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반양장)
문재인 지음 / 가교(가교출판)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 문재인 저 < 문재인의 운명 >을 읽고 / 2011. 06., 400쪽, 가교출판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야권 단일후보를 내세우기 위한 문재인 후보 진영과 안철수 후보 진영의 협상과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SNS에서 열성 지지자들의 상대방에 대한 욕설과 비방이 난무하여 지나친 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런 모습이 대선의 승패에도 영향을 주겠지만, 전체적으로 한국 유권자들, 특히 선거에 과잉 몰입하는 열성 유권자들의 모습이 오히려 '정치 불신'을 초래할 것 같다는 우려도 있다.나는 연초부터 안철수 원장의  대선 출마를 원했고 그를 최근까지 지지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작년 서울시장 보궐 선거 때와 달리 두 사람의 경쟁마당에서 한 발 빼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당초 예상과 달리 안철수 후보의 정책과 공약, 선거운동 방식이 기대에 크게 못미치기 때문이다. 정치 개혁 방안도 허술하고, 경제 정책, 외교안보통상 정책, 복지 정책, 노동 정책 등도 <안철수의 생각>보다 크게 후퇴했다. 정책과 공약으로만 보면 문재인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99% 유권자에게는 우호적이다. 물론 그래도 이정희 후보에게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지만...
두 번째 이유는 야권 단일후보의 주체가 문재인과 안철수 두 사람 만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작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와 4.11 총선 때는 야권 정당 중에서 진보신당과 사회당 등 일부 진영을 제외한 야권 진영 대다수와 시민단체까지 함께했던 것과 크게 다르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일부 인정할 만한 이유는 있다. 통합진보당이 부정경선 시비로 지지율이 폭락했고, 시민단체의 상당수가 4.11 총선 전후에 정치에 휩쓸리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대폭 줄어들었다. 정치권력을 다투는 선거의 특성상 권력을 독점하고 싶은 정치집단의 속성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한 편으로는 원칙과 정책보다 '선거에서의 유불리'로 정치하는 모습에 여전한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두 사람의 개별 지지율 합계가 박근혜 후보를 앞서고 있고, 그만큼 4.11 총선 때의 지지율이 문과 안 두 후보에게 집중되었다.(4.11 총선 정당 지지율 새누리당 + 자유선진당 + 기독당 = 47.7%, 민주통합당 + 통합진보당 + 창조한국당 = 47.6% 합계 94.3%, 11월 7일 리서치뷰 후보별 지지율 박근혜 40.3% + 문재인 29.6% + 안철수 24.4% = 94.3%)
현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누가 더 적합할 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안철수 후보는 장점과 단점이 너무 뚜렷하고, 문재인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박근혜 후보와 대선 승패만 놓고 보면 안철수 후보에게 상대적으로 더 높은 가능성이 엿보이기는 하다. 아무튼 남은 대선 기간이라도 야권 전체의 정책 연대를 통한 반박근혜 단일화 전선이 진행되기를 바란다. 

문재인 후보의 대선 출마의 변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다>를 읽은 후, 출마 공약집 성격이라 그런지 문재인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말끔히 해소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문재인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2년 만에 공식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면서 자신과 그 분과의 관계에 대해, 참여정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과 자신의 '인생' 역정, 노 전 대통령과의 '동행', 그리고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운명'을 써내려 갔다. 책을 읽어보니 문재인씨가 개인적으로 어느 누구보다도 도덕적이고 선량한 정치인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과 쌓은 인연이 깊고 특별하다는 것에 공감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충분해 보인다. 정치에 대해 전혀 무관심했던 문재인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운명' 때문에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셈이다.
그런데 역으로 '운명'이기 때문에 문재인씨도 한국의 유권자들도 안타깝다. 노 전 대통령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사람을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에 임명함으로써 민정수석의 도움을 크게 받지 못한 셈이다. 그리고 그 '운명' 때문에 문재인씨는 결국 경험도 없고 자신도 없는 정치에 발을 담그고, 대통령 후보로 출마까지 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직책이 젊었을 때부터 결심을 하고 훈련과 경험을 쌓고 검증도 되면서 차분히 한 계단씩 성장해도 모자랄 판에...

문재인씨는 6월 항쟁시 부산에서의 민주화 시위에 대해 높은 자부심을 표현한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 운동권이나 정치권에서 비주류로 대접받은 것이 '서울 중심주의'와 민주진보진영의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라고 진단한다. 나는 이에 대해 십분 공감한다. 그의 이런 느낌이 앞으로 그가 정치를 계속 해 나갈 때, 정치개혁과 행정개혁, 지역자치, 그리고 학벌주의 타파와 엘리트주의 청산으로 실현되기를 바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한 것을 느꼈지만, 재임시에 전혀 손을 대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1997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출마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을 문재인씨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의 '고집'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포기했다는 놀라운 사실까지...
문재인씨가 부산 경남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은 나에게 있어 감점 요인이었다. 문재인씨 정도의 세대에게 '명문고'라는 무의식적인 엘리트주의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울산시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회의원, 서초구청장, 고위관료 등의 동기들이 모두 '잘 된 친구들'이라고 표현한다. 누구에게 '잘 된' 것일까? 개인들에게, 아니면 그들을 뽑아준 유권자에게? 후자에게는 결코 '잘 된 일'이 아닐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삼성 이학수가 고등학교 후배라는 이유 하나(?)로 그를 가까이 했고, 삼성 이건희 일가와 가신들에게 비판적이지 않았다. 사법고시 동기들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대북송금특검에 대한 문재인씨의 '불가피하다'는 입장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소통에 실패했다. 대북송금과 같은 민감하고도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비서실장이 한 번 전임 대통령을 찾아가 설명한다고 하여 서로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자체가 안일했다. 그것은 전임, 후임 대통령끼리의 의사소통이건, 양자의 참모진이나 비서진끼리의 의사소통이건 소통이 잘못된 것이고, 그렇다면 그 책임은 현직 대통령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평검사들과도 공개적으로 대화하면서 왜 전임 대통령과는 허물없이 대화하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하면 무척이나 아쉬운 대목이다. 즉,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때의 비서진과 여당 핵심 책임자들의 불협화음과 소통부재는 참여정부 내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소위 진보개혁세력과의 소통도 소홀했다. 그런 불협화음을 누가 어떻게 시작했더라도 그 문제를 풀어야 할 책임은 당연히 권력을 쥐고 있는 측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주축세력이 해결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참여정부 집권 기간 내내 불안정한 정치 지형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문재인씨의 표현대로 "개혁은 정권 혼자 이룰 수 없다." 개혁과 변화를 원하는 정권과 진보개혁 진영과 시민단체와 유권자가 함께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소통과 공유와 양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나를 따르라"나 "나를 도와줘"가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연대도 협력도 한 때에 그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책임은 권력과 권한이 큰 만큼 더 막중함을 알아야 한다. 문재인씨가 12월 19일 승리한다면 가장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검찰과의 대화, 검찰 개혁, 민주노총과의 관계, 한미FTA, 대연정 등에 대한 문재인씨의 입장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출신 인사들의 공통적이다.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선의와 진심을 알아주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사전에 입을 맞춘 것처럼 정동영 전의원 등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한결 같다. 
책 속에는 "정부가 정책에 확신을 갖고 있더라도, 반대의견이 있으면 귀 기울이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본인 스스로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이 부분에 무척이나 소홀했다. 집권 초기에 몇 번 추진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처음 한 두번 시도해 보다가 그냥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다.
2005년 대연정 제안은 문재인씨의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1) 타이밍 2) 형식과 절차 3) 정치공학적 내용 4) 실현가능성에 문제가 많았다. 노 전대통령이 대연정 카드를 꺼낼 때가 국정원의 도청테이프 공개로 인해 정치권과 삼성, 그리고 언론이라는 3각 부정부패에 대해 여론이 뜨겁게 달구어져 있을 때였다. 형식과 절차 측면에서도 일방적이었다. 역시 소통의 문제였다.
2003년 화물노조 파업만 하더라도 1차 파업후 2차 파업에 돌입한 이유는 정부가 1차 파업 때 '표준운임제 시범실시와 법제화, 다단계 하청구조 개선'을 약속했지만, 몇 개월 동안 미루면서 이행의지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을 자세하게 파악하지 않고, 끈질기게 대화하고 협상하지 않고 "몇 개월 만에 재파업"이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부분에 대해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을 옮겼다.

