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9단의 만물상 - '만' 가지 알찬 정보와 '물' 만난 살림꾼들의 '상' 상초월 비법! 살림 9단의 만물상 시리즈 1
TV조선 <살림9단의 만물상> 제작팀 엮음 / 비타북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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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9단의만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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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없는 생활 4년차이지만, "살림 9단의 만물상"이란 프로그램만큼은 그 입소문에 익히 알고 있다.  살림 9단들이 직접 출연해 살림 노하우를 공개하는 '만물상'은 만’ 가지 알찬 정보와 ‘물’ 만난 살림꾼들의 ‘상’상초월 비법의 줄임말이란다. 프로그램에 공개된 비법(?)들은 인터넷 포털 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고, 소위 아줌마들의 정보교류의 장에서 뜨겁게 오르내리니, TV와 담 쌓고 사는 사람에게도 "살림 9단의 만물상"은 핫이슈일수 밖에. 고맙게도 "TV맹"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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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9단의 만물상>은 그간 출연했던 200여명의 살림꾼들의 비법을 크게 두 파트로 나누어 묶었다. Part1과 Part2에서는효소, 발효, 쌀뜨물 EM 발효액, 식초 등 몸을 살리고 약이 되는 음식을 주로 다루었다. Part3에서는 "똑소리나는 살림비법"이라는 제목아래, 청소법, 세탁법, 수납 및 재활용 비법 등을 엮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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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여 페이지에 이를만큼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지만, TV 프로그램에서의 생동감과 분위기까지 전하는 캡션에 파노라마 컷 이미지를 통해 책이지만, 영상을 보는 듯한 스피드감도 살렸다. 예를 들어, 마늘효소를 소개하는 페이지에서는 마늘 효소 사진과 함께 "효소가 몸 안에 확 퍼지는 느낌이 나네요."라는 캡션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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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9단의 만물상>은 한 번 보고 말 책이 아니라, 자주 꺼내보고 공부하며 익혀야 하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사실 살림 9단은 커녕, 살림 3단에 진입만 하여도 감지덕지일 살림 초보자들에게 책에서 소개된 건강식과 다양한 수제 식품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탄을 일으킨다. <살림 9단의 만물상>을 통해서 "참외껍찔 장아찌"니 "명태껍질 튀김," "수박껍질쩀" 같은 음식을 처음 들어보았다. 당연히 여태까지 맛 본적도 없으니 맛을 상상하기도 어렵다. 식재료면에서도 살림 9단들은 그 스펙트럼과 깊이가 달랐다. 초석잠,감태, 은이버섯, 해송이버섯, 곰보배추, 개구리밥 등은 식용인줄도 몰랐을 수준으로 낯선 재료들이다. 하지만 살림9단들은 감태로 쉐이크도 만들고, 초석잠 장아찌며, 곰보배추차를 마시고, 개구리밥으로 아토피를 치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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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 9단의 만물상>을 탐독하며 드는 생각은, '부지런함'이야말로 "살림 고수"의 공통분모이자 최우선 요건이 아닌가 싶었다. 유통되는 먹거리를 신뢰하기 어려운 이 세상에 누가, 직접 담근 효소로 가족의 피로를 풀어주고, 직접 만든 우엉껍질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지우고 쌀뜨물로 설겆이해서 환경을 보호하고 싶지 않겠는가? 다만, 시간과 노력이 든다. 카드 한 번 긁으면, 아니 스마트폰 몇 번 톡톡 두르리면 현관 앞으로 합성 세제며 합성 비타민이며 다양한 브랜드의 효소액이 배달되는 이런 편리함의 시대에 살기에 그 '카드 한 번'의 편리함을 떨치기가 어렵다.  직접 재료를 고르고 씻고 손질해서 효소나 식초를 만들고, 베이킹 소다액으로 청소하는 수고들을 하고 싶지 않은 게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고수들의 비법이야말로, 단순히 내 몸, 내 가족의 건강을 챙겨주는 살림법을 넘어서 친환경이 아날로그적 삶의 지혜를 담고 있지 않나 싶다.

