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 - 시베리아 억류자, 일제와 분단과 냉전에 짓밟힌 사람들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일제의 식민지 침략과 약탈, 그 과정에서 자행된 강제노동, 징용, 학살 등을 다룬 <역사가에게 묻다>의 저자인 김효순씨의 또 다른 기록작품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와 세계 어디에서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현대사의 비극이 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1940년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일제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갔던 이들이 해방 뒤에는 소련군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에 억류되어 수년 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고국에 돌아와 38선을 넘을 때는 총알 세례를 받고 엄격한 심문을 받은 사람들. 식민 지배와 조국 분단, 그리고 전쟁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역사의 짐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던 사람,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바로 시베리아 억류자들이고 이 책은 ‘시베리아 억류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최초의 공개기록이다.

<역사가에게 묻다>를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 행정부, 국회가 얼마나 자국의 동포들과 시민들에게 무정하고 무책임한지 분노가 치밀게 된다. 뿐 만 아니라 언론사들과 학자들, 대학과 연구소, 지식인들의 미천한 역사의식과 이중성이 역겨워진다. 국가의 존재 이유, 민족을 떠드는 그들의 허울, 민중을 위한다는 사탕발림에 진절머리가 난다.
개인적으로 미국이 모든 외교정책을 자국과 자본가들 위주로 운영하면서 한국을 비롯한 제3세계 국가를 침략하고 착취함을 비난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적어도 미국 정치인들과 행정부의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이 자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쏟는 정성과 노력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시간이 얼마나 많이 지났는지, 얼마나 정부관료의 입장이 어려운지, 돈이 많이 드는지 상관하지 않고 자국민 한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 죽은 시체를 자국의 땅으로 데려가 묻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도대체 한국의 정치인들과 정부관료, 언론들은 무엇을 위해, 왜 존재하는 것일까? 그러고도 한국사회의 공동체가 계속 온존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1945년. 일제 말기 만주(현재의 동북 3성), 쿠릴 열도, 사할린의 일본군 부대에서 복무하던 조선인들이 있었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일제의 징병 정책으로 인해 끌려간 이들이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인 1945년 8월 9일, 소련은 한때 승승장구하던 관동군을 궤멸시키고 만주 등지에서 일본군 60여만 명을 포로로 잡았다. 스탈린은 8월 하순, 포로들을 시베리아 각지로 이송하라는 극비 지령을 내렸다. 이른바 ‘시베리아 억류’로 알려진 사건이다.
문제는 일본군에 끼여 있는 조선 청년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군인으로 간주돼 혹한의 시베리아 등지에서 중노동을 하고 3, 4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1948년 12월 말 약 2,200명이 소련 화물선을 타고 흥남항으로 귀환했다. 만주나 북한이 연고지인 사람들은 가족을 찾아 떠났지만, 남한이 고향인 사람 500여 명은 이승만 정부에게 골칫거리로 남았다. 이미 남북에 별도 정부가 수립돼 38선을 경계로 팽팽하게 대치하던 때였다.

북한 당국은 남쪽과 이들의 송환을 공식적으로 협의하지 않고 1949년 1, 2월께 한밤중에 38선을 넘도록 했다. 지긋지긋한 일본 군대와 소련 포로 생활을 이겨내고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들을 맞이한 것은 38선 경비 부대의 발포와 대공 수사기관의 엄격한 신문이었다. 더구나 조사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서도 오랜 기간 요시찰로 묶여 감시 받았다. 이어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목숨을 부지한 억류 귀환자들은 남북이 대치하는 상황이 엄연히 계속되는 상황에서 소련 체험은 천형 같은 낙인이었다. 1990년 6월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맺기 전까지 이들은 자신들의 기막힌 처지를 내놓고 호소하지도 못했다.

억눌렸던 이들이 시베리아에서 당한 고초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시베리아 삭풍회]라는 모임을 결성한 것은 한국이 소련과 수교한 이후인 1991년이었다. 초창기에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노동증명서를 발급받는 일에 주력하면서 정부에 시베리아 억류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문제 해결을 요청했다. 그러나 되돌아 온 것은 성의 없는 회신뿐이었고, 그것은 정권이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정부가 해준 것이 하나도 없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이들은 일본 총리에게도 피해 보상을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의 태도 역시 변함없었다. 일본 정부는 박정희가 1965년 졸속으로 체결해준 한일회담으로 모든 식민지배상이끝났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박정희가 저지른 지금은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이면서 시베리아 포로 생활을 같이 했던 일본 억류자 단체와 교류하면서 서울, 모스크바, 도쿄를 오가면서 보상 촉구 운동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의 삶은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 피해자의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당한 서러움과 고난에 비하면 이들의 삶은 의외라고 할 정도로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들의 인생에 정부와 권력기관의 위로와 보살핌은 없었다. 전쟁의 사지로 끌고 간 일본이나 시베리아에서 노예 노동을 시킨 러시아는 이제까지 사죄와 보상 요구를 외면했다. 우리 정부도 이들의 하소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

