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중국사 2 - 삼국시대에서 당 왕조까지 만화로 읽는 중국사 2
류징 글.그림, 이선주 옮김 / 레디셋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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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만화로 읽는 중국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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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도 제대로 모르는데, 중국사? 게다가 중국사는 전공학자나 해독해낼 암호문 아닐까?'  <수호지>와 <삼국지> 읽고 역사 교과서에 등장했던 중국 왕조 이름 외우는 수준에서 멈춘 중국사 공부. 혁신적이고 친절한 책을 만난 덕분에 더 공부해보고 싶어졌다. 처음엔 만화, 얇은 만화책이라고 얕보았다. 하지만 두 번을 내리 다시 읽었다. 처음엔 활자 위주로 메모해가며 읽고 지나갔는데, 자세히 보니 일러스트레이션에도 중국역사에 대한 여러 은유와 상징이 가득했기에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삽화에 묘사된 인물의 표정과 여러 상징들을 자세히 살폈다.

이 책을 그리고 쓴 작가 류징(Jing Liu)은 베이징에서 태어나 베이징 대학에서 수학한 예술가이자 사업가라고 한다. "한국계 미국인 지환과 지오, 사라, 엘리자베스, 케이틀린. 내 아들 이푸, 그리고 중국계로 태어난 수많은 아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라는 작가의 말과 이 책이<Understanding China through Comics>라는 영문판으로도 인기를 끈다는 점에서 작가가 단지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세계인을 위해 집필했다고 짐작된다.

 

 