"문후보와 안후보 중에서 이제 한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나의 결론은 안후보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누구를 지지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나의 개업 변호사 초기 시절 구속 노동자 첫 사건이 화물연대파업이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 당시 화물연대 노동자들은 생활고로 인하여 이미 10여명 이상이 자살한 상태였다. 이러한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없었던 특수고용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생존권은 방치되어 있다가 2002년 10월 화물연대 결성을 계기로 2003년 5월부터 각 지역에서 분노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하여 노무현 정부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노정부는 화물연대가 왜 파업을 했는지에 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사태를 즉시 해결해야 하고,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는 조중동의 선동에 휩쓸려 즉시 파업을 풀지 않으면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협박하였다. 그리고 노동자들을 부산대로 밀어 넣은 다음 파업종료를 유도하였고, 파업종료 후에는 화물연대 간부들을 모두 구속하였다(부산지부 3명 구속). 이후 노정권의 노동탄압정책 기조는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유지되어, 2003년 6월에도 철도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였고, 결국 임기 5년간 1천 37명의 노동자가 구속되었다(김영삼 정부 시절 구속노동자 632명). 이러한 반노동자 정책의 중심에 문후보가 있었다. 나는 문후보가 이에 대하여 사과하거나 반성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를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변영철 변호사)

요즘 야권 단일화 상황과 상충되는 문재인씨의 의견이 나온다. 바로 국무총리의 국무위원 임명제청권이다. 이 책에서 문재인씨는 대통령제에 맞지 않는 제도이며, 정치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책임총리제'를 이야기한다. 야권 단일화를 해야 하니까, 상황이 변했으니까 이젠 괜찮은 걸까?
참여정부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기 위해 무척이나 애썼던 것에 비하여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국가보안법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것도 실망이다.
"노동,시국 사건은 나만큼 많이 한 변호사가 없을 듯 싶다"(p.443)라는 자화자찬에도 불만이다. 그렇게 자신하면서도 왜 참여정부 내내 노동자들의 처지와 조건을 개선시키려는 데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화물연대의 파업 등 각종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노동자보다 사용자 편을 들었을까? 노동자, 노동자 조직, 노동쟁의에 그렇게 인색하고 전략이 없었을까? 그런 자신감에 비해 이번 대통령 선거 공약에서도 노동공약은 참 초라하다.
 
[ 2012년 11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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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은 왜? -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의 연금술 과학전람회 2
마르코 라울란트 지음, 정수정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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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르코 라울란트(Marco Rauland) 저, 정수정 역 < 호르몬은 왜? :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의 연금술 Feuerwerk der Hormone >을 읽고 / 2007. 03., 279쪽, 프로네시스


이 책은 인류의 자연과학(자) 또는 과학기술(자)의 섣부른 이해나 사용이 본의 아니에 인간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인간의 뇌에서 분출되는 신경전달물질, 즉 호르몬이 인간의 기분이나 몸의 상태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생화학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이야기한다. 저자가 설명하는 호르몬의 영향은 주로 간단한 동물실험이나 일부 실험대상 인간을 활용한 표본 실험 결과이다. 그리고 그 실험 결과는 주로 뇌 스캔의 정보를 토대로 분석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왜 성공하면 행복감이 들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진 위, "답은 간단하다. 우리의 뇌에서 뇌 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이 전달물질이 분비되면, 행복과 쾌감중추라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신경 호르몬인 도파민은, 중뇌의 작은 영역에 엘도파 아미노산으로 저장되어 있다가 뇌의 명령을 받아 분비된다."고 해답을 제시한다. 그 해답의 근거는 "이러한 뇌의 메카니즘은 동물실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다."는 것이며, "이런 결과는 원숭이 뿐 아니라 사람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 확실히 (뇌에서) 더 많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실험을 통해 인간의 기질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p.18)로 말한다. 또한 "인간은 니코틴과 알코올 그리고 코카인과 같은 마약류를 복용하여 도파민 수치를 인위적으로 높여서 뇌의 쾌감중추를 자극하고 중독된다. ... 일중독이나 섹스중독과도 같이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행위'에도 중독될 수 있다. ... 도파민은 쾌락과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위험도 안고 있기 때문이다."(p.26)라고 추가로 설명한다. 비슷한 사례는 계속된다.
"자동차에 열광하는 열 두 명의 남성을 선발하여 ... 뇌 스캔 분석 결과, .... 도파민을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성화 ....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성관계를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처럼 무엇인가를 즐기거나 욕망할 때 분비된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스포츠카도 즐거움과 욕망의 대상인 것이다."(p.29)
"(실험 결과) 애견인이 개와 함께 있을 때, 애견인이나 개 모두 혈압이 떨어졌다. 이는 개와 사람이 똑같이 기분이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연구진들을 더 놀라게 한 것은 페틸에틸아민 수치가 20% 가량 상승했다는 점이다. 페닐에틸아민은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경험했을 때 분비되는 '행복호르몬'이다. 예컨대 가슴 설레는 멜로영화를 볼 때 페닐에틸아민 분비가 늘어난다."(p.32)

