수구세력과 1% 개득권 세력에 의해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일이나 예멘 등 이념과잉을 극복한 국가,민족들과 달리 남북 스스로 이념과잉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잘못과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임은 정치인들과 가득권자들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2012년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아직도 이념대립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그리고 20세기 이념과잉의 대척점에서 시작된 분단은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체제'의 대척점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까지 든다.(대부분의 정치가들과 학자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개념이지만...) 하지만 남북의 기득권 독점자들이 서로의 협력보다 대결을 통한 정치적 욕구를 위해 대립하면서 남한은 미국에 점점 종속되고 북한은 점점 중국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가 펴낸 북한 문제 분석서다. 연구소측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3대세습, 핵개발 등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북한 정권이지만, 그에 대한 남한의 대북강경책이 현재의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도 심화, 남한의 대미 교섭력 약화, 북한 독재체제 강화, 대중 관계 악화 등 해결하기 어려운 더 큰 문제를 야기한 현실에 주목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플리바겐식 접근법’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 할 수 상생의 솔루션을 제안한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발표하는 정부나 공공연소의 관련자료나 깊이와 분석력이 턱 없이 모자라는 재벌 편향의 연구소들의 부실한 자료에 비해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정한 책의 제목은 나로서도 조금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했다. '플리바겐(Plea-Bargain, 사전형량조정제도)'은 남북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플리바겐'은 ‘사전형량조정제도’라 불리는 법정 용어로,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거나 사건해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할 때, 그에 대한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이다. 미국에서는 웬만한 조직범죄나 마약 관련 사건에 플리바겐 제도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소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사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이 낯선 용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차갑게 식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실용적, 미래지향적인 대북정책을 펴는 데 ‘플리바겐’이 적절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플리바겐'을 "인질을 숨겨놓은 연쇄 살인범에게 인질을 살리기 위해 형량을 낮추는 협상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상황을 남북 대치상황으로 대입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질'은 남북의 99% 민중(남한경제와 국가안보도 포함해 생각해볼 수 있을 듯..)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유에 대해 북한측과 남한의 일부 사람들은 불공정하고 부당한 비유라고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가 생각할 때, 남북 대결상황에 대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 남한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플리바겐'이 그나마 현실적인 관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연구소측이 정한 이 책의 목차는 연구소가 애기하고자 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1부는 '대한민국, 북한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문제를 잘못 푸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제2부는 '북한경제, 시장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 지도부가 화폐개혁 실패 등의 경제적 난관을 헤치기 위해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밖에 없는 '시장경제'와 그로 인해 오히려 취약해지는 경제적 통제력에 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마지막 제3부는 '북한정치, 경제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북한 지도부가 정치적인 장악력을 잃어가는 딜레마를 설명해 주고 있다.

2008년 2월 대통령 취임 후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형적인 적대정책으로써 지난 정권 시기 어렵게 만들어온 남북관계를 몇 걸음 뒤로 후퇴시켰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은 대부분 중단되었고, 금강산 관광 사업도 멈추었으며, 대북지원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와 적대적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북한 정권과의 협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은 인민들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도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김정일 부자를 중심으로 한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금강산에서는 남한의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했고,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요구한 채, 남북 협력과 대북 지원을 대부분 중단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시도는 남한에게도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김정일 체제는 결국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였으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고 있다. 우리 최대의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북한의 중국 의존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FTA 추가협상에서 보듯, 대미협상력도 급격이 약화되었다. 만에 하나, 현재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의도한 대로 김정일-김정은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도, 쏟아지는 난민과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남북한 모두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소와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딜레마의 빠진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점진적인 남북 협력의 확대와 북한의 개혁/개방, 그리고 남북 격차 해소와 남북통일로 이르는 경로이다. 이를 위해 세계정세 속에서 북한 정권의 지속 가능성, 북한 지하자원 개발, 대중 의존도 심화, 북한 내부의 변화 압력, 통일비용의 실체 등 다양한 북한 관련 현안들을 연구하여 그 근거들을 제시하는 한편, 북한 경제의 흐름과 메커니즘, 북한 주민들의 경제생활과 2000년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분석을 통해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 가능성을 엿본다.
이와 같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플리바겐'식 접근법은 남북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여-야, 진보-보수가 대북정책을 두고 벌이는 지루한 대립을 끝내고 발전적 내일을 그릴 수 있는 확실한 대안임을 강조한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남북통일에 대해 찬반의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5천년의 동질성을 간직한 같은 민족이기에,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후손들이 더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경제와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통일이 지상목적이 됨으로써 과정에 무심해지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대한 우려, 통일방안이나 방식에 대한 논란과 이해관계로 인해 그 속에 담겨있는 정작 제일 중요한 인간과 평화가 무시되는 것 때문에, 통일이라는 형식 보다 평화와 화해, 협력, 안정, 상호존중, 자립 등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애 앞으로 적어도 100년 정도는 평화체제 속에서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통일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은 서너 세대 이후의 후손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현재의 구성원들은 남북분단과 남북대립의 당사자이자 희생자들이고 통일에 대한 결정에 따른 장단점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감당할 몫이기 때문에...
 
[ 2012년 3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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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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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난 3월 3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Ca'에서 'C'로 한 단계 내렸다. C등급은 무디스가 평가하는 투기 등급 채권 가운데서도 최하에 해당한다. 무디스는 민권 채권단이 그리스 채무를 천 70억 유로 낮춰 주기로 한 채무조정 합의로 인해 그리스 국채의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등급을 낮췄다. 앞서 그리스 민간채권단은 2천억 유로의 그리스 국채에 53.5%의 손실률을 적용해 천 70억 유로를 탕감해주고 나머지를 새로운 장기채권으로 교환하기로 그리스와 합의했다. 이번 사태는 유럽 주요국들이 그리스의 디폴트를 염려한 결과이도 하고 역으로 이러한 구제금융이 주요국의 금융기관에 부담을 주어 주요국의 재정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유럽의 경제위기가 전개될 수 있을 지 전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지난 1997~1998년 동아시아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그리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위기가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기억한다면 현재 유럽발 금융위기, 재정위기는 자칫하면 히로시마 핵폭탄이나 쓰나미 수준의 파괴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정부, 정당과 기업 뿐 아니라 언론, 학계,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와 개인들도 이에 대해 꾸준하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학계도 크게 신경쓰지 않고 '괜찮다'만 연발할게 아니다. 언론 역시 커다란 사건이 발생할 때에만 간헐적으로 기사로 다룰 뿐 심층적인 분석기사를 내보내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이 책은 반갑고 고맙다.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정부연구소나 재벌연구소의 자료를 불신하는 내 입장에서는 '가뭄에 단 비'와 같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예전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대외 불균형과 달러 기축통화제의 모순이 해결되어야 하며, 금융시장을 포함한 자산경제 부문에 대한 규제가 적절한 수준으로 강화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동시에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게 된 데에는 이 같은 시스템의 문제와 함께 '사람의 문제'도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즉 이념에 빠져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무시하고 잘못된 정책실패를 남발해온 각국 정치권의 도덕적 해이 역시 세계경제 위기가 발생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도 정치권의 무능과 부정이 일상화되어 있는 것이고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분석한다. 2011년 뉴욕의 '오큐파이' 시위가 이에 대한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민주주와 시장경제가 함께 발전하지 않으면 결코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결론이다.
 
