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태어나다
아사이 료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어른이라고 하기엔 아직 어리고 그렇다고 청소년은 아닌... 갓 스물이 된 아이들이 각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 어떤 틀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사이 료의 다시 한번 태어나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인 누구 에서처럼 청춘의 그 미묘한 심리를 잘 파악하고 있어 감탄하게 한다.

단편으로 되어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 등장인물이 각각의 챕터에서 교차되어 등장하고 그 챕터에선 몰랐던 사실을 다른 챕터에서 다른 사람의 입이나 에피소드를 통해 그 사람의 진심이 드러나게 한다.

친구와 셋이 있던 방에서 잠깐 조는 사이 누군가가 시오리에게 키스를 했다.

그 사람은 누굴까? 잠깐 고민하지만 그 방에 남녀 비율은 여자 둘에 남자 한 명... 그렇다면 당연한 결과지만 잠시의 틈으로 누구였을까를 고민하는 부분에서 시오리는 무의식적으로나마 어떤 걸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화려한 외모로 단숨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히짱이지만 그녀는 무리 짓는 여자들 틈으로 들어가길 거부한 뒤로 반에서 약간 아웃사이더이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그녀를 동경하는 시오리와 그녀를 바라보는 히짱 그리고 그런 히짱을 짝사랑하는 동기생... 물론 이 동기생을 좋아하는 여학생도 있다.

사랑이 청춘만의 특권은 아니지만 역시 청춘 하면 떠오르는 게 이런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랑에 고민하고 갈등하면서 조금씩 알게 모르게 성장해간다는 건데 그런 의미에서 조금 다른 사랑 역시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챕터에 등장하는 하루와 나츠 남매 이야기는 좀 더 울림이 크게 와닿는다.

고교 때부터 댄스로 각종 상을 타고 이름을 날렸던 하루는 역시 고교 때부터 각종 미술상을 휩쓸었던 오빠인 나츠와 온갖 걸 이야기하며 의논하는 여느 남매 완 달리 좀 더 각별한 관계였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좀 더 체계적인 댄스를 배우기 위해 댄스 전문학교에 들어간 후부터는 오빠와 대화는커녕 제대로 얼굴조차 보지 않는 관계가 된다.

댄스학교에서 제대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서 이 자리에 온 여느 아이들과 달리 그저 춤이 좋아서 느낌대로 자유롭게 춤을 췄던 자신은 무대 위에서 고교 때처럼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어 방황하면서 스스로 위축되고 자격지심이 생긴 탓이기도 하다.

게다가 자신은 좋아하는 춤을 제대로 추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는 것에 비해 자신 주위의 사람들은 그저 태어나면서 얻은 재능이나 외모 하나만으로 별다른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안주하고 있다 생각해서 마음속으로 그들을 경멸하고 비웃으며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우월감이 있었지만 고교를 졸업하고 스무 살이 된 지금 자신이 비웃었던 그들은 각자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가고 있지만 자신만 제자리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비웃었던 그들도 자신이 몰랐을 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대로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었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으면서 더욱 위축된다.

사실은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으리라. 자신이 빛날 수 있었던 건 딱 고등학교 때의 아무것도 몰랐던 그 시기뿐이라는 걸... 세상에 나와보면 인정하기 싫지만 자신보다 더 재능을 가지고서도 엄청나게 노력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자신이 위치를 정확이 깨닫는 순간이 바로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너무나 찬란하고 빛나게 그렸던 오빠의 그림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가기도 한다.

또 다른 챕터에서는 늘 이쁘고 뭐든 쉽게 해나가던 쌍둥이 동생을 질투하던 자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원래 자매지간에는 미묘한 경쟁심과 질투가 있는데 하물며 나랑 같은 날 태어난 나와 똑같이 닮은 얼굴의 자매가 있다면... 게다가 커갈수록 그 애는 점점 더 빛나서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관심과 인기를 끈다면 나라면 그런 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을 것 같다.

뭘 해도 비교되고 심지어 외모마저도 어느샌가 차이가 나게 된 쌍둥이 동생을 부러워하다 결국은 그녀에게 온 연락을 차단하고 스스로 동생 쓰바키가 되어 그녀인 척하지만 스스로 그런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져 고즈에는 괴롭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위험해 보이지만 그냥 한번 뛰어 내려보라는 말을 하는 영화감독 지망생.... 무섭고 두렵지만 하고 보면 별것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고즈에는 새롭게 태어난 듯한 기분마저 느끼게 된다.

이렇게 각각의 챕터에서 청춘들의 고민과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려놔서 많은 공감을 하게 한다.

게다가 자신이 보는 시각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떤 사실은 전혀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걸...틀을 깨지않으면 앞으로 나아갈수 없다는 걸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듯 하다.