그런데 호르몬이 그런 작용을 하는 근거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뇌 스캔 결과이다. "기분 좋은 순간(웃음)에 도파민의 분비를 관장하는 뇌영역이 활성화되었다."(p.27) 하지만, 저자의 설명으로는 기분이 좋거나 행복한 상황이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키는가? 아니면 도파민의 분비가 기분을 좋게 하는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닭이 먼저냐, 달갈이 먼저냐?'라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다. 또는 기분이 좋은 기분이 뇌에서 도파민을 방출하고 그 도파민이 다른 호르몬과 연결작용을 하면서 혈압을 낮추거나 호흡과 맥박을 빠르게 하거나 신경을 전체적으로 이완시키는 대신 눈과 입 주변의 근육을 움직여 웃음짓게 하거나 미소짓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저자는 여러 종류의 호르몬을 연관관계 없이 기분 상태와 연결짓는다. 기분이 좋을 때 뇌에서 분출하는 '행복호르몬'은 페닐에틸아민이기도 하고 도파민이기도 하고 세로토닌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 분비되는 것이고 함께 분비될 때는 어떤 경우일까? 호르몬의 분비량은 무조건 많은 것이 인체에 좋은 것인가?

저자와 같은 과학자들, 특히 상품생산과 관련되어 있는 학자들의 위험성은 호르몬과 인체를 단순하게 연관지으면서 인공 호르몬으로 인체를 조작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다는 데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한 두가지 호르몬의 과잉이나 결핍이 우울증과 같은 인체의 병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한 후 의학적 처방을 내리기도 한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기도 한다. 마치 중세의 흑사병이 물과 생활의 위생상태가 불량인 상태로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이 근본 원인인데, 불결한 환경에 몰려드는 쥐가 병균을 옮기는 것으로 착각하여 쥐만 박멸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결과라 할 수 있다.(물론 저자 자신도 인간의 심리 상태와 호르몬이 복잡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인간의) 활홀한 행복감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전달물질은 50여 가지가 넘는다."(p,210))

"사람들의 감정의 기복은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세로토닌이라는 작은 분자 때문이다. 세로토닌은 뇌 전달물질로 뇌에 정보와 소식을 전달해줄 뿐만 아니라 기분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로토닌은 체내에 10mg 정도가 흐르는데 이 가운데 1%만이 신경전달물질로 뇌에 존재한다. 나머지는 위와 장에 머물며 소화를 돕는다."
"뇌에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면 기분도 좋아진다. 기분이 좋을 땐 세로토닌이 뇌의 기분중추를 활성화시켜 편안한 기분과 만족감을 느끼게 만든다."(p.33)
"음식을 먹을 때에도 세로토닌이라는 전달물질이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세로토닌은 바나나, 파인애플, 딸기와 같은 과일에 순수한 형태로 들어있을 뿐 아니라 참깨나 우유, 쌀, 초콜릿에도 들어 있다. 하지만 음식물을 통해 섭취된 세로토닌이 직접 뇌까지 전달되지는 않는다. 뇌에 전달되기 위해서는 다른 생화학적인 메카니즘이 필요하다."
"당이 함유된 식푸을 먹으면 탄수화물이 풍부한 식품을 통해 당이 생성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세로토닌 생산이 더 빨라진다.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을 때 초콜릿이나 쿠키 또는 아이스크림과 같은 단 음식을 먹으면 어떤 약을 먹는 것보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p.38)
"따듯한 봄날 햇볕을 쬐거나, 여름휴가를 떠나 아름다운 해변의 태양 아래 누워 있으면 왜 기분이 좋아질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우리가 빛(2500럭스lux 이상)을 보면 뇌에서 세로토닌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 겨울에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겨울철 세로토닌 결핍을 특히 심하게 느끼는 경우이다. .... 그렇다면 겨울철과 초콜릿의 높은 상관관계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그래서 따듯한 남쪽 지방 사람들이 우중충한 북유럽에 사는 사람들보다 우울증이 적고 더 정열적인 것이다."(p.42~43)

이 책은 자연과학에 대한 학문적, 실질적 관심이 아니라 단순히 호르몬에 대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유익한 편이다. 호르몬에 대한 유익한 정보는 생각보다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은 여성의 열 배, 여성의 에스트로겐은 남성의 네 배"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율에 따른 검지와 약지의 길이 차이의 상관성 : 검지가 약지보다 짧은 사람이 반대의 경우보다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크다. 즉, 소위 '남성적'이라 할 수 있다."
"에스트로겐이 증가하면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농도가 증가하여 폐경기의 여성(에스트로겐 감소)은 세로토닌 농도가 줄어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스킨십은 대표적인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과 에스트로겐의 분비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여성의 옥시토신 수용체가 남성에 비해 5배이기 때문에 여성이 스킨십에 민감하다."
"여성의 세로토닌 수치는 월경 직전에 가장 적어진다. '월경전증후군'은 여성 중 30%가 경험한다."
"테스토스테른은 35세 이후 매년 1%씩 감소. 60섹에 절반 정도로 생산이 줄어든다. 물론 개인차가 있으며 유전, 식습관, 스트레스, 질병 등에 따라 달라진다. 테스토스테론의 감소로 만성피로, 발열, 수면장애, 우울증, 성욕감퇴, 발기부전, 기분나쁨, 체중증가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실험 결과 사랑에 빠진 연인에게는 페닐에틸아민, 엔도르핀, 도파민이 치솟고 세로토닌이 결핍된다. 따라서 행복감을 느끼는 동시에 우울증, 강박증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페닐에틸아민은 식욕억제제와 유시한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배고픔을 억제한다."
"연애 초기의 실험 참가자들은 강박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처럼 세로토닌 수치가 정상적인 사람보다 40% 정도 낮다. 강박장애처럼 한 가지(사람)에 몰두하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고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또한 비판적인 행동과 관련된 뇌 부위 활동도 억제시키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연애 초기의 남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독신 남성이나 연애기간이 긴 남성에 비해 40%나 낮고, 여성은 비교 상대보다 2배나 높다. 따라서 이들은 싸우지도 않는다."