 
연구소는 이 책을 통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전이된 이후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위기로, 실물경제위기가 재정위기로, 재정위기가 통화위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분석하여 '재구성'한다. 그러면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로 폭발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이 책은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와 함께 읽으면 좀 더 풍부하고 효과적으로 현재의 세계 경제위기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위기, 그리고 그 한계와 대응방향에 대해 알 수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세 의해 '위기의 재구성'은 어떻게 분석되었을까?
100년에 한번 일어날까 말까 한 2008년 금융위기를 겪은 지 불과 3년 만에 또 다른 금융위기의 파고가 전세계를 덮치고 있다. 지난 번 금융위기의 진원지가 미국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럽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져 전세계가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지자, 각국은 실물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공적자금과 경기부양책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미국과 유럽 등 주요 국가들의 재정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했다.
원래 미국과 유럽 각국은 재정적자를 감수해서라도 경기를 부양시킨 후 경기가 회복되면 늘어난 세수로 구멍난 재정을 메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회복세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강도도 너무나 미약했다. 실업률은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실물경제의 회복세도 미미한 상황이다. 문제는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도 전에 나중에 터졌어야 할 재정 문제가 너무나 일찍 터져버렸다는데 있다. 말하자면 금융기관과 가계 및 기업 등 민간부문의 엄청난 손실을 정부가 재정적자로 한꺼번에 떠안는 바람에 공적채무가 폭증하여 국가마저 파산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의 PIIGS(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국가들이 대외채무를 상환하지 못하는 재정위기(sovereign risk)에 처하게 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제2막이 열리고 있다. 각국은 유럽발 재정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또 다시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앞날을 모두가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미국 서브프라임론 사태를 계기로 국내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었다. 자본주의 체제가 시장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한다는 신념이 깨어진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생 원인은 대체로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미국 가계의 과다차입과 과소비 및 부동산투기, 자유방임적 금융자유화를 배경으로 한 증권화 파생상품의 남발, 달러 기축통화제 유지를 위해 무리한 달러 강세정책 남발에 기인하는 대외 불균형 심화가 그것이다. 그리고 2007년 여름에 이 세 가지 요인들의 모순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서브프라임론 사태로 불리는 부동산투기 버블 붕괴가 시작됐고, 이것이 글로벌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이어지면서 2008년에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금융위기가 터진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금융위기, 실물경제 위기, 재정위기, 통화위기 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데 있다. 미국은 비록 글로벌 민간금융기관들이 빠르게 이익을 회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은행들의 가계 및 기업대출은 줄고 있고 주택 시장은 더블딥에 빠져 있는 양상이다.
눈을 유럽으로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유럽의 PIIGS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여전히 시한폭탄으로 남아 있으며, 프랑스와 영국 등 상당수 국가들도 떠받치고 있는 부동산 버블이 붕괴될 경우 언제든지 유럽발 제2차 글로벌 금융위기가 재발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로부터 2011년 이후 세계경제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추론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정부의 재정동원 능력이 사실상 한계에 달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해졌다. 공적채무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해 더 이상 정부 재정적자 확대에 의존해 경기를 떠받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에 최후 수단으로 2010년 후반부터 FRB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들이 돈을 찍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앙은행들이 통화증발을 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이다.
하지만 통화증발책이 기대한 만큼의 경기부양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통화위기가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화증발책은 각국의 인플레이션과 물가위기를 가져오게 되고 물가위기가 심화되면 각국의 경제 자체가 무너지고 정치권 마저 붕괴될 가능성을 높인다.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손 쓸 방법이 없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경제 전체로 막대한 차입을 통해 부동산투기 거품이 발생한 것도 이와 똑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등이 과다차입을 통해 부동산에 자전(自轉)거래 투기를 한 결과 부동산자산 과잉으로 2007년부터 수확체감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하여 더 이상의 가격상승이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장부상으로는 차입한 만큼의 부동산자산이 있지만, 실제로는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가치가 하락하여 90년대 재벌 대기업들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 등 부동산 투기자들도 파산위기로 몰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품붕괴는 2008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이를 정부와 공기업 등 공적부문이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천문학적인 채무 증발을 통해 억지로 떠받쳐오고 있다. 그러나 이를 계속 떠받칠 수 있는 재정적 여력이나 명분이 거의 소진되고 있으며 머지않아 한국경제는 거품 붕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벌써 거품붕괴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과다채무의 대가로 경제 전체로 이자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워 공공요금이나 가격인상, 증세 등이 불가피해지고 있다. 인플레의 역습 그것이 바로 과다채무에 의존한 거품 붕괴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런 세계적인 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경제 전체의 총 금융채무 분석 결과를 종합해보면, 한국 경제의 총 금융채무는 2010년 9월말 현재 6,840조원에 달하고 있다. 이는 명목GDP의 6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심각한 채무과다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채무 증가 추이를 보면, 정부부문은 2009년부터, 공기업은 2008년부터 부채가 폭증하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개인과 민간기업의 부채는 2008년까지 급증한 후 2009년부터 정체를 보이고 있어 공적부문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는 한국경제가 2009년부터 공적부문의 부채 증가에 의존하여 성장해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민간부문의 부채가 2005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하여 2008년까지 가파르게 증가한 후 2009년부터 정체하고 있는 것은 부동산투기 및 거품 붕괴와 맞물려 있음을 의미한다. 2009년부터 민간부문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됨에 따라 공적부문이 채무 증가를 통해 거품 붕괴를 막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2007년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경제대통령'이라는 포퓰리즘으로 당선되었지만 그 이전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보다 더 무능하고 부정한 모습으로 일관해 왔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일본은 환율방어를 통해 국내 물가를 안정시켜 왔음에 비해 이명박 정권은 통화량을 부불펴 화폐가치를 떨어지게 만들고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율방어를 방치하여 국내물가의 폭등을 불렀다. 결국 일반 국민들은 그동안 물가인상이라는 '간접 세금'으로 수출 대기업의 이익을 보장해준 것 뿐이다. 그런 국민들의 희생에 대해 수출 대기업은 매출과 순이익을 높여 주주와 오너들의 주머니를 채우고 고용은 늘리지 않고 비정규직만 양산하여 사회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들을 배신해왔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은 어떻게 해야할 지 갈피를 못잡고...
 
