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설립과 운영 실무 - 개정판
김용한.하재은 지음 / 지식공감 / 201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 김용한, 하재은 저 < 협동조합 시대 : 설립과 운영 실무 >를 읽고 / 2012. 09., 286쪽, 지식공감


먼저 책을 읽은 결론을 밝힌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돈 낭비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 책은 어떤 공부모임의 추천 도서였거나 그냥 인터넷에서 협동조합 관련 도서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다. 둘 다일 수도 있고...
아무튼 책을 구하는 단계에서도 선택을 할 지 망설였다. 출판사의 책 소개와 저자 두 사람의 이력이 뭔가 찜찜해서였다.
저자 김용한은 경영학 박사에 경영지도사, 기술지도사, 기술거래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고 무슨 전략연구소 소장이자 사단법인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이사로 기재되어 있다. 그 이외에도 시장경영진흥원이라는 전통시장 경영을 지원하는 공공기관의 자문위원, 상인대학 강사이자 심의위원,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상담위원, 서울 희망설계아카데미 겸임 교수, 하이서울창업스쿨 담임교수 등 일반 명함에는 모두 적어 넣을 수도 없는 직책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다른 저자 하재은 역시 비슷하다. 경영학 박사에 경영지도사, 품질경영산업기사라는 타이틀과 몇 개 대학의 강의, 그리고 신한경영법인이라는 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김용한씨와 같은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부회장이다. 그리고 사단법인 한국창업경영컨설팅협회 이사, 국제컨설팅협회협의회 운영위원, 시장경영진흥원 자문위원, 상인대학 강사, 서울희망설계아카데미 강사, 하이서울창업스쿨 강사, 장애인기업종합지원센터 컨설팅 위원이며 과거에 전통시장특성화시장육성사업단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이 책은 수준 이하다. 두 저자가 협동조합기본법의 시행(2012년 12월)에 앞서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의욕적으로 발간한 이 책은 거의 폐기처분해야 할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제1부 [협동조합의 이해]에서 저자들은 협동조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저자 본인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1장 [왜 협동조합인가?]에서 두 사람은 기존에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협동조합 관련 도서도 읽지 않은 수준을 드러낸다. 서구사회 협동조합의 역사와 현황 등에 대해서도 무지를 드러내고 있고, 한국의 협동조합 역사와 사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정부의 통제하에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농협을 대표적인 협동조합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기존 협동조합의 재정 원칙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다.
제2장 [협동조합, 도대체 무엇인가?]에서는 국제협동조합연맹(ICA)에서 규정하는 협동조합의 정의와 가치, 원칙 등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고 있고, 협동조합의 특징과 다양한 유형, 사례 등에 대해서도 제대로 공부하거나 연구하지 않은 흔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차이점, 협동조합의 조직과 운영, 자본조달, 배당 등에 대해서도 '상식' 수준에서 나열하고 있다.
제3장 [협동조합 기본법 알아보기]에서는 협동조합 기본법의 각 조항과 규정을 책 속에 베끼면서 그다지 의미 없는 짤막한 해설을 추가했을 뿐이다. 족수를 늘리는 데에 기여할 뿐이다. 그리고서 책의 후반부에 '부록'으로 동일한 협동조합기본법을 또 한번 그대로 옮겨 놓았다.

제2부 [협동조합의 설립, 운영 실무]에서 저자들이 자신들의 '전공'과 '전문성'을 살리려고 시도했는데 결과는 실패였다.
제4장 [협동조합의 설립 실무]에서는 저자들이 협동조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실제 협동조합의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수박 겉핥기에, 엉뚱한 이야기만 남발한다. 기존에 시행되는 '생활협동조합법'을 끌어와 짜집기를 시도한다.
제5장 [협동조합의 운영 실무]에서는 사업계획서 작성, 경영전략 수립, 마케팅, 경영관리 등을 나열하는데, 협동조합과 주식회사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연구와 경험이 태부족한 관계로 기존 주식회사의 운영 실무 원론을 나열하고 만다.
제6장 [협동조합의 성공적 도입 및 활성화]에서는 협동조합의 주요 도입분야를 제시하고, 전통시장이나 상점에의 도입방안, 사회적 기업에의 도입방안, 소비자 분야에의 도입방안 등을 설명하지만 이 부분 역시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설명에 그치고 만다.