"애인과 헤어지면 페닐에틸아민과 엔도르핀 수치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금단증상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대신 도파민이 더 증가하고 아드레날린이 갑자기 증가한다. 흥분제와 욕망을 자극하여 과격한 행동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도 늘어나 밤잠을 못이룬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모든 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즉, 실연의 아픔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

"섹스를 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남녀 모두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증가한다. 여성은 일부 늘어나지만 남성의 경우 5~10배 증가한다. 바소프레신은 테스토스테론의 성욕 촉진작용을 돕고 테스토스테론보다 더 부드럽게 작용하려 남성이 부드럽게 접촉하도록 이끈다. 여성은 에스트로겐과 옥시토신이 증가하여 성적인 접근을 용이하도록 만든다."
"성관계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자는 바소프레신의 농도가 떨어지고 남녀 모두 옥시토신의 분비가 급격하게 늘어난다.옥 시토신 양이 최대치에 이르면 오르가즘에 도달하게 된다. 절정에 달하면 도파민과 앤도르핀처럼 천연 '환각제'와 프로락틴 같은 호르몬의 농도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바소프레신은 항이뇨작용과 더불어 수면을 촉진하는 작용을 하고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엔도르핀이 몽롱하고 기분 좋은 환각상태를 단들기 때문에 남성들은 성관계 후 빨리 잠들 가능성이 크다."

"사랑의 감정에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몸 속에는 수백 가지 다양한 관계가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호르몬의 기능과 상호작용, 그리고 무수한 유발인자의 실체를 더듬어 찾아갈 수밖에 없다. 자연은 인간의 감정을 단순히 생화학적인 작용에만 국한시킬 수 없도록 만든 것 같다."(p.249)

[ 2012년 11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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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벌은 세습되는가? - 퓰리처상 수상 기자가 밝힌 입학사정관제의 추악한 진실
대니얼 골든 지음, 이기대 옮김 / 동아일보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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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논의하기 시작한 시점은 참여정부 후반기이고 2007년 6월 교육부에서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인 2009년 대학입시부터 반영되기 시작했다. 입학사정관제는 실시 초기부터 교육계와 한국사회 전체에 우려를 안겨주고 있다.
“교수 ·교사 10명 중 7명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공정사회와 안맞아” 한국교총은 2009년 10월 한국교육학회, 한국교육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한국행정학회 소속 교수·학자 203명과 일선 초·중·고 교사 77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교수·학자 61.6%와 교원 70.4%는 ‘입학사정관제 확대는 특혜 시비 등의 우려가 있어 공정한 사회와 배치될 수 있다’고 답했다. 2009년 9월에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문이 일면서 입학사정관제가 선발 과정에서 고위층 자녀, 교직원 자녀, 특정학교 인맥 등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나오기도 했다.
이런 논란에 불을 붓듯 한 교육업체 대표가 트위터에 “내 아내가 입학사정관인데 덕 좀 보시죠”란 내용을 올려 파문이 커지자 결국 해당 입학사정관은 업무가 정지됐고, 소속 대학교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같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현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가 ‘과연 공정한 입시’인가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이후 정부는 입학사정관제의 공정성 문제에 대한 긴급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지껏 흐지부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먼저 입학사정관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공정한 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의 실태는 어떨까?

 

"부자 백인에 대한 미국 명문대학의 부정한 특혜 입학조치는 하버드대, 예일대, 프린스턴대, 스탠퍼드대, MIT대, 컬럼비아대, 다트머스대, 듀크대, 미시간대, 노트르담대, 브라운대 등 모든 아이비리그에 공통적이다."
"명문대학 특혜 입학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상원의원(예일), 앨 고어 부통령(하버드), 빌 프리스트 상원의원(프린스턴대), 존 케네디와 지미 카터(브라운대) 등 유명 정치인과 가족들이 주도했다."
"명문대학은 비영리기관으로서 정부로부터 세금 보조를 받으며, 비과세 혜택에다 수 십억 달러의 정부기금과 연구 장려금을 챙기면서도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굴하고 세공해야 하는' 사립학교의 사명을 외면한다."

 

2년간의 끈질긴 취재 끝에 이 책를 쓴 대니얼 골든에 의하면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그는 책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문 대학이 신분 상승과 균등한 기회 부여라는 미국인의 꿈을 이루어 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행 미국 입시제도는 소수의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바늘구멍만한 합격의 문의 열고 있는 반면 특권층 자녀들은 손쉽게 명문대학에 들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으며, 심지어 졸업 후 기업과 정부기관의 높은 자리까지 갈 수 있도록 친절히 안내해준다.”고 폭로하고 있다. 그는 입학사정관제가 어떻게 변질되어 왔는가를 설명하며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은 경쟁률이 높고, 권력과 풍요로움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을 하는 100여 곳의 사립대학들이 부유하거나 연줄 있는 학생들에게 특혜를 주고 있는 입시제도의 이중 잣대를 폭로한다. 이들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지연입학deferred admission이나 편입 등의 제도를 이용해 ‘특별대우’라는 이름의 옆문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입학처장과 직접 대면하는 특권을 누리면서 일등석에 앉아 대학 입시라는 고된 여정을 편안하게 여행한다. 그들은 다른 지원자들이라면 곧바로 낙방할 만한 사안인 서류접수 마감일 경과에서부터 음주운전까지도 용서 받는 능력도 지녔다.
정상권의 대학들은 가난한 학생들도 충분한 재정지원을 하기에 입학이 어렵지 않다며 이른바 니드 블라인드(Need-blind,학생 선발 시 학생의 재정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제도) 떠벌린다. 그러나 그들이 부富에까지 눈을 감는 것은 아니다. 대학들은 사립 인문계고교 출신을 주로 합격시키고, 테리 샌포드 총장 시절의 듀크 대학처럼 학생 모집관에게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을 유치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또 단기적으로 선물(기부금)의 유혹에 휘둘리고, 장기적으로는 가난한 집안 출신 학생들을 너무 많이 뽑을 경우 가난한 동문 계층이 형성되어 결국 기부금이 줄게 될까 두려워한다. 

