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1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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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1

중세에서 근대의 별을 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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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로 보면 말 사료 상인에 한 표"라는 표현이라든지, 사전에도 안나오는 유행어 "엽색"이 등장하는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서양사학자 주경철 교수(서울대)의 문장이 경쾌하다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애당초 몇 년 동안 천천히 퇴고하며 만든 정통 역사책이 아니라 네이버팟캐스트에 연재했던 글 모음집에 가깝다. "온라인의 글을 짧고 강렬하고 섹시해야 통한다 (325)"는 조언에 따라 주경철 교수가 "나름 최선을 다해 '선정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만큼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는 스포츠신문 기사만큼이나 흥미롭다. 동시에 읽는 중간중간,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아하! 유럽사가 이렇게 재미있었어? 좀 제대로 공부해볼걸. 이제라도 알아야겠다."는 자성을 독자에게 안겨주는 '공부자극' 역사책이다. 주경철 교수가 대학에서 만나는 학생들이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서의 세계사에 무지할뿐더러, 그 "사고가 '해저 2만리 수준'으로 떨어(324)"진 수준에 있음을 절감한다고 한다. 알아야 보인다고, 세계사 특히 유럽사를 젊은세대에게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세계사'가 '문과'계 '필수'과목이던 시절에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교과서를 샅샅이 읽었어도 기억에 남는 건 '장미전쟁,' '헨리8세' 정도의 단어 나열 수준이었다.  하지만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 단어들 사이에 멋진 '짜잔'하고 시냅스가 연결되는 느낌이랄까. 암튼 정말 재밌었다. 총 3권 시리즈로 기획된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의 첫번째 권 부제는 "중세에서 근대를 본 사람들"이다. 책 표지에 멋들어진 활자체로 이름 새겨진 8인의 인물 - 잔 다르크, 부르고뉴 공작들, 카를 5세, 헨리 8세, 콜럼버스, 코르테스와 말린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틴 루터 -를 중심으로 근대를 향한 유럽의 물결을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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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소개하는 인물은 잔 다르크로(Jeanne d’Arc)서 "역사상 가장 신비한 인물 중 하나 (17)"라는 표현과 "성녀인가 마녀인가"라는 부제에 인물의 의미가 압축되는 듯 하다. 1431년 19세의 나이로 화형을 당하기 전, 무려 2년 반이나 긴 재판을 받았기에 그녀에 대한 자료가 방대한 재판기록으로서 남아 있다고 한다. 온라인 유랑자들을 배려한 '선정적' 글쓰기를 염두한 주경철 교수는 잔 다르크의 남장(男裝)에 대한 설로서 "비정상 DNA"까지 거론해준다. 또한 잔 다르크의 측근이었던 젊은 귀족 '질 드 레 Gilles de Rais'가 소년 200명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이라는 소금간도 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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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성녀로 추앙받고, 국왕에게서 황금 백합이 그려진 문장(紋章)을 하사받았던 소녀가 어떻게 종국은 이단취급받고 화형되었을까? 주경철 교수는 잔 다르크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페미니스트,' '애국자,' '신비주의자' 등 그 모두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역사 무대에 느닷없이 등장하여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51)"고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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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부르고뉴 공작들" 편에서는 필리프 2세, 장 1세, 샤를 1세, 필리프 3세가 언급되는데 흥미롭게도 주경철 교수는 이들의 겹치는 이름을 변별해줄 별칭을 써준다. 앞에서부터 각가 대담공, 용맹공, 담대공, 선량공과 매칭하면 된다. 