<살림 9단의 만물상>, 읽으면서 참 많이 반성했다. 편리함과 소위 "레디 메이드"의 신속함에 중독되어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책에 소개된 비법을 과연 얼마나 따라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어도, 적어도 "살림 9단"들의 기저에 흐르는 '아날로그적 부지런함'만큼은 꼭꼭 흉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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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 개정판 그림책이 참 좋아 1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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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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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가 있는 집이라면 국민그림책, <구름빵>은 비상상비약 해열제나 모기약처럼 책장에 꽃혀 있으리라.  <구름빵> 원전은 물론 구름빵 캐릭터를 특화한 영어전집에 <장수탕 선녀님>까지..... 아무튼 우리집 책장에도 백희나 작가 컬렉션이 작게나마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오호 통재라! 여태껏 그 유명한 <달 샤베트>를 직접 읽어본 일이 없다니! <독이 되는 동화책, 약이 되는 동화책>의 한복희 작가가 우리나라 그림책의 변화를 백희나의 <구름빵>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며 백희나를 극찬하고, <달 샤베트>를 언급하자 민망하고도 궁금해졌다. 도대체 얼마나 기발한 상상력으로 현실과 상상을 버무려 놓았길래 한복희 작가가 깜짝 놀랐다고 평할까?  2014년, <달 샤베트>가 보다 큼직해진 몸통(판형)으로 다시 출간되었다기에 반가운 마음에 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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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8월의 무더위에 읽기 딱 좋은 여름방학용 바이블, <달 샤베트>. 너무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열대야를 시간적 배경으로, 늑대들이 사는 서민 아파트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너무 덥다보니 아파트 주민들은 창문을 꼭꼭 닫아 걸고 에어컨이니 선풍기로 더위를 몰아내보려 한다. 그런데 '똑....똑......똑,' 하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달도 하늘의 열기를 못 이기고 뚝뚝 녹아 내리는 중. 반장 할머니가 고무 대야에 달 방울들을 받아와 샤베트 틀에 부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전.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딱 한 집에서만 빛이 새어 나왔다. 바로 반장 할머니 댁의 달 샤베트! 노랗고 환한 것이 달을 닮아 밝기뿐만 아니라 시원하기 까지 하다. 아파트 늑대들은 할머니가 나눠준 달 샬베트를 먹고 더위를 훠이 몰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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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샤베트만 먹고, 달은 녹아 내려 사라진 채 이야기가 끝일까? 백희나 작가의 통통튀는 상상력은 절구공이와 절구를 짊어 맨 오고끼 두 마리를 등장시킨다. 과연 토끼들은 왜 온 살림을 다 짊어지고 지구를 찾았을까? 이민 온 것일까? 무슨 하소연을 하려기에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을까? (스포일러가 될까봐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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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물을 부어 씨앗의 싹을 틔우고, 다시 그 싹에서 나온 꽃이 피어나 우주로 신호를 보내 우주의 기운과 교감을 하고, 달이 차오르고 지고.....백희나의 로맨틱하면서 환타스틱한 상상력에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에너지 효율 생각않고 집안 조명을 백열등으로 다 바꿔버리고 싶을 만큼 노르스름한 달꽃의 빛은 낭만적이고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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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는 단순히 늑대들의 아파트촌에서 열대야에 벌어진 환타스틱한 이야기로뿐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 아날로그적 삶의 아름다움, 자연 및 우주와 꽃의 입자가 사실 하나라는 식의 메세지, 환경사랑, 이웃 존중 등 많은 가치들을 담은 수작이다. 어떻게 보아도 사랑스러워서 꼭 품어주고 싶은 노랑 병아리 같은 책이다. 달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고, 노란 달꽃을 피우기도 하는 노랑 병아리. 백희나 작가님, 감사합니다!  '책을 만들 자신감과 용기가 사라지려 할 때조차, 그림책이 너무 좋아 손을 놓지 못하고 만들어내었다는 <달 샤베트>! 덕분에 이 무더운 여름 많은 아파트촌에서 창문이 열리고 이웃과 소통하고 달과 교감하는 친자연의 향연이 벌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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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식초 만들기 비법노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연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 - 동백LEE 곳간의 사계절 식초 만들기 A to Z
이제성 지음 / 일월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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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식초 만들기 비법노트

 

 

