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크래프트 전집 1 러브크래프트 전집 1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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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크래프트의 책을 구매한 계기는 순전한 호기심이었다. 다양한 매체에서 그의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들었고, 크툴루 신화에 관련된 보드게임도 하고 나니, 도대체 이 작가가 어떤 작품을 썼길래 사망한 지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영향력이 지대한지 궁금했다. 그가 소설에서 정면으로 내세운 '미지'의 공포는 설명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현실과의 연결성이 끊어지고 말기에 전집을 읽기 전까지는 의심이 들었다. 그리고 6권에 달하는 그의 전집 중 단 한 권만 읽었지만, 러브크래프트가 구축한 세계가 얼마나 방대하고 깊은지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나는 그의 세계에 심취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쓴 것들은 대부분('모조리'가 아니다) 허구지만, 단편들이 공유하는 세계관은 한결같다. 단편들에서 얻어낸 조각들로만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은 분명 대단한 능력이다. 우리의 세계와 비슷해 보이면서도 어쩐지 다른, 뉴잉글랜드의 어딘가에 위치할 것 같지만 절대 존재하지 않는 '사일런트 힐(Silent Hill)' 같은 아컴과 인스머스는 이미 독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그가 묘사한 마을의 상세한 모습과 분위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러브크래프트는 어떤 설명이 읽는이의 상상력을 극도로 자극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최근에 본 공포영화에서 깨달은 사실이 그의 작품에서 잘 드러난다. 하나는, 호기심이 위험하다는 것.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은 여행자 혹은 주변인의 운명을 파멸로 이끈다. 두 번째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공포를 만나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러브크래프트의 개인적인 삶으로부터 광기의 묘사를 이끌어내는 평론가들도 있지만, 공포라는 것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도저히 전달될 수 없는 감정이다. 공포는 때로는 감정의 경계를 넘어서 인간의 정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크툴루, 아자토스, 요그소토스와 같은 존재들은 지성의 영역 저편에 있기에, 그것의 개념을 만들어낸 사람조차 묘사할 수 없다. 마치 그것이 인간의 한계라는 듯이.


 작가가 단편들 속에 숨겨놓은 단서들은 이제 찾을 수 없다. 작가는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들을 모두 미치게 하거나 잔혹하게 살해했다. 심지어 자신조차 죽어버렸으니, 그가 만든 미지로 가득한 공포의 세상은 후대의 인물들에게 탐구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허버트 웨스트가 살린 리빙 데드(living dead)의 행방, 네크로노미콘의 내용, 인스머스의 해변 등은 영원한 호기심으로 남으리라. 설령 확인한다 해도, 진실을 알게 된 이는 살해당하거나 미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모른다. 

 

 나를 가장 무섭게 한 단편은 단연 현관 앞에 있는 것」이었다. 작품을 내내 관통하는 음산한 기운은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극대화된다. 두 인간의 영혼을 바꾸려는 상상을 넘어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영혼을 잡아먹는 상상은 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준다. '명석한 두뇌에 의지는 허약한' 인간을 노리는 악마의 이야기와 절친이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서술자의 이야기가 공존하며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러브크래프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완벽한 평화란 없다. 현상 유지이거나 도피일 뿐이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 악몽이 반복될 것이라는 불안은 페이지를 뚫고 미래로 흘러간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들이 아직까지 재생산되고, 해석되는 이유이리라. 


 나는 미지의 세계로의 초대를 기꺼이 환영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세계는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나는 범위가 닿는 곳까지만 갈 것이며, 그 이상은 시도하지 않겠다. 호기심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깨달았기에, 공포가 어떻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 목격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책의 말미에 수록된 크툴루의 눈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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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연습 - 세상에 생명을 주는 영적 훈련
카일 데이비드 베넷 지음, 정옥배 옮김 / IVP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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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책모임을 가져서 유익한 시간이었다. 다른 일정으로 인해 정해진 날짜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공동체의 행사로 인해 모임이 취소되는 경우도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치다 보니 10장도 안 되는 책 한 권을 다 읽는 데에 거의 5개월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고 할까? 귀찮음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도, 함께 소리내어 책을 읽으며 탐사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책을 미리 읽어오지 않았다. 덕분에 책모임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나눔 위주로 진행하던 기존의 모임과는 달리, 정말로 낭독하고 글자의 소리를 들으며 그 자체로 나눔을 하는 방식이어서 새롭기도 했다. 


