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미나토 가나에 지음, 현정수 옮김 / 영상출판미디어(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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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보고서 자신이 한쪽 날개가 되어 그 친구가 펄펄 날았으면 좋겠다는 초등학생의 글이 신문에 실리고 그 글로 인해 발족하게 된 `클라라의 날개`
처음은 분명 아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으로부터 출발해 선의에 의한 시작이었지만 어느새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고 입소문을 타면서 서서히 그 선의가 변질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그린 `유토피아`는 특히 여자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갈등 심리나 시기심, 질투 등을 잘 표현해내는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이다.
대부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걸 가진 친구나 이웃을 질투하는 악의적인 마음을 표현했다면 이 책에선 선의로 시작했지만 그 선의가 자라 누군가의 주목을 받게 되면서 서로가 가진 생각이나 가치관의 차이가 결국은 서로를 향한 미움과 원망으로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두 초등학생의 이쁜 마음과 글을 모티브로 만든 `클라라의 날개`가 뜻하지 않게 인기를 끌고 주목을 받으면서 잡지에 인터뷰가 실리게 되지만 자신의 도예작품에 클라라의 날개라는 이름을 달고 상품을 팔아 그 돈으로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을 위한 모금을 하는 스미레와 휠체어를 타는 딸 자체가 이 모임에 상징처럼 되어버린 나나코와는 달리 정작 이 모임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했지만 언론의 관심에서도 멀어지고 점차 설자리를 잃어버린 딸 때문에 불만이 쌓이는 미쓰키
이렇게 처음의 결속과는 달리 점차 서로에게서 불만이 생기고 균열이 생길 즈음 평소 이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마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한편 이 모임의 주축 멤버이자 자신의 작품에다 날개 스트랩을 붙이고 `클라라의 날개`라고 이름 붙여 팔고 있던 스미레는 원래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닌 도쿄에서 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 마을의 정경에 반해 자신의 작품으로 이 마을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다는 거창한 이유를 가지고 입성한 케이스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평소 대단히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은 클라라의 날개가 관심을 끌기 전에는 작품 하나 팔아 본 적 없었을 뿐 아니라 학교 때 작품으로 인정받기는커녕 존재감조차 크지 않았던 동창이 도예가로 이름을 날리고 모두의 관심과 각광을 받는데서 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그래서 모처럼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게 한 이 모임이 중요했고 어느새 모임의 취지보다 자신의 작품을 알리는데 모임을 활용하게 된 스미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추문이 퍼지는 걸 결사적으로 막고자 한다.
미쓰카 역시 스미레와 마찬가지로 이 마을 사람이 아닌 외부에서 이사 온 아웃사이더로 늘 자신과 딸은 이런 촌구석에 살아서는 안되고 언젠가는 자신의 딸의 재능을 빛나게 해줄 도쿄로 입성하는 게 당연시되는... 그래서 늘 자신들은 이 마을 사람들보다 한수 위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스미레도 역시 자신이 그들보다 한수 위라는 마음으로 늘 마을 사람들을 조금 얕잡아 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간과한 건 자신들의 속마음을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혼자서만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생각하지만 원래 사람들이란 아주 사소한 말이나 행동으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고 오히려 다른 곳에서 이곳으로 온 두 사람은 모두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에 더욱 쉽게 노출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이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에도 색안경을 끼고 볼 뿐 아니라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뭔가 실수나 잘못된 게 없나 불을 켜고 살펴본 데에는 이런 속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이 책에선 얼마나 쉽게 처음의 뜻을 바꿔버리고 초심을 잃기 쉬운지... 선의로 시작해도 그 끝이 반드시 선의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확실히 여자들의 마음을 깊이 간파한 미나토 가나에의 글은 설득력이 있었다.
역시 멀리서 보기엔 평화롭고 아름다운 유토피아 같은 곳도 들여다보면 우리 사는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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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꽃 엔시 씨와 나 시리즈 3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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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자라서 늘 함께 했던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미스터리물이면서도 죽음이 등장하지 않았던 엔시 씨와 나 시리즈의 3번째 이자 국내에선 마지막 출간이 된 가을꽃에선 이렇게 죽음이 등장한다.