최근 <살림 9단의 만물상>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것이 정녕 동시대 한국사람들의 살림방식인가?'하며 경탄어린 존경 반, 부끄러움 반의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카드만 긁으면 예약 시간에 집으로 먹거리 택배가 오는 이 시대에 직접, 장을 담그고 효소와 식초를 만드는 이들의 아날로그적 정성은 경이롭기만 하다. 살림 초고수 이제성의 <천연 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를 읽으며 마찬가지의 감정이 들었다. 그 많고도 다양한 식초를 직접 담그고, 그것도 모자라 식초 전도사의 험난한 미션을 스스로 짊어메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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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초, 좋은 줄 누가 모르나? 단, 직접 만들어 먹기에는 여러 단서가 붙는다. '잡균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용기를 철저히 소독해내는 부지런함, 깨끗한 재료를 사다 나르고 씻어 손질하는 정성, 믿을 먹거리가 적은 이 험난한 세상에 내 식구 내 손으로 만든 식초 먹이겠다는 사랑이 있어야 하니, 자신 없어지는 거다. 한마디로, 귀찮아서 사먹고 말지! 나 역시 살균 용도의 저렴한 식초와, 식용의 고급 식초 두 가지를 늘 구비해둔다. 물론 늘 구입한다. 한 번도 식초 만들기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조차 없었기에, 식초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고 어떤 준비가 필요하며 어떤 재료가 식초가 될 수 있는지에 까막눈이다. <천연 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가 없었던들 계속 까막눈 식초 구매자로만 살 뻔 했다. 읽고 나니, 단순 구매자가 아니라 식초 장인까지는 못되더라도 식초 가내수공업 생산자 노릇은 한 번 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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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이자 어머니이자 아내로서 자신을 소개하는 소박한 저자 이제성은 나같은 살림 3단, 식초 까막눈 독자를 위해 비법 노트를 깨알같은 글자로 자세히 채워주었다. "아무 것도 몰랐을지라도" 이제성의 친절한 설명을 따라 차근차근 만들다보면 정말 천연식초가 발효될 수 있을만큼.

저자의 식초사랑, 식초학(?) 입문 계기가 독특하다. 나름 먹거리 풍족하게 살던 유년기, 저자는 큰 어머니가 해주시는 보리비빔밥을 하도 좋아해서 일부러 강원도 칠곡 큰집까지 가서 먹고 오곤했다 하다. 이 비빔밥 맛을 아무리 흉내내려해도 거듭 실패하다가 생각이 미친 데가 바로, 큰 어머니께서 직접 담그신 막걸리 식초! 전통 음식 뿐 아니라 전통 장류 등 음식의 세계를 탐닉하던 저자는 결국 평생 식초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단다. 그후 지금까지 식초도 담그고 식당도 운영하는 식초 전도사로 뜨겁게 살고 있다.

 

식초전도사로서의 저자는 <천연 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에서 다짜고짜 식초 만드는 법만 공개하지 않는다. 물고기만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낚는 방법, 보다 근원적으로는 물고기를 잡아야 할 절실성에 대한 자각을 들게 한다해야할까. 우리몸에 식초가 왜 좋은지, 왜 만들어 먹으면 더 좋은지 등을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이어, 식초만들기의 기초 법칙을 소개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의 재료! 깨끗하고 이왕이면 친환경 재료로 구해둔다. 식초만들기 1단계인 술 만들기를 위해 설탕, 효모 물을 잘 선택하여 배합한다. 용기와 도구는 지나치다할만큼 철저히 소독해야만 한다. <천연 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로는, 간장 고추장 된장 김치 젓갈 등을 담았던 항아리는 아무리 소독한다한들 식초용기로서의 기능 상실이라는 점! 초산발효과정을 확인하고 싶을 때 10원짜리 동전이 유용한데, 반드시 2006년 10월 이전에 제작된 구리동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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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부터는 본격적으로 식초만들기 비법 전수로 들어간다. 다양한 재료에 방법에 따라 식초들을 묶어두었는데, 2장과 3장에서는 효소 발효액으로 식초를 만들고, 4장에서는 과일과 열매로 만드는 식초를 소개했다. 5장에서는 채소, 야초, 뿌리로 만드는 9가지 식초를 소개하는데, 상추꽃대 천연식초가 그렇게나 독하다나! 상추잎만 먹는 것이 아니라 꽃대로 식초를 만들다니 이채로웠다. 6장에서는 현미 등 곡물로 만드는 식초, 7장에서는 지게미로 만드는 식초 다시 8장에서는 전통 방식의 식초만들기를 소개한다.

