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로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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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3-09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행복하자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3-09 22:00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 굳 밤!!

비로그인 2016-03-14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롤리팝에서 알파벳으로 바꿨습니다.
지금행복하자님 좋은 하루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3-17 17:29   좋아요 0 | URL
알파벳님~ 좋은 하루되세요~^^
 

가끔 오는 동생네 부부덕분에 의도치 않은 나들이.
우리끼리라면 멀다고 오지 않았을건데
덕분에 남도 여기저기를 다니게 된다.

그 애들이 온다고 하면 어딜 가볼까 궁리부터 들어가니.. 이제 프로그램화 되는것도 같다

걔들은 걔들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지도사서 우리 전국을 점 찍으면서 다닐까? 했더니...나쁠것도 없다고..
나 나이들면 이렇게 앞이 훤히 트인곳에서 살고 싶어 라고 했더니
그것도 괜찮겠다고..
점심겸 저녁을 먹으면서
맛있다고 그러면서 자기한테 잘 하라고.
그래야 데리고 다닐거라고~ 헐~~ ㅋㅋ

오후 스케줄이 취소되면서 멀리까지 나갔다
여수 향일함.
정말 멀다.. 우리의 기준은 무조건 한 시간 안팍인데 여기는 후덜덜 ㅎㅎ
차라리 서울을 간다..

안개가 내려앉아 어디가 하늘인지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별이 안되고.. 멍해지고
동백이 맺혀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이제 정말 봄이구나 생각하면서 멍해지고

그래 봄이다..

옆에서 엄마가 이렇게 동백보고 매화보고 벚꽃보고하다가 보면 또 금방 한 해가 지나갈거라고..
갑자기 마음 한켠이 싸~ 해진다.
한숨이 절로 난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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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2-29 0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좋네요~^^잘 보고 가요!^^

지금행복하자 2016-02-29 07:25   좋아요 2 | URL
고마워요~^^

[그장소] 2016-02-29 07:40   좋아요 1 | URL
눈 호강은 제가 했는데...
고맙습니다.^^

2016-02-29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표정이 있네요..저 동백은...할 말을 잃게 만듭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2-29 15:40   좋아요 0 | URL
최고의 칭찬 인데요~ 표정이 있다는 말..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진을 찍고 싶거든요~^^

2016-02-29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진들도 다 좋았는걸요. 많이 찍고 자주 올려주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2-29 17:41   좋아요 0 | URL
그럴까요? ㅎㅎ 좋아해주시니 감사해요~^^

서니데이 2016-03-01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많이 추웠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지금행복하자님 , 행복한 3월의 첫날 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3-01 09:16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멋진 하루 되세요~^^
 

YouTube에서 `영화 `귀향` 두번째 티저 `가시리`` 보기
https://y1outu.be/Bpt5JBjBQJA





《귀향》 보고 왔다

이들의 영혼이 돌아오지 못하는 이유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영화제목 `귀`는 귀신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자꾸 돌아갈 `귀`가 떠오른다
집에 가야하는데..
밥이라도 먹여서 보내야 하는데
몸이 못 가면 넋이라도 집으로 돌아가야하는데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다
돌아도 너무 돌고 있다

이들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따뜻한 밥 한그릇 못 먹고 구천을 헤매는 영혼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만나게 될때 부끄럽지 말아야할텐데...
마음이 힘들다
그래도 봐야한다
아이들도 봤음 좋겠는데 안본다 할텐데..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입소문이 더 더 많이 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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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02-2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귀향 보고 싶은데 영화 상영관이 너무 멀고 짧은 시간에 금방 막을 내려 좀 안타까웠어요
입소문이 나서 여러 상영관에서 보여줬음 좋겠어요

지금행복하자 2016-02-24 13:47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다음주까지만이라도 상영했으면 싶어요~

yureka01 2016-02-24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영관이 문제죠....대기업상영관들이 과연 이영화를 틀어줄지 관건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2-24 13:46   좋아요 1 | URL
거의 대부분 영화관들이 이번주까지로만 일정을 잡아뒀더군요~ 조조보러갔는데도 거의 다 찼던데... 이런 기세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기간이 너무 짧아요..
 

나 같은 사람의 특성상.. 실제적인 한해는 3월부터 시작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간 이후 모든 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3월 첫 주는 시무식의 주 ㅎㅎㅎㅎ

 

 

2016년 올해 읽을 것 같은 창비 세계 문학 전집.

독서토론 모임에서 일년 동안 읽어보자고 선정..

작년에 장편에 두꼅고 어려운 책으로 골라 놓으니 과부하가 걸려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넘어간 듯해 올해는 분량만이라도 부담이 줄여보자는 목적으로 ... ㅎㅎㅎㅎ

꼼수... ㅋㅋ

작년에 단편으로 공부를 해 봤지만..