더 이상 어리다고 어리광을 부릴 수도 무섭다고 달아날 수도 없는... 어른인 척 걸어가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

짧지만 많은 걸 생각하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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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테러리스트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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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폐허에서 일어선 일본에서 올림픽이 개최된다.

이는 모든 일본 사람에게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대사건으로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는 것만이 유일한 사명인 것처럼 온 나라가 한마음으로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위해 합심하는 게 당연시되는 이때 누군가가 올림픽 개최를 반대한다는 협박편지를 보내고 곳곳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한다.

당연하게도 경시청은 비상이 내려지지만 올림픽 개최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이유로 언론을 통제해 일반 사람들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채 그들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드디어 용의자가 떠오른다.

그의 이름은 시마자키 구니오

일본 최고의 대학이라는 도쿄대의 경제학부 대학원생이자 시골마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인 그가 왜 이런 행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올림픽을 방해는 그의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경시청은 그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는 양들의 테러리스트는 두 가지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품의 평범한 대학원생이 왜 모두를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는 이런 테러리스트의 길을 가게 되었나 하는 그가 이런 범죄행위를 하게 되는 필연의 과정을 담은 과거 시점과 지금 현재 그가 벌이고 있는 폭탄 테러를 막고 무사히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그를 검거하고자 노력하는 경찰들의 행동을 담고 있는 현재 시점으로 나눠 진행해 그의 범죄 동기에 대해선 공감하게 하게 그를 잡고자 하는 경찰의 모습을 통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장과 공권력의 입장을 보여준다.

책을 읽다 보면 구니오가 왜 그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올림픽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육체노동자에게 가장 많은 희생을 요구하고 또 그런 희생을 당연하다 여기면서 거기서 나오는 부와 영광은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고 부유하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독차지하는 현실은 충분히 부조리하다 분노할 수밖에 없다.

모든 혜택이 올림픽을 여는 도쿄에 집중되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이런 부의 작은 혜택조차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풍요가 넘치는 도쿄에 비해 죽도록 일을 하면서도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어떤 문화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채 가난이 대물림되는 게 당연시되는 현실을 죽은 형을 대신해 일을 하게 된 건설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깨달아가는 구니오가 분노와 더불어 점차 허무함을 느끼는 모습은 고뇌하는 젊은 지식인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게다가 하필 그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과목이 마르크스주의와 같은 공산주의 이론이었다니...

어쩌면 그가 테러리스트의 길을 걷게 되는 건 필연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어쭙잖은 공명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이 모든 걸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한 창 피 끓는 엘리트 젊은이가 가지는 오만한 열정이 아닌 순수한 분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게다가 그가 있는 위치도 이런 결정을 하는 데 한몫을 했다.

타고난 머리로 우수한 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그가 원한다면 사회에 나가 어디서든 높은 지위에 쉽게 오를 수 있지만 그는 가난한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프롤레타리아로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아웃사이더로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보아 넘기지 못하는 여린 심성을 지녔다.

그래서 서른이 넘도록 일만 하다 죽은 형의 죽음을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어 마치 죄를 고해하듯 형을 대신해 평생을 해보지 못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늘 당하고 겪는 부조리함과 노동착취에 분노하며 분연히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더불어 그가 앞으로 행 할 행동에 대한 동기를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의 동기가 순수했고 그가 분노하는 심정 또한 십분 이해 가능했기에 그가 걷는 행보가 더욱 위태롭고 안타깝게 느껴져 그의 행위와는 별개로 그가 무사하기를 바라게 된다.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수없이 자행되는 폭력의 모습과 도시의 뒤편에 가려진 어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구니오의 짙은 허무가 왜 이렇게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지...

그의 도피에 많은 도움을 준 여자들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할 정도로 그는 마치 위태롭기 그지없는 고독한 한 마리의 늑대 같다.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가 이 작품으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고 현시점에서 나의 최고 도달점이라 생각한다는 말을 한 게 이해가 될 정도로 내가 읽은 그의 작품 중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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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불
다카하시 히로키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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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도쿄에서 시골로 전학 온 아이 아야무는 늘 그러하듯이 이번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친해지는 것에 별다른 걱정이 없다.

잦은 이사로 인해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면 생긴 건데 이번에 온 중학교는 내년이면 학교가 폐교되는 만큼 올해가 마지막 졸업생이 되는 셈이고 아야무의 아버지도 이번 전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가족을 이끌고 타지로 옮겨 다닌 필요가 없다.

아야무가 고등학생이 될 때 즈음엔 안정된 직장에서 좀 더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지금의 생활을 조금만 참으면 되는 만큼 다른 때와 달리 여유가 생긴 아야무는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에 깊은 호기심을 느낀다.

