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책을 읽을 때 어느 날에는 표지 앞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부터 시작해서 끝 부분까지 다 읽고 마지막에 뒷표지 까지 읽을 때도 있지만, 어느 때에는 본문 페이지부터 읽을 때가 있고, 때로는 앞 부분의 목차는 읽었지만, 서문이나 후기를 읽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또 어느 책은 서문이나 후기가 없는 책도 있어요.


 그런데 가끔은 서문이나 후기는 본문에서는 쓰지 않은 남은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본문의 이야기에 대한 작가의 후기라서 책에 대한 작가의 설명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쓴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그리고 그 시간를 되돌아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후기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51개의 영화 이야기를 쓴 에세이 <고마워 영화>에서 에필로그 부분을 손글씨로 썼습니다.

 손글씨는 천천히 정자로 한 자씩 써야 글씨체도 좋아질텐데, 아직도 쓱쓱 빨리 쓰는 것 같습니다. 잘 쓰지 못하는데, 천천히 쓰는 게 잘 되지 않아요.^^;


  편안한 저녁 시간 보내세요. 








  

 

 


에필로그

51가지 영화읽기를 골라 엮으며 취향과 편향이 어느 쪽인지 드러났다. 중복된 감독이 있고 배우가 있고, 기울어진 주제가 있다. 열망이 드러난 셈이다. 첫 수필집에 몇 편의 영화에세이를 실었지만 아쉬웠고 영화이야기를 더 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사전 정보를 보지 않는 편이다. 선입견 없이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고 어떤 종류의 것이든 뜻밖의 만남이 전하는 순간의 떨림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서다. 거칠고 대담하게 읽은 것도 있고 기억이 겹쳐와 글썽이며 읽은 것도 있고 세밀화를 그리듯 촘촘하게 읽은 것도 있다. 영화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다가도 오히려 서늘한 죽비 한 대를 맞은 듯 냉철해질 때가 적지 않다. 모두가 나의 결이다.
영화는 그 장점과 한계가 명확하지만, 어느 예술보다 우리 삶에 가까이 있고 상대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미덕을 지닌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함께 작업한 감독도 있지만 원작소설이 있는 경우는 문자언어를 영상언어로 이미지화하는 작업이 얼마나 특별하고 위대한지 두 가지를 비교해보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논하는 건 무의미해졌다. 재미와 의미를 건져 올리기에 영화만큼 풍부한 텍스트도 없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영화는 꿈과 현실의 치열한 반영이다. 좋은 신발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듯 좋은 영화는 우리를 좋은 이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사람풍경을 비롯해 다른 영역에서 느낀 것들이 하나로 직조되어 어떤 이미지로 선명해질 때면 희열을 느낀다. 무한한 공간 어딘가에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영화는 날마다 태어나고 행복은 그러므로 보장된 셈이다.

2017년 가을
또다른 계절의 나들목에서
배혜경

- 고마워 영화, 배혜경, 세종출판사, 2017 p.316~317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tella.K 2018-02-23 14: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에치나인님 페이퍼 보고 왔는데
글씨도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제각각이라는 게
신기해요.
두분 다 예쁜 글씨입니다. 부럽삼.ㅠ

그나저나 프레이야님 보시면 좋아하시겠는데요?^^

서니데이 2018-02-23 21:19   좋아요 1 | URL
hnine님은 글씨 예쁘게 잘 쓰시는데, 보면 읽기도 좋은 것 같아요.
사람마다 손글씨가 다르기도 하지만, 조금씩 계속해서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해요.
몇 년 전의 글씨와 많이 다르더라구요.
그렇게 예쁘지 않지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stella.K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프레이야 2018-02-24 14: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손글씨 좋아요 !! 서니데이 님 기쁘네요^^

서니데이 2018-02-24 18:42   좋아요 0 | URL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잘 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프레이야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에서 오늘 날짜인 2월 19일에 쓰여진 글을 손글씨로 썼습니다. 

 

 첫번째는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문학동네, 2016년11월

 두번째는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 공경희 옮김 포레 2014년 1월

에 대한 독서일기입니다. 이 책은 왼쪽에는 장으뜸 저자의, 그리고 오른쪽에는 강윤정 저자의 책에 대한 글이 실려 있습니다.


