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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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최재천 저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을 읽고 / 2007. 01., 378쪽, 궁리출판사

국내 동물행동학 분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학자인 최재천 교수. 최 교수는 에드워드 윌슨의 <지식의 대통합, 통섭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했고 나는 그 책을 통해 최 교수를 처음 알게 되었다. <통섭>은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소개했고, 인류의 모든 학문이 생물학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학문의 '통섭'을 주장한 책이다. "결국 모든 학문은 자연과학(특히 생물학)을 통해 풀어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자연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과학이 드러난 사실을 기초로 무언가를 따지고 밝히는 학문이면서 동시에 실험을 통해 검증 가능하고 반증을 허용하며,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연구를 통해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은 인간이 미리 설정해 놓은 개념과 정의를 토대로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제를 해석하거나 주장하는 '사변적'인 학문이라 신뢰도가 떨어진다. 대신 인문사회과학은 인간으로서 인간에 대해, 인간이 모인 사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시비와 유불리를 따지면서 화해와 조화를 이루어가는 특성 때문에 좋아한다.

저자 최재천은 동물행동학이 "동물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How' 문제를 세분화하고 구체화하여 생물리학과 생화학적 메카니즘으로 환원주의적 접근 방법을 적용하고 동시에 '왜 Why' 문제를 종합적인 관점, 진화적인 관점으로 풀어내는 것"이라고 조금 복잡하게 정의한다.
쉽게 말하자면, 동물행동학의 유용성은 통해 인간과 인간 집단이 살아가면서 보여주는 행동의 모습과 원인을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물들의 여러 재미있는 행동 양태를 소개한다. 개미가 진딧물을 바로 삼키지 않고 살려놓은채 조금씩 단물을 빨아먹는 행동, 일부일처제로 널리 알려진 원앙새가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는 모습, 겉모습과는 달리 침팬지 사회에서 실질적인 권력은 암컷이 쥐고 있다는 것, 딱정벌레 애벌레가 개미의 암호를 도용하여 개미의 힘으로 개미집에 자리를 잡은 후 개미의 새끼를 먹고 자라나는 과정 등이 그것이다.
그는 동물들의 행동을 통해 얼핏 인간만의 특성으로 보이는 여러 행동 패턴이 대부분 이미 동물에게서 발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이 생명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사실 지구와 생명체의 역사를 본다면 인간의 태어난 지 몇 초 밖에 안 되는 갓난 아이에 불과하다. 게다가 몇 초 안에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생물학자들의 생각이다. 따라서 인류 역사보다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오랜 기간 동안 지구상에서 살아온 생명체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함을 지적한다.
자연을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알고 배우다 보면 인간은 자연과 생명체, 인간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고 결국 하나 밖에 없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음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동물행동학이나 사회생물학을 통해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자연(생명체)과 인간의 공존 뿐 아니라 인간사회를 위해서도 다양성과 차이의 중요성, 강자와 약자의 공존, 조화와 평등이 꼭 필요하다는 점이다.

"더 많이 알게 되면 더 사랑하게 된다"라는 말은 자연 세계뿐 아니라 인간 사회 내의 다른 사람, 다른 계층, 다른 집단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당될 것이다.

[ 2013년 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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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 - 학벌없는 사회
학벌없는사회 외 지음 / 메이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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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학벌없는 사회' 김상봉 외 7인 저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라>를 읽고 / 2010. 07., 296쪽, 메이데이