중세판 무협지를 연상시키는 '베고 베이는 정치판 싸움'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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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카를 5세"를 다룬 장에서도, 나처럼 가쉽성 기사 좋아하는 얕은 독자는 카를 5세가 근친가족력으로 인한 주걱턱('일명 '합스부르크 턱') 에, 통풍으로 말년까지 고생하였다더라 식의 내용에 귀를 가장 많이 팔랑거린다. 비록 21세기 현대인의 눈에 카를의 외모는 비호감이나, 그는 왕관만 17개를 가진 권력자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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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헨리 8세의 이야기는 말그대로 "푸른 수염의 거인"을 연상시키는 엽기왕의 전형같이 느껴졌다. 친형 아서(1486~1502)가 불과 결혼 5개월만에 사망하면서 6세 연상의 형수뿐 아니라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대왕권을 확립하고 "기껏해야 양이나 쳐서 양모를 대륙에 팔던 가난한 국가" (169)였던 "잉글랜드를 그 찬란한 발전의 도상에 오르게 한 인물(169)"이었지만, 헨리 8세는 재임기간 동안 무려 985명을 공식 사형에 처했다고 한다. 설상가상, 총 6명의 아내들이 '이혼 divorce, 참수 beheaded, 사망 died, 이혼 divorce, 참수 beheaded, 생존 survived'했으니 가히 '푸른수염'으로 불릴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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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의 인물은 서양사에서 가장 많이 이름 오르내리는 인물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콜롬버스'를 집중해서 다룬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얼굴 초상은 사실 상상화이며, 콜롬버스는 독학으로 지리와 천문학을 배운자로서 사실 말년에는 신비주의 점성술가와 같은 기록들을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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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에서는 신대륙을 상징하는 '코르테스'와 구대륙을 상징하는 '말린체'를 중심으로 멕시코가 탄생하기까지 그 이전 조우의 역사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었나를 묘사한다. 특히, 코르테스의 통역사이자 정부였던 '말린체'가 한 동안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 취급을 받가가 '멕시코 혁명 (1910~1917)으로 민족주의 정신이 고취되면서 혁명정부가 멕시코 건국의 어머니라는 이데올로기적 아이콘으로 활용하였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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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살핀 7장에서는 인류사를 통털어 최고의 천재라 할 레오나르도를 향한 주경철 교수의 애정(?)이 느껴지기도한다. 레오나르도를 두고, "파우스트의 이탈리아 형제"라고도 한다지만, 사실 그는 "인간의 경험이 가장 천재적으로 꽃핀 시대, 르네상스가 낳은 '경험의 아들(283)'"이라고 평한다. 7장을 읽다보면,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별칭으로는 다 담아낼수 없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재성과 시공간을 넘나들고 싶어하는 초월적 인간의 욕구가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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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마틴 루터편. 교과서에서 '면죄부'로 배웠던 그것의 옳은 번역은 '면벌부'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배웠다. 벼락이 신의 계시라 생각하고 수사가 되기를 맹세한 루터가 변호사로서의 보장된 출세길을 버리고 수사되기로 마음 먹었다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600여년도 더 전 유럽 사람이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인가. 출세길을 포기한 아들이 못마땅해 악담을 퍼붓고 속상해했다는 루터의 아버지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루터는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서 종교 개혁의 물꼬를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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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2권에서는 '근대의 빛과 그림자’, 3권에서는 '세계의 변화를 조주한 사람들’을 다룬다고 한다. 두 권 모두 2017년에 출간완료된다니 목 빠지게 기다려야겠다.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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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 - 그녀의 미국 3대 트레일 종주 다이어리
