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조국 지음 / 책세상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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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추천 [서평] 조국 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를 읽고 / 2010. 07.(개정판), 198쪽, 책세상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장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파업의 자유, 신체의 자유, 이동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헌법의 정신을 구현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헌법 조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권자들의 의식과 제도가 필요하다. 주권자들의 의식이 바로 여론이고 문화인 셈이고, 제도가 바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이다. 그리고 행정, 입법, 사법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헌법을 해석하고 실제 행동하기 때문에 종종 또는 오랫동안 헌법을 훼손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처음 제정된 이승만 정권에서부터 1987년까지 헌법은 어두운 참고에 박혀 있었고, 학살자 독재자들이 맘대로 정한 법률로 행정, 입법, 사법을 휘둘렀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 역시 노태우 정권에서 현재의 박근혜 정권까지 기득권자들과 권력자들에게 유린되어 왔다.
한국에서 헌법을 토대로 실제 법률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현실은 아직 미숙한 단계에 불과하다. 조국 교수는 이 책에서 그런 대표적인 사례, 특히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사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구체적이고 실질적이고 긴급한" 폭력의 위험이 없는 한 보호되어야 할 생각이나 양심이나 사상이나 표현이 침해되고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는 한국은 헌법 제19조에서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헌법학계는 이 조항에서의 양심의 의미는 널리 사상의 자유까지도 포괄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실제로 보장되고 있는가?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하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 색깔론, 종북공세, 사상공포증이 일소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조국 교수가 2007년 이 책을 출간하면서 우려한 일들이 2012년부터 전사회적으로 시작되어 올해에는 한국사회 전체를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근거도 없고 위협도 없는 상황에서 특정 개인과 정치세력의 생각과 사상을 캐묻고 단정하고 낙인찍고 매도하고 처벌하고 있다. 좀 바웠다는 이들까지 헌법과 양심,사상의 자유를 앞장서서 침해한다.
헌법을 지키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앞장서서 보호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같은 국회의원의 생각과 사상을 재단하고 낙인찍고 마녀사냥식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데 협조했다. 조폭 수준도 안 되는 정보기관이 불법으로 증거를 조작하고 찌라시 수준도 안 되는 언론이 여론몰이에 나서고 정당과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여론의 마녀사냥에 굴복해 숨을 죽이고 있다. 저자 자신도 움추러든 모습이 느껴진다.
부정하게 권력을 쥔 자들이 부당하고 불법적으로 소수 야당에 대해 정당해산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다른 야당과 정치지향적인 세력들은 내년 지방선거의 유불리를 계산하느라 더 분주하다.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는 조국 교수의 저서는 우리 사회의 진보와 민주를 위해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헌법에만 명시되어 있을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리 사회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어떻게 억압받고 통제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 비판하고 있다.
그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준법서약제’나 ’양심적 집총거부권’, ’빨갱이 콤플랙스’와 같은 우리 정신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고 있고,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지탄받는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고 있다. 
책은 법 앞의 평등을 침해하는 보호관찰법, 대체복무제 도입을 고민해야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빨갱이 콤플렉스와 사상을 표현하고 실현할 자유, 국가보안법 총비판 4가지 핵심쟁점을 명확하고 체계적으로 담고 있다.

그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가 필요한 근거로 밀의 <자유론>을 인용하고 있다. 첫째, 어떤 생각과 사상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경우 어쩌면 그 사상이 진리일지 모른다. 다른 말로 우리는 진리를 억압함으로써 진리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효용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 설사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상이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통상 진리의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무조건 배척할 것이 아니라 취사선택할 문제이다. 셋째, 진리라고 널리 인정되는 사상의 경우도 그것에 대해 진지하고 활발하게 논쟁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 사상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치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힌 것처럼 생각하여 그 사상의 합리적 근거를 이해하고 실감하기 어렵다. 넷째,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교설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거나 약화되어 그 사상이 사람의 인격과 행위에 미치는 생동하는 영향력이 상실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쓴 글을 혐오한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당신에게 보장해주기 위해 나는 기꺼이 죽을 준비가 되어있다. 즉 누군가에게 생각을 표현할 권리를 인정한다고 그것이 곧 그의 생각에 공감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문장은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한 말로 한국사회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문구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간의 권리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또 표현하지 않을 권리, 자신의 양심과 사상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양심과 사상의 자유는 제한적이다. 법과 제도뿐 아니라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경제 학술 문화 생활 영역에서도 통제를 받는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분단 상황이라는 것이 유일한 이유다.

조국 교수는 민주국가라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고 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의 수준은 소수자의 양심과 사상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햇볕정책,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 애써 일궈놓은 북한과의 평화적 흐름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경색되었고 개성공단을 폐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공과 안보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북한을 '한 민족'과 ‘한 나라’가 아닌 적국,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것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할 뿐이다.
그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비롯한 인권 관련 국제법규에 따라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보장할 것을 주장한다. 좌 또는 우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일반’에 충실해서 완고하게 정립된 고정관념을 반성적으로 재검토하자고.

조국 교수의 2010년판 개정판을 끝까지 읽으니 책의 끝 부분에 아래와 같이 결론을 스스로 요약해 놓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법조계, 학계, 정치계, 언론계, 시민운동,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진보적' '민주적'이라 할 수 있을 거 같다.
1.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 비전향 사상범에게 추상적인 미래의 재범 위험성을 이유로 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은 내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 보안관찰법 비판
2. 양심적 병역거부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리로 인정하고 있고 국제법도 승인한 인권의 문제다. 국가는 이를 강제해서는 안되며, 이들을 위한 대체복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3. 사상의 자유는 사회 진보의 필수요건이며, 진리는 사상의 충돌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사상 간의 경쟁을 봉쇄하는 '빨갱이 콤플렉스'는 사라져야 한다.
4. 체제를 비판, 부정하는 사상의 표명과 실천도 그것이 폭력과 파괴 행위를 수반하는 등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한 사상의 자유의 하나로 보장해야 한다.
5. 국가보안법은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하여 통일 지향을 가로막는 법률이며,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여 시민의 정치적, 시민적 기본권을 광범위하게 침해하는 법률이므로 페지되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더라도 국가안보에 구체적이고 실질직어니 위험을 주는 행위는 형법 기타 다른 법률로 제재할 수 있다.

결론과 관련하여 보충하는 몇 개 문장도 소개한다.

"양심수란 폭력을 주창하고나 직접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여타 양심에 따라 형성된 신념을 이유로, 또는 인종적, 성적, 피부색, 언어, 민족적, 경제적 지위 때문에 투옥, 구금, 육체적 제약이 부과된 사람들이다" - 국제사면위원회

"기존의 제도와 통념, 다수의 목소리를 무조건 추종하기 보다 자신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공비판적이며 전복적인 사상을 만들고 실현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회는 모순이 조기 잘견되고 해소되어 지금만큼이라도 진보할 수 있었다"

"시민이 자신의 양심과 사상을 지니고 실현하는 자유에 대한 국가의 제약은 가능한 한 억제되어야 하며, 제약할 때는 엄격한 요건에 따라, 자유를 최소한도로 침해하는 범위와 정도로 해야 한다."

"다를 수 있는 자유의 실체는 기존 질서의 심장을 건드리는 사안에 대하여 다를 수 있는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검증되는 것이다." (미국 대법관 스톤)

"진리 여부를 가리는 최고의 검증 방법은 그 사상이 시장의 경쟁 속에서 수용되는 힘을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 대법관 홈스)

[ 2013. 11.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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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인권
토머스 페인 지음, 박홍규 옮김 / 필맥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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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저, 박홍규 역의 <상식 Common Sense 인권 Rights of Man>을 읽고 / 2004. 12., 435쪽, 필맥

이 책은 미국 독립혁명 및 프랑스혁명 시기의 혁명적 정치사상가였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의 대표작 <상식>과 <인권>을 한데 묶은 것이다.
<상식>은 18세기 후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의 인민들에게 자주독립 및 대의제에 입각한 공화국 수립을 촉구함으로써 아메리카 독립전쟁을 혁명의 차원으로 끌어올렸고, <인권>은 프랑스혁명을 비난한 보수논객 에드먼드 버크에 대항해 프랑스혁명을 옹호하면서 자연권에 입각한 인권의 관점에서 국가의 바람직한 모습과 역할을 논했다.