 

"하버드대학의 입시 경쟁율은 10:1이 넘으며, 신입생 90%가 고교 상위 10%에 속한다. 그러나 주요 기부자의 자녀 합격율은 50%가 넘는다. 거액기부자 모임인 자원위원회 회원의 자녀는 90% 이상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에는 'Z명단'이 있다. 이것은 동문과 기부자들의 '덜떨어진 자녀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입학사정 원칙을 조정하여 옆문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는 하버드대의 지연입학 정책을 뜻하는 용어다."
"듀크대의 1,2차 신입생 선발결정 후 일부 지원서류는 골판지상자에 담아 총장에게 가져간다. 총장은 직접 서류를 선별하여 가능성 높은 학생이 아니라 합격만 시켜주면 대학에 거액을 던질 기부자의 자녀를 선택한다."
"정재계 유명인사나 헐리우드 스타급 연예인의 자녀들은 브라운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할 필요 없다. 브라운대가 함량 미달의 '있는 집' 자제들을 위해 입시제도를 수정해 '특별학생' 제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노트르담 대학이나 다른 명문대학에서 동문특혜를 실시하는 것은 부유한 집안의 부가 다음 세대로 넘어갈 때, 교육수준이 쇠퇴하는 것을 막아주는 보험 역할이다. 마치 영국 귀족들이 상원 세습으로 대를 이어가듯이.."
"명문대학의 체육특기생은 스쿼시, 요트, 스키, 조정, 펜싱, 승마 등 귀족스포츠를 통해 기금조성 가능성부터 따진다. 이들은 실력을 따지는 감독의 의견보다 입학처의 강력한 입김으로 부드럽게 입학한다."

 

SAT만점자는 탈락하고, 성적 미달인 앨 고어 3세는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리슨 프리스트나 앨 고어 3세와 같은 수천 명의 상류층 자녀들은 매년 실력이나 다양성과는 무관하게 소리 없이 명문 대학에 들어간다. 즉, 이들은 ‘특권층에 대한 특혜’의 덕을 톡톡히 보는 셈이다. 대학입학 안내책자나 입학설명회, 대학 관계자들은 이런 사실을 무시하거나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만, 특권층에 대한 특혜는 경쟁이 간발의 차이일 때 조금 눈감아주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일상적으로 성적이 떨어지는 지원자를 실력 있는 학생 위에 올려놓으며, SAT 평가에서 수백 점이나 되는 점수 차이를 눈감아주기도 한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집안의 자녀들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바람에 그들보다 훨씬 우수한 중산층이나 서민층 자녀들의 합격률이 점차 낮아지는 것은 대학들이 스스로 인정하는 정도보다도 훨씬 심하다.”
입시에서 각종 특혜를 누리는 백인의 숫자는 우대정책의 지원을 받는 소수인종의 숫자보다 훨씬 많다. 명문대학 입학생의 최소 3분의 1, 그리고 명문 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입학 과정에서 우대 대상이라는 인식표를 달고 합격했다. 일반적으로 전체의 15% 정도를 소수인종 출신 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반해 부유한 백인들이 체육특기생(전체의 10~25%), 동문자녀(전체의 10~25%), 기부입학자(전체의 2~5%), 유명인사이나 정치가의 자녀(전체의 1~2%), 교수 자녀(전체의 1~3%) 등 특혜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압도적이다. 어떤 지원자에게는 복수 특혜도 적용되는데, 예를 들면 동문자녀이면서 동시에 운동선수인 경우이다. 결국 일반 지원자들은 전체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하는 셈이다.
그나마 위의 추정치는 보수적으로 잡은 수치다. 한번은 버클리의 로버트 버지노Robert Birgeneau 총장이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한 대학의 전체 정원에서 일반 학생들이 차지하는 비율을 계산해 본 적이 있었는데 깜짝 놀랄만한 결과가 나타났다고 고백했다. 어떤 특혜도 없이 지원하는 학생은 단지 전체 정원의 40%를 놓고 경쟁한다는 것이다. 버지노 총장은 또한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동문자녀 입학 사례를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동문의 손자 손녀는 동문자녀 통계로 잡지도 않고 있는데, 동문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된 뒤에 기부금을 내면서 입학처에 큰 입김을 불어 넣는데도 통계는 그런 식으로 집계한다는 것이다.

 

"명문대학들에서 일반 지원자들의 대학 합격률은 19%인데, 동문 자녀는 50%로 매우 높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교직원 자녀의 합격률이 70%나 된다는 것이다. 등록금까지 면제..."
"미국 국세청은 미국 납세자들이 교수 자녀의 등록금을 부담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그 혜택에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그러나 결속력이 강한 대학들은 번번이 로비로 막아냈다."
"현재 미국 대학 입학문에서 가장 소외되는 계층은 소수인종 특혜를 받는 흑인,남미계나 기부입학, 동문특혜, 체육특기생이 아닌 실력이 있는 저소득층 아시아계와 실력있는 백인 중산층이다."
"미국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학생들 대부분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이들은 고급 기숙학교나 외국인 국제학교 출신으로, 이들 학교는 사업가나 외교관, 상류층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두둑한 수입을 챙긴다."
"미국사회에서 동문 특혜 세습을 놓고 여론이 거센데도 대학과 정치인의 동문특혜 거래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동문특혜 철폐를 결정해야 하는 정치인, 법조인들 대부분이 동문특혜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같은 특례입학으로 인해 지난 반세기 동안 상위계층과 하위계층 사이의 소득격차를 심화됐고 미국 사회의 특징이라고 정의됐던 사회적 이동성은 이제 길거리의 공중전화 부스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한탄한다. 그러면서 그 피해는 미국 스스로가 지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인재를 배제하고 특권층의 무능한 자녀를 선택하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정치적 지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비리그의 부당한 특례 입학 없이도 대학의 우수한 실력과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칼텍과 쿠퍼 유니온대, 버리어대를 소개하고, 특례입학을 막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칼텍)은 학생 선발시 아이비리그와 달리, 순수하게 학업성적만을 고려한다. 부유한 동문을 육성하거나 거액의 기부금을 유치하기 위해 입학기준을 낮추지도 않는다."
"칼텍은 기부입학이나 동문 특혜, 체육특기생 없이도 2005년 기준 14억 달러의 기금을 모금하여 학생 1인당 기금순위에서 MIT보다 높은 18위를 기록했다.
칼텍, 쿠퍼 유니온대(뉴욕), 버리어대(켄터키)는 상류층 특혜도 귀족스포츠팀도 기금조성 작전도 없는 미국 내 유일한 대학이다. 저소득층의 실력과 가능성 있는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다."
"칼텍과 쿠퍼유니온(예술/건축), 버리어대(진보가치)의 공통점은 학교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성과를 통해 대학의 명성을 높인다. 입학결정에 교수가 참여한다. 기부자에게 창의적인 방법으로 보상한다."