그렇다면 결국 일반국민들, 유권자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경험하여 정부정책에 대한 의견을 표명하고 조직할 수 밖에 없다.
 
* 인상 깊은 문단 :
"한국은행의 5만원권 발행은 화폐가치와 관련한 정부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009년 6월 5만원권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을 비롯한 정부와 정치권은 한국의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주요 화폐경제 지표들이 조 단위를 넘어 경 단위로 넘어갈 형편이고 기존의 1만원권 화폐로는 화폐 발행비용 및 관리비가 많이 소요된다는 점 등을 이유로 5만원권 발행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반면 거액의 현찰 뇌물수수가 용이해져 부패가 심해질 수 있고, 인플레를 유발할 것이라는 반대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5만원권 발행은 물가관리와 화폐가치 방어 실패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물가를 안정시키고 원...
화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다면 굳이 교역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주부들의 체감물가를 들 수 있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장을 보러 나갈 때 10만원 정도만 있으면 시장이든 할인점에서든 어느 정도 넉넉하게 물건을 살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물가가 폭등하여 몇년 전에 살 수 있었던 물건의 절반 밖에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5만원권 발행은 한국은행과 정부가 물가관리와 화폐가치 방어에 실패했다는 것을 스스로 시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5만원권 발행이 정책적인 업적으로 선전될 일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물가가 낮아져 적은 돈으로도 보다 많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지, 고액권이 만들어져 비싸진 물건을 편리하게 지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은 1980~90년대 부동산 버블붕괴와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환율방어에 성공해 낮은 물가를 유지했다. 198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230엔 전후 수준에서 1995년 플라자 합의로 145엔으로 급락했다.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는 평균 111엔 전후 수준을 유지했으며, 2010년부터는 80엔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한때 일본 내 물가상승으로 사용하지 않게 된 1엔짜리 동전도 1980년대 소비세 시행과 함께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장기불황이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를 꾸준히 상승시켜온 것이 일본 경제의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한국정부와 관료, 정치권은 말로는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거 무시하면서도 정부정책의 수준은 일본 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원화는 8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484원 수준이었으나 80년대 중반부터 IMF사태 직전까지는 평균 783원 수준으로 올랐고, 1999년부터 2009년까지는 이전에 비해 약50% 가량 올라 달러당 1,157원을 기록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원화 환율 인상으로 도망가는 경제운용 형태를 바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2003년 이후에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환율 약세 정책은 양적 경제성장을 보다 쉽게 실현시켜 준다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상당한 부작용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환율 약세정책은 통화량 증발정책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물가상승과 분배문제, 성장잠재력 저하 등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출 기업이 유리해지는 대신 수입물가가 비싸져 장기적으로 내수침체가 발생하게 된다.
이 때문에 환율 약세정책은 사실상 소비자인 국민들로부터 (물가상승이라는)세금을 걷어 수출기업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화폐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줄이는 것이지, 경제규모에 걸맞는 고액권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 2012년 3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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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 -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 토지 문제의 해법
김윤상 외 5인 지음, 토지+자유 연구소 기획 / 평사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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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롯데그룹과 GS그룹의 재벌 총수와 일가족 22명이 2005년~2009년 사이에 평창 동계올림필 개최지 인근의 요충지 토지 19만7,063㎡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나 언론과 시민단체에 못매를 맞고 있다. 이들은 전원주택이나 동호인 주택을 짓기 위해 매입했다고 변명했지만 그들이 지금껏 해온 행위들에 비추어보면 말 그대로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당 토지의 시세는 5년 만에 평균 10배 이상 뛰어올랐다고 한다. 올해 들어 재벌들이 소규모 자영업자의 업종인 떡복이와 빵집까지 업종을 확대하여 언론과 시민들에게 비난을 받았었다.
 
작년 '나꼼수'를 통해 시사인의 주진우기자가 폭로한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의 사례나 이명박 정권에서 인사청문회를 통해 나타난 결과를 종합해 보면 한국 특권층의 '토지'에 대한 탐욕은 상상을 초월한다. '내곡동 사저'의 경우 사저의 매입자금과 차명의혹 뿐 아니라 사저 인근의 적지 않은 토지를 이명박, 이상득 형제 일가가 매입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땅의 특권층들은 공정한 기업활동이나 정직한 치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자신과 지인의 지위를 이용하여 개발정보를 캐내어 토지에 대한 시세차익을 얻는 것을 가장 중요한 치부의 전략으로 삼고있는 듯하다. 몇 년 전 효성물산에 근무하던 친구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당시 효성의 조석래회장은 직원들에게 "돈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것 아니다. 너희들은 손해만 보지 마라. 돈은 내가 부동산으로 번다"고 큰소리까지 쳤다고 친구는 전했다. 재계 25위의 효성그룹 총수가 이 정도 철학이니 그 위와 아래의 그룹 총수 일가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1980년 이후 기업인, 특히 재벌 총수 일가족이나 고급 공무원, 언론인, 교수 등 특권층들이 얼마나 많은 부동산, 즉 토지와 APT를 사고 팔았을까? 지금껏 이에 관한 정보는 '개인정보보호'라는 이유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손낙구씨는 <부동산 계급사회>(2008, 후마니타스)를 통해 지난 2005년 행정자치부에서 토지현황과 주택현황을 집계한 결과만 보면 한국에서 '부동산 독점'은 지나치게 과다한 상황이다. 통계를 보면,
- 한국에서 가장 많은 주택을 소유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택의 수가 바로 1천83채인 것이다. 전체 상위 10명이 소유한 집은 모두 5,508채로 한 사람 평균 550채다. 이들을 포함하여 상위 30명이 갖고 있는 집은 9,923채로 1인당 330채씩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전체 가구의 1%가 전체 주택수의 10%를, 전체 가구의 5%가 전체 주택수의 20%를 소유하고 있다. 당시 전체 주택수는 1,370만채였다.
- 토지의 경우 더욱 심하다. 전체 가구의 27%(500만 가구)가 사유지의 99%를 소유하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전체 가구의 5.5%(100만 가구)가 사유지의 74%를 소유하고 있고 상위 10만 가구(전체의 0.5%)는 사유지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주택보다 토지의 편중이 훨씬 극심한 상황인 것이다. 아마도 2012년 현재는 그 비율이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 2000년부터 2006년까지의 통계를 보면, 6년간 집값 상승 총액은 648조원으로 매년 108조원 이상 올랐다. 그중 87%인 566조원이 아파트값이 올라서 생긴 것이고 서울지역 아파트값이 전체의 57%에 해당한다.(참여정부 인사들은 이 통계를 알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정직한 지식인형' 부동산 전문들이 솔직하게 공개하는 관련 정보다. 내가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토지 및 주택의 독점과 편중현상, 그리고 이러한 토지, 주택의 문제가 사회경제 전반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연관성 분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전문가들 역시 부동산 문제 자체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수준에 따라 대안은 종합적으로 마련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김광수경제연구소와 선대인씨 정도가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아주 도발적이다. 저자들은 한국 사회경제구조의 총체적인 문제점의 근원을 '토지'에서 찾는다.  
‘공정사회’를 만들자는데 아무도 믿고 따르지 않는 이유도, 온 국민이 반대하고 사업 타당성도 약한 4대강 사업에 목을 맨 이유도, 고위공직자 후보들마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낙마하는 결정적인 이유도, 재개발 재건축을 둘러싸고 개발주체와 세입자가 격렬하게 대립하는 이유도, 뼈 빠지게 일하고 꼬박꼬박 세금을 바치는데도 내게는 땅 한 평 없는 이유도, 국민소득이 오르고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데도 분배는 악화되고 있는 이유도, 그 원인은 바로 토지정의 부재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사분규, 행정수도 이전, 부동산 가격 폭등, 4대강 사업, 용산참사 문제 등 한국 사회의 온갖 사회적, 경제적 문제는 "정의에 입각한 토지원리 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필자들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사회 전 영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토지의 독자성과 중요성을 드러냄으로써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밝힌다. 또한 토지가 주택, 금융, 세금, 분배, 사회갈등, 복지, 도시계획, 통일, 대안모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정의를 세우는 핵심 요소임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경제학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사회과학이 토지의 독특성과 중요성을 무시하게 된 원인을 지적한다. 오늘날 주류경제사상인 신고전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클라크(John Bates Clark)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토지는 자본의 하나로만 간주되었다. 클라크라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태두가 토지의 독자성을 무시하자 후대의 경제학자들도 따라서 무시했고, 토지로 인해 생긴 수많은 경제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고 엉뚱한 원인진단을 하자 후대의 학자들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된 것이다. 경제학의 기본 교과서들인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재정학, 금융경제학 등에서 토지가 등장하지 않게 되자, 이후 경제 분석에 있어서 토지 때문에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저자들의 주장대로 이 책은 대한민국 최초의 [토지의 정치경제학]이라고 할 만하다. 재화와 용역의 생산.분배.소비를 다루는 경제학이 번성해 있는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며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토지를 중심으로 주택, 금융, 세금, 분배, 사회갈등, 복지, 도시계획, 통일, 대안모델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 책은, 여러 경제적·사회적 문제가 토지원리를 무시하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것을 밝힌다. 토지는 생산수단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자본과 뚜렷이 구별된다. 그리고 자본과 달리 재생산이 불가능하므로 한 사람의 소유는 타인의 손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토지 가치는 내부가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불로소득이며, 또한 그 가치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의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투기가 일어나기 너무 쉽다. 자본투자와 달리 토지투자는 비생산적이다. 이러한 토지원리를 존중하고 특히 토지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하면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제시한다.
 