단편..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

단편이라 읽는데 부담은 없지만...

단편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작년에 절실히 느꼈다는 것.

해석이 이렇게도 자유로울 수 있다니..

단편이기에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정말 제대로 느낀 한 해였는데..

올해는 어떨지..

 

단편의 어려움은 집중력이다.

임팩트있게 읽어 좋은 점도 있지만 함축적이고 단편적으로만 보여주어 과연 지금 이해하고 있는 이것이 맞는 지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하나씩 정리해 보면서 읽어야 겠다..

오랜만에 공부모드로 읽는 건가? ㅎㅎㅎ

책읽는 패턴이 갈수록 나 스럽지 않게 되고 있는 듯......

밑줄따윈 없이. 휘리릭 읽는 것이 나의 스탈이었는데..

점점 밑줄이 늘어나고 의미를 생각하고 ...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다....

이러다 질려버리는 것 아냐???

공부모드 정말 싫어하는데... 어쩌다 보니 공부모드를 하고 있다..

심지어 사람들이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생각까지 한다..

젤 싫어하는 것이 공부인데 말이다...

어쩌지.. ㅠㅠ

 

 

창비 세계문학 전집. 전체 9권

작겨별 보다는 나라별로 여러 작가를 겪어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골라봤다.

처음은 영국편.

 

신호수

찰스  디킨스

 

장편만 읽어 봤었는데 단편은 어떤 느낌일지....

 

산업혁명 당시 기차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보여주는 여러 작품들이 있다.

에밀 졸라의 <인간짐승>에서도 사건은 기차에서 일어난다.

아마 이시기의 사람들에게는.기차에 대해서 두가지의 시선이 있을 듯하다.

돈을 가진 자본가들에게는 부를 가져다 부는 수단일 것이고

몸을 가진 노동자들에게는 일을 가져다 주는 동시에 일을 빼앗아 가는 수단일 수도 있다.

장소에 대한 이동. 이는 결국 사고방식의 변화를 가져다 줄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이를 실현해주는 기차라는 것에 대해  거부할 수도 없고 기차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도 없을 수 있다.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는 그 커다란 기계덩어리가 기쁨과 환희의 대상만이 될 수는 없다.

그들의 의식 어딘가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기차에 의해 삶이 변화된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처음이 아닐까

우상처럼 생각했던 사랑하는 오빠가 기차길에서 사고를 당하는 모습..

기차는 더이상 꿈을 실어다 주는 꿈을 이루게 해주는 이동의 수단이 아니라 목숩을 빼앗아 갈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인간짐승에서는 기차가 지나갈 때 사건이 일어난다.

기차가 꽤~~~ 소리를 내면서 지나갈 때 인간의 욕망이 그 소리에 감춰지고 그 속도에 묻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차에서의 노동은 그들에게는 먹을 것을 주는 양식이 되어주기도 하다..

 

찰스 디킨스의 신호수에서도 기차는 공포의 대상으로 보여지는 것같다.

유령이라고 표현되는 어떤 것이 신호를 해 줄때마다 사건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신호 또한 자세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뭔가 일어날 것 같으니 어째든 조심하시오 수준...

공포는 그 대상을 모를때도 일어나지만 어설프게 아는 경우에는 더 크다는 생각을 한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는 말... 그래서 나온 말이 아닐까..

'거기 아래! 조심해요'라는 말과 함께 일어나는 사건..

그러나 언제 무엇이 일어나는지는 모르는 사건..

그래서 이 신호를 감지하는 신호수는 공포를 느낀다.

아무리 당신의 의무를 다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공포까지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신호수역시 그 신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이니..

사람은 흔히 나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행운은 거의 없다.

나도 그럴 수 있어.. 가 맞는 거다.

이 신호수가 느끼는 공포도 그런 것이겠지.

나도 그럴 수 있어. 나도 언제 기차에 의해 죽음을 당할 수 있어.

피하고 싶지만 피할수 없는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이것은 운명인가..

 

기차라는 산업화가 인간에게 내려주는 숙명같은 건가..

인간의 욕망을 일깨우고 부를 축적하게 해주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에게 공포를 주고 파멸을 가져다 주는 인간이 만들어 낸 괴물..

기차가 있는 곳에서 살아 본 적이 없고 기차를 그리 많이 타보지 못해 기차에 대한 로망도 두려움도 없는 것이 나는 다행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차원적인 생각을 해 본다.. 