그리고 반에서 달랑 6명뿐인 남학생들 사이에 끼지 못하면 1년 내내 괴로운 학교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재빠르게 간파한 아야무는 아이들의 리더인 아키라와 친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아이는 늘 이상한 놀이를 통해 아이들과 친밀감과 결속력을 다지는 아이라는 걸 깨닫는다.

당연하게도 그런 놀이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벌칙을 받아야 하는데 아야무가 지켜본 바로는 그 대상은 미노루라는 아이로 항상 정해져있었다.

조금은 위험한 내기에도, 진 사람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사줘야 하는 내기에도 그 대상은 언제나 미노루였고 아야무의 눈에 보이는 이런 이상함이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비치지 않는 건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없다.

아야무 역시 이상하다 느끼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여기고 무심히 지나칠 뿐 그 역시 아키라의 장난을 빙자한 폭력에 제재를 가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눈에 비치는 또 다른 이상한 점은 그런 장난과 내기를 빙자한 괴롭힘을 당한 다음날이면 미노루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아키라의 곁에서 그와 함께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아이 역시 조금의 괴롭힘을 당하더라도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여기가 아니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참은 건지도...

이렇게 일상이 조용히 흘러가는 가운데 마치 옥에 티처럼 가끔씩 장난처럼 비일상적인 일이 벌어지지만 한 아이 즉, 미노루만 조금 괴로우면 모두가 장난처럼 지나갈 수 있다는 걸 어느새 당연하게 여기게 되는 아야무는 심지어 위험한 장난에 자신 대신에 그 아이가 걸리길 바라기까지 하게 된다.

그런 아야무의 심정의 변화를 깨달은 탓일까?

미노루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는 자신을 괴롭힌 아키라가 아닌 아야무를 향한다.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도 있었을 아야무의 외면이... 자신이나 친구들과는 달리 폭력이 벌어지는 일상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아야무의 처지가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더 원망스럽기도 했는지 모르겠다.

조용하게 벌어지는 축제의 어두운 곳에서 폭발하듯 벌어지는 잔혹한 피의 향연은 누군가의 아픔과 부조리함을 외면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기만 하다.

그러고 보면 처음 들었을 때 시적으로 들렸던 제목이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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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헤이세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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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에게 안락사를 하겠다고 말하는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히토나리

헤이세이의 해에 태어나 이름도 헤이세이랑 같은 한자를 쓰는 히토나리는 언론에 의해 마치 헤이세이를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곧 헤이세이의 해가 끝나고 새로운 연호가 시작될 즈음 히토나리는 헤이세이의 연호와 함께 사라질 결심을 한 듯 보였고 당연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연인 아이는 그의 이런 결심을 막고자 노력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에게도 기억나는 밀레니엄의 그 해프닝이 떠오른다.

밀레니엄을 맞기 직전 세기말이라는 걸 이용해 그걸 팔아먹으려는 사람들과 혹은 새로운 해가 떠오르기 전 지구는 종말 한다는 어느 종교의 말을 믿고 죽음을 기다리던 사람들로 온 세계가 어수선한 가운데 누군가는 거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비운과 비탄에 젖어 두려워하며 새로운 해가 과연 뜰지... 뜬다면 어떤 세상이 될지를 모두가 숨죽여 기다렸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어제와 같은 오늘이었고... 세기가 바뀌든 말든 해는 똑같이 떠올라 한동안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연호가 바뀌는 것도 이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평범한 날 중 하나가 아닐지...

단지 쓰던 연호만 달라질 뿐 사람도 공간도 달라짐이 없을 텐데 왜 히토나리만 유독 혼자서 사라져갈 연호의 운명과 함께 하려고 할까 아이는 답답했지만 그의 성격을 잘 알기에 이 말이 절대로 그냥 해본 말이 아님을 안다.

그래서 더 막막하고 절망적인 기분이 든 아이는 그가 이런 결심을 한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의 오랜 친구도 찾아가지만 뚜렷한 이유 따윈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안락사의 현실을 보여준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직접 안락사하는 현장을 보여주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다.

그는 왜 안락사를 원할까?

그의 말처럼 더 이상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지도 더 나은 활동을 할 수도 없는 지금 현재가 가장 정점이고 앞으로 사그라질 일만 남았을 뿐이니 이때가 죽기에 가장 좋을 때라서?

히토나리라는 인물은 머리는 뛰어나지만 사람과의 교류가 서툴고 누구와의 신체적인 접촉도 꺼리는... 심지어는 연인과의 섹스조차도 거부하는 남자다.

마치 인간적인 면은 남아있지 않은 안드로이드 같은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그가 차갑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히려 상처가 많아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가시를 세워 접근을 막는 어린아이 같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히토나리에 비해 아이는 사랑에 적극적이고 즐기는 데 있어 거리낌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커리어 우먼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렇게 초식남 같은 히토나리와 아이의 결합은 전혀 어울리지 않은듯하지만 묘하게 어울린다.

