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전쟁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고유한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전쟁

 

 

김진명,,, 한때 그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시작으로 그는 항상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쓰는 작가인 것 같다.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다. 왜 박정희는 충실했던 김재규에 의해 암살 당하고 만 것일까? 그리고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은 무엇일까? 등등. 한국인의 역사면서도 정작 우리들이 관심을 갖지 않은 역사를 알리기 위해 그는 오늘도 열심히 글을 써내고 있다. 그것이 역사의 정설이 아니든,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든, 어쩌든 간에 그의 이러한 문제제기만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동북아공정은 계속 문제시 되어 왔다.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발해의 역사가 어느새 중국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고구려의 역사까지도 중국 역사의 한 페이지로 들어가려고 한다. 우리의 역사학계와 정부는 우리의 역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 대통령은 외국 순방길에 오르고, 국회의원은 성추문을 일으키거나 자식의 청탁 문제를 해결하느라 더 바쁜 모양새다.

 

그리고 요즘의 남북 관계는 극도록 긴장을 높이며 대립하면서 더 중요한 문제들을 지우는데 일조하고 있다. 전쟁을 일으켜서 통일이 될 수 있다면 그것도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피해가 예상되는 길을 가려고 그렇게 애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전쟁? 누가 최전방에 서지? 어느 땅에서 일어나는 거지? 우리가 일궈온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데도? 그리고 우리의 전쟁으로 누가 이익을 얻는 거지? 북한을 다 때려 부수고 전쟁을 일으켜 버리라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 유엔을 등에 업었다고 해도 중국이 뒤에 버티고 있는 북한을 전쟁에서 이겨 온전히 차지할 수 있겠냐고. 주변국들이 우리의 남북 통일이 되도록 가만히 지켜보고 있겟냐고 말이다. 우리에게 간섭하며 서로의 세력권을 늘리기 위해 난리일 것이다.

 

어쨌든 작가인 김진명은 만약 전쟁이 나면 중국에 많이 의지하고 있는 북한 또한 중국의 역사로, 하나의 지방 도시로 편입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김진명의 말처럼 현재 우리의 외교 실력과 미국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전쟁 통솔권을 보면, 미국과 대등한 중국을 등에 업은 북한이 정말 중국 땅이 되지 말란 법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 통일을 바라는 사람도 많이 없고 통일을 위한 행동도 더 이상 없다면 정말 남북 통일에 대한 미래는 없는 것이다. 이제 통일에 대한 희망은 없는 것일까?

 

김진명의 이 소설은 액자소설 형태로 이뤄져 있다. 아주 똑똑하고 높은 야망을 가진 이태민이 남북 관계를 이용해 한국에서 무기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태민은 개업한지 2년 만에 50억을 벌 정도로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군수납품 비리가 터지면서 태민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고 중국 베이징으로 도망가게 된다. 태민은 그곳에서 북한 사람들이 다니는 가게에 드나들며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말이 없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만나게 된다. 그에게 흥미를 가지면서 명함을 주게 되는데, 그가 어느 날 새벽에 갑자기 태민을 불러내 USB 하나를 맡긴다. 그런데 그날 밤 그는 살해 당한다. 태민은 극도의 불안을 느끼며 그가 준 파일을 열어보니 미완성 소설 원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태민은 우리나라의 동이족 요하문명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그와 관련된 음모도,,,

 

한자가 중국 한족에 의해 만들어져 그 주변국이 모두 한자를 빌려 썼다. 그러면 당연히 그 주변국에서도 한자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문화나 언어 습관에 맞는 말들을 창조하게 된다. 전세계 사람들이 영어를 사용하며 그들만의 알파벳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김진명은 사마천의 <사기>와 공자에 의해 동이족의 문화가 왜곡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弔(조상할 조)'와 '吊(조상할 조)'라는 한자를 문화권에 따른 형성 배경의 차이로 설명하고 있는 점은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畓(논 답)'에 붙은 설명도 말이다.

 

그런데 김진명의 다른 소설들과는 다르게 결말과 논리 전개에 대해서 아쉬운 부분이 들었다. 그는 허구지만 거의 사실을 배경으로 진짜 같은 소설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요하문명을 나타낼 수 있는 자료나 한자를 더 많이 찾아내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만큼 많이 아쉬워졌다. 아무리 한국사능력시험이 생기고 한국사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시험 문제 푸는 걸로는 우리의 잃어버린 역사를 제대로 바로 세우기란 많이 힘들지 않을까 해서...