 『사랑 연습』이라는 책 역시 메세지는 간단했지만, 울림이 깊었다. 먼저 나를 자극시킨 것은 서론, '영적 헤로인'이었다. 저자는 수련회나 금식이라는 특별한 훈련으로 신앙을 단련하고, 거기에 그치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자신만을 위한 훈련을 멈추고, 이웃을 위해 삶에서 신앙을 보여주기를 촉구한다. 카일 데이비드 베넷의 진심은 한 문단 속에 정확히 담겨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개인적 만족이 넘쳐흐르거나 '긍정적인' 느낌을 듬뿍 누리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자극이나 흥분의 세례를 받는 삶이 아니다. 그것은 '황홀감'과 '한 방'이 연속되는 삶은 확실히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부의 계획, 성자의 모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개혁되고 변혁된 생활 방식이다. 그것은 화해와 회복과 갱신의 삶이다. 그것은 우리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는 삶이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소유하고, 생각하고, 먹고, 교제하고, 말하고, 일하고, 쉬는 것 같은 활동들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보이고 세상에 생명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행하는 삶이다. (p.42)

 

 또한, 저자가 '악'이라는 말을 최대한 피하고 '기형적'이라는 표현을 쓰려는 것 역시 배려심이 돋보였다. 잘못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악한 사람'으로 일반화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들 역시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웃의 일부이며, 그 방식은 언제든지 고쳐질 수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이러한 표현을 쓴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그렇다. 기독교인들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 중 하나가 선악, 또는 이타심과 이기심이라는 이분법의 논리 아래 세상을 구별하려는 경향이니까. 그것을 판단하는 존재는 자신이 될 수 없음에도, 기독교인은 쉽게 결론을 내린다. 나 역시 이기적으로 행동할 뿐만 아니라, 이기적으로 생각하기에 그 덫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음을 인정한다.

 

 사랑 연습은 그러니까, 이타적으로 살아가라는 것 이상이다.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살아가는 연습이다. 정말 말도 안 되고 무모해 보이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Just Like Jesus) 살아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 불가능한 길을 기쁘게 나아가야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연습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출발한다. 나머지 장들은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2장은 소유에 대한 내용이다.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인처럼 살라는 것은 현실성 없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예수님도 그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단지 기형적 소유 방식인 낭비벽과 탕진하기를 멈추고, 절약(여기서 말하는 절약은 당연히 일반적인 절약의 개념과 다르다.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것을 넘어서, 이웃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 베푸는 것까지 포함한다)해야 한다는 것이 이 장의 요지이다. 다른 장들도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 기형적 방식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말이다. 그 과정에서 흔한 개념의 재정의가 등장하고, 일상에서 실현할 수 있는 단계가 등장한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이웃을 위해서라도 행동의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나는 아직 생각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보다 이웃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하루 중 시간을 내어서 이웃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가치 있는 시도이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곤란하다. 다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려 하고 있다. 내가 속해 있는 다양한 그룹에서 일관되게 말이다. 때로는 버거워도, '섬긴다'는 말의 무게를 알고 있기에, 마음을 다잡는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섬김은 일의 한 형태다. 그것은 수고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 혹은 그 사람을 위해 그 일을 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종종 깨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베푼 친절한 행동에 대해 어떤 보답이나 보상이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p.219)


 이타심을 넘어선 희생, 참 멋진 목표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당장은 그렇다. 그러니 연습해야 한다. 상처받더라도 먼저 다가가기, 손해를 보더라도 진심을 전하기. 그 아이가 이루었듯이, 나도 그래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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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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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는 그 광경에 끝끝내 익숙해지지 못했으며,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았다. (p.1165)


  많은 분량의 책을 읽을 때는, 작가의 생각이 은연 중에 담겨 있는 한 문장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주의깊게 읽지 않은 탓이겠지만 한 편의 에피소드가 강렬하게 기억이 남게 된다. 오래 전부터 독파하기를 고대했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내가 찾아낸 단 하나의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이 뒤죽박죽 우주를 창조해 낸 더글라스 애덤스는 책 전체를 통해 "익숙한 건 지루한 거야"라고 말하고 싶어 했다. 그는 우주가 정체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 그곳은 항상 파괴되고, 재창조되어야 하며, 기존의 것은 폐기되고 새로운 질서가 부여되어야 한다. 시간, 공간, 방위, 선악의 구분조차 우주의 붕괴 속에서 무의미하다. 


