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번째 술
일시: 5월 27일(목)
왜?: 학회 전날은 늘 술을 마신다.
마신 양: 소주--> 맥주--> 양주 약간
우리 학회에서는 평의원회라는 게 있다. 대학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모임으로, 중요한 안건이 핵심인사들 몇몇이 른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반면, 평의원회에서는 하나도 안중요한 안건들이 다루어진다. 그래서인지 우리 학회의 평의원회는 매우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어 왔던 게 그간의 관례였다. 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좀 달랐다. 지난번 회장선거를 놓고 그랬던 것처럼, 설대 계열과 연대 계열이 첨예한 문제를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일 예정이었던 것. 각 계파마다 자파 평의원들의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할 것을 호소하는 메일이 보내졌다. 그게 내가 오랜만에 평의원회에 참석한 까닭이었다.
언제쯤 그 안건이 나오나 마음을 졸였지만, 그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은 채, 언제나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평의원회는 막을 내렸다. 어찌된 일인지 자세한 내막은 높은 분들만 알 것이고,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어차피 이 세상은 내가 보지 못하는 힘에 의해 굴러가는 거니까. 그와 전혀 관계없이 그날저녁 난 열심히 술을 마셨고, 노래방에 갔을 때는 그만 자버리는 실수를 범했다. 아, 창피한 일이다. 정신을 잃은 횟수도 따로 집계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78번째 술
일시: 5월 28일(금)
왜?: 친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마신 양: 소주 왕창...
술을 마시는 와중에 친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문상을 같이 가자는 메시지를 받았다. 솔직히 좀 망설여졌다. 밤새 술마시고, 부산서 서울로 올라가자마자 또다시 영안실에 가야 하는 게 피곤하게 생각됐고, 부모님도 아니고 할머닌데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3년 전 아버님 상을 당했을 때 지인들에게 느낀 고마움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가야했다. 더구나 친구가 날 필요로 하는데...
또 나가냐고 슬픈 눈길을 던지는 벤지를 뒤로한 채, 늘 모이는 친구끼리 모여 술을 마셨다. 당사자인 친구는 "민아, 오늘 한번 죽어보자"며 연방 술을 권했다. 그가 없는 자리에서 한 친구가 말했다. "야, 알고보니 외할머니더라? 친할머니도 아닌데 뭐 친구들을 부르고 그러냐?"
내가 망설였던 것은 '할머니'여서였지 '외할머니'여서는 아니었다. 내게 있어서 할머니는 언제나 외할머니였다.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데다, 달랑 딸만 하나 있었던 외할머니는 우리 형제들을 너무도 이뻐하셨다. 내가 어릴 적 남보다 풍족한 장난감과 학용품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덕이다. 내가 어릴 적 "외할머니"라는 말을 썼을 때, 할머니는 너무도 서운해서 밤새 잠을 못이루시기도 했다. 특히 나만을 이뻐하셨던 할머니는 지금도 내 손주를 보시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혼자 사는 날 괴롭히신다. 그게 애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물론 잘 알고 있지만.
이건 나만의 상황일 뿐, 경우에 따라서는 친할머니가 훨씬 더 친한 사람도 있을게다. 그런 사람에게 친할머니의 부음은 많은 슬픔을 가져다 줄 것이다. 내 친구 역시 나처럼 '할머니=외할머니'라는 등식으로 자란 모양이다.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소위 말하는 호상이지만, 친구는 충분히 슬퍼 보였다. 그 자리에 내가 안갔으면 친구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굳이 갈라서, 친할머니를 더 높이 쳐주는 건 도리가 아닐 듯하다.
방금 할머니를 댁에 모셔다 드렸다. 우리 집에서 이것저것 집안일을 도와주고 가시는 거지만, 모셔다 드릴 때마다 할머니는 날 귀찮게 한다면서 미안해하신다. 내게 부모님 다음으로 애정을 주셨던 할머니도 벌써 88세, 만일 돌아가신다면 나 역시 굉장히 슬플 것 같다. 그래도 난 할머니의 상 때 친구들에게 연락을 할 것같지는 않다. 그건 내가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못하는 성격 탓이지, 내가 옳은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외할머니 상 때 친구들을 부른 내 친구가 잘못된 것도 결코 아니다.