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비가 오고 바람이 살짝 불고 있어요. 조용합니다.
오늘은 부처님오신날이어서 공휴일이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이 될 때까지 중간에 하루 휴일이 있으면 달력을 보면서 한참 전부터 그 주가 되기를 기다렸던 것이 생각납니다. 달력의 빨간색 날짜의 휴일이라는 건 그런 느낌입니다.
공휴일인 화요일 편안한 하루 보내셨나요.
늘 바쁘게 보내는 분에게는 휴일과 같은 잠깐의 쉬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지속하려면 재충전을 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에도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입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열심히 하는 정도가 다르고, 객관화할 수 없는 면이 있으니, 실제로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 잠은 얼마나 자야하는지와 같은 것들이 쉬어야한다는 말보다 실은 조금 더 궁금하기는 합니다.
<그림은 마음에 남아>는 그림과 함께 읽는 에세이입니다. 미술과 미학을 공부한 저자의 책이라서 이 책에 소개되는 그림은 저자의 설명과 함께 찾아옵니다.
이 책의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의 이야기에 함께 찾아오는 그림, 그리고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는 다시 그림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고, 또 하나는 그림을 설명하고 있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 소개되는 그림은 유명한 작가의 잘 알려진 그림도 있고, 작가의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그림은 낯선 작품일 때도 있고, 그리고 처음 보는 작가의 처음 만나는 그림도 있습니다. 그림은 실제의 크기보다 작은 크기가 되어 본문의 지면에 실려있습니다.
그림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이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에 대한 작가와 그 시기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그림을 설명하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는 그림과는 조금 다른 그림을 오래 공부해왔던 시간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그림의 이야기로 잠시 이동합니다. 그러면 그림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다시 처음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 사이 그림은 한장 또는 여러 장 전시된 공간을 지나듯 지나오고 작가의 이야기도 마무리됩니다. 그림도 과거의 한 순간을 담은 것처럼 우리의 기억과 지나간 일들도 그 시기의 우리 자신을 담는다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늘 <그림은 마음에 남아>에서 손글씨로 쓴 부분은 <당신은 쉬어야 한다>라는 글의 일부분입니다. 이 책의 저자도 한때 자기계발서를 무척 많이 읽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저도 자기계발서를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책속의 내용은 조금 더 노력해서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기도 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많은 것들이 달라져야 하고, 많은 것들을 노력해야 하며, 그리고 성공사례를 통해서 누군가는 이런 방법으로 잘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책의 내용을 읽고 실제로 해보았을 때, 좋았을 때도 있었고, 잘 되지 않거나 생각했던 것보다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책을 통해서 인생이 달라지는 순간을 만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계발서도 유행하는 것이 달라지는 패션처럼 트렌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도 괜찮다, 더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다, 하는 내용을 담은 책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시간을 잘 활용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달라진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책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책이 더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시기에 읽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좋은 일, 그리고 때로는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손글씨로 쓴 부분은 아래 밑줄긋기로 다시 추가했습니다.
오늘 이 책의 본문을 읽다가 "알라딘" 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와서 이 페이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책을 쓴 분도 알라딘 서재의 이용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쓰다보니 12시를 넘어가서 23일이 되었어요.