저자들이 답답하고 한심한 것은 자신들의 이름을 걸어 놓고 이런 수준의 책을 발간했다는 점이다. 책의 초안을 작성해 놓고 자신들의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정말 뻔뻔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책 한 권을 발간하는데 있어 해당 분야에 대한 다른 저자의 책을 읽지도 않았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일 뿐이다. 전문가로서의 자격도 없다고 본다. 협동조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이용하여 책장사를 한 '장사치'일 뿐이다.

또 하나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검증하고 느낀 것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자신의 이름에 내거는 타이틀이 많을수록, 거창할수록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온갖 직위에다가 직책, 경력을 나열해 놓았지만 내용이 거의 없을 뿐이다.
다른 또 하나는 기존에 정부부처나 지자체, 연구단체나 법인 등에서 세금을 투입하여 진행된 각종 '경영컨설팅'이나 '창업컨설팅', '전통시장 활성화' 등의 프로젝트들이 세금만 낭비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두 사람만 보아도 노동부나 기재부, 지경부, 서울시 등에서 온갖 명목으로 세금을 타내서 자신들의 수익과 경비에 지출했을 것이고, 그 자리에 경영이나 지원을 바라고 참석한 수 많은 경영자들, 예비경영자들, 상인들, 예비창업자들을 골탕먹였을 것이다. 이렇게 실력이 없으면서도 세금과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십중팔구 학연과 지연을 동원하고 공무원들에게 로비와 뇌물이 오고갔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일어난다.
더 우울한 것은 이런 이들이 지금까지 정부와 민간의 예비사업가들의 창업이나 경영, 그리고 재래시장 활성화를 컨설팅해 왔으니 한국사회의 경영과 창업, 재래시장이 점점 더 악화되고 경쟁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ㅠㅠ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독서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서평을 쓰면서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으로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지만, 나처럼 잘 모르는 누군가의 소개로 또는 출판사의 허황된 추천으로 책을 구해서 읽을지도 모르는 다른 독자들을 위해서 책을 끝까지 읽고 이렇게 서평을 남긴다.

[ 2013년 02월 28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강추!! [서평]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저, 김은령 역 < 침묵의 봄 Silent Spring >을 읽고 / 2011. 02, 398쪽, 에코리브르


1950년대의 미국은 20세기 말, 21세기 초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이 때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나서 소련과 동서 냉전을 시작한 시기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메카시즘이라는 반공주의의 일방적 마녀사냥이 정치, 사회, 문화 등 전 분야를 휩쓸고 지나갔다. 과학과 기술, 개발과 발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숭배'가 정점에 달했다.
그런 미국의 사회문화는 생명체와 인간에게 끔직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었다. 도시는 커녕 농촌에서도 새와 곤충이 사라지고, 인간과 가축과 농산물은 병들어 갔다. 강물과 샘물도, 논과 밭도, 숲과 나무도 병들고 죽어 갔다. 그리고 그 원인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재앙'이었다. 화학물질이라는 저자의 경고는 미국 지배층과 주류 언론, 학자들에게 무시와 냉대를 받았고, '불순분자'와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으며 "기업의 생산활동을 막는' 행위라고 비난받았다.


그럼에도 저자 레이첼 카슨은 이 책을 통해 당시 미국인들이 어떤 사고방식으로, 어떤 방법으로 미국인들과 그들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 경고했다. 인간이 자연을, 생명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지르는 '위험한 장난'이 어떻게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행하게도 저자가 과학자였기 때문에 그리고 저자가 문학적인 소질이 어느 정도 있었기에 이 책은 많은 시민들과 언론들에게 지지와 호응을 받았다.
인류는 아직 거대한 우주를 알지 못했듯이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미한 세계 역시 알지 못한다. 아니 영원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에 대해 과학자들이 '안다'고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찬바람을 쏘이면 감기에 걸린다."는 수준일 뿐이다. 하지만 찬바람만이 감기의 원인은 아니다. 감기를 없애겠다고 찬바람을 영원히 없애겠다고 나서는 행위를, 그 이후의 상황을 인간이 상상할 수 있을까?


