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사흘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담석이나 위궤양 같은 거면 떳떳이 말하겠지만,

그럴 사정이 못된다. 궁금해도 참으시라. 사흘 정도 입원하는 병이 뭐가 있더라? 그래, 자연분만.

진통이 시작되어 애 낳으러 들어갔다고 생각하며 궁금증을 이겨내시라. 토요일이면, 다시

밝은 햇볕을 볼 수 있을게다.

오늘은 외래에 들러 입원 결정서를 받아가지고 나왔다. 어제 춥게 자서 몸도 안좋고, 날씨도

춥고, 이런 걸로 입원을 해야하는 현실이 속이 상해, 기분전환용으로 영화를 하나 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낭만자객>!

 

이 영화를 보고 싶게 된 계기가 있다. 난 김민종은 가수로도, 배우로도 인정을 안하는지라

전혀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찾는데, 옆에 있는 여자애 둘이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낭만자객> 어때?"

"그거 보는동안 너무너무 웃고, 울기도 했어. 진---짜 재밌어"

오호라, 그렇단 말이지. 집에 가는 길에 그 영화가 생각이 났고, 마침 시간도 절묘하게

맞았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아침이라 관객은 열댓명 정도 되었는데, 나같이 혼자 온 백수가 절반은 됐다.

20분 경과: 아무도 웃은 사람 없음.

37분쯤: 한명이 "허 참나"란 말을 함

40분: 한명이 나감.

50분: 역시 아무도 웃지 않음

55분: 한명이 키득 하고 웃다가, 아무도 안웃으니까 웃음을 접었음.

60분; 2명째 나감.

65분: 3명째 나감.

67분: 내가 네번째로 나감.

 

원래 난 본전을 많이 생각하는 놈이다. 시험을 망치는 한이 있어도 영어로 된 원서를 읽어댔던

그런 놈이다. 그런 내가 극장을 뛰쳐나갔다면, 대단히 문제가 심각하지 않겠는가.

윤제균 감독, <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을 연속으로 히트시키니까 보이는 게 없는가.

세상이 그리도 만만해 보이던가. 이딴 거 틀어주면 우리가 다 자지러질 줄 알았겠지?

 



 

여자귀신: 오빠는 날 왜 찍었어?

남자: 어부지리로요.

여자귀신: 오빠, 어부야?

 

이게, 웃긴가? 초등학생들도 이런 유머엔 안웃겠다.

"공무집행으로 일어난 사고니 무죄를 선언한다"

"청나라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도 자기나라로 도망가면 된다니까"

그래, 미선이와 효순이 얘기를 소재로 삼으면 남들이 '문제적 작가'로 봐주고, 졸라 공감할 걸로

생각했는가? 이런 그지같은 영화에 그들의 넋이 이용된 게 난 화가 난다. 쓸데없이 욕하고,

쓸데없이 머리통을 갈기면 우리가 웃을 거라고 생각했냐?

 

30분을 지나면서부터 어제 돈을 인출하던 그 여자애 생각을 했다. 그들의 정체는 도대체

뭘까. 알바, 그렇다. 그들이 찾는 돈은, 호객행위로 받은 돈이었을 게다. 아니, 넣다 뺐다

하면서 계속 그런 말을 지껄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터넷 사이트에도 알바가 넘치는데,

이 땅에 믿을 놈은 도대체 누구인가. 영화를 보고 기분이 더 울적해졌다. 아 씨, 입원하기

싫어!

 

* 한가지: 진재영이 재기한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로 연예인이 매장되는

건 O양과 백양에 그쳐야 한다.
---------------------------

<낭만자객>을 보다가 나와 버렸다. 본전 생각을 유난히 하는 나지만, 때로는 투자한

돈보다 앞으로 투자해야 할 시간이 아까운 때가 있는 법이다. 그걸 본 이유는 누군가가 재미있다고

떠드는 걸 우연히 들은 탓인데, 보고 난 뒤에는 그 말을 한 사람이 '알바'일 거라고 생각을 했다.

"코믹 천하평정"이라고 굵직하게 쓴 광고카피와는 달리, <낭만자객>은 현재 상영중인

20개 영화 중 맥스무비에서 별점평균 5.5(10점 만점)로 꼴찌, 무비스트에서도 16개 중

꼴찌(5.18)를 달리고 있는 3류 영화니까.