크리스티네 튀르머 지음, 이지혜 옮김 / 살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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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 미국 3대 트레일 종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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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까막눈인지라 원제 의 뜻을 모르겠으나 한국어판 제목, <生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자꾸 곱씹게 된다. "생이 보일 때까지" 걷겠다면, 저자 크리스티네 튀르미 (Christine Thurmer)는 아직도 그 "生"이란 걸 찾고 있는 걸까? 1967년생, 한국 나이로 51세인 이 분은 여전히 고국인 독일에 집도 두지 않고 전 세계를 누비며 걷고, 사이클 타고, 걷고 있으니까. 여전히 생을 찾고 있나보다. 그녀의 개인 블로그( http://christine-on-big-trip.blogspot.kr/ )의 자기 소개란에서 " I still have not had enough."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아직 덜 충분하다는 뜻일까?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를 너무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고 나서도, 난 아직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왜 걷는지 잘 모르겠더라. 본인이 카페인 중독이 아니라 식수조차 귀한 산 속에서 다행이라던 그녀는 그냥 "걷기 중독"일까? 왜 걷는지 잘 모르겠더라. 열심히 책을 읽었는데도 도통 모르겠어서, 그게 참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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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어 생각하면 크리스티네 튀르미야 말로 걷기 자체가 목적인 도통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사로운 '무엇'을 위하여가 아니라, 그저 낯선 곳을 걷는 자체가 즐거운 사람. 일반 하이커들과 차원이 다른 사람. 그녀는 트리플 크라운 (멕시코와 캐너다 국경 사이의 PCT 4277km,  CDT (4900km), 미국 동부의 AT (3508km)를 완주한 자에게 미국 장거리 하이킹 협회가 수여함)을 받는 다거나, 걸어서 다이어트를 하거나 지병을 고치고 건강해지겠다거나, 정신적 성숙을 도모하겠다거나, 자연과 일체가 되어 자유를 느끼겠다거나 하는 구체의 목적을 잘 언급하지 않는다. 속된 말로, 맘이 내키면 행동으로 옮겨 바로 걷는다. "오로지 걷는 것이 목적"이 진정한 걷기의 달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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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cm가 넘고, 족히 80kg은 넘어 보이는 거구에 평소 운동 한 번 제대로 안 해본 30대 여성이 어느 날 갑자기 필 받아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고 총 4277km에 이르는 PCT 길을 종주한다. 다시 독일로 돌아와 잡 인터뷰를 하는데 사장단에게 질문을 받는다. "PCT, 그게 뭡니까? 자아를 찾는 여행?"이라는 질문에 그녀가 받아 친다.
"빌헬름 사장님, 진작 자아를 찾지 못한 사람은 그런 트레일을 절대 완주할 수 없습니다. 다섯 달 동안 혼자서 야생 속을 걸으려면 떠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하죠.(235)" 이 문장이 암시하듯이 <생이 보일 때까지 걷기>는 한국인 독자가 기대하는 것처럼 자연 속에서 나를 찾는 여행을 그리는 책이 절대 아니다. 나 역시 착각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왜 그런 착각과 기대를 했을까를 역으로 내 자신을 정신분석했으니까. 쓰루하이커(through-hiker) 사이에서 GT (German Tourist)로 통하는 그녀는 독일인 독신 여성의 시각에서 미국 문화와 다른 국적의 쓰루하이커들을 관찰한다. 하이킹에서조차 1등을 하고 싶어하는 미국인들에게서는 성과 제일주의를 읽어낸다. 겉으로는 자유를 표방하지만 동성애자들의 무지개 상징에 긴장하고 온천 앞에서 나체되기를 꺼리는 미국인의 이중성을 비웃는다. 그렇다고 그녀가 자연 속에서 신의 섭리를 찾는다거나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땅이 보이니까 걷는다. 걸으면서 도시에서의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듯, 트레일 도중에 만난 인간 군상들을 묘사하고 그들 세계의 보이지 않는 규칙과 관계맺음의 논리를 보여준다. 공간이 대자연으로 바뀌었을 뿐, <생이 보일때까지 걷기>는 등장 인물 수십 명 나오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한 소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 나의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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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합니다 - 우울을 외면하는 당신에게 심리상담
