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랴 쓰랴 바쁜 6월, [셰임 머신]이 달콤한 후식처럼 유혹적이어서 메인 메뉴를 밀쳐 두고 먼저 손이간다. 100자평은 다음과 같다.

*

부럽! 하버드대 수학 PhD로서 학계와 월스트리트에서 이름을 날렸던 데이터 과학자가 직업 칼럼니스트 이상 글도 잘 쓰다니, 이 다재다능함은 뭐람?

*

케시 오닐(Cathy O'neil)의 [대량살상 수학무기 Weapons of Math Destruction](2016)은 무려 80주나 amazon 베스트셀러에 머물렀을 정도로 영향력과 인기가 컸다. 6년 만에 나온 [셰임 머신 The Shame Machine: Who Profits in the New Age of Humiliation] 역시 저자의 직진형 사회비판과 솔직한 자기성찰, 데이터 전문가로서의 해박함과 필력을 감추지 않는다.

GRuban, CC BY-SA 4.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



저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서문 읽다가 덮고, 저자가 얼마나 뚱뚱한지 궁금해서 구글 검색하기도 처음이었다. 왜냐하면 서문에서 저자는 거의 평생 따라다닌 비만 수치심(shame)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기 때문이다. 고학력자인 자신과 마찬가지로 수학 박사이신 부모님과 최상류층에게만 허락된 뉴욕 부촌에 살아왔지만, 캐시 오닐은 비만 수치심에 사로잡혀 살아왔다. 낮은자존감과 자살충동도 경험했다. 하지만, 그녀는 문제의 본질을 심층 분석하는 수학자답게 개인적 경험에서 나아가, 오늘날 수치심이 혐오를 조장함으로써, 사회를 계급화하고 데이터 산업의 몸집을 불려주는 먹이로 활용된다는 통찰력을 보인다.


Shame machine

수치심은 돈이 된다


[세임 머신] 1부에서 저자는 비만, 약물(마약) 중독, 빈곤, 그리고 외모를 빌미로 수치심을 유발하고, 그 수치심에 혐오와 비하의 의미를 더함으로써 이익을 내온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에서 마약중독 재활사업은 350억 달러 규모로 성황이다. 그녀는 사회가 유도하는 각종 '질병-비만, 중독, 악취증, 히키코모리 등등'과 그 질병에 찍는 '낙인'은 어떤 이익집단에는 돈벌이가 되는 현실에 차갑게 분노한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한다


[셰임 머신]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타 '뚱뚱함의 고해성사'나 '비만인의 before & after'를 보여주는 여타의 책처럼 수치심을 개인적 차원의 정서 상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데이터 과학자로서 캐시 오닐은, 인간 심리와 본성을 간파한 알고리즘이 혐오를 조장하고 확산시킴으로써 수치심을 사회통제 도구로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수치심 네트워크는 우리를 부지런히 끌어들인다. 우리는 그 안에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고, 그때마다 잠깐씩 고양되는 기분을 느끼며 옹졸한 권력감이나 분노, 복수심 같은 감정에 중독된다. 우리는 나한테 관심을 주는 듯한 소규모 커뮤니티에 상주하며 과도한 감정에 몰입하지만, 그 감정을 기계적으로 자극하는 허술한 시스템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 시스템은 바로 영속적으로 굴러가는 수치심 머신이다. (154쪽)



무기로서의 수치심

Punch Up!


달랑 300여 쪽의 책 한 건이지만, 내가 활자로 느낀 캐시 오닐이라는 인물은 세 아들의 엄마이자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상식, 지식 전문가로서의 소명의식, 호불호가 명확하고 감추지 않는 황소의 뚝심, 꺾이더라도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을 지닌 멋진 사람이다. [셰임 머신]의 1부와 2부에서는, 대중이 잘 모르던 수치심 산업이 눅눅한 지하의 곰팡이처럼 현대사회의 공동체와 사람들의 정신을 좀 먹고 있음을 경각시키는 데 주력한다. 비판과 각성하라는 촉구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3부에 와서는 그 수치심 자체가 사람들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역발상으로 보여준다. 즉, 수치심 기계가 사회를 계급화하고 정서를 조정하고, 서로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끼쳐왔다면 (punch down), 역으로 그 수치심을 활용해 정의를 복구하는 무기 삼을 수 있다고 독자들을 고무시킨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나이지리아의 촛불 집회, 2020년대 Me T00 운동 등 구체적인 실례와 함께.