2012년 현재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는 복지강화다. 복지에 인색했던 한나라당도 세금을 더 많이 거둬서 복지에 투입하자는 대책을 내놓을 정도다. 그러나 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왜 한국 사회에 이렇게 복지수요가 커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 책은 부정의(不正義)한 토지제도가 핵심 원인임을 밝히고, 토지정의를 확립하면 거대한 복지수요의 상당부분이 줄어들 수 있음을 증명한다. 필자들은 잘못된 토지제도가 어떻게 시장경제를 혼란에 빠뜨리며 얼마나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괴롭히고 있는지를 다양한 자료를 통해 밝히고, 정의로운 토지제도를 수립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99% 국민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한국 사회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당과 정치인이 2012년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내걸어야 하는 국가 정책의 핵심은 토지 불로소득의 사유화를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들이 논리적으로 경제학에서 토지를 자본과 동급의 '생산수단'으로 격하시킨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신선하고 긍정적이었다. 금융 불안정과 지대신용화폐의 연관성, 토지에 대한 불로소득의 환수를 중심으로 하는 부동산 정책대안, 북한의 토지문제 해결책 등은 여러 정당과 정책당국이 참고할 만 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경우 토지불로소득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관심이 더욱 확산되어야 한다.
 
다만 저자들의 문제제기와 대안이 사뭇 도발적이고 획기적임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컸다. 토지를 중심으로 주택 문제를 바라보는 과점에서, 금융불안정과 지대신용화폐의 관계, 토지불로소득의 문제점 등 저자들의 이론과 대안을 수립하는데 있어 근본이 되는 주장에 있어 구체적인 통계와 분석이 많이 부족했다. 주로 논리적인 주장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1945년 이후 불로소득이 어떻게 생성되었고 그 금액이 얼마나 되며 어떤 과정으로 어떤 계층에게 돌아갔는지, 그 사이 GDP나 근로소득, 사업소득, 정부예산은 어떻게 발생하고 투입되었는지, 이자율이나 물가상승율 등 거시경제까지 고려하여 저자들의 주장을 펼쳤다면 신뢰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들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문제제기의 방향이 타당하다는 데 공감한다. 저자들이 이어나가던, 다른 사람이 진행하던 추가 연구와 발표를 기대해 본다.
 
[ 2012년 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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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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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 부제 :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지난 2010년 3월 입적하신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애서 소개한 도서목록 중 열 여덟번 째다. 이 책은 생각보다 한국에 꽤 알려졌다. 2007년에 처음 번역 발간되었음에도 벌써 35쇄나 발간된 것이다. 저자의 유명세도 한 몫 했겠지만, 한겨레 등 여러 신문에서도 소개되었고 인터넷에도 알려져있다. 세계적인 기아문제, 특히 어린이 기아에 대해서는 거의 교과서로 인정받고 있는 것 같다. 인터파크 도서 사이트에만 해도 무려 256개의 리뷰(서평)이 실려있다. 

 

이 그림들은 TV나 잡지, 인터넷에서 자주 보던 것이다. 빈곤국이나 내전이 벌어진 국가, 지역에서 기아나 기아난민은 빈번한 현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인간 집단에게 빈곤이 닥?을 때 가장 약자에게 먼저 닥치고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는 것도 동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발전과 진보가 유사이래 가장 최고조라는 21에게도 기아 문제가 지구에 남아 있을까? 이 문제를 생각하다 보면, 가장 먼저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의아하다. 그리고 과연 이 지구 상에 그렇게 인간이 먹을 식량이 없는지, 또 그렇게 '인권'과 '안도주의'를 외치는 미국과 유럽이 이 문제를 방치하는지 궁금해진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당연 탁월하다.

