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글로벌 리포트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올해 처음으로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책을 읽었다.
그 전에는 연구소의 부소장인 선대인씨의 <대한민국은 부동산 공화국이다>와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를 읽은 적이 있다.
선대인씨의 책을 읽으면서 김광수경제연구소에 대해 잠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으나 그 뒤로 다른 일과 책에 집중하느라 잠시 뒷전으로 미루었다.
이번에 2011년 경제전망에 대한 다양한 예측과 입장이 궁금하여 미네르바, The Economists와 SERI(삼성경제연구소)의 경제전망서에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경제전망서를 추가하여 비교 검토해보았다.
 
김광수연구소의 경제전망서는 Economists나 SERI와는 크게 달랐다.
 
먼저, Economists나 SERI와 달리 전반적인 성장율이나 제반 경제적, 경제외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고 2011년에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중요한 국가와 분야를 중심으로 내용을 집중했다. 이것은 목차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

1장. 침체된 미국 : 달러의 한계와 재정 건전화의 딜레마
2장. 숨고르는 중국 : 안정을 선택한 슈퍼 차이나의 고민
3장. 재정위기의 유럽 : 유럽의 양극화
4장. 저성장의 러시아 : 시급한 산업 구조의 다변화
5장. 디플레이션의 일본 : 저성장의 늪에 빠진 No.3
6장. 2011년의 한국 : 부동산, 과다 채무, 인구 감소 트리플 충격

 
둘째, Economists와 SERI는 책 곳곳에서 독자들에게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2010년부터 세계경제와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서 안정적인 경제성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려고 애쓴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위기를 모면했다"고 슬쩍 넘어가기 보다 금융위기가 현재도 "진행형"임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구조적인 위기의 핵심을 거론하며 위기가 장기화될 것임을 주장한다.
 
셋째,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현재의 경제/금융위기의 역학관계에서 누가 가장 크게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 각국의 정부와 한국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누구를 희생양으로 삼게 될지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 책을 발간하게 된 동기에 대한 서문의 내용도 흥미롭다.
"전세계의 경제는 이제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우리의 삶과 깊은 관계를 이루고 있다. 중국 경제의 문제가 더 이상 중국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확한 사실과 경제 정보가 더욱 절실해졌다.
잘못된 정보 하나가 우리에게 엄청난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최근 들어 오류가 있거나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정보들이 언론사를 통해, 또는 전문가들을 통해 아무런 여과 없이 서민들에게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잘못을 바로 잡고 독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최신의 정보를 담은 [2011 글로벌 리포트]를 출간하게 되었다."


연구소는 2011년 세계경제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은 정부의 과다차입과 과대채무 등 재정위기라고 예상한다.
- 2010년 미국 국채 발행잔고 14조달러로 GDP의 94% (명목GDP 14.7조달러)
- 일본의 공적 채무는 904조엔으로 GDP 대비 188.7%
- 한국의 국공채 발행잔고 852조원으로 GDP의 85%, 정부/공기업의 금융기관 차입금 포함 1,000조원(10%)
  * 이중 이명박정권이 들어선 이후 550조원이 증가
    공적 채무 증가의 대부분은 부동산 버블 붕괴를 막기 위한 것.
 
세계경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2008년 금융위기, 2009년 실물 경제위기, 2010년 환율전쟁, 2011년 재정위기 등이 실제로는 거의 해결이 안 된 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융규제 강화 개혁안들이 논의만 무성한 채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각국의 실업, 교역 불균형, 재정위기도 해결되지 않은채 미루어지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김광수연구소측은 "작금의 경제위기가 쉽사리 해결되기 어려우며 장기화되리라고 예상"한다.
 
김광수연구소측은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큰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 누군가는 아마도 "각국의 힘없는 일반 국민들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지금까지 각 경제전망서에서 살펴본 한국경제의 성장율 예측치는 다음과 같다.
올해 말에 누구의 분석과 예상이 적중했는지 평가하는 것도 작은 재미가 될 듯하다.
- Economists : 3.9%
- 현대경제연구원 : 4.3% 
- 삼성경제연구소 : 3.8%
- 김광수경제연구소 : 3% 내외
- 기획재정부 : 5% 내외
 
연구소측은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현실 속에서 현재와 미래의 경제에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을 과다 채무와 부동산, 인구 감소로 꼽고 있다.
- 과대 채무 : 연구소측의 내부 분석 결과, 한국 경제 전체로 총채무는 6,000조원에 달하며 특히 정부와 공기업 채무가 2008년부터 폭증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경제가 2009년부터 공적부문의 부채 증가에 의존하여 성장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특히 2009년부터 민간부문의 부동산 거품 붕괴가 시작됨에 따라 공적 부문이 채무증가를 통해 거품 붕괴를 막고 있다고 분석한다.