 

미국의 대학 입학 사정관제의 추악한 진실을 알고 나면, 입학사정관제 등 대학측에 대학입학 선발의 자율권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혹시 교육부와 기득권층에서 미국의 입학사정관제가 부자들과 권력자들의 특례입학임을 미리 알고 추진한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무조건 미국의 제도를 추종할 것이 아니라 한국의 수준과 실정과 문화에 맞도록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무한경쟁 대학입시의 비인간성과 부실한 관리실태, 수능 줄세우기, 대학서열화와 학벌만능주의, 공교육 투자비 저조, 최종 결과인 공교육 붕괴를 먼저 혁신적으로 바꾼 후에 입학사정관제든 다른 제도든 검토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 2012년 1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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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 보리 / 199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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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헬렌 니어링(Helen Nearing) 저, 이석태 역 <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자유로운 영혼 헬렌 니어링, 그 감동의 기록 Loving and Leaving thr Good Life >를 읽고 / 1997. 10., 248쪽, 보리

 

이 책도 법정스님이 <내가 사랑한 책들>에서 소개해주신 것이다. 법정스님은 그 책에 사회 일반의 통념과 관행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른 삶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하여 많은 책을 소개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울의 <월든>,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라다크 마을 <오래된 미래>, 호주의 원주민 <무탄트 메시지>, <나무를 심은 사람>, 인도의 사티쉬 쿠마르 <끝없는 여정>, 일본의 쓰지 신이치 <슬로 라이프>, <핀드혼 농장 이야기>, 야마오 산세이의 <여기에 사는 즐거움>,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짚 한 오라기의 혁명>, 아베 피에르의 <단순한 기쁨>, 존 프란시스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등. 

그들은 특별하거나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독실한 종교인도 아니고 뛰어난 철학자도 아니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도 그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부자는 부와 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기회를 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 과로, 지저분한 환경에 짓눌려 삽니다. 부자는 기회의 천국에서 살고있는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불행의 지옥에 빠져있으며, 부자의 천국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을 딛고 있습니다."(스코트 니어링) : 20대였던 1905년 어느 공개 강좌에서....

"속된 삶 -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성공하고 유명해진다. 양심을 지키는 삶 - 소명에 따라 행동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정의롭게 된다. 성공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유명함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반면, 정의로움은 영원한 진리의 반석이 된다"<저마다의 것> : 스코트 니어링의 1908년 쪽지 메모 중에서...

 

헬렌과 스코트는 서로 존경하는 동반자로 만나 55년 동안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조화로운 삶을 살았다. 20세기 초 미국의 주류 문명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존중하는 가치를 추구하다가 점점 문명을 거부하게 되었다. 자신들의 삶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다가 준비해 온 죽음을 맞아들이는 모습이 귀한 깨달음을 준다. 헬렌은 인류사회에서 '진정한 남녀간의 동반자'가 어떤 것인지를 스코트와 자신이 함께한 삶에서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속가능성이 불분명한 현대의 물질문명의 위기 속에서 두 사람의 삶이 하나의 올바른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울이나 사티쉬 쿠마르 등에 관해 쓰여진 책을 읽다보면, 많은 경우 자연스러운 삶, 문명을 거부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은 독신이거나 홀로 섰을 때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삶이 남녀의 조화로운 삶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음을, 또는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통해 조화로운 삶이 가능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동반자 관계는 나이를 초월했다.(솔직히 말하면 나이 차이가 컸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의 '아름다운 삶'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삶의 지침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아름다운 삶의 중심에는 깊은 사랑이 존재하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창조와 개혁에 대해 언제나 조심스럽고 망설이며, 현상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개혁자, 이미 알려진 길을 벗어나 가는 사람은 언제나 소수일 수 밖에 없고 끊임없는 반대와 비난, 질시의 대상이 된다. 그것은 창조적 사고와 행위에 따르는 희열에 대해 그거 치러야하는 대가의 일부이다"(스코트 니어링)

"희망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나으며, 가장 위대한 성공은 일하는 것이다"(스코트 니어링)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은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꿈을 안고 열여섯 살에 유럽으로 건너간다. 그 곳의 신지학회에서 만난 크리슈나무르티와 헬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유럽과 인도, 호주를 오가면서 6년 동안 이어진 그 사랑은 크리슈나의 동생이 죽은 뒤 서서히 빛을 잃는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세계의 교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헬렌은 스물네 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꾸게 된다.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 위였던 스코트 니어링은 부유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비판적인 지식인'으로서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줄기차게 도전하다 대학 강단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났다. 사회에서 고립된 스코트는 헬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한 뒤 바로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사탕단풍 농장을 일군다. 헬렌과 스코트가 그렇게 반 세기 동안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함께 한 '땅에 뿌리박은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었다. 스코트가 100세 생일을 맞던 날 이웃 사람들이 깃발을 들고서 왔는데 그 깃발 하나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


"당신이 일을 시작할 때 다음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곧 사람은 경제적인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 문제는 이 사실을 어떻게 증명하느냐이다"(스코트 니어링 1911) 

"나는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겠다. 나는 사교춤과 야회복을 포기하며 이것들로 대표되는 생활을 멀리하겠다. 나는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 애쓰는 강연자 노릇을 포기하겠다. 나는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높이는 일에 헌신하겠다"(스코트 니어링 1917)

"(제1,2차 세계대전에 대해)전쟁이란, 문명 국가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파괴와 대량 학살이자, 제국주의 국가들끼리 벌이는 힘겨루기다. 생명과 사회의 부를 끔찍하게 손상시키며,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방안 가운데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스코트 니어링)


헬렌은 이 책을 87세에 썼다. 헬렌 자신보다는 스코트 니어링의 삶과 반 세기에 걸친 두 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 교육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코트는 스스로 말한 것을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천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이 책 속에서 헬렌은 스코트와 함께 보낸 충만한 삶과 100세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서 평화롭고도 위엄을 간직한 채 맞이한 스코트의 죽음을 통해 사랑과 삶, 죽음이 하나임을 보여 준다. 헬렌은 조화로운 삶, 참으로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어떤 삶인지 온몸으로 보여 준 두 사람의 사랑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삶은 어떤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 그 이상이 관례에서 멀어질수록, 더 비싼 대가를 치른다. ... 당신의 이상이 정신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며, 정직하고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하면, 그 이상을 이루기위해 의식주마저 희생할 수 있다"(스코트 니어링) : 빈부격차와 제1차 세계대전을 반대하여 대학에서 축출당한 후(1922년)에...


이 책을 통해서 배운 것은 "아는 것만으로 끝나는, 실천이 없는 삶은 무기력하고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법정스님 소개글)는 것이다. 헬렌과 스코트는 자신들이 살 집을 직접 돌을 이용해 만들었으며, 농사를 지어서 먹을 것을 마련했고, 많은 물건이 없어도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한낮에 쏟아지는 햇빛만으로도 그들의 영혼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그들은 그것으로 충분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되 거기 휩쓸리지 않았다. 스코트가 100세, 헬렌이 92세까지 장수(ㅋ)를 누린 것은 아마도 그들의 '아름다운 삶'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적극성, 밝은 쪽으로 생각하기, 깨끗한 양심, 바깥일과 깊은 호흡, 금연, 커피와 술과 마약을 멀리함, 간소한 식사, 채식주의, 설탕과 소금을 멀리함, 저칼로리와 저지방, 되도록 가공하지 않은 음식물,..."