'학벌 철폐'와 그 대안으로서의 '대학평준화'는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이슈화하지 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한반도에서 1천 년이 넘도록 계속되어 왔던 '엘리트 통치'의 문화적 유전자가 강하게 잔존해 있기 때문일 것이고, 서구사회를 비롯하여 전 세계 정지사회 구조도  '엘리트주의'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한국사회 각 분야의 상층부 핵심 요직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장악하고 있는 SKY 학벌주의 세력이 기득권 여론과 반대 흐름의 여론까지 장악하고 있기 때문임을 예상할 수 있다. 실제 교육정책을 주무르는 정치권이나 정부관료, 기득권 언론사, 교육계 등에서는 '학벌타파'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그 폐해를 무시한다. 아니면 "사회구조의 문제가 해결되면 학벌주의 등 교육문제도 해결된다."라는 식으로 사회 전체 문제에 감추어 버린다.
그리고 다른 문제들과 달리 '학벌'에 의한 피해자는 아직 사회에서 자기 삶의 주체,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린 학생들과 20대 청년들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학벌주의' 사회에서 학부모들은 개별화되어 잘못된 제도와 문화에 저항하지 못한다. 학생들의 교육에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아빠, 할아버지, 삼촌, 아저씨는 20~30년 전 자신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만 생각하면서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는데 왜 공부를 안하지?"라는 정도의 의식 수준을 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학벌주의' 폐해는 서구의 '엘리트주의'와 다른 역사와 구조를 보이고 있기에 그대로 내버려둘 수 만은 없는 문제이다. 누군가는 그 심각한 피해와 폐해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대안을 제시하고 요구하고 직접 시도해야만 한다. 학벌주의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는 일부 학부모, 교사, 학생들의 경우에도 대안이 마땅치 않아 학교와 시장을 버리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책의 저자는 한국 사회에 ‘학벌 철폐’와 ‘대학평준화’라는 화두를 최초로 던졌던 시민단체인 [학벌없는사회]이다. 그들은 이 책을 통해 ‘학교'와 '시장’을 넘어 ‘교육’의 근본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오랫동안 ‘교육상품론’을 해부해 온 [학벌없는사회]의 풍부한 분석과 성찰적 화두는 학교 현장의 3주체인 교사, 학생, 학부모에게 교육의 근본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학벌없는 사회]측은 책의 기획 취지를 "‘학교제도’와 ‘시장경쟁’을 비판하면서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며 변화의 시작점을 만들어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학교제도’와 ‘시장경쟁’ 없는 교육은 가능할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과감하게 ‘그렇다’고 말한다. 수능시험, 일제고사, 영어몰입교육, 국제중, 특목고 등 교육을 서열화하는 무수한 시도에 대해 학벌없는사회는 그 길은 모두가 죽는 길이며, 모두가 살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그것은 이미 알고 있듯, 경쟁 속에 뛰어들지 않는 데 있다. 그 길은 다름 아닌 ‘학벌없는 사회’다. 여기 사람의 값어치가 그가 나온 학교로 매겨지는 사회가 있다. 강남 출신이 서울대생이 되는 우울한 사회.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행정부처 명으로 버젓이 이름을 내걸 수 있는 사회. 수능점수가 개인의 전부를 결정하는 현실은 ‘교육상품론’의 극단을 보여준다. 부모의 배경이 자녀의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는 어마어마한 사교육 열풍을 만들어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슬픈 자화상이다. 
한국 사회에 ‘학벌철폐’와 ‘대학평준화’라는 화두를 최초로 던졌던 학벌없는사회가 이제 ‘학교와 시장’을 넘어 ‘교육’의 근본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자고 제안한다. 체제의 요구를 거부하는 ‘내부로의 망명’ 떠나기, 학교밖 청소년에 주목하여 다양한 학교밖 배움터를 만들어내기, 입사원서에 학력란 없애기 등은 ‘학벌없는 사회’가 건네는 새로운 탈출구 전략이다.
교육의 첫째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의 계발이다. ‘무한경쟁’과 ‘스펙쌓기’만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가 자신과 전체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교육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정상적인 사회가 가능해질 것이다. 

책은 '학벌'이라는 큰 주제를 관통하며 내용상 대략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다.

1부 [‘학교’를 버려야 한다]는 왜 ‘학교‘를 버려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오늘날의 학교는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는 국가 독점 학력인증기관이며, 일류대에 얼마나 많이 보냈느냐가 그 학교와 학생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학벌의 구조와 논리를 재생산해내는 기관이다. 거기선 교육이 아니라 반反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김상봉이 철학적 관점에서 자유와 주체성의 논의에 근거해 학교를 비판하고 ‘내부로의 망명’ 또는 자발적 ‘낙오자 되기’를 위한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면, 채효정은 체험을 바탕으로 실제로 얼마나 많은 청소년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왜 학교를 나오는지, 그들은 거기서 어디로 가는지를 분석하고 학교밖 배움터의 필요성과 의미를 보여준다. 학교가 아니어도 갈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제도권학교에 충격을 주고 건강한 변화를 이끌어 내기를 시도한다. 
학교와 학교제도에서 벗어나자는 저자의 주장은 이반 일리히의 <학교없는 사회 Deschooling Soceity>와 일맥상통하는 흐름이 존재한다. 일리히는 인간에게 교육이 필요하지만, 학교라는 제도가 교육을 독점하면서 교육의 원래 취지인 주체성과 자립성을 오히려 훼손시킨다고 주장한다.