<만화로 읽는 중국사>의 최대 강점이자 차별점은, 만화 일러스트레이션이 어려운 중국사를 이해시켜주는 보조 수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역사의 흐름을 독자에게 각인시키며 시각화한다는 점에 있다. 얼핏 단순해보였지만, 역사의 장면장면과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살려낸 일러스트레이션은 책을 덮고 나서도 머릿 속에 깊이 각인된 느낌이든다.  예를 들어 안녹산의 난 이후, 당나라의 정치적 지형 변화는 독자적으로 세력화하고 자치권을 얻은 군사령관을 일러스트레이션 한 컷으로 압축해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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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679년경부터 기원후 220년까지를 다룬 1편에 이어서, 2편에서는 "분열의 시대"를 집중 설명해준다. <삼국지>를 통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삼국시대(220-280)에서 당 왕조까지 이어지는 이 시기는  한 왕조가 몰락하고 제국이 분열되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 어찌나 전쟁이 잦고 끊임 없었던지 한 왕조말 5천만 명의 인구가 진 왕조 초에는 고작 1천 600만명만 남았다 한다. 빈자와 부자의 층화도 심화되어 상류층인 귀족은 각종 특권을 누리며 호위호식했지만, 가난한 자는 무전유죄를 온 몸으로 겪으며 살아야 했다. 역사가 늘 가진 자의 것이라는 의식이 강한 독자에게는 새로울 바 없는 묘사겠지만 지은이 류징이 책 전편에서 지속적으로 불평등의 이슈에 관심을 드러낸다는 점이 인상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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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류징은 공자의 <논어>, 사마천의 <사기열전>, 여사면의 <중국통사> 등 중국 고전과 최근의 연구를 바탕으로 <만화로 읽는 중국사>를 집필했다는데, 무엇보다 중국 역사에서 종교와 철학(혹은 종교이자 철학?)의 중요성을 잘 살려 서술해주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류징은 위나라의 귀족들이 빠져들었던 현학(玄學), 유교니 도교와는 다른 철학으로 백성들을 위로해주었던 불교 등 중국사에서 종교의 중요성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다음에 이어질 3편에서는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던 5대 10국에서 원왕조까지를 살펴본다. <만화로 읽는 중국사> 덕분에 중국 5000년의 역사에 한층 가까이 다가간 뿌듯함이 올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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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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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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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에 사회 봉사를 최근 시작했거나 계획하는 가까운 지인들이 있다. 나 역시 물리적 몸 쓰기로 봉사를 해 왔으나 뭔가 자기만족적 구석이 있기에 말 꺼내기도 부끄럽긴 하다. 그런데, <1도씨 인문학> 덕분에 생각이 확 바뀌었다.  'SNS용 30초 시선잡기의 편집이라 재미로 넘기면 되겠네.'하는 가벼움으로 집어 들었다가 묵직한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은 고루한 방식으로 한정해온 '나눔'과 '봉사'의 채널을 활짝 열고 확장해 주었으니까.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공동의 목표로 시작한 'BETTER 프로젝트'의 팀원들이 소개한 50개 이야기를 읽다보면, '아, 나눔이 꼭 물리적이지 않을 수 있구나. 다양한 채널로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있구나'란 깨달음에 감동이 밀려온다. '물질보다는 마음의 나눔도 아름답다. 마음 가는 곳에 공생의 실천이 따른다.'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막상 실천하는 이가 많지 않기에 서랍속에 넣어 둔 윤리 강령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 <1도씨 인문학>에서는 밥 먹듯, 숨 쉬듯 자연스럽게 나누고 함께사는 모습이 가득하다. 어찌나 흐뭇한지, 로또가 당첨된다면 이 책을 사서 전국의 중고등학교 학급문고로 보내고 싶다는 유치한 생각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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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바쁘다 바빠'가 훈장이요 사회적 지위의 표상처럼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 긴 이야기는 역효과를 낸다. 청자를 고려하여 맥락을 다 깔아주고 설명하다보면 청자는 이미 귀를 닫고 있다. 오죽하면 뉴스도 맥락 다 잘라낸 탈맥락의 사진 짜집기가 인기 있을까?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길게 이야기하면 안 듣는 이가 많아졌다. 그런 면에서 <1도씨 인문학>의 메세지 전달 방식은 효율적이고 사람들의 요구에 잘 맞는다. 50편의 사연이 실려 있지만, 글보다는 사진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기에 각 사연을 파악하는데 1분도 안 든다. 그런데 전달력은 강력하다. 'Better의 총책임자 이승준, 카피라이터 한소라, 디자이너 여상윤, 프로젝트 총괄 김현지'는 자신들의 재능이 가장 빛날 지점에서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듯 하다. 짧은 문장들은 쏙쏙 마음에 와서 박히고, 편집된 사진도 뇌리에 계속 남는다. 게다가 미국 뉴욕, 중국, 필리핀, 우간다 등 세계 각국의 따끈한 사연에 더하여 가까운 한국 사회의 이야기를 적당한 비중으로 버무렸다. 서로 돕고 싶어하고, 포옹받고 포옹해주고 싶은 마음이 국경과 문화권을 넘어 인류 공통의 욕망임을 자연스레 드러내는 구성이다. <1도씨 인문학>에서는 소외받은 사회적 약자, 비단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 일관되게 손을 내민다. 온정주의의 주종관계에서가 아니라, 동반자로서 손 맞잡음으로.
*
"눈으로 읽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생각만하기 보다는 행동으로 옮겨보세요"라는 출판사측의 홍보문구가 <1도씨 인문학>을 먼저 읽은 독자로서, 이 책을 잘 읽는 법을 가장 잘 압축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동하고 싶어진다. 당장 그 작은 행동으로서 <1도씨 인문학>을 여기저기 선물해야 겠다. 좋은 바이러스는 전염시켜야 세상이 더 "Better"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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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김경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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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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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찌질한 위인전>을 위시하여, 유명 인물들을 맛깔나게 버무려놓은 책들이 많이 나온 줄로 안다. <세상을 바꾼 질문들> 역시 그처럼 가볍게 넘길 책인가 싶어 집어 들었는데, 생소한 베살리우스니 울스턴크래프트뿐 아니라 평소 더 알고 싶었던 이름들이 함께 올라 있다. 하인리히 슐리만, 프란츠 파농, 에드워드 사이드 등 소개된 인물의 전공과 저자 김경민의 전공분야가 겹친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제국주의와 고고학: 19세기 영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썼고, <네이버캐스트>의 '인물과 역사'에 글을 연재하던  재원이다. 스스로 말하길 "학계에 몸담고 있는 학생으로 '전공자들'을 위한 글만 썼던" 그에게 네이버캐스트에 연재하기는 참신한 도전이었다.