두 책은 독립혁명기의 미국 인민대중으로 하여금 영국의 제국주의적 횡포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민주국가 건설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오늘날 미국이 스스로 제국건설에 나서면서 자신의 건국이념을 어떻게 배신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20세기 전반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참혹한 인권유린을 겪은 세계는 1948년 12월 10일 유엔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해 선포하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길의 이정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 후에도 불평등, 인종차별, 성차별 등으로 인해 인권유린은 계속돼왔다. 최근에는 테러와 대테러 전쟁, 경제적 세계화에 수반된 불평등 심화, 종교간 갈등 등으로 인한 인권유린의 참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2013년 한국의 정치와 사회처럼 '상식'과 '인권'이 간절할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보수'를 주창하는 이들은 상식이나 인권을 벌레보듯 하고,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 일부는 상식과 인권을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아 보인다.
나 역시 무의식적으로 '상식'과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서구에서 넘어온 '상식'가 '인권'이 어떤 시대적 배경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온 개념인지 잘 모르고 떠들었다. 이제 '상식'과 '인권'을 서구사회에 전격적으로 제기했던 페인의 팜플렛과 책을 읽으면서 그 개념의 배경과 취지를 이해하고 싶었다.

이 책을 번역한 박홍규 교수가 추천서에 쓴 글도 의미심장하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소용돌이를 겪은 후, 이 책을 번역하여 출판했던 박홍규 교수가 '옮긴이의 말'에 남긴 문장이 9년이 지난 지금에도 크게 공감이 된다. 공직자라 하여 정상적인 비판이 아니라 근거도 없이 감정섞인 마녀사냥식 비난을 퍼붓는 이들을 보면 무척 안타깝다.

"2003년 초부터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의에서 다수의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국회가 탄핵한 점에 본노했다. 그 분노는 대통령이나 국민이 갖는 상식적인 인권을 국회가 비상식적으로 침해한 민주주의의 원리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의 권위에 대한 국회의 도전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대통령상까지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이 국회보다 더 부패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당시 분노의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탄핵반대 의견이 거세었다가 과거 독재자 대통령의 딸이 국회 다수당의 새 대표로 뽑히자 그 반대가 삽시간에 수그러든 점은, 대통령에 대한 권위주의적 생각이 국민 대다수의 마음에 존재한다는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현상은 아직도 우리에게 인권과 민주주의가 상시이 아님을 웅변한다."

박 교수의 해석을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자만, 대통령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상식 아닌 상식이 광범위하게 도사리고 있으니 국회의원, 그것도 소수당의 국회의원 한 명이나 사회단체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인권이 쉽사리 짓밟히는 것이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상식이 제대로 자리잡기 쉽지 않다는 반증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은 "일반 국민에게는 인권이 있지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검찰총장에게는 인권이 제한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은 인권이 무엇인가에 대해 철저하지 않은 생각이 문제일 것입니다.
인권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는 것은 개인의 지위나 출생, 직업이나 재산정도와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 보편적으로 불리우는 '상식'이라는 개념이 서구에서 어떤 과정으로 탄생하였는지 공부하다 보면 상식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이고 철저한 인식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도 아니라면 서구처럼 식민지 지배자와 지배권력에 대항하는 혁명과 전쟁을 통해서 한국인 개개인들이 인식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는 상당한 인명의 희생이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미 수많은 인명의 희생을 통해 인권과 민주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맞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 지식인, 개인들이 개념과 적용에서 '아전인수'하는 경향이 많고 인권과 민주주의가 지난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으니 걱정이 걱정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서구의 사상에서 늘상 나타나는 두 가지 경향은 잊지 말아야한다. 첫째, 토머스 페인이 아메리카로 이주한 유럽인들이 애초 아메리카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을 부당하게, 짐승처럼 ?i아낸 것을 자신의 주장의 근거나 논리에 포함시켰는지 둘째, 200년 전에 처음 제기된 개념이고 동양과 서양이 진화해온 사회와 문화가 다르니 우리에 맞게 다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18세기 미국과 영국 그리고 21세기 한국과 미국
페인의 저술 중에서 일부를 소개한다. 당시의 시대를 21세기로 바꾼 후, 아래 문장에서 영국을 미국(아메리카)로, 프랑스/스페인을 중국으로 바꾸어 읽어도 별로 이상하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의 종속과 그에 따른 위협은 지금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다. 18세기 미국과 영국의 관계와 21세기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는 셈이다.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영국이 우리를 보호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영국이 자신의 비용과 함께 우리의 비용으로 대륙을 방어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방어는 보호라기보다는 독점이며, 영국은 같은 동기, 즉 장사와 영토를 위해서라면 그게 아메리카가 아니라 터키라도 방어했을 것이다.
가련하게도 우리는 낡은 편견 때문에 길을 잘못 들어섰고, 미신에 엄청난 희생을 바쳤다. 우리는 영국의 동기가 '사랑'이 아니라 '이익'이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고, 영국의 보호를 자랑해왔다.
그러나 영국은 '우리를 위해 우리의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자기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한 것이었고, 그 적은 '이와 다른 이유로' 우리와 싸운 적이 없지만 앞으로는 '이와 같은 이율'로 우리의 적이 될 것이다.
영국이 더 이상 대륙에 그런 거짓 주장을 할 수 없게 하거나 대륙이 더 이상 영국에 종속되기를 거부한다면, 프랑스와 스페인이 영국과 전쟁을 해도 우리는 그들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p.48)

우리는 우리 자신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서라도 그런 동맹을 파기해야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어떤 식으로든 영국에 복종하거나 예속된다면 아메리카 대륙은 곧장 유럽의 전쟁과 분규에 말려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로 우호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아무런 불평이나 감정도 갖지 않은 나라들과도 사이가 틀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유럽은 우리의 무역시장이므로 우리는 그 어느 부분과도 편파적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유럽의 투쟁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미국의 참된 이익이다. 그러나 아메리카가 영국 정치라고 하는 저울에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한 부속물에 머물러 있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p.52)

나는 복수심을 도발할 목적으로 공포를 심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확고한 목적을 단호하게 추구할 수 있도록 치명적이고 비겁한 반수면 상태에서 우리를 일깨우고자 하는 것뿐이다. '머뭇거림'과 '비겁'으로 인해 아메리카인들이 스스로 정복당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영국이나 유럽은 그들의 힘만으로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없다.(p.56)

영국이 다시는 우리을 찾취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것은 헛된 환상이다. 우리는 인지조레가 폐지되었을 대 그렇게 생각했지만 불과 일이 년 만에 진실은 드러났다. 따라서 한번 패배한 국민은 그 패배한 일에 대해 절대로 다시 싸움을 시작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해도 좋다.
영국은 이 대륙을 정의롭게 통치할 힘이 없다. 그 일은 너무 버겁고 복잡해서,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우리에 대해 너무나 모르는 나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p.57)"

영국과 전쟁을 통해 미국이 독립한 후 미국이 제대로 된 사회와 국가로 정비되었고 그에 따라 미국과 영국의 관계가 공정하고 평등하고 평화롭개 변모했듯이 미국과 한국의 관계도 한국이 미국에 대한 종속, 예속에서 벗어날 때만이 미국과 진정한 '동맹'이든 '동반자'든 가능할 것이다.
당시 미국 내에 존재하는 친영파가 현재 국내에 친미파로 존재하고 있고, 영국의 보호를 주장하는 이들처럼 작전지휘권을 돌려받기를 겁내하면서 어처구니 없게도 그 댓가로 미국 무기를 사주려는 작자들이 있다.