국내에 시베리아 억류를 경험한 남쪽 피해자는 이제 30여 명 정도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저자는 그동안 억류 피해자들뿐만 아니라 유족, 관련 단체 관계자, 학자, 국가기록원, 경찰국 등 정부기관의 관료, 정치인 등 한국과 일본 인사 수십 명을 만나 취재했다. 이들의 증언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우리 현대사에서 큰 공백으로 남아 있는 시베리아 억류 문제를 하나하나씩 풀어헤쳤다. 이병주, 이규철, 동안 등 생존자들의 육성과 치밀한 자료 분석으로 되살아난 역사의 현장은 참으로 생생하다..
저자가 개록해 놓은 기록이 보여주는 시베리아 억류자들의 고난어린 역정 속에는 해방 전후에 복잡했던 남북한-소련-일본 관계가 농축되어 있다. "1949년 초 갑자기 38선을 넘어 내려와 소련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일제가 패망한 후 소련으로 끌려가 노예 노동을 했을까? 일제의 식민 통치 피해자인 조선 청년이 왜 종전이 됐는데도 오히려 가해자 취급을 받아야만 했을까? 냉전이 격화되면서 침략 전쟁의 소모품으로 동원된 이들은 어떻게 버려졌을까? 이들의 억울한 사연이 이제껏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개인의 피해 사례만 나열하면, 야만의 시대에 짓밟힌 수많은 사람들이 털어놓는 또 하나의 넋두리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자는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이들의 기구한 삶이 전개됐는지에 주목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러시아·중국·만주·미국을 포함한 이 지역의 20세기 현대사를 폭넓게 이해하는 게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현대사,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무관심 속에 묻혀있던 근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아마추어 학자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베리아 억류는 한 개인이 조사·연구해서 전모를 밝히기에는 너무 과제가 방대하다. 그러나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하지 않으면 이들의 역사는 영원히 어둠 속에 묻힐 것이다. 정부, 정치권, 언론, 학계가 모르는 사실을 저자가 공개했으니 이제 그들이 저자의 기록을 토대로 나머지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시베리아 억류'가 벌어진지 70여년이 지났다, 시간이 오래된 것을 관련 사실을 조사하고 연구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당시의 책임을 추궁당할까 두려워하는 이들이 현실에 없기에 시작하기에 좋은 여건이라는 장점도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의지와 노력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립대학이나 연구소라도 나서서, 개인적인 학자, 교수라도 나서서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그 사실을 알게된 이들은 각자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부모임에서 <역사가에게 묻다>와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를 교재로 선택한 이유가 김효순씨의 활동을 알고자 함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인세를 보태어 그분의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하는 마음도 있었다.
 
[ 2012년 3월 27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알래스카와 참사람들에 대한 기억
이레이그루크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법정스님의 스무 번째 추천도서..

 

한 달 전쯤 주말 저녁에 혼자 <빅 미라클(Big Miracle)>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알래스카 얼음 구덩이에 고립되어 갖힌 회색고래를 환경단체와 원주민, 정부, 소련까지 함께 노력하여 구출했던 1984년 실화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제작한 영화였다(켄 콰피스 감독, 드류 배리모어 주연). 영화 속에서는 당시 알래스카 상황을 묘사해 놓았으니 21세기인 지금과 많이 다르겠지만, 혹한의 겨울이라는 이미지는 동일하게 남아있다는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 썰매를 모는 개들이 컹컹 짖고 영하 40도가 넘는 추위로 휴대용 발전기가 멈춰버리는 장면을 그 영화 속에서 떠올릴 수 있었다.

 

책 제목인 '내일'은 날짜변경선을 말한다. 날짜변경선에서 동쪽으로 불과 8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알래스카 코체부. 이 책은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이누피아트 원주민의 이야기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자연을 경외하며 함께 힘을 모아 살아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이 물질주의와 개인주의로 점철된 현대인에게 진정한 삶의 숨결로 다가온다. 지난 1960~70년대 미국 정부의 극심한 통제가 만연한 현실 속에서 원주민들의 토지권을 보장 운동을 주도해 나갔던 저자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일대기가 아닌 원주민 고유의 삶과 문화를 지켜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간직한 이누피아트, 그들 모두에 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알래스카에는 '일만 번의 여름과 겨울'이 왔다가 갔다고 한다. 즉 알래스카에 사람이 발을 디딘 지 1만년 정도 된 것이다.
그곳 사람들은 매년 가을까지 또 한 번의 겨울을 위한 준비를 마친다. 연어를 말려 훈제하고, 물범기름을 정제하고, 사냥한 북미순록고기들을 말리고, 풍성한 베리 열매의 수확을 기대하면서. 이누피아트 족(백인들이 흔히 에스키모라고도 부르는 이누이트가 극북지역에 사는 모든 이를 총칭하는 말인 반면, ‘참된 사람들’을 뜻하는 이누피아트는 알래스카 북부의 이누이트 사람들을 뜻한다)이 사는 알래스카 북부의 겨울은 아홉 달이나 계속된다. 그리고 한겨울이면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밤만 계속된다. 기운 없는 싸늘한 태양은 지평선 위로 고개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리고 만다. 겨울철에는 거센 바람이 자주 불어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날이 많다. 이누피아트 족은 그런 날을 ‘이트랄리크’라 부르는데, 그건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를 뜻한다.
알래스카 땅이 공식적으로 알래스카 주가 된 것은 불과 오십 년 전의 일. 그러나 누가 자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든 상관없이 그 땅은 늘 얼음으로 뒤덮인 광대한 자연 속에 뭇 생명을 품어왔다.