학교행사를 준비하던 여학생이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고가 발생하고 모두가 충격을 받은 가운데 죽은 쓰다 와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이즈미를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
나이는 다르지만 쓰다 와 이즈미에 대해 조금은 추억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어느 날 이상한 전단지가 배달되어 오면서 나는 이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죽은 아이 쓰다의 교과서를 복사한 종이... 그리고 그곳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된 말 `보이지 않는 손`은 쓰다의 죽음에 수수께끼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자 한 듯하고 나는 친구의 죽음 이후 모든 감정이 사라진 듯 변해버린 이즈미도 걱정되어 이 사건에 대해 조사를 하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쓰다의 죽음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삶에 대한 활기가 넘치고 고민이라곤 없었던 것 같았던 쓰다는 옥상에서 자살할 것 같은 아이가 아니었고 밖에서 잠겨있었던 옥상에는 쓰다 외엔 다른 사람이라곤 없었다.
그야말로 밀실 상태
그렇다면 그곳에선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왜 이즈미는 뭔가 비밀이 있는 듯 혹은 자책하는 사람 같은 행동을 하는 걸까?
삶에 의욕이 있고 반짝반짝 빛나는 미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는... 사람이란 그렇게 약한 존재라는 대사가 와 닿았다.
누구라도 예외일수 없고 죽음이란 이렇게 한순간 코앞에 와있을 수 있는 것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알게 해준달까
평화로운 일상에 악의를 가지지 않은 채 잔인하게 가해진 폭력 같은 사건은 이렇게 모두의 운명을 비틀어놓았다.
역시 이런 글은 삶의 연륜이 있는 사람이 써야 더 와 닿는 것 같다.
안타깝고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책...시리즈가 중단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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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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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행록`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던 누쿠이 도코로의 책이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나왔다.
같은 의미지만 역시 이렇게 풀어놓으니 좀 더 본문의 내용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형식을 인터뷰 형식 즉 대화체로 이뤄져 있어서인지 막힘없이 읽힌다는 장점이 있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사건에 대해 듣는다거나 그 피해자에 대해 듣는다는 점에서 마치 친구랑 속살거리는 느낌이 들어 훨씬 더 몰입감이 좋았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어린아이들을 포함, 일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당한지 1년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누군가가 그 가족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다는 설정이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자란 중산층 부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이유도 없지만 강도 살인이라고 보기엔 의심쩍은 부분이 많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고 특히 미인인 아내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에서도 평판이 좋은 편에 속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오리무중이다.
남편 역시 잘 나가는 부동산 회사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엘리트 사원으로 누군가로부터 깊은 원한을 살만한 이유가 없는 듯 보인다.
이렇듯 겉으로 보기엔 누군가로부터 원한을 살 만한 이유 따윈 없을 듯 보이는 가족이지만 동창생을 만나고 좀 더 그 부부 본연의 모습에 접근하면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 인터뷰를 할 땐 죽은 사람에게 험담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장점만 널어놓던 사람들도 인터뷰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조심성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이야기는 처음의 말처럼 그들 부부가 고상하고 점잖으며 누군가를 배려한다기 보다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는 우월감이 깊으며 누군가에게 뒤처지거나 주목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면을 교묘하게 감춘 채 위선을 떨고 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특히 아내 쪽에선 탁월한 미모와 카리스마를 이용해 평생을 원하는 바를 쉽게 쟁취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 교묘해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고 비꼬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인터뷰이는 피해자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학창시절 혹은 미혼일 때 다른 사람을 상대로 어떤 짓을 저질렀고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마치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험담을 내뱉기 시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전혀 그들을 부러워한 적도 없다는 듯이 초연하게 이야기하지만 스스로는 모른다.
그 대화 속에서 그들을 향한 깊은 질투심과 부러움 그리고 증오의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한편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오빠와 비밀의 대화를 하고 있다.
비밀이 좋다는 그녀가 오빠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천진한 그녀의 말에 비해 내용은 무겁기 그지없다.
어릴 적부터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던 남매는 정상적인 감정 표현과 애정표현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서로밖에 의지할 수 없었던 남매의 비밀과 인터뷰와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그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일가족 살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대화를 통해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놓은 `어리석은 자의 기록` 은 주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것과 동시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깊은 속내까지 들여다볼수 있게 해주는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교묘하게 벌어지는 암투와 보이지 않게 패를 갈라 싸우는 모습, 그리고 이중적인 태도 같은 걸 너무 잘 표현해서 깜짝 놀랐다.