 독자로서 고마워할 일인데, 을유문화사의 편집자가 김경민의 글재주, 정확히는 독특한 관점을 알아보았나보다. 편집자는 "(그 유명한) 인물이 왜 그런 생각을 하였을까?" 즉 세상을 바꾼 '생각의 단초'를 집중적으로 탐색해보자고 제안했다. 김경민은 그 기획의도에 부응해 무려 열다섯 명의 인물을 소개한다. 저자는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도 "세상을 아름답고 윤택하게 만든 인물들에 대해 빠르고 쉽게" 접하도록 글을 썼다한다. 성공이다. 충분히 흥미롭고, 기대 이상으로 자극적이다. 책을 덮고나서도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 소개된 인물들이 머릿 속을 파고 들며 생각을 가다듬어 보라고 자극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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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꾼 질문들>에 소개된 열다섯 명은 연대기 순으로 배열된 듯 하다. 르네상스기 비운의 천재라는 베살리우스를 필두로 마키아벨리, 로베스피에르, 메리 울스턴트래프트, 베토벤, 찰스 다윈, 슐리만, 던컨, 샤넬, 애거사 크리스티, 파농, 마거릿 미드, 에드워드 사이드, 크레이그 벤터, 그리고 일론 머스크의 순서이다. 국적, 활동하던 시기나 활동 분야 등에서 공통분모를 찾기 어려우나 이들은 도전정신에 충만하고 행동력이 따라준 혁신가였다는 점에서는 한 우산을 나눠 쓸 수 있겠다. 추리소설, 현대무용, 고고학, 음악, 인류학, 역사학, 문화비평, 해부학, 유전공학,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며 인물을 선정한 저자의 매의 눈에 감탄한다. 그래도 굳이 딴지를 걸자면, 동양 출신의 인물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 동양에도 세상을 바꾼 생각의 단초를 보인 이들이 많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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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공부하며 박사 논문 쓰느라 바빠 무용이나 고전 음악, 해부학까지 탐색할 여력이 많지 않았을텐데 김경민이 쓴 글을 보면,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 썼다고는 짐작이 안 갈 정도로 인물의 핵심을 짚어 파고들어갔다는 인상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화두인 '생각의 단초'를 놓치지 않았기에, <세상을 바꾼 질문들>을 다 읽고 나서도 개개의 인물들에 얽힌 에피소드보다는 굵은 흐름이 남는다. 어떤 이들은 개인의 영달을 위해 고민하고 달려나가지만, 어떤 이들은 왜 자신의 고민을 해결할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세상에 도움을 줄까? 주위 시선이나 편견에 굴하지 않고 내면의 소리를 끝까지 따를 수 있었던 그들은 어떤 정신력을 가졌을까? 대한민국 땅에서도 혁신적인 질문을 던지고, 과감히 행동하는 천재가 나올 수 있을까? 어떤 풍토여야 그런 인물이 나올까? 등의 질문이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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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열 다섯 명의 인물 중 애거사 크리스티, 더 정확히는 그녀의 첫 남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나 매력적인 미남을 남편으로 두고 행복한 가정을 유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중에 머릿 속으로는 온갖 살인법과 범죄자 캐릭터를 구상했을 그녀를 상상하니 묘하게도 소름이 돋는다. 그 외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라는 역작에서 흑인의 정체성을 고민한 프란츠 파농이 활자에 묻히지 않고 실제 해방운동가로서 뜨겁게 살았고 에드워드 사이드 역시 이스라엘 초소에 돌을 던졌다는 일화는 실천적 지식인상을 고민하게 해준다. <세상을 바꾼 질문들>을 읽고나면, 고민하되 아집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움직일 큰 고민으로 나아갔던 인물들 뒤편으로,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는 저자 김경민의 모습이 보인다. 앞으로도, 역사 전문가로서 역사 문외한을 위해 이런 유익한 책을 많이 써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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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 -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가사 휴식 균형 잡기
브리짓 슐트 지음, 안진이 옮김 / 더퀘스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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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타임 푸어Time 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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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경험하지만, 선입견이 참 무섭다. 봄철 메이크업에나 쓰일듯한 살구빛 표지에 하이힐을 신은 엄마가 아이를 들쳐매고 달려나가는 표지. '항상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을 위한 일 * 가사 *  휴식 균형잡기"라는 부제를 보고 워킹 우먼의 고해성사 겸 자기계발서라고 짐작했다. 오판이었다. 더군다나 <타임 푸어>를 읽지 않았더라면 '오호라! 통재여'할뻔 했다. 그 정도로 저널리즘 정신이 투철한 기자 출신 저자는 숱한 인터뷰와 현장취재로 얻은 자료에,  B급 학자들이라면 명함을 감추고 싶어질만큼 맹렬하게 학문적 자료를 탐독하고 분석하여 유려한 문체로 엮어내었다.  표지만 보고 '일과 가정 사이에서 애매한 살구빛을 취하는 엄마들'이나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손해다. 무조건 읽어라. 며칠이 걸리더라도, 종횡무진 배치된 자료의 방대함에 압도될지라도 무조건 읽어라. 특히 저출산 대한민국 사회에서 엄청난 세금을 써가며 출산장려정책을 고심하는 정책입안자들이여, <타임 푸어>를 꼭 읽어보라!