물론 카슨은 인류의 끔찍한 행위 중 '화학물질'에 국한하여 다루고 있다. 당시에는 가장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다.(핵과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과 공포는 당시 미국 내에서 이미 논쟁이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인들의 화학물질과 화학약품에 대한 관심과 우려를 촉발시켜 환경관련 법규가 도입되고 정부부처가 신설되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독성 화학물질은 미국 내에서도 유통이 금지되었을 뿐 수출이 금지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미국산 DDT 등이 언제까지 사용되었을까?
그가 지목하는 독성 화학물질은 수십 가지다. 염화탄화수소류계, 유기인산계, 비소, 비산나트륨, 비산칼륨, 벤젠, 우레탄, DDT, DDD, 파라티온, 클로로데인, 디엘드린, 린데인, 엔드린, 헵타클로드, 아미노트라이아졸, 말라티온, 다이나트로페놀, 펜타클로로페놀, 파라다이클로로벤젠,  2,4-D,  메톡시클로르, 페노티아진, 알드린, 머스터드 가스, 카르바민산염, 벤젠헥사클로라이드 BHC, 톡사인 등 열거하기도 힘들다.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유해 제품으로는 유해 상품 : 살충제, 제초제, 진드기 제거제, 곰팡이 제거제, 살균제, 방향제, 합성세제, 표백제 등을 말한다.
한국은 아직도 이런 물질을 생산, 이용하고 제품을 판매하며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해당기업은 기업비밀이라고 공개하지 않는다.


이 책은 가장 먼저 청소년들과 청년들이 꼭 읽어야 한다. 기성 세계를 지배하는 고정관념과 편견에 얽매이지 않는 그들이야말로 지구의 벗이자 생명체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이 땅에서 살아야 하고 기성세대의 잘못을 감당해야 하는 세대이다.
그 다음 읽어야 하는 사람들은 환경부나 보건복지 업무 관련 공무원들이 아니라 언론인, 사법부, 경찰과 검찰 공무원이다. 이 지구와 생명체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순환하는 지 알고서 아는 척도 해야 하고, 무언가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다른 행정부, 입법부, 지자체 공무원과 산하기관, 공기업 직원들이다.
교육, 과학, 농식품, 환경, 해양수산 관련 업무를 하는 공직자들에게 읽어야 한다고 추천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일이다. 그들은 당연히 알아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이 책이 없었다면, 저자가 주장한 바가 없었다면 관련 업무도 부처도 일자리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부처는 승진과 업무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정부의 사업방식에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 점이 있다. 바로 세금으로 계획하여 진행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 공기업의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사업'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사업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감시, 감독, 평가할 수 있는 적정 비율의 예산을 함께 편성, 집행토록 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꾼 인물, 세상을 변화시킨 책" 저자와 이 책에 대해 붙여진 최고의 찬사다. 하지만 저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카슨이 지목한 독성 화학물질은 이름과 화학식이 바뀐 채 2012년 노동부에서 지정된 프로탈레이트, 프탈레이트, 수산화나트륨 등 186종의 발암물질(사진)로 등장한 상태다. 한 달에도 한두번 씩 그 발암물질이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뉴스는 말해주고(사진, 구글 뉴스)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윤이 우선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인 경제제도이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건강과 "함께살기(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집단 이기주의와 부도덕에서 벗어나 협력하고 연대하는 사회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 2013년 2월 23일 ]


-----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


세금이 투입되어 진행하는 정부 및 공공기관, 공기업의 사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 '사업'을 비판하거나 반대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사업의 진행상황과 결과를 객관적으로 감시, 감독, 평가할 수 있도록 적정 비율(본 예산의 5% 정도)의 비용을 사업예산에 함께 편성, 집행토록 하는 것입니다.


카슨이 이 책을 썼던 1960년대 초반의 미국은 현재의 한국보다 선의의 자원봉사자가 많고 정치성을 띄지 않는 학자, 전문가들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방정부와 주 정부가 실시하는 살충제, 제초제 등의 살포작업에 대해 조사, 연구, 분석비용이 거의 배정되지 않아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피해를 제대로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야생 미생물과 동식물 뿐 아니라 가축, 인간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멸종과 살육과 피해를 입은 후에야 (그것도 카슨이 이 책을 발간하여 여론이 들끓고 나서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DDT 등 화학물질 살포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었죠.