이 책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인 장 지글러가 기아의 실태와 그 배후의 원인들을 작신의 아들과 나눈 대화 형식으로 알기 쉽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전쟁과 기배계층의 탐욕,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NGO의 구호 조치가 무색해지는 현실, 구호조직의 활동과 딜레마, 부자들의 쓰레기로 연명하는 사람들, 소는 배불리 먹고 사람은 굶는 현실, 사막화와 삼림파괴의 영향, 도시화와 식민지 정책의 영향, 그리고 특히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금융과두지배와 투기자금에 대해…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생사를 가르는 '21세기 기아'라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들이 얼마나 정치, 경제 질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전세계 인구의 7분의 1이나 되는 기아인구, 더군다나 그 숫자가 21세기 들어서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충격적이고 심각한 현실을 고발한다. 대부분 기아 지역의 외형적인 문제는 전쟁, 내전, 정치적 혼란, 종교분쟁, 지배계층의 탐욕, 기후변화 등이다. 하지만, 기아문제의 역사적, 구조적 원인을 분석해 보면, 그 뿌리는 항상 서구로 귀착된다. 아프리카, 남미, 동나아시아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은 지난 18~20세기에 서구 열강들이 제국주의적 침탈과 수탈을 일삼은데서 시작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위해 평화롭게 자족하는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사회경제 구조를 엉망으로 만들었으며, 기후변화를 초래했고 21세기까지 정치적 경제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황금만능주의'의 화신인 다국적기업, 금융체계와 투기금융들은 세계 곡물시장을 조작하고 서구 국가들은 자국 농산물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곡물가격 왜곡에 동참한다.
이처럼 거대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조금씩 더 관심을 갖는데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계의 주인은 정부관료도, 정치인도, 자본가도, 기업도, 투기자금도 아닌 일반시민들이기 때문이다. 해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추진하지 못하는 정치적인 구조를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냐고 묻는 아이에게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라고 대답한다.(p.153)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중요한 메시지가 그가 교수이고 유엔기구의 고위인사라는 데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런 활동과정에서 그 스스로 알게 되고, 보게 된 것들을 국제적 기아 문제에 대한 전문가로서 다시 한 번 분류하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 많지 않은 기아 관련 저술 중에서 이 책은 가장 고급의 정보를 담고 있고, 몇 가지 점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한 책이다. 아들과의 대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책은 현재 기아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있고, 그런 이득들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더욱더 많은 어린이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우리나라에는 저자가 이 짧은 책에서 말했던 몇 가지 사례와 그것을 둘러싼 구조에 대해서 국제구호단체 활동가와 시민단체 관계자 이외에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우리나라 안에서는 정치적 논란의 여지가 될 북한의 기아문제가 아니더라도 칠레에서 벌어진 일과 네슬레의 관계, 부르키나파소에서 드러난 젊은 혁명가들의 애환, 그리고 국제식량기구의 정책 방향이 결정되는 과정과 같은 얘기들은 우리나라의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사실 장 지글러 만큼 고급정보를 접하면서도 현장에서 상황을 이해한 사람이 우리나라에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학자이며 지식인이며 또한 전문가인 사람들은 다수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 한가운데나 중남미의 현장에서 상황을 목격하고 분석하고 이것을 전체적인 흐름에서 다시 정리한 사람은 없다. 게다가 기아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거의 초보적 수준이다. 많은 어린이들이 굶주리고 있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정도의 사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자세하게 저자의 이야기를 정리해 본다.
먼저 기아의 심각성을 먼저 알아보자.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어린이가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 3분에 1명꼴이며,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1984년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생산되는 식량의 양은 지금 인구의 2배인 120억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먹여 살린다는 의미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 2,400~2,700칼로리 정도의 먹을거리를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불합리하고 살인적인 세계질서는 어떠한 사정에서 등장한 것일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것은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겠지만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에 있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수단이 없다.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는다?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곡물의 4분의 1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거나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거꾸로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있다.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이 연간 50만 톤에 달한다.

조작되는 세계 곡물시장 가격과 버려지는 식량이 문제다. 세계시장에 비축된 식량의 가격이 종종 인위적으로 부풀려진다. 세계의 주요 농산물이 거래되고 있는 시카고 곡물거래소는 몇몇 금융자본가들, 앙드레 S.A.(스위스), 켄티넨털 그레인(미국), 카길 인터내셔널(미국), 루이 드레퓌스(프랑스) 등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법률이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남반구에서는 식량이 없어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도 농산물 가격을 높이기 위해 이것이 유럽 등 선진국의 농업담당 집행위원회가 하는 일이란다.

기아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도 변화해야 한다. 정규 수업시간에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기아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기아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수단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 같은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뜬구름 잡는 식의 정서적인 대응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부적이고 정확한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얼마전 어느 포털 사이트에서 한비야 씨가 네티즌들에게 ‘굶는 아이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량생산을 늘여 굶주림을 없애야 한다고 답하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아에 대한 인식인 것이다.

서구 각국과 다국적 기업은 기아를 부추기는 아프리카에서의 전쟁을 이용한다. 2000년 기준으로 아프리카 인구는 세계 인구의 15%에도 못 미치지만 기아 인구의 25퍼센트 이상이 아프리카에 집중되어있다. 1970년에서 1999년 사이에 아프리카에서만 43차례의 전쟁이 벌어졌고, 이들 전쟁은 심각한 기아를 초래했다. 전쟁의 이유는 복잡하지만 인종간의 갈등, 다이아몬드나 금, 석유와 같은 토착자본을 독점하고픈 욕망 등, 때로는 국제적인 금융 그룹이나 국제기업 등의 외부세력이 개입해서 은밀히 그 지역의 전쟁지도자에게 무기를 대주거나, 용병을 공용할 수 있도록 자금을 대주기도 한다. 이들 전쟁의 희생양은 아프리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이다.

북한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1995년에서 2000년 사이에 200만 명이상이 굶어죽었다. 1990년도에 비해 곡물의 수확은 늘었지만, 취약한 토지소유 구조, 비료와 농기구의 부족, 만성적인 에너지 위기로 인해 곡물생산량이 최저 생계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는 2006년 북한의 식량 부족분이 80만 톤 이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수확량이 인구의 최저 생계선을 15퍼센트쯤 밑돌고 있는 것이다. 2004년 유니세프와 FAO는 북한 아동의 영양 실태에 관한 광범위한 조사에 착수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15세 미만 아동의 37퍼센트가 심각한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수유모의 30퍼센트가 영양실조로 빈혈증세를 보여, 아이들에게 젖을 줄 수 없는 형편이다.