분단체제의 극복은 미국으로부터 심리적, 군사적, 정치외교적,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주권을 세우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 될 것이다. 지난 20년 과정에서 보았듯이 북한 문제는 '권력쟁탈'과 '이익'을 위한 핑계일 뿐이고...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인권선언

인권의 기원은 1789년 프랑스 국민회의가 선포한 인권선언,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인권선언 17개 조항 중에서 인권선언의 토대인 몇 가지 조항을 살펴 보면 아래 네 가지다.

제1조,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도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사회적인 차별은 공공의 이익을 근거로 해서만 있을 수 있다.
제2조, 모든 정치적 결사의 목적은 자연적이고 소멸될 수 없는 인간의 권리를 보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권리란 자유, 재산, 안전, 그리고 압제에 대한 저항 등이다.
제3조, 모든 주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인다. 어떤 개인이나 단체도 명백히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
제4조, 정치적 자유는 타인을 해치지 ?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이 동일한 권리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제한 외에는 어떤 제한도 받지 않는다.
제6조, 법은 공동체 의지의 표현이다. 모든 시민은 스스로 또는 대표를 통해 법 제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법은 보호를 하든 처벌을 하근 모든 사람에게 동일해야 한다.
제11조, 사상과 의견의 자유로운 교환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 중 하나다. 따라서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단, 법으로 정한 경우 그 자유의 남용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토머스 페인의 <인권> 중에서...)

따라서 이 인권선언을 2013년 대한민국에 적용할 경우, 작년 대선에서 51.6% 득표율로 당선된 정권이라 하여 48.6%의 유권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할 권리는 없다. 다수당이라고 하여 소수당을 다수결로 차별할 권리도 없으며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다고 하여 다른 정당, 단체, 개인, 정책을 차별할 권리도 없는 것이다. 그런 차별을 허용한 법과 제도는 인권 침해이므로 바꾸어야 한다.
또한 강정마을, 쌍용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 용산참사에 대한 정권의 강제와 폭력은 주권자이자 인권을 가진 사람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유, 안전, 저항권을 침해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 공권력의 행사는 폭력일 뿐이고 자연인의 저항은 권리인 것이다.

시민과 유권자가 스스로 법 제정에 참여할 권리를 제한한 현행 헌법과 법률은 한국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부와 주요 임명직 공직자에 대한 주권자의 대표 선출권도 강화되어야 한다. 스위스처럼 일정한 규모의 주권자가 요구할 경우 법률 제정권과 공직자에 대한 탄핵권을 가져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가보안법 폐지가 되지 않는 이상 한국사회에 인권이 보장되었다거나 민주화되었다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가 안보는 국민의 안전과 자유, 저항권, 평등, 생존권이 보장되었을 때 국민들의 힘으로 지켜지는 것이다.

정부와 정권을 반대하는 개인, 단체, 정당의 주장과 노력을 '종북' '빨갱이'로 매도하는 모든 언행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전혀 무지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언론과 배운 것들의 행태는 헌법과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지속되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 극우언론의 탄압과 여론몰이는 인권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침해다. 소위 진보정치인과 진보지식인의 비판을 위장한 비난 역시 인권이나 정치적 자유, 공공의 이익이나 사상 의견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 종파적 이익 또는 극우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당시 토머스 페인의 한계를 지적해야 한다. 그는 "노르만의 윌리엄으로부터 시작하면, 영국이라는 국가는 본래 침략과 정복에 기반을 둔 전제정이었음을 알게 된다."(p.279)고 저술했지만, 미국의 독립 이전에 수백 년간 서구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해 원주민, 인디언을 ?i아내고 학살하여 토지를 장악했던 것 역시 침략이자 정복이기 때문이다. 페인은 책 어디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 2013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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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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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저, 김진준 역 <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를 읽고 / 2005. 12., 752쪽, 문학과사상사

이 책은 저자 제러드 다이아몬드가 전세계 인류의 불균등한 삶과 생활을 이루어살고 있는 이유, 더 나아가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대량 학살한 이유를 진화생물학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자연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이래 진화론은 유전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사회생물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가운데, 진화론은 그 과학적 객관성과 타당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경우 정치적, 인종주의적 목적으로 '악용'되어 왔다.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인종주의적 설명이 아닌 다른 과학적 분석으로 가능할까?
"왜 어떤 민족들은 다른 민족들의 정복과 지배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왜 원주민들은 유라시아인들에 의해 도태되고 말았는가. 왜 각 대륙들마다 문명의 발달 속도에 차이가 생겨났는가. 인간 사회의 다양한 문명은 어디서 비롯되는가?”

저자는 위 질문에 대해, 광범위하게 나타난 인류 역사의 경향을 실제로 만들어낸 환경적 요소들을 밝히려고 시도한다. 그는 뉴기니 원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에서부터 현대 유럽인과 일본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의 인간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
이 책은 서구인들에게, 그리고 서구인들의 편견에 물들어 있는 한국인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인류가 아직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13,000년 전 석기 시대가 화석과 유물로 남겨놓은 흔적들을 분석하면, 그때부터 각 대륙에 살고 있던 인류 사회들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중동지역), 중국, 중앙아메리카, 미국 동남부와 그 밖의 다른 지역에서 야생 동식물을 일찍부터 가축화.작물화한 사실은 그 지역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보다 앞설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왜 밀과 옥수수, 소와 돼지, 그리고 현대의 주요 작물이 된 농작물과 가축들은 특정 지역에서만 작물화? 가축화되었을까? 저자는 그 원인이 관습도, 인종차도 아닌 환경임을 밝힌다. 다시 말해 기후와 지리, 위도, 강수량 등 환경이 대륙 간 인류 문명의 발달 속도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곳곳에 정착한 이후 서로 고립된 상태에서 수백 ~ 수천 년 간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 적응하여 사회를 이루고 살아감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고 다른 양식의 생활과 정치사회 제도를 구성했던 것이다.

즉, 인류 역사에서 문명이 다르게 전개된 것은 각 대륙의 민족 또는 인종이 인종적, 유전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인간종의 이동 과정과 각 대륙의 환경 및 조건의 차이에 맞게 적응해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환경에 적응해 왔던 인류의 문명이 상이하게 발달한 과정에서 특히 '총기'와 '병균'과 '금속'이라는 무기를 매개로 하여 역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분석하고 있다.
일단 수렵 채집 단계를 넘어서 농경을 하게 된 사회들은 문자와 기술, 정치제도(중앙집권), 사회제도뿐만 아니라 사악한 병원균과 강력한 무기들도 개발할 수 있었다. 그러한 사회들은 질병과 무기의 도움으로 다른 민족들을 희생시키며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새로운 지역으로 확장했다. 지난 500여 년간 유럽인이 자행한 비유럽인 정복은 이러한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간 후 질병과 전쟁으로 95%의 원주민이 죽고 만 것이다. 일단 앞서게 된 유라시아 대륙은 지금도 세계를 경제적, 정치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저자가 책의 서두에 자신의 연구결과가 "과거의 대량학살을 미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닐 뿐더러 미화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의 말에 회의가 든다.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류의 문명과 행위를 '생물학적 범위'로 분석할 수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생물학적'이라는 설명은 다분히 인간의 의지나 집단적인 세계관의 반영이라기 보다 동물적인 또는 자연스러운 본능에 근거한 행위라는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식량생산과 인구의 증가, 그에 따른 중앙집권적 제도와 무기의 발달이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침략하거나 학살하는 근거로 제시했는데, 생물학적인 이유라 할 수 있으려면 침략한 민족이나 인종이 식량 부족 또는 거주지 부족 등과 같은 생물학적인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설명에는 그렇다는 근거나 증거는 없다.