저자 '이레이그루크'는 북부 알래스카, 날짜 변경선에서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코체부에' 해안선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를 따라 신흥 도시인 '놈'에서 빈곤하게 살다가 외가 쪽 친척 집에 양자로 들어가 전통적인 이누피아트 족의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한다. 그것은 그의 원주민 조상들이 수천 년간 영위해온 반유목민적인 생활로, 추위와 끊임없는 노동이 수반된 삶이었지만 이레이그루크와 가족들은 자연이 제공해주는 풍성한 산물을 누리며 살아간다.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알래스카의 겨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이레이그루크는 자연이 지닌 힘들을 경외해야 함을, 낭비가 큰 적임을 배운다. 더불어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꼭 필요한 일임을, 오로지 더불어 일함으로써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 곳에서 나날의 삶은 모험이었고 우리 모두는 아니그니크, 곧 삶의 숨결을 즐겼다. 많은 이들이 간간이 죽을 고비를 겪기는 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마다 큰 기대감을 갖고서 하루를 맞았다. 오늘 날씨는 어떨까? 몇 마리의 뇌조를 집 안에 들여놓을 수 있을까? 운 좋게 몇 마리를 쉽고도 빠르게 잡을 수 있을까? 여우가 덫에 걸렸을까? 농어 그물을 다시 들여다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누가 개들을 데리고 가서 가문비나무 단을 실어 오는 일을 맡을까? 양식과 생필품을 들여놓기 위해 마을에 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 책에서 저자는 알래스카 원주민 소년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에 모처럼 흠뻑 젖어들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지금까지 알래스카와 그곳 원주민들에 대한 책이 나온 적은 있었지만 그조차도 하나같이 외지인들, 곧 개척자들이 썼다. 또는 여행의 관점에서 쓴 책뿐이어서 이누피아트의 어린 소년 이레이그루크가 툰드라에서 생활한 일들의 직접적 기록은 우리에게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시각과 감동을 전해준다.
그가 태어날 무렵, 그곳에는 삼백 명 가량의 주민이 살았으며, 대부분은 이누피아트였다. 소수의 ‘날로우르미트’도 섞여 살았는데, 그들은 백인들을 그렇게 불렀다. 물범을 뜻하는 날로우크의 상앗빛 피부를 연상시키는 피부색을 지닌 사람들. 그들 대부분은 선교사, 교사, 정부 관리, 장사꾼들이었다.
알래스카는 빙하로 뒤덮인 광막한 자연환경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그곳에 펼쳐진 원초의 청정한 강들과 호수, 삼림, 빙하,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광활한 대지에 매료된다. 그 땅덩어리의 넓이는 3억 6천5백만 에이커(약 150만 제곱킬로미터)로 텍사스 주 넓이의 두 배가 넘는다. 어떤 이들은 그곳의 엄청난 자원, 곧 믿을 수 없으리만치 풍부한 아연, 금, 목재, 야생동물, 어류, 석유 같은 것들에 끌린다. 하지만 이레이그루크에게 알래스카는 본질이자 본향이요, 삶의 이유이자 목적에 해당하는 장소이다.

"나는 사향뒤쥐와 늑대 가죽들로 만든 모피 파카 대신에 고어텍스가, 물범가죽 장화 대신에 스노부츠가, 우리가 물고기를 낚기 위해 1.5미터 두께의 얼음장을 뚫을 때 사용했던 재래식 투우크 대신에 휘발유 동력 드릴이 등장하기 전 시대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스노머신이 등장하기 전, 에스키모개들이 썰매를 끌고 싶어 안달이 나서 허공을 향해 길게 울부짖곤 하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보트 외부에 장착하는 외장 엔진이 등장하기 전에 카약과 우미아크(가죽배)가 수면 위를 고요히 미끄러져 가곤 하던 시대에, 양초와 콜맨랜턴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빛을 제공해주던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사람들이 겨울철이면 매서운 추위와 강풍을 막아주는 60센티미터 두께의 뗏장과 흙바닥으로 이루어진 뗏집에서, 여름철이면 우리를 나른한 잠의 유혹으로 끌어들이는 단조로운 파도 소리와 아비(물새의 일종)나 갈매기 울음소리가 얇은 벽을 타고 자유로이 넘나드는 텐트 속에서 지내곤 했을 때 그곳에서 살았다. 나는 전화기가 등장하기 전이라 사람들이 직접 만나고서야 비로소 자기네의 삶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시절에, 텔레비전이란 게 생겨나 사람들이 가족들의 연대기와 전설들을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걸 방해하기 전 시절에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세상에 태어날 즈음 알래스카 문화는 이미, 그들이 ‘바깥세상’이라 불렀던 곳에서 알래스카의 매력과 흡인력에 이끌린 사람들이 몰고 온 파괴적인 영향력을 목격하고 있었다.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전염병도 따라 들어왔고 그 때문에 원주민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외지인들이 대규모로 펼친 고래 사냥은 고래들 덕에 먹고살았던 원주민들을 어려운 처지로 내몰았다.
알래스카에 이주해 온 외지인들은 땅과 자원을 장악하면서 또 다른 부담도 함께 들여왔다. 그것은 바로 원주민들의 삶에 대한 정부의 과중한 통제였다. 외지 사람들의 지배와 더불어 그들의 강제적 요구도 따라 들어온 것이다 저자와 식구들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사유재산에 대한 아주 색다른 개념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사회를 자본주의와 개인적 이익 추구, 개인의 선택에 기반을 둔 사회에 맞춰 나가야만 했다.
알래스카가 주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기독교 선교사들과 미국 정부는 알래스카 원주민들을 올바른 ‘미국인’들로 변화시키기 위해 합심해서 노력했다. 열다섯 살 때 저자는 타의에 의해 에스키모의 때를 깨끗이 씻어내고 미국 본토에 있는 기숙학교로 가야 했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속한 민족과 역사를 뺀 나머지 것들을 공부했다.