더 살만한 세상을 위해

수치심 머신을 해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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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23-06-12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알라님 책소개 감사합니다.
수치심의 비즈니스화 꼭 읽어봐야겠네요~^^

얄라알라 2023-06-13 09:24   좋아요 0 | URL
Conan님 오랜만이십니다^^

저는, 알고리즘이니 빅데이터니 하는 걸 전혀 모르지만, 이 책은 그쪽의 전문지식 없이도 무척 흥미롭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었어요. 저자의 넓은 시야 덕에 많이 배웠답니다.

Conan님께서도 나중에 후기 올려주시면 보러 갈게요^^

초란공 2023-06-12 21: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저자분 신간이 나왔나 보네요~! 교묘한 알고리즘으로 먹고 사는 기득권 세력들이 결코 달가워하지 않을 인물일 듯 합니다. ^^ 그래도 업계 전문가로서 내막을 정확하고 비판적으로 알려주는 인물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얄라알라 2023-06-13 09:26   좋아요 0 | URL
네네, 맞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특히 Punch Up 파트에서, 저자의 과감성에 존경의 맘이 들면서도 놀랐어요

심지어 본인이 오래 살아온 뉴욕 상류층 동네 사람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논의를 촉발하는데
뒷감당에 대한 부분....소심한 저는 걱정이 되는데, 이분은 강하시더라고요. 자기 주장 펼치는 데 주저함이 없고...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하며 읽었답니다. ˝다행˝이라는 초란공님 말씀에는 절대 공감하고요^^

좋은 하루 시작하시어요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량살상 수학무기> 재밌게 읽었는데 신간이 나왔나보네요. 재밌을 거 같습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13 10:13   좋아요 1 | URL
<대량살상..>은 책으로는 아직 못봤는데, 저자가 워낙 강연을 많이 해서 자료가 많더라고요.

고양이라디오님! 저는 <셰임 머신>너무 재밌게 읽었어요. 다른 책들 읽을 거 많은데, 우선순위 무시하고 이 책부터 읽었을 만큼요 ㅎ

고양이라디오님, 항상 느끼지만 진짜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시고 또 좋아하시니 저도 책 친구로서 묻어가니 좋습니다요!

<종의 기원>이후, 저희는 ㅋㅋㅋ함께 읽기 이야기도 안 꺼내고 있는 상황이네요. ^^

고양이라디오 2023-06-13 17:23   좋아요 1 | URL
<종의 기원> 읽어야 되는데... 올해도 못 읽겠네요ㅠㅠ

저도 주말에 <셰임 머신> 도서관에서 빌려보려고요ㅎ

제가 보기엔 얄라님이 다양한 분야에 관심 많으신듯요ㅎ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의 책들도 많이 읽으시고요ㅎㅎ

함께 읽기... <종의 기원>의 벽에 막힌 걸까요ㅠㅠㅋ?

페크pek0501 2023-06-13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산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 주는 점, 간디의 비폭력 저항 운동, 나이지리아의 촛불 집회, 2020년대 Me T00 운동 등 구체적인 실례와 함께˝~~ 흥미롭네요.
셰임 머신, 에 관한 글이 요즘 많이 올라오네요. 검색 들어갑니다.^^

얄라알라 2023-06-13 11:5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미국인이다 보니, 미국 사회 자잘한 예시도 자세하게 알려줘서 저는 도움을 받았어요^^

4월에 나온 책 같은데 요새도 글이 많이 올라오나 보네요^^ 좋습니다

페크님의 리뷰를 기다리는 것으로^^

유수 2023-06-13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셜 딜레마 다큐에서 이분 인터뷰 재밌게 봤는데 책 찾아 볼 생각을 못했네요. 얄라알라님 페이퍼에 올려주신 저자 사진 덕분에 연결됐어요!! 궁금한 책이었는데 수치심을 역으로 활용한다는 게 특히 흥미로워요. 읽어봐야겠어요. 소개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3-06-13 12:54   좋아요 1 | URL
딜레마 다큐? 제목이 소셜 딜레마인가봐요
저야말로 유수님 덕분에 새로운 탐구거리를 가져갑니다

Punch Up, Punch Down의 느낌을 제가 이 부족한 페이퍼에서 살리지 못했는데
역으로 수치심이 약자의 무기, 혹은 대중의 펀치 업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저항의 가능성을 저자가 실례를 들어 보여주었어요. ....흠.. 제가 책이 넘 재밌어서 비판하지 않고 술술 읽었는데
다시 읽는다면 그 ˝Punch Up˝에 대해서도 고민할 지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작 책은 반납했는데 마지막 3부를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유수님 덕분에 드네요

han22598 2023-06-18 04: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쉐임 머쉰이라...진짜 현대 소비문화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인 것 같아요. 이 책 장바구니에 담아뒀어요...감사합니다. 리뷰해주셔서!!!