 

소설 속에 소설로 삽입된 전준우의 완성된 역사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우리는 자랑할 만한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많이 잃어버리고 있는 걸까? 동이족의 역사를 더 많이 제대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 인터파크 신간리뷰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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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에게서 온 편지 : 멘눌라라 퓨처클래식 1
시모네타 아녤로 혼비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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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여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조각 퍼즐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책 광고에 있었다. 죽은 사람이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며,,, 한 집안의 하녀였던 멘눌라라에게서 날아온 편지로 인해 일어나는 미스터리를 추적해 나가는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안 사람들이 생전에 멘눌라라에게 무슨 짓을 했고 죽음 이후에 멘눌라라가 어떤 조치를 취하는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혼합된 책이라는 생각이들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광고에 속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책 띠지에 '지적 유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단 하나의 소설'이라는 거창한 홍보 문구는 엄청난 과장으로 느껴졌다.

 

책이 재미없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책 홍보 문구가 잘못 되었다는 말이다. 보통은 홍보 문구 등을 보고 책의 내용을 추측하며 그에 맞는 내용을 기대한다. 내가 기대하던 것과 다른 결말이 나오면 상상하지도 못한 내용이라며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고는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전혀 다르게 내가 삽질한 느낌이 들었다. 마녀에게서 온 편지라고 해서 대체 언제 편지가 오는지, 멘눌라라가 언제 말을 거는지, 그리고 지적 유희가 언제 나오는지, 기대하며 자꾸 기다렸던 것이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기대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홍보 문구를 멘눌라라의 정체에 대해서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여자가 죽었다. 그 여인과 친한 사람도 있었고 그냥 얼굴만 보거나 이름만 들은 사람도 있었다. 시칠리아의 로카콜롬바는 아주 작은 마을이라서 그 여자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른다. 그 여자가 주인집에 열심히 봉사했다며 좋게 평가하는 쪽과 욕하고 못돼 먹은 여자라며 나쁘게 평가하는 쪽이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의문을 갖는다. 왜 하녀인 멘눌라라가 주인집인 알팔리페가의 재산까지 관리하는 사람이 되었고 하녀인 주제에 주인집 사람들의 삶에 그렇게 관여할 수 있었을까? 하녀의 봉급으로 도저히 살 수 없는 집을 사기도 하고 알팔리페가 자녀들에게 주는 돈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출처를 궁금하게 여겼다. 특히, 알팔리페가 자녀들은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멘눌라라가 개인적으로 착복한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 한다. 그래서 멘눌라라의 유언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는데,,,

 

이 책에서 나오는 마을 사람들의 입방아는 우리의 모습을 많이 닮은 것 같았다. 공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사생활이 신문지 상에서 자극적으로 까발려지고 우리는 또 그것에 대해 입방아를 찧지 않은가 말이다. 작은 마을에서는 옆집의 수저가 몇 개인지도 알 정도로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작은 일도 금세 화제가 되어 소문이 퍼질 것이다. 그래서 알팔리페가 사람들이 멘눌라라에게 욕을 했다든지 서로 싸웠다든지 하는 내용이 하루가 멀다하고 마을에 금세 퍼져 나갔다. 개인 사생활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지옥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나 멘눌라라의 주변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밝혀지는 멘눌라라의 정체... 책을 읽다보면 작은 단서들을 모으고 모아서 멘눌라라의 모습을 만들어가는 조각 퍼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도 멘눌라라의 전체 모습을 알 수 없어서 결국 본인과 긴 편지에 의해 많은 얘기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멘눌라라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기억이나 편지는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그녀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거칠고 단호하고 욕도 하고 남자같고 기가 쎘던 멘눌라라는 똑똑하고 끈기있고 책임감이 있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사랑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지켜나갔던 의지가 있는 여성이었다.

 

이 책에서 지적 유희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요약한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고 있으므로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에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많은 이름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만 말이다. 멘눌라라의 장례식이 벌어지는 그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사람들의 얘기만으로 잘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칠리아,,,라는 말만에서 풍기는 마피아의 위력을 이 책을 읽으며 더 실감하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시칠리아나 로카콜롬바 지역의 모습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멘눌라라가 언제나 그림자로 존재하는 자신의 삶에 정말 만족했을까 모르겠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행복을 매일 밤 꿈꾸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진정한 사랑을 너무나 늦게 깨닫고는 한다. 뒤늦은 후회에 몸부림치면서 말이다. 멘눌라라,,, 그녀의 삶에 조의를 표한다.

