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뜻 밖의 이야기를 내게 한다. 서울이 아닌 타지에 살고 있는 상황이 너무 싫다고.
언제든 그 생각을 깊게 파고들면 눈물이 터져버릴것 같다고. 평소에 하지 않던 이야기라 놀랐다. 우리는 아무데서나 꺼내 놓을 수 없는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에게 늘 힘이 되어주곤 했는데 그럼에도 할 수 없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그래. 나도 그런것들이 있지. 글로 쓰고 싶은데 써지지 않는 것들.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할지 손조차 댈수없는 것들. 괜한 오해를 살까봐. 괜한 이미지를 만들까봐. 담아두고 덮어두고 모른척하는 것들.
"마리안느, 그 일에 대해 글을 써보도록 해요. 그러지 않았다간 어느 날엔가 당신은 갑자기 존재하지 않게 될테니까."p.59
아이둘을 키우는 친구는 오랜만에 직장에 다니는 친구와 통화를 하고 기분이 이상해졌다고 했다. 직장다니는 친구가 '너는 좋겠다. 남편이 돈 벌어다 줘서. 일하지 않아도 되서. 집에서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잖아. 걱정없겠다.'라고 말한것. 직장다니는 사람들이 바빠서 여유가 없다고 토로할때마다 늘 부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일하고 돈벌고 싶으니까. 하지만 사정상 그럴수가 없다. 이런 사실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주제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것도 아니면서.
친구는 아이둘을 키우는데도 그런 소릴 듣는데 나는 아이가 없으니 더한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어 그냥 듣고 넘기곤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전혀 한가하지 않거든. 내가 제일 좋아하는건 책읽기인데 남들이 생각하듯 내가 한가하고 여유로운 사람이면 종일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하는데 돌봄에 집안일에 이것저것에 치이다 보면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적이다. 어쩔땐 책을 연속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을 타이머로 확인해본적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달랐지만 바람만큼 충분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일일이 토로해봤자 상대는 그런 사정들을 궁금해하지도 그러니 날 이해하지도 못한다. 차라리 일을 한다면 대가를 받고 거기에 따르는 성취감도 얻을 수 있을텐데, 일하고 있다는 명분,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명분 그런것들 바깥 경계에 내 삶이 있다.
밝은 날 여인은 책상에 앉아 타이프라이터를 앞에 놓고 안경을 썼다. 그녀는 번역할 책을 매일매일의 분량으로 나누어 연필로 그날그날의 날짜를 적어 넣었다. 책 말미에 적힌 날짜는 봄이 한창인 어느 날이었다. 여인은 타이핑을 하다가 가끔 멈추고 옆에 놓인 사전을 펴보기도 하고 활자를 바늘로 소제하기도, 자판을 수건으로 닦기도 하면서 번역을 해나갔다. p.65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내가 꺼낼 수 없는 것들을 우두커니 끄집어 내어본다. 나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정도 속도로 울 수 있으면 어디 극단에 들어가 연기도 할 수 있을것같다. 파트타임 배우는 없나.
어떤 주장들, 어떤 생각들은 사람들 가슴속에 우두커니 잠자코 있다. 누구는 용기를 내어 그걸 표현하고 누구는 영영 용기를 내지 못하고 그것들이 바스라져 흔적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둔다. 용기를 내어 표현하더라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잠자코 들어주는 사람도 있고 응원해주는 따뜻한 마음씨도 있지만 자기와 다른 생각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걸고 넘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으니까. 그럴때마다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도 그렇게 말할 용기를 잃어간다. 그런면에선 나도 가해자가 되보기도하고 피해자가 되어보기도했다. 그래도 피해자가 되어본 덕에? 어쩌다 욱해서 당한만큼 갚아주려고 가해하고 나면 마음이 좋지 않다. 오래 남는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건가? 생각날때마다 양심이, 신념이 찔린다. 그럴땐 내가 그나마 반성하는 인간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여성들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부터가 무능력의 요건하나를 가진 것이나 다름없다. 어디서도 '너가 여성이라는 사실자체로도 이미 무능력이야'라고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대놓고 까는건 그나마 덜 상처가 된다. 너무 뚜렷해서 뭐라도 해볼수도 있고(늘 그런건 아니지만)뭐라도 해볼 수 없으면 누구에게라도 속상했다고 털어놓을수 있다. 하지만 은근한 것들, 은근한 무시, 은근한 비난 이런 것들은 더 고통스럽고 더욱 신경쓰이는 법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껴왔다. 여성을 향한 억압과 배제도 그런 형태를 띈다. 어떤 곳에서는 그나마 보란듯이 차별하는 일이 분명 줄어들었다. 남성들은 더욱 그렇게 느끼고 -역차별을 운운할 정도로-여성들은 조금 덜 그렇게 느낀다. 다만 남성들처럼 군대라는 공감대도 없고 사회적으로 타고난 성 자체로 지지받으며 성장하지도 못한다. 사회에서 성공한 엘리트들도 거의가 남성들이고 위인전 리스트만 봐도 여성 중에 본받을만한 위인은 역사적으로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것같은 그런 소외의 분위기는 여성들에게,남성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미친다.
그대 자신을 드러냈구나, 왼손잡이 여인이여!
혹은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려 했는가?
나 어느 낯선 대륙에서 그대를 만나고 싶어
수많은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
혼자 있는 그대를 만날 수 있으리
그대도 수천의 타인들 가운데서 나를 보고
우리들 끝내는 서로를 향해 다가가리라. p.108
하지만 언급되지 않는다고 없는건 아니다. 눈에 띄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건 아니다. 용기내어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지만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주목받는 것들 사이에서 함께 역사를 만들어가는 존재들이 있다. 이들이 없다면 결코 저들도 없을 것이다. 아직도 검열은 있다.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다수가 아닌 또는 다수임에도 약하고 예외적인 것들을 배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럼에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내야한다. 용기를 내서 쓰고 또 목소리를 내어 나를 살려내야 한다.
여인은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연필과 종이를 가져다가 자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의자 위에 올려놓은 두 발을 먼저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 뒤쪽 공간과 창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밤이 흘러감에 따라서 변해가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그렸다. 그렇게 모든 대상들을 하나하나 그렸다. 힘차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떨리고 어설픈 획이었으나 이다금씩 단 한 번의 획으로 해서 힘찬 비상이 생겨났다. 몇 시간 동안이나 그린 다음 종이를 옆으로 비껴 들고 그걸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p.136
작가로 하여금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게 하는 한,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소설가의 의도에 다가가게 하는 한, 어떤 방법도 옳고 모든 방법이 옳다. 이런 방법은 우리가 기꺼이 삶 그 자체라 부를 태세가 되어 있는 것에 다가가게 해준다는 장점을 지닌다. (중략)작가는 자신의 관심이 더 이상'이것'이 아니라 '저것'이라고, 오직 '저것'으로만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p.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