얄라알라 2023-06-25 15:4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han님, 셰임머신을 장바구니에 담아두셨다니, 반갑습니다.
저는 수학자인 저자가 사회비평을 쉬운 언어, 설득력 큰 예시로 해주니 참신하고도 이 책이 참 재미있었어요.

han님 혹시 리뷰올리셨으려나, 놀러가봐야겠네요^^
 

SF소설가 엘리자베스 문은 [잔류 인구 Ramant Population]에서 가방끈 짧은 할머니, '오필리어'를 통해 Ph.D 소지자들을 관찰한다. 이들이 문자와 데이터라는 상아탑에 갇힌 나머지 오감으로 흡수할 수 있는 삶의 충만함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관찰하고오필리어는 이들에게 경멸과 측은지심을 보낸다. 이런 관점은, 1940~6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교육받아 온 저자의 자기 반성일 수도 있다. 혹은 자폐증 아들을 키워 온 어머니로서, 정상성만 강조하는 제도권 교육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어떻게 닫아버리는지에 대한 성토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문은 오필리어의 입을 빌려서, 수평적이고 능동적인 배움이 얼마나 아름다운 과정인지를 독자에게 일깨워준다. "돈(학원비, 과외비, 등록금.... 촌지)"을 매개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는 수평적 배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보여주는 문장을 [잔류인구]에서 옮겨본다.

아! 나 엘리자베스 문, 많이 좋아하나 봐.


 매개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는 수평적 배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보여주는 문장을 [잔류인구]에서 옮겨본다.




오필리어는 자식들이 질문했을 때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을, 괴동물의 선을 넘는 호기심에 화가 났던 모든 순간을 떠올렸다. 그런 식으로 자기 자신도 윽박지르며 살아 왔다. 배울 수 있었던 온갖 것을 배우지 못하게 막았다. 그래야 한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시간낭비를 하게 둘 순 없다고, 필요하 것만 가르치지 않으면 결코 규율을 익히지 못할 거라고. 그는 기억 속에서 환한 얼굴을, 반짝이는 눈을 봤다. 열의에 찬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또한 떠올렸다. 아이들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그토록 왕성하던 호기심과 열의가 소극적인 복종의 틀 속에 들어가버린 것을. 단념해야 했던 만큼 많이 혹은 적게 시무룩해져서.

[잔류인구] 368쪽



나 역시 오필리어처럼 괴동물(행성 원 거주 생명체들)이 충족될 줄 모르는 왕성한 호기심을 가지고, 오필리어의 냉장고 성에를 가지고 놀 때 가벼운 짜증을 느꼈다. 비인간 종족이 인간의 배설과정을 궁금해 할때 "교육받은 짜증"을 느꼈다. 마치 교실에서 암묵적인 금기어와 금기행동을 어긴 학생에게 그러하듯. 오필리어가, 정확히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잔류인구] 덕분에 2023년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부"의 협소한 의미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배움(터득함)"의 의미를 비교해 보게 된다. 닫혔다면, 다시 여는 노력이라도 해야겠다.




21c 대한민국에서 "공부"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학교, 기관, 학원, 수업료, 강사, 선생, 기출문제, 경쟁, 무한 반복, 효율성, 선생. 규율, 합격, 선행.

* * * 

오필리어가 비인간 생물체들을 통해 알게 된 '배움'의 키워드는? 호기심, 열어놓음, 주종이나 위계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 이뤄짐. 스스로 자신의 선생님. 즉 (가르칠 대상이라는) 목적어가 필요하지 않음. 서로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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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게 미안합니다.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를 인테리어 책으로 착각했습니다. 잠들기 전 부담 없이 읽으려고 골라들었는데, 이 책은 전혀 가볍지 않았습니다. "쓰레기 시멘트" 고발하는 글이었습니다. 저자 최병성에게는 '목사'라는 직업군에에게는 어울리기 어려운 "불독" 이란 별명이 있습니다.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를 읽는 중간중간, 그 별명이 떠올랐습니다. '와! 혼자서 30년간 자료를 모았다고? 시멘트 회사들과 계속 싸워왔다고?' 경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저자의 불독 정신을 응원하는 마음에서 이 책의 존재, 쓰레기시멘트의 유해성을 알리는 데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병성은 1994년, 강원도 영월 서강 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조용한 전원의 삶을 꿈꾸었는데 그곳은 시멘트 공장에서 날아오는 악취와 분진으로 오염된 곳이었습니다. 그곳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존엄과 건강을 보장받아야야 하건만, 쓰레기 시멘트의 소리 없는 독살에 희생되고 있었습니다. 비록 "아무것도 아닌 개인"으로서 무력감을 느꼈지만, 최병성이 싸워 온 이유입니다. 시멘트 업계에서 대형 로펌을 끼고 협박하고 소송을 걸어왔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대 기업과 싸우고, 환경 재앙에 손 놓고 있는 환경부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그가 서문에서 말합니다.