 

- 국민소득(NI)에서 노동 임소득과 기업의 영업소득을 비교하면 한국의 왜곡되고 부당한 경제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
2009년 기준 노동소득 분배율의 경우 미국 63.4%, 일본 70%, 한국 53%이며,
영업소득 분배율의 경우 미국 19.1%, 일본 24%, 한국 33.8%이다.
즉, 노동자의 소득율은 미국,일본보다 15% 이상 낮고 기업의 소득율은 10% 이상 높다.
 
- 인구 감소 : 2019년을 기준으로 감소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부터는 사망자수가 출생아수를 초과하기 시작.
2014년부터 경제활동 가능세대(20~59세)의 인구수가 감소하기 시작.
0~9세 인구가 1990년에 680만명에서 2010년 470만명으로 감소, 2020년에는 390만명으로 예상.
*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발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경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뿐이다."


- 부동산 : 2010년 외형적인 수치는 미분양 주택수가 감소하는 것으로 보이나 실상은 건설사들이 분양을 취소하고 정부가 5만호 가량의 미분양 주택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준공 후 미분양주택은 2008년에 급증한 후에도 계속 증가하여 2010년 8월 현재 5만호인데, 2007년 말 분양가 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수도권 중심의 밀어내기 분양 물량의 입주가 본격화되는 2010년 하반기부터 더욱 빠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
* 2010년 하반기부터 전세가가 갑자기 상승한 것은 수급 문제가 아니라 투기자들의 일시적인 은행 이자 부담 전가 행위와 언론 등을 이용한 사기적 선동에 의한 것이다.

 
[ 김광수경제연구소의 결론 ]
- 지난 10년간 한국의 경제 성장은 정부와 공기업 등의 공적 채무 폭증에 의존한 것으로 민간 자력에 의한 성장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 빚이 폭증하면 자연적으로 물가 상승과 금리 상승이 불가피해진다.
- 생산 경제발전을 떠받치는 건전한 자산경제를 구축하기 보다는 오히려 생산경제를 망가뜨리고 투기적 자산 경제 위주로 도망가게 되면 그 경제는 조만간 큰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 책 속의 문장
- 미국의 경제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가계 부분의 소비를 봐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 전체 GDP의 70%가 가계 부분의 소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소비 부분의 대부분이 차입, 즉 빚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건 문제가 심각하다.
- 중국의 경우는 내수를 촉진시키기 위해서 대규모 부양책을 쓰고 있다.
덕분에 내수는 살아났지만 집값과 물가가 상승하면서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 2011년 2월 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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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인가? 정부인가?
김승욱 외 지음 / 부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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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세종 공부모임]의 두 번째 세미나 교재로 선택된 것이다. 경제학의 두 가지 흐름 '보수'와 '진보' 각각의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해 각각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처방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양자를 비교하면서 저자들은 우리 경제의 모습에 대해 일반인을 위한 총체적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두 가지 흐름 중에서 과연 누가 옳은 것인가? 이 책에서 저자들은 '직접적으로는 답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시장주의자의 '보수적' 시각과 정부 기능을 중시하는 정부 개입주의자의 '진보적' 시각이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해 각각 어떻게 진단하고, 어떻게 처방하는지를 보여 줄 뿐이라고...
 
1부 [이론적 논의]에서는 시장을 왜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하는지, 정부를 왜 '보이는 손'이라고 하는지, 그리고 양자의 패러다임의 역사적 변천과정은 어떠했는지에 대해 다룬다. 지난 역사적 과정은 시장의 손과 정부의 손 중에서 어느 손을 중시할 것인지에 대한 관점에서 돌아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두 가지 견해 차이의 뿌리에는 세계관의 차이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이념과 정당이 갈리고 각각은 안정과 변화, 자유, 집단과 계층, 인간성, 경쟁, 경제학의 강조점에서 대립적인 시각과 정책을 가져온다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시장의 손은 경제 논리를 내세우고 정부의 손은 정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며 상충하는 두 논리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것이 1부의 결론이라 할 수 있다.
 