한국의 경우에도 4대강 사업이나 강정해군기지, 핵발전소 건립과 운영, 각종 SOC 사업 뿐 아니라 비정규직법이나 정리해고법, 의약품의 유해판정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늘 논란이 많았음에도 객관적이고 대중적인 조사, 분석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정치논리나 진영논리로 왜곡되기도 하지만 공공사업에 대한 감시, 감독, 조사, 평가 주체가 감사원이나 국회로 제한된 것도 큰 구조적 한계일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업들이 특정 집단의 정치적, 경제적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정당과 여론이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작동하는 것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들곤 합니다.


그럼에도 특정 정치세력이나 경제주체가 해당 사업의 결정을 주도했는지 상관없이 세금이 투입되거나 납세자에게 경제적, 문화적, 신체(건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에 대해서는 반대했던 상대방측에서 사업기간 동안 사업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자격과 예산을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야당이 반대했던 4대강 사업이나 과거 새누리당이 반대했던 무상급식 사업의 경우, 시업이 결정된 이후 상대방이 추천한 시민단체, 학자, 전문가가 과반수가 넘는 감시 및 조사단을 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업기간 중 그리고 사업 종료 후 정부(공공기관)측 사업평가와 비정부기관측 사업평가를 교차해서 제츨하여 공청회, 언론 등을 통해 비교. 검토하여 사업 자체가 일방적으로 진행되거나 거짓과 꼼수와 낭비가 없이 가급적 엄정하게 평가되도록 하는 것이죠.
물론 제 생각만큼 그렇게 분명한 결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초기에는 비정부기구마저 정치적 입김에 따라 큰 편차나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국회와 행정부의 권력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340조원이 넘는 예산을 임의로 펑펑쓰고 국회가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는(못하는) 현재 시스템을 보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결정하고 감시하는 주체가 늘어날수록 몰래 세금을 축낼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 테니까요.
'참여하는 시민'... 납세자가 내는 세금의 적절한 집행 여부를 행정부와 입법부 대리인을에게만 맡겨서는 점점 악화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황종희 평전
쉬딩바오 지음, 양휘웅 옮김 / 돌베개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서평] 쉬딩바오(徐定寶) 저, 양휘웅 역 < 황종희 黃宗羲 평전 >을 읽고 / 2009. 02., 656쪽, 돌베개


공부모임 교재로 알게된 17세기 중국 정치사상가 황종희에 대한 중국인의 평전이다. 공부모임에서 이 교재를 선택한 배경이 아마도 평전의 주인공 황종희가 살던 혼란한 시대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라 생각이 든다. 평전 안에 ‘천붕지해(天崩地解)’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점령하는 시대적 상황이 260년간 명맥을 유지했던 명나라를 '세계의 전부' 또는 '조국'으로 생각한 이들로서는 당연한 표현일 것이다. 요즘 한국식으로 말하는 '멘붕'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단어일 것이다. 세미나 참가자들이 작년 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실패한 이후 앞으로 어떤 자세와 태도로 5년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속에서 황종희의 일대기가 궁금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제가 교재 선택에 참여하지 못해서...^^)

하지만 이 책은 공부모임 참여자들의 기대와는 조금 어긋난다. 저자는 19세기 황종희가 서구사회에서 민주정치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장 자크 루소보다 1세기나 앞서 중국에서 '주권재민'을 제시했다는 것으로 책의 전반적인 방향이나 결론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황종희는 몰락한 왕조 명(明)의 ‘유민(遺民)’으로서 청(淸) 왕조에 출사를 끝내 거부하면서도 지식인으로서 할 말과 할 일을 다 했다고 전해진다. '천붕지해' 즉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던 때. 명나라가 망하고 청 왕조가 들어서던, 그 시대를 살았던 황종희는 당대의 정치, 역사, 경제에 대해 그리고 정치인과 지식인의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황종희라는 이름이 21세기 중국사회에 다시 등장한 이유가 있었다. 10년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도 입고 다닌다 해서 중국인 사이에 청렴결백한 정치가로 알려진 원자바오(溫家寶) 전 중국 총리가 명말청초의 유학자 황종희에 심취해 있다는 내용이 중국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 중국사회에서 삼민주의로 유명한 손문(孫文)은 일본 망명 시절 혁명 단체인 '흥중회'를 결성하면서 이 책을 선전 팸플릿으로 이용하기도 했고, 사상가 양계초(梁啓超)는 <중국근삼백년학술사>에서 이 책을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비유하고 황종희를 중국의 루소라 불렀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황종희가 나름 역사적인 인물인 셈이다.