여자 작가가 아닌 남자 작가가 여자들 사이에 흐르는 그 미묘한 감정을 이렇게까지 잘 표현하다니...
군더더기 없이 짧은 글이지만 인간 내면의 깊은 질투심과 위선을 통찰력 있고 시원하게 까발린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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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선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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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흔하게 쓰는 트릭 중 한 가지이지만 처음 그의 작품 중 하나인 도착 시리즈를 읽었을 때의 그 놀라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그의 작품을 족족 사 모았던 때가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그의 작품에 홀릭 하다 어느새 그의 전매특허가 되다시피한 서술 트릭에 시들해지기도 하고 비슷한 트릭을 이용한 더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면서 내게서 잊혔었던 오리하라 이치
최근 주로 읽었던 크라임 스릴러는 사회파 소설이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사건 자체가 잔인해지면서 인간의 추악하고 잔인한 본성의 끝 바닥을 보는 것에 살짝 지쳤을 때 책장 한 곳에서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책 `실종자`였다.
이 책도 물론 살인을 다루고 살인자를 찾아가는 과정을 다루긴 하지만 본격 미스터리물답게 그 트릭을 찾는 과정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크라임 스릴러의 무겁고 하드보일드 한 분위기에 비해 좀 더 가볍게 부담 없이 읽기엔 딱이었다.
사이타마 현 구키 시에서 연이은 여자들의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 실종되었던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는데 그 시신 옆에는 유다의 아들이라는 메모가 발견되고 그 시신 주변을 수색하다 백골이 된 또 다른 사체가 유다라는 메모와 함께 발견되면서 작은 마을 구키 시는 발칵 뒤집어졌다.
연이은 여자들의 실종사건은 과거 15년 전에도 있었고 이번에 발견된 백골의 주인 역시 15년 전 사라졌던 여학생의 것임이 밝혀지면서 모두의 관심이 이곳 구키 시로 몰린 가운데 이런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은 사건을 취재하고 범인이나 용의자와 혹은 그 가족들과 인터뷰를 해서 그것을 토대로 글을 쓰는 논픽션 작가 다카미네 역시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취재를 목적으로 이곳으로 내려온다.
모두의 관심이 현재 벌어진 여자들의 실종사건과 살인사건을 쫓는 가운데 다카미네는 이 사건과 모든 것이 닮아있고 처음 유다라는 단서를 남겼던 15년 전 실종사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추적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용의자였던 사람들과 면담하던 중 이발사였던 남자가 이번 사건에도 강력한 용의자로 떠오르지만 아버지와 둘이 살면서 정서적으로 어딘지 위태로운 10대 소년 A가 이 사건의 범인으로 구속되고 소년의 자백으로 모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하지만 감시받던 이발사는 불현듯 사라지고 다카미네는 15년 전 사건을 조사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모든 게 처음부터 현재의 실종사건과 15년 전의 실종사건은 닮아있기도 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15년 전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고 별다른 관심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소년 A의 구속으로 모든 걸 덮어버리고 싶어 한다.
마치 그들이 끝이라고 하면 이 모든 게 정말 끝나는 것처럼 믿고 싶어하고 믿으려 한다.
여기에 작가는 작가의 장점이자 전매특허인 다중 시점으로 사건을 묘사하고 누구인지 모르는 범인의 심리를 범인의 시점에서 표현하면서 점점 더 복잡한 구조로 이게 과연 누구의 이야기인지 언제적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만들 뿐 아니라 내용상의 미묘한 차이로 시점의 변화를 주고 있는데 서술 트릭을 자주 접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그 차이는 눈에 띄지 않지만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준다.
그래서 마지막에 가서 그걸 깨달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이쯤해서 반전이 등장한다. 스스로 범인이라고 자백하고 사건 당시를 진술했던 소년 A의 진술 번복!
과연 소년 A는 진짜 범인인지... 15년 전 사건의 범인과 현재 사건의 범인과의 관계는 어떤 건지...
끝까지 가서야 밝혀지는 범인의 얼굴
여러 시점의 변화를 보는 것도 재밌고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서 혼자 예측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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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맨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3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추지나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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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내 가족이 유괴당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난제가 주어진다면 고민의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일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대로 경찰에 바로 연락해서 범인 검거에 힘을 보탤 것인가 아니면 범죄자의 요구대로 돈을 주기만 한다면 내 가족은 무사히 돌아올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채 혼자서 이 모든 것을 감당할 것인가
유괴범죄의 결말은 대부분 실패로 끝나기 마련이고 성공한 예가 많지 않은데 대부분이 인질을 죽였거나 돈을 건네받는 단계에서 미리 잠복했던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기 마련이다.