세계적인 식품회사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아옌데의 비극은 다국적 기업이 빈곤국이나 제3세계 국가를 어떻게 수탈하는지 보여준다. 1970년 칠레의 인민전선은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하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칠레가 처한 높은 유아사망률과 어린이 영양실조라는 문제를 놓고 본다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이 공약을 내건 아옌데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는데, 이 문제에 가장 곤란함을 느꼈던 것이 스위스의 다국적기업인 네슬레였다. 커피와 우유를 주품목으로 하는 네슬레에게 칠레 정부가 분유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칠레에서의 성공사례가 다른 중남미 국가들로 번져갈 경우에는 더욱 큰 골칫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소아과 의사 출신인 아옌데가 내건 이 공약이 벽에 부딪힌 것은 칠레의 농장을 장악한 네슬레가 1971년 협력거부 방침을 결정하면서부터이다. 아옌데 정부는 네슬레에게 우유 구매를 요구하였으나, 이 요구는 거부당했다. 이때부터 아옌데는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정부와 네슬레를 축으로 하는 다국적기업에 의해서 고립되고, 결국 CIA와 결탁한 군인들이 대통령궁을 습격하여 암살당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칠레의 어린이들은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아마존의 파괴와 사막화로 인해 기아가 심화되고 있다. 1991년 통계에 따르면 36억 헥타르의 땅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전체 육지의 4분의 1,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약 70퍼센트나 된다. 사막화는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서, 매년 약 600만 헥타르의 땅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3분의 2는 원래 사막을 포함한 건조지대라서,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대의 73퍼센트 정도가 사막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럼 아시아는 어떨까? 역시 경작이 가능한 건조지역의 71퍼센트, 약 14억 헥타르에 걸쳐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지중해 남쪽의 건조지대는 이미 그 3분의 2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약 10억의 인구가 가까운 장래에 사막화의 위협에 직면할 거라고 예측된다.
사막화와 농지의 황폐화를 방지하기 위해 ‘사막화방지 협약’을 체결하였으며 이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들은 사막화방지 협약에 따라 파견하는 농업, 수리, 식물, 기후 분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사막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사막화로 인해 수백만의 농민들이 목초지나 경작지를 잃고 생존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그들을 도울 능력이 없음을 절감한 유엔은 그들을 ‘환경난민’이라 부르게 되었어. 그런데 문제는 정치난민과 달라서, 그들은 국제사회가 정한 ‘난민조약’(1951년)에 규정된 난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무엇인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은 먹는 것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최우선 과제는 먹을 것을 섭취하는 일이다. 먹을 것이 없으면 피조물은 죽는다. 식물은 물이 없으면 시들고, 먹이가 없는 동물은 기진해서 쓰러진다. 식량을 구하지 못한 인간은 기력을 잃고 사경을 헤매게 된다.
모든 생명체의 두 번째 과제는 번식하는 일이다. 번식하기 위해 식물은 성숙 단계를 거쳐야 하고, 동물은 번식 가능한 나이에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손을 남길 수 있다. 그리고 너무 빨리 병들거나 죽지 않고 번식 가능한 나이에 들기 위해서는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한쪽에는 특권으로 가득한 풍요로운 세계가, 다른 쪽에는 빈궁한 세계가 존재한다. 태곳적 식량 분배는 남자들의 힘에 좌우되었다. 임신한 여자와 아이는 절대적으로 남자에게 의존해 있었다. 그러나 역사가 흐르면서 영양 섭취는 점점 더 사회적, 정치적, 재정적 힘의 문제가 되었다.

냉전체제의 몰락과 또 한 가지 패러다임 변화는 바로 글로벌화한 자본주의 내부에서 한 가지 자본, 즉 금융자본이 산업, 무역, 서비스 등의 자본들을 제치고 주된 자본으로 부상한 것이다. 금융자본의 이윤극대화 법칙은 오늘날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금융자본이 왜 이렇게 우세한 것일까? 거대하고 효율적인 컴퓨터 체계의 발명은 아주 복잡하고 세계적인 ‘경제제국’의 동시적 관리를 가능케 해주었다. 몇 조개의 정보를 빛의 속도(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중단 없이 순환시키는 통일적인 사이버스페이스가 탄생한 것이다.
자본주의 생산과정에서 이런 패러다임 변화-사회적 양극구도의 몰락과 숨 막히는 기술혁신-는 금융자본의 거의 완전한 글로벌화로 이어졌다. 세계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1999년에 유통된 금융자본은 이 해에 전세계적으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보다 63배나 더 많았다는 것이다.
1919년에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비참한 세계, 너무도 골이 깊은 불평등한 세계. 오늘날의 세계의 주된 갈등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사이의 갈등이 아니다. 만성적인 실업난(유럽연합의 실업률은 12.5퍼센트)과 빈곤, 사회의 계층화, 영양실조가 지금은 북반구도 위협하고 있다. 그 주범은 바로 민족을 초월하여 활동하는,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과두지배, 투기자금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 225명의 대재산가의 총자산은 1조 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전세계 가난한 자들의 47퍼센트(25억 명)의 연간수입과 맞먹는 수치이다. 빌 게이츠의 자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 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오늘날 개인들은 국가보다 더 부유하다. 세계 15대 부호들의 총자산은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사하라 이남의 모든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다.
이런 숫자의 배후에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가 존재한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글로벌화한 금융자본의 과두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만 될 뿐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자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 ‘완전하게 리버럴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저자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우선적인 과제는 인도적인 구호조처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FAO는 당면한 긴급구호를 위해 비상식량을 비축하고 있다. 이 식량을 배급하고 관리하는 것은 WFP 담당이다. 그러나 담당자들은 도움을 줄 나라의 사회구조가 어떤지 거의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이런 도움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구조가 부실하고 부패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방식으로 기득권 세력을 강화하고, 부당한 사회구조를 고착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을 비참함과 수백 년간에 걸친 약탈에 방치해두게 되는 것이다. 원조식량뿐만 아니라 국제단체가 제공하는 대부분의 개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둘째,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농민에게 토지를 분배하여 그들에게 농사 짓을 수 있도록 사회적인 구조개혁이 이루어져야한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수출국에 속한다. 그런데도 대도시와 시골에서 아이들이 매일같이 굶주리고 있다. 지주의 1퍼센트가 경작지의 43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2000년의 경우, 1억 5,300만 헥타르의 땅이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고, 500만의 농민들이 땅이 없이 가족과 함께 이 거대한 나라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샛째, 인프라 정비. 제3세계 나라들의 인프라를 정비하기 위해 시급한 지원이 필요하다. 그들에게는 자본, 도로, 적당한 종자, 비축식량, 농경 전문지식 등 모든 것이 부족하다. 아프리카 남쪽에는 엄청난 땅들이 놀고 있다. 그 땅들은 투자가 없이는 경작되지 못할 것이다. FAO의 통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에서 정상적으로 경작되는 땅은 7억 헥타르 정도인데, 작은 투자로도 경작 면적을 두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한다.