황종희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그의 부친 황존소는 동림당(東林黨)이라는 학문적, 정치적 붕당의 일원으로, 소년시절에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모진 탄압으로 옥사했다. 이런 성장 환경 탓에 명 말기의 극도로 불안한 정국 속에서 황종희의 삶과 사상은 강한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 
청년이 된 그는 문학 결사인 '복사'(復社)에 참가하고 정의로운 선비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자성의 반란으로 명나라가 멸망하고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청군이 침입하자 그는 향리의 자제들을 규합하여 항전했지만 실패했고, 그후에도 반청 운동을 지속했다. 그러나 청 왕조의 중국 지배가 확립되고 명 왕조가 부활할 가능성이 사라지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는 끝까지 명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려고 강희제가 탁월한 선비들을 회유하기 위해 마련한 박학홍유(博學鴻儒 황제의 정치자문 역할)로 추천되었으나 거절했고 명사관(明史館 명나라 역사 저술을 책임지는 직책)의 초빙에도 응하지 않았다.
부친의 유언에 따라 유학자 유종주(劉宗周)의 학문을 개인적으로 연구하여 양명학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공리공론을 배제하고 객관적 사실을 중시했다. 또한 사학에도 전심하여 경학과 사학을 함께 연구하는 경세치용(經世致用)의 학풍을 개발하여 청대의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저서로 <명이대방록 明夷待訪錄>, <명유학안 明儒學案>, <송원학안 宋元學案>, <역학상수론 易學象數論> 등이 있고, 그가 창시한 '절동학파(浙東學派)'에서 중국 근현대 사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다는 만사동(萬斯同), 전조망(全祖望), 장학성(章學誠) 등의 우수한 역사학자가 나왔다.
역자는 황종희의 사상과 학문적 흔적이 조선 후기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이 중국에서 들여온 물품 중 '경세치용'과 '실사구시'를 담은 개혁 서적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실제 많은 글과 저작 속에서 황종희는 전통적인 봉건정치체제에 대해 깊이 반성했으며, 봉건정치체제의 부패와 죄악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과 격렬한 규탄을 가했다. 그러나 분명히 봉건적인 군주제도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황종희가 반대하고 질책한 것은 군주제도 내의 전제적인 형태와 군권의 남용과 집중이었지, 결코 군권 자체의 합리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황종희는 군주제도에서 군권이 운영되는 정상적인 질서를 수립하려 노력했다. 그는 이를 통해 주권이 백성에게 있다는 의식, 정치체제를 감독하려는 의식, 공업과 상업이 모두 근본이라는 의식 등 근대의 민주계몽의 색채를 띤 일련의 정치적 주장을 제기했다. 저자는 봉건적인 전통체제에 대한 그러한 황종희의 반성이 거대한 사상적 가치를 드러내고, 그로 인해 후대에 깊은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요소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내가 평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쨎든 황종희는 260년 역사의 자신의 조국이 멸망하는 와중에 격렬하게 반청 군사행동을 했으면서도 나중에 '청나라의 지배'라는 현실을 인정했고, 국정에 협력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학문과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청나라 황제와 정부는 그런 황종희의 존재와 삶을 인정했다. 중국의 땅 떵어리가 한국과 비교 자체를 할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사회문화나 역사적 배경이 달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어쩌면 그런 정치와 문화, 역사가 중국이라는 나라를 유지시키는 배경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 2013년 02월 17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둥지의 철학 - 존재와 세계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철학적 응전
박이문 지음 / 생각의나무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 박이문 저 < 둥지의 철학 : 존재와 세계의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철학적 응전 >을 읽고 / 2010. 02., 292쪽, 생각의나무