이 책의 주인공인 저자가 열다섯 살이 되어 더 많은 교육을 받도록 테네시로 보내졌을 때 그는 거기서 과거 수천 년 동안 알래스카 원주민들이 차지해왔고 사실상 소유해왔던 땅이 강탈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이런 움직임과 맞서 싸우기로 결심하고 연어처럼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와 원주민 종족들의 대표가 합심하여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력한 결과 1971년, 미국 정부는 10억 달러에 가까운 돈과 17만 8천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제공해주기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국 본토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정치적 운명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그런 놀라운 결정이 하룻밤 사이에, 그리고 어느 한 사람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삶과 권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현실화한 이는 바로 이 책을 쓴 이레이그루크였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하지만 미국 본토의 아메리카 원주민에 비하면 알래스카 원주민은 괜찮은 경우라 할 수 있다. 본토의 인디언들은 17~18세기에 걸쳐 90% 이상이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침략자들로부터 학살당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도 겹쳐졌다. 알래스카는 19세기 중 미국 본토의 백인들이 잔출하여 상업등을 영위하다가 1867년 미국에 합병되었다. 1890년부터는 원주민 언어를 학교와 공용어에서 금지시켰다. 기간이 오래 경과되었지만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알래스카 원주민들은 100년도 넘는 백인들의 침략과 식민지화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전통문화와 생활을 면면히 이어오다가 결국 1971년에 미국정부로부터 자율권과 토지,배상금을 획득하였다. 물론 원주민 언어와 역사도 지역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국은 비록 민족국가로서 독립(분단)은 달성했지만 단일 언어를 제외한 전통과 문화, 생활양식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아예 송두리채 뼛속까지 미국식, 서구식으로 사고와 행동과 생활을 바꾸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협동보다 경쟁이, 정신보다 물질이, 소통보다 단절이, 나눔보다 독점이, 놀이보다 향락이 우선시되고 있다. 반대로 지금 돌이켜보면 100년 전 선조들의 의식과 문화, 생활양식 중에서 소중하고 긍정적인 것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그 결과 현재 한국에서 연대의식과 공동체는 거의 파괴되었고 인간과 문화의 가치보다 돈과 자존심만 남아 황폐해져가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든다. 서구의 가치와 문화만으로 우리사회의 행복과 인간됨과 공동체를 복구할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꿈과 희망을? 아니면 좌절과 절망을?

[2012년 3월 25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육과 의식화
파울로 프레이리 지음, 채광석 옮김 / 중원문화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6년 만에 파울로 프래레이리의 <페다고지 : 피억악업자의 교육학(1970)>을 다시 읽고나서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이 궁금해 찾은 저작이다. 이 책 <교육과 의식화>가 처음 발간된 해가 1978년이니 <페다고지>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21세기 한국 상황과 전혀 다른 맥락과 조건에서 쓰여진 글이라는 점은 동일하다. 나는 다만 <페다고지>만 읽고서는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을 제대로 알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책과 다른 책(<체 개바라, 파울로 프레이리의 혁명의 교육학>,2012)을 한 권 더 읽어보려고 했다.

프래이리는 제1장 '자유실천으로서의 교육'에서 브라질의 근대사를 통해 브라질 사회가 어떻게 변해왔으며 외세(포루투칼)에 의해 어떻게 브라질의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체계가 왜곡되어 구축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브라질 민중들의 뿌리 깊은 굴종과 체념의 인식이 각인되었는지 말한다. 외세의 의해 심어지고 유지된 사유대토지하의 브라질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특징은 사회적 거리감이며 이는 '대화'를 절대 허용하지 않았다. '반대화' 사회체제는 브라질 민중의 침묵증의 근원이 되었고 이는 사회적으로 정치사회적 연대감과 대화, 참여, 정치, 사회적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사회, 정치제도가 자라날 여지가 전무하였다. 여기에서 브라질 사회와 민중에게 대화식 교육과 의식화의 과제가 도출된 것이다.
프레이리는 자신이 브라질 동북부 농촌에서 직접 실험한 문맹퇴치교육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대화식 교육을 통한 민중의 의식화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는 착 속애 농촌에서의 문화 써클에서 농민들과 토론했던 구체적인 과정을 소개하면서 참여를 통해 민주적 과정을 겪으면 어떻게 농민들의 주체성을 일으킬 수 있고 의식화가 가능한지 설명한다.

