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번째 술
일시: 4월 29일(목)
마신 양: 소주 한병 빼기 한잔, 맥주 2천cc
누구와?: 사촌동생과
술을 일주에 두번 이하로 마시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한 건 지난주, 하지만 그 결심을 지키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이번주 초, 술을 안마시는 대신 러닝머신은 아주 열심히 한 결과 배가 좀 들어갔다며 흡족해하고 있는데, 사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어, 웬일이니?
사촌: 형,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해 정리좀 해주세요 (그 녀석은 나의 정치적 식견을 굉장히 존중한단다^^).
나: 선거 끝난지가 언젠데...그거 남들이 다 정리했잖아!
사촌: 그래도...
나: 정리하자면 이렇지 뭐. 탄핵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1당이 되었고....
사촌: 그러지 말고 소주라도 같이 하면서 얘기하면 안될까요?
그래서 난 엊그제, 그와 만나 술을 먹었다. 그 유명한 <기차길 왕갈비>, 그런 곳에 가면 무리하게 마련, 아침에 보니 조금 들어갔던 배가 다시 나온 느낌이다. 정치 얘기는 했냐고? 별로 안했다. 알고보니 그 녀석이 회원 8만명을 거느린 축구 사이트의 운영자라, 순전 축구 얘기만 했다. 네덜란드 대표선수인 다비즈가 인간성이 안좋느니, 레알의 골키퍼 캐시어스가 천재라느니, 코엘류 경질이 어떻느니...
어찌되었건 어제 그는 나의 은인이었다. 그날 아침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민아, 오늘 야구나 보러가자" 엘지의 팬인 그는 나한테 곧잘 야구를 보러가자고 한다. 야구야 볼 수도 있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그의 별명은 '거머리'로, 새벽 3시 전에는 절대 친구들을 집에 보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약속이 있다고 매몰차게 거절했기에 망정이지, 그와 만났다면 야구를 보고, 술을 마시고, 나쁜 곳에도 가고 하면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사촌과 만나는 바람에 난 술도 적당히 먹었고, 돈도 조금밖에 안썼으며, 집에 일찍 들어와 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다음날 졸려서 몽롱했던 건, 새벽 두시에 김병현 경기를 봤기 때문이다. 세상에, 새벽 두시에 야구를 하면 어쩌란 말인가.
65번째 술
일시: 4월 30일(금)
누구와?: 초등 동창들과
마신 양: 꽤 취했던 걸로 보아 소주 1병 반 이상은 마셨을 듯...
집에서 독후감을 열심히 쓰고 있는데, 저녁 7시반쯤 전화가 온다. "민아, 홍대앞으로 가고 있는데, 한잔 해야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친구들인지라, 난 독후감을 다 쓴 8시 반쯤 집을 나섰다. 저녁을 안먹은 상태여서 배가 고팠는데, 안주로 시킨 맛없는 해물탕을 억척스레 먹었다. 2차를 어디 갈까 망설이기에 "<기차길 왕갈비> 가자!"고 꼬셨더니, 진짜로 다 따라온다. 그 맛있는 집에서 나의 젓가락은 조자룡의 창처럼 고기 사이를 누볐으며, 소주도 심심치 않게 마셔댔다. 고기집이 줄지어 있는 그 동네도 빈익빈 부익부가 적용돼, 드넓은 공간을 자랑하는 <기차길>은 밤 11시가 넘어서도 빈자리가 없었지만, 다른 집들은 손님이 없어 주인이 밖에 나와 있다. 금요일에도 그러면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이 됐다. 여자애 하나를 데려다 준다는 핑계로 도망갔기에 망정이지, 더 있었다간 왕창 취할 뻔.
어제 마심으로써 4월까지 마신 횟수는 정확히 65번, 이런 추세라면 12월 말까지 200번이 된다. 목표를 180회에서 200번으로 올렸으니, 그럭저럭 달성은 하겠구나 싶지만, 12월 특수를 무시해서는 안되는지라 미리 저축을 해야 한다. 지갑이 상대적으로 얇아지는 5월엔 술을 좀 줄일수 있으려나? 카드라는 게 있으니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는.....
어제 느낀 건데, 내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출발을 했으면 부지런히 페달을 밟아야 하듯이, 술을 좀 마시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면 계속 마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5월의 첫날인 오늘, 숙명의 일전이 있다. 컨디션 관리를 완벽하게 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이라는 게 있다. 멋진 승부를 펼쳐 보리라.
-에필로그-
내 이름은 흑표범이다. 알라딘에 가입한 건 두달 전인데, 책만 주문했을 뿐 서재가 있다는 걸 안건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서재는 지금까지 총 11명이 찾았다. 아무것도 차린 게 없으니 손님이 없는 건 당연했다. 그럼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명예의 전당이라 씌어있는 곳을 클릭했다. 그 결과.... 너무도 놀라운 광경들을 난 봤다. 은행에 돈을 저금하는 사람들처럼, 알라딘 사람들은 서재를 너무도 잘, 이쁘게 꾸며놓고 있다. 일주일이 넘도록 상위에 랭크된 서재들을 들락거리다, 난 알라딘의 지하세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냈다. 참이슬이 있는 서재의 주인공 마태우스님과, 그가 그늘에 있고 싶다는 플라시보님. 난 그 두분의 서재에 오른 글들을 보름간 거의 다 읽었다. 그리고 내가 알아낸 '알라딘 평정하는 방법'을 글로 쓰기로 했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인기 서재의 주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니까. 혹시 아는가. 인기서재가 되고 싶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될지.