 

 

* 네이버 책좋사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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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5-08-22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다읽고도 이해가 않되는게 그 집안의 가족들의 행동이에요 하녀였기 때문에 아예 탐욕적인 욕심만 가득한 인간쓰레기들
아내도 솔직히 빌붙어산것고 솔직히 그녀의 헌신이 이해가 안되요 그럴 가치가없는 인간들인데 죽은 주인도 쓰레기 다 쓰레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합의하에 관계 성욕을 배출하기위한 도구로 이용한 주인의 어머니도 그렇고 참 읽고나서도 불편한

바람향 2015-08-22 13:3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처음에 이해가 안됐어요. 아무리 하녀가 똑똑하고 능력이 뛰어나서 재산까지 관리한다고 해도 주인집 자녀들의 삶까지 관여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만큼 그들 가족이 능력이 없고 하녀에게 의지해 살았다는 걸 보여주려고 그렇게 설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조차 못한 건 그들 스스로의 한계인거죠. 게다가 하녀의 재산을 받으려고 얼마나 막장으로 치닫는지,,, 물건 깨부수는 장면은 우리나라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한 마디로 코미디였죠.

그래서 이 책을 읽어도 `멘눌라라`라는 여자의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아무리 사랑을 해서 책임감을 가졌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그렇게 바칠 수 있는 걸까요? 그렇게 당당하고 의지가 강한 여자가, 마피아 대부에게까지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런 여자가, 그림자로서의 삶을 가만히 받아들이며 희생했다는 점이 이해가 안되죠. 하녀로서의 입장을 지켰다는 것도 어차피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여자였다는 다른 사람의 평가일 뿐이잖아요. 정말 멘눌라라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본인에게서 직접 듣고 싶었어요~~
 
버드 박스
조시 맬러먼 지음, 이경아 옮김 / 검은숲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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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공포 속을 더듬거리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보자. 얼마만큼 걸어 갈 수 있을까? 한 정거장도 가기 힘들 것이다. 아무리 지팡이로 땅을 두들기더라도 내 앞에 무엇이 있는 건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극도의 불안감과 공포심을 주기 마련이다. 내가 무엇을 만지고 있는지, 내가 만지는 거 외에 어떤 게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소재의 문학과 영화 등이 많이 만들어져 왔다. 대표적으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일 것이다.

 

최근 지구가 종말한다는 내용의 작품이 많아진 것 같다. 전염병이든 좀비든 어떤 사건을 계기고 우리의 세계가 종말을 맞이했다. 그러한 종말 속에서 힘들 게 생존한 인간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현재의 불안한 여러 현실들이 이러한 묵시록적인 미래를 만들어 내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구가 종말을 맞이한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무겁고 씁쓸하게 만든다. 이 책의 번역자도 번역을 하다가 무수히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잔인하고 엽기적인 장면들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오랫동안 갇혀 지내야 한다는 사실은 가만 있는 사람도 미치게 만들 것이다. 집에만 있으면 얼마 못 견디고 답답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속의 인물들은 뭔가를 봐서도 안되기 때문에 창을 모두 막아 놓은 상태다. 그런 곳에서 인간은 얼마를 버틸 수 있을까? 우리가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존재도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걸 본 인간은 모두 미쳐서 죽었기 때문이다. 죽지 않은 인간도 반쯤은 미친 인간이 되기 마련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느 날, 러시아에서 어떤 사건이 발생한다. 원한 관계가 없는 일반인이 갑자기 누군가를 죽이고 자살을 한다. 처음에는 별 일이 아니라고 치부하지만 점차 세계 곳곳에서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 갑자기 사람들이 미치게 된 것일까? 점차 그 사람들이 '뭔가'를 봤다는 걸 알게 된다. 나중에는 그 뭔가를 결국 '크리처'라고 부른다. 어느 누구도 그 뭔가의 확실한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크리처라고만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간에게 금기는 그것을 깨고자 하는 욕구를 심어준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슬픈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오르페우스가 하데스로부터 아내를 데리고 나오면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듣는다. 하지만 아내가 뒤따라 오는지 너무나 궁금했던 오르페우스는 결국 금기를 깨고 만다. 이게 인간이 어리석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금기는 깨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까? 이브가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따 먹은 것처럼, '금기'라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무수한 유혹에 시달린다.