2부. [부문별 비교]에서는 각 부문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어떻게 대립되는지 살펴본다.
- 소득분배와 빈부격차의 원인에 대해서는 개인의 잘못인지 제도의 모순인지를,
- 복지에 대해서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 경제 안정에 대해서는 시장의 자기 치유 능력이 믿을 만한지를,
-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지를,
- 구조 조정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하는지를,
- 금융 시장에 대해서는 이자율에 맡겨야 만하는지를,
- 노사 관계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지를,
- 공기업 민영화를 해야 하는지를,
- 환경 오염에 대해서는 규제만이 해결책인지를,
- 농업에 대해서는 포기할 것인지, 보호할 것인지를,
- 주택 문제에 대해서는 투자로 볼 것인지, 투기로 볼 것인지를 논의한다.
 
시장 논리와 정부 개입에 대한 이론적인 논의를 하는 것은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지만, 책 속에서 이미 전세계적으로 경제학자들과 정책담당자들, 그리고 시민들에게 자명하게 결론이 나버린 문제들에 대해서 논의를 이끌어내려는 것이 조금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경제 성장이나 구조조정, 노사관계나 복지문제 등에서는 미국을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봉했던 국가들마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선지 오래된 상황이다. '시장의 자기 치유 능력'이 없음에 대해서는 이미 1930년대 세계적인 대공황에서 입증된 바이고 2007년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금융 시장마저 정부가 깊숙하게 개입해야 함이 드러난 바 있다. 그 밖의 부문에 대해서도 자본주의 시장체제는 정부의 개입 없이 어느 하나라도 기업가들과 시장에만 맡겨놓았다가는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에 이르렀다.
 
특히, 한국의 경우 나는 '시장경제체제'라는 것이 도대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경제계와 기업은 정부의 개입과 육성 없이, 폭력적인 농촌 해체와 노동자들의 임금 동결과 착취, 대기업에 대한 불공정한 정책 집행, 세금과 재정의 일방적인 기업 편향, 법과 제도의 반민중적 적용이 없었더라면 현재의 한국 기업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자유주의와 자력에 의한 기업이 존재하는 서구가 아닌 한국에서 '시장의 손'과 '정부의 손'을 운운하는 것 자체가 허구적일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저자들이 '시장의 손'이 조금이라도 한국에 적용되도록 하려면, 이명박정부의 4대강 죽이기 사업과 무분별한 토건 국책사업, 동남권 신공항 건설, 친재벌적인 저금리-고환율-고물가 정책에 대해 벌떼같이 나서서 반대해야 하는데 전혀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어떤 정책 담당자도 정치인도, 재벌이나 기업가도, 경제학자도 한국에 '시장 중심주의'에 대한 주창자가 있거나 한국이 한번이라도 '시장 중심주의'적으로 경제가 운영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시장 중심주의'가 한국에서 거론되는 것은 한미FTA나 한EU FTA가 한국에 강제되면서 외국으로부터 거론되는 이야기일 뿐이고 독재자나 재벌,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나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할 때 외칠 뿐이지 않은가?
 
이 책은 한국 경제학계와 경제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시장 중심주의'와 '정부 개입주의'의 갈등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비교 검토하겠다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한국 경제의 현실과 구조를 왜곡하고 결과적으로 '시장 중심주의'를 옹호하고 말았다. 당초 책을 발간한 취지를 달성하지 못한 것이고 그것은 저자들이 실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고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애초 의도가 달랐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들의 학문 배경을 들여다보면 저자들의 한계와 실력 부재라는 측면을 발견하는데 단초가 엿보이기도 하다. 저자들 중 다수가 '시장 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산실은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미국 유학파'들로 보인다. 시장 중심주의와 신자유주의가 물결치는 토양에서 배운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정부 개입주의와 비교하여 장단점을 분석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다소 아이러니할 뿐이다.
 