1부 중  '내부로의 망명, 낙오자 되기'라는 소제목이 달린 부분은 김상봉 교수의 교육 철학과 제도교육에 대한 진단 그리고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라 개인 블로그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http://blog.daum.net/hy2oxy/8691477)

2부 [시장을 떠나야 한다]는 왜 시장을 떠나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학교는 시장이 될 수 없고, 교육은 상품이 아니고, 인간은 도구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홍훈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속에 명시적으로나 묵시적으로 상정하는 교육과 상품의 유비를 비판하고, 이철호는 학벌사회인 한국에서 정부가 밀어붙이는 교육시장화정책은 학교교육의 문제들을 풀지 못하고 결국 사교육시장의 비대화를 초래했을 뿐임을 보여준다. 정세근은 고착된 대학서열체제가 대학교육을 붕괴시키고 나아가 국가경쟁력도 약화시킨다고 주장하며 학벌타파의 우선적인 실천으로 학력란 없애기를 제안한다. 경쟁을 할 때 이미 강자에게 유리한 규칙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이 사회에서 하승우는 공생을 모색하며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기업은 더 공격적으로 학교와 자신과 거리를 좁히고, 학교가 더 상세하게 자신에게 봉사하며, 학교가 자신의 모습을 닮아가도록 시도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학교가 기업과 점점 동일시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학의 총장이 학자라는 이미지에서 대기업 총수와 같은 이미지로 옮아가고 있다. 더 중요하게 기업의 목표가 이윤추구이지만 학교의 목표는 다르다는 종래의 생각에도 변동이 있다. 이런 보편적인 흐름에 특수성이 겹치면서 한국 사회에서 기업에 대한 학교의 예속이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p.138)

"학벌이 정치경제적 가치로 환산되는 국가조직이 아니라, 정말로 능력과 창조성, 그리고 패기에 의해 운영되는 경쟁력 있는 선진국형 국가이길 젊은이들은 꿈꾸고 있다. 이 꿈은 입사원서에서 학력란을 없애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입사원서의 ‘학교명’이라는 빈칸은 실제로는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는 ‘학벌’이라는 원죄를 담는 그릇임을 우리 모두 인식할 때이다."(p.204)

3부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근본적인 교육의 의미를 돌아본다. 
지식교육보다 앞서는 신체의 단련을 위한 체육교육의 실태를 살펴보고, 개별학과의 지식을 넘어서는 시민교육을 철학적으로 반성한다. 김재홍은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을 중심으로 교육이 왜 공공적이어야 하는지 시민교육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보여준다. 이병호는 우리나라의 체육교육을 해부함으로써 가장 기초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이 근저에서부터 어떻게 왜곡되어왔는지 드러내준다. ‘보는’ 스포츠가 아니라 ‘하는’ 스포츠가 우리를 건강하게 하듯이, 자신과 전체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각자가 정치행위를 수행할 때만이 자유롭고 동등한 시민으로 이루어진 정치적공동체가 가능할 것이다. 철학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고 친구들과 공도 맘껏 못 차고 남을 사랑할 틈도 주지 않는 학교에서 모두를 위한 교육은 불가능하다. 학교는 변해야 하고 학교가 바뀔 수 없다면 학교를 버리고 시장을 떠나서 교육을 다시 세워야 한다. 

“경쟁은 우리 사회를 행복과 풍요로움보다 절망과 빈곤으로 내몰고 있다. 이제는 그런 경쟁의 논리에서 벗어나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경쟁에서의 패배를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몰고 가는 헝그리 사회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홀로 러닝머신을 뛰는 것이 아니다. 거리로 나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자기 목소리를 외칠 때 공생은 가능하다.”(p.221)

[ 2013년 4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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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 비즈니스, 협동조합 (반양장) - 진화하는 조합원 소유 비즈니스
존스턴 버챌 지음, 장승권 외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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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존스턴 버챌(Johnston Birchall) 저, 장승권 등 역 <사람중심 비즈니스, 협동조합 People-Centered Businesses : Co-operatives, Mutuals and the Idea of Membership>을 읽고 / 2012. 07., 352쪽, 한울아카데미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협동조합의 가치나 장점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대한 ‘관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협동조합이나 상호조합을 큰 틀에서 ‘조합원소유 비즈니스(member-owned business MOB)’로 규정한다. 이 대척점에 있는 것은 ‘투자자소유 비즈니스(invester-owned business IOB)’로서, 이것은 ‘잊힌 이름’이던 협동조합이 왜 지금 재발견되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준다.
'조합원 소유 비즈니스(MOB)'는 투자자나 공공부문, 특정 기업가(오너)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활동으로 직접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소유하는 다양한 종류의 비즈니스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직접 이익을 보는 사람들'로는 소비자, 중소 생산자, 자영업자, 종업원(노동자)가 있다.
MOB는 "세 가지 유형의 이해관계자, 즉 소비자, 생산자, 그리고 종업원(노동자) 중에서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이해관계자가 소유하고 통제하며 그 이익의 대부분은 조합원에게 돌아가는 비즈니스 조직"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MOB는 다양성을 특징으로 하는데 국가별로 협동조합, 상호조합, 경제결사체 등 다양하게 불릴 수 있다.