그런데, 조만장자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제가 보았던 시간대(20:50)에는 관객도 많았었구 엄청나게 웃는 사람도 있었으며 김민종의

동생이 죽는 장면에서는 객석이 고요---하며
가끔 훌찌럭 거리는 사람들 또한 있었기에 그들이 알바'는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별점이 말해주듯 보편적인 정서는 그게 영화냐 하는 것이지만, 그 영화를 진짜로 재미있게 본

사람들의 견해도 존중해야 한다는 거다. 그 말이 맞다. 그분의 말대로 난 내게 잘못된 정보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지만, 그들이 진짜로 그렇게 느꼈다면 문제될 게 없지 않는가?

유치하니 어쩌니 비난이 많았던 <영어완전정복>도 내가 아주 재미있게 본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취향이란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바, 영화 추천은 그래서 어렵고, 영화를 볼 때 다른 사람의

말만 너무 믿어서는 안되는 법이다. 깨달음을 주신 조만장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

신문에 실린 영화 선전을 보면 이 영화를 칭찬한 네티즌들의 40자평이 몇개 나와 있다.

하지만 해당 사이트를 가보면 온통 비난 일색, 그런 와중에 좋은 말들만 찾아서 선전에

이용하는 행태가 얄밉기 그지없다.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이거, 진짜로 거기서 퍼온 걸까?

시간도 많은데, 하는 맘으로 무비스트 사이트를 뒤졌다. 윽! 진짜 있다!

-아! 어쩌란 말이냐? 심하게 재미있는 이 영화를.... ★★★★★ mviosuit 03.11.30 오후 10:07 추천수_ 3

-한방에 기분을 업시켜줄 수 있는 영화 ★★★★★
roykwon

-시사회 다녀왔습다, 엽기100점, 코믹80점, 눈물85점, 한풀이100점 ★★★★ qnqnwk333 03.11.28 오후 3:13 추천수_ 0 03.11.29 오후 3:24 추천수_ 0


좋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취향이 다르다고 해서 이들을 모조리 알바로 모는 건 나쁜 짓이다.

그렇기는 해도, 이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유래없는 5점대의 별점평균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의 취향이 보편적인 정서와는 크게 다른 것은 그들도 인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취향이 좀 독특한 것을 안다면, 남들이 가는 사이트에 40자평을 남기는 것을 자제하면

안될까? 느낀 점을 쓰지 말라는 것도 파시즘의 일종일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독특한 취향이 남들을

현혹시키고, 선전에 이용되고 있지 않는가? 선택은 결국 내가 했으니 남탓만 할 수야 없지만,

어쨌든 내게는 <낭만자객>이 <결혼 이야기 속편> 이후 오랜만에 보는 졸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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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입니다"로 시작되는 메일을 확인했을 때,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 유명한 지승호님? 하는 생각에서. 그런데... 맞다. 결례를 무릅쓰고 그분이 보낸 전문을 공개한다.

[지승호입니다. 메일 한번 보낸다 보낸다 하면서도 천성이 게으른
탓에 이제서야 보내는군요. 마태우스님이 매번 써주시는 서평이
제겐 참 힘이 됩니다. 뭐.. 이번 책 날개에도 인용을 했지만(죄송
합니다. 허락도 안받고 제 맘대로 인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타까
지 났더군요. 사과드립니다) 저한테는 과분한 칭찬입니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노력을 더 할거구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지고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그러니까 지승호님은 내가 쓴 서평을 보고 메일을 보내주신 거였다. 인터넷의 소통기능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예찬을 하곤 했지만, 이런 메일을 받고나니 인터넷의 위대성에 대해 감사드리게 된다. 인터넷이 아니었던들 그 유명한 분과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게 가능하기나 했겠는가? 예전에 김정란님으로부터 내가 했던 사소한, 그러나 시간을 많이 투자한 일에 대해 고맙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도 오늘과 비슷한 심정이었을게다. 아, 위대한 인터넷이여!

놀랄 일은 또 있다. 지승호님의 메일 중 "이번 책날개에도 인용을 했지만"이라는 구절이 무슨 뜻일까 궁금했다. 책장에 꽂아둔 책을 꺼낸 뒤 날개 부분을 폈다. 그랬더니...

