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소년 물구나무 세상보기
박완서 지음, 김명석 그림 / 어린이작가정신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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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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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배경 설명을 읽고 나서야 이해가 갔다. '무슨 그림책에 이리 어려운 단어가 자주 등장하지?'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노인과 소년>는 애초에 박완서 작가가 1970년대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쓴 48편의 짧은 소설을 모아 펴낸 소설집 <나의 아름다운  이웃>에 수록된 한 편이었다. 어째, '낙조의 시간,' '오랜 노독'이나 '표표히 들어서고 있었다' 등의 표현은 꼬마들에게는 어려운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사전 정보 전혀 없이 읽었을 때, 나는 <노인과 소년>이 박완서 작가가 최근 한국 사회를 들끓게 하는 '블랙리스트' 정치에 대해 예술인으로서 항거하고자 작정하고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작품에서 묘사하는 '사람 살 만하지 않은, 정의가 위협받는 모습'은 2010년대 한국 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1970년대의 이야기가, 2010년대에 현재 시제로 읽어도 생생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그만큼 작가적 선경지명이 탁월하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가 그토록 암울하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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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곳을 찾아 헤매던 한 노인과 한 아이가 새로운 고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원래 살던 땅에 몹쓸 전염병이 돌아, 이 두 사람만 남겨 놓고 사람의 흔적을 지웠다 했다. 노인은 마침내 정착할 곳을 찾았다는 기쁨에 앞장 서 걸어가는데, 아이는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소년에게 그 곳은 '살만한 곳'이 아닌, 고약한 냄새 풍기고 독이 흐르는 '몹쓸 곳'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세월이 가져다준 지혜가 있을지언정 노인의 무뎌진 코로는 감지하지 못했던 냄새와 맛을 아이의 순수한 본능은 알아챘다. 책, 즉 '참말'을 태워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더러운 냄새를 아이는 맡았다. 오염된 땅에서 오염된 물로 자란 농작물에서 사람들을 서서히 조금씩 죽여가는 독 맛을 아이는 느꼈다. 그래도 노인은 아이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이 모든 불행은 자연의 설계가 아니라, 인간들 탓이라며. 그래도 생각을 거침없이 뱉어낼 인간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면 잘못을 바로잡을 희망이 있다며 아이를 다독여 새로운 고장으로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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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기대마저 꺾을 수 밖에 없게 한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감자를 감자'라 말하고, '양파를 양파'라 말한 이들을 거짓말 했다고 가두고 벌하는 거꾸로 가는 사회에서 소년과 할아버지는 살 수 없었다. 아무리 자연이 파괴되어가고,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책으로 대변되는 지혜를 멀리한다할지라도 인간이 하는 일, 인간이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던 할아버지가, '양파를 감자, 감자를 양파'라고 말해야 진실이라고 우기는 사회에서는 절망만 보았다. 그래도 소년과 노인은 계속 걷는다. 살 수 있는 곳, 머물 곳을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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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의 <노인과 소년>은 1970년대 작품이지만, 2017년 한국 사회의 거울이자 미래의 묵시록 같은 작품이다. 작가의 혜안에 새삼 놀라게 한 작품이다. 아울러, 김명석 일러스트레이터의 독특한 그림도 놓치기 아까운 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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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방문했던 공공기관 건물에서 대형 구조물, 아니 미술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있다가 사진 한 장으로 남겨 두었다. 버리면 폐기물신세일 밤나무 조각조각을 다듬어서 이렇게나 매끈하고도 부드러운 '하나'로 다시 탄생시켰다 (작가님, 죄송 작가님의 이름을 기억못합니다). <노인과 소년>을 읽고 나니, 이 구조물 생각이 다시 났다. 어느 하나의 조각이 '내가 주춧돌일세!'하면서 특별 대접받길 원한다거나, 작은 조각들이 무시당해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형상이다. 부드러운 모양새, 빈틈이 많아 흐름이 가능한 구조, 작은 조각이라도 하나가 빠지면 왠지 불완전해질 것 같은 이 형상은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광장에서 부르짖는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는, 공정한 사회.'를 표상하고 있지 않은가? 국정'농단'을 '농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자가 코너로 몰린다면, <노인과 소년>에서 감자를 감자라고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엄벌을 받는 그 모습과 무엇이 다른가? 예술인으로서의 박완서 작가가 어쩌면, '블랙리스트' 정치에 이렇게 그림책으로 조용히 항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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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걸작 동화 베이직북스의 그림동화 걸작시리즈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정경옥 옮김 / 베이직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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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걸작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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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 적도 없이, 읽은 듯 착각해온' 대표적인 작품이 셰익스피어의 희비극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목이며 주인공 이름이 친숙하기에, 얼추 줄거리를 소개하라면 할 수는 있겠는데 막상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을 <멕베스>, <한여름 밤의 꿈>, <템페스트>. '원작에 도전하자니 셰익스피어 시대의 영어 해석이 부담스럽고,  한글 완역본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겠는걸?' 이런 고민 중이라면, 고민을 해결해줄 앙증맞은 책이 나왔습니다. <셰익스피어 걸작동화>입니다. '동화'라는 타이틀에 걸맞에 일러스트레이션이 멋집니다. 수록된 6편,《열두 번째의 밤》《로미오와 줄리엣》《폭풍우》《한여름 밤의 꿈》《맥베스》《햄릿》의 일러스트레이션 화풍이 다채롭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일러스트레이터가 여럿입니다. 크리스타 언츠너, 제나 코스타, 세레나 리그리티가 그들입니다. <셰익스피어 걸작동화>는 문장을 읽는 재미만큼이나, 내용을 잘 담아낸 그림을 감상하는 재미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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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걸작동화(원제:Illustrated Stories from Shakespeare ) >는 그 유명한 어스본 출판사의 "Usborne Illustrated Classics" 시리즈 중 한 권인만큼 퀄리티와 완성도를 보장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독자의 눈높이와 흥미를 고려하여 최대한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본문에 본격 들어가기 전에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을 소개한다거나, 작품의 배경이 되는 정보를 간략히 수록해서 독자의 흥미도를 높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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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걸작동화>는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비극 대화체를 서술형 문장에 녹여 줄거리로 소개하면서도, 극의 느낌을 살려 쳅터(chapter)별 구성을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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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은사님 중,  한쪽 눈의 시력을 실명하실만큼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어오셨다는 분이 생각납니다. 어린이 독자는 우선 <셰익스피어 걸작동화>로 셰익스피어의 문학세계에 입문하고 나면, 한층 더 깊이 있게 이 대문호에게 다가가고 싶어질 것입니다. 캐릭터의 감정선이 어떻게 미묘하게 변화하는지, 갈등의 양상이 어떻게 더 구체적으로 전개되는지, 도저히 1인의 머릿속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만큼 방대한 어휘를 구사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원문은 어떠한지 알고 싶어질 것입니다. 즉 어린이가 어려서 처음 접한 <셰익스피어 걸작동화>는 훗날 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으로 크게 키워나갈 중요한 씨앗이 되어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 걸작동화>를 초등생 맞춤형 셰익스피어 입문책으로 강력히 권합니다. 베이직북스에서 "Usborne Illustrated Classics"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어서 한국 독자에게 소개해주기를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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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벳이 콧구멍에 완두콩을 넣었어요 동화는 내 친구 3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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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벳이 콧구멍에 넣었어요 완두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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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 (1907-2002)이 남긴 100여 편의 작품 중, 단 몇 권이라도 읽어본 독자라면 잘 알 터입니다. 린드그랜이 그려낸 어린이들은 하나같이 티 없이 맑고 천진하여, 활자를 통해서 만났을지라도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뽀뽀해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아이들이라는 것을요. 귀여움과 천진난만함으로는 작은 리사벳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요 귀여운 꼬마에게 엉뚱한 버릇이 있었는데, 다름 아니라 눈에 보이는 건 뭐든지 어딘가에 넣어보는 버릇이었어요. 하루는 리사벳이 부엌 바닥에서 완두콩 한 알을 주었지요. 어디에 넣었을까요? <리사벳이 콧구멍에 완두콩을 넣었어요>라는 제목을 보면 짐작하시겠죠? 네, 이 귀여운 장난꾸러기는 자기 콧구멍에 완두콩을 쏙 밀어 넣었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들어갈 때는 쉬웠는데 이 완두콩이 리사벳 콧구멍에 자리를 잡았나 봅니다. 친언니 마디켄은 "콩이 콧구멍에 뿌리를 내렸나 봐. 만약에 콧속에서 콩이 계속 자란다면, 곧 꽃이 필 거야."라는 말로 리사벳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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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벳의 손가락도, 마리켄 언니의 손가락도, 머리핀도 다 소용 없었어요. 리사벳의 콧구멍에서 정말 스위프티 꽃이 피기라도 하면 어쩌려나요? 엄마는 리사벳과 마리켄을 의사 선생님께 보냅니다. <리사벳이 콧구멍에 완두콩을 넣었어요>는 사이 좋은 두 자매가 완두콩 문제를 해결하러 의사 선생님께 다녀오는 동안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일상의 에피소드라지만, 소위 '머리 끄덩이 잡고 싸우기'도 하고, 욕배틀도 하고, 코피 소동까지 담고 있습니다. 리사벳은 시종일관 너무도 귀여워서 독자의 사랑을 듬뿍 독차지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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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작품을 읽다 보면, '동심, 동심' 우리가 그토록 희구하면서도 이젠 잘 보이지도 않는 그 동심의 세계가 얼마나 기발하고 찬란한지를 한껏 느낄 수 있어요. 어른 독자라면, 아이들의 세계가 더욱 궁금해지고 소중하게 느껴질 것이며 어린이 독자라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갈 거에요. 디지털 기기 따위 하나 없이, 완두콩 한 알로도 이처럼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사랑스러운 자매의 하루는 먼 땅의 독자에게도 작은 감동을 줍니다. 찬란한 동심에의 부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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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반복의 힘 - 끝까지 계속하게 만드는
로버트 마우어 지음, 장원철 옮김 / 스몰빅라이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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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주 작은 반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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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지. 부. 진. 자. 기. 혐. 오. 의. 지. 상. 실.
*
혐. 오. 의. 지.  부. 진. 자. 기.
*
기. 혐. 오. 의.
 