아쉬운 것은 내가 스코트 니어링의 삶을 잘 모르기 때문에, 스코트의 입장에서 헬렌과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책을 읽은 후에도 헬렌의 이야기가 100%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헬렌이 자신의 삶이나 철학보다 스코트의 그것을 위주로 책의 내용을 채우는 관계로 헬렌의 개별적인 삶이 잘 드러나지 않은 점이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다음에 시간을 내서 스코트 니어링의 이야기를 들어본 후 다시 한 번 읽어보리라...


[ 2012년 1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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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참 좋다 - 세계 99%를 위한 기업을 배우다 푸른지식 협동조합 시리즈
김현대.하종란.차형석 지음 / 푸른지식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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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형대, 하종란, 차형석 저 < 협동조합, 참 좋다 : 세계 99%를 위한 기업을 배우다 >를 읽고 / 2012. 07., 312쪽, 푸른지식

 

개인적으로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은 한 번 뿐이다. 지난 9월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살림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다. 아이쿱 생협 등 영등포구에 있는 몇 개 협동조합을 인터넷으로 검토해 본 후 내린 결정이었다. 아무래도 협동조합의 역사가 길다는 것이 마음을 움직였다. 가입은 쉽고 간편했다. 정기적으로 농산품에 대한 안내 문자와 메일이 온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내가 직접 장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이 구매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직 신입 조합원 교육 안내를 받지 못했다. 처음이라 아직 적응이 안되어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머리 속에서 상상하는 협동조합과 많이 다르다.
작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박원순 시장 후보의 양천구 시민참여본부에서 한 달 정도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 시민참여본부에는 양천구에 있는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 그렇게 활발하지는 못했지만, 꾸준히 회의도 하고 정보도 공유하고 타운홀 미팅 등 선거운동도 진행했다. 시민사회단체 중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많았다. 건강한 분들이었고, 열심히 활동했다. 다만, 서로 다른 협동조합 관계자들끼리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지역 매장을 신설하는 데 있어 갈등이 있었다. 서로 경쟁하는 분위기와 동시에 배척하는 느낌도 들었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이후 서울시는 협동조합 설립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햇빛발전협동조합에 참여한 후배에게 설명을 듣기도 했다. 얼마 전 서울시청 꼭대기에 양봉장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양봉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한 후 시도한 자연친화적 정책 중의 하나다. 뉴욕에도 수십 층의 빌딩 꼭대기에서 양봉을 하는 젊은 변호사가 있다. 공생을 통해 자연 친화를 시도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 책에도 덴마크 코펜하겐 한복판에서 ‘도시 양봉’을 하는 ‘벌꿀 협동조합’이 등장한다. 노숙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여 사회적 재활을 도모하고, 자연친화적 벌꿀도 생산하는 대표적인 사회적 협동조합이다.
한국에는 아직 모범적인 협동조합이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알고 있다. 실제 그동안은 법과 제도의 미비로 농협이나 신협, 제조업, 그리고 소비자 협동조합만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농협, 신협, 중기협 등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모두 관주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중앙 조직 중심이고,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운영하다 보니 정부부처의 낙하산 인사를 위한 공공기관으로 전락했다. 소비자 협동조합만이 원주에서 출발하여 현재에 이른 것으로 안다.

 

한국의 진보적인 미래를 위해서는,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가 진전되어야 하며, 노동3권을 완전 보장하고 노동조합과 계층별 조직율을 끌어 올려야 하며, 법과 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비정규직도 줄이고 동일노동 동일임금도 법제화시켜야 한다. 이 이외에도 재벌개혁과 정부개혁, 정치개혁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근본을 경계하고 대안경제를 추구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협동조합이 대안경제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작년부터 협동조합에 관심이 많았다. 그것은 아마도 내 나이나 출신, 경력 등 개인적인 조건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의 취지와 정신이 말 그대로 협동과 상호부조, 연대, 일자리 창출, 평등, 민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앞으로 사업을 다시 시작한다면, 십중팔구는 협동조합일 것이고, 머지 않은 때에 생산자 협동조합을 구성하려는 계획이다.
이 책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협동조합 사례를 세 명의 언론인이 직접 취재해서 소개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을 시도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어떻게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답변을 제공한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세 저자의 생생한 취재를 바탕으로 이탈리아,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과 뉴질랜드, 캐나다, 미국 등 오세아니아 지역의 앞서나가는 협동조합 기업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보면, 1950년대만 해도 가난했던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 주는 이제 8,000여 개의 협동조합이 원동력이 되어 지금은 1인당 소득이 4만 유로에 이른다. 1만 3,000여 양돈 농가가 주인인 덴마크의 축산 협동조합 기업 대니쉬 크라운은 최근 연간 매출이 9조 원으로 돈육 생산량 세계 11위, 돈육 수출 세계 1위다. 뉴질랜드의 250개 낙농 협동조합이 의기투합해 만든 폰테라도 뉴질랜드 최대 기업이자 세계 최대 유제품 수출업체다.
자본주의의 첨병처럼 보이는 미국도 협동조합의 뿌리가 깊다. 고급 오렌지의 대명사인 선키스트는 118년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협동조합 기업이다. 세계 4대 통신사로 손꼽히는 미국의 AP통신도 마찬가지다. 협동조합과 상관없어 보이는 버거킹, 던킨도너츠, KFC 같은 업체도 모두 가맹점주가 조합원인 협동조합 기업을 통해 식재료를 구매한다.