저자가 예로 든, 1835년 뉴질랜드 북부섬에 살던 마오리족 일부가 채텀 제도에 살고 있던 모리오리족을 공격하여 거의 멸족시킨 것은 환경과 조건의 차이가 아니었다.
저자는 두 종족의 차이를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와 잉여생산물에 의한 무노동 집단의 탄생, 그리고 높은 인구밀도로 영토와 식량을 둘러싼 경쟁에 익숙한 마오리족이, 낮은 인구밀도 조건에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위계질서가 약하고 싸울 줄 모르는 모리오리족을 공격하여 멸족시킨 것이다. 이것은 결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황, 즉 생물학적인 전개과정은 아니라고 본다.
나는 오히려 그러한 마오리족의 침략 행동은 말 그대로 '비인간적'인 행위이고 마오리족이 아직 '인간성'을 취득하고 계발하지 못한 짐승 수준의 제도와 문화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설명을 고려하더라도 마오리족은 높은 생산성에 근거하여 집단 내부에 잉여생산물이 존재했기 때문에 다른 종족을 학살한 이유가 식량부족일 수는 없다. 더많은 잉여생산물과 권력, 그것을 위한 영토의 확장인 것이고 다른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존중하지 못하는 문명상태, 즉 '필요'에서 벗어난 동물이지만 아직 '문명'이라 할 수 없는 경계상태의 인류가 '학살'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1532년 신성로마제국(스페인)의 피사로 군대 170여명이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8개월 동안 포로로 붙잡고 그의 군대 8만 여명을 페루의 고지대 도시인 카하마르카에서 집단 학살한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성로마제국 사람이나 군대를 처음 접하는 잉카 제국의 황제와 잉카인들에게 피사로는 거짓말로 화해와 친선을 위한 만남을 제안(만남 전에 미리 공격 준비를 한다)했고, 스페인 군대에 소속된 기독교 수사는 기독교의 존재도 모르는 황제에게 성경을 강요하여 갈등을 유도했다. 피사로는 잉카 황제를 8개월 동안 볼모로 붙잡아 놓아 스페인으로부터 추가 파병할 시간을 벌었고 잉카 제국으로부터 엄청난 몸값을 받은 후 나중에 황제도 죽였다.
피사로와 기독교 수사는 잉카 제국을 공격한 이유를 "하느님과 그의 성스러운 신앙을 만민에게 알리기 위해"라고 주장다.
즉, 신성로마제국이 잉카제국을 학살한 이유는 진화생물학으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인류가 동물에서 인간종으로 변화되는 가운데 과도기에 해당하는 '오만과 독선'이라는 '종교적 질병', 즉 인류의 정신적, 문화적 질병 중의 하나라고 분석해야 한다.(이러한 종교적 질병은 이슬람제국과 십자군전쟁에 이어 현대 사회에도 기독교 근본주의라는 형태로 남아 있다.)

물론 더 오랜 기간을 살펴보면 유럽인의 아메리카 정복은 무기의 수준, 유럽으로부터 전염병의 전파, 금속문화 등도 연관이 있다.
즉 저자는 "왜 스페인은 잉카 제국을 침략했는데 잉카 제국은 스페인을 침략하지 못했나?"라는 식으로 질문을 던지면서, 그 원인을 환경과 조건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저자는 <총, 균, 쇠>라는 무기, 병균, 금속, 그리고 문자 등이 스페인의 아메리카 정복 그리고 잉카 제국이 스페인을 정복하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나는 무기, 병균, 금속이 하나의 인간집단(종족, 민족)이 다른 집단(종족, 민족)을 공격할 때 승리하는 이유는 될 수 있지만, '공격하는'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즉 공격하고 정복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당하고 고의적인' 것이다.
만약 저자의 논리가 절대적인 진리라면 인류는 앞으로도 전쟁과 학살, 침략과 정복으로 끊임없는 불안에 시달릴 것이다. 따라서 스페인인들이 "종교의 전파"를 공식적인 공격과 점령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실제 의도는 더많은 권력과 부, 영토를 위한 식민지 확장이었고, 그것은 봉건귀족과 자본가들의 탐욕과 착취에 근거한 것이다. 그런 탐욕과 착취욕이 잉여생산물에 근거한 것인지. 잉여생산물에 기초한 착취계급과 그들 사이의 살인경쟁인지, 종교에 근거한 것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다시 말해, 당시 유럽인들은 자신들은 고귀한 인간이고 다른 민족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나 노예로 생각했던 '미개인'이자 '짐승같은' 동물집단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20세기 들어서까지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백 만명을 서로 죽였고 그 뒤에야 조금씩 '공존'과 '인간성'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아직도 전쟁과 증오에 불타는 미개한 종족이 미국과 이스라엘, 한국에 남아있지만...
오히려 처음 만나는 인간집단에게 호의를 보이고 친선을 도모한 아메리카 인디언과 잉카인들, 모리오리족과 다른 대륙의 민족, 종족들이야말로 수백 ~ 수천 년 전에 서유럽보다 먼저 '인간다운' 문화와 제도를 갖추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서유럽은 자신들끼리 두 차례의 거대 살륙전쟁을 일으키고 식민지 민중들을 학살한 후인 20세기 중반을 넘어서 비로소 공존과 공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여전히 인종 우월주의, 국가 우월주의에 사로잡히거나 금융자본과 군수자본 등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전쟁, 갈등, 착취, 학살은 이루어지고 있다.

즉 저자가 설명하는 바와 같이 서로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인간집단이 대를 거듭하면서 만들어 낸 정치사회 제도와 문화는 천양지차이지만, 다른 제도와 문화가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집단적으로 학살한다는 자연스러운 또는 과학적이거나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찾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는 환경와 조건에 적응하면서 각 인간집단이 짧은 시간 동안 만들어내기 시작한 인류의 문명 또는 문화는 더 이상 진화생물학이라는 범주만으로 연구하는 것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류 문명의 역사적 발달 과정이 인종적, 유전적 차이가 아닌 환경과 조건에 따른 적응적 과정이었음을 보여주는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총, 균, 쇠, 정치제도, 문자'라는 요인만을 중심으로 문명을 분석하면서 서구의 제3세계 학살이라는 결과를 해석하려 하다가 오히려 서구의 학살을 일면 정당화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독후감이다.

참고로, 이 책 개정판의 후면에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특별 증보면이 추가 수록되어 있어서 소개한다. 이 증보면에서 저자는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추적했다.
여기에서 저자는 유전적 분석, 각종 화석과 유물에 대한 분석 결과, 언어학적 연구결과 등을 토대로 일본의 현생 인류는 한반도 인류에서 확산된 결과이며 식량생산과 문자, 언어 역시 한반도에 기원을 둔 것임을 밝힌다.
세부사항은 블로그에 정리(http://blog.daum.net/hy2oxy/8691593)

[ 2013년 10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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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
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최희봉 옮김 / 부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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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버라 에런라이크()Barbara Ehrenreich 저, 최희봉 역 < 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 >를 읽고 / 2012. 06., 311쪽, 부키

"최저 임금을 받아서 과연 먹고살 수 있을까?"
"그들이 가난한 게 정말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일까?"

이 책은 <긍정의 배신>으로 긍정주의 처세술과 긍정신학의 본질과 속셈을 고발했던 저자의 워킹 푸어(working poor, 근로 빈곤층) 생존기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미국 내 여러 개 주에서 자신이 직접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로 정말 살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2012년 현재 미국 연방 정부의 최저 임금은 시간당 7.25달러)

처음 저자의 목표는 단순했다. 일을 구하고 그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음식을 사고 잠자리를 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단순한 목표를 이루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직업,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부터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영양은 커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식생활, 부자들이 집값을 올려놓은 탓에 싸구려 모텔과 트레일러 주택을 전전하며 점점 더 외곽으로 쫓겨나는 주거 실태, 가난하기에 돈이 더 많이 들고 그래서 더 일해야 하고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쳇바퀴까지, 저임금 노동자들을 옥죄는 생활의 굴레를 저자 특유의 위트와 날카로운 분석으로 파헤친다.
저자는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에서만 보았던 미국사회의 중산층 이하 계층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위험한지 생생하게 말해준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함께. 도시기반시설 차이만 없다면 21세기 미국사회의 속살은 20세기 초 시카고 도시민의 지옥같은 삶을 보여준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더욱 심각한 생각이 들도록 한 것도 있다. 저자가 저임금 체험을 할 당시, 미국은 성장은 지속되면서 물가는 안정된 이른바 '골디락스 경제'에 한껏 취해 있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다수 임금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하락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집값과 주가 상승 등 자산 거품이 빚어내는 '부의 효과'에 흥청거렸다.
그런 경제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미국 내 시간제 노동자의 생존이 '워킹 푸어'라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저임금 노동자의 삶이 어떠했을지는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미국의 공화당이나 민주당 정부는 세계적인 군사패권전략과 군산복합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다. 중동에서의 전쟁,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군사훈련, 무지막지한 군사비의 유지가 과연 미국 내 중산층 이하 국민들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지...