 

 

부지런하고도 찬찬한 저자가 식초 만드는 과정, 발효과정을 일일이 사진으로 소개해주고 있어서 식초초보자라도 안도하며 따라할 수 있다. 식초장인이 만든 식초와 나의 식초가 얼추 비슷한 모양새를 띠어가는지 확인하며 흡족해하는 식초초보자의 미소를 상상해본다. 여름 휴가 때 좋은 식초 재료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천연 식초 만들기 비법 노트>에 소개된 천연발효 식초 77가지 중 2가지라도 꼭 만들어봐야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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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형 인간
로맹 모네리 지음, 양진성 옮김 / 문학테라피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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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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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교수가 <낮잠형 인간>의 리뷰를 쓴다면? 궁금해졌다. 소설 속 청춘은 "새벽형 인간"은 커녕, "아침형 인간"이 되려는 노력도 없이 자발적 "낮잠형 인간군"에 속한다. 번번이 퇴짜맞는 이력서 취미란에는 '자위'와 '낮잠'을 적어넣을 정도로 무식하게 솔직하다.


 

그럼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지냈을까? 그런 질문을 받게 될 것 같았다. 내가 간단히 계산한 바에 따르면,

-천 시간 넘게 잠을 잤다.(낮잠 포함)

-텔레비전 앞에서 500시간을 보냈다.(뮤직비디오, 광고, 드라마)

-34권을 읽었다.(전부 포켓판)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272번 자문해 보았다.

-20시간 동안 자위를 했다.(물론 여러 번에 나눠서)

 

 

<낮잠형 인간> 본문 중에서

 

주인공은 우울과 무기력이 극에 이르자 방문 밖으로 나가기도 귀찮아서 페트병에 소변을 처리한다. 창문을 활용하여 폐기한다. 양치질조차 안해서 구내염이 생길 지경인 이 '낮잠형 인간'은 스물 아홉살이다. "여우같은 마누라랑 결혼해서 토끼같은 자식 한 둘"은 낳았을 나이건만, 스스로를 아직 "어른으로 가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 프랑스 젊은이는 석사 학위까지 소지한 고학력자여도,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저통합수당 (RMI-무소득자가 받는 수당) 받기에 부끄러움이 없다.  하우스메이트이자 동변상련의 실업자 브뤼노가 받았던 불합격 통지서의 이름을 위조해 RMI 상담원을 속여 돈을 타내기까지 한다. 이렇게 묘사하고 나면, 이 '낮잠형 인간' 한심한 인간 말종같아 보이리라.

  이쯤해서 슬며시 주인공을 변호하자면, 그는 저주받은 비정규직 세대이다. 대학원을 졸업했어도 변변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낮잠만 청하자, 아버지는 그를 "곰과 뱀의 유전자가 합쳐셔 생긴 괴물쯤"으로 경멸하는 듯 했다. 그래도 자립해보고자 "베개로나 써 먹을 석사 학위가 든 가방 하나 달랑 들고서" 월세를 아껴줄 하우스 쉐어에 들어간다. 최소한의 노력은 했고 스파게티 면에 케첩을 발라 먹어도 불평은 안 했다. 정규직 일자리를 위한 발판부터 다지려고 대졸자들 다 그렇듯 수습직부터 구했다. 방송국 편집보조직으로 채용되었나 싶었지만, 편집 업무대신 온갖 잔심부름에 남자상자로부터의 성상납 제의까지 받는다. 결국 그는 가혹한 사회현실에서 정서적으로 착취받으며 노동 의지를 상실해간다. 이왕 상실하는 거 아주 착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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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생 젊은 작가 로맹 모네리(Romain Monnery)는 시니컬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필체로 현대 프랑스 청년들의 위태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 주목받고 있단다. <낮잠형 인간>을 원작으로 영화가 제작, 개봉되었고, 그의 두 번째 소설이라는 <상어 뛰어 넘기>역시 영화제작중이라한다. 말의 설사에 가까울 정도로 다변성의 프랑스 소설을 좋아하는데 로맹 모네리의 작품 역시 프랑스 소설의 향기를 폴폴 풍긴다. 시니컬한듯 하면서도 나른하고,  오로지 자기 세계에서 말의 설사를 쏟아내는 것 같은데도 세상에 대한 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로맹 모네리의 문체를 보여주는 부분을 발췌 소개해보겠다.  웃다가 한참을 소리내어 킬킬 거렸다.