그래서 이 둘의 사랑은 남들이 볼 땐 터무니없는 듯 보여도 두 사람의 관계는 제법 견고하다. 히토나리가 안락사를 결정하기 전까지지만...

그가 왜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건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소설은 이 책이 나올 당시 일본에서 천왕의 양위가 결정되어 어수선한 분위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안락사를 원하는 건 단순히 표면적인 이야기일 뿐 그 안에는 뿌리 깊은 허무감과 쓸쓸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남자의 고독함이 쓰며 있다.

마치 세기말을 앞두고 온 세계를 뒤덮었던 그 허무함, 공허함, 절망감처럼...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서 그런 결정을 한 히토나리를 완전히 이해는 못 하지만 납득할 수는 있었고 결말 또한 전형적인 일본 소설다운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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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병동
가키야 미우 지음, 송경원 옮김 / 왼쪽주머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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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마음을 먹곤 하지만 그런 미련은 특히 지금 현재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만족스러울수록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더 크기 마련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 두 갈래 선택의 길에서 이쪽을 선택했을 때와 또 다른 쪽을 선택했을 때의 모습을 보여줬던 예능이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 후회 병동 역시 인생에 있어서 어떤 기억이나 행위에 대한 후회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특히 제목에서부터 병동이 등장하는 만큼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삶의 시한이 정해져있다는 제한을 두고 있다.

왜 이런 제한을 둔 건지에 대한 의문은 그들을 안 가본 길로 인도하는 신비한 청진기의 등장으로 풀 수 있다.

이 청진기는 사람의 마음속 말들이 들리고 원한다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준다.

당연하게도 이 비밀은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베풀어지는 특혜이다 보니 병원에 있는 사람 누구도 이 비밀을 알지 못한다.

신비한 청진기의 주인은 사람들이 대부분 여의사에게 남자 의사에게는 기대하지 않는 상냥함이나 싹싹함 혹은 애교 같은 걸 기대한다는 점에서 늘 손해를 보고 있는 루미코라는 여의사이다.

그녀가 환자에 대해 불친절하거나 퉁명스럽거나 한다기보다 단지 좀 눈치가 없고 아픈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요령이 부족하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늘 환자나 보호자로부터 클레임이 자주 들어와 곤욕을 치르고 있던 중 우연히 주은 청진기가 알고 보니 환자의 마음속 이야기가 들리고 심지어는 찰나의 순간에 과거로 돌아가 후회했던 일을 되살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 적극적으로 환자들에게 다가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서도 후회하고 미련이 남은 일을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선택을 해서 가보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편히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이런 과정을 많이 거치면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루미코는 조금씩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살필수 있는...아픈 몸만이 아닌 마음까지 돌볼줄 아는 진짜 의사가 되어가고 그런 그녀의 변화는 어릴적 헤어져 원망만이 남았던 아빠와의 화해를 돕게 된다.

마흔이 넘어서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있는 딸을 둔 노부인의 회한... 그때 그토록 딸아이가 결혼하고 싶어 하던 남자가 비록 한심하고 형편없는 남자라 할지라도 결혼을 반대하지 않고 시켰어야 했다는 것인데 루미코는 노부인의 원을 들어줘 과거를 바꾸러 문을 열고 들어간다.

젊은 나이에 어린 아들과 아내를 두고 죽음을 앞두고 있는 가장의 회한... 왜 좀 더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 열심히 일을 한 이유가 가족과 함께 좀 더 여유롭게 살기 위함이었는데 어느샌가 그걸 잊어버리고 일에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가족이 모여도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고 이제는 함께할 시간마저 없다.

그 역시 과거로 돌아가 지금과 다른 인생을 살다 온다.

이렇게 각각의 에피소드에는 계속 마음에 남아 후회가 되는 일을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한번 다른 삶을 살 기회를 줌으로써 그때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위안을 받거나 혹은 다른 선택을 해서 미련이 남지 않도록... 그래서 편안한 죽음을 맞도록 도와준다.

그 청진기가 다른 인생을 살 기회를 준다고 해서 진짜로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거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지 얼마 남지 않은 삶에 회한이나 후회를 적게 남기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달까

재밌는 건 그 문을 열었다고 해서 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몰랐어도 좋았을 아내의 본모습을 알게 된 남자의 이야기는 그 후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따뜻한 느낌에 감성을 자극하고 여기에다 이야기를 좀 더 동화처럼 만들어주는 요소인 신비한 청진기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후회가 남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설정은 평범함에다 약간의 조미료를 넣음으로써 조금은 특별한 맛이 되었다고 하는 그런 느낌이다.

확실히 가독성도 좋았고 읽고 난 뒤에도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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