"이제 국민이 깨어나야 할 때"

혼자 싸우기는 외롭습니다. 자신의 즉각적인 이권과 생명권이 위협받지 않으면 강 건너 불 보듯 환경 재앙을 관망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해서 싸움을 멈추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최병성이 무려 450여 쪽의 긴 책 마지막 장에서 "가족의 건강엔 관심 없고, 오직 아파트값에 혈안이 된 대한민국"이라며 한탄하겠습니까? 그는 영화 [정직한 후보]의 대사로 책을 마무리했습니다. 의미심장합니다.




강원도지사: 공사비 횡령하고 쓰레기 시멘트 쓰라고 시킨 거야?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어떡하게?

건설사 대표: 안 생겨요. 생겨도 증명 못 해. 한 5년 질질 끌다가 결론나면 그땐 다 살고 있는데 어쩔 건데? 아니 자기 아파트에 하자 있다고 떠들고 다니는 놈들이 어디 있어요? 집값 떨어질까 봐 벌벌 떨지.




최병성은 1990년대부터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여,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사회에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공론화해왔습니다. 국회로, 법원으로, 영월과 단양의 현장으로 뛰어다녔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당신의 집은 안전하냐?"라고 묻고 다녔고, "안전하지 않습니다"를 알려주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싸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맙소, 덕분에 한국의 쓰레기 시멘트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았소."의 반응은 있어도, 두 팔 걷어붙이고 같이 싸우려는 국민의 응원이 약합니다. 마치,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체념 반 무관심 반의 반응을 보이듯 말입니다. 불독도 지칠 수 있습니다. 같이 싸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선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이나 최병성 저자가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 자격으로 올렸던 기사들을 찬찬히 찾아 읽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그다음에는? 가동 가능한 채널들을 모두 동원하여 문제 제기하는 스피커를 키우는 것입니다.

방사능 오염수, 마셔 볼래?

쓰레기 시멘트 수저로 밥 먹어 볼래?

환경부는 온갖 유독한 쓰레기, 심지어는 가축의 분뇨에 방사능 쓰레기,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나오는 극도로 유해한 물질 등을 모두 시멘트 재료로 활용하도록 허용했습니다. 그 시멘트로 만든 건물에서 먹고, 자고, 숨 쉬는 사람들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땅과 물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시멘트 업계와 환경부는 한결같이 '무해성, 안전성'을 주장합니다. 저자 최병성은 묘수를 내었습니다. 쓰레기 시멘트로 숟가락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토론회 자리에서, 업계 관계자들에게 물었답니다. "쓰레기 시멘트로 숟가락을 만들었는데, 이걸로 밥 먹을래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는 환경부와 시멘트 업계 관계자만이 이 엄청난 환경 재앙의 주범일까요? 문제는 얽힌 실타래와 같아서, 사실 누구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입니다. 독성 시멘트로 지어진 집에 살면서 아토피와 암으로 고생을 하더라도 당장 아파트값이 중요하다는 사람들, 세계에서 플라스틱이나 시멘트 소비량이 둘째가라면 서럽게 많이 낭비하는 대한민국, 2~30년이면 아파트 갈아엎고 새로 건물 올리는 문제적 건축문화, 기피시설은 무조건 서울과 수도권에서 멀리멀리 보내려는 지역 이기주의 등등.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쓰레기 시멘트"에 압축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집은 안녕하십니까?]는 결국 "대한민국은, 우리 생태계는 안녕하겠습니까?"의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 책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같이 깨어나서, 함께 목소리를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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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23-06-10 14: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방팔방 시멘트에 둘러 싸인 곳에서만 사는 우리들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군요.

얄라알라 2023-06-10 21:04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니르바나님.
30년 동안 저자가 모아온 자료와 치밀한 준비력에 감탄이 절로 나와요^^
 

깐깐한 책 덕후도, 그저 "표지 디자인이 예뻐서" 책을 고를 수 있다. 영롱한 홀로그램이 대놓고 유혹적인 [잔류 인구 Ramnant Population]를 읽은 이유였다. 바로 알아봤다. 엘리자베스 문 Elizabeth Moon(1945~)이 멋진 분임을. 그래서 2021년 12월, 작가의 대표작[어둠의 속도 The Speed of Dark]까지 읽었다.