 

"협동조합은 경제적 약자 다수가 서로 뭉치고 나누는 호혜의 힘으로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자본주의 독점의 치명적인 폐해를 극복하려는 기업이다. 복지나 자선단체의 도움을 기다리지 않는다"
"'축구 그 이상'을 표방하는 스페인 축구클럽 FC바로셀로나는 17만명의 주민이 주인이고, 그들의 출자로 이루어진 협동조합이다. 구단주가 없으며 6년마다 조합원이 회장을 선출한다"
"이태리의 에밀리야로마냐 주의 최대 소매업체는 소비자 협동조합이고, 건설사와 은행은 물론 박물관과 공연장도 협동조합으로 운영된다. 이곳 주민들의 1인당 소득은 무려 4만불을 넘는다"
"덴마크 코펜하겐 동측 앞바다의 거대한 풍력발전기(40MW 전력 생산) 20대의 주인은, 1997년 8,600명의 시민 조합원이 출자한 '미델그룬덴' 빌전 협동조합이다" 환경과 전기료 절약과 배당수익까지 '일석삼조'입니다
"유럽 최대 청과믈 도매회사인 네덜란드의 그리너리, 덴마크 양돈산업의 90%를 장악한 대니쉬 크라운, 이태리 최대 우유 생산업체인 그라나롤로의 공통점은 원예농가. 양돈농가, 낙동가의 공동출자로 세운 협동조합이다"

 

2부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협동조합의 실상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우리 현실에 맞는 협동조합을 만들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위협을 받는 동네 빵집이 협동조합으로 친환경적 빵집을 운영한다면 지역사회에도 도움이 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한 빵을 직접 공급받을 수 있다.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고 사는 아파트 주민이 협동조합을 구성하면 작게는 매달 내는 관리비를 더 투명하게 사용할 수 있고, 크게는 공동 텃밭이나 생활지원센터 등을 통해 아파트를 함께 사는 이웃이 모두 행복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매일 이용하는 마을버스를 협동조합 기업으로 운영하면 좀 더 싼 가격에 마을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연말에 배당금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대 기업의 휴대폰과 통신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소비자가 이동통신 협동조합을 구성하면 내가 원하는 기능만 있는 단말기를 싼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물론 매달 내는 휴대폰 요금이 반값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교육 여건이 도시보다 나쁜 농촌에 협동조합으로 학원을 만들면 건강한 사교육 공간을 만들어 도농 간의 교육 격차를 줄이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도시로 이사 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처럼 나부터 참여할 수 있고 실생활에서 가깝게 편익을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협동조합 사례를 제안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하면 협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지 상상을 매개로 하여 재치 있게 전달한다.

 

"소비자 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소비자 조합원에게 물건을 값싸게 파는 것, 생산자 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조합원의 몽산물을 안정적으로 비싸게 구입하는 것이다" 한국의 농협은 협동조합이 아니라 몽민 피 빨아먹는 관변단체죠...
"노동자 협동조합의 존재이유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신용 협동조합은 조합원에게 좋은 조건의 자금을 공급하는 것이다" 한국의 신협은 관변단체 수준이죠...
"한국에서도 학습지 교사, 택배기사, 대리운전기사, 출판인, 미술인, 김밥집, 커피전문점, 동네슈퍼/빵집, 미장원, 전통시장 등도 협동조합을 고려해야 한다" 모이고 조직해야 힘이 됩니다."

 

3부에는 세계의 협동조합 전문가들과 나눈 대화를 실었다. 또 협동조합에 대한 기본 상식을 팁으로 정리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우리나라도 2011년 12월 국회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통과되어 2012년 12월부터 시행된다.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우리 사회에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부산경남 자동자부품 기술사업 협동조합’의 준공 소식이 들리고, ‘의약품 유통업 협동조합’의 법인이 인가되었다. 완주에서는 협동조합 형태의 ‘햇빛 발전소’의 사업자를 모집하고 있고, 춘천에서는 젊은 빵집 주인과 대학생이 힘을 합쳐 동네 빵집 협동조합을 만들어 동네 빵집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주택협동조합과 교육협동조합을 열심히 진행 중인 페친들도 있고, 주변에는 의료생협에서 일하거나 콘첸츠 생산협동조합을 구상하는 지인들도 있다.

 

"자본주의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해 시장가격으로 임금을 지불하고 남는 이윤을 독차지한다. 협동조합의 노동은 자본을 고용해 시장가격으로 대가를 지불하고 남는 이윤을 독차지한다"(조지 홀리요크)
"협동조합의 속성은 자본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진정한 기능을 노동이 이용하는 도구로 한정하고 그만큼만 대가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다"(샤를 지드)
"협동조합에서는 노동자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한다. 그 결과 자본주의에서 억눌렸던 근면하고 훌륭한 작업능력이 어마어마한 힘으로 분출한다"(알프레드 마샬)
"협동조합은 시장 안에서 작동하고 그 원리를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경제적 기업이지만, 경제 외적 목적을 추구하고 다른 주체와 전체에게 긍정적 외부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사회적 단체다"(스테파노 자마니)

 

저자들이 나름 협동조합을 재미나게 설명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국내 상황에 맞춰 가장 실질적인 문제인 ‘어떻게 협동조합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유일한 책이다"라는 깔대기에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저자들이 소개한 해외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듯이 협동조합이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는 한국과 달리 협동조합이 성장할 수 있는 문화적 유전자가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국내에서 두레나 계를 예를 들어 한반도에도 협동조합 전통이 있다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래봤자 조그마한 동네 단위일 뿐이었다. 조선 후기를 생각해보면, 대지주 중심의 소작인과 노예 수준의 봉건체제에서 소작인들이 협동조합 수준의 생산자 조합을 구성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제조업의 수준을 고려하면 유럽처럼 소규모 제조업자 중심의 길드를 구성하기도 불가능했다. 상인들도 조합 구성까지는 진척되지 못한 채 일제 강점기를 맞이한 셈이다. 한국과 서구 국가는 다르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한국은 협동조합 전통은 고사하고 하루 한 끼 먹고 살기도 빠듯한 시절을 무려 100여년 동안 거쳐왔다. 일제도 그렇고 이승만, 박정희도 농민, 제조업자, 상인 등 어떠한 계급, 계층의 조직화도 핏대를 곤두서면서 탄압했기 때문에 협동조합 비슷한 흐름을 만들어 내기가 힘들었던 역사적 과정이 흘러왔다.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의 99% 민중들은 각개격파되어 출세와 생존의 압박 속에 자기 혼자 만이라도, 적어도 가족 단위라도 살아남고 풍족하기 위해 권력과 자본에 줄을 서고, 무한경쟁과 관행과 편법과 부정을 일삼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은 협동조합이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한국인들이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또 불같이 뛰어들었던 최근 몇 십년을 돌이켜 보면, 불가능하지 만은 않다는 생각도 들지만...^^
협동조합을 추진하려면 자본주의적 비지니스 마인드 중 절반을 버려야 한다. 새로 배워야 한다. 태도도 바꿔야 한다. 어려운 문제나 인간관계를 술로 해결하는 문화도 버려야 한다. 참여의식을 높여야 한다. 자기의 일 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협동조합의 비전이 보이는 만큼 협동조합은 어렵다.

 

[ 2012년 11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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