*

<타임 푸어>의 첫 몇 페이지를 읽을 때만 해도, 저자 브리짓 솔트과 나와 비슷한 부류라고 생각했다. 멀티 테스킹을 일상화하고, 맺고 끊어가며 일하기 보다 뭉뚱그려 해결하기를 선호하는 습성이 나랑 비슷했으니까. 실제 그녀는 퍼듀 대학의 조직심리학자인 엘렌 에른스트 코섹 박사가 "'퓨전 애호가 (fusion lover)'라고 부르는 극단적 통합(ubentegrator)'유형 (408쪽)"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10시간 넘도록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한 가지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뚝심에 더해, 집필을 위해 과감하게 집을 떠나오는 결단이다. 쉽게 말해, 우선 순위의 일에 에너지와 시간을 집중 투자하는 분배력 말이다. 브리짓 솔트에게 불도저 같은 행동력이 없었더라면 이 놀라운 책은 독자를 만나지 못하고, 그녀의 머릿 속에서만 그물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타임 푸어>의 전반부에서는 '바쁨'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짚어본다. 톨스타인 베블렌이 <유한 계급론(Leisure Class)>에서 유한계급이 '과시적인 한가로움'과 '대행적 한가로움'을 통해 신분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를 분석했다면, 최근의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바쁨의 과시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고 높인다고 한다. '시간=돈=자원'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의식, 무의식적으로 바쁨을 과시할 뿐더러, "저절로 바빠졌다"는 수사를 채택한다고 한다.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일해도 불행한 사회, 주인이 아닌 노예의 삶으로 이어지지만.

*

브리짓 솔트의 주장에서 가장 경청할 부분은 바로  "쫓기는 삶(overwhelm) (40쪽)"이 개개인이 시간관리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구조적인 문제는 지적이다. 우리는 "바쁘다, 바뻐"를 연발하면서도 정작 삶의 완성도와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호소하면, '시간관리능력의 부재'나 '무소유와 반대로 가는 과잉욕망'을 탓하는 개인 비난의 논리에 익숙해있다. 즉, 개인이 욕심을 버리거나 시간관리를 잘하면 해결되리라고 문제를 간과해버린다. 하지만, 브리짓 솔트는 '쫓기는 삶'을 보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접근한다.