당시 "앞으로 (Elizabeth Moon을) 더 많이 좋아할" 것이라고 썼던데, 그랬다. 17개월 만에 다시 읽으니 작가가 더 좋아졌다. 나도 모르게 주인공 오필리어 Ofelia 할머니를 작가의 분신으로 상상하며 읽었다. 정작 엘리자베스 문은 50대 초반에 이 작품을 썼다. 하지만, 관절이 찔리듯 아프고, 건조해진 피부와 체구는 쪼그라들고, 사회의 시선에서는 '별 존재감 없는, 그냥 노인'으로 보이는 80대 고령의 경험과 정서를 생생하게 살려 냈다.


오필리어는 제목인 "잔류 인구"를 대변한다. '인구 population'라고는 하지만, 1인 '단독자'로 행성에 남는다. 갑작스러운 이주 명령에 따르다가 극저온 냉동수면 과정에서 죽느니, 40년 동안 일궈온 행성에서 내 맘대로 사는 걸 선택했기 때문이다. 오필리어는 행성 이주 프로젝트에서 노쇠한 자신은 이송비용만 많이 드는 폐기화물과 다름없음을 간파하고 존엄한 삶을 결단한다. 많은 고민이 따르지 않았다. 그냥 "떠나지 않을 거야."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행성에 잔존해야 할 당위나 거창한 이유 목록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떠나기 싫어서 남았다. So Cool!!!)

오필리어는 인간이 지워진 행성에서 나체와 맨발의 자유를 만끽한다. 칙칙한 작업복을 벗어던져 부끄러워했던 늙은 피부를 드러낸다. 화려한 비즈 장식을 만들어 달고, 알록달록 풍성한 색감의 옷을 입는다. 햇살에 기미가 짙어지건 말건, 모자도 없이 땡볕에서 밭일을 하고, 이웃이었던 사람들의 냉장고를 열어 음식도 챙긴다. 평생 돌보고 일구며 살아온 할머니는 자신의 몸과 집, 이웃의 집, 심지어는 행성에 남은 양과 소까지 챙긴다. 그러다가, "종족" 즉 행성의 원거주생명체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급물살을 타고 전개된다.

통념이라는 사회적 잣대로 보았을 때, 할머니는 결핍투성이다. 힘 부족, 학력 부족... 하지만, [잔류 인구]에서 엘리자베스 문이 입체적으로 살려낸 오필리어는, 매 순간 삶의 에너지로 충만하고 자신과 주변을 채워주는 사람이다. 외람되지만, 귀여우시기까지 한 할머니. 어슐러 K. 르 귄 역시 오필리어 할머니를 두고 "Ofelia—tough, kind, wise and unwise, fond of food, tired of foolish people—is one of the most probable heroines science fiction has ever known.”라고 찬사를 보냈다.


[잔류인구]는 [로빈슨 크루소]나 [파리대왕]처럼 젊은 남성(들)의 생존기가 아닌, 고령의 단독자 할머니의 생존기라는 면에서도 독특하다. 또한, 역사와 인류학을 공부했던 저자가 독자에게 인간존재와 사회에 대해 풍성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도 귀한 작품이다. "다른 존재, 다름"에 대한 폭력적 상상과 타자화, 언어를 넘어선 비언어적 소통과 교감의 아름다움, 현대 산업 사회 제도화된 '배움'의 경직성에 대한 반성, 개체의 생명뿐 아니라 공동체의 가치를 '우등/열등'의 판단 아래 차등화해온 인간의 역사가 우주확장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재연되는 데 대한 인간으로서의 부끄러움, 돌봄의 가치와 돌봄능력에 대한 젠더화된 상상. 등등.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권의 소설에 욱여넣을 수 있다니, 엘리자베스 문 할머니는 정말 부지런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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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3-06-09 1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둠의 속도]와 [잔류 인구] 담아갑니다.

할머니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얄라알라님이 아래쪽에 남겨주신 말씀들에 하나하나 다 공감합니다.

얄라알라 2023-06-10 08:56   좋아요 0 | URL
오! 감은빛님 혹시라도 이 책들 읽으신다면
같이 채팅으로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집니다!