결국 동의어가 아닐까. 결심했으나, 가시적인 성과 없고, 자꾸 스스로의 결심을 허무는 모습에 자기 혐오를 느껴 다시 결심하지 못하는 악순환.
그 악순환을 과감히 끊고, 인생 대변혁 이루고 싶은 이들 많을텐데, 문제는 HOW?
<아주 작은 반복의 힘>에서 답하길, "스몰 스텝small step"부터 성취하라. 인간의 뇌는 갑작스러운 변화에 저항한다. 그러니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계획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 ,부담이 없는 변화로 시작하고 계획을 작게 세워 습관이 되도록 매일 성취하라. 그러면 결국 큰 변혁으로 이어지고, 성공한다.  UCLA의대 교수인 로버트 마우어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성공이유'가 궁금해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꼭 성공을 목적으로 삼지 않더라고, 자존심, 자긍심을 높이는데 스몰 스텝 접근이 유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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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반복의 힘>을 읽다가, 뜨끔하도록 무서운 예화를 하나 만났다. 술에 취한 남자가 가로등 아래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고 있었다. 경관이 '어디에' 떨었뜨렸냐고 묻자, '저쪽'이라고 답하면서도 '가로등 아래'가 밝아서 여기서 찾노라고 대답한 고주망태의 모습은 나와 다르지 않다. '하루 1권 읽고 쓰기'의 자잘한 계획이 결국은 열쇠 찾는 일에 직접 착수하기가 두려워 내건 자기 기만의 미션임을 고백한다. 목적전치가 되어서는 안된다. 안락한 가로등 아래 안주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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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령보다 작은 질문의 반복이 변화를 이루는데 유익하다고 한다. 매일 '당신이 주차한 옆 자리에 자동차 색깔은?'이라고 반복해 묻는다면, 결국 옆 자리 자동차 색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작은 질문은 매일 던지면 어떻게 될까?
 