 

이 책에서도 자꾸 "눈을 감아. 눈을 뜨지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면 들을 수록 눈을 뜨고 싶은 감정이 소용돌이 쳤다.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떻게 될까? 내 옆에서 나를 만지는 뭔지 모를 손길과 숨결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내 앞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게 무슨 일인지 궁금한데도 눈을 뜨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까? 나는 못 견딜 것 같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실눈이라도 뜨고 볼 것 같다. 그게 어떤 끔찍한 광경이라도 말이다.

 

더듬더듬 손을 내민다. 내가 만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마음 속에서 비명을 지른다. 마음의 눈이 그게 무엇인지 먼저 확인이라도 한 듯이 말이다. 세기말적인 묵시록이 가슴을 답답하게 뒤흔든다. 모두 닫혀진 문들, 뭔가로 덮여 창 밖의 빛조차 들어오지 않은 밀폐된 방, 얼마 남지 않은 식량, 눈을 감은 상황에서 들려오는 무수히 많은 소리들로 우리의 공포심은 극에 달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우리가 있는 공간은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을 버리고 어딘가로 떠나기에는 두렵다. 그 길에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두려움을 이겨내고 떠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이렇지 않을까? 두려움과 공포가 우리의 발목을 집어 삼키고 있는 것이다. 그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고 떨쳐 일어나야지만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맬러리가 조금 더 나은 은신처를 찾아내 자신과 아이들을 의탁한 것처럼 말이다. 그곳에서 인간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고 조금씩 문명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 밖의 세상은 뭔지 모를 크리처들이나 미치광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란 희망이 있는 것이다...

 

 

* 인터파크 검은숲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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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페르소나
이석용 지음 / 책밥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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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자들의 숙명

 

 

이름은 무엇일까?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아무 의미도 없는 것에 이름을 붙여주자 내게로 와서 꽃으로서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무언가로 불린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황석영의 <삼포가는 길>에서 백화가 마지막에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는 것과 같이 사람 간의 관계에서 어떤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은 유명한 사람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떨 것인가?

 

'클럽 페르소나'라는 공간에는 역사 속 인물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은 이름이 특이하다는 것 외에도 사회에서 소외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과 같은 역사 속 인물을 설명할 때는 생기가 돌면서 어떤 열기를 느끼게 했다. 자신들은 이곳에서 그 역사 속 인물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며 이곳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위안을 얻었다.

 

이곳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클럽 페르소나를 처음으로 만들고 사람들을 모았던 허균이 클럽 2층의 방 욕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이곳에 투입된 40대 아줌마 서효자 형사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서 형사는 이곳의 바텐더와 여러 회원들을 만나며 클럽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허균을 죽일 만한 원한 관계가 있는지 파악한다. 그러면서 클럽의 유산이 바텐더에게 가도록 정리되어 있다는 점을 의심하게 된다. 게다가 클럽이 되기 전에 소유권이 바텐더에게 있었던 터라 더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클럽에서 찍고 있던 <신아리랑>에서 또 다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먼저 이 소설이 형사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건지, 역사소설을 지향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우리나라는 탐정 제도가 없는 탓에 형사가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에 탐정소설보다는 형사소설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여자 형사가 등장해 사건의 전모를 밝히려고 한다. 하지만 어떤 트릭이나 속임수보다는 사람들의 고백이나 과거 이야기가 더 많은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탐정 소설들도 과거가 등장하지만 속임수나 트릭이 대부분이고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난 이후에 고백이 이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대부분 클럽 페르소나의 정체에 대한 고백이 더 많은 내용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왜 클럽 페르소나에 열광할까? 그것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부적응자들이 하나의 가면을 쓰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건의 힌트라고 할 수 있는, 빨간 립스틱으로 적혀 있는 '불수호난행, 즉, 모름지기 어지럽게 걸어가지 말지니'라는 조선후기 문신 이양연의 시 <야설>의 일부분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을 해석해 준 사람이 바로 클럽 회원 중 한 명인 박문수였다. <야설>은 백범 김구의 휘호로 유명해진 시인데, 허균과 함께 클럽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안두희를 향한 문구라는 것이었다. 안두희는 백범 김구를 시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지막 결말을 보면, 작가가 형사소설보다는 역사소설을 더 지향했던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이름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허균이 죽은 이후에 다른 사건이 크게 발생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클럽 페르소나의 등장 인물들이나 형사가 많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어떤 고백을 하기에 급급한 것 같아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클럽 페르소나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인물과 관련된 역사를 알기 위해서 노력하였고 역사에서 잘못한 일을 사과하는 모습도 보였다. 정작 본인들이 한 일도 아니지만 같은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책임감을 가졌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에 이름의 의미가 더욱 더 무겁게 다가왔다. 세상의 모든 이름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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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미의 반딧불이 - 우리가 함께한 여름날의 추억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이덴슬리벨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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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훈훈해지는 나른한 오후의 추억

 

 

이 소설은 한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라서 겨울 호빵이 생각났다. 손이 시려운 한겨울에 뜨거운 호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기억,,, 그렇게 삶에 지친 나에게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었다. 이야기 구조는 간단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변화되는 세계, 그리고 서로에게 어떤 의미로 남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소설이었다.