그리고 책 머리말 중의 '2. 목적'을 보면 저자들의 생각이 편협되어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기초가 되는 기본 개념에 대해서조차 아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 같다. 예를 들면 자본주의 경제의 제1원리는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마저도 속물적이라고 생각하고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중략)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기초는 기업이고, 기업의 경쟁력은 경제 성장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런데 기업의 존립 목적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의 경우 매우 전자본주의적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p.13)
 
이 문단을 읽어보면 저자들의 식견이 얼마나 구태의연하게 편협되어 있고 기업에 편중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과도해서 문제임을 저자들은 모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시장의 원리와 신용, 공정거래, 기회균등 등 자본주의의 토대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너무 많은 문제점과 모순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저자들이 모르는 것인지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초는 국가, 기업, 가계임은 모든 학자들이 인정함에도 저자들은 '생산의 기초는 기업이고 기업의 경쟁력이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이론을 바꾸어 자신들의 생각을 내보인다. 생산의 기초가 기업이면, 소비의 기초인 국가와 가계, 그리고 개인은 어디로 갔는가? 저자들의 이론을 십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저자들은 기업의 경쟁력 뿐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과 가계의 경쟁력은 왜 중요시하지 않는가? 왜 공정하게 다루지 않는가 말이다. 문단을 보면 결국 저자들이 목적이 자본주의 전체와 국가, 가정, 개인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기업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백일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들은 기업들의, 그것도 재벌들의 하수인임을 자백하고 말았다.
 
이런 학자들이 각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정부와 기업에게 자문을 하고 학계를 구성하고 있으니 한국의 경제학계에 공정하고 공평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논의와 학문이 불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다행하게도 공부모임 참석자들이 논의를 진행하면서 책을 발간한 본심과 저의를 알아챘다.
  
[ 2011년 4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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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여정 - 녹색성자 사티시 쿠마르의
사티쉬 쿠마르 지음, 서계인 옮김 / 해토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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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작년 7월 법정스님의 저서 < 내가 사랑하는 책들 >에 소개된 책 50권 중 <소로우의 무소유 월든>, <농부철학자 피에르 라비>, <오래된 미래>, <무탄트 메시지>, <성장을 멈춰라>, <꾸뻬씨의 행복여행>, <나무를 심은 사람>에 이어 여덟 번째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도에서 왜 그렇게 많은 출중한 위인들이 계속해서 배출되는지 일부 이해가 된다.
물질적 정신적 허기에 힘들어하는 삶, 21세기에 들어서도 존재하는 비인간적인 카스트 제도, 깊은 시골과 밑바닥 인생들에게 뿌리박혀 있는 여러 종교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배출되는 간디, 크리슈나무르티, 비노나 베베, ...
 
저자 역시 지금은 세계적으로 녹색성자로,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생태적 영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가 걸어온 삶은 우리 일반인들에게는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고난의 연속이기도 했다.
인도의 농가에서 태어나(그가 태어났을 때, 마을의 한 점성가는 그의 인생은 끝없는 여행이 될 것이며,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아홉 살 때 친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이나교의 일원이 되었다.
그는 모든 친지들과 접촉을 끊고, 세속적인 관심을 멀리한 채 9년간 자이나교 승려로서 인도를 걸어서 횡단했다. 

비폭력적 방법으로 사회적 영성을 추구하는 간디의 가르침을 듣고 열 여덟 살 나이에 자이나교 승려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교단을 나와 간디주의자가 된다.(그는 자이나교에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세상과의 단절이 그의 영성을 더욱 깊게 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질식시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비노바가 주도하는 토지헌납운동에 참여하여 ‘걷기’를 통한 명상과 사회개혁의 위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는 친구와 함께 ‘반핵 평화’의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릴 목적으로 무려 2년의 기간동안 인도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워싱턴까지 걷는 평화 순례에 나선다.
그 후 영국에 정착한 그는 생태적 사고와 전통문화, 그리고 자연의 지혜를 탐색하는 격월간 잡지 [리서전스]를 편집하고 발행하면서, 명상하고 산책하는 삶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간디식 평화와 공존의 이념을 전파해왔다.
또한 어린이를 위한 ‘작은학교’와 성인을 위한 ‘슈마허 대학’을 설립하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안학교로 만들어 놓았다. 
  