 독자가 SF 장르에서 기대하는 대규모 전쟁이라던가, 미래에 존재할 법한 외계의 기술은 이 안내서에서 그저 하찮은 사건과 장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 소설은 과학과 논리의 탈을 쓰며 자신의 상상을 합리화하는 부류들을 향해 비웃고 있다. 우주를 뒤흔드는 재앙의 원인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하다. SF를 기대하고 왔더니, 공간만 다르지 지구의 일반 가정집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더 우스꽝스럽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글라스 애덤스가 만든 이 뒤죽박죽 우주는 호불호가 꽤 갈린다. 나 역시 쉬지 않고 이어지는 넌센스에 잠시 지쳤지만, 은하수의 흐름을 타고 나니 한결 더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여행은 역시 '대체로 무해함(지구를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주인공인 아서 덴트와 트릴리언 사이에서 태어난 랜덤은 존재론적 위기를 맞고 있었고, 가능성 투성이인 새가 그녀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지금까지 벌어진 상황 중 가장 기묘하면서 흥미로운 장이었다. 아서가 익숙해지지 못한 것도 '대체로 무해함' 속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단지 그를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었다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한 평범한 인간의 흥미를 돋구기 위함이라면? 작가는 이런 민감한 질문을 보기 좋게 숨겨 두고 있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안내서는 지루할 틈이 없다. 종종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동명의 안내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 등장인물로 출현하니까). 그래서 왜 세상을 관통하는 지혜가 42인데? 어떤 기계가 대신 답을 해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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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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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살면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음을 느낀다. 때로는 그 일이 너무 거대해서 손쓸 의지조차 잃어버린다. 그리고 대부분은 어떻게든 흐름을 바꾸려고 하다가 실패하고, 상처를 받는다. 특히 인간관계는 사소한 변수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리기 때문에 누구도 쉽게 확신할 수 없다. 연인이, 가족이, 친구가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 괴로워진다. 그러나 그 나약함을 보여주지 못한다. 아픔을 드러내면 관계에서 주도권을 뺏긴다는 두려움이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 그렇게 스스로 만든 감옥에서 괴로워하다가, 가장 원하지 않은 순간에 최악의 방식으로 감정을 폭력적으로 표현한다. 결과는 해결은 커녕 사태를 심각하게 만들 뿐이다. 


 처음에 다자키 쓰쿠루는 친구들 사이에서 버림받은 일이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그와 가까이 지냈던 네 명의 친구들은 아무런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그와 손절했다. 다자키는 그 아득한 부조리 앞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버림받을 만한 이유가 있는 놈이라고, 나처럼 남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개성도 없는(그만 유일하게 이름에 색채가 없었으니까) 사람을 떠나는 게 당연하다고. 그 역시 처음에는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거의 몇 달 동안 삶과 죽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했다. 그러다 그의 연인인 사라가 쓰쿠루의 마음 속에 잠겨 있던 상처를 끌어올린다.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졌다 해도 아픔의 깊이는 변함이 없었다. 다자키 쓰쿠루는 용기를 낸다. 다시 마음의 어두운 방에 거짓말을 쌓아올리는 대신, 더 상처가 깊어진다 해도 진실과 마주하자고. 나는 그의 진실함에 마음이 움직였다.


 나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친구들은 고향에 남아 있고, 나 혼자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 점에서는 다자키 쓰쿠루와 평행선 상에 있다. 다만 나는 그 친구들과 갑자기 끊어지면 정말 힘들겠다는 상상만 해 보았고, 이름에 색채가 없는 청년은 실제로 이별을 겪은 뒤 오랜 시간 동안 아픔을 이겨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그의 삶이 부럽지도 않다. 그렇다고 안타깝지도 않다. 다만 작은 희망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솔직했다. 나와 그의 결과는 바꾼 것은 용기였다. 


 고통은 받아들여야 이해할 수 있다. 다자키 쓰쿠루가 차츰 밝혀낸 진실, 그것은 가볍지 않았다. 시로의 눈물로 시작된 그의 추방은 모두에게 상처를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도망쳤고, 구루만이 해결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다자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다자키의 잘못이 되었다. 그때 아픔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솔직하게 다가갔다면 다섯 명의 미래는 바뀌었을까? 만약 내가 그룹의 구성원 중 일부였고 목격자의 입장이었다면 방관했을까, 아니면 어떻게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나는 대부분 전자를 택했다. 내 문제가 아닌 그들만의 문제라고 여겼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내가 목격자가 아닌 입장이라면, 분명 용기가 필요하다. 아마 상처를 준 입장이라면, 나도 모르게 그랬을 것이다. 그 사람과 나는 다르다. 그래서 이해가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내 잘못을 인정하자. 상처를 받았다면, 그것이 점점 커져 서로를 집어삼키기 전에 드러내자.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 관계를 망가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자. 대신 최선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자. 