 

"정말 사고가 일어날 거라면, 도대체 왜 그 장소는 일러주지 않은 거지요? 막을 수도 있는 일이라면, 그 방법은 왜 일러주지 않는 것지요? 두번째는 얼굴을 가리고 나타났는데 그러는 대신에 '저 여자가 죽을 것이다 .집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고 하라'고 왜 말하지 않은 거지요? 두 번 모두 단지 자신의 경고가 진짜임을 보여주고 그래서 저로 하여금 세번째 사고를 대비하게 만들려고 나타난 것이라면, 이제는 확식하게 경고를 해주면 되는데 왜 그러지 않는 것지요? 이제는 확실하게 경고를 해주면 되는데 왜 그렇지 않는 거지요? 거기다 하필 저라니요, 세상에! 이런 외딴 역에서 근무하는 한낱 신호수 아닙니까! 왜 사람들이 믿어 줄만하고 조치를 취할 권한도 지닌 사람한테 찾아가지 않는 거죠?"        --- 25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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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6-02-2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기조심하시고 즐거운 오후 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2-23 17:51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 감기조심하세요~^^

cyrus 2016-02-23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킨스의 <신호수>는 공포문학 앤솔러지에 단골로 나오는 작품입니다. 디킨스이 남긴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거죠. ^^

지금행복하자 2016-02-23 17:50   좋아요 0 | URL
디킨스 단편소설은 많이 읽어보지 못 했는데 임팩트 있었어요~ 장편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실 디킨스 별로 안 좋아했는데 단편쓰는 디킨스는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서니데이 2016-02-23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행복하자님, 좋은밤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2-24 07:38   좋아요 1 | URL
차갑게 시작하는 아침입니다~ 좋은 하루 만드세요~^^
 

YouTube에서 `[동주] 영상시집 참회록X자화상 영상시집` 보기
https://youtu.be/6iqCrxgFqEY


자화상 강하늘
https://youtu.be/p2exWLf27JM


동주를 보고 왔다
눈뜨고 갑자기 문득 동주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무조건 챙겨입고 현빈이 깨우고 요가가기 전 잠깐 들른 엄마랑 후다닥 나갔다.
이 말릴 수 없는 충동.
왠지 지금 안 보면 앞으로 못 볼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
그런 영화가 한 둘이 아니기에 그랬을까.
어째든 잘 한듯..
이런건 극장에서 크게 봐야하는거다..

부끄러움을 알기에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지용시인의 말과
시인을 꿈꾸어서는 안 되는 시대에 시인을 꿈꿔 부끄럽다는 윤동주시인의 말이 여운으로 남아있다

시집의 제목은
하늘과
바람과
별과
.
.
.
.
.
.
.
.
.
.
.


임팩트있는 엔딩..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윤동주의 시처럼 보고 나면 쓸쓸해지는 영화

한 편의 시같은 영화

시를 읽어 주어서 더 좋았다는 아들
참회록을 배웠는데 너무 어려워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니 조금 알것 같다는 아들..

서늘한 강하늘이 목소리와 시가 잘 어울리고 흑백의 화면에 그들의 아픔이 녹아난 멋진 작품.

아이와 또 하나의 공감대를 가지게 된 영화.

이 준익 감독작중 최고가 아닐까
나한테는 그렇다

돌아와 영화속의 시를 찾아 다시 시집을 뒤적여본다
여러번 봐도 좋을 영화
그런데 너무 상영일자가 짧다
상영하는 곳도 별로 없고..

《흰 그림자》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든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검의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 많은 나를
하나, 둘 제 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 골목을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깃든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아우의 초상화》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운 진정코 설운 대답이다

슬며- 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병원》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에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후략)



《바람이 불어》

바람이 어디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가는 것일까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별 헤는 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 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내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ㅈ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자화상》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참회록》

파란 녹이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읁
어느 욍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https://youtu.be/Wffp-xXe8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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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2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의 시인, 윤 동주의 시를 감상하네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

지금행복하자 2016-02-22 17:43   좋아요 0 | URL
시인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16-02-22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22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6-02-2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그런날이 있어요. 문득드는 생각에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될거 같은 생각에 시작하는 일들. 그런 일들은 기억 속에서도 오래오래 남기도 하는거 같아요. 윤동주 시인의 소설과 시집이 집에 있는데 영화를 보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2-22 17:48   좋아요 0 | URL
덕분에 오늘 당산제 사진찍으러 가야하는데 날려 먹었어요 ㅠㅠ
아무 생각없이 맘이 동하면 해버리는 철 없는 저입니다 ㅎㅎ

영화보고 다시 읽어보는 시는 다른 느낌이에요. 역시 시는 낭송해야 제 맛인듯 해요~ 머리속에서 강하늘의 목소리가 저절로 플레이되요~~

서니데이 2016-02-22 1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행복하자님 , 오늘 대보름입니다.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지금행복하자 2016-02-22 19:4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오곡밥 드시고 부럼깨셨어요? 보름달이 뜨지않아 좀 아쉽지만 좋은 저녁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