프레이리가 규정하는 억업자는 호령, 명령, 지시, 착취, 거짓 관용, 거짓 사랑을 행하는 지배엘리트와 이른바 혁명을 운운하면서도 반대화적 행위를 일삼는 좌익 분파주의자 모두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의 행동 이론은 민중을 피보호자로 보는 가부장주의, 지배문화의 이데롤로기를 신화화시키는 조작주의, 존재가 아니라 소유를 추구하는 물화주의 등의 "죽음을 긍정하는" 정신으로 보고 이의 구체적 양상이 분할 지배, 조종, 문화적 침략, 정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로 인해 피억압자들에게는 심리적 왜곡 현상의 하나로 '자유에 대한 공포(fear of freedom)'라고 말한다. 반대로 그는 인간화의 주체인 피억압자의 행동 이론이 해방을 위한 일치, 조직, 문화적 종합, 협동이어야 하며 이의 밑바탕에는 민중에 대한 믿음, 신뢰, 사람, 희망이 자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의 저서 <페다고지>와 이어진 주장으로서 그의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분석, 해결방향은 21세기인 지금 한국 상황에서도 발견되고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제2장 '지도나 교호나(Extenttion or Communication)'에서는 브라질 농촌사회에서 실시된 농업 기술자들(technicians)과 농민들이 새로운 농촌사회를 이룩해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서로 상호 의사소통할 수 있는가에 관해 분석했다. 그는 '지도'라는 용어를 낱말의 언어학적 의미, 철학적 지식론에 입각한 비평, 지도와 문화적 침략의 여러 개념 간의 관계 등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지도'에 대해 종합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지도의 개념이 어떻게 해서 농민을 믈건으로 만드는 여러 행위로 전개되는가를 밝혀준다. 따라서 일반적인 교사와 마찬가지로 영농기술자인 교육자는 그가 역사적 현실 속에서 사람들과 추상적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관계를 맺으려 하는 한 반드시 지도와 교호 중 교호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프레이리는 다시 한번 인간화를 위한 '문제제기식 교육'의 개념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는 교육 행위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어야 하며, 방법, 기술 과정 전체가 인간 해방의 구현 방법이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인간 해방으로서의 교육은 실제나 상황에 대한 반성 이상의 것 즉 프랙시스(praxis)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교육으로서의 프랙시스는 실재에 대한 반성과 그 실재를 변형시키는 행동 사이의 통일점을 뜻한다.
 
이 책은 <페다고지>와 마찬가지로 주로 성인문맹퇴치교육을 중심으로 한 민중교육론인 까닭에 상당히 주의 깊게 읽어야 할 성질의 것이다. 프레이리의 브라질과 남미에서의 교육대상이 가난과 억압에 찌든 농민과 도시지역 빈민들이면서도 우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문맹자들이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만 그의 교육론의 틀과 방법론이 명확히 이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서의 전편을 꿰뚫고 흐르는 프레이리의 브라질 근대사 인식을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여 읽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어쨌든 리챠드 쇼올이 지적했듯이 프레이리의 이론과 방법론은 브라질의 경우뿐만 아니라 소외된 민중 일반의 교육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21세기 한국에서 같은 인간존재로서 동등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평등한 사회적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며 인간적 노동도 성취도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을 여전히 '민중'이라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 상당수가 역사의 주인으로 스스로를 자각하지 못하고 지배계급으로부터 미디어와 시스템을 통해 음으로 양으로 세뇌되어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사회의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또한, 프레이리의 교육철학은 그런 사람들 뿐 아니라 어떻게 보면 현대인 모두가 참된 인식으로부터 상당히 떨어진 도구적 존재이므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기 자신의 참된 모습을 되찾고 역사적 존재로 되살아나려면 한 번쯤 숙고해 볼만한 교육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책 속의 프레이리의 사상, 교육철학은 깊이가 있고 어떤 때는 따라잡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그는 정곡을 찌르고 있으며 진리의 세계와 이들 진리 간의 연관관계 및 논리 정연한 개념설정을 보여준다. 인간들의 여러 행위, 자연의 세계를 지배하고 자기들의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투쟁 등이 개별적으로만이 아니라 전체적 기능 속에서도 중요한 뜻을 지니는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음을 제시한다.
이반 일리히와 비교해 아쉬운 점은 프레이리가 억압자와 피억업자의 대립 구조를 중심으로 민중의 교육학에 집중하는 대산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 위계적인 관계로 구성하면서 근대사회의 반환경, 반생태, 산업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반 일리히가 생활하고 분석했던 사회경제적 제도와 구조가 프레이리의 그것과 전혀 달랐기 때문에 '학교의 교육 독점'과 '학교화'애 대한 문제의식은 프레이리의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 2012년 3월 24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다고지 (30주년 기념판) 그린비 크리티컬 컬렉션 5
파울루 프레이리 지음, 남경태 옮김 / 그린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대학시절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고나서 교육이나 학습, 연구, 의식화 등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 때 누군가를 통해 '몰래' 추천받아서 읽은 것이다. 당시로서는 저자의 관점과 주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당시 나는 재수까지 하면서 나름 꿈에 부풀어 대학에 입학했으나 3월 첫 일주일 동안 미적분학, 물리학, 화학 수업을 듣고나서 고등학생 때 꿈꾸면서 동경하던 대학생활이 TV 프로그램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와 전혀 다르다는걸 알아버린 후였다. 대학의 교육은 고등학교 시절 교실의 규모가 좀 더 커지고 고등학교 수업과목에 몇 가지 더 포함시킨 후 '선택'을 위한 강제에 불과했다.
토론과 논쟁은 고사하고 교수는 오간데 없이 조교가 강의실에 들어와 교재를 요약해 설명하고 출석과 주,객관식 시험은 고등학교와 다름 없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선배들에게 들으니 나 뿐 아니라 5~10년 전 선배도 나와 동일한 교재로, 동일한 방식의 수업으로, 동일한 시험을 치렀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초,중,고 12년간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진절머리가 나있던 나였기에 대학의 모습은 충격아닌 절망이었다. 27년이 지난 요즘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970년 처음 발간된 이 책은 2000년 미국에서 발간된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 ; 피억압자의 교육학) 30주년 기념판의 국역본이다. 우리 세대에게도 낯설지 않은, 아니 어느 한때 금서 목록의 한 칸을 차지했을 만큼 잘 알려진 책이다. 이 책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암울했던 군사독재 시절 금서 목록에 올라 비합법적으로 유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진보적 지식인, 노동자, 학생 들에게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책이자 교육자 자신이 교육받는 책으로 널리 읽혀진 바 있다.