 

저자는 오늘날 협동조합이 “불황에도 해고를 하지 않는 기업”, “모두가 평등하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기업”, 심지어 “친환경적이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그것이 자본이 아닌 사람 중심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아울러 그 근간 어딘가에 오웬주의와 같은 이상론마저 스며 있는 이런 비즈니스가 지난 100년간 자본의 탐욕과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존하고, 더 나은 경영을 추구하며 진화해왔다는 것을 이 책은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사실 협동조합의 이론적인 내용보다 더 큰 이 책의 가치는 주요 국가의 협동조합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여러 협동조합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배울게 많은 책이었다.
특히 국가별, 산업별, 유형별 개별사례와 부문 사례를 통해 MOB의 "설립 -> 성장 -> 통합 -> 쇠퇴 -> 혁신 및 재도약"이라는 협동조합의 전개과정을 정리하고, 각 시기와 단계마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가져왔는지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고 많은 교훈이 들어 있다.
아무래도 사례분석과 연구가 서구 국가들 중심(일본 포함)으로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한국이나 동남아시아, 인도나 아프리카, 남미권의 MOB 역사까지 포함하여 기술하기 때문에 얻을 것이 많다.

 

한편으로 왜 한국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협동조합이 잊혀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데, 이 책에서 1개 장(제9장)을 할애하여 다뤄지는 개발도상국 협동조합의 ‘기묘한’ 역사는 우리 사회에서 농협과 같은 협동조합에 여전히 남아 있는 관치 이미지의 이유, 이런 나라들의 협동조합이 본래적인 의미의 협동조합이 되지 못한 역사적 기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협동조합과 공제회, 신협 등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1960년대에 박정희 군사정권이 자생적인 MOB를 탄압하고 공기업화한 것에 대해 '독재 스타일'로 단순하게 이해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박정희가 1950~1960년대 유럽에서 협동조합이 괄목한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군사통치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대략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1장 [사람중심 비즈니스]에서는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관점과 소유권의 중요성, 조합원 소유 부문의 중요성과 MOB 다양성의 장점, MOB가 위기에 강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MOB의 정의와 성격, 특징 등을 다룬다.

 

제2장 [조합원소유 비즈니스의 성쇠에 관한 이론]에서는 MOB에 대한 포괄적인 이론을 제공하면서 'MOB 생태학'이라 부를 수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즉 왜 특정한 장소와 특정한 시간에 시작되었는지, 왜 살아남았고 사라졌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세계화와 세계 경제 침체 두 가지 도전에 대한 미래 전망을 설명한다.
이 장에서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설립시 리더의 중요성'이다. 설립과정이 짜임새있고 설립 이후에 비즈니스 과정이 탄탄하며 제대로 성장하는 MOB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초기 과정을 주도한 헌신적인 능력자가 있다.

 

제3장에서 제8장까지는 여러 MOB의 역사와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설립, 성장, 통합, 쇠퇴 그리고 재활까지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제3장에서는 소비자협동조합들을 통해 유통업체의 소비자소유 소매비즈니스에 대해 분석한다. 유럽에 있는 국가들의 MOB는 IOB와의 극심한 경쟁에서 뒤쳐졌지만 지금은 회복단계에 있으며 몇 국가에서는 탄탄한 성장을 하고 있다.
제4장에서는 보험분야의 소비자소유 비즈니스를 분석한다. 대부분 서구국가에서 엄청나게 성장한 후에 의료분야 중심으로 정부의 개입이 있었다. 일부는 MOB에서 IOB로 전환되었는데 그 이유와 효과에 대해 분석한다. 저자는 공통된 주된 이유로 조합원과의 거버넌스를 제기한다.
제5장에서는 주택건설과 영구주거협동조합을 분석한다. 이 부문에서는 상당히 다양한 비즈니스 방식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상당수 국가에서 토지와 주택의 보급과 시장 안정화에 기여했다.
제6장에서는 공공서비스 가운데 의료, 교육, 공익사업 그리고 레저서비스에 집중하여 여러 소비자소유 영역을 분석한다. 공공독점과 소비자소유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장단점이 설명된다.
제7장에서는 은행에서의 소비자/생산자소유권을 분석한다. 미국의 대부저축조합, 독일의 협동조합은행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과거 부문 간 통합이 이루어졌으며, 협동조합 형태가 높은 시장점유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협동조합은행글리 현재 금융위기에서 얼마나 잘 견디는지를 보여주고, 조합원소유권이 은행에 대한 글로벌 규제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데 주는 교훈을 제시한다.
제8장에서는 생산자소유 비즈니스를 분석한다. 예를 들어 농업인 협동조합, 소매유통업체소유 도매업체, 그리고 공유서비스 협동조합이 있다. 유통분야에서는 시스템 소유권에서 소매업체와 도매업체의 관계가 다소 복잡하다. 그리고 종합원소유 비즈니스의 역사롸 생태에 대해 분석하고 노동자협동조합이 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는지 설명한다. 노동자협동조합은 몬드라곤 협동조합에서 배워야할 것이다.