새벽엔 BING AI로 엘리자베스 문에 대해 여러 질문을 하며 놀았어요. 그 정도로 저는 이 텍사스 출신 할머니 작가님께 호기심이 생긴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3-06-10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나 표지 디자인이 좋은 책은 구매하는데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 눈에 잘 들어오니까요.
얄라알라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3-06-11 10:13   좋아요 1 | URL
돌풍 우박 주의보는 봤지만, 현재로서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놀러가고 싶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해피 선데이 보내시어요~^^
 


카페 순례 일지에 듬성 등성 등장시키는 카페에 와 있다. 주차요금 무료인 주말에 어쩌다 방문한다. 아주 우연인데, 이 카페 올 때 두 번 연속 노란 표지의 책을 읽었다. 크리스티앙 보벵(Christian Bobin)의 [가벼운 마음(La Folle Allure]은 BTS의 BUTTER와는 사뭇 다른 톤의 연노랑을 입었는데, 그야말로 말랑한 달콤함과 맛봤어도 다시 탐하게 하는 중독성 소설이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시인이라는 크리스티앙 보뱅의 문체에 빠져든 애서가들의 찬사는 이미 작년부터 뜨거웠다. 읽어보니 그 찬사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보벵의 매력은 책표지 색처럼 단 하나의 이름에 담길 수가 없겠다. 그 연노랑이 끈적한지 매끄러운지 건조한지 질척거리는지 보기만 해서는 알기 어렵다. 오래간만에 소설을 말 그대로 음미한다. 후각세포를 뇌로 옮겨다 놓았다 착각할 만큼 향기가 그윽한 술을 마실 때처럼, [가벼운 마음]을 혀끝으로 음미하며 천천히 읽는다. 혹시 놓쳤을까 봐 두 번을 내리읽는다.



[가벼운 마음]의 주인공 '뤼스'는 두 살 때 '누런 이빨'에 '누런 눈'을 하고 '누런' 오줌도 지리는 첫사랑이자 수호천사를 두었다. 폴란드에서 공수해온 야생의 늑대였다. 그 아이는 또한 서커스단과 유랑하며 생계를 꾸리는 부모를 두었다. 그 자체로 이미 떠도는 삶인데도, 뤼스는 어린 시절 내내 가출을 감행하고 여러 가명으로 존재의 망토를 새로 지어 입어 가며 세상에서 사라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복잡한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하자'라며 내일의 태양에 미뤄버리는 그 아이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와도 닮았다. 내가 흠모해온 '올리버 색스' 의 엉뚱한 호기심 그리고 보벵의 또 다른 작품, [흰옷 입은 여인], 에밀리 디킨스의 은둔도 떠올리게 한다. '뤼스'는 내면에 든든한 수호천사를 둔 행운아이기도 하다. 그 수호자 덕분에 뤼스는, 허영을 충족하며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중심에 둔 삶을 살 수 있다. 나에게 [가벼운 마음]이 단순히 한 자아의 침잠형 고백록이 아닌, 삶의 재미를 잃어가는 요즘 사람들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확장형 대화집이다. 그래서 최근 읽었던 한국의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의 산문집과는 결이 매우 다른 전율을 준다.



Ji-Elle, CC BY-SA 3.0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3.0>, via Wikimedia Commons


[가벼운 마음]을 두 번 내리읽으며 메모했던 쪽지를 보니, 몇 개의 핵심어를 꼽겠다.


  • 글쓰기와 작가라는 천직

  • 엄마라는 존재

  • 나의 수호천사는 나

  • 가명과 존재의 가벼움

메모지를 구겨 버리기 전에 정리해 본다.




'뤼스'에게는 미친 엄마가, 강렬하게 매력적이고 적절하게 미친 엄마가 있다. "미친 엄마는 야수 같은 아이들의 마음과 가장 잘 어울리는 훌륭한 엄마"(25)다. 까르르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뤼스의 엄마는 여느 엄마들처럼 "아버지들의 어두운 기운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162) 한다. 새로운 가명을 써서 가출을 재시도 하는 방탕한 딸이 돌아올 때도 웃어주고, 17살에 결혼했던 딸이 10년의 결혼생활에서 캐리어 몇 개 달랑 들고 쫓겨 났을 때도 힐난하지 않았다. 아내를 못 잊어 처갓집을 찾아온 (전) 사위에게 싸늘하게 대하는 뤼스에게도 "딸아, 너는 좀 사근사근한 맛이 없어."(154)라고 농을 던질 뿐이다. 엄마를 향한 뤼스의 신뢰와 사랑은 절대적이어서 뤼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 어머니는 자식들이 무엇을 하든 언제나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를 비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다. 그것이 엄마로서 그녀의 특권이며, 그 특권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 것이 그녀의 배포다."(151) 영화배우로서도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뤼스의 매력은 어머니의 가벼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또 있다. "가벼운 마음"의 발원지는.