 

누구나 한여름에 가족들과 냇가나 바다나 산으로 놀러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억들이 어느새 아련한 추억들로 남아 있게 되었다. 어렸을 때 그렇게 가족들과 물놀이를 다닌 것처럼 나도 커서 결혼해서 자녀들과 함께 여기저기 물놀이를 다닐 것이다. 그럼 그 아이들도 이러한 추억을 가지고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대를 이어서 추억은 또 다른 추억을 남기고 그리워 하게 될 것이다. 이게 우리의 인생이고 행복일 것이다. 돈을 벌어서 쓰느라 빡빡한 삶에서 조금 물러나 이러한 소소한 기쁨들을 누리고 사는 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소설은 남자 주인공인 아이바 싱고와 여자 주인공인 가와이 나쓰미가 오토바이를 타고 외진 곳을 달리다 구멍가게인 '다케야'에 우연히 들려 지장 할아버지와 야스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지장 할아버지는 야스 할머니의 아들이었는데, 예전에 몸을 다쳐서 걷는 게 조금 불편한 상태였다. 그곳에서 싱고는 자신의 사진들을 보여주다가 다케야에 머물면서 사진을 찍게 된다. 그러면서 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반딧불이도 보고 아름다운 풍경들의 사진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다케야에 가끔 오는 사카키야마 운게쓰도 만나게 되는데, 처음에는 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운게쓰는 살아있는 불상을 조각하는 것으로 유명한 불사였다. 그들은 다케야에 지내면서 지장 할아버지와 야스 할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고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 간다...

 

책의 중간 부분에 냇가에서 놀면서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를 잡는 내용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 곳곳을 여행하며 작가가 직접 체득한 방법들이라고 하니,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 같았다. 또한, 이 책에서는 반딧불이가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는데,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반딧불이를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 환경 오염으로 인해 반딧불이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 슬퍼졌다. 우리의 추억도 그렇게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좋은 구절들이 많아서 잔뜩 소개해주고 싶어졌다.

 

"아무렴. 좋아하지. 민들레꽃은 죽으면서도 수많은 생명을 하늘에 둥실둥실 날려 주지 않니? 그래서 참 멋진 꽃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57쪽)

 

"타인과 비교하면 내게 부족한 것만 보여 만족을 모른대.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 (127쪽)

 

"재능이란 건, 각오랑 같은 뜻이기도 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난 인간이라도 뭔가를 이루기 전에 포기하면 그 인간에겐 재능이 없었던 게 되지. 굳게 마음먹고 목숨이라도 걸 각오로 꿈을 이룰 때까지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녀석만 나중에 천재 소리를 듣게 돼." (244쪽)

 

시간이라든지, 마음이라든지, 추억이라든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 있다. 그런 건 아무리 튼튼한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내 안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만 접할 수 있고 조절할 수 있다. 내 안의 '생각'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여 이 세상의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겠지. (252쪽)

 

그대로 계속 붙은 채 날아가서, 같은 땅에 내려앉아, 이웃으로 함께 쑥쑥 자라서, 활짝 피운 예쁜 꽃을 서로 보여 주며, 그렇게 죽을 때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생을 같이하다가, 마지막엔 또 함께 많은 씨를 하늘로 날리면 좋겠다. (263쪽)

 

이 책을 읽으며 '행복'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려고 하는 것도 다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그렇게 바쁘게 살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몸과 마음이 병들어 있었다. 이렇게 자신을 좀먹고 불행하는 게 주변이나 타인이 아니라 '내 마음'은 아니었을까 고민해 보았다. 남과 비교하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내 자신, 그리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야 마는 내 자신,,, 나는 나 자신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그건 '진정한 나'가 아니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나약하고 여린 나'의 발버둥일 뿐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그런 나'를 한번 안아주고 토닥여 주자. 넌 말이야, 정말 잘 하고 있어...

 

 

* 인터파크 이덴슬리벨 서평단으로서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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