[...내가 두번째 인터뷰집을 냈을 때 '마테우스'라는 분은 이런 극찬을 해주셨다. "내가 보기에 진짜 아티스트는 인터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지승호님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인터뷰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 인색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제대로 된 인터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거다" 물론 자랑하려고 썼다. 하지만 진심을 말한다면 '마테우스'님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내가 아직 아마추어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랑과 겸손에 연연해하지 않게 된다면, 그 땐 이미 나도 프로가 되어 있겠지]

책날개를 미리 안본 게 다행이다. 사전 정보 없이 책날개를 봤더라면, 심장이 약한 나로서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얼마 전 변정수님으로부터 메일을 받고도 "영광, 영광!"을 외쳤었는데, 저 높은 곳에 있는 저자 분들로부터 메시지를 받는 건 정말이지 즐거운 일이다. 마이리뷰 열편을 쓰면 상품권을 주는 게 탐이 나서, 혹은 나중에 명예의 전당이라도 들어가 볼까 하는 마음에 서평을 열심히 쓰고 있지만, 가끔씩 생기는 이런 일들은 나로 하여금 더 큰 보람을 느끼게 해 주며, 허접스러운 서평은 쓰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내년 2월이면-혹은 3월이든지-고대하던 내 책이 나온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책이지만 누군가 내 책에다 서평을 써주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호의적이든 비판적이든, 서평을 쓴 분들의 서재에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를 드릴 생각이다. 내가 지승호님같은 스타는 아닐지라도, 저자로부터 그런 인사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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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03-12-1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렇게 멋진 일이... ^^

마태우스 2003-12-14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베스트서재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꽃님이시네요. 이런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음.. 더 멋진 일은, 지승호님의 첫 저서인 <비판적 지성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책광고에서도 제가 교보에 쓴 서평을 인용했다는 거죠 (그땐 제 본명인 서민으로!). 지승호님의 책 두권과 그런 인연을 맺은 게 참 즐겁습니다.

싸이런스 2006-07-14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지가 양지된건가? ㅎㅎ
"우와, 베스트서재의 주인공 라스꼴리니꽃님이시네요. 이런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이 글보니 예전에 다 읽었던걸 내가 또 읽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ㅋㅋ
 

 

 

 

의대를 안나온 사람이 의대대학원을 다니면, 의대생들이 배우는 과목 몇개를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제도가 있다. 서울대가 먼저 시작했고, 단대도 하고 있다. 난 꼭 그래야하나 싶은

것이, 생화학을 하러 들어온 사람이 힘든 조교 일을 해가면서 해부학이나 병리학 같은 걸

마스터한다는 게 거의 불가능한데다, 알아도 인생에 도움될 게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조교를 할 때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우리 과목을 수강하는 비의대 대학원생들은 공부는 거의

안한 채 내 도움을 받아 시험만 치곤 했다.



생화학 조교 중 두명이 이번학기 우리 과목을 신청했다. 그들에게 물었다.
나: 오픈 북으로 시험 볼래요?
그들: 아니요
나: 그럼...제가 내주는 테마로 리포트 낼래요?
그들: 아니요
나: 그럼 뭐하고 싶어요?
그들 중 하나: 영화 감상문 쓰면 안되요?
그들 중 나머지: 네, 그럴께요



그래서 그들은 이번학기 동안 두편의 영화 감상문을 써 내기로 약속을 했다. 내라고 채근한 끝에,

내가 데드라인으로 설정했던 오늘사 리포트를 받았고, 시험감독을 하면서 감상문을 읽었다.

조교 중 한명은 <클래식>과 <장화홍련>을 썼는데, <클래식>의 감상문은 거의 초등생

수준이었다.
[이러이러해서...이러이러하니...(줄거리만 잔뜩 나열한 뒤) 참 재미있었다]
난 혀를 끌끌 찼다. "이게이게 뭐야...B-!"


큰 기대를 안하고 본 두번째 리포트를 읽다가, 난 숨이 넘어갈 뻔했다. 영화를 보고서도 몰랐던

핵심을 그 리포트는 정확하게 잡아내고 있었다.
[...화면에 등장하는 시간은 별로 많지 않을지라도, 사건의 중심은 갑수이다(김갑수). 그는 자신이

사건의 중심이며 모든 원인의 제공자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이 모든 무시무시한 일련의

사건은, 갑수의 자그마한, '단순한 무관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갑수는 젊고

아름다운 정화가 병약한 아내와 사춘기의 두 딸에게 얼마나 위협이 될만한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니 세 여자들(엄마와 두 딸, 편집자 주)에게도 그럴거라

쉽게 생각해버리는 거다. 자신에게 극진한 계모를 보며 두 딸에게도 그럴거라 쉽게 믿어버린

장화의 아버지처럼.