참고로, '노동의 배신'이라는 한국어판 제목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노동에 '배신'당하는 워킹 푸어의 역설적인 현실을 의미한다. 원제인 'Nickel and Dimed' 역시 '야금야금 빼앗기다', '매우 적은 돈을 쓰다'라는 두 가지 뜻으로, 푼돈조차 아껴 쓸 수밖에 없으며 가난하기에 오히려 돈이 더 드는 워킹 푸어의 생활을 보여 주는 말이다. 
출판사는 이 책이 150만 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이자 예일대 등 미국 600여 개 대학의 필독서로 지정된, 온몸을 던져 신자유주의 시대의 빈곤 문제를 다룬 '현대의 고전'이라 평가받는다고 소개한다.

사실 전례 없는 호황이라던 그때, 노동 인구의 30퍼센트가 생활이 가능한 수입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당 8달러 이하의 임금을 받았고(1998년), 최저 임금은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시간당 5.15달러에 멈춰 있었다. 다만 거품에 취해 있던 대다수의 미국인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깊어지는 풍요의 그늘'을 외면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에런라이크는 빈곤층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며 그들이 결코 게으르거나 일을 하지 않아서 가난한 게 아님을, 그들의 빈곤이 중산층의 안락함의 토대임을 섬뜩할 만큼 몸으로 보여 주었기에 미국 사회가 받은 충격은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5월 초판이 나오자마자 책은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생활 임금 운동의 큰 동력이 되었다. 그 결과 29개 주가 최저 임금을 인상했고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생활 임금을 지급하라는 법령이 통과됐다. 마침내 2007년 7월에는 연방 정부가 최저 임금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저자가 처음 맞닥뜨린 저임금 일은 식당 웨이트리스였다. 일을 더 잘하고 싶고 손님들을 잘 돌보고 싶다는 고차원적인 '아가페', 혹은 서비스 윤리는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에 지쳐 어느새 사라진다. 손님들이 적으로 보이는 웨이트리스 일에 필요한 것은 '생각하지 말고 계속 움직이는 것'이니까. 게다가 컴퓨터 터치스크린으로 하는 주문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고 끊임없이 쓸고, 닦고, 썰고, 붓고, 채우는 '잡일'도 해야 한다.
두 번째로 체험한 청소 용역 회사의 파견 청소부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이 반복되는 일이다. 집 안 곳곳의 먼지를 털고 거대한 진공청소기를 등에 진 채 청소하고 무릎을 꿇어 바닥을 닦고 똥 묻은 변기와 욕조의 체모까지 치워야 한다. 온몸은 땀투성이가 되고 곳곳이 아프기 마련. 부상을 당하는 일도 다반사지만 치료는커녕 마음 편히 쉬기도 어렵다. 가려움증 때문에 나병 환자 같은 몰골이 된 저자에게 사장은 '아무 문제없다'며 일하러 가라고 떠민다. 값싼 진통제나 담배, 술 한 잔에 의존하거나 대부분은 그냥 참는 것으로 버틴다. 
마지막으로 체험한 월마트 매장 일은 '단순노동'. 저자는 숙녀복 매장에 배치돼 손님들이 어질러 놓고 간 옷을 정리하고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없이 할 수 있고, 자폐증이 있으면 오히려 더 유리할 것 같은 그런 일이다. 그러나 해도 해도 끝이 없을 만큼 양이 많다. 게다가 3일마다 한 번씩 매장 배치가 바뀌는 탓에 그때마다 자리 배치를 다시 외워야 한다. 저자는 근무 시간 초반에 친절한 '지킬 박사'였다가도 끊임없이 옷가지를 헤쳐 놓는 손님들에 지쳐 이내 '하이드'로 폭발하고 만다.

육체적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특히 지배인, 매니저 등 관리자들의 비인간적인 관리 방식이 노동자들을 가장 괴롭힌다. 이를테면 웨이트리스들은 마치 중학생처럼 식당 한쪽에 서서 지배인에게 야단을 맞고, 평소에는 한시도 쉬지 못하게 감시를 받는다. 
청소부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유니폼 자체가 이미 '죄수복'이다. 노란색과 녹색의 요란스런 색깔로 어디서든 존재를 노출시킨다. 집주인들은 청소부들을 늘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한다. 귀중품 옆에는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카펫 밑에는 먼지 덩어리가 숨겨져 있다.
무엇보다 다른 저임금 노동자들에게조차 따돌림당하는 현실은 가슴 아프다. 워킹 푸어의 세계에서는 청소부가 최하층에 자리한 '불가촉천민'인 셈이다. 그러니 자신들을 '착취'하는 사장의 인정에 과도하게 매달리게 된다. 아무리 깨끗이 청소해도 누구 하나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면? 사장의 인정이 내 존재 가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거대 기업인 월마트 역시 다를 바 없다. 입사할 때는 하루 종일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동료'라는 말로 다독이고, '우리들이 월마트를 월등하게 만든다'고 추켜세우지만, 그것 역시 직원들을 '길들이는' 과정일 뿐이다. 

처음 저임금 체험에 뛰어들었을 때, 저자는 복지 개혁론자들이 주장하듯 최저 임금을 받는 일자리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들에겐 '특별한 절약법'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없었다. 오히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드는 상황에 수시로 맞닥뜨렸다.
아파트를 구할 때 필요한 한 달치 집세와 한 달 집세에 상응하는 보증금이 없으면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조리 기구가 없는 집에서 살아야 한다면 콩 스튜 같은 걸 미리 요리해 놓고 냉동시켜 먹을 수는 없다. 주로 웬디스나 맥도날드에서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편의점에서 즉석 식품을 사 먹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필요한 약도 살 수 없고, 결국에는 약을 구하지 못해 일을 오래 쉬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2000년, 보스턴에 있는 고용 문제 연구소 '미래의 직업(Jobs for the Future)'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94퍼센트가 '풀타임으로 일하는 사람이라면 가족을 빈곤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 만큼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풀타임으로, 때로는 두 가지 일을 해도 더 가난해지고 빚만 늘어 가는 워킹 푸어의 수는 점점 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2010년에는 미국의 노동 인구 중 7.2퍼센트인 1,050만 명이 워킹 푸어로 집계돼 2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미 2008년에 전체 노동 인구의 11.6퍼센트인 270만 명이 워킹 푸어로 조사됐고, 최근에는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빈곤층이 더욱 늘어나는 데 따라 그들을 백안시하는 문화도 더 심해지고 있다. 이제 가난은 거의 범죄가 되었다. 법조차 빈민을 차별한다. 콜로라도 주 그랜드정션의 시 의회는 구걸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논의 중이고, 애리조나 주의 템페에서는 2011년 6월 말에 나흘 동안 극빈자를 단속했다. 또 가난한 사람이 무단 횡단을 하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등의 가벼운 범법 행위만 해도 필요 이상으로 단속하는 추세다.