-흑표범의 알라딘 평정법-
1. 직장이 편해야 한다
마태우스(이하 존칭 생략합니다)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직장에서 하는 일 없어요" 그래도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 사람이니 놀기만 하겠냐고 생각을 했지만, 그의 페이퍼들을 보고 있자니 논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 한달을 통틀어 그가 글을 안쓰는 날은 하루나 이틀이 고작이다. 17일만 해도 '알라딘의 목마'를 올린 시각이 오전 11시 30분, 글의 분량으로 보아 오자마자 그것만 쓴 것 같다. 그거 말고도 글을 두 개나 더 썼으니, 그날은 온통 알라딘에 계셨나보다. 플라시보님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일 하루동안 세편의 글을 올리는 등, 하루 평균 3편 가량의 글을 매일같이 쓴다. 그래서 난 결론내렸다. 알라딘 평정은 직장에서 이루어진다. 나같이 직장에 매인 사람이 알라딘에서 정상에 오르려면, 직장을 옮기던지, 그만 두는 수밖에.
2.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플라시보의 글에는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얘기가 자주 등장한다. "배때지가 불러서 그래. 돈내고 먹는 음식인데 왜 남기냐?"라든지, "잘 싸는 게 낙"이라는 글귀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전에는 화장품이 든 파우치를 잃어버렸다는 얘기도 했다. 마태우스 역시 치부를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다. 88짜리 바지가 안맞는다든지, 체중이 80킬로라든지, 내년 8월이면 잘릴 거라는 등 어찌보면 치부일 수 있는 얘기들을 적나라하게 기술한다. 이런 게 어떻게 독자들에게 어필하는지 모르겠지만, 서재 주인장의 솔직담백한 모습에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나보다. 나도 치부를 하나 공개한다. 난 배꼽이...등에 있다!
3. 사진을 활용한다
여기 오기 전, 내가 있던 사이트는 사이월드였다. 거기서도 얼짱 콘테스트가 벌어지고 있긴 해도, 미남미녀가 아니면 사진을 올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마태우스의 사진을 보고 매우 놀랐다. 글과 사진이 매치가 안되서 한동안 어리둥절했을 정도. 서재 주인장 모임 때 찍은 사진이라는데, 그런 사진을 올리고 오히려 인기가 올라갔다니, 동정표가 쏟아진 게 아닌가 싶다. 플라시보 역시 사진을 많이 올리는데, 마태우스와는 반대로 사진을 통해 인기몰이를 하는 것 같다. 대체로 미인 축에 속하는 얼굴이고, 지적인 면도 있으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원래 인터넷 사이트에서 미녀는 방문객을 끌어들이는 데 절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는가. 난 그리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평범한 얼굴이라 걱정이다. 인기몰이도, 동정표도 얻기 힘드니까.
4. 뭐든지 글로 만든다
플라시보의 글을 보다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소를 한다든지, 시장에 가서 장을 봤다든지 하는 사소한 일상도 장문의 글로 만들어 버린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하루에 세편씩의 글을 쓰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마태우스도 마찬가지다. 그는 과거에 있었던 온갖 사소한 일들-오늘은 휴대폰을 가지고 장난친 얘기를 썼다-을 모조리 소재화한다. 심지어 술을 한번 마실 때마다 글 한편씩을 쓰기까지 한다. 혹시 소재가 떨어질 때마다 술을 먹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니까 내가 서재를 평정하려면, 부끄러워 말고 온갖 얘기들을 다 써야 할 것 같다. 부장님한테 혼난 얘기는 물론이고 식당 메뉴가 오징어가 나왔다는 것 등. 문제는 내가 그 소재를 멋진 글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 자신 없다...
5. 책 리뷰
마태우스나 플라시보는 110-130편 정도의 리뷰를 썼다. 알라딘 서재가 '책방'이란 뜻이니, 어느 정도의 마이리뷰가 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하다. 플라시보의 말에 따르면 리뷰는 "새로운 사람과 만남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이라고 하니, 일단 리뷰부터 열심히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6. 활동
내가 찾아간 서재마다 마태우스의 흔적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다. 이 많은 서재를 돌아다니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많은 글들을 읽고 코멘트를 남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플라시보는 자기 글에 코멘트를 달아주면, 거의 실시간으로 리플을 달아 준다.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고 있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노력이 있으니 인기서재의 반열에 오른 것이겠지.
쓰고나서 보니, 인기 서재의 주인이 되는 것은 다단계의 다이아몬드 되기만큼 어려운 것 같다.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 나로서는 직장에서 한가롭게 글을 쓸 수가 없고, 집에 와서도 가족과 보내느라 글을 쓸 시간은 거의 없다. 천재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인 것처럼, 알라딘에 가입하는 순간부터 인기서재가 될까 아닐까가 결정이 나는 게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난 인기서재가 될 조건을 하나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남들은 1만명 고지를 넘었지만, 내 서재의 방문객은 고작 11명-지금 12명이 되었다. 누가 왔지?-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