 '이상적 노동자'라는 문화적 이상향(ideal type)에의 환상을 양산하고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미친 리듬을 비판한다. 동시에 이러한 압박은 특히 여성에게 불리하다며, 젠더의 요소를 가미해 분석한다.  본인 스스로가 두 아이를 키우는 커리어우먼으로서 '이상적 모성(ideal motherhood)'과 이상적 노동자 사이에서 괴로웠던 체험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특히  "여성의 시간은 오염(262쪽)"되기 쉽다는 지적을 한다. 오염되고 분절된 시간감각으로는 칙센트미하이가 말하는 몰입(flow)을 경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여성 스스로 '죄책감, 두려움, 양가감정'이라는 자기 비난을 그만두고 시간 효능감을 높이도록 전략을 세우라고 한다. 그 과정에서 놀이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직접 체험해보는 등, 브리짓 솔트는 독자에게 최선의 대안을 보여주기 위해 말그대로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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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를 읽다보면 불도저같이 행동으로 몰아붙이는 그녀의 기질을 느낄 수 있는데, 그녀는 "나는 왜 항상 시간이 부족할까?"의 질문에 답하며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질문을 바로 바로 해결한다. 아니 적어도 바로 바로 그 질문을 답할 최적격의 권위자와 전문가를 직접 만난다. 놀라운 열정과 행동력이 아닐 수 없다. 덕분에 독자는 '시간의 아버지'란 별명을 가진 사회학자 존 로빈슨,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팻 뷰캐넌, 국방성 차관이었던 미셀 플루노이, 인류학자이자 세 아이의 엄마인 사라 블래퍼 하디 등 많은 저명인들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저자는 실제 '균형잡힌 삶'이 가능한지를 모색하면서 많은 기업인, 사회운동가 및 보통의 엄마아빠들을 직접 만나고 비단 하루뿐이라도 그들의 삶을 체험해본다. 웬만한 열정과 완벽주의가 아니고서는 이루기 어려운 성취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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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때, 자기계발서 여러권 대신 <타임 푸어> 한 권을 가방에 넣어가 탐독하라! 나 역시 브리짓 솔트의 신참 팬으로서 그렇게하려한다! 그녀의 카피캣은 아니더라도,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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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푸어>는 각주만 70페이지에 이른다. 저자 브리짓 슐트가 여성학, 사회학, 진화 생물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학술서는 물론이요 방대한 양의 저널과 신문 기사 등을 참조했음을 알 수 있다. '참조'만이 아니라 완전히 브리짓 슐트의 브뤼꼴리쥬 작업을 통해 방대한 자료의 옷감이 새로운 수공예맞춤옷으로 탄생했다. 저자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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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산 후, 육아와 전문번역가로서의 일을 병행하며 시간에 압도당해 살아왔다는 안진이의 번역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다만 303쪽에서 Kung이라는 여성을 언급했는데, 혹시 !kung족의 오역인지, 아니라면 !kung족 일원으로서 Kung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인지 궁금하다. !Kung족의 경우 지을 수 있는 이름의 풀이 남 녀 성별에 따라 제한된 편인데, 아직 kung이라는 이름의 일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역자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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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경제학 - 경제인이 되기 위한 깊고 맥락 있는 지식
이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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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보는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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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고놈, 왠지 전문가 집단에서나 통할 비밀 공식과 숫자로 치장한 도도한 놈 같아 모른 척하고 싶은데, 그러자니 왠지 나만 손해 보게 될까 싶은 조바심에 손 놓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까막눈 주제에 경제학 교과서를 뒤져보자니 '억!' 소리만 나오는데……. 이럴 때 경제 전문가가 속 시원히 농축액 몇 숟가락 떠 먹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얇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고기를 잡아달라는 의미가 물고기 잡는 감각을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각종 경제 뉴스와 경제 정책을 접할 때 '호갱'이 돼서 휘둘리지 않고, 어떤 프레임에서 해석할지 방향이라도 누가 제시해주었으면 싶다. 그런 욕심에서 만난 저자가 바로 이진우이다.