일을 해도, 아니 일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 극심한 불평등을 단지 1퍼센트의 탐욕 때문이라고 간단히 결론짓고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속 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도끼를 내리친다. 우리의 안락함이 바로 이들의 희생 위에 지어진 것이라고. 에런라이크는 우리의 특권과 그들의 고통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끄집어내고 '이 사태에 당신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독자에게 인식의 확장은 물론 행동의 변화를 요구한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수치심을 느껴야 마땅하다고 절절히 호소한다. 수백만 워킹 푸어가 겪는 빈곤을 '응급 상황'으로 받아들여 이를 개선하자고 외친다. 임금을 올리고,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고, 그들이 조직을 결성해 더 나은 임금과 노동환경을 얻어내도록 하자고 말한다. 무엇보다 넘어져 있는 그들을 발로 차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원칙이라도 필요하다는 호소에는 평소 누구보다 앞장서 사회 운동을 활발히 펼쳐 온 에런라이크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저자의 경험은 불과 십 몇 년전 미국사회의 모습이지만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내내 전혀 미국같지가 않았다. 저자의 노동 경험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심각하게 사회문제가 된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올해 집권 초기에 선언한 '시간제 노동'이 자리잡은 미국 본토의 현실이다. 과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그런 '시간제 노동'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책을 수립한 것인지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다. 친미와 종미 사대주의의 필연적인 방향인지 우려스럽다. 
그렇다면 새누리당의 실세 김무성의 주장처럼 새누리당이 한두 번만 더 집권하면 충분히 한국사회에서도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로도 제대로 된 식사, 휴식, 휴가, 의료, 교육, 주거를 보장받지 못하는 한국사회는 저자의 경험이 오히려 덜 고통스러울 수 있을 정도로. 아니 이미 한국사회 밑바닥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시간제 노동으로 워킹 푸어의 삶을 사는 이들이 무수히 숨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한국 내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의 이름으로 스쳐 지나가는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삶과 고민과 고통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이 책과 저자를 통해 한국 내 대학교수들과 지식인, 언론인들의 게으름과 안일함 그리고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싶다. 정부, 정당, 기관들은 그냥 재벌과 기득권층의 하수인이라 지탄하고 청산해야할 집단이라 간주하더라도...

○ 인상 깊은 문장 :

- "허스사이드에서 며칠 일하면서 나는 수유 호르몬인 옥시토신 주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온몸이 서비스 정신으로 가득 찼다. 대부분의 고객은 힘든 노동을 하는 지역 주민들이었다. 트럭 운전사, 건설 현장 노동자, 심지어는 식당이 속해 있는 호텔에서 일하는 청소부들도 왔다. 지저분한 환경이 허락하는 한, 나는 그들에게 '고급스런' 식사에 가장 근접한 식사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손님에게는 '당신'이라고 하지 않고 12세 이상이면 누구나 '선생님'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아이스티와 커피를 계속 채워 주는 한편 손님들이 식사하는 도중에 다가가서 음식이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샐러드를 시키면 잘게 썬 생버섯이나 여름 호박 조각, 또는 냉장창고 안에서 곰팡이가 피지 않은 야채를 뭐든 찾아 예쁘게 썰어 위에 얹어 내갔다." ('1장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중에서/ p.36)

- "당신의 대리석 벽이 피를 흘리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계급, 즉 대리석을 캐 나른 노동자들, 당신이 아끼는 페르시아산 카페트를 눈이 멀 때까지 짠 사람들, 당신이 가을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 놓은 식탁 위의 사과를 수확한 사람들, 쇠못을 만들기 위해 강철을 제련한 사람들, 트럭을 운전한 사람들, 이 건물을 지은 사람들, 그리고 지금 이 집을 청소하려고 허리를 굽히고 쪼그리고 땀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흘리는 피입니다."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중에서/ p.129)

- "예를 들어 똥에 대해 얘기해 보자. 청소부에게 똥은 피할 수 없는 일의 한 부분이다. 청소부가 되어 처음으로 똥 묻은 변기와 대면했을 때 나는 누군가와 원치 않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는 사실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바로 몇 시간 전에 어떤 통통한 엉덩이가 이 변기에 앉아 힘을 주었고 나는 여기서 그걸 치우고 있구나."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중에서/ pp.130~131)

- "6시가 지나 멜리사와 엘리가 퇴근하고 나면, 그리고 9시에 이사벨까지 퇴근하고 나면 그때부터 매장은 '내 것'이 되었다. 저리 비켜요, 샘. 여기는 이제 바브-마트(Barb-Mart)라고요. 카트를 끌고 매장 둘레를 시찰하다 제자리에 있지 않거나 떨어져 있는 상품을 보면 얼른 뛰어가서 줍고 모든 것을 보기 좋게 정리했다. 탁 치면서 제자리에 놓았다. 똑바로 걸려 있어, 차려 자세로. 아니면 선반에 정연하게 엎드려 있어. 이런 마음 상태가 되면 고객이 상품을 들추고 다니며 매장을 건드리는 게 보기 싫어졌다. 사실은 상품이 팔린다는 개념 자체가 싫었다. 원래의 집에서 뿌리가 뽑혀 상태가 어떤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옷장 안으로 내 옷이 빨려 들어간다는 게 정말 싫었다. 여성복 매장을 거대한 플라스틱 거품 안에 넣어 소매상점들에 관한 역사박물관 같은 어디 안전한 곳에 잘 보관했으면."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 중에서/ p.226)

- "바로 그 순간에 나와 함께 휴게실에 있던 여성이 벌떡 일어나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텔레비전을 향해 주먹 쥔 팔을 흔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빠르게 두 검지를 아래로 향하는 손짓을 해 보였다. "여기! 우리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어요!"라는 뜻이었다. 그녀는 내가 앉아 있는 곳으로 달려와 얼굴을 가까이 하더니 "당연하죠, 젠장!"이라고 말했다. 발이 너무 아파서 그랬는지 그녀가 '젠장'이라고 욕을 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내 휴식 시간을 훌쩍 넘기고 아마도 그녀의 휴식 시간도 지날 때까지 우리는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딸 얘기, 계속 장시간 근무를 하느라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한 번도 제대로 가져 본 적이 없다는 얘기, 그리고 아무리 일하고 벌어도 저축할 엄두도 못 내는데 이렇게 일만 하면 뭐 하느냐는 얘기…. 나는 지금도, 만약 월마트에서 조금만 더 일했더라면 그녀와 둘이서 뭔가를 해냈을 거라고 생각한다."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 중에서/ p.257)

[ 2013년 10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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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 - 돌베개인문.사회과학신서 51
박세길 지음 / 돌베개 / 198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강추!! [서평] 박세길 저 <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2 : 휴전에서 10.26까지 >를 읽고 / 1998. 10., 314쪽, 돌베개


저자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시리즈 3권 중 제2권은 한국전쟁 직후부터 친일 군사쿠테타범 박정희의 사망까지를 다루고 있다. 한국현대사가 1945년 8.15 해방에서부터 한국전쟁까지가 첫번째 커다란 획을 그었다면,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과 박정희로 이어지는 기간은 예속과 굴종, 부정과 부패, 압제와 착취라는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병폐가 자리잡는 두번째 단계라 할 수 있다.
한국현대사의 두번째 커다란 획을 가르는 과정은 미국에 의한 정치군사적, 경제적 종속과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친일파 출신의 범죄자들의 압제와 착취, 그리고 미국과 친일파 권력집단에게 기생하는 매판자본가들의 육성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1953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한국현대사를 다시 공부하면서 몇 가지 특징과 교훈을 재발견하였다.

특징은 첫째, 한국의 정치 및 군대가 외세(미국)에 반영구적으로 종속되었고 미국은 자신들의 군사패권전략을 위해 끊임없이 한미일 군사동맹체제를 시도했다는 점. 둘째, 한국의 경제 역시 미국과 일본, 특히 1970년대로 갈수록 일본에 의해 구조적으로 철저하게 종속되었다는 점. 셋째, 한국의 자본은 그 속성상 매판자본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 넷째, 그 과정에서 친일/친미파 집단의 대리인이자 권력중심인 이승만과 박정희 일당은 미국의 사전 승인, 동의 하에 집권하거나 집권을 연장하였다는 점. 다섯째, 집권세력은 단 한번도 부정선거를 저지르지 않은 적이 없으며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정치자금과 뇌물이 구조화되었다는 점. 여섯째, 한국 내 정치경제 상황은 미국의 세계 정치경제군사전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 일곱째, 친일 군사 독재의 압제권력의 무기는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와 부정부패에 의한 뇌물이라는 점. 여덟째, 한국의 민중들은 어떠한 탄압에도 굴함없이 저항하며 스스로 국가와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나선다는 점이다.