 








2017년 2월 19일 일요일
나의 친애하는 적
허지웅- 문학동네 - 2016년 11월

에세이는 작가와 글 사이에 여백이 없어서 불편할 때가 많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에세이를 통해 어떤 사람과 특별한 교감을 느끼는 때도 있다. 허지웅씨는 너무 약하거나 너무 강해 보였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 고온과 냉탕을 오가면서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단단하게 제련될 거라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언젠가는 오지 않고, 우리는 언제나 너무 약하거나 너무 뜨거운 채로 살 것이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장으뜸 강윤정, 난다, 2017, p.114

2017년 2월 19일 일요일
봄에 나는 없었다
애거사 크리스티, 공경희 옮김, 포레, 2014년 11월

어떤 책을 읽은 뒤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책의 구절이 떠오르거나 장면이 그려질 때야말로 그 책이 완전히 자기 것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불현듯 떠오른 <봄에 나는 없었다>의 한 장면. 안락한 삶을 살아가던 한 여인이 낯선 여행지에서 직므가지의 삶이 자기기만으로 점철된 신기루에 불과했음을 깨닫고 무너져내리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추리소설계의 대모인 애거서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발표했고 50년 가까이 그 사실을 비밀에 부친 소설 "몇 날 며칠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자신에 대해 뭘 알게 될까." "당신은 외톨이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하지만 부디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길 바라." 사막에 홀로 서서 절규하던 그녀의 모습을 나는 오늘 왜 갑자기 떠올렸나. 앞으로 내가 겪을 날들의 복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급작스레 떠오른 장면들이 한참 동안 나를 뒤흔들고 간다. 실감으로 온몸이 떨린다.

-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 장으뜸 강윤정, 난다, 2017, p.115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읽는나무 2018-02-19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 손글씨가 예뻐요!!
서니데이님^^

서니데이 2018-02-19 23:52   좋아요 0 | URL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요즘 손글씨 떄문에 걱정이 조금 많습니다.^^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오늘이 연휴 마지막 날이네요.^^


 올해는 2018년 무술년(戊戌年) 입니다. 노란 개의 해라고 합니다.

 김소연연 시인의 책 <한 글자 사전>에서 "개" 부분을 적었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나오는 것처럼, 각 항목을 사전처럼 "감"에서 "힝"까지 가나다 순서로 배열된 글이 실려있습니다. 어느 글은 조금 짧고, 어느 글은 조금 깁니다.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고, 행운 가득한 노란 개의 해 되세요.^^









개가 되고 싶어

"개 구경 참 실컷 했네."
여행 끝자락에 공원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다말고 나는 혼잣말을 했다. 두 달간의 여행동안, 지도를 들고 헤매며 찾아가 입장료를 지불하고 목격한 경이로운 문화유산도 많았고, 만났던 다정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나를 가장 기분 좋게 한 것은 길에서 마주친 개들을 실컷 구경한 일이엇다. 주인과 함께 여행을 떠나온 개, 주인과 함께 저녁 산책을 하는 개, 주인과 함께 장을 보러 가는 개, 주인과 함께 길가에 나 앉아 주인 곁에서 낮잠을 자는 개. 몸집이 사자처럼 커다란 개도 있었고 장난감처럼 자그마한 개도 있었고 나를 향해 컹컹 짖어대던 개도 있었고 나에게 달려와 샌들 속 발가락을 핥아주던 개도 있었다.

내가 사는 골목에선 그렇게까지 자주 별의별 개를 만날 수 없었지만 이번 여행지에서는 그야말로 개를 실컷 만났고, 개를 쳐다보며 반가워한 덕분에 주로 개 주인들과 인사말이라도 건네며 안면을 트기도 했다. 개는 주인과 번번이 닮아 있었다. 퍼그를 데리고 있는 주인은 퍼그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늠름한 골든리트리버를 데리고 다니는 주인은 늠름한 자세를 가졌다. 개는 그들에게 말 그대로 반려자였다.

여행지에서 개를 볼 때마다 잠깐씩 생각했다. 개가 되고 싶다고. 어떤 기척을 느끼거나 주인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귀를 쫑긋거리는 그 귀를 가졌으면 해서. 사람의 귀도 그와 같아서 별생각없이 그저 좋아서 뛸 때마다 한껏 귀가 팔랑거렸으면 좋겠다고. 귀를 얌전히 덮고 가만히 웅크려 있음으로써 ‘저는 지금 아주 온순한 상태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반가우면 딸랑딸랑대는 꼬리와 꼬리의 시작점에 달린 깔끔한 똥구멍을 자랑하는 엉덩이를 가지고 싶다고.

- 김소연, <한 글자 사전>, 2018, 마음산책, 페이지 20~21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8-02-18 1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다가 중간에 틀린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줄을 긋고 썼습니다.
중간에 틀리면 새로 쓰는 편인데, 오늘은 그냥 그렇게 썼어요.^^;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