저자가 이 책을 발간하는데 적용된 연구의 대상은 1980년대 또는 201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과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1960년대라는 시점의 차이와 더불어 동양권과 전혀 다른 문화와 역사를 가졌던 남미라는지역적 특성, 그리고 문맹율(당시 70%)과 경제구조, 종교 등 사회적 특성도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브라질의 사정과 한국의 사정은 마찬가지로 무척이나 다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모두 저자의 말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느낀다. 그것은 50년 넘는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저자가 교육과 학습에서 제기하는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우리사회 전반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앍는 내내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과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 등 여러 저작들이 오버랩되었다.


프레이리가 인식하는 사회구조는 억압자 대 피억압자의 대립구조였다. '억압'은 폭력을 유발시키는 부당한 질서가 내면화된 결과이며 이는 억압자와 피억업자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비인간화의 총체이자 '길들이기'다. 이런 비인간화의 길들이기에 순응하지 않고 의식의 눈을 떠 자신을 찾는 것이 바로 '의식화'다. 사람이 억압의 힘에 더 이상 먹이가 되지 않으려면 거기에서 탈츨해서 그 힘에 대항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의식화'는 '의식을 발달시키는 과정'이면서 '현실을 변혁시키는 의식적 힘'이다. 의식화는 현실을 단순히 반영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재성찰하는 의식이다. 의식화는 억압적 현실에 길들여져 있는 순종의식에 눈을 뜨고 각성하게 되는 의식이다.

억압자들은 사회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의식의 태동을 가로막고 그러한 의식을 태동시키는 교육체계를 하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억압자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억압을 재생산해내기 위하여 '은행저금식 교육'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프레이리는 교육방식에 있어 요점정리식 기계적 암기를 통해 지식을 축척하기만 하는 '은행저금식 모델'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은행저금식 교육이 '억압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음과 그런 교육의 전제와 개념을 폭로했다. 은행저금식 교육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사이에서 모순을 일으키게 되고 양자 모두를 '비인간화'시킨다고 주장했다.

은행저금식 교육에 대한 획기적 대안으로 프레이리가 제시한 교육은 '문제제기식 모델'이다. 이는 인간과 세계를 분리하여 상호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결합시키는 문제인식을 갖도록 하는, 곧 이론과 실천의 교육을 지향한다.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프레이리는 프락시스(praxis)라고 정의했다.

프레이리는 또한 인간집단의 의사소통과 활동에 있어 '반대화'와 '대화'의 차이점을 강조한다. 억압자들은 억압 도구로서 진정한 의사소통을 차단시키는 반대화의 행동이론을 이용한다. 반대화적 행동이론은 정복, 분할통치, 조작, 문화침략을 특징으로 한다. 하지만 진정한 의사소통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대화는 객체를 주체로 변화시키고 억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의식화의 수단이다. 대화적 행동이론은 협동, 단결, 조직, 문화통합을 특징으로 한다.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마음이 요구된다. 대화 자체가 사랑인 것이다. 대화는 사랑하고 겸손하고 소망을 가지고 신뢰하고 그리고 비판적이어야 한다. 주체적 인간은 '대화적 인간'을 기대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바깥에 있는 하나의 대상이 되어 사물로 전락하는 반면, 피억압자의 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세계 속에서 세계와 더불어 한 인격체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학생들과 교사들이 세계 속에서 주체와 주체로 만날 때 교육은 비로소 교육자와 피교육자, 선생과 학생 모두에게 ‘자유의 실천’이 된다는 것이다.