그래도 한밤중이라서 기분은 22일입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한때 자기계발서를 미친 듯이 읽었다. 오륙 년을 하던 디자인 일을 접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였다. 처음 하는 일이라 손대는 일마다 실수를 연발했다. 수업 중 돌발 상황에는 쩔쩔매는 게 다였다. 여기저기서 욕도 배불리 먹었다. 경력이 쌓이면 능숙해지고, 노련해지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책상에서, 몇 년간 주경야독하느라 찌든 피로는 하루이틀에 사라지지 않았다. 몸 상태는 당연히 엉망이었다. (p.48)
당시는 자기계발서의 전성기였다.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상위를 차지하는 것은 대개 자기계발서였다. 론다 번의 <시크릿>이 일등이엇찌만 나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지 않았다. 생활을 체계화하여 시간을 장악하고 대가를 지불하라는 자기계발서를 더 신뢰했다. 책에 꼼꼼하게 밑줄을 쳐가며 읽고 또 읽어가면서 버텼다. 어떤 책에서는 마음에 확신이 꽉 차면 몸이 저절로 따라간다고 했다. 의지가 강하면 네 시간만 자고서도 무엇이든 할수 있다고 했다. 지금 보면 현실감없는 자기계발서인데도 꽉 막힌 고지식쟁이인 나는 전혀 의심할 줄을 몰랐다. ‘책 종교 신자‘는 책이 하는 말이라면 모두 믿고 책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지 한다. 하루에 딱 네 시간, 간신히 잠을 줄여가며 몸을 혹사했다. 뭐라도 해서 이 시기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p.48~49)
자기계발서에서 시키는 대로 꿈꾸며 기대하고 감사하면서 최고조의 긴장 상태로 살아갔다. 눈앞에 있는 현실 말고 상상의 현실을 보는 연습을 했고 꼬박꼬박 감사일기를 적었다. 시간을 미래에 투자한다고 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수업을 준비했다. 그때 가장 많이 읽었던 책은 ‘감사‘에 관한 것이었다. 오늘 알라딘에 들어가 ‘감사‘를 키워드로 검색하고 판매량 순으로 정렬하니 <평생 감사> <매일 감사> <날마다 감사> <감사의 놀라운 힘> <감사 노트> <감사 일기> 등의 책이 잔뜩 뜬다. 친절한 알라딘은 "‘감사‘ 총 2,848개의 상품이 검색되었습니다"라며 덧붙인다. (p.49)
그 시절 나는 언제나 감사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미워했다. 삶이 달라지지 않는 건 진심으로 감사하지 못해서라며 질책했다. 내게 충고하는 사람들마저도 ‘감사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즈음 피지컬과 멘털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시간을 맞추려고 지하철 계단을 억지로 뛰어오르다 혈압이 떨어져 몇 번 실신했다. 그러다 한 번은 응급실까지 실려갔다. 손등에 주사구멍을 뚫고 링거를 맞으며 이를 악물었다. 소리 없이 고함을 질렀다. ‘감사고 나발이고 무슨.‘ 냉랭한 마음은 감사하기를 집어치웠다. (p.49)
성난 상태로 얼마간 시간을 보냈다. 일본 드라마를 보거나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몇 시간이고 멍하니 시내를 걷기도 했다. 죄책감없이 군것질거리도 사먹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나태하게 지냈다. 그렇게 2,3개월쯤 지났을까, 충분히 쉬고 나자 감사하는 마음이 싹텄다. 고마운 사람과 감사할 일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일 노트에 적을 감사를 찾을 때는 초긴장 상태였는데, 이번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감사를 포기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감사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 감사가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지 ‘감사도 노동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내가 어려울 때 억지로 해야 하는 감사가 어렵고 힘든 것은 당연했다. (p.50)
(중략)
"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 라고 말하는 사람을 나는 힘겨워한다. 그는 알지 못한다. 자신이 크게 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과 노력과 상황이 같은 타이밍에 같은 방향으로 흐르는 행운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강하고 약함을 구분 짓는 이는 ‘현재‘ 강한 사람들이다. 삶의 무차별 공격에 정통으로 맞으면 그 누구라도 속수무책, 무너지는 게 당연하다. 어떤 사람은 결코 알지 못한다. 바닥에 나뒹군 채로 간신히 숨만 쉬는 게 오늘 하루의 최선인 사람도 있다는 것을. (p.54)
삶은 언제나 인간 위에 있다. 거대한 삶이 몸을 부풀려 내려오면 작은 인간은 쉽게 감당치 못한다. 무게를 지탱하는 노동이 버거워서 비명도 못 지르는 순간이 온다. 이때 감사하려는 억지는 감정 노동일 뿐이다. 감사하라는 강요는 폭력일 수도 있다. (p.54~55)
당신이 감사할 수 없을 때는 삶의 노동에 지친 때다. 당신은 오늘 감사의 노동까지 안 해도 된다. 이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쉬자. 고된 순간을 서서히 흘려보내면서. 눈을 감자, 시간에 매이지 않도록.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회복하면, 이 힘겨움을 뛰어넘고 나면 당신을 자연스럽게 감사하고 자연스럽게 기뻐할 테니. 오늘도 열과 성을 다한 당신은 먼저 쉬어야 한다. (p.55) - 그림은 마음에 남아, 김수정, 아트북스, 2018, p.4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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