교훈은 특징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첫째, 미국과 일본에 대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종속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국가적, 민중적 수탈이 지속된다는 것. 둘째, 특히 군 작전지휘권 환수와 미군 일변도의 무기, 군사전략,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주국방은 요원하며 항상 미군의 군사패권전략에 좌우되어 위험을 초래한다는 것. 셋째, 기술자립과 금융독립성을 유지해야만이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국내경제를 관리할 수 있다는 것. 넷째, 정치 군사 경제 언론 학계에서 친일파와 그 후예들은 청산해야만이 자주국방도 자립경제도 가능하다는 것. 다섯째,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야말로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의 근본이라는 것. 여섯째,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끝장내기 위한 남북화해와 평화통일 노력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 일곱째, 민중들의 불굴의 의지와 본성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현대사의 두번째 과정을 구조적으로 규정했던 기본 요소는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결과였다. 한국전쟁이 남한에 끼친 최악의 결과 중 한 가지는 저자의 주장처럼 '저항세력의 괴멸과 권력에 대한 굴종'이었다. 
"미국과 이승만, 친일파는 한국전쟁을 통해 남한에 존재하는 일체의 항일독립세력과 저항운동의 씨앗을 말려 버리고자 했다. 그 결과 이땅의 항일세력과 민중운동은 괴멸적 타격을 받았다. 그로부터 미국은 휴전과 동시에 남한을 자신의 요구에 맞게 개조시키는 작업을 서둘러 진행시켰다."(p.13)

그리고 한국전쟁은 남한의 정치 및 군대가 외세에 반영구적으로 종속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한국전쟁을 경과하면서 남한에 대한 외세의 지배가 고정화된 가장 중요한 징표는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이라고 할 수 있다. 주한미군은 1949년 6월 일시 철수하였지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다시 이 땅에 밀려들어 오게 되었다.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공식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1953년 10월 한미 양국간에 체결괸 한미상호방위조약이다. 가장 중요한 조항인 제4조에 따라 미국은 우리 민중의 의사는 물론이고 남한 정부의 아무런 협의 없이도 자유자재로 자신의 병력을 이 땅에 주둔, 배치시킬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지니게 되었다."(p.14)

또한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경제는 미국에 의해 철저하게 종속되었다. 그것은 미국과 이승만 일당에 의해 원조경제와 잉여농산물, 부실한 농지개혁을 통해 이루어졌다. 이승만 일당은 미국의 원조와 잉여농산물, 권력기구 등을 통해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무수히 수령하여 악용했다.
1945년부터 1961년까지 미국이 남한 땅에 쏟아부은 원조액은 31억 달러를 넘었지만 사실 이 액수는 한국전쟁 중에 미국이 파괴한 남한 재산의 총액을 간신히 넘어서는 것이었다.[한국경제의관점, 이내영] 물론 이러한 원조조차 대부분이 국방비에 충당되었다."(p.22)

미국은 자신들의 정치군사적, 경제적 이익이 보장되는 한 이승만 일당의 반민족성, 반민주성, 반통일성, 반민중성 어느 하나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되면 그들이 장악하고 있던 군사적, 경제적 물리력을 가차없이 휘둘렀다.