최은미 지음 / 피그말리온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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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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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울함'을 (주로) 사회 낙오자의 부정적 정서, 극복 혹은 치료의 대상으로 보는 한국 사회에서 "대" "놓" "고" '나는 우울합니다.'라니. 대범한 제목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우울한 사람을 위로하는 '덜 우울하거나, 안 우울한 사람'의 충고일거라 속단하고 책을 펴들었는데 서문에서 강력하게 한 방 먹었다. 심리 상담가로서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직업 18년차 되던 해의 최은미는 (어쩌면 대다수의) 독자들보다 극심한 우울을 경험했다고 한다. "지난 삼 년 동안 아마도 저는 저를 찾았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거의 모든 정신적 문제들을 겪었던 듯합니다 (4).… (중략)… 암흑의 기나긴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고통은 극심했고 모든 게 변했습니다. 그 고통 속에서 처절한 고독을 삼키며 써낸 이 글을 나의 내담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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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호기심이 발동한다. 최은미 작가가 왜 그렇게 바닥까지 내려가 우울했을까? 그것도 3년씩이나. 비록 부부싸움이 잦고 그 강도가 강했으리라 추정은 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가정에서 자라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한 재원인 최은미 작가. 문장 행간을 보니 타고나길 자유분방하고 본인이 유학생활을 보냈던 인도 사회의 시간 리듬과 딱 맞는 낙천적인 성향의 사람 같은데, 어째서 그리 우울하다고 할까? 답은 <나는 우울합니다>의 곳곳에 써있다. 솔직한 저자가 아주 솔직하게 말해준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 혹은 아는 사람들이 상담가라는 직업을 가진 자신을 이용했다고. 그들이 감정의 쓰레기를 자신에게 상담료도 안 내고  쏟아부어놓고는  죄책감도 없이 홀가분하게 떠났다고. 그들이 "쓰레기 처리비를 전혀 내지 않고 가 버린 탓에 나는 그 쓰레기 더미에 묻혀 질식했다. 그리고 내가 정작 아팠을 때 내 이야기를 들어 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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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무게에 짓눌려 타인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어 줄 여유가 없던 최은미 저자는 글쓰기, 놀기, 춤추기, 강아지와 산책하기 등 다양한 방식을 도모한 듯 하다. 그 중 '탱고 배우기'는 꽤 의외였는데, 저자는 "오직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고, 정신도 마음도 아닌 '몸'뿐입니다. 몸은 잃었던 기억과 자신의 정체성을 순간순간 신호로 말해 줍니다 (5)."라고 한다. 오죽하면 카타르시스와 자기 방어로서의 싸움의 방편 중 최고를 '춤대결'로 제안할까.  저자는 본문에서 두번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의 '조르바'를 빌어 '머리'와 대비한 '육체성'을 언급하며 육체성의 승리를 뻔뻔함에의 예찬과 연장선상에 놓는데 이 부분은 저자를 만나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진다. 그 둘이 따로 가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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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울합니다>를 읽으며, 전체적으로 독자를 우선한 글인지 최은미 작가가 골방에서 쓴 일기의 연장인지 헷갈렸는데, 역시나 쿨한 최은미! 자기 약점을  바로 보고 솔직히 고백한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몇 줄 역시 담담한 '들려 주기'가 아니라 억울한 토로가 되고 있지 않은가. (잠시 독자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89)"라고. 처음에는 감정 과잉,  세세한 고백 과잉의 문체가 부담스러웠는데 차차 솔직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최은미 작가의 매력에 빠진다. 사적으로 알게 된다면 나이, 성별, 취향을 떠나 오래 친구하고픈 사람일 것 같다. 