저자가 생각하듯이 세계 경제의 모든 메커니즘은 한 가지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대 전제는 바로 기아는 극복되어야 하며 지구상의 모든 거주민은 충분한 식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국제적 구조가 마련되어야 하고 규범과 협약이 마련되어야 한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 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기되어야 한다.

인간이 동물들과 다른 점은 희노애락을 공감하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 2012년 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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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와 저항 -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우리시대 학술연구
문지영 지음 / 후마니타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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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부터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우연하게도 공부모임에서 세미나 교재로 최근 한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는 자유주의에 대한 책 두 권을 선택했다. 이 책과 더불어 최장집 교수 등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최태욱씨가 엮은 <자유주의는 진보적일 수 있는가>...
 개인적으로 나 역시도 한국 근현대 정치사에서 '자유주의'라는담론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한국사에서 자유주의 담론의 형성과정을 다룬다는 저자의 서문을 읽었을 때 호기심이 컸다.

사실 오래 전부터 자유주의에 대한 진보진영의 일부 인사들의 폄하가 미덥지 않았다.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하듯이 자유주의를 "재산을지닌 부르주아적 개인들, 즉 근대적 의미의 유산자들의 정치 이념"이자 "이러한 '소유적 개인들' 모두의 자유 공화국을 옹호하는 정치 이념"으로 이해하는 입장은 역사적으로 서양 자유주의에 대해 마르크스가 제기해 온 전형적인 비판임은 맞는 말이다. 
부르주아 혁명에 성공한 서양사회에서 자유주의는 공식적인 지배이념으로 자리잡게 되었지만, 애초에 저항이념으로서 그것이 지니고 있던 진보성과 기독교 신앙에 기반을 둔 도덕성을 거의 상실한 채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이 시작된 19세기 이래로는 저쩜 계급적,제국주의적 이익을 옹호하는 논리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기본적으로 그가 경험했던 19세기 현실의 자유주의에서 출발했다. 
요컨대 자유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은 '역사적'인 것으로서, 그 문제의식이나 분석대상, 모색된 대안의 적실성과 설득력은 당대의 역사적 맥락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이는 곧 마르크스주의적 자유주의 비판이 역사적 맥락을 초월해 어떤 경우에나 무조건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함축한다.
1980년대 한국사회 변혁론의 자유민주주의 비판은 바로 이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현실적 맥락을 고려할 때, "한국의 자유주의는 계급 중심적 관점에서는 제대로 설명될 수 없는 면이 있으며, 한국에서 '부르주아 계급의 부재'를 곧장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부재 내지 빈곤으로 연결지어야 할 근거는 더욱이 없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자유주의는 아주 불편한 단어이자 이념이었다. 그래서 사실 무수한 궁금증을 일으킬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 질문이라 함은, 한국에 자유주의가 도입된 것은 미국의 반공 기지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얻어진 우연한 결과인가?, 정부 수립 후 자유주의는 오직 독재 정권의 정치적 수사로만 존재했을 뿐인가?, 공식적 지배 이념으로 표방된 자유주의와 민주화 운동의 이념적 기반으로 발전한 자유주의 간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반공주의와 자유주의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와 ‘억압적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한국 자유주의의 익숙한 딜레마는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가?, 서양 자유주의 일반의 특성을 공유하지 못하는 한국 자유주의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결국 자유주의에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건져 낼 수 있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가?...와 같이 끝이 없다.

저자는 위와 같은 질문들을 염두에 두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책에 담았다. 그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를 둘러싼 통념과 또 자유주의에 대한 서구 중심적 혹은 일면적 평가를 극복하려는 시도도 포함한다. 요컨대 이 책의 목적은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도입, 전개 과정을 추적하고 그 가운데서 드러나는 자유주의의 이념적 특성과 전망들을 재구성함으로써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격을 규명하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작업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좀 더 민주적으로 견인할 수 있는 자유주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흔히 ‘한국의 자유주의’는 회의적 냉소적 반응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저자는 그 배경을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분석한다. 
먼저, 반공 분단국가에다 오랜 독재 정권기를 거친 한국 사회는 자유주의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자유주의가 부재했다거나 또는 비정상적이고 미약하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에서 ‘한국의 자유주의’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여겨지거나 심지어 한국 사회와 연관되는 것조차 거부하는 입장과 관련이 있다. 전자가 이념과 사상으로서 자유주의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 비판적이라면, 후자의 입장은 대개 자유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자유주의에 초점을 맞춘 이 책은, 이처럼 그 주제가 직면해 왔으며 또 직면할 수 있는 직접적, 잠재적 비판에 대응해, 기본적으로 다음 두 가지 내용을 핵심적으로 다룬다. 
먼저 이 책은 서양으로부터 도입된 자유주의가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 곧 ‘한국의 자유주의화’와 한국의 역동적인 역사적 맥락이 자유주의의 전개 양상 및 성격에 제공한 새로운 면모, 곧 ‘자유주의의 한국화’를 동시에 천착함으로써 한국의 자유주의 사상을 총체적으로 조명, 평가한다. 
다음으로 이 책은 한국 자유주의의 ‘양면성’, 즉 ‘지배’ 이념으로 표방된 동시에 그에 맞서는 ‘저항’ 이념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던 한국 자유주의 특유의 전개 양상에 주목하며, 이 점을 드러내고 해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한국 자유주의의 역사적 성격은 이처럼 ‘한국의 자유주의화’와 ‘자유주의의 한국화’ 그리고 한국 자유주의의 양면성이 씨줄과 날줄로 서로 얽히면서 만들어 내는 특정한 맥락 속에서 형성되어 갔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공과나 가능성에 대한 평가는 이러한 맥락에 대한 고려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각 장의 중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제1부 -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과 계보는 개화기 이래 자유민주주의적 근대국가 수립을 목표로 투쟁했던 주체적인 노력들을 중심으로 한국 자유주의의 기원 및 계승사를 추적한다. 한국에서 자유주의의 기원은 단순한 일회적 사건이었다기보다 갈등과 혼란을 동반한 복잡하고 장기적이며 무엇보다 주체적인 일련의 과정이었다는 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제1부 전체 논의의 목적이다.