가족들 간의 악의없는 단순하고 자그마한 무관심이 가끔 다른 가족구성원에게 굉장히 아픈

상처를 남기곤 한다...가족은, 때론 참 무섭고 아픈 것인가보다]



이걸 읽으면서, 난 비로소 그 영화가 뜻하는 바를 이해했다. 난 다른 교실에서 시험감독을 하는

조교를 찾아가 칭찬을 했다. "정말 잘 썼어요...근데 왜 하나는 저렇게 수준이 낮죠?"

그녀는 웃기만 했다. 난 이 잘쓴 영화평을 내 홈피에 싣고 싶어서, 내게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다. 별 생각없이 한 말이었지만, 당황해하던 그녀는 곧 모든 것을 실토한다. 사실은...인터넷에

뜬 감상문을 베꼈노라고. 그녀는 내 홈피에 오는 사람 중 누군가를 통해 그 비밀이 폭로될까

두려웠던 거다.



아, 그러면 그렇지. 전혀 다른 사람이 쓴 듯한, 천지차이가 나는 리포트를 한사람이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내가 너무 순진해서일까? 귀여운 외모를

봐서 불이익을 주지 않고 넘어가기로-A0 정도로-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인터넷이 이렇듯

악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는 진부한 결론을 나로서는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비록 베낀 리포트지만, <장화홍련>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그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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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탈 때마다 느낀 거지만, 오늘 서울행 버스를 타고 떠나기를 기다리는데 남자 하나가

버스에 올라탔다. 근데 두개로 된 좌석마다 사람이 하나씩 타고 있는 거다. 그러니 그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일해야 했다. 시외버스니 정해진 자리는 없는 거니깐. 여기저기 둘러본 끝에-난

내 옆자리 앉을까봐 긴장했다. 약간 살이 찐 사람이라...-그는 한 남자의 옆에 앉았고, 버스가

떠나 더이상의 비극은 없었다.



필경 그는, 여자 옆에 앉고 싶었을 거다. 여자는 일단 몸집이 작으니 편하기도 하지만, 여자랑

같이 앉으면 좋지 않은가? 말은 이렇게 해도, 내가 만일 그였다면 여자 옆에 자신있게 앉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배짱을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지라-박카스 선전하는 그놈만 빼고-버스에

앉을 때 여자는 여자 옆에, 남자는 남자 옆에 앉는다. 여자는 남자가 싫어서, 혹은 불편해서

여자 옆에 앉지만, 남자는 여자 옆에 앉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이상하게 보일까봐, 용기가

없어서 남자 옆에 앉는다. 기차나 버스에서 여자가 내 옆에 앉으면 난 '오늘은 재수가 좋군'

하면서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내 옆에 앉는 여자는 '오늘도... 텄군!'이라며 한숨을 지을 거다.

남자는 낯설건 아니건 여자를 좋아하지만, 여자는 낯선 남자는 특히 싫어한다.



언젠가 주부가 고교생과 원조교제를 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원조교제'라는 게 꼭

중년 남성이 어린 여성과 저지르는 것만은 아니며, 그 역도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는데, 그렇긴 해도 난 그 여자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정황증거로 볼 때

둘은 서로 좋아했던 건 확실했던 것 같고, 돈을 준 건 성행위에 대한 대가는 아니었다.

난 기본적으로 미성년자 남자에 대한 성착취라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청소년 여자애들은

성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아무리 세태가 바뀌었다 해도 경험이 있다는 것에

죄의식을 갖는다. 반면 남자는 청소년기가 성에 대한 욕구가 가장 왕성할 때인지라 중년이고

뭐고 여자가 하자고만 한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축복으로 생각한다. ('바람난 가족'의 봉태규를 보라!)


남자가 동정을 잃는 것은 여자가 순결을 잃는 것과는 달리 어른으로 성숙하는 과정으로

치부되며, 경험이 많은 여자가 '걸레'라는 과히 자랑스럽지 못한 호칭을 얻는 반면,

많이 해본 남자들은 애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신의 무용담을 떠벌이곤 한다.