 모든 일을 내 힘으로 해결할 수는 없음을 깨달은 뒤, 생각보다 단순한 방법이 떠올랐다.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다자키는 자신이 색채가 없고, 개성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른 사람이다. 색채는 개성이 아니니까. 그 역시 자신만의 특징이 있었다. 그 다름을 인정한 뒤에야 슬픔을 나눌 수 있다. 고민하고 노력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관계가 오히려 더 나빠질 수도 있다. 다 받아들이는 일이 버거울지도 모른다.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이 고통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구나, 라고. 용기와 비난 사이, 희망과 망상 사이, 신념과 고집 사이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잠시 나를 내려놓자. 그리고 한 번의 기도를 올린다.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 그 사실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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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사물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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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일을 사명이자 오락으로 생각하는 이에게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은 큰 모욕이다. 절대 저자와 같은 생각을 품을 수 없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뭐라도 적어야 한다. 소설가가 자신의 삶을 녹여내며 "글쓰기란 이런 것이다", "작가는 이런 사람이야"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을까? 아직 미완성되었다 해도 저항하는 것이 의무이다.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사물에는 추억이 담겨 있다. 사물은 추억의 주인공이 아니다. 주변 인물들을 비추는 거울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물들 틈에서 과거를 하나하나 추려내는 것은 현재를 조금만 희생하면 가능한 일이다. 사물 뒤로 시간과 공간이 함께 움직이고, 사람들이 나타나고, 감각들이 느껴지다가, 마침내 나의 생각이 도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은 매개체일 뿐이다. 


 책, 들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어렸을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나 내 인생의 책을 고른 뒤, 그 사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진부하다. 서점에서 헌 책의 냄새를 맡으며 행복한 고민을 했던 기억은 이제 흐릿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읽었던 책을 떠올린다. 선생님 한 분을 탁자 가운데에 모시고 중고등학생 몇몇과 그들의 엄마(아빠는 없었다, 맹세코)들이 책 한 권의 한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다같이 토론했었고, 그 청소년들 사이에 내가 있었다. 당시 나는 꽤 적극적이었고 책의 분야가 무엇이든 간에 그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어쩌면 선생님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될 것만 같았던 5년 간의 수업은 꿈처럼 갑자기 끝났고, 여전히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와 함께 가는 것은 오직 『어린 왕자』뿐이다. 1년마다 나는 그를 찾아간다. 아직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어른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화투, 는 내가 계획한 기억의 파편들 중 일부다.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해 놓았다. 2016년 9월 13일, 학교 과방에 모여 동기들과 선배들이 모여 화투 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나. 나는 여전히 화투 치는 법을 모른다. 만약 알았었다면 그 현장에 나도 참여했으리라. 선후배의 구분 없이, 삶의 고민을 잠시 전부 떨쳐버리고, 오직 화투를 치는 그 순간에만 집중했던 우리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싶었다. 화투 사진을 컬러로 뽑아 전시해 놓고, 제목은 '20160913'으로, 어떠한 부가 설명도 없이 감상하게 하고 싶었다. 과연 그 사진을 본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 궁금했다. 이해할 수 없어 비난하며 지나가거나, 나처럼 사물을 통해 추억 속으로 빠져들거나, 선택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보여준다. 말하지 않는다.

 

 사진, 을 글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니 풍경 묘사나 분위기에 대한 설명 따위는 하지 않겠다. 내가 올해에 기억하려는 것은 내 친구가 홀로 앉아 바깥을 바라보는 모습이 찍힌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기억하려는 나의 의지만 남아 있다. 글 쓰는 이의 주변인이 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불편한 일이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록의 대상이 되어버리니까. 내 친구는 자신의 사진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알까? 알게 되면 좋아할까, 아니면 꺼림칙할까? 하지만 내 주변에 존재하는 이들을 모두 배제할 수는 없다. 때로는 나도 이야깃거리가 되니 그런 식으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사물에는 어쩔 수 없이 사람이 묶여 있다.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느니, 한 사람 한 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일이 더 빠르고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함께 했던 그 순간을 누군가 기억해 주었으면 싶다. 

 글 쓰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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