범죄자의 입장에서도 유괴는 위험천만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돈을 무사히 받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여차하면 인질을 죽여야 하는 2차 범죄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인데 위험도에 비해 성공률은 낮은 리스크가 큰 작업이다.
이런 유괴를 사업화해서 리스크를 대폭 낮춰 인질을 죽이거나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반면 성공하면 큰 돈을 단번에 쥘 수 있다는 유혹의 속살거림이 있다면... 그 유혹이 얼마나 매력적으로 들리는지 소설 립맨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불량한 학창생활을 보내고 나름 껄렁거리며 놀았던 동생  다케하루에 비해 공부도 잘 한 편이고 대체로 모범적인 삶을 살았던 도모키는 대학 졸업전에 입사가 결정되었던 회사에 위기가 닥치고 입사 예정자의 입사를 취소하면서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다 마침내 진창에 빠지게 된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한심한 생활을 하던 동생 다케하루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던 도모키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들어가 짧은 순간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경험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군가의 고발로 보이스피싱 조직이 일망타진되던 그때! 같이 일하던 아와노의 한마디 `레스틴피스`에서 힌트를 얻어 무사히 빠져나오게 된다.
`Rest in peace`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면서 깜쪽같이 위기 상황에서 탈출하는 아와노란 남자는 돈이 필요해서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악의를 가져서도 아닌... 그야말로 범죄를 마치 게임처럼 즐기는 남자
그가 돈이나 원한을 목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게 아니라는 데서 수사관들이 그의 행적을 쫓는게 더욱 힘들어지고 그의 범죄는 감정을 담고 있지 않아 검거하기가 더 힘들다.
그런 아와노에게 걸려든 도모키
도모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취업이 결정되었다 일방적으로 취소를 당해 그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밀어 넣은 회사에 대한 원망과 남들처럼 잘 살아보고 싶다는 돈에 대한 갈증을 꿰뚫어보고 그를 엿 먹인 회사의 사장 아들을 유괴해서 돈을 뜯어내자는 말은 도모키의 인생을 결정짓는 한방이었다.
게다가 아와노는 유괴를 하면서도 누구도 죽거나 피를 흘리지 않을 뿐 아니라 큰 돈도 손에 쥘 수 있고 그의 인생을 바꿨던 회사에 복수를 할 수 있다는 말로 도모키의 귓속에다 독약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시작된 유괴 방법은 납치할 대상의 주위를 엿보다 아무도 안 볼 때 납치해서 그 대상의 집에다 몸값을 요구하고 그 돈을 전달받는다는 평범한 방법이 아닌... 누구도 생각지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교묘하게 틈을 만들어 완전범죄를 꿈꾼다.
그야말로 아와노에겐 이 유괴 작전도 게임이나 마찬가지...모두를 그의 게임판에 불러들였다.
유괴된 자식을 찾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경찰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도움을 청할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이 마치 비즈니스처럼 평화적이었던 납치범을 믿고 경찰에게 다 털어놓지 않은 채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과의 협상을 따로 진행할 것인가? 납치된 아이 아버지의 고민은 깊어만 진다.
서로가 서로를 완전하게 믿지 못한 채 치열하게 작전을 펴고 서로 우위를 점거하려는 경찰과 아와노 그리고 유괴당한 아이의 아버지의 심리싸움을 보는 것도 흥미진진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둔 원망이나 소망을 순식간에 캐치해내서 그걸 자신을 위해 이용하는 아와노라는 사람의 치밀한 두뇌 속의 수읽기가 놀랍다.유괴라는... 모두가 분노할 감정적인 범죄를 냉철하게 하나의 비즈니스처럼 따로 떼어낼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놀라운 책이 바로 립맨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둔 감정을 캐치하고 그 감정을 냉정하게 이용해 몇 수 앞을 볼줄 아는 아와노란 남자는 진정한 설계자이자 이런 사람이 범죄를 계획한다면 왠만해서 막을수 없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다음 편이 나온다면 그림자 속에 숨어 이 모든 판을 계획하고 설계했던 아와노의 정체를 마침내 눈치챈 수사관 마키시마와의 결전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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