결정적으로 여자애들은 돈을 위해 옷을 벗기도 하지만, 남자들이 돈 때문에 그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람들은 말한다. "남성의 성욕은 주머니 속의 못과 같아 삐져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인지 <광수생각>을 그린 박광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남자의 외도는 급해서 다른 화장실을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매매춘 업소는 존재의 정당성을 얻고, 그런 곳이 없으면 강간사건이 급증할 것이라는

말도 설득력을 가진다. 써놓고 보니까, 여자가 남자를, 특히 낯선 남자를 멀리하는 게

매우 당연해 보인다. 성욕으로 충만한 인간이 옆에 있는데 어찌 불안하지 않겠는가?

성욕을 좀만 줄이고 사이좋게 지내면...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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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런스 2006-07-14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좋게 지내요^^
 

 

 

 

김학수가 쓴 <스크린 밖에서본 한국영화사>란 책을 보면, 상명대 영상학부 교수로 있는 조희문에 대한 비난이 여러 차례 나온다.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이 행동하는 그를 보면 자연스럽게 욕을 하게 될수밖에 없다. "이자식, 정말 나쁜 놈이잖아!"

정성일 씨가 한겨레에 의 영화평을 썼는데, 끝부분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역사는 기록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은 (이 영화를 14초 잘라 내야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등급분류 위원님들의 명단이다. ...조문진, 조희문, 옥선희, 이종님, 권은선. 당신들은 당신들의 혀끝으로 다시는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하면 안 된다. 사람은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 안 된다]
그럼, 한입으로 두말하면 안되지. 이 명단에도 어김없이 조희문이 들어있다. 달리 나쁜 놈인가.

스크린쿼터에 관한 토론이 있을 때마다, 그는 폐지 쪽의 패널로 등장해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놓곤 한다. 나쁜 놈 같으니. 그가 나쁜 것은,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한국 영화가 궤멸될 것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알지도 모르면서, 즉 무식해서 스크린쿼터 폐지에 동참하는 사람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옛 말에 이르기를, 무식하면 가만히나 있으라고 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러니까 범죄다.

오늘자 중앙일보에 김영봉이란 사람의 시론이 실렸다. <스크린쿼터 논리에 문제있다>! 김씨의 직업이 중앙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그가 어떤 글을 썼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평소 한편의 영화도 보지 않는 듯한, 문화에 문맹인 사람에게 스크린쿼터에 관한 글을 쓰라고 하면 십중팔구 이런 글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의 말이다.
[이런 제도를 도입한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한복은 윌 민족의 전통 복식...그러나 외국 유명패션이 국내시장을 지배해 국익의 손실이 크고 문화주권 유린도 심각하다. 그러므로 앞으로 전국의 모든 패션 관련 사업장에서는 연 1백 46일간 한복을 팔아야 한다]
이런 말을 써놓고 그는 스스로에게 감탄했을 거다. "정말 멋진 비유야!'" 이래가면서. 이 인간에게는 한복과 우리 영화가 별 차이가 없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난 그가 왜 이따위 비유를 했는지 이해가 안간다. 한복 업자들이 한복을 만드는 이유는 한복집에서 자신이 만든 한복이 팔릴 것이라는 확신을 해서다. 평소 한복을 입는 사람은 드물지만, 결혼을 할 때 필수로 한복을 해가지 않는가. 영화 제작자들이 비싼 돈을 들여 우리 영화를 만드는 것은 그것이 극장에 걸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확신을 해서다. 그걸 확신하게 해주는 장치는 바로 스크린쿼터제. 한복집처럼 한국영화만 일년내내 틀어주는 곳이 도처에 있다면, 굳이 스크린쿼터제를 할 필요가 없는 거다.

그는 말한다. "영화계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를 유지하자는 데 합의했다. 이제는 50%에 근접해 세계최고 수준이 됐으나 언제 다시 추락할지 모를 위험이 있기 때문에...줄일 수 없다고 한다. 세상에 죽을 때까지 실패할 걱정 없는 사업이 있겠는가"
그당시,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서 40%는 그야말로 꿈이었다. 그게 현실로 나타난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스크린쿼터를 "제대로" 시행한 까닭인데, 이 시점에서 스크린쿼터가 없어지면 예전의 한자리 수 점유율로 돌아갈 것이 뻔한 일 아닌가. 이런 건 전혀 안중에 없다는 듯, 김씨는 외쳐댄다.
[영화계가 정말로 헐리우드 영화를 대적할 국제 경쟁력을 원한다면 그들 스스로 보호막을 떨치고 나와 진검승부를 벌일 것을 자청해야 한다]
우리 영화계가 언제 헐리우드를 이기겠다고 했나? 영화 한편에 수억불을 쏟아붓는 그들과 우리의 경쟁은, 치타와 사람이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것처럼 불공평한 게임이다. 경제학에도 독과점을 제도적으로 금지하는 것처럼, 헐리우드가 대부분을 휩쓸어 가더라도 우리 먹을 것은 조금 남겨 달라는 게 스크린쿼터의 취지다. 치타를 이기기 위해서는 티뷰론을 타고 달려야 하듯, 헐리우드 영화들과 그래도 경쟁 비슷한 것을 하려면 스크린쿼터가 있어야 한다.