 

제9장에서는 개발도상국의 조합원소유 비즈니스가 갖고 있는 특정 문제점을 분석한다. 이런 국가들의 협동조합 비즈니스가 갖는 약점과 식민지 시대 이후에 어떻게 그들이 처음부터 정부에 의해 지배당했으며 공공 부문 조직들로 이해되었고 1980년대부트 엄격한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결말에 해당하는 제10장 [조합원제도]에서는 MOB들의 비교우위와 비교열위를 검토한다. 주요 약점은 조합원 참여가 떨어지는 점이다. 약점은 결국 탈상호조합화라는 결과로 나타난다. 하지만 반대로 주요 장점 역시 조합원제도에 있다. "이것이 더 구체적이고 비즈니스 방식과 잘 엮어지면 경쟁자들보다 독특한 우위를 갖게 해줄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내가 생각하는 협동조합의 핵심 키워드인 '조합원과의 거버넌스'와 '조합원의 참여'가 동일하다. 일단 숫자를 늘리고 보자는 식으로는 결코 협동조합이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이 곳곳에 배어있다...^^

 

- 인상 깊은 문장 -

 

"MOB들이 공익사업을 운영하는 데에는 이론적인 장점이 있다. 만약 소비자들이 직접 공급한다면 독점이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약 사업이 이익을 낸다면 가격을 낮춤으로써 그것을 재분배할 것이고, 자동적으로 원가-가격 메커니즘이 작동할 것이다. 많은 소비자협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중개인은 배제된다. 만약 그들이 자본을 쉽게 늘리지 못하거나 경쟁자들에 비해 싸게 하지 못한다면 불리한 점들이 생길 것이다.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하면 보통 낮은 이자로 차입할 수 있거나 정부로부터 다른 유리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p.189)

 

"새로운 유형의 상호조합이 떴는데 바로 서포터 재단이다. 이는 서포터 팬들이 클럽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리고 투표권을 모아서 재단에 주고, 재단은 서포터 팬을 대표할 수 있게 된다. 만약 서포터 팬들이 충분한 주식을 산다면, 축구클럽을 인수하여 완전히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매수하는 모델은 스페인 축구클럽,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는데, 법적으로 서포터 팬들이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클럽들은 팬들이 51% 소유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재단을 만들고 클럽을 인수하는 운동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영국에서는 160개의 클럽을 12만 명의 조합원이 운영하고 있다. 60개 클럽에는 서포터-이사가 있고, 15개의 클럽은 조합원인 서포터 팬들이 완전히 소유하고 있다."(p.200)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협동조합은행들이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확실한 구조적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다. 이들은 조합원소유이기 때문에, 다른 금융기관에 비해 확실히 위험회피적인 성향을 가진다. 또 이들은 기업이윤 창출이나 주주의 이익에 급급하지 않기 때문에 부실대출을 강요받을 필요가 없다. 협동조합은행은 지역단위은행/조합이 중앙은행/조합의 의사결정을 면밀히 검토할 수 있는 특별한 형태의 거버넌스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를 통해 이들은 조합원에게 대출해주는 돈이 자신들의 다른 조합원이 예금한 돈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한다."(p.246)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스페인 바스크 지역에서 한 영세한 노동자협동조합이 성장한 것이다. 현재 이들 소유의 기업은 모두 264개에 달하며, 스페인에서 일곱 번째로 큰 기업으로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카하라보랄은 몬드라곤 협동조합에 속해 있는 은행이며, 은행이 갖고 있는 예금은 새로운 벤처기업을 설립하고 싶어 하는 지역민들에게 투자한다. 그래서 개별 협동조합이 자금난에 시달릴 일은 거의 없다. 대신 몬드라곤 그룹의 규율을 스스로 따른다. 몬드라곤 그룹이 기관설립에 적지 않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기술, 대학교육, 연구개발, 그리고 사업계획에 필요한 것들을 충족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해서 몬드라곤의 인적 자본은 최상의 상태가 된다. 노동자는 유의미한 투자를 창출해야 하고, 대신 수익에 대한 배당을 받고 평생 연금을 받는다. 수익의 50% 이상은 노동자 조합원들에게 배당하기 때문이다."(p.281)

