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신, 그런 신은 없다." 저항운동가인 개신교 신학자 본회퍼가 언젠가 이렇게 말했는데, 옳은 얘기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단순한 객체,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하느님이 그것das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일 수 없다. 그런 하느님은 인간이 만들어 낸 우상일 따름이다. 인간이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는, 존재하는 하고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것이며, 오직 인간의 인식 안에서만 그 존재를 부지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누구에게도 하느님의 존재를 인정하라고 순전히 관념적,철학적으로 강요할 수 없다. "하느님"이라는 초경헉적 실재가 있음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을 그 실재에 온전히 실천적으로 내맡기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 P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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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누구도 더 이상 신앙을 강요받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믿음을 가지고자 한다. 그러나 고대나 중세 또는 종교개혁 시대의 사람들처럼 믿지는 못한다.(5p)

비의적 해석이나 말라빠진 교의적 해석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물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해석을 제공하고자 한다. 누가 보아도 뻔한 반이성적 강변을 내세울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나 순수이성의 경계 저편의 실재에 대한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증을 제시하고자 한다.(6p)

이 사도신경 해설을 이끌어온 확신인즉 바로 이것이다: 저무는 20세기를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대한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성적 신뢰를 지니고서 ˝믿나이다˝Credo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자신의 삶을 위한 지표와 자신의 죽음을 위한 희망으로서 사도신경의 항목들에 대해 ˝예˝라고 말할 수 있다.(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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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이슬람 근본주의 저항세력을 이 지역으로 불러들였다. 파키스탄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 세력은 소련을 전쟁의늪으로 빠뜨렸다. 미국의 원조는 이런 경향을 한층 더 강화하여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을 급속하게 군사적으로 강화했던 것이다. 미국이 소련과 싸우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에 깊숙이 관여하고, 무자헤딘 세력을지원했던 것이, 뒤에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의 운명적인 대립을 키운 것이었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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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기억과 그 반대편에 있는 배제된 기억 간의 상관관계에 관심이 있다..역사는 말끔하게 완결된 이야기일 수 없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의 큰 이야기(대문자 H의 역사)가 아닌 여러 이야기들이 필요한(발굴되어야할) 이유이겠다.


실증주의도 이데올로기다. 기억 전쟁에서 실증주의는 특히‘아래로부터의 기억이란 과장되고 부정확하며, 정치적으로 왜곡되었거나 심지어는 조작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자주 소환되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힘있는 가해자가 관련 문서와 역사적 서사를 독점한 상황에서 힘없는 희생자들이 가진 것은 대개 경험과 목소리, 즉 기억과 증언뿐이다. 그런데 중언은 불완전하고 감정적이며 때로는 부정확하다. 그러므로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힘없는 자들의 풀뿌리 기억은 실증주의라는 전선에서는 문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실증주의로 무장한 부정론자들이 증인을 취조하듯이 압박하고 증언과 증언 사이의 모순을 끄집어내 증언의 역사적 가치에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잦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거짓말‘, ‘혐오스러운 조작‘, ‘진실의 왜곡‘, 사실의 날조, 전적으로 날조에 의존한 싸구려 픽션‘, ‘각주가 있는 소설‘, ‘수백 가지 거짓말‘ 등과 같은 언어폭력이 역사적 비극의 생존자 증인들에게 가해지고, 이는 ‘실증‘이란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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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지성사, 니콜라이 베르자예프, 이경식 옮김, 종로서적1981, pp130-132


6장 러시아 공산주의와 혁명 중 일부 발췌.

  

 혁명의 의미는 역사 철학 중에서도 종교적인 기초를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다이 때에 혁명의 의미는 역사에 깊숙이 내재된 묵시록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묵시록이란 역사 그 자체의 내부에서 내려지는 심판의 계시역사의 실패의 폭로이기도 한 것이다아무런 방해가 없는 진보란 불가능하다어떠한 창조적 힘도 없을 때 그 사회 위에 내려지는 심판을 피할 길은 없다이 때 불가피한 혁명은 하늘이 명하는 바일 것이며거기서 시간의 단절이 생긴다하나의 중절(中絶)이 생기게 되며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이는 모든 힘이 개가를 울리게 된다이들 모든 힘은만일 우리가 아래에서부터가 아니라 위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무의미한 것에 내려진 의미의 심판암흑 속에서의 섭리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혁명은 역사의 작은 묵시록이며 역사에 있어서의 심판이다. 혁명은 죽음과도 흡사한 것이다. 그것은 죄의 불가피한 결과인 죽음을 통과하고 있다. 전체로서의 역사의 종말은 마치 세계가 죽음을 통과해서 신생(新生)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 안에서 인간의 개인 생활 가운데서, 하나의 종말은 주기적으로 나타날 것이며 또한 신생에의 부활을 위해 죽음은 찾아오게 될 것이다. 혁명에다 공포와 음산함, 죽음과 유혈의 빛깔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혁명이 죄가 되고 죄의 확인이 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전쟁이 죄가 되고 죄의 확인이 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혁명은 역사의 운명이 되고 있으며 역사적 존재의 불가피한 숙명이기도 하다. 혁명에 있어서 심판은 부정을 가져왔던 악의 힘 위에 내려지겠으나, 심판을 내리는 모든 힘이 또한 스스로 악을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혁명에 있어서 선 그 자체가 악의 힘에 의해 실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선의 힘은 역사 속에서 선을 실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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