역자(남경태)는 책의 말미의 해제에서 프레이리의 주장과 논리에 대해 그가 변혁의 대안적 이론으로서 하부구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것과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식화 교육)의 연결이 미흡하다는 점, '혁명적 교육'에 대한 언급을 기피한 점, 그리고 '억압'과 '억압자'라는 개념이 모호하고 주관적이며 계급적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비판받았음을 지적한다. 
내가 프레이리의 사상과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역자의 평가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할 말이 없다.


교육당국이 말로는 '전인교육' 등을 내세우지만 실제 일류대학을 목표로 교육정책과 학교수업을 진행시키고 사교육을 방치,조장하여 청소년들과 학생들이 입시교육과 성적을 이유로 자살하고 방황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지켜보노라면, 프레이리의 교육관점과 방식이 '꿈나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정부가 재벌과 기득권자를 위해 아이들을 '생각없는' 경쟁의 노예, 소비자 노예, 비정규직 노예를 양성하기로 작심한 것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굳이 혁명이나 변혁, 억압이나 피억압을 내세우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고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는' 것이 학습과 교육의 목적이지 않은가? 아이들이 오로자 대학입시를 위해 10대, 20대를 보내고 나서 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취업을 위해 매달리고 나서 취업을 하거나(이제는 정규직 취업 자체도 바늘구멍이지만..) 전문직에 종사한다 한들 그들의 인생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 남는 것은 커녕 그 오랜 과정에서 아이들은 행복이나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자본과 제도의 부속품이 되고 소비의 희생양이 되고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죽을 때까지 방황할 수 밖에 없을 것이 뻔한데...ㅠ

도대체 우리 세대의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원하는가? 자신들도 신자유주의식 무한경쟁에 휘말려 개고생하고 있으면서 무언가 집단적, 조직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기 보다 아이들마저 학생 때부터 무한경쟁의 정글에 던져버리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게끔 도와주기만 하면 안되는 것일까? 실로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일선 교사들 역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교육자(선생)이 지식을 알면 얼마나 아는가? 그들이 아이들의 개별 부모들보다 더 잘 알까? 그렇지 않다. 부모들은 나름 자신들이 일하는 분야에서 일정한 전문가다. 지식이든, 정보든, 업무방식이든, 제도나 이론이든 간에... 아이들에 대해서도 선생들보다 아이들 스스로가 더 잘 안다. 선생들이 학원강사보다 과목에 대한 깊이가 있나? 그렇지도 않다. 선생의 역할은 다른 것이다. 다른 역할 속에서 선생들도 더 배우고 깨닫고 역량을 키워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선생의 역할과 권리는 학부모, 학생들의 권리와 역할과 함께 스스로 만들고 갖춰야하는 것일텐데...

[2012년 3월 22일]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상생 2016-05-24 2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소에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록식 교육을 해야하리라고 생각 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교육은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미래를
위해서도 지극히 좋지 못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미래 세대가 한국정치를 담당할때에야 바꾸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뭏든 한국교육 미래를 위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니 앞으로 개선이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붉은 구름님의 글이 좋아서 제 블로그에 복사해갔습니다.
출처 밝혔습니다. 원치 않으시면 karamos@naver.com 으로 연락주세요
오늘도 평안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과학과 메타과학
장회익 지음 / 지식산업사 / 199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08년 수학 및 자연과학 교양서를 주로 읽을 때 구해서 책꽂이에 두었다가 지난번 이 책의 저자인 장회익 교수의 <물질, 생명, 인간>을 읽은 후 찾아보았다. <공부의 즐거움>을 읽으면서도 저자가 어떤 과정을 거쳐 과학철학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문제의식과 아이디어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가끔 궁금했다. 특히, 학문간의 통섭이나 '온생명' 이론에 대한 저자의 완성된 생각이나 결론이 아니라 저자의 초기 문제의식을 짚어보고 싶었다.
1989년에 처음 발간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그나마 저자의 초창기 문제의식과 아이디어, 연구결과물을 담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한국이 배출해 낸 세계적인 과학철학자답게 설득력이 있다. 조금 어렵지만..ㅎ

전체적인 내용은 과학의 학문적 구조와 과학적 인식의 성격, 그리고 과학을 통해 인식된 우주와 그 안에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생명과 인간에 대해서 다루었다. 저자는 그 두 가지 주제가 "완전히 독립된 것이 아니라 결국 인간이라고 하는 하나의 고리를 통해 연결된다"고 책머리에 밝혔다. 즉, 우리는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면서 다시 과학이란 인간이 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되며, "과학이란 인간이 지닌 제약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인간 또한 과학이 전해주는 지식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런 설명은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유사 이래 인간이 창조해 온 모든 지식과 결과물은 인간을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으며, 어랜 인간의 역사와 진화과정 속에서 함께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일부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과학 또는 기술은 중립적이다"라는 말도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의 최고학부를 졸업한 486 세대 지인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공계를 졸업한 이들에게...  내가 보기에 자연과학을 전공했거나 응용과학을 전공한 상당수의 486 세대들은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하여 현재 중~고위급 실무책임자나 결정권자가 되었음에도 스스로의 혁신과 학습을 게을리하면서 과학기술 문명과 지배세력의 자발적, 타율적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기술이나 지식이 결코 중립적, 객관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인간의 세계관이나 의식의 프레임의 한계 내에서 존재함을 역설한다.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자신이 아무리 수학, 화학, 물리학, 핵물리학, 컴퓨터공학, 생명공학, 건축토목학, 전기전자공학, 재료공학 등을 수 십년 공부했다 하더라도, 또 인문사회과학 각 분야에서 특정 학문을 오랫동안 전공했다 하더라도 학문 전체에 대한 포괄적인 시야나 역사적, 문화적 시각을 보유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분야에 대해, 다른 이들의 시각에 대해, 사회의 진화흐름에 대해, 사람들의 삶과 고통에 대해서 꾸준히 알려고 하고 대화하는 과정이 뒷받침되어야 자신의 전공과 학문과 직업의 정당성과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조금 더 그 분야에 종사하였다고 하여 다른 분야의 관계자나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알고있고 자신만이 옳다고, 틀리자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자 교만이고 결국 스스로를 망치게 될 것임을 분명하다.