*

 아하! 이렇게 자기 수다를 솔직하게 풀어 놓음으로써, 독자가 그것을 엿듣게 함으로써 독자를 편하게 해주는 구나! 아하! 이것이 18년 상담 경력의 최은미 작가가 독자에게 해주는 선물이구나를 느꼈다. 끝으로 "세상에서 가장 나쁘고 어리석은 일 중 하나가 타인에게 불필요한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심어주는 일 (39)"이며, "타인을 지적하는 것은 문제적 행동(44)"이라는 최은미 작가의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는 나 자신의 매듭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증오심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한 사람의 특징이다. 행복하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55)"라는데, 행복 바이러스의 전염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나의 매듭부터 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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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예술 -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을 배우다
알랭 코르뱅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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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침묵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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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렵다. 장르 불문, 2017년 상반기 읽은 모든 책 중에서 <침묵의 예술> 읽기가 가장 어려웠다. 속된 말로, 딸렸다. 이해력과 배경지식뿐 아니라 '느림'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간감각의 면에서 다 딸렸다.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를 수 차례. 읽을 때마다 문장 문장이 처음 만나듯 새롭다니 '무식함'을 자학하며 읽었다. 프랑스 역사가, 특히 미시사(micro-history)의 대가 알랭 코르뱅의 고도로 세련된 문체는 암호같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까지 준다. 프루스트, 릴케, 위고, 졸라, 발자크 등의 문학가부터 마그리트나 루소, 반 고흐 등 화가와 파스칼을 위시한 철학자와 엘리아스 등 역사학자 등 언급하는 인물만도 수십 명이다. '침묵'이라는 절대 화두 아래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자료를 샅샅이 뒤져 찾고 수 놓아 문학작품처럼 엮어내다니, 80대 노학자의 높은 경지가 느껴진다.

<침묵의 예술>에서의 '침묵'은, 층간 소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가벼운 범주가 아니다. 사막이나 바다, 건축물과 연관되는 공간적 침묵,  유사성 면에서 침묵과 닮았다는 아이들처럼 존재의 침묵, 인간관계로부터의 침묵, 성스러움을 희구하는 이들의 신과의 침묵소통, 체화된 예의로서의 몸의 침묵 (강연 중에 방귀를 뀐다든지 트름 한다든지를 삼가게 하는 몸단속),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고요 등 범주가 넓고도 깊다.

*

프랑스 역사가가 생의 성숙기에서 이처럼 깊고 넓게 침묵을 성찰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코르뱅은 "이 책에서 과거의 침묵을 환기하는 이유는 침묵의 탐색, 밀도, 준수, 전략, 풍요로움과 더불어 말의 힘에 있는 양상이 침묵하는 방법, 즉 나 자신이 되는 방법을 다시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 (9)"이라고 직접 알려준다. 알랭 코르뱅은 "끊이지 않는 접속으로 개개인을 현혹해 침묵을 두렵게 하는 하이퍼미디어(9)" 를 현대인이 침묵을 두려워하거나 과소평가하게 된 요인으로 보는 것 같다. 위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18대 박근혜 정부는 사이버컬처를 타겟 산업으로 권장하면서 정작 '종이책 안 읽는 대통령과 정부였다'는 평이 겹쳐 떠올랐다. 야단스러운 속도감은 되려 침묵의 느림과 밀도가 갖는 힘에 밀리기도 한다. 20170420_185938_resized.jpg

 
미시사 중에서도, 시간, 공간, 소리, 냄새 등 감각적인 주제를 다루는 데 탁월하여 '감각과 감수성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불린다는 알랭 코르뱅은 역사가답게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묵의 의미와 그 변화 양상을 살핀다. 개인적으로 "침묵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소제목의 6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침묵보다 말이 위험하다는 현대적 확신의 뿌리를 저자는 궁정 사회의 모델에서 찾는데 엘리아스(Norbert Elias)를 빌어왔다. 풍습의 문명화가 "규범의 내면화와 관련된 침묵 명령의 무게가 늘어(103)"가는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말의 침묵뿐아니라 '기관들의 침묵(103)'으로 압축되는 정숙한 몸가짐(성적 쾌락의 소리를 삼감, 트림과 방귀를 삼감)이 점차 요구되어 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유럽의 맥락일 테인데,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의 침묵의 의미 변화와 현재는 어떠할까? 한국에서는 어떤 학자가 이 주제를 다뤄왔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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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나 성별, 연령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2017년 한국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반응, 즉각적인 소통이 현대적 매너로 여겨지는 듯 하다. 단체 카톡방에서 '묵묵부답 = 예의 없음'으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점유를 '스스로 왕따 만들기' 테크닉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니. 