 

 

 

 

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있는데 브뤼노(하우스 메이트)는 액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중략).......백 명이 함꼐 있어도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거ㅏ 유통기한 지난 요구르트를 집어 들거나 개똥을 밟거나 기왓장이 떨어지는 일은 항상 브뤼노에게만 일어났다. 브뢰노는아무리 물에 빠뜨리려고 해도 다시 떠오르는 검은 고양이 같았다. 그의 조상들이 '타이타닉'호에 탔다고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대학교 사무실에서 전화를 걸어 와 브뤼노의 학위가 유효하지 않다며 박탈하겠다고 말했다. 또 언젠가는 브뢰노의 고향 도서과에서 어렸을 때 빌린 만화책에 대한 연체료를 요구하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계속 그런 식이다 보니 어느 날 브뢰노는 왜 그런 일이 자신한테만 일어나는지 심각하게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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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형 인간> 62쪽

 

 

 

주인공은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모터쇼 판매원 수습직으로 취직한다. "자동차를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란 거짓말 한 마디에 채용되다니! "삶은 짓궂은 농담"인가. 하긴 마력(horse power)의 의미를 몰라 "엔진에 있는 말은 뭘 먹나요?"라던 여자도 모터쇼 수습직이더라. 주인공은 "야망을 품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부모님을 향한 책임감에서) 야망을 가진 것처럼 보여야 할 의무도 있었다 (p.224)"며 우수 사원 메달을 목표로 열심히 자동차 세일즈를 한다.  결국 우수 판매 사원 메달을 거머쥐게 되었다. 하지만 독자도 주인공도 기쁘지 않다. 씁쓸해서 더 서글프다.

 

*

로맹 모네리는 낮잠형 청춘들이나 야망과 노동의지를 포기하도록 학습시키는 사회에 대해 쓴소리도 날카로운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다. 되려 무심하다 할만큼 날 모습을 보여주고 만다. 스칼렛 요한슨 닮은 여자를 찾으러 갈것인가, 우수 사원 메달을 받으러 남을 것인가를 동전을 던져 결정하는 주인공마냥........그래서 읽고 나서 더 여운이 오래 간다. <낮잠형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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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철든 날 사계절 중학년문고 31
이수경 지음, 정가애 그림 / 사계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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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철든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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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철든 날>을 읽기 전에 "'철든'이 무슨 뜻?"이냐며 제목부터 궁금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조숙한 요즘 아이들은 "철 좀 들어라"라는 애정어린 훈계를 들어볼 일이 별로 없구나하는. 동시에 '철들다'는 어른이 되어서도 해독하기 어려운 심오한 말이구나싶었지요. 이수경 시인은 어렸을 적 뒷집 소금 독 깨 먹고도 "난 절대로 철 안 들 거야!"했다가 엄마께 혼났다죠? 시인의 할머니께서 "갑자기 철들면 죽는다"고 하셔서 어린 나이의 시인은 무서웠나봅니다. 시인이 열한 살 때, 시인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대요. 오남매의 장녀였기에 시인은 어려서부터 "어쩔 수 없이 철들어야" 했고, 그런 척 해왔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가가 있는 서울에서 살게 된 시인은 마음 속 깊이 고향 지리산을 품고 살았대요. 시인의 시적인 표현을 빌자면, "사시사철 다른 노래를 불러주는 지리산을 품고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진짜 철이 들어나보다."라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의 동시집 <갑자기 철든 날>은 '철든 봄,' '철든 여름,' '철든 가을,' '철든 겨울,' '철든 우리'라는 챕터 제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사시사철 지리산의 풍경과 그 안에서의 시인의 유년기가 겹치게 구성하였지요. 읽다보면 시인이 얼마나 생생하게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지 경이로울 지경입니다.  <갑자기 철든 날>에 실린 총 46편의 시 중에 시인의 경이적인 공감각 기억력을 보여주는 동시 한 편을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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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한 마리 먹기   이수경 동시

 

상추에 쌈 얹고

된장 발라

오므리는데

 

으아악!

