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조선과 일본
조경달 지음, 최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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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과 일본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역사를 전개하였다. 근대에 접어들며 두 국가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정치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세월을 거쳐 형성된 정치 문화의 영향으로 두 국가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근대를 맞이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고려 말 왜구를 무찌르는 과정에서 세력을 키운 인물이었다. 조선은 건국 후 일본과의 관계에서 강경책과 온건책을 동시에 활용하였다.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일본은 결국 조선을 침략하였다. 한동안 끊긴 관계는 통신사 파견으로 재개되었다. 근대에 접어들자 두 국가는 더욱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는데, 그 모습은 전통적인 모습과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된다. 결국 일본은 조선(대한제국)을 병합하였다.

  왜 이런 결과가 빚어졌을까? 대한제국을 병합한 후 일제는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논리를 고안하였으니 정체성론’, ‘타율성론’, ‘당파성론이라 불리는 식민사관이다. 이 영향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느니 일본이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이후의 한국사 연구는 식민사관을 논박하는 데 열중하였다. 조선에도 자본주의의 싹이 있어 자생적으로 근대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니 이것이 내재적 발전론이다. 이 책의 저자 조경달은 식민지 근대화론내재적 발전론이 모두 근대를 절대화한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써 정치문화에 주목하여 두 국가의 역사를 비교사적 시야에서 기술한다.

  저자에 따르면 정치문화란 여러 사건과 그 전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과정과 관련된 일체의 문화이다. 조선과 일본의 서로 다른 정치 문화가 서구의 근대를 만나 서로 다른 결과를 빚어냈다는 게 저자의 논지이다. 조선의 정치문화는 주자학을 기반으로 형성된 유교적 민본주의. 이는 유교적 의 담지자로서 국가가 멸망하더라도 서구 문물을 척사하여 은 지켜야 한다는 최익현의 사상에서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했던 급진개화파에게서도 주자학의 영향이 드러난다. 반면에 일본은 같은 주자학을 공유했을지라도 조선과 달리 주자학을 통치수단으로서 이용하였다. 때문에 일본은 조선과 같은 문화적 우월의식이 없었으니 서구 문물을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특히 요시다 쇼인에 의해 형성된 <국체>론은 국가위에 위치시킴으로써 이 차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일본은 <국체>론에 입각하여 수립된 <정한>론에 따라 조선과 조일수호조규를 확약하여 새로운 질서 속에서 관계를 맺었고, 이에 마주한 조선의 여러 시도에는 주자학이라는 정치문화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배적인 문화를 넘어서려는 시도까지도 기존 문화의 영향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고려를 무너뜨리고 건국한 조선 사회 전반에 주자학이 스며들기까지 조선은 어떤 과정을 겪었는가, 한국 병합 이후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의 역사는 어떠하였는가. 앞의 질문은 이전 시기를 바라보게끔 하고, 뒤의 질문은 이후의 시대를 바라보게끔 한다. 이를 위해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한국의 유교화 과정>, 가토 요코 의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가 적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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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신, 그런 신은 없다." 저항운동가인 개신교 신학자 본회퍼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는데, 옳은 얘기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단순한 객체,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이 그것das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일 수 없다. 그런 하느님은 인간이 만들어 낸 우상일 따름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존재하는 하고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며, 오직 인간의 인식 안에서만 그 존재를 부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순전히 관념적,철학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 "하느님"이라는 초경헉적 실재가 있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그 실재에 온전히 실천적으로 내맡기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 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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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누구도 더 이상 신앙을 강요받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 또는 종교개혁 시대의 사람들처럼 믿지는 못한다.(5p)

비의적 해석이나 말라빠진 교의적 해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해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누가 보아도 뻔한 반이성적 강변을 내세울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순수이성의 경계 저편의 실재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증을 제시하고자 한다.(6p)

이 사도신경 해설을 이끌어온 확신인즉 바로 이것이다: 저무는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한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신뢰를 지니고서 ˝믿나이다˝Credo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의 삶을 위한 지표와 자신의 죽음을 위한 희망으로서 사도신경의 항목들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다.(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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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이슬람 근본주의 저항세력을 이 지역으로 불러들였다. 파키스탄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 세력은 소련을 전쟁의늪으로 빠뜨렸다. 미국의 원조는 이런 경향을 한층 더 강화하여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급속하게 군사적으로 강화했던 것이다. 미국이 소련과 싸우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 깊숙이 관여하고, 무자헤딘 세력을지원했던 것이, 뒤에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운명적인 대립을 키운 것이었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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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기억과 그 반대편에 있는 배제된 기억 간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있다..역사는 말끔하게 완결된 이야기일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의 큰 이야기(대문자 H의 역사)가 아닌 여러 이야기들이 필요한(발굴되어야할) 이유이겠다.


실증주의도 이데올로기다. 기억 전쟁에서 실증주의는 특히‘아래로부터의 기억이란 과장되고 부정확하며, 정치적으로 왜곡되었거나 심지어는 조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힘있는 가해자가 관련 문서와 역사적 서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힘없는 희생자들이 가진 것은 대개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뿐이다. 그런데 중언은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정확하다. 그러므로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자들의 풀뿌리 기억은 실증주의라는 전선에서는 문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실증주의로 무장한 부정론자들이 증인을 취조하듯이 압박하고 증언과 증언 사이의 모순을 끄집어내 증언의 역사적 가치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거짓말‘, ‘혐오스러운 조작‘, ‘진실의 왜곡‘, 사실의 날조, 전적으로 날조에 의존한 싸구려 픽션‘, ‘각주가 있는 소설‘, ‘수백 가지 거짓말‘ 등과 같은 언어폭력이 역사적 비극의 생존자 증인들에게 가해지고, 이는 ‘실증‘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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