이 책에는 저자가 비폭력과 생태적 영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된 수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비노바 바베를 비롯하여 인도 현지에서 만난 여러 구루들, 크리슈나무르티, 버트런드 러셀, 마르틴 루터 킹, E. F. 슈마허, 반다나 시바 등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세기의 지성들이다.
그는 이 걸출한 지성들과의 만남을 자양분 삼아 자신만의 독특한 생태철학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는 삶의 과정에서 숱하게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했고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9살 어린 나이에 대지의 품과 같은 어머니와 가족들과 헤어져야 했으며,
도망치다시피 자이나교에서 벗어났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평화순례를 마친 후에는 첫 번째 아내와 두 아이들와 이별했다.
영국에서도 함께 생태운동을 진행하던 동지들과 다투고 결별하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삶을 끝없이 현실에, 대지에, 평화에 던지고 살았다.
그는 생각과 사물과 사람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서 참다운 본래의 자아를 찾아 굳굳하게 걸어간 것이다.
 
굴하지 않는 의지와 자아를 찾고자 하는 열정...
사티시 쿠마르에게 배울 점이다. 
 
* 책 속의 문장
- 우리의 여행은 최종 목적지가 없는 여행이었습니다.
여행과 목적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생각과 행동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이 흐르는 강물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강과 강물의 흐름이 하나이듯이 나 자신과 나의 모든 움직임 또한 하나임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곧 여행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은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었습니다.
 즉 초탈의 세계를 향한 여행이었습니다. 동(動)과 정(靜)의 대립은 끝나고 나는 정적인 가운데 움직여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방랑자, 영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인생의 방랑자였던 것입니다.

-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하나가 됨을 느꼈습니다.
내 몸이 우주의 일부분이며, 땅 위를 걸으며 대지와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방랑이야말로 내 삶의 본질이며, 나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사실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나는 마치 거울 앞에 서 있는 듯 모든 사람과 자연 속에서 나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내 어머니는 방랑을 하는 꿈을 꾸면서 나를 가졌고, 나의 방랑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승려로서, 비노바와 함께 그리고 지금의 평화 순례까지, 나는 방랑을 통해 모든 지혜를 얻어왔습니다. (/ 평화의 순례)
 
[ 2011년 2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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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류시화 지음 / 푸른숲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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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류시화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자 그가 세상에 처음으로 내놓았던 시집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읽어본 후 류시인의 시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이 시집은 그가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을 중단한 후 8년 만에 외부에 드러낸 자신의 생각이며, 지난 13년 동안 썼던 시들이 망라된 것이라 한다. 그는 그 사이 전세계 주요 명상서적을 번역하면서 명상가로 거듭나고자 했다.
 
1989년 처음 이 시집이 문단에 발표되고 출간되었을 때, 독자들에게는 적지않은 호응을 받은 반면 문단에서는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민중적이고 저항적 작품을 지향했던 당대의 문단과는 달리 신비주의적 세계관의 작품세계로 인해 문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외계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국사회에서 419 혁명 후 다시 뜨거운 자유와 평등의 물결이 몰아쳤을 때, 그는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내부로 향했던 것이다.
 
[벌레의 별]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의 눈에 방안의 전등불만 비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벌레를 풀섶으로 데려다 주었다.
별들이 일제히 벌레의 몸 안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생각으로는 지식과 관념, 도그마와 이데올로기에 오염된 사람들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감성이 퇴화되는 것이었다. 그에게는 인간들도 죽은 사람들이며 노예들이었다. 그는 80년대의 또 다른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불가능하고 커뮤니케이션이 왜곡되고 차단된 상실의 시대...
 
시인 이문재는 그의 작품과 당시 문단이 바라보는 시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시들은 거의 변하지 않고 초기의 시세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얼핏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그가 세상과 격절된 상태로 20대 중후반을 지내왔기 때문이라는 근거를 댈 수도 있지만, 저 들끓던 80년대에서 자기를 지키며 변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큰 변화 못지 않은 견딤으로 본다... 일상언어들의 직조를 통해, 어렵지 않은 보통의 구문으로 신비한 세계를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점이 그의 시의 주요한 미덕이다.
낯익음 속에 감춰져 있는 낯설음의 세계를 발견해내는 것이 시의 가장 큰 역할은 아닐까."
 
문단의 혹평 속에서도 이 시집은 1989년~1998년 동안 21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는 [시로 여는 세상] 2002년 여름호에서 대학생 5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인에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과 함께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무려 20여년전에 발간된 시집이다. 시인은 그 사이에 여러 시집을 또 발표했다. 이 시집 이후 시인은 또 많이 변화되고 성숙되었을 것이다. 내 눈으로, 내 손으로 음미해보고 느껴볼 일이다.
 