달팽이 한 마리

상추 뒤에

상추 뒤에

 

"씻는다고 씻었는디

눈이 어두버 안 보였나 부다."

 

밭에서 일하고 온 할무이

암시랑토 않게

황소 한 마리 묵는다

생각하라지만

 

할무이, 할아부지

그렇게 먹은 적도 많다지만

 

으아악!

내 눈이 커졌다.

 

황소 한 마리

쌈밥 위로 올라섰다.

 

 

 

"어쩔 수 없이 철들어야" 했던 시인에게 "철들다"는 죽음을 향해가는 삶, 다시 삶에 빛으로 내리쬐는 죽음의 순환고리를 상기시키나봅니다. <무덤에 누워서도>라는 시를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채반마다 호박, 가지, 토란 등을 썰어 널은 딸 (시인의 엄마)의 부지런함에 누워만 있기 미안해지신 시인의 할머니가 "무덤가에 누운 우리 / 막새바람 불러와 / 부채질해 주시지// 할머니는 바쁘시다. 무덤에 누워서도 할 일 참 많으시다." 랍니다.

*

이 외에에도 "밥 짓던 할머니 / 먼 산을 보면 / 할아버지 생각을 하시는 거다.....(중략)...... 복닥복닥 / 함께 살던 / 젊었던 시절// 그 옛날 생각을 / 하시는 거다." (<멍한 할머니>)라든지 "할머니 살아 계실 땐 / '시끄럽다마!' / 눈 부릅뜨던 할아버지// 이젠 할머니한테/ 큰절하고// 오래오래/ 엎드려 있습니다./ 일어날 생각을 않습니다" (<벌초하는 날>)

그리움의 정서가 절절히 배어나는 <갑자기 철든 날>에 유독 아버지의 이야기는 부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막둥이인 다섯째, 그리고 둘째 셋째 넷째와 장녀인 시인의 모습은 시 속에서 그려지는 데 아버지의 모습은 구체적 형상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인에게 너무도 그리운 절대적 부재이기에 지리산 속에 꼭꼭 숨겨두었나봅니다.

 

"어쩔 수 없이 철들어야" 했던 시인에게 "철들다"는 죽음을 향해가는 삶, 다시 삶에 빛으로 내리쬐는 죽음의 순환고리를 상기시키나봅니다. <무덤에 누워서도>라는 시를 읽으며 깜짝 놀랐습니다. 채반마다 호박, 가지, 토란 등을 썰어 널은 딸 (시인의 엄마)의 부지런함에 누워만 있기 미안해지신 시인의 할머니가 "무덤가에 누운 우리 / 막새바람 불러와 / 부채질해 주시지// 할머니는 바쁘시다. 무덤에 누워서도 할 일 참 많으시다."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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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에도 "밥 짓던 할머니 / 먼 산을 보면 / 할아버지 생각을 하시는 거다.....(중략)...... 복닥복닥 / 함께 살던 / 젊었던 시절// 그 옛날 생각을 / 하시는 거다." (<멍한 할머니>)라든지 "할머니 살아 계실 땐 / '시끄럽다마!' / 눈 부릅뜨던 할아버지// 이젠 할머니한테/ 큰절하고// 오래오래/ 엎드려 있습니다./ 일어날 생각을 않습니다" (<벌초하는 날>)

그리움의 정서가 절절히 배어나는 <갑자기 철든 날>에 유독 아버지의 이야기는 부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와 막둥이인 다섯째, 그리고 둘째 셋째 넷째와 장녀인 시인의 모습은 시 속에서 그려지는 데 아버지의 모습은 구체적 형상으로 와닿지 않습니다. 아마도 시인에게 너무도 그리운 절대적 부재이기에 지리산 속에 꼭꼭 숨겨두었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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