느리게 반응하고 때로는 반응으로서의 말을 삼가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이들을 유별난 존재 취급하기도 한다. 침묵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내가 성장하고, 타자와 더 깊이 관계 맺는 그 힘을 <침묵의 예술>을 읽으며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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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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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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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커피가 안 받나 보다. 고작 두 잔 마셨는데, 새벽 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김훈의 아홉번째 장편 소설, 나에게는 처음 읽은 김훈의 소설인 <공터에서>를 스탠드 하나 켜놓고 다 읽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김훈 작가의 문장 그 진지한 흡인력에 '아, 소설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겠구나. 한국 문학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리뷰를 뒤져보니, 김훈 작가님 못지 않은 문장력을 뽐내는 리뷰들이 많았다. 그 작가에 그 팬심이라할까. 고수들끼리 통하는 '소설과와 독자'의 핑퐁 같아서 흐뭇했다.

난, 아주 우울할 때 <공터에서>를 읽어서, 감상도 핑퐁처럼 가벼울 수 없다. 정신적 피로감으로 기운이 쪽 빠져서 문장을 다듬기도 어렵다.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공터에서>의 표지 한 쪽에 그려진 말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의 의도대로라면 늘씬하고 힘 넘치는 경마장 말이 아니라 비루한 말이어야 했다. 김훈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라는 배에 태운 주인공들은 '마 馬' 씨였다. 1910년, 1948년 생의 아버지 마동수와 그 차남인 마차세를 위시하여 장남 마장세 외 여러 인물이 스냅사진을 어지러이 걸어놓은 벽장식 처럼 얽혀서 등장한다. 2017년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김훈 작가가 한 말을 살펴보니,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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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는 지금, <공터에서>가 옆에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글쓰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라는 해냄 출판사측의 홍보문구처럼 주인공들은 수레바퀴가 굴러갈까봐 두려워하는데 이미 자신이 그 수레에 타고 있음은 늘 예감한다. 장남 마장세는 외모까지 꼭 빼 닮은 아버지와 운명이 겹칠까봐 한국땅을 '거기에서'라고 타지화하고, 마차세 역시 부인이 임신 소식을 알리는 그 순간 아버지의 혼령이 고등어 한 손 들고 서 있는 환영을 본다. 마차세의 부인 박상희는 <공터에서>를 통털어 가장 해바라기 같은 존재인데, 마차세와 결혼하던 날 아주버님과 대면하고 '마 馬'씨 가문의 핵심으로 한 발에 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을 갖는다. 얼핏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치매 걸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베트남전에서 살아돌아온 자가 자신이 사살한 전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개개인의 관계나 운명이라기보다는 반성도 사과도 성찰도 없이 관성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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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시대, 순경에서 끌려가  피터지게 매 맞고 나와 먹던 선지 해장국을
남산 경찰서에 끌려간 터지고 나온 이가 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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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되어 총을 겨누던 전쟁이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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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참 큰 일을 하신 것 같다. 일흔에 이른 본인도 체력이 예전과 달라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리를 소설을 통해 해주었으니 스스로 떳떳하고 홀가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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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아닌 비루한 사람들에게 연민과 애정.
가루처럼 흩어질 듯한 낱낱의 비루함이 모여서 실체로서의 덩어리가 된다.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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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라는 인물에 가장 공감이 가는
그녀는 해바라기가 아닌 태양. 그녀의 온기와 열기로 마차세가 따뜻해진다.
작가에게 박상희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터에서>를 다 읽고, 그 많던 마 馬씨들보다도 박상희의 다음 날이 가장 궁금해진다. 이유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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