 

"진화생물학자와 심리학자들은 밈이라는 정신적 유전자가 있고 마치 유전자들이 서로 복제하는 것처럼 밈도 한 사람의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복제된다고 주장한다. 적자생존의 밈은 더욱 성공적이어서 복제는 빨리 되며 힘들이지 않고도 수백만 사람들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 우리는 모든 사람의 머리에 오랫동안 각인되는 마케팅 메시지들을 만들어야 한다. 최고의 소비자소유 비즈니스는 소비자인 조합원들에게 당신이 주인이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질문한다. “왜 다른 업체와 비즈니스를 하세요?”"(p.332)

 

"조합원소유권의 의미에 대해 경고해둘 것이 있다. 조합원기반 경제라는 아이디어를 알고 난 뒤, 수많은 단점을 고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즐거워하는 이론가들이 있다. 그들은 협동조합이 자본주의를 대신할 것처럼 생각한다. 세계화에 대한 해법,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방법, 개발도상국들의 경제적 잠재력을 열 수 있는 열쇠 등으로 본다.
잘만 된다면 이 모든 것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몇몇 중요한 사회운동들의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운동 그 자체는 아니다. 조합원소유권의 잠재력에 대해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실어서는 안 된다.
MOB 부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싶다면 그것이 성공적일 때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 말고, 어쩌면 MOB가 없을 때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 질문해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p.333)

 

[ 2013년 4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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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와 북한 - KISON REPORT 1
이흥환 엮고지음 / 삼인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서평] 이흥환 편저 <부시행정부와 북한>을 읽고 / 2002. 08, 251쪽, 삼인

지난 20여년 동안 북한의 핵과 미사일(로켓)의 개발, 실험, 배치를 막겠다고 시작된 남과 미국의 대북 제재와 압박은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전쟁위기만 고조된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과연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2009년 등장한 오바마 행정부는 '전략적 인내(일부에서는 북한의 자체 붕괴 기대라고 평가하는..)'를 대북 정책의 기조로 내세우면서 지난 4년간 북한에 대한 봉쇄와 압박만 계속했을 뿐 이렇다할 노력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오바마 이전에 북한과 협상을 진행한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가 어떻게 대북 협상을 진행했을까요? 다시 대화만 사작되면 전쟁위기가 도래하지 않을까요?

한반도라는 섬에 갇힌 한국인 대부분은 미국 정치외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간혹 연합뉴스나 조중동 등이 선별하여 보도해주는 정보만 듣고 미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듯 생각하죠. 한쪽 시각에서 편집된 정보를 오랫동안 접하다보면 '주장'이 '사실'로 머리 속에 각인되어 다른 사실이나 관점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경상도 지역의 유권자와 저소득층의 투표 패턴이 대표적인 사례죠.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조지 부시가 2001년 처음 표현한 '악의 축'이라는 단어나 개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실제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 등장한 '악의 축'이라는 개념이 부시 행정부에서 어느 정도 정책연구를 통해 등장한 것인지, '악의 축' 발언 이후 미국 정계와 언론, 전문가들 사이에서 어떤 평가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저자인 이흥환 연구원은 부시 행정부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2002년 이 책을 통해 1980~1990년대의 북미의 외교 과정에 대해 분석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전쟁위기의 원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주로 당시 미국 내 전문가의 칼럼이나 논평을 번역하여 옮겼고, 마지막 장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습니다. 블로그에 다섯 개의 칼럼을 옮겨놓았습니다.(http://blog.daum.net/hy2oxy/8691485)
대표적인 대북 전문가 몇 명(리온 시갈 Leon V. Sigal, 셀릭 해리슨 Selig S. Harrison 등)이 미국 유력 언론(LA타임즈, 헤럴드트리뷴리뷰, 워싱턴 포스트, 보스턴 글로브 등)에 발표한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기고문 등을 묶은 것입니다