중학생 시절 뤼스의 대모(하숙집 주인)이었던 롱샬롱 부인은 할머니께 들은 말씀을 전해주었다. 핵심은 '가벼운 마음'이다. "아가야,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이야. 어느 누구도 너한테서 즐거움을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해라...사실 내 남편은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어. 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유였단다. 결혼할 때 내 마음에는 즐거움이 있었어. 그런데 즐거움이 떠나 버린 거야. 그래서 이혼한 거지."(87)

뤼스 역시 3년간 이웃집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 쫓겨날 때, '티타티티타티 티타티티타티' 바흐의 아리아를 머릿속으로 재생시키며 경쾌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쫓아낸 남편이 다시 찾아와 '당신 없인 살 수 없다'라고 애걸할 때도 "그게 사랑과 무슨 상관이 있어? 우리는 당신이 없으면 괴롭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함께할 수는 없어. 적어도 그 사람이 자식이나 어머니가 아니라면 말이야. 로망. 나는 당신 엄마가 아니야. 그리고 더는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지 않아."(153)라고 가볍게 응수했다.

뤼스는 가볍다. 글도 가벼운 마음으로 쓴다.


"나는 글을 쓸 때 잉크로 쓰지 않는다. 가벼움으로 쓴다. 설명을 잘 했는지 모르겠다. 잉크는 구매할 수 있으나 가벼움을 파는 상점은 없다... 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여름비의 도도한 서늘함에, 침대맡에 팽개쳐둔 펼쳐진 책의 날개들에, 일할 때 들려오는 수도원 종소리에, 활기 찬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음에...갓난아기의 눈꺼풀 위에, 기다리던 편지를 읽기 전에 잠시 뜸을 들이다 열어보는 몽글몽글한 마음에....가벼움은 어디에나 있다. 그럼에도 가벼움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고 희박해서 찾기 힘들다면, 그 까닭은 어디에나 있는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기술이 우리에게 부족하기 때문이다."(69)

뤼스에게, 뤼스의 창조자이자 작가인 크리스티앙 보벵에게, 혹은 보벵이 존중했던 시인 에밀리 디킨스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까? 가벼움으로 글을 쓴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가벼움으로 써 본 적 있을까? 그게 뭔지 알기나 할까?빈칸 채우기를 해 본다.

"요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세 가지는 ________, _________, _______이다. 처음 두 개는 액체다. 잉크와 와인. 세 번째는 기체다. 날개와 기쁨. "(125) 아! 아름다워!보뱅의 아름다움은 문장에서 온 게 아니라 세상을 사는 태도, 그 자체에서 나왔나 봐! 그래서 흉내조차 어려워. 보벵에게 세 가지는 "글쓰기, 아르부아 와인, 소나타3번." 보벵을 따라서 나의 세 빈칸을 채워본다. "책 읽기, 새우깡, 나무"


그렇다면, 얼핏 뤼스만큼이나 충동적이며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뤼스의 남편, 로망은 가벼운 마음을 가졌는가? 그랬다면 헤어질 이유가 없었을 텐데? [가벼운 마음]을 두 번 읽으니, 부부 사이에 놓인 강의 폭을 얼핏 가늠했다. 뤼스는 교육받지 못하고 가난한 부모를 두었고, 로망은 유서 깊은 명문가 출신 법학도이다. 비록 22살에 아버지의 직업과 명예를 이어받을 창창한 미래를 차 버리고 17세 소녀 뤼스의 허리를 감아 안았지만, 로망은 로망이다. 꿰뚫어보는 늑대의 눈을 가진 뤼스에겐 보였다. 로망이 예술가지망가들과 어울리며 환담을 나눌지라도, 차별받는 늑대, 유대인 그리고 어린이들이 더 살만하도록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은 전혀 없었다. 오직 자신의 재능에 대한 기대와 명예욕이 있을 뿐.

"아름다운 동네에는 어릿광대를 위한 자리가 없다. 부자의 세계와 가난한 자의 세계는 둘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보다 훨씬 심하다. 부자들을 위한 단 하나의 세계만 있으며, 그 옆이나 뒤에 있는 구역은 부자들 세계의 폐기물에 대해 알려 줄 뿐이다."(117) 딸인 뤼스가 알아챈 것을, 과묵한 뤼스의 아버지조차 간파했다. 아버지는 (전)사위에 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별로 호감 가는 타입이 아니다. 널 기다리면서 담배 한 갑을 다 피우질 않나. 내가 파 놓은 구덩이에 꽁초를 던지질 않나...사랑의 슬픔이 크면 무슨 짓을 못 하겠느냐만, 그놈은 슬퍼서 그런 행동을 한 게 아니야."(151)