'짜투리 시간들을 어떻게 가치 있게 보낼까?'
'하루 한 페이지씩 쓰기를 어떻게 착수하면 될까?'
가치 있는, 작은 질문을 만들어 본다. 질문 던지기를 습관화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한다. 고민후 실천을 습관화 한다. 결국 나는 내가 원하는 그 방향으로 변화해 나간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전망좋은 도서관을 검색하다 새로 알게 된 '전망대 북까페,' 하늘 바로 아래 있는 그 북까페의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읽은 책이 바로 <아주 작은 반복의 힘>인지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실천은 더욱 오래 지속적으로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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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내다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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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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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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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집중해야 하는 책을 잠시 멀리해도 된다는 변명거리를 주기 위해 집어든 소설, < 한평생>. 제목 외에는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 평생 산과 가까이 자연인으로 노동의 숭고함을 실천하며 살았던 주인공처럼 참 내향적이고 과묵한 책이다. 드라마틱한 전개도, 사건도, 흔한 로맨스조차 살짝 다루고 지나가는데도 '참 잘 읽었다' 싶다. 다 읽고 나서, 옮긴이의 후기를 보니 작가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은 2016년 맨 부커 인터내셔널 상의 최종 후보작에 올랐던 검증받은 작품이다. 한국인에게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로 기억될 2016 맨 부커 상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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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섞어 비벼낸 작품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해왓다고 옮긴이가 소개하는데, < 한평생>에서 역시 산악 지역 휴양지 개발 과정이 허구와 잘 어우러져 묘사된다. 작가가 오스트리아 빈 태생인데, 소설의 주요 공간적 배경인 산악 지역 역시 오스트리아 서부 티롤 산악 지역이라고 한다.