기고문에서 칼럼니스트들은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이 클린턴 행정부와 북한 정부의 합의사항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무시하고, 북한에 대한 적대감에 기초하여 봉쇄정책과 위협정책을 지속하면서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음을 지적합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는 클린턴 정부가 북한에 제공키로 한 에너지 비용에 대해 미국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여 합의서를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2000년에 또 한 번... 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행정부의 합의서를 뭉게대가 2001년 9.11 테러 이후 적대정책으로 돌변하였고 남한과 미국 내 여론에 밀려 2007년 6자 회담에서 북한과의 합의했지만 합의 이행을 지연했습니다.
시갈과 해리슨은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더 이상 지속할 이유도 명분도 없음을 지적하며, 적대정책과 군사적 위협이 결국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도록 유도하여 장기적으로 지구상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확산시키는 재앙을 초래할 위험성이 크다고 부시 행정부를 비판합니다.
결론은 1994년 제네바 기본 합의서와 2000년, 2005년, 2007년 공동선언을 이행하는 것에서부터 북미 관계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이죠.

21세기 한국사회가 외세의존적 기득권 중심의 사회가 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100년전 일제 강점기와 친일파, 분단과 한국전쟁 등 근현대사를 모르면 이해하기가 어렵죠. 마찬가지로 현재의 전쟁위기는 지난 60년간 북미 갈등 상황과 협상과정을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독자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저자나 칼럼니스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몰랐던 사실 관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칼럼의 내용은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입니다. 한국인이 항상 언론에서 접하는 것이 부시 행정부 등 권력자의 의견이니 다른 의견을 들어야합니다. 더군다나 의견 보다 중요한 것이 기사 중에 존재하는 '팩트'입니다. 한국만큼 팩트에 무심하고 팩트 보다 '진영과 정파의 주장' 그리고 '증오'에 매몰되는 사회도 없으니까요. 자칭 보수도 자칭 진보도...

독자들 중에 1994년 전쟁의 위기까지 갔다가 극적인 협상으로 평화적인 분위기와 협상을 이어오던 북미 관계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계신 분이 있나요? '선과 악의 이분법'이나, 보수나 진보, 자유와 민주라는 이념이나 정파를 떠나서...
북한이든 미국을 옹호하거나 비판하거나 기본적으로 사실관계에 기초해서 시도해야겠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과거에 알거나 공부하던 정보(지식)를 토대로 선입견을 가지고 감정과 흥분에 휩싸이는 글들을 보면 무척 안타깝습니다.

"그후 20년 동안 300명의 북한 핵 과학자들이 소련에서 교육을 받았다. 소련의 이러한 도움은 두 갈래의 핵 프로그램을 가동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평양은 전력을 얻기 위해 핵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중대한 시도를 하는 동시에 비밀리에 군사용 핵 작전을 추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의심의 눈초리로 보기 시작한 그 원자로는 소련이 제공한 영변 원자로의 확대판이었다.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도 역시 1960년대였다. 모스크바가 이때 단거리 스커드미사일을 제공했고, 그후 북한 과학자들에 의해 장거리 미사일로 개조되고 재설계된 것이다. 
냉전 기간에 미국의 지속적인 북한 '과도 억제'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야망을 자극한 셈이었다. 펜타곤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는 곳을 밝히지 않으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했다. 그러나 1975년 6월 20일, 슐레진저 국방 장관은 공개적으로 남한의 핵 존재를 확인하는 발언을 했다. "유럽과 한국의 우리 병력에게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라고 보며, 미 대통령이 조건에 따라 사용할 것이다."" (p.67)

[ 2013년 4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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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이시우 사진 / 인간사랑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추천 [서평] 이시우 작 < 비무장 지대에서의 사색 >을 읽고 / 2007. 06., 104쪽, 인간사랑


사진작가 이시우는 최진섭 작가의 <법정 콘서트 무죄>(2012. 10 창해)를 읽으면서 알게되었다. 사진 작품집이니 '읽었다'가 아니라 '감상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느끼는 것이 맞을 듯 하다.

<법정 콘서트 무죄>에서 알게된 이 작가는 예술가이자 사상가이고 평화운동가이자 유엔사령부 등 한국전쟁 전문가였고, 법률가보다 국가보안법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를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기 전에는 사진 촬영을 나가지 않는 예술가였고, 주제에 대한 미학적 철학적 역사적 인식이 없이는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예술가였다. 오랜 공부와 연구를 통해 필요한 내용이 얻어진 후에 비로소 촬영 준비를 시작한다는 작가. 사진 촬영을 위해 수 없이 많은 날을 촬영 현장을 답사하면서 오래도록 물끄러미 돌 하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점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기곤 하는 작가였다.