 한국기자협회 경제보도부분 기자상을 받은 경제전문기자이자, MBC 라디오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로서 그에게는 '경제탐정'이라는 별칭이 붙어 다닌다. 출판사 측의 소개글을 인용해보자면, 이진우는 "경제 사안을 살필 때 원인과 과정을 중요시하고, 관계자 모두의 입장을 고려하는 습관" 때문에 탐정으로 불리며 동시에 여기저기서 모셔가고 싶어하는 탁월한 경제해설가라 한다. <거꾸로 보는 경제학>을 읽고 나니, 그가 '일상의 경제학'에 주목하여 대중의 눈높이를 친절하게 맞춰준 경제해설자라는 평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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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전문가 이진우 기자가 90%를 위한 경제학, 일상과 접점을 이루는 경제학을 지향함은 <거꾸로 보는 경제학>의 목차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총 4장 구성의 각 제목은 다음과 같다. 1장 ‘경제는 계속 성장하는데 왜 우리는 점점 가난해지는가,’ 2장 ‘소비자가 될 것인가, 호구가 될 것인가,’ 3장 ‘국가는 성적으로 말하고, 국민은 피부로 말한다,’ 4장 ‘경제 이론으로 인간의 삶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경제 비전문가들도 한번쯤 궁금해봤을 질문들을, 21세기 대한민국 사회에서 자주 접하는 소식들과 엮은후 해석을 해준다. 그의 최대 강점은 '진단'하고 '답'내리는 판결자 역할이 아닌, 독자가 경제 현상 이면의 그물망을 들쳐볼 수 있도록 맥락을 제시하고 해석의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스스로 미디어매크로(Mediamacro)라는 용어를 빌어 말하길, 자신의 글 역시 "필자만의 좁은 생각에서 나온 글들이므로 넓게보면 '미디어매크로'의 범주에 속한 편협한 스토리일 가능성이 크다. 독자들도 그렇게 바라보고 그렇게 의심해주면 좋겠다.(7쪽)"라며 해석의 다양성을 자극한다.
 

 

총 22개의 소챕터 모두 흥미롭지만 그 중 개인적으로 인상깊었던 이슈들은 "밤에는 왜 택시가 잘 잡히지 않을까? (32쪽)", "세금에 붙는 이자는 누구의 것인가?"(106쪽) 등이다. 전체적으로 그의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역발상의 혁신성'에 게슴츠레 떴던 눈을 크게 뜨게 된다. 제목 <거꾸로 보는 경제학>처럼, 기존 나의 상식을 뒤흔드는 해석이 많았다. 경제 현상의 일면이 아닌 다면을 중층적으로 파악하는 훈련이 체화된 기자와 범인의 차이가 아닌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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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평소 나는 제왕절개 출산비율의 증가를 '과잉의료화'라는 부정적인 코드로만 해석해왔는데 이진우 기자는 이를 정부의 인구조절정책 실패에 따른 부작용으로 해석한다. 저출산으로 인해 산부인과의사들의 기대수입이 낮아지자 그 영향으로 제왕절개시술비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저자는 공무원 낙하산 인사에 대해서도 내 고정관념과 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공무원 연금 문제를 연금 사슬이라는 맥락에서 본다면, 단순히 '많으니 줄이자'의 답을 도출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무원의 연금 수준이 높아야 하고 손대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공무원 연금 개혁 문제를 대할 때 저울의 다른 한족에 그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부작용도 함께 올려놓고 저울질해야 한다. (54쪽)". 공기업 퇴직자의 낙하산 인사 역시 무조건적으로 막았을 때, 재직 중 뇌물 수수가 횡행하게되지 않을까 저울질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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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글을 카페에서 2잔째 라테를 마시며 쓰고 있는데, 나 같은 '까페애호가'를 카페 사장들은 '계륵'으로 본다고 한다. 계륵을 몰아내기 위한 전략으로 에어컨 쌩쌩하게 가동시키기가 있다는데, 지금 손끝이 저릴 정도로 오한이 든다. 까페 에어컨 찬바람이 엄청나게 잘 돈다. 저자는 이 아이디어를 본인의 아이들에게 적용해봤다 한다.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몇 시간 째 노는 아이들 친구들더러 뛰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대신 에어컨을 꺼버렸더니 15분도 안 돼서 밖으로 나가더란다. 핵심은 '자연스럽게'이다. 중앙은행이 하는 일을 설명하기 위해 계륵 퇴치법으로서 에어컨 가동전략을 소개한 이진우 기자의 필력에 유쾌한 미소를 지으며 <거꾸로 보는 경제학>을 다시 만지작거린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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