*

 

시작은 죽음이다. 죽어가는 노인, 노인의 죽음에 대한 묘사, 죽음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 "죽음은 차가운 여인"이라는 염소지기 노인의 말에, 젊은 주인공은 "하지만 제 등에서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부모 없는 에거는 어려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해 다리골절을 입고 절름발이가 되었으나, 평생을 묵묵히 숭고한 노동으로 연명한다. 비록 다리길이도 짝짝이도 다리뼈도 이상하게 휘었지만 산 하나만큼은 기막히게 잘 타서, 스키 휴양지로 개발하려는 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일 역시 기막하게 잘한다. 젊어서는 그 일로 먹고 살았다. 늙어서는 도시 사람들에게 '산림체험(?), 산 안내'를 해주고 받는 돈으로 먹고 살았다. 하지만 욕심부리지 않아서 소박하게 먹고, 단순하게 살았다. 종교 수행자도 아니건만 에거의 삶은 금욕 그 자체였다. 아내 마리를, 산사태로 갑작스레 떠나보내고 난 이후 어떤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저 고독하게 마리를 그리워했다.

*

마지막 역시 죽음이다. 이번에는 츨생 증명서상 일흔아홉의 노인이 된 에거의 죽음. <한평생>에는 다양한 양상의 죽음과 죽음에 대한 태도가 등장하는데, 에거의 죽음은 천천히 그리는 인물화 같이 천천히 온다. 시인이 아름다운 풍경을 관조하듯 관조하며 천천히 온다. 겸허히 수용한다. 작가는 이렇게 그의 마지막을 묘사한다.

 

에거는 심장 쪽에서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고, 자신의 상반신이 서서히 앞으로 쓰러지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한쪽 뺨이 탁자 표면에 닿았다. 에거는 그런 자세로 쓰러진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 뛰는 소리가 멈추자, 고요함에 귀를 기울였다. 참을성 있게 심장이 다시 뛰기를 기다렸다.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자, 그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죽었다. (149쪽)

이렇게 이야기가 끝이었다면 <한평생>은 에거의 고독한 한평생을 몰래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에거의 죽음을 묘사한 후, 다시 6개월 전으로 거슬러 간다. 노인 에거의 정신이 혼미해져서 가끔 치매 기운을 보이는 와중, 에거는 9월에 눈송이를 맞았다. 자신을 부르러 온 죽음의 여인으로 착각했던 에거는 "아직은 아냐."라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겸허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며 나이드는 와중에도, 생이 찬란해 미칠것 같은 순간 한 번 없이 거진 80년을 살아오면서, 그 느리고 외로운 생을 더 연장하고 싶어함이 한 마디에 내포되어 있다. 노인이 된 에거는 우연히 빙하에서 발견된 노인 시신과 마주하는데, 그 노인은 바로 소설의 첫 페이지에 등장한 염소지기이다. 염소지기는 산에서 죽었고, 산악 지방의 차가움 때문에 40여년 동안 냉동 미이라가 되었던 것이다. 젊은 날의 에거 등에서 죽어가던 노인의 미이라를, 이제 그 노인만큼 늙어버린 에거가 마주본다. "에거가 몰두한 생각은 하나 더 있었다. 얼어붙은 염소지기가 마치 시간의 창을 통하기라도 하듯 에거를 응시하고 있다는 상상이었다. 하늘을 향한 그의 얼굴 표정에는 무언가 젊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에거가 오두막에서 죽을병에 걸린 염소지기를 발견해 나무지게에 지고 골짜기로 내려갔던 당시, 하네스는 마흔 살이나 쉰 살쯤 되었던 것 같다. 이제 에거는 일흔 살을 훌쩍 넘겼고, 자신이 젊다는 느낌은 절대 들지 않았다. 산에서의̋ 삶과 노동으로 인해 그에게는 진한 흔적이 남게 됐다. (13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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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이 부분이 클라이막스로 느껴졌다. 40년전 눈 앞에서 홀연히 사라져버린, 죽어가는 노인의 미라를 이제 그보다 더 늙은 남자가 되어 다시 만나는 부분. 압축된 40년은 소설 속 '한 문장'이요, 한 순간이다. 허망하기까지 하다. 그 세월, 반평생의 세월이. 다만 노인의 미라에게서 느껴지는 '젊다는 느낌' 앞에서, 이제는 폭삭 늙어버린 주인공이 여전히 떳떳할 수 있음은, 그가 순간순간 진실로 최선을 다했기에.

비록 자식도, 그 흔해 빠진 집한채의 재산도, 뭐 하나 남기지 못했기에 세속적 명예 창구는 텅텅 비었겠지만 에거의 삶은 숭고했다. 노동했고, 진실했다. 그래서 세속적 창구가 비었어도 떳떳하고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얻은 교훈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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