"철학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가?" 저자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철학이 '존재 위기'를 넘어서 '해체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하면서 자신만의 철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저자가 책의 초반부에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수고>처럼 양적으로 작지만 핵심적인 철학적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책 속에 각주나 철학자들의 이름을 거의 언급하지 않으면서 철학에 관련된 쟁점과 이견을 논리적이면서 쉽게 풀어나가려고 한다. 수많은 철학자의 이름이 인용되지 않은 것은 그들의 철학적 업적을 소홀히 해서가 아니라 "중요한 것들이 그들의 생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철학'은 '쓸모' 이전에 '철학'이라는 단어나 개념이 사람들을 겁먹게 하고 피하도록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저자 역시 철학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궁극적으로 모든 현상, 모든 사실, 모든 경험을 총체적으로 단 하나의 총제적 대상으로 삼고, 그러한 대상에 대한 총체적 명제를 도출하는 학문"으로 대답하는데, 그 답문을 읽으면 '명제 덩어리'이고 '개념 덩어리'일 수 밖으니 웬만한 대졸자라도 머리 아플 수 밖에 없다.

책의 제목,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둥지의 철학’이라는 이름을 붙인 까닭은 우주 전체를 자신의 철학인 동시에 그 속에서 감성적으로나 지적으로 편안하고 따듯함을 느낄 수 있는 둥지이며, 그러한 둥지의 건축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리모델링 작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박이문은 “인간이 가장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삶의 거처가 집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지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관념적 건축물이 바로 지식”이라고 한다. 그에게 철학은 관념적 집으로서의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으며 많은 분과적 학문들이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해 "둥지는 존재의 토대인 자연과 우주에 거스르지 않는 건축물이며, 끊임없이 리모델링이 가능한 생태적 존재"인 것이다.

저자는 '둥지의 철학'을 전개하면서 과감하게 기존의 철학관을 넘어서고자 한다. 이 가운데 ‘존재-의미 매트릭스(The Onto-Semantical Matrix)’를 제시한다. ‘존재-의미 매트릭스’라는 잣대로 인간과 그 밖의 모든 것들 간의 존재론적인 동시에 의미론적인, 육체적인 동시에 관념적인, 연속적인 동시에 단절적인, 전일적인 동시에 분석적인 관점에서 관념적-언어적으로 ‘세계’라는 둥지로 재구성된 자연-우주-존재를 철학이라 한다면, 철학은 영원히 역동적으로 지속되는 세계관으로서의 둥지의 리모델링 작업이 된다는 것이다. 
‘존재-의미 매트릭스'는 한마디로 세계란 인간에 의해 언어적으로 구성되는 매트릭스라는 얘기다. 저자는 세계가 주관의 구성물이라는 칸트의 구성주의,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의 언어철학, 세계가 일종의 매트릭스, 즉 프로그램이라는 보드리야르의 사상으로 엮은 사유의 구성물이라고 덧붙여 설명한다.

출판사는 저자의 철학을 "실존철학과 분석철학을 아우르는 과감한 철학적 시도이며 박이문 철학의 결정판인 ‘둥지의 철학’은 한국철학의 자생성과 독창성을 위한 디딤돌이자 이정표로 기억될 것이다."라고 평가한다. 내 수준에서는 출판사의 서평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전공 여부를 떠나서 철학사 한 번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서양 철학 자체에 대해서도, 한국철학에 대해서도 문외환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간략하게 다루고 평가하는 노자의 <도덕경>, 플라톤, 푸코의 <말과 사물>, 헤겔의 <정신현상학>, 하이데거의 <숲길>,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니체의 <비극의 탄생>과 <도덕적 계보>, 그리고 칸트나 프레게, 데리다의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저자의 논리를 따라 읽어가는 데 있어 전제는 기존 철학자와 그들의 '이론'에 대한 저자의 '평가'와 '판단'을 인정하는 것에 기초해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논리와 주장의 기본적인 근거와 방식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동의한다. 특히 지각과 인식, 존재와 세계에 대한 저자의 규정이 그렇다. 그는 인식은 "어떤 대상의 관념적 재현이 아니라 재구성이며, 모든 재현과 재구성은 언어적 재구성이며, 언어적 재구성은 인식자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어떤 인식의 선험적 틀에 의존해서만 가능"하다고 정의한다. 우리의 지각은 "대상과의 감각적 접촉이 아니라 이미 하나이 해석"이며, 인식은 "일종의 사진이라는 영상 촬영이 아니라 상상 속의 건축"인 것이다. 즉 '진리'라고 믿는 세계 전체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로서의 인식대상들은 "이미 결정되어 있는 발견과 소유대상물"이 아니라, "각자 우리 자신이 창의적으로 상상하고 설계해서 세운 예술작품 같은 언어적 구조물'인 것이다. 인식은 선천적으로 주어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구성된 구조물이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각 인식주체의 교육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가변적이며 그 구조물의 자재, 자료는 의식이 아니라 언어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하는 '자연, 우주, 존재'는 인식주체로서의 인간의 출현과 더불어 인간적 으미를 지닌 세계로 변신한 것이다. 즉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존재는 언제나 인간에 의해 인식되고 인간적 주체에 의해 개념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분절, 분류되어 재구성된 주관적 세계일 뿐인 것이다. 인간에 의해 인식되지 않는 존재의 객관적 속성에 대한 언급은 논리적으로 자가당착적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탄생과 더불어 그냥 '존재'는 '세계'로 변하고, 모든 문제는 자동적으로 오로지 그리고 언제나 세계 안에서 사는 인간에 의한 인간적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저자는 우주의 구조적 모태를, 인간의 모든 지적 문제는 근본적으로 '존재-의미 매트릭스'라는 개념으로 서술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저자는 그런 '존재-의미 매트릭스' 개념으로 존재의 범주, 진리의 보편성과 존재의 객관성, 우주의 본질, 인류의 존재양식으로서의 윤리적 규범, 가치로서의 윤리를 풀어나간다.