이 시집의 대표작이기도 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 속에는 물 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와 미생물체가 함께 들어있다. 하늘에도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구름도 있고 달과 별도 있고 바람도 있고 새도 있다. 하늘만 있는 하늘은 우리에게 삭막함으로 다가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내부에는 나 뿐 만 아니라 내가 관계한 수 많은 인연과 사건과 관념과 생각이, 꿈과 추억이 함께 들어 있다. 그 인연이 무엇이냐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고 체화시키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을 어둡게 하기도 하고 화나게 하기도 하고 기쁘게 하기도 하고 슬프게 하기도 한다. 

사람의 안에서 사람을 흔드는 것은 무엇이며,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것은 누구일까? 그것은 사람에 따라 신이 될 수도 있고 또는 스승, 신념, 애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안에서 나를 흔들고 내 꿈과 만나는 이는 누구일까...
 
[ 2011년 2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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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속삭임 -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 자연과 인간 12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김욱동 엮음 / 사이언스북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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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 사회의 이단아 헨리 데이비드 소로...
최근 몇 권의 그의 저서와 글을 읽고 나서 나는 그가 간디나 크리슈나무르티, 공자나 버트런드 러셀 정도로 위인으로 칭송받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가 살았던 짧은 삶과 그의 사상과 행동은 여전히 우리에게 적지않은 감동과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저자 역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소로를 접한 다음 그의 사상을 좀 더 쉽게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심한 사람 중의 하나다.
저자는 결국 소로의 작품 가운데서 주옥같은 글을 뽑아 그것에 대하여 짧은 해설을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했다.
저자의 소개와 설명이 소로를 생태주의자와 저항인 정도로 '격하'시키는 감도 없지 않지만, 소로를 한국에 소개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어느모로 보나 긍정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많은 소로의 작품 중에서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해설을 더하는 저자의 방식도 소로를 이해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 잡초에 대한 소로의 글은 인간이 다른 피조물을 무시한 채 얼마나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말해 준다.
북아메리카 인디언 추장 '구르는 천둥'의 말처럼 "문명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식물을 잡초라고 부르는데, 이 세상에 잡초라는 것은 없다. 모든 풀은 존중받아야 할 이유를 지니고 있고 쓸모없는 풀이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똑 같은 말을 윤구병선생도 하셨고 법정스님도 하셨다.
어디 잡초에 대한 생각 뿐이랴...
서구에서 시작된 인간 중심주의, 인간 이기주의는 인간 이외의 대상 뿐 아니라 이제는 인간들 사이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되어버렸다.
 
- 나무와 낙엽에 대한 소로의 예찬은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도록 만든다.
낙엽은 소로에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무에 매달려 있을 때는 그 화려한 빛깔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 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하여 열매가 맺도록 하고 그 열매로 사람과 동물들이 먹고 살도록 해준다.
또 땅에 떨어져서는 그 위에 자라는 온갖 식물에 자양분을 공급한다.
낙엽과 비교하면 인간은 어떠한가?
살아 있을 때도 온갖 방법으로 자연과 동식물을 괴롭히고 파괴하더니 죽어서도 '우아'하게 육신의 옷을 벗지 못한다.
장례가 사회적 신분이나 재산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전락한 사회...
 
- 육체적 노예와 정신적 노예...
소로는 육체적 노예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정신의 노예라고 주장한다.
21세기 현대사회에서도 '경제적 노예'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정신의 노예일 것이다.
아니, 경제적 노예가 '정신의 노예'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돈이든, 권력이든 많이 가진 사람은 더 가지기 위해서, 어느정도 가진 사람은 '많이 가진 사람'의 대열에 끼기 위해서, 부족한 사람은 부족한 사람대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을 가질 것인가, '무엇'이 인생의 목표가 되고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가라고 소로도 이야기하고 법정스님도 이야기한다.
 
그 이외에도 이 책 속에는 자유에 대해, 부정한 정부에 대한 시민의 저항에 대해, 육식에 대해, 철학과 철학교수에 대해, 교육에 대해, 종교에 대해 많은 글을 써냈다.
 
소로는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이미 미래를 내다보고 '올바른 삶과 정신'을 앞서 주장하고 실천한 사람이니 당연 '위인'으로 인정받아 마땅할 것이다.
 
물론, 마지막 결론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로 귀착되지만...^^
 
[ 2011년 2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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