저자는 과거 인류가 자연이라는 위력적인 존재 앞에 공포와 굴종의 수동적 생존을 지속하면서 그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힘든 투쟁을 겪어 왔다면, 지금은 자연의 공포와 굴종에서 벗어난 대신 또다시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지배세력 앞에 예속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우려한다. 따라서 인간이 과학기술 문명이라는 새로운 지배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시대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새로운 문명의 정체부터 밝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이 '자연과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속하는 일차적 실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졔적 지식'이라 한다면 다시 과학과 이것이 빚어낸 문명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차원 높은 새로운 종류의 지식을 저자는 '메타과학'이라 부른다. 따라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적 도약은 바로 과학을 발판으로 하여 메타과학으로 올라서는 도약을 의미하며, 이는 "인류가 과학기술 문명의 노예가 되지 않고 문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
감당해야 할 불가피한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과학의 논리구조와 연구방법을, 정합적이고 사실적인 하나의 이론체계가 구성되는 과정을 '양태'와 '실태'라는 구분과 '의미기반'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의미기반'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과 칼 포퍼의 '체계변형에 대한 입장차이'를 비교하면서 제시,검토한다. 
의미기반은 "시간 공간 내에 존재하는 어떤 임의로운 대상에 대하여 그것의 물리적 ‘특성’을 표상하고 그것의 ‘상태’를 서술할 어떤 일반적 방식들"로 정의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서술공간, 서술모형, 서술양식에 따라서 다른 의미기반을 가진 과학이 존재한다. 의미기반이 다른 과학은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대표적으로 고전역학의 의미기반으로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어서 그런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토대로 '온생명'에 대해 설명한다. '온생명'은 '생명체가 온전하게 자기의 삶을 보존하며 영위할 수 있는 독립된 단위'를 말하는데, 태양과 지구를 포함한 물질계가 하나의 온생명임을 의미한다. 즉 우주 속 어디에 있더라도 태양과 지구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지구의 작은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온생명은 하나, 또는 생물체의 군집인 개체생명과 그것을 제외한 보생명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상호작용이 온생명을 구성하고 있다.

 

* 인상깊은 문단 :

 "이처럼 '선'과 '악'의 관념에 비추어 흔히 '우리편'과 '상대편'이라고 나누어 생각하는 구획관념은 더 깊숙히 인간의 본능 속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인간의 선조가 특히 맹수글과의 경쟁 속에서 성공적인 생존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인간의 진화과정을 생각해 보면 '우리편'과 '상대편'의 철저한 구분의식이 대단히 유...
용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이 쉽게 짐작된다.
외부의 적과 대결하는 데 집단적인 협동을 중요한 무기로 사용해 온 인류의 선조는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을 본능 속에 간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며, 일단 본능 속에 새겨진 이러한 성향은 지교적 짧은 문화 발전과정의 기간 내에 특별한 수정을 받기가 어려웠으리라고 짐작된다.
뿐만 아니라 현대 이던의 문화발전 기간 내에서는 특히 민족의 생존을 위하여 이것이 유용한 방향의 기능을 해왔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갑자기 역기능을 나타내기 시작한 이러한 성향은 '운동경기'라는 특별한 행동양식을 통해 묘한 절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스포츠'라는 극히 무의미한 행동양식이 현대사회에서 불길같이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주는 현실적 독소를 대부분 제거하면서 인간이 지닌 이러한 본능적 욕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보면 이러한 집단구획 의식이 비교적 이른 유년기에 이미 발현되기 시작하여, 이것이 곧 '선'과 '악'의 관념과 결부하여 '좋은 편'과 '나쁜 편'으로의 구분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념은 물론 성장과정의 진행과 더불어 상당한 수정이 가해지지만 근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의 사회의식 경향은 그 바탕에 깔린 본능적 구획성향과 함께 거의 누구에게나 일생 동안 그 사고 및 행동양식을 지배하게 된다.

아것 이외에도 인간의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기본 요소들은 특히 성장과정을 통해 인간 심성의 심층부에 깊숙히 자리잡고 그의 모든 사고 및 감정을 지배하는 것이므로 이를 의식적으로 수정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바로 이러한 가치관념 및 인식형태가 현대의 과학기술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들이므로, 이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가치이념으로 대치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 2012년 3월 21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