뤼스는 명문가의 이름, 직함, 미래를 예비한 통장잔고 등을 계산하기보다는 가벼운 마음을 따라간다. 10년간 살았던 남편 로망과 쉽게 헤어졌듯, 배우로서 크게 성장할 기회도 껌 뱉듯 별다른 충격 없이 뱉어버린다. 캐나다행 비행기에 오르기만 하면 인기와 돈과 유명세는 따 놓은 당상인데, 탑승하지 않는다. 수호천사가 강력하게 명했기 때문이다. "따져 묻지 마. 당장 '쥐로'로 가서 호텔 방을 잡고,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쓰는 거야. 서커스, 중학교, 묘지."(174)

뤼스가 추구하는 가벼움은 바로 이런 것. 뤼스를 침묵시키고, 도망가거나 사교성을 낮추게 만드는 자폐증 걸린 늑대 아이가 원하는 대로의 가벼움. 그 가벼움은 성찰하지 않음에서 오는 허영과 위선의 촐랑거림이 아니다. 그런 촐싹거림은, 우리가 질리도록 많이 봐왔는데 종국은 불행으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뤼스는 영화산업을, 돈에 대한 불안 외에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비싸기만 한 비눗방울bubble이란 걸 간파한다. 글쓰기를 "잉크와 고독과 고요함으로 꿀 만들기"(31) 에 비유하는 뤼스에겐 사람들의 수치심 없는 촐싹거림이 놀랍다. "사람들이 무엇에서든 글 쓸 거리를 너무도 빨리 찾"고 "소음에 불과할 뿐인 언어"(138)를 대량 생산해 내는 이유 역시 돈 때문이라고 본다.


뤼스, 뤼스의 수호천사 늑대 아이는 비싼 거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행복을 담보해줄 것인양 세뇌하는 비싼 거품보다는, 액체로서의 술과 잉크, 그리고 기체로서의 음악에 시간을 들인다. 그렇다고 방관자처럼 스쳐만 가지 않고 뤼스는 삶을 기록한다. 그녀는 글로 꿀을 만드는 작은 꿀벌이고, 그 벌을 창조한 크리스티앙 보뱅 역시 부지런한 작가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살되, 글만큼은 남기고 싶다." [가벼운 마음]이 나와 이 시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확장형 메시지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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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4-17 12: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즘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 종이책 노트북 커피.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필사하기 위한 노트와 볼펜.
요즘 필사하는 재미에 빠져 보려고 해요. 많이 쓰는 게 아니라 한두 문단을 쓰는 거죠.
이것도 꾸준히 하면 꽤 양이 많아질 듯해요.

얄라알라 2023-05-01 00:3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페크님. 5월달에 답글을 달자니 부끄럽습니다. 서재 관리를 올 상반기 너무 안 하다 보니..

필사용 노트와 볼펜, 특수 도구(?)를 준비하셨다는 자체가 마음가짐을 다르게 할 것 같습니다.
글씨를 점점 쓸 일이 적어지는데, 저도 언젠가는 필사에 도전해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23-04-18 20: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단 사서 쟁여 두기
시작한 작가랍니다.

그리고 최근작은 도서관에
서 빌려다 보다말고 반납한
추억이 -

독서록이 한 편의 아름다운
시처럼 그렇게 촉촉하게 다
가오네요. 쨩 -

얄라알라 2023-05-01 00:31   좋아요 0 | URL
아...도서관엔 추억 부스러기를 묻혀 놓은,
살짝 속페이지 열어보고 넘겨보고 반납한 책이 얼마나 많이 있는 걸까요?

저도 오늘 읽다 만 책들을 여럿 반납하고 새 녀석들을 데려왔습니다.

제 부족한 글을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레삭매냐님^^

그레이스 2023-04-19 05: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아두고 있습니다.
이 페이퍼때문에 조바심 나네요
빨리 읽고 싶어서...^^

얄라알라 2023-05-01 00:32   좋아요 0 | URL
이런 조바심이야 말로 사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명절만 기다리던 그 조바심....명절 때 책 왕창 읽으려고 얼마나 명절을 기다렸던지...
그런 마음이 어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참 다행입니다^^

그레이스님, 해피 5월 시작하시어요

초원 2023-04-2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얄라님의 흥분이 서재 전체에 퍼져서 전해집니다. ‘확장형 메시지‘가 가벼울수 있다니 신기합니다.

얄라알라 2023-05-01 00:34   좋아요 0 | URL
초원님 안녕하세요?
와우! 2023년의 5월이라니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요

블레이드 러너, 그 뒤의 숫자에 도달했다니
게다가 5월...

5월 좋은 출발 준비하셨는지요?^^ 항상 건강과 안녕을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