1장 - 개화와 자유주의는 ‘서구 근대의 충격’과 그에 대한 ‘조선 지식인의 대응’을 주제어로 자유주의 수용의 배경을 간략히 소개하고 박영효, 김옥균, 유길준 등 일단의 개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개항 이래 자유주의의 수용을 위한 노력이 어떤 특성을 보이며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본다.
2장 - 식민지 시기 자유주의의 굴절과 전화는 일단의 개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던 자유주의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어떤 식으로 살아남게 되는지를 고찰한다. 식민 통치하에서 자유주의는 정반대의 두 길로 나아가게 되는데, 제국주의와 타협하면서 종국적으로 친일,부일의 논리를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 그 하나라면, 전투적 민족주의의 경향을 띠게 된 것이 다른 한 길이다. 이 장에서는 윤치호, 이광수의 사상을 중심으로 전자의 길을, 양기탁과 안창호, 신채호와 박은식 등을 중심으로 한 신민회와 우파 민족주의 세력의 독립운동 이념을 중심으로 후자의 길을 각각 살펴본다.
3장 - 근대국가 형성과 자유주의는 개화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받아들여졌던 자유주의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의 근대국가 수립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고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보여 준다. 미군정의 영향력 아래 놓인 해방 공간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립’과 ‘민족 통일’이 동시에 실현되기 어려운 별개의 과제로 분리되어 인식됨에 따라 자유주의 세력이 우파 민족주의 진영(김구,김규식등)으로부터 분화되어 나와 이승만 등 친일적인 극우 단정 세력과 손을 잡게 되는 맥락을 들여다보고, 특히 조소앙과 안재홍을 중심으로 한국에서 근대국가 건설 이념으로 작동한 자유주의의 특성을 살펴본다. 또한 제헌헌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초기 제도화의 특성과 한계를 검토한다.

제2부 -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이념과 현실은 헌법과 독재 정권의 민주주의 담론, 국가보안법 분석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 대한민국의 이념과 현실, 실상과 허상을 드러낸다. 공식적 지배 이념으로서 자유주의의 외양과 실천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존재하는데, 제2부에서는 이 괴리를 구체적으로 부각시켜 그 계기와 진행 과정, 결과를 고찰하는 데 집중한다.

4장 - 자유민주주의 헌법 이념: 제1차 개정 헌법에서 제5공화국 헌법까지는 각 개정의 맥락과 쟁점들을 분석하면서 헌법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가 어떻게 굴절, 변조되는지 살펴본다. 거듭된 개정은 결국 독재와 공존 가능한 혹은 독재를 뒷받침하는 명목상의 자유주의만 헌법에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또한 입헌주의의 정착을 요원한 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식적 지배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가 정상적으로 발전하는 데 치명적이었음을 지적한다.
5장 - 독재 정권의 민주주의 담론과 자유주의는 독재 정권이 구사하는 민주주의 담론이 공식적 지배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를 어떻게 왜곡하고 위축시키는지를 분석한다. 이승만의 ‘일민주의’, 박정희의 ‘한국적 민주주의’, 전두환의 ‘정의로운 민주복지국가’ 담론으로 대변되는 독재 정권의 민주주의 담론들은 개인의 권리와 자유, 다양성에 대한 요구를 방종이나 분열로 매도하고, ‘일민’이나 ‘국민 총화’ 같은 전체주의적 가치를 강요하며, 무엇보다 ‘국가 안보’를 ‘자유’에 앞세우는 방식으로 대한민국이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를 반공주의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변질시켰음을 보여 준다.
6장 - 반공주의의 신성화와 자유주의의 위축은 한국 사회에서 반공주의가 자유주의의 발전에 한계로 작용하게 되는 맥락과 메커니즘, 그리고 그 실상을 드러낸다. 여기서 국가보안법은 반공주의를 안정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제도적 기반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주목을 요한다. 이 장의 논의는 국가보안법이 안보와 자유를 양자택일적인 가치로 만들고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를 ‘억압적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보다 우선적인 것으로 강제함으로써 반공주의에 의존한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해 왔다고 지적한다. 국가보안법은 그것이 내세우는 국가 안보라는 가치, 공산주의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안전을 지킨다는 목적 자체가 자유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기보다 구성원 개인을 배제한 채 국가권력을 정치의 주체화하고 그럼으로써 획일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지배 질서를 존속시킨다는 점에서 반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이 잠정적인 결론이다.

제3부 - 민주화 담론과 자유주의는 정부 수립과 함께 공식적 지배 이념으로 채택된 자유주의가 ‘지배’의 장을 떠나 ‘저항’의 영역을 추동하고 확장하는 기능에 복무하게 되는 역사적 맥락을 추적한다. 독재 정권 아래에서 국가보안법의 구속을 받는 자유민주주의는 오로지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라는 가치에 기대어 명맥을 유지했을 뿐 한국 사회에서 자유주의의 이름에 걸맞은 이념과 실천은 ‘민주화’의 이름으로, 민주화 운동을 통해 발전하게 되는데, 반독재 민주화 담론과 비판적 지식인 담론의 분석을 통해 자유주의가 저항 이념으로 발전하는 가운데 형성하게 되는 특성을 살펴본다. 또한 1980년대의 상황을 자유주의적 민주화 담론이 어떻게 대응,대처하는지도 살펴본다.

7장 - 반독재 민주화 담론의 형성과 전개: 1950~70년대는 이승만 정권 이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제기된 학생 운동권 및 재야사회 단체의 시국 선언문, 성명서, 결의문 등과 <사상계>를 통해 저항 이념으로서의 자유주의가 드러내는 특성을 분석한다.
8장 - 비판적 지식인 담론의 자유주의는 정계, 언론계, 학계, 종교계 등 자신의 분야에서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운동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운동의 목표와 방향을 제시하는 담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장준하(사상계)와 함석헌(씨알의소리), 리영희(전환시대의논리, 우상과이성), 한완상(민중과지식인)의 사상적 기반을 분석함으로써 민주화 운동 이념으로 발전한 자유주의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을 살펴본다.
9장 - 자유주의적 민주화 담론의 굴절과 균열 그리고 새로운 전망: 1980년대는 ‘독재 대 민주’의 대치선을 따라 단일한 하나의 진영을 구성한 채 통합적 전망을 제시해 오던 저항적 자유주의 담론이 이른바 ‘1980년대적 상황’에 직면해 내적 균열과 분화를 겪고, 상대적으로 보수화되는 배경과 맥락을 보여준다.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저항적 자유주의는 특정한 계급적 이해를 공유하는 세력이 아니라 특정한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세력에 의해 지지되었고, 이 점에서 계급적 기반과는 무관하게 민중적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진보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모순 구조가 좀 더 복잡하게 전개되는 1980년대 들어 비계급적 혹은 탈계급적 연대는 일정한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년 민주화’에 이르는 과정에서 저항적 자유주의가 어떻게 영향력을 잃지 않고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되는지 살펴본다.
 
 
저자도 그렇지만, 나 역시도 "한국에서 자유주의가 옳고 다른 이념은 그르다"라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가 만민평등과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라는 원론으로만 보면 인간 사회에 보편적으로, 그리고 한국에서도 기본적인 담론의 토대로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동서양에 존재하는 많은 미래의 담론이나 이념 중 한국에 적합한 것이 마땅히 없고 서구에서 한 때 진보적인 역할을 했던 자유주의가 한국에서 다시 그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필요한, 21세기의 담론으로 기능할 새로운 사상과 이념을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 자유주의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 2012년 2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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