* 참고로 [기독교 사상]이라는 잡지의 2009년 7월호에 정기기획물 '이 사람의 서가'에 '철학자 박이문 교수'라는 제목으로 대담이 실려 있다. 관련 글은 링크(http://blog.daum.net/boguses/8578652) 참조...

[ 2013년 02월 10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GPE 총서 1
홍기빈 지음 / 책세상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서평] 홍기빈 저 <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 >를 읽고 / 2011. 10., 400쪽, 책세상


복지국가 스웨덴의 정치적, 이론적 토대를 만들어 낸 20세기 초 스웨덴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에른스트 비그포르스Ernst Wigforss(1881~1977). 그를 중심으로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은 1930년대 대공황의 어둠이 세계를 덮쳤을 때, 세계 자본주의 변방의 빈국이었던 스웨덴은 복지 국가 모델을 실현하고 이후 수십 년 동안 황금시대로 이어진 경제·사회적 기획과 정치연합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스웨덴의 재무부 장관이자 사회민주당 최고 이론가로서 대공황을 극복하고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을 설계한 핵심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32년부터 17년 동안 스웨덴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스웨덴의 정치경제 모델을 주도적으로 건설했다. 대공황기에 세계 최초로 케인스주의적인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해 1932년 총선거에서 사민당의 승리를 이끌었고 그 해부터 44년간 이어진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적극적인 수요창출 정책을 통해 공황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묄레르 등과 더불어 복지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은퇴한 후에는 더욱 급진적인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꿈꾸며 1970년대에 시도될 ‘임노동자 기금’ 정책에 대한 영감을 제시하기도 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으로서 대안적 정치경제학의 전망을 제시해온 저자 홍기빈은 이 책을 통해 비그포르스의 이론과 실천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잠정적 유토피아’를 중심으로 그가 일생 동안 전개한 활동과 사상을 재구성하며,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이 어떻게 형성되어 무엇을 실천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지금 여기에 필요한 대안적 담론과 복지 국가의 정치경제학을 모색한다. 더불어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가 장악하고 있던 세계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곤경과 대안적 흐름, 1930년대 대공황 상태에서 기존 정치 이념과 노선이 빠져 있었던 마비 상태, 세계 금융위기를 비롯한 21세기 초입의 현실이라는 세계사적 맥락을 덧붙임으로써 비그포르스의 중요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의 진보적인 학자 및 정치인, 지식인들이 마르크스주의나 레닌주의 또는 '노동중심성'이나 '노동자 정치'라는 구호에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이 책은 유럽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운동,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2013년의 한국과 스웨덴을 무작정 비교하는 것은 부러움과 한숨만 가져올 뿐 그다지 실천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재벌과 기득권 집단의 경제적 독주로 인한 삶의 황폐화, 총체적 해법을 담은 미래상을 제시하는 데 실패한 정당 정치의 무능력, 그리고 금융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파국이라는 지구적 구조 변화를 마주한 한국인들에게 21세기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은 '무릉도원'에 가깝다. 