그의 헛소리는 계속된다. [누가 영화인들에게 대한민국 문화 수호의 성직을 맡겼는가...필자는 국내에 몇개의 조폭영화가 떴다고 해서 한국 문화가 우수해졌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거듭되는 것은 이런 사람이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의 말대로 문화는 "우리의 삶의 형태이며, 국민 모두가 창조하는 것"이라고 해도, 영화는 영화인과 관객들의 것이며, 영화 제작은 영화인들에게 맡겨야 하는 거 아닌가? 자신들이 만든 영화의 판로를 확보해 달라는 몸부림에 왜 딴지를 거는지 모르겠다. 누가 "문화수호의 성직을 맡겼"냐고? 그럼 니가 맡을래? 영화에 무관심한 김씨는 몇몇 조폭영화밖에 아는 게 없겠지만, <파이란>이나 <고양이를 부탁해>같은 우리 영화계의 소중한 성과들은 모두 스크린쿼터의 정착에 의해 탄생한 거다. 이렇게 묻겠다. "그럼 헐리우드 영화는 졸라 우수한 영화냐?"고. 아무리 조폭영화가 판친다고 해도, 최소한 우리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들보다 훨씬 인간적이며, 그건 우리의 정서. 삶. 꿈이 거기 묻어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중국, 파키스탄... 그는 이상한 통계를 들이대며 스크린쿼터 폐지를 주장하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스크린쿼터를 폐지한 나라들에서는 자국 영화산업이 거의 다 박살났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문화산업의 속성인데, 도대체 어쩌자는 걸까. 그는 "한미 BIT는...그 손익은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고 인정한다. 그래, 누구도 알 수 없는 BIT를 위해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황폐화되도 상관없다는 거니?
스크린쿼터는 사실 BIT와는 별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스크린쿼터의 축소 내지 폐지를 BIT를 체결하는 조건으로 내건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영봉이 미국 내 메이져 영화사들의 대변인이 아니라면, 미국이 그런 요구를 하는 배경을 제발 좀 헤아리길 바란다. 'BIT 체결하는 대신 제주도 내놔' 이런다고 해서 '그래, BIT가 중요하니까 줄께'라고 할 사람은 없을 거다. 김영봉처럼 고매한 사람은 영화인들을 딴따라로만 생각할테고, 영화 한편의 의미에 대해 전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우리 영화산업이 제주도보다 더 중요하다. 그는 말한다.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그래도 제일 잘나가는 집단이 영화인들이다. 이들의 집단이기주의가 통하는 나라에서 어떤 사회적 갈등이 풀릴 수 있겠는가]

김씨는 마지막에야 본심을 드러낸다. 이 칼럼의 핵심은 이거다. 영화인들이 잘나가는 게,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차를 타는 게, 고매한 교수로서 기분 졸라 나쁘다는 것. 스크린쿼터의 사수에는 이기주의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 뿐만은 아니다. 영화판에 가면 정말 헐값에 착취당하면서 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영화계에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긴 하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하면서 왜 영화판에 있을까? 나중에 크게 되려고?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들에게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문화 창조의 역꾼이라는 자부심이 없다면 그렇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일년에 영화를 보는 관객은 줄잡아 1억명, 그 중 4천만이 한국영화를 본다. 그 사람들에게 두시간 정도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 경제학자인 김씨는 아무 생각이 없겠지만, 난 그것도 우리 삶에서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니까. 스크린쿼터의 폐지는 그 4천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빼앗는 일, 이걸 어찌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로만 생각을 할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 미국이 BIT를 체결하는 전제조건으로 각 대학의 경제학과를 다 없애라고 한다면, 김영봉 니는 "어, 그래" 하면서 수용할 건가? 거기에 반발한다면 그것도 '집단 이기주의'일까? 아마도 김씨는 경제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할 것이다. 김씨에게 경제학이 중요한 만큼, 영화인들에게도 스크린쿼터는 중요하다. 내게도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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