그렇게 묘사되고 느껴지는 작가의 사진 작품은 돈을 주고 사서 보는 게 예의리라 생각했다. 100쪽 남짓 되는 사진 작품책을 읽는 데 며칠이 걸렸다. "왜 이걸 찍었을까?" "왜 이런 설명을 달았을까?" 작가의 사진 작품과 시 구절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읽고 이해해보려 가슴으로 받아보려 애썼다. 물론 나로서는 쉽지 않았다. 자주 펼쳐보고 문득 생각나면 펼쳐보면 언젠가 깨달음이 있겠지 생각하며 책꽂이에 일단 꽂아 두었다.

사진 작품에 대한 서평을 쓸 자신이 없어서 송주성이라는 분이 쓴 글을 옮겨 본다. 나의 어줍잖은 서평보다 송주성씨의 설명이 사진 작품을 제대로 묘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질서는 우리에게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실을 매순간 가르쳐 준다. 봄 한 철 살다 가야 하는 풀벌레 한 마리가들판 가득 몰려오는 여름을 막을 수 없듯이 저 당 속 깊은 곳에서 쿵쿵 울리며 다가오는 통일의 역사를 아무도 막을 수 없다. 그 소리를 누가 듣는가? 뻘밭 아래 깊은 땅 속을 쿵쿵 울리며 걸어오는 진흙소의 걸음걸이를 누가 듣는가? 연안 박지원 선생은 '농맹(籠盲)'됨을 경계하라고 했다. 천하에 천둥번개가 쳐도 귀머거리는 듣지 못하고 온 산하 단풍이 휘황찬란해도 소경은 그를 보지 못한다고 했다.

 

들녘에 가득 몰려오는 여름을 아는 농부처럼 통일의 역사를 위해 씨부리는 자는 통일이 걸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이시우의 사진은 그 소리를 듣고 있고, 그 소리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사진에서 드러나는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분단현실을 지시하는 사물의 코앞에다가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것은 역으로 우리로 하여금 분단현실의 증거들과 상처들에 대하여 눈을 들이밀고 보도록 요구하고 있다. 마치 지뢰 표지판에다 얼굴을 들이대고 바라보듯 앵들의 중심에 지뢰 표지판이 커다랗게 들어선다. 그리고 지로 표지판 너머에는 티없이 맑은 조국의 하늘이 시원의 어느 때마냥 끝없이 펼쳐진다.

 

바로 이것이다. 이시우 사진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의 사진에는 단 두 가지 대상이 대비되어 있는 것이다. 지뢰 표지판, 철조망, 포격으로 뼈대만 남은 노동당사, 총탄이 뚫고 지나간 벽들이 화면의 정중앙부에 '정밀묘사'되어서 우리의 눈길을 사정없이 붙들어 맨다. 그리고 그 사진들에는 어김없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과 하늘이 드리워져 우리의 시선을 다시 아득한 어디로 끌고가 버린다. 이 집중과 확산, 화면 가득 확대되고 정밀묘사된 녹슨 철조망과 지뢰 표지판..., 그리고 원시의 그날처럼 아득히 펼쳐지는 아득한 조국의 산하. 너무 삭막하여 가슴이 스산해지고 조금만 오래 들여다 보고 있으면 결딜 수 없는 답답함이 짓눌러 숨을 가쁘게 하는 분단현실, 그 낱낱의 모습들, 그리고 이에 완강히 맞서서 버티고 선 조국 산하의 시리도록 아득하게 아프도록 아름답게 서 있는 모습.

 

그러면 이 사진은 북녘 하늘과 산을 '촬영'한 것인가? 이 사진은 우리가 그 사진 앞에 설 때 완성된다. 왜냐하면 이 사진 앞에 우리가 설 때, 우리는 하나의 관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북녘을 보게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 사진은 북녘 하늘을 찍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성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을 찍은 것이다. 그러면 그가 들판을 넘어 그 아득한 하늘을 향해 가는 것은 언제일까? 그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한다."

사진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성은 핵무기를 가득 실은 B-52 폭격기에 대한 뉴스기사를 심드렁하게 보고 듣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대화와 평화가 아니라 대결과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미의 긴장, 그리고 동북아시아. 오랜 갈등과 반목과 정치적 악용이 만들어 낸 민족의 불행. 비무장 지대의 녹슨 철마와 지뢰, 들꽃과 철새들은 이런 위기를 알고 있을까요... 겉으로는 평화롭기만 한 비무장 지대, 그 평화가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는 언제쯤 다가올런지...

[ 2013년 3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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