하지만 적어도 19세기말 ~ 20세기 초 스웨덴의 상황은 21세기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부분도 많은 것 같다. 스웨덴 사민당과 노동운동 세력이 20세기 초의 역경을 딛고 집권당으로 당당하게 나선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진보진영과 진보정당에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민주진보진영과 정당들이 한 두번의 정치적 패배로 좌절하거나 포기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찰과 외부의 사례를 통해 환골탈태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있어 이 책은 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참고로 조선일보 시각으로 보면,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강령과 정책은 현재 한국의 민주통합당은 커녕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보다 더 극좌이념에 가까울 수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44년 장기집권의 비밀은 무엇일까? 저자는 그 비밀의 핵심을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말한다. 비그포르스의 ‘잠정적 유토피아 (provisoriska utopier / provisional utopia)'는 20세기 초엽의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적 파산’이라는 상황에 직면해,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변증법적 과학’에 혼란스럽게 뒤섞여 있던 ‘윤리적 당위’와 ‘과학적 진리’를 재정립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도그마를 극복하고자 했다. 윤리와 과학의 분리, 즉 사회과학은 가치판단을 떠나 객관적 과학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사람들의 집단적 정치 기획은 이들이 현실에서 어떤 세상을 열망하는가라는 윤리적 판단에 기초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그포르스는 ‘잠정적 유토피아’라는 개념을 통해 스웨덴 사회와 민중에게 상상이나 '먼 미래의 꿈'이 아닌 현실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현실을 개선해나가고자 했다. 즉 구성원들이 지향해야 할 미래 사회의 총체적 모습을 제시하되, 혁명의 이상에 사로잡히거나 개량의 한계에 봉착하는 대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의 절실한 쟁점을 포착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하고자 했다. 그의 이상은 현실에서 ‘나라 살림의 계획’이라는 경제사상과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룬 복지 국가 모델로 구현되었다. 실현 가능한 꿈이지만 개혁 과정에서 본질적인 가치들을 구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인도해줄 만큼 급진적인, ‘길잡이’로서의 잠정적 유토피아. 그것은 종착점이 아니라 진행형의 작업가설이며, 따라서 스웨덴 복지 국가 모델 또한 그것을 넘어 더 멀리 나아가야 할 또 하나의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잠정적 유토피아'와 더불어 스웨덴 사민당이 집권당으로 자리잡고 장기집권을 이어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핵심 이유를 나는 이 책을 통해 '정치적 지도력'이라고 읽었다. 스웨덴 사민당의 대중적이면서도 강력한 리더쉽을 가진 '정치적 지도력'은 페르 알빈 한손 총리를 말한다. 페르 알빈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국민의 집'이라는 슬로건으로 중산층과 민중들을 집결시켰고, 1931년 비그포르스를 둘러싸고 당내 분열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비록 한쪽 정파의 견해가 올바른 것이고 당 전체의 입장이 될 수 있을지라도, 그 과정에서 당의 통합이 깨어진다면 아무 것도 성취할 수 없다"라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당을 갈등을 극복했다. 2012년 한국 내 민주진보 진영의 연이은 패배는 페르 알빈과 같은 리더쉽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결정적인 이유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그 정도의 '정치적 지도력'이 나타나지 않을 경우 집권, 즉 총선이나 대선에서의 승리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스웨덴 사민당이 20세기 중반이라는 사회경제 현실에서 추진한 국가정책과 운영방식이 21세기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지금 처한 현실과 20세기 중반의 스웨덴의 처지가 많이 다를 뿐더러 스웨덴 사민당과 한국의 민주진보 정당도 전통과 주축세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결정적으로 한국은 스웨덴에는 없는 식민지와 분단, 전쟁과 군사독재의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민주진보 정당들에게 스웨덴 사민당과 같은 '잠정적 유토피아'의 비전도 없고 '정치적 지도력'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이나 노무현 전대통령을 한 단계 뛰어 넘는 지도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비전이 없다는 것이 민주진보 진영 내부의 개인과 세력들이 연대하기 보다 갈등하고 분열하는 이유 중 한 요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 2013년 02월 07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