1952년 한국전쟁 와중에 부산 정치파동을 통해서 불법적으로 집권연장을 꾀했던 이승만은 불과 2년 뒤인 1954년 대규모 부정선거를 감행한 후 폭력을 동원해 '사사오입' 개헌을 강요했다. 이윽고 1955년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부정선거를 통해 조봉암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그런 후에 진보당과 조봉암씨에 대한 사법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이승만은 1948년 5.10 단독선거에서부터 1952년, 1954년, 1956년, 1960년까지 모두 부정선거를 저질렀다. 즉, 이승만 정권은 정통성은 커녕 정당성도 없는 존재일 뿐이었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진보역량과 민중역량이 궤멸되어 산발적인 저항과 반발 수준에 머무르던 민중들은 단 7년 만에 다시금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서기 시작했다. 운명의 순간은 1960년 3월 15일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서 벌어졌다. 이승만은 부정선거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총칼로 짓밟으려 했고, 마침내 이승만 정권은 민중들의 질풍노도와 같은 4.19 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그러나 4.19 혁명은 미완성이었다. 살인마이자 범죄자 이승만은 미국의 품으로 도망갔고, 이승만 정권 아래서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친일파 군부, 정치인, 관료, 매판재벌은 아무도 처벌, 청산되지 않았으며(폭력경찰 일부만 처벌), 각종 악법과 제도도 그대로 존속하였던 것이다. 결국 기존 친일파들이 잔존하는 가운데 의원내각제와 장면 내각이 출벌하였다. 장면 내각은 혁명도, 개혁도 어느 하나 이루어내지 못한 채 이승만 정권과 똑같이 부정부패했고 미국은 경제기술원조협정을 통해 한국경제를 직접 좌우하기 시작했다.
4.19 혁명 이후 압제와 탄압이 약해진 틈을 뚫고 민중들과 시민들은 스스로 각성되어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을 벌였고, 친미와 반공을 사슬을 끊고 민족통일의 열망을 끌어올렸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핵과 유엔, 그리고 달러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면서 천하무적을 자랑했던 미국도 195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뚜렷한 쇠퇴의 기미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소련의 경제,군사력이 강력해졌고, 동아시아(중국, 한반도)에서 불붙기 시작한 민족해방운동의 기운은 1950년대를 넘어서면서 순식간에 중동 아랍과 남미, 아프리카 등지로 확산되어 갔다.
19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남한의 이승만 정권처럼 미국의 원조정책이 흔들리면서 붕괴되거나 궁지에 몰리는 친미 독재정권이 속출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고딘 디엠, 터키의 멘데레스 정권 등이 그 예이다. 이와 함께 이라크처럼 반제국주의적인 정권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자 미국은 이들 나라에 깊숙히 개입하여 허약한 정권은 갈아치우고 반미 정권은 허물어뜨리는 방법을 통해 보다 강력한 친미 정권을 세우는 조치를 단행했다. 아울러 해당 나라 민중의 자주적 독립과 사회의 민주적 개혁에 대한 열망은 무참하게 짓밟혀졌다. 이같은 조치는 대부분 반동적인 군부를 매수하여 쿠테타를 종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1961년 박정희 친일파 정치군부의 5.16 군사쿠테타는 이러한 세계사적 배경과 미국의 군사패권전략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 등장 이후, 한일국교정상화와 한국군이 베트남 파병이 미국이 주도 하에 하나의 군사적 목표를 위해 동시에 추진되었다. 한일국교정상화는 일본의 자본과 군대를 남한에 진출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에서의 일본의 반혁명적인 역할의 강화를 보장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서의 의의가 있었다. 베트남 파병은 미국의 중국 포위 및 공격을 위해 저렴한 비용과 자국군의 희생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추진되었다.
박정희 일당은 민족적, 국익적 관심은 전혀 없이 굴욕적, 망국적 한일국교정상화와 베트남 파병을 폭력적으로 강행했고, 그에 따른 군인 월급과 군수물자산업 그리고 일본 원조와 차관에서 개인적인 뇌물과 정치자금 조성에만 골몰했다. 그리고 그렇게 손에 넣은 거액의 자금을 바탕으로 박 정권은 중앙정보부를 비롯한 방대한 억압기구를 통해 반대세력을 감시하고 억압하거나 매수함으로써 자신의 통치기반을 결정적으로 강화시켜 나갔다. 박 정권은 엄청난 자금력을 동원함으로써 1967년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후 3선 개헌을 강행하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은 비상계엄 발동과 주한미군의 사전 허락 하의 군대투입을 남발하면서 이루어졌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경제원조 감소는 원조에 의해 지탱되고 있던 한국의 경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이승만 정권 말기부터 본격화된 이러한 위기는 장면 시대를 거쳐 박 정권에 이르러서도 수습되지 않은 채 도리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모로 보나 1960년대 초까지 한반도의 남북에서 전개되었던 상황은 명백히 남쪽이 열세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처럼 날로 악화되는 위기를 수습하고 실추된 위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미국은 '경제개발'이라는 무기를 치켜 들었다. 물론 미국은 남한에서의 경제개발을 추구하면서 단순히 위기를 수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본격적 수탈이라는 더욱 큰 이익을 목표로 삼고 출발했다.
결국 1960년대 경제개발은 남한의 경제가 원조로부터 탈피하여 자립성을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주장과는 정반대로 제국주의에 의한 본격적인 수탈의 길을 여는 것에 다름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경제개발은 한국군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남한 민중의 어깨 위로 떠넘기고자 하는 미국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었다. 미국의 직접적인 주도 하에 이루어진 이른바 경제개발이 최우선적으로 역점을 둔 것은 차관과 금융지원에 의한 '매판자본'의 육성과 불평등무역과 직접투자에 의한 민중에 대한 수탈이었다.
한일국교정상화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이 때에 밀려들어 온 일본 자본은 미국과는 또 다르게 한국경제의 요소요소를 장악해 들어가면서 궁극적으로 이 나라 민중에 대한 무자비한 수탈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에서 실패를 맛본 미국은 심각한 정치경제적 위기에 직면함과 동시에 도덕적 위신마저 실추되는 결정타를 얻어맞게 되었고, 휘청거리며 내리막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1969년 닉슨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주한미군 일부를 철수하고 군사원조도 중단했다. 물론 이를 대체하기 위한 목적으로 핵무기 추가배치를 서둘렀다.
이에 발맞추어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시작으로 학생, 농민, 도시빈민 등 민중들의 민주주의와 생존권을 위한 저항이 촉발되었다. 그 영향으로 1971년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민주역량이 높아졌다. 광범위한 폭력 부정선거로 인해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베트남 전쟁의 패배로 미국은 중국 전복을 포기하고 소련 봉쇄로 전환했다. 1970년대 초 미국은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시키고 나아가 중국을 반소진영에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한반도에서의 대결상태를 일시적인나마 은폐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그것은 박정희 일당으로 하여금 기만적인 남북대화에 나서도록 사주했다. 이름하여 7.4 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된 것이었다.
남북의 민중이 흥분과 열광으로 공동성명을 맞이한 것은 한편으로 볼 때 매우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공동성명 문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부정하고 미국과의 사전 협의 후 곧바로 유신체제라는 더 광폭한 독재로 치달았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하는 등 박정희 일당의 반공 소동은 미국이 베트남에서 완전 패배하고 철수한 1975년 4월에 한층 노골적인 모습을 취했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은 남한을 전면적으로 핵기지하고 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 수 있는 한국군 지사병력을 대폭적으로 증강시키며 여기에 덧붙여 일본군을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신이 주도하는 한-미-일 삼각동맹체제를 구체화시켜 나갔다. 미국은 한국군을 보다 직접적인 형태로 미군의 휘하에 편입시키기 위한 노력이 일치감치 시도하였다. 1971년 7월 주한 미 제1군단과 한국군 일부를 포함한 한미합동 제1군단이 창설되었다. 지휘권은 당연히 주한미군사령관이었다.[1970년대 한국일지, 청사 편집부] 부분적으로 시도되던 주한미군의 한국군에 대한 직접적인 장악은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가 발족된 이후 전면화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의 전쟁정책에 편승하면서 급속한 성장을 자랑했던 남한 경제는 몇 걸음 못가서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국제수지 적자와 실업자 증대로부터 벗어나고자 1971년 10월 한미섬유협정의 체결을 강요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섬유수출을 제한하였다. 그 결과 남한은 협정 체결 이후 5년간에 걸쳐 약 8억4천만 달러의 수출손실을 감수해야 했다.[민족분단과 통일문제, 김병오]
종전을 향해 치닫던 베트남전쟁 역시 전쟁물자 공급에 크게 의존하던 남한의 수출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우는데 일조했다. 또한 1971년 한 해 동안 200개 이상의 차관기업이 일제히 파산하는 등 차관에 의존한 경제는 밑바탕에서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프레이저 보고서, 미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이와 함께 급격한 유가인상 역시 원유의 전부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던 남한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안겨다주었다.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박 정권은 1972년 8월 이른바 '8.3 조치'라고 불려지는 긴급명령을 기습적으로 발표하였는데, 파산 직전에 놓여진 차관기업들은 가까스로 구출되었지만 이들 기업에 사채를 빌려주었던 소자산가들은 순식간에 재산을 강탈당해야만 했고, 은행대출의 증가에 따른 물가상승의 압박은 고스란히 민중의 어깨 위로 떠넘겨지게 되었다. 
이와 더불어 미국과 박 정권은 외국인투자와 차관도입에 의존한 '중화학공업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하지만 모든 공업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기계, 부품, 소재 등은 제쳐놓고 값싼 숙련노동에 의존하는 최종 조립단계에만 치중한 것이다. 그 결과 부품, 소재 등은 계속해서 일본 등의 수입에 의존해야만 했고 따라서 전체 수입액은 계속적으로 증가했다. 또한 애초부터 경제성과 무관하게 추진되었다. 그리고 설비판매를 노린 외국자본의 박 정권에 대한 뇌물공세, 박 정권의 정치자금 획득을 겨냥한 차관도입 욕망, 그리고 기업을 담보로 금융특혜를 기대하는 국내 매판자본의 요구 등이 뒤엉키면서 중화학공업화는 시장수요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가운데 과잉, 중복투자가 행해졌다.

1970년대 내내 유신독재는 어느모로 보나 이성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1973년 8월 탄압을 피해 일본에서 망명투쟁을 벌이고 있던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 김대중이 중앙정보부 요원에 의해 강제 납치, 귀국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학생, 지식인, 언론인들의 투쟁이 다시 일어났지만 박정희 일당은 민청학련 사건 날조로 맞섰다. 이에 대해 다시 거대한 저항이 시작되었고 박 정권은 동아일보사 탄압, 인혁당 재건사건 관련 피고인 8명 사형, 4대 전시입법을 제정하여 탄압에 나섰다.
1975년 4월 서울대 김상진 열사의 저항을 계기로 민주진영 전체는 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이에 몹시 다급해진 박 정권은 5월 13일 기어코 악명 높은 긴급조치 9호를 발동시켰다. 긴급조치 9호에 대한 가장 처절한 투쟁은 1977년 9월에 있었던 청계 노동자들의 '노동교실 사수' 투쟁이었다. 그러나 청계 노동자들의 죽음을 각오한 투쟁은 그동안 긴급조치 9호에 억눌려 침체되었던 각계 민주세력에게 새로운 활력을 주었다.
1978년에 접어들자 상황은 보다 급박해지기 시작했다. 이 해에도 투쟁의 도화선은 노동자와 농민들이었다. 즉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함평 농민투쟁으로 학생들의 유신철폐투쟁 또한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게 되었다. 학생들과 재야인사, 해직기자, 해직교수들까지 저항에 나섰다.
1979년에 들어서자 재야 민주화운동세력, 농민들의 감자 피해보상 투쟁과 오원춘씨 납치 사건 규탄, YH무역 노동자 신민당사 농성투쟁으로 이어졌고, 박 정권은 급기야 김영삼 의원을 제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에 대학생들의 거센 저항이 이어졌고 시민들이 학생들의 시위에 동참하기 지가했다. 박정희 일당은 부산과 마산에서의 강력한 저항을 비상계엄과 군대 동원으로 막아보려 했지만 민중들은 개의치 않고 연이어 거대한 저항으로 맞섰다.

그러던 중 10월 26일 유신정권의 괴수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10.26 사건의 진상은 아직도 여전히 흑막에 가려져 있다. 다만 몇 가지 단편적인 사실들이 사건의 배후에 미국이 존재했음을 암